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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MBC는 시험대 위에 섰다.

방송문화진흥회를 향해 쌍심지를 켜는 것만으로는 다가올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사장의 인사권을 침해해 결과적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훼손한 점에서, 그 배면에 방송 장악 또는 길들이기 의도가 깔린 점에서 방문진을 비판하는 건 타당하지만 이것만이 실천적 대안인 것은 아니다. ‘익히 예상했던 일’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절대 되돌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엄기영 사장이 최종적으로 ‘사퇴’ 모양새를 취한 점도 이런 전망을 강화한다. 그의 ‘사퇴’가 ‘되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방문진 입맛과 정권 코드에 맞는 인물이 사장 자리에 앉아 ‘방문진표’ 본부장들과 함께 MBC 장악에 나서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MBC의 한 기자가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각 본부장들은 자기 뜻에 맞는 부장과 팀장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며 “사람이 바뀌면 내용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라고(‘한겨레’ 9일자 보도). MBC가 오르는 시험대가 바로 이것이다. 방송의 ‘공영성’과 ‘독립성’이 하나 둘 소리 소문 없이 스러지는 상황 말이다.

KBS에서 확인한 바 있다. ‘땡전뉴스’ 데스크로 기능해 시청료납부거부운동의 대상이 됐던 KBS가 변신했다는 믿음, 비로소 공영방송으로 거듭났다는 믿음이 어설픈 것이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숱한 ‘하차’와 ‘편파’ 논란에도 불구하고 제작일선에 있는 기자와 PD가 변변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공영의 기초가 부실했음을 확인한 바 있다.

이젠 MBC 차례다. MBC에서는 공영의 기초가 얼마나 튼실한지를 잴 차례가 됐다.

가능성은 있다. MBC는 KBS와는 조직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조직, 그래서 소통과 응집이 비교적 원활한 조직이 MBC다. 몇 번의 방송독립 투쟁경험이 여전히 살아있는 곳이 MBC다. 난관을 헤치고 나갈 힘이 상대적으로 큰 곳이 바로 MBC다.

외부 요인도 있다. 이명박 정권의 공격 타깃이 된 곳이 MBC다. 지난 2년간 편향 대 공영이라는 구도에 내몰렸던 곳이 MBC다. 그만큼 방송의 공영성과 독립성에 대한 각인효과가 강하게 새겨진 곳이 MBC다. 물러설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 바로 MBC다.

하지만 모른다. 가능성은 그에 맞는 조건을 만나야 현실화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지의 요인을 간과할 수 없다.

제작일선에서 ‘일상투쟁’을 전개해야 할 평사원의 특수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 대부분이 김대중 정부 이후, 더 넓게 잡아도 87년 6월항쟁 이후에 입사했고, 꼭 그만큼 내ㆍ외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웠다. 이 같은 특수성이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제작 간섭에 대한 ‘자극ㆍ반발지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지, ‘면역력’을 키우고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다.

KBS에 비해서는 작지만 신문사에 비해선 큰 조직 규모 또한 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클수록 조직은 수직화 되고 실적평가와 인사고과는 빡빡해진다. 규모가 방대할수록 조직은 계통화 되고 직종간 칸막이가 생긴다. 이런 요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그것이 ‘간섭’의 ‘선명도’를 높일지, ‘개입’의 ‘틈새’를 벌릴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말할 수 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 일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MBC노조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방문진표’ 본부장 출근저지투쟁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16일 총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MBC구성원들은 시험대를 정면돌파할 각오를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사진=MBC 사옥 전경 ⓒMBC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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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오늘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김인규 KBS 사장이 PD를 성토했습니다. 올 1월 ‘서울대 동문회보’와의 인터뷰에서 “PD들이 많다보니까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 막 만들고 프로그램 하나에 PD가 8명씩 매달린다”고 비판했습니다. “방송개혁 1번은 PD 개혁”이라고도 했고 “PD들이 비정상적으로 권력화 돼 있다”고도 했습니다. 거듭 확인했습니다. 얼마 전 사장 선임을 위한 이사회 면접에서 1월 발언에 변화가 없느냐는 질문에 김인규 사장은 “변화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자직과의 통합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김인규 사장만이 아닙니다. 이병순 전임 사장은 취임 직후 ‘시사투나잇’을 폐지했습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몇몇은 선임 직후 ‘PD수첩’을 문제 삼았습니다.

실상이 이렇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PD는 공적이 되고 있습니다. 김인규 사장 말처럼 손 봐야 할 ‘1번’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PD는 아닙니다. 대상은 특정 PD입니다. 드라마를 만들고 버라이어티쇼를 만드는 예능 PD가 아니라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사 PD로 타깃이 맞춰져 있습니다. 여기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MB방송'이 정조준하고 있는 대상은 PD저널리즘입니다. PD가 만드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과녁입니다.

얼추 헤아릴 수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의 일, 아니 현재진행형이기도 한 일을 떠올리면 PD저널리즘을 과녁 삼는 심사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촛불시위가 잦아든 후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은 ‘PD수첩’에 ‘적의’를 내보였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황금 같은 1년을 앗아간 원흉으로 ‘PD수첩’을 지목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PD수첩’한테 되로 받은 걸 PD저널리즘에게 말로 갚으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파편적입니다. ‘심사’를 읽는 실마리는 될 수 있지만 ‘전략’을 읽는 실마리는 될 수 없습니다. ‘PD수첩’이 ‘계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유일한 ‘목표’는 아닙니다.

재발 방지, 아니 싹 자르기 차원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PD수첩’의 광우병편 같은 프로그램이 재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단서는 세 개입니다. 기자저널리즘과는 달리 PD저널리즘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 세 가지가 'MB방송'으로 하여금 구조적으로 접근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기자저널리즘은 ‘팩트’를 주되게 말합니다. 대중에게 정보만 전달하는 것이죠. 그래서 분절적이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인식’ 수준에서 멈춥니다. 반면에 PD저널리즘은 ‘스토리’에 팩트를 녹입니다. 대중에게 ‘프레임’을 짜주는 것이죠. 그래서 입체적이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태도’ 수준으로 올라갑니다.

차이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만이 아닙니다. 취재원 입장에서 보면 사전 조율 여지가 현격하게 다릅니다. 기자저널리즘에게 ‘팩트’는 목적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조율(정상적 차원의) 여지가 있습니다. 기자가 어떤 ‘팩트’를 취재하는지를 알면 기사 방향을 알 수 있기에 ‘팩트’에 ‘반박 팩트’를 제시해 보도내용을 중화시킬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PD저널리즘에게 ‘팩트’는 경로에 가깝습니다. PD저널리즘에게 ‘팩트’는 스토리 구성의 요소이자 스토리 텔링의 장치입니다. 그래서 조율하기 어렵습니다. 취재원이 아무리 ‘반박 팩트’를 제시하더라도 가지만 치지 줄기를 베어내지는 못합니다.

이런 차이를 심화시키는 게 바로 취재환경입니다. 기자저널리즘은 출입처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취재원이 기자저널리즘에 접근할 연결고리가 갖춰진 것입니다. PD저널리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취재원에게 일상적 대응의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일상적 대응-조율 통로가 아예 없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전통적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한 사람이 보면 PD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 아닐지 모릅니다. ‘팩트’ 전달을 목적으로 하고, 6하원칙을 방법으로 아는 전통주의자에겐 그럴 겁니다.

하지만 내세울 주장은 아닙니다. PD저널리즘이 전통적인 저널리즘 양식이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D적 감각에 기초한 사회현상 쫓기의 필요성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근거입니다. 'MB방송'의 PD저널리즘 옥죄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근거가 바로 이것입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새롭게 모색할 수 있습니다. 'MB방송'이 보기에 기존 시사 프로그램이 정말 문제라면 발전적 차원에서 좀 더 나은 시사 프로그램, 좀 더 다듬어진 시사 프로그램 모델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MB방송'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발전적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폭력적으로 청산하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프로그램이 돌출할지 몰라 아예 뿌리를 도려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폐지를 단행하고 인사권을 휘두릅니다.

방송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로, 대안모색이 아니라 발본색원을 강구하는 것입니다.

 ▲사진=PD를 강하게 성토한 김인규 KBS 신임사장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랬던가? 인사는 만사라고…. 맞다. 인사는 만사다.

KBS가 어제 보여줬고, YTN이 오늘 보여주는 일반적인 공식이다. 인사권을 행사하면 조직을 장악하고, 조직을 장악하면 프로그램을 조율할 수 있다. 소리 내지 않고, 탈도 내지 않고 프로그램을 장악하는 데 이처럼 유용한 공식은 없다.

잘 볼 필요가 있다. YTN 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배석규 전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원 추천제에 의해 선임된 보도국장을 전격 경질하고, ‘돌발영상’ PD를 3개월 대기발령 조치하면서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YTN 보도내용에 대해서도, ‘돌발영상’의 내용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제도와 규정을 들었다. 보도국장 3배수 추천제는 2003년 체결된 단협에 따른 제도로 2년 효력이 끝나 더 이상 지킬 이유가 없다고 했고, 대기발령 조치는 형사 기소된 사람에 대해 대기발령을 낼 수 있도록 한 사규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이런 모양새를 취하면서 피해가고 있다. 인사 조치를 프로그램 간섭, 제작 간여와는 상관 없는, 통상적인 인사권 행사로 치장하고 있다.


KBS도 그랬다. 이병순 사장이 본부장급을 물갈이하고 일선 기자와 PD 인사를 단행하고, 프로그램 진행자를 교체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가 거의 없다. 프로그램에 대한 호오를 세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간부와 기자․PD에 대한 인사를 사장 교체에 따른 인사권 행사 차원으로 포장했고, 진행자 교체를 제작비 절감을 위한 경영권 행사 차원으로 묘사했다.

덕분에 피해갔다. 특정 프로그램이 폐지돼도, 특정 프로그램의 제작방향이 틀어져도 국민적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그것을 새로운 제작진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른 것으로 치장한 덕에 프로그램에 대한 정치적 간섭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다.

다르지 않다. KBS가 어제 보여줬고 YTN이 오늘 보여주는 공식은 본질상 같다. 차이는 시차뿐이다. KBS가 구현한 공식을 YTN이 뒤늦게 따라하는 것일 뿐이다. ‘낙하산’이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인사권의 정당성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했던 구본홍 사장이 물러난 덕에, ‘낙하산’ 멍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배석규 전무가, 게다가 ‘토착’ 인사로서 사내 구성원에 대한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배석규 전무가 뒤늦게 공식을 적용하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일반화하지는 말자. 사측의 일방적인 전략을 만사형통의 비법으로 격상시키지는 말자. 작용엔 반작용이 따른다. 

지켜볼 필요가 있다.

KBS의 어제가, YTN의 오늘이 MBC의 내일이 될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방송문화진흥회가 편향된 인사로 채워졌어도 엄기영 사장 체제가 버티면 KBS와 YTN 모델은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엄기영 사장 체제가 존속돼도 인사권 행사과정에 방문진 입김이 스며들면 KBS와 YTN 공식은 적용된다.

KBS 노조가 막지 못한 전가의 보도를 YTN 노조가 막아낼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KBS 사원은 노조와 ‘사원행동’으로 양분돼 전열을 모으지 못했지만 YTN 사원은 사원 대다수가 ‘구본홍 퇴진 투쟁’으로 전열을 갈고 닦았다. KBS는 기존 규정 틀 안에서 인사권을 행사해 노조(와 사원행동)의 입지를 좁혔지만 YTN은 단협 자동갱신 관행을 일방적으로 무시해 노조의 활동공간을 넓혔다. 

KBS와 YTN은 말하지 않았지만 MBC는 말한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신임 방문진 이사 몇 명이 대놓고 말했다. MBC의 특정 프로그램이 편향돼 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방문진 이사가 왜 개별 프로그램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는 반박에도 불구하고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KBS와 YTN이 ‘조용한 전쟁’을 벌인 반면에 MBC는 ‘시끄러운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제가 오늘의 발판이 되고, 오늘이 내일의 모델이 될지 모른다. YTN 노조가 KBS 노조(와 사원행동)의 극복 대안이 될지 모르고, MBC 방문진의 섣부른 언사가 자충수가 될지 모른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어긋났다. 본과 말, 주요와 부차를 뒤집어버렸다.

그가 그랬다. KBS와의 특별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제20차 라디오연설’에서 미디어법을 언급하면서 그랬다. 방송은 장악될 수 없다고 했고, 미디어산업 선진화가 긴요하다고 했다.

늘 듣던 얘기였다. 정부가 강조했고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얘기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얘기였다. 그래서 식상했다.

정작 듣고 싶었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정말 듣고 싶었던 얘기는 미디어법 개정 취지가 아니라 미디어법 처리 절차였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국회의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고 끊었다.

대통령의 말이 본말을 뒤집은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청난 논란과 극심한 갈등을 야기한 게 바로 미디어법 처리 절차였다. 정치권을 일순간 마비상태로 몰아넣은 게 바로 미디어법 강행 처리였다. (백 번 양보해 미디어법 개정 취지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 취지를 갉아먹은 게 바로 재투표와 대리투표 논란이었다.

말해야 했다. 국정을 최종 책임 지는 대통령이라면 국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법 처리 절차에 대해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법률안 공포권과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입장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좋게 해석할 여지는 없다. 방송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제기된 상태이니까, 헌법재판소가 심리할 테니까, 대통령으로서 심리에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해서는 안 되니까 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게 헤아리고자 했다면 이런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미디어법 처리 절차에 대해 말을) 하지는 않지만, 너무 늦으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말은 하면 안 됐다. 그렇게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우회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선 안 됐다. 헌재의 심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언급을 하면 안 됐다. 하지만 했다. 하지 않겠다면서 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익히 짐작했던 일이다. 청와대가 미디어법의 관전자가 아니라 지휘자에 가까웠다는 일반적 분석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은 놀라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KBS는 다르다. 놀랍고 신기하다.


특별대담에 나선 KBS가 물었다. 미디어법의 처리 절차를 물은 게 아니라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동안 논란이 심했던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절차의 적법성을 가지고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만, 야당에서는 언론장악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 기회에 대통령께서 갖고 계신 우리 언론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놀랍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이 짧은 질문에 녹아있다. 언론이라면, 시의성에 목메는 언론이라면 ‘구문’은 뒤로 미루고 ‘신문’을 앞세우는 게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론이라면, 정권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라면 ‘총론’의 밋밋함을 뒤로 미루고 ‘각론’의 날을 벼리는 게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삼 확인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본말전도 발언은 KBS의 본말전도 질문에 따른 것이었다. 미디어법 절차의 적법성을 가지고 논란이 '있지만' 대놓고, 각을 세워 묻지 않음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이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말하는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사진=라디오연설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품을 적잖이 들인 점은 인정한다.

22년 전 기사를 뒤졌다. 색 바랜 신문에 침을 바르고, 필름통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찾아냈다. 1987년 6월항쟁 전후의 ‘경향신문’ KBS·MBC 보도를 들춰냈다. 정권에 아부했고 시민에 등 돌렸던 세 매체의 과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해한다. ‘동아일보’가 세 매체의 과거사를 들춰낸 이유를 이해한다. 경멸과 냉소를 가득 담아 ‘너희가 언제부터 민주언론 진보언론이었는데?’라고 되묻기 위해서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세 매체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6.10민주회복범국민대회’를 6월항쟁 정신과 연결한 것을 문제 삼으며 “최근 6.10범국민대회와 관련해 민주주의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것은 지난 일을 모른 체하는 행태”라고 했다.


이런 식의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6월 15일자 ‘황호택 칼럼’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6월 10일만 되면…제철을 만난 듯 지면에 활기가 넘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경향신문’과 KBS·MBC는 ‘관제언론’을 하고 있었던 반면에 ‘동아일보’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6월 민주항쟁에서 선두에 서서 붓으로 싸웠다고 했다. 이렇게 “과거사를 들추는 이유는 우리 자랑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제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들춰낸 과거사는 사실에 부합한다. KBS와 MBC는 분명 ‘관제언론’이었다. ‘땡전뉴스’의 첨병으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중에 6월항쟁의 주역이 된 ‘일부 극소수 불온세력’을 성토하는 ‘보도특집’을 방송하곤 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5공 시절에 ‘경향신문’이 전두환 세력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놨다는 기록을 찾기는 힘들다. ‘동아일보’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고, 민주언론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과거사 들추기를 인정하지 못한다. 동의하지도 않는다.

‘동아일보’는 자충수를 뒀다. 헛심 쓰면서 헛물만 켰다. 두 개의 반문을 끌어내는, 누워 침뱉기식 우를 범했다. 이런 것이다.

첫번째 반문은 ‘그럼 너희는?’ 이다. 그럼 ‘동아일보’의 과거사는 그리 떳떳하냐는 반문이다. 회고 시점을 22년 전에서 일제강점기로 확장하면 ‘친일’ 전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역사학계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두번째 반문은 ‘그랬던 너희는?’ 이다. 22년 전 민주항쟁의 선봉에 섰던 ‘동아일보’가 지금은 어느 세력의 선봉에 서 있느냐는 반문이다. 각계각층이 민주주의 후퇴 또는 위기를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데도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옹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반박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미 반박하고 있다. ‘친일’ 전력 주장은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시대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공과 과를 두루 아우르지 못한 단견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부여한 자유를 좌파세력이 악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따로 재반박하지는 않으련다. 그래봤자 평행선을 달릴 뿐이니까….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내놓은 논란의 해법을 상기하고 환기시키련다.

‘황호택 칼럼’이 그랬다. “어떤 신문의 논조가 옳고 그른지는 독자의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도 했다.

이 ‘훈계’를 받들어 ‘동아일보’에 권한다. 스스로 설정한 금도를 자신에게 적용시키기를 권고한다. 역사의 평가는 차후의 일이니까 그렇다치고 당대의 독자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고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살피기 바란다. 정말 일부 좌파세력만이 ‘동아일보’를 공격하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또한 한 때의 영광을 우리고 또 우리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 보기 바란다.

세상사 이치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 나가 “우리 집안은 삼정승 육판서를 배출한 명문가라오”라고 하면 “그래요? 그럼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는데요?”라고 반문하는 게 세상 인심이고 시대 정서다.

▲‘동아일보’ 6월 26일자 기사

Posted by '토씨'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 PD는 라디오 주조정실 앞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 방송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KBS 라디오PD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주례연설 방송을 반대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KBS는 국가기간방송이니까 주례연설을 내보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PD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논리정연했고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국가기간방송으로서 국가비상시에 대통령의 담화를 방송할 수 있는 건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되묻더군요. 지금이 국가비상시냐고….

답답해하더군요. 주례연설 방송이 결정되기까지의 절차, 그리고 방송제작 방식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한숨을 내쉬더군요(이 부분은 그간 많은 언론이 보도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내용만 언급하겠습니다. 자체제작권과 자체편집권을 확보했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권은 방송차를 청와대에 보내 녹음을 따오는 것에 국한됩니다. 편집권의 경우 그것을 확보했는지, 편집권을 실제로 행사했는지는 PD들조차 모른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설명을 들은 바가 없다고 하는군요).

주례연설 방송이 결정되기까지의 절차가 불투명하고, 주례연설 방송 형태가 일방적이라며 한숨을 토해내는 그 PD에게 물었습니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자존심이 훼손된 게 아프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동료도 엄연히 라디오 PD인데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주례연설 방송이 정규편성됐는지 알지 못하는 처지가 갑갑하다고 했습니다. 바보, 허수아비가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KBS 라디오 PD들은 잘 알지 못하는데 청와대가 먼저 주례연설을 공표하는 걸 보면서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시청률 경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송쟁이 아니냐고, 주례연설이 뉴스가치가 KBS의 시청률 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넌지시 물었습니다.

웃더군요. 그렇게 말하는 PD가 더러 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주례연설이 뉴스를 생산하지 않겠느냐고, 그건 굴러들어온 떡이니까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PD가 있기는 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단호하게 자르더군요. 설령 그런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더 큰 것을 잃게 된다고 했습니다. ‘공영방송 KBS’의 위상을 잃게 된다고 했습니다. ‘관영방송’의 때를 벗겨내기 위해 20∼30년 동안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아직 완전히 탈색하지 못했는데 또 다시 일방적인 대통령 주례연설을 내보내면 어떻게 되겠냐고 했습니다. 인터뷰어가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는 쌍방향 형식도 아닌데 어느 국민이 KBS를 곱게 보겠냐고 했습니다. 결국 후배들에게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습니다. 더 물어볼 것도, 더 대답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 PD가 그러더군요. “끝까지 싸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통령 주례연설 방송이 끝난 직후 그 PD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KBS 정문 앞에 있다고 하는군요. 주조정실 앞 피켓시위를 끝내고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  PD는 싸우고 있습니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10월 12일 라디오 연설을 녹음하고 있다. ⓒ청와대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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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는 억압받는 촛불의 편에 서 주세요."

지난 23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청 앞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다. 정진석 추기경을 만나겠다는 한 무리의 시민들과 이를 막는 경비들의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늦더위 속에 거센 몸싸움을 벌인 이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교구청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단식을 시작했다. 5일간 펼쳐진 농성의 시작이었다.

50대 회사원과 중년의 아주머니, 일흔이 다 된 할머니 등은 정 추기경을 만나기 전에는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며 곡기를 끊었다. 5일간 물과 소금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이들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모두 천주교 신자였던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는 느닷없이 왜 서울대교구 교구청으로 달려가 단식농성을 시작하게 됐을까. 사회단체 활동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그들. 그저 평범한 '무명씨'일 뿐인데, 생업과 가정을 접고 거리로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대개 인터뷰를 사절해서 그 가운데 올해 쉰둘의 박정훈(가명, 중소기업 전무이사)씨를 28일 전화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올봄 여중고생들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에 저도 자주 참여한 것 같아요. 유신과 군사정권, 민주정부 시절을 보내면서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지만 고질적인 병폐는 여전하지요. 산업현장에는 부정과 부패, 뒷거래가 횡행하거든요. 뒷거래 없이는 견딜 수가 없어요.

개인적 양심으로는 부정한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수치심이 있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못 버틴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부정부패가 정말 많이 사라졌지만, 잔존 찌꺼기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도로 활개 치기 시작했어요. 20년,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지요. 그동안 쌓아온 '민주 성장'이 급격하게 퇴보하는 걸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촛불을 들었죠."

박씨는 절박하다고 했다. 업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일일이 모두 다 전달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직감할 것이라고 했다. 뒷돈 없이는 살 수 없는 부조리의 시대가 다시 온다면 그 얼마나 암울하겠냐고 그는 개탄했다.

물론, 본인은 이미 쉰 살이 넘어 살아야 할 날들보다 산 날들이 훨씬 많지만, 당장의 문제에 눈감고 있자니 후대의 삶이 걱정된다고 했다. 부정과 부조리에 눈감고 편승하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봄 지나 여름 되니 어느덧 KBS와 MBC 앞을 전전하며 '공영방송 사수' '방송 민영화 저지'까지 외치게 됐다고 했다.

촛불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로 촉발됐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현안마다 촛불을 들며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일갈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이를 갈고 정권교체를 준비해온 것에 비해 진보개혁진영은 '허송세월'을 한듯 하여 답답하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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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의 위정자가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일을 추진하는 게 가장 큰 문제지요. 하지만 진보개혁세력들이 얼마나 상황을 간과했는지, 반대로 수구세력은 얼마나 이를 갈고 준비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조중동의 왜곡보도에 따라 검찰과 경찰이 무리하게 네티즌을 탄압하고, 촛불을 모조리 잡아들이려 하고, 무고한 시민을 향해 색소탄을 쏘고, 국민을 돼지몰이 하는 등 민주국가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터지는 데도 소위 민주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무력하게 판판히 깨지며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야말로 한국은 '조선일보의 나라'인가 속으로 곱씹고 또 곱씹게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면 지지 세력을 복원하고 진보개혁세력을 무력화 할 게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진보 쪽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힘도 없이, 관망하는 아주 슬픈 상황이 된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던 중년의 '등촌동 아주머니'와 '할머니' 등과 함께 명동성당으로 달려가게 됐다고 했다. 촛불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벌인 '작전'이었다고 했다.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에 읍소를 해서 종교인들이 나서면 조금 더 달라진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대했다고 했다. 이것도 이름 없는 '무명씨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게다.

천주교 최고 지도자의 적극적인 힘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의 씨앗은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27일 오후 5일간 외면해오던 그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다양한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줄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국민의 뜻과 함께 하고 행동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추기경님께서 내용상 표 나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지만 촛불의 시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며 "교회 전체가 당장 나서지는 않는다 해도 어떤 상황이 만들어지면 촛불의 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어도 '무명씨'들의 이런 노력이 쌓인다면 한국사회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87년 6월항쟁과 달리 2008년 촛불운동은 주도세력이 없는 자각된 시민 일반의 불복종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87년 당시에는 그야말로 깨어 있는 대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시국의 문제점을 부각했지요. 지금은 일사분란 한 조직체계도 없고 긴밀한 네트워크도 없어요. 촛불시민은 개인들이기 때문에 정권이 작정하고 구속하고 탄압하면 숨을 수밖에 없죠. 전사 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다 생업이 있고.

그래서 정부도 쉽게 보고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한 일반 시민들 막 잡아가는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무력을 휘둘러도 일개 시민이 뭘 대응하겠냐는 식인 거죠. 네티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고. 촛불시민은 구심점이 없으니까 쉽게 스러질 수 있어요. 저도 그렇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데. 촛불이 그냥 스러지기에는 대한민국의 앞날이 너무 걱정되는데. 뭐라도 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쉰이 넘은 나이라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때도 묻히고 살 법하다. 더군다나 중소기업 중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박씨는 그냥 이렇게 촛불이 스러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든단다. 사람들을 모아 명동성당으로 달려간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열정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자산 아닐까. 박씨야말로 시인 김수영이 노래한 '풀'처럼 가장 먼저 눕고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촛불민초'가 아닌가 싶다.

무명씨도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절박감을 갖고 있는데, 진보개혁 정치인들은 어떤 절박감을 갖고 있을까. 오늘 아침 조간에 실린 민주당 당직자들의 줄넘기 사진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 사진은 아고라에서 발췌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