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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발견합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전하는 뉴스 밑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서 확인합니다. 재투표와 대리투표 실상을 전하는 화면이 또렷한데도 해석의 문제로 몰고가는 한나라당의 태도를 술안주 삼는 사람들을 보면서 되새깁니다.

답답해 합니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해 하고 힘겨워 합니다.

새삼 느낍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이중성에 '혹시나'와 '역시나'를 교차시키는 국민의 마음을 읽으면서 새삼 느낍니다. 민주당 의원들의 총사퇴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민의 시선을 살피면서 새삼 느낍니다.

잡고 싶어 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합니다.

힘겨워 합니다. 촛불을 들어도, 향불을 피워도, 시국선언을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힘겨워 합니다. 기막혀 합니다. 일보 후퇴는 해도 그것을 이보 독주를 위한 몸풀기쯤으로 여기는 정부를 보면서 답답해 합니다.

멀리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천성관 파동이 증명합니다. 향불이 피워올랐을 때 한나라당은 국정쇄신을 주문했고, 그 핵심 과제로 인적쇄신을 지목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근원적 처방을 운위했고, 중도통합과 친서민을 표방했습니다. 이렇게 군불을 때운 다음에 내놓은 첫작품이 '천성관'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어이없어 했고 분노했습니다.

천성관 파동이 커질 기미를 보이자 지체없이 낙마시켰습니다. 평소의 MB 인사스타일과는 달리 재빨리, 전폭적으로 국민의 비판 여론을 수용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나섰습니다. 재투표와 대리투표의 블랙 코미디가 연출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단숨에 밀어붙였습니다.

국민들이 답답해하고 힘겨워 하는 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소하고 비판하고 요구해도 변하지 않는 위정자, 변하지 않는 정치집단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씻지 못하면서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눈을 돌렸고,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거두지 못하면서 민주당을 바라봅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변모시킬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낍니다. 민심의 저류가 용솟음 치지 못하면 고입니다. 고이면서 썩습니다. 정치적 허무주의와 패배주의가 민심을 휘감게 됩니다. 미련을 버리는 방법으로 외면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정치적 허무주의가 유포되고, 이렇게 탈정치화가 가속되면 악순환에 빠집니다. 민심이 답답해하는 정치를 바꿀 동력을 잃게 되고, 답답해하고 힘겨워 하는 마음은 각질이 돼 버립니다. 영원히 침잠하는 건 없다고, 침잠하면 할수록 용솟음 치는 세기가 커진다고 굳게 믿지만 과정의 인내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절실합니다. 작은 성취가 절실할 때입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이 생동하는 모습을 실증할 수 있는, 작지만 귀중한 사례가 절실할 때입니다.

그것이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헌법재판소의 '방송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수용'이든, 아니면 더 나아가 '미디어법 재개정'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 스스로, 국민 힘으로 작지만 근본적인 성취를 이뤄냈음을 실감할 사례입니다.

Posted by '토씨'

이제야 알 것 같다. 신영철 대법관이 왜 버티는지, 일선판사들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는데도 꿈쩍않는 이유가 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자리보전과 같은 사사로운 이해 때문이 아니다. 사법부 수호라는 역사적 소명을 한 몸 바쳐 받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전했다. “‘신영철 대법관은 일부 좌파 성향의 젊은 판사들에 맞서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란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사실상 칩거상태에 들어갔단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안 읽고, 식사는 집무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시켜먹으며 외부와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신영철 대법관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장판교에 홀로 선 장비의 심정일 게다. 내가 무너지면 퇴각하는 유비 일행이 다친다는 생각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버티고 선 장비의 결기일 게다.

그래도 크게 염려하지는 말자. 신영철 대법관은 장비만큼 외롭지는 않다. 원군은 이미 도착해 있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주장했다. “판사님들 한 분 한 분이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시리라 믿고 있다”고 했다.

분명하지 않은가. 신영철 대법관이 싸우는 대상은 ‘좌파의 젊은 판사들’만이 아니다.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판사들’이기도 하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신영철 대법관의 싸움은 배수진을 쳐야 할 만큼 독해야 한다. 물러서면 안 된다. 그러면 법원이 붉게 물들고 재판이 여론에 의해 휘둘려진다.

이것만이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이 불퇴전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는 가치, 바로 헌법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그랬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이 재판권 독립에 상처를 준 헌법 위반이라고 들고 나오는 일선 판사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의 주장에 따르면 신영철 대법관의 싸움은 헌법을 수호하는 싸움이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06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집단의 힘으로 이 헌법 규정을 뒤집으려는 몰지각한 좌파 판사들과의 비타협적 투쟁이다.

싸움의 성격이 이렇게 엄중한데 어쩌겠는가. 고난이 닥쳐도 감내해야 하고 난관에 봉착해도 돌파해야 한다. 법원 뒷문으로 출퇴근 하고, 구내식당을 멀리 한 채 사무실에서 도시락 시켜 먹는 것쯤은 능히 견뎌야 한다. 부차는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고 구천은 쓸개를 핥지 않았던가. 선친의 원수를 갚고 중원의 패자가 되려는 사사로운 동기만으로도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헌법 수호라는 역사적 소명 앞에서 뭘 못하겠는가. 장작더미가 아니라 바늘요에서 잠을 자고 쓸개가 아니라 겨자를 뭉텅이로 씹더라도 헌법이 훼손되는 건 막아야 한다.

신영철 대법관은 ‘성전’을 벌여야 하고 곁에 있는 이들은 ‘영광 있으라!’를 외쳐야 한다. 그게 정도이고 그게 도리다.

헌법 제106조에 시선이 꽂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를 외면한다면 그렇다. 지금까지 판사회의를 한 단독·배석판사 전원이 ‘좌파’라면 그렇다. 연판장 돌리기와 같은 극한적 수단을 멀리하면서 사퇴 촉구 대신 ‘업무 수행 부적절’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게 여론과 분위기에 휩쓸린 비이성적·비합리적 행동이라면 그렇다.

▲캡처=신영철 대법관의 근황을 전한 19일자 ‘경향신문’ 기사

Posted by '토씨'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징계는 애당초 기대할 일이 아니었다.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신영철 대법관에게 주의 또는 경고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는 순간 징계는 물 건너 간 것이었다.

징계위 직행 코스를 버리고 윤리위 우회 코스를 선택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그랬던  그가 안면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의 또는 경고 권고를 무시하면 대법원 윤리위의 뒤통수를 때리는 셈이니 도리상 징계는 취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랄 일은 따로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상황 인식이다.

분명히 규정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 “재판의 내용이나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축소했다. ‘재판 관여’의 파장을 앞장서 축소했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으로 인해 법관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되는 결과가 초래" 됐다고만 했다. 그래서 “유감”을 표명하며 ‘엄중 경고’하는 선에서 그쳤다.

맞을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뢰에 손상을 주는 선에서 그친다면 경고해서 반성케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앞으로 더 잘 해 신뢰를 회복토록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일선 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인식은 안이할뿐더러 위험한 것이기까지 하다.

의정부지법 윤태식 판사가 그랬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똑같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관여’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것은 문화나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침해의 문제”라고 했다.

윤 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신영철 대법관은 국기사범이다. 헌법 제103조, 즉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조항을 침해한 사람이 된다.

징치하는 게 마땅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관여’로 규정했다면, 그리고 그런 행위가 헌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면 마땅히 징치하고 단죄했어야 한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정도에서 벗어나 타협책을 찾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선택에 대해 실망감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면 무너진다. 법질서가 무너지고 법의 권위가 손상되며 법의 강제력이 훼손된다. 대한민국 법률 수호기관의 최고수장마저 헌법 침해 사건과 타협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법질서에 순종하겠는가. 오로지 ‘법치’가 관철돼야 할 법원에서마저 ‘정치’가 횡행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법원의 권위에 무릎 꿇겠는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을 늪에서 빼내는 대신에 사법부 전체를 사지로 내몰았다. 

▲사진=이용훈 대법원장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조변석개라고 했던가? 그럼 이 말도 성립될 만하다. 동변춘개다.

언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표변을 해도 이렇게 심하게 표변할 수가 없다.

겨울에 그랬다. 대선이 끝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명박 이름 석 자 뒤에 '당선인'이란 호칭을 달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그렇게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한 마디 하자 군말없이 '당선인'이라고 호칭했다.

봄엔 이렇다. 그 어느 언론도 '당선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99명 모두를 '당선자'라고 부른다.

'인'은 '사람'이고 '자'는 '놈'이란 직역은 애당초 성립되는 얘기가 아니었다. 후보자, 선거권자, 당선자 모두 법률에 적시돼 있는 법률 용어였다. 법률에 의해 엄연히 '자'로 규정된 사람 중에는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 즉 '선거권자'도 포함돼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최고법인 헌법 67조 2항에 엄연히 대통령 '당선자'로 적시돼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1월 10일 BBK특검법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당선인'이 아니라 '당선자'로 표기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통령직 인수위법에 한 자 걸쳐 있다는 인수위의 설명을 군말 없이 받아들여 '당선인'이라고 표기했다. 하위법을 근거로 들어 상위법을 인정하지 않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넉달…. 이번엔 다시 '당선자'라 부른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신분 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건 넌센스다. 국회의원도 엄연한 헌법기관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낮은 자세로 임한다고 했었다.

고깝게 볼 일이 아닐지 모른다. 경위야 어떻든 결과가 바로 잡혔다면 반길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흔쾌하지 않고 깔끔하지 않다. '당선인'을 '당선자'로 바꿔 부르는 현상을 숙고와 반성의 결과라고 볼 근거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권력의 힘에 끌려 팽창했던 몰상식이 관성의 법칙에 의해 자연 수축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겨우내 동면상태에 들어갔던 상식이 꽃바람에 자연 해동됐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