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지 않으련다. 4개 시민단체 협상대표들은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지만 그런 말조차 하지 않으련다. 입만 아프다.

‘분노’가 관심과 애정의 변형된 감정이고 화해와 용서를 지향하는 감정이기에 그렇다. 더 이상 야당들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이유도, 여지도 없다. 이제는 끓는 감정을 치우고 차디찬 머리를 앞세워야 한다. 

전례가 없었다. 민주ㆍ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이 지금처럼 허약하고 무능하고 지리멸렬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야권연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 세력과 개별 대결하는 구도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근육강화제’를 처방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거부했다. 진보신당에 이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마저 복용을 거부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당사자들이 ‘자진’의 길을 선택한 마당이니 화타가 부활하고 허준이 환생해도 살려낼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베풀 수 있는 호의는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주는 일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망 진단을 내림과 동시에 장기 적출을 시도해야 한다. 썩은 장기는 도려내 거름으로 삼고 멀쩡한 장기는 적출해 다른 생명체에 이식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당들이 ‘나체쇼’를 벌인 덕분에 썩은 장기와 멀쩡한 장기를 가려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기득권 온존구조와 허약한 리더십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연대 필요성보다 자기 밥그릇을 우선시하는 기득권 세력이 말초 단위가 아니라 중추 단위에 견고히 버티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 당의 지도부는 그런 중추조직 밑에서 옴짝달싹도 못함이 유감없이 보여줬다.

국민참여당은 기득권 편입열망과 허약한 경쟁력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지방선거를 통해 당의 존재감을 알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광역후보 한 자리는 기필코 챙겨야 했던 다급함을 여실히 드러냈고, 거래품목이 없어 단 한 사람에 기대어 ‘투기 매매’를 해야 했던 옹색함을 여지없이 보여줬다(진보신당은 전에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내과 처방도, 개별 처방도 더 이상 소용없다. 기존 야당의 존재와 경계를 인정하고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는 방법은 더 이상 ‘근원적 처방’이 아니다.

민주당이 지방선거 후 지도부를 교체해봤자 소용없기에 더욱 그렇다. 당 대표직에 누가 앉든 견고한 기득권 온존구조를 깰 수 없고, 기득권 온존구조를 깨지 않는 한 당 대표직에 누가 앉든 체질개선은 달성될 수 없기에 그렇다.

국민참여당이 지방선거 후에도 ‘홀로 주행’을 해봤자 부질없기에 더욱 그렇다.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의 존재이유를 설파하고 당의 역할을 넓힐 매개체를 확보하지 못한 채 간판을 유지해봤자 변두리 다방의 색 바랜 간판 신세를 면할 수 없기에 그렇다.

내과 처방이 아니라 외과 처방을 해야 한다. 개별 처방이 아니라 통합 처방을 해야 한다. 기득권 온존구조에 저항하는 민주 인사들을 추려내고, ‘소이’보다 ‘대동’을 우선시 하는 개혁 인사들을 추려내고, ‘구호’보다 ‘실질’을 숭상하는 진보 인사들을 추려내 다시 짜야 한다. 기존 질서 유지를 전제로 한 연대가 아니라 질서의 재정립을 목표로 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새싹은 산불이 휩쓸고 간 둔덕에서 피어난다.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씨 내릴 한 뼘 땅을 찾지 못해 고사하지만 산불이 휩쓸고 간 둔덕에서는 재가 되어 버린 수풀과 나무를 자양분 삼아 반드시 피어난다. 

Posted by '토씨'

질문을 몇 가지 던지자.

첫째 질문. 정운찬은 월경한 걸까?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을 넘은 걸까?

아니다. 두 마디 말에 따르면 월경이라고 볼 수 없다.

‘한겨레’가 보도했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보수 진영에선 ‘합리적 자유주의자’, 진보 진영에선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된다”고 했다. 어떤 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MB의 중도가 허구라면 좋지만, 실질적 노선 이동이라면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이 두 마디 말에 입각하면 정운찬 내정자의 행보를 월경이라고 규정할 수가 없다. 흔한 말로 ‘중도’로 분류되는 인물이, 민주당조차 동요하게 만들 정도로 세를 떨치는 MB의 중도실용노선에 몸을 의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제자리 찾아간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질문. 민주당이 ‘빵빵’했다면, 민주당의 전도가 양양했다면 정운찬 내정자가 등을 돌렸을까? 굳이 리스크를 안고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잡았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총리직 수용을 변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기회를 엿봤을 것이다. 어차피 민주당도 같은 중도실용이라고 하지 않는가.


셋째 질문. 이것이 진짜 질문이다. 민주당의 살 길은 뭔가?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인물까지 놓칠 정도로 힘이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힘을 키울 건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운찬 총리 내정 소식에 당혹해 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답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고유 ‘브랜드’라고 여겨온 중도실용노선이 침범 당한 데 대해 당혹해한다. 자신들이 ‘원조’라고 믿고 MB의 중도실용노선을 ‘짝퉁’이라고 일축해왔는데 혹시 그게 아닌가 하며 당혹해한다. 자기들 편이라고 여겼던 중도 인물까지 빼 갈 정도로 MB의 중도실용노선이 세를 얻기에 당황해 한다. 그래서 다시 추스르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이 미디어법 투쟁이 외연을 넓히는 데 무슨 도움이 됐냐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생활밀착형 정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도실용노선엔 중도실용노선으로 ‘맞짱’을 떠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타당해 보인다. ‘생활밀착형 정치’라는 당위명제가 갖는 무게감이 클뿐더러 미디어법 투쟁 등 이른바 ‘민주 투쟁’이 지리멸렬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정체 현상을 보이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중도층을 끌어들이면서 상승곡선을 타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일각이 주장하는 대응 전략은 또 다른 패배를 부른다. 

전망의 근거를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민주당 의원이 그러지 않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이 “실질적 노선 이동”이 아닐까 의아해하지 않는가. 이게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것이 민주당 의원조차 헷갈리게 할 정도로 위력을 떨치는 현실이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등한 게임이 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책 결정권을, 한나라당이 입법권을 사실상 쥐고 있는 현실만으로도 야당의 이른바 ‘생활 정치’가 한계 지워지는데, 여기에 주도권까지 이미 빼앗겼다면 더 말 해 뭣하겠는가. 자칫하다간 민주당의 중도실용노선이 보수층에겐 ‘MB짝퉁’으로, 진보층에겐 ‘한나라당 2중대’로, 중도층에겐 ‘대책 없는 딴지걸기’로 비치기 십상이다.

미디어법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민주투쟁’이 민주당의 외연 넓히기를 옥죄었다는 주장도 그렇다. 실용이 대세인 상황에서 이념에 치중된 공허한 싸움을 벌였다는 이런 주장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 싸움은 애당초 국민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전제,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민주․이념이 아니라 생활․실용이라는 전제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호도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족적을 심각하게 호도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안다. 민주당이 그동안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노무현 서거에서 비정규직법으로, 비정규직법에서 미디어법으로, 미디어법에서 김대중 서거로, 김대중 서거에서 4대강 사업으로 철마다 전선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성과다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안다. 바로 이런 패착이 정운찬 내정자가 ‘민주’를 경시하고 ‘중도’를 강조하는 현상을, 분열의 원인은 거론치 않고 통합의 당위만을 강조하는 현상을, 그러면서 자기 선택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낳은 것이다.

민주당 일각의 진단은 잘못돼 있다. ‘올인’하지 못한 게 문제인데도 ‘올인’한 걸 문제 삼는다.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한 게 문제인데도 싸움을 벌인 걸 문제 삼는다. ‘민주 투쟁’을 ‘생활 정치’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게 문제인데도 ‘민주 투쟁’ 을 벌인 걸 문제 삼는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조화와 배치인데도 또 다시 선택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알아야 한다. 민주당이 이런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한 판판이 깨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좌판을 벌이는 처지를 면치 못하는 한 가게 주인 한나라당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좌판 생활을 청산하고 가게를 차리더라도 특화 상품을 팔지 않는 한 정운찬 아니라 정운찬 아류조차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민주당 스스로 ‘우리편’으로 알았던 정운찬 내정자가 등을 돌리는 판에 자기들끼리 일괄통합이니 단계통합이니 하며 거친 말싸움을 벌이기에 하는 말이다. 통합의 내용과 성격은 뒤로 물리고 통합의 방법만을 앞세우며 당권 싸움을 벌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선 통합이 특효약이 될 수 없다.

▲사진=3일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 장면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한화갑이 누구인가? ‘리틀 DJ'로 불리던 그다. 그랬던 그가 거부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북한은 민족적 차원에서 다룰 상대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동맹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정동영이 누구인가? 자칭 ‘DJ의 제자’라는 그다. 본인 입으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치적 사부”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DJ의 적통자임을 은근히 강조한다. 그런 그가 거부했다. 4.25재보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제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주로 향했다. 

끌어들이려고 한다. 민주당(일각)이 이런 사람들을 복당시키려고 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가 민주개혁세력 통합이니까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통합 1순위로 올려놓고 9월중에 영입할 사람은 영입하자고 촉구한다.

어이가 없다. 만사 제쳐놓고 민주당이 주장하는 ‘DJ 유지 계승’ 입장에서 봐도 어이가 없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서민경제와 함께 3대 위기의 하나로 규정했던 게 남북관계라는 점에 비춰볼 때 그렇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게 동서화합이라고 말했던 점에 비춰볼 때 그렇다. 두 사람은 ‘DJ의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전도다. 백번 양보해서 두 사람의 전력을 ‘한 때의 이견’ 쯤으로, 털고 갈 수 있는 옛 일 쯤으로 치부하더라도 민주당의 움직임은 분명 전도다. 이들의 영입은 통합이 완료단계에 이르렀을 때, 통합의 취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맨 후순위로 검토해야 할 일이지 1순위로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들을 최우선 통합 대상으로 삼으면 이미지가 고착된다. ‘호남 자민련’이란 냉소 반 성토 반의 분위기를 강화시킨다. 또 그만큼 삭감된다. 민주당이 읊조리는 ‘혁신을 통한 통합’이라는 구호의 의미가 삭감되고, 정세균 대표가 주장하는 ‘기득권 포기’ 주장의 진정성이 삭감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뒤편에선 기득권과 주도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는 인식만 강화시킨다.

장벽을 친다. 민주개혁세력의 최대 과제로 간주되는 친노 세력과의 통합 길에 콘크리트 장벽을 세운다. 지금의 민주당을 ‘지역정당’으로 규정하는 친노 세력의 시각을 강화시킨다. 민주당이 한화갑-­정동영 씨는 물론 김홍업­-최재승 씨까지 복당시키면, 그렇게 줄줄이 호남 인사부터 끌어안으면 친노 세력의 통합 의무감은 반감되고 독자 움직임은 배가된다.

이런 분석은 상식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일반론이다. 그래서 의아하다. 민주당이 이런 상식을 모를 리 없다. 이런 일반론을 깨닫지 못해 판단 미숙-­오류-­착오를 보일 리가 없다.

다르게 봐야 한다. 당위명제가 생존논리를 넘어선 적이 별로 없는 우리 정치사의 경험칙에 입각해 봐야 한다. 통합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 또는 통합에 대비한 포석이 깔린 것으로 봐야 한다. ‘참여민주주의’를 당 운영 원리로 삼는 친노 세력과 통합하면 어떤 사단이 날지 몰라 기득권과 지분을 지키려고 방비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민주당 내 호남세력의 세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선수를 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사진=민주당 지도부와 한화갑 전 의원 등이 지난 19일 서울광장에 설치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았다.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사용자 삽입 이미지

▲21일 불교계 초청토론회에 참석한 정동영·문국현 후보 ⓒ정동영 후보 홈페이지

잘된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협상 결렬은 길게 봐서 썩 잘된 일이다.

민주당과의 통합에 목을 맸던 정동영 후보가 들으면 불쾌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정 후보는 잘못된 길,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편한 길을 걸으려고 했다. 이게 과오였고 패착이었다.

거슬러 올라가자. 이회창 후보가 독자 출마를 선언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온통 '야권 분열'에 맞춰졌다. 그의 출마가 누구에게 득이 되고 누구에게 실이 되는지를 열심히 계산했고, 대선 판세가 어떻게 요동칠지를 궁금해 했다.

이게 현실이다. 대선은 딱 한 명의 우승자를 뽑는 게임이다. 게임의 양상에 관심을 쏟는 건 자연스럽다. 그래서 탓할 수 없다.

그렇다고 편승할 수도 없다. 이런 독법은 반쪽짜리다. 대선이 우승자를 가리는 게임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정치지형, 새로운 정치조류를 창출하는 촉매제 역할도 한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특수성을 띠는 선거라면 더욱 그렇다. 대선에 뒤이어 총선이 치러지는 점, 따라서 총선이 대선의 여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선이 새로운 정치 지형과 조류를 창출하는 중요한 분기점인 건 분명하다.

이 점을 전제해 놓고 보자. 이회창 후보의 독자 출마에서 정독해야 할 항목이 하나 더 나온다. 보수의 '물갈이'다.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애매모호한 대북관'을 출마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념적으로 정통 보수는 자기라는 주장이었다.

이 건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 이명박 대 이회창의 싸움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양분된 보수 가운데 어느 한쪽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고 보수의 물갈이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된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명박식 보수' 대 '이회창식 보수'의 싸움은 제한전에 불과하다. 이념, 더 좁히면 대북정책에 국한된 싸움이다. 따라서 보수진영의 풍토와 색깔 전체를 바꾸는 대역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보수의 가장 큰 젖줄이 대북문제였음을 감안하면 이 싸움에 의미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똑같은 틀로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협상을 평가할 수 있다.

민주당 분당 이후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워온 두 세력이다. 한쪽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쳐왔고, 다른 한쪽은 '지역 전통'에 몸을 맡겨왔다. 이런 두 세력이 대선을 앞두고 합방을 하려고 했다. 과거로의 회귀, 구태의 재연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합을 주도한 정동영 후보 쪽은 정통 민주개혁세력의 복원 시도이고, 반한나라당 전선의 구축이라고 강변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통합의 조건으로 의결기구의 동수 구성을 흥정하고, 공천권의 배분을 약속하는 행태와 당내 민주주의는 상응하지 않는다. 금산분리 갖고는 부족하니까 아예 순환출자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편으로는 금산분리를 깨야 한다고 주장하는 후보와 단일화를 꾀하는 모습은 개혁과 거리가 멀다.

반한나라당 전선보다 반노무현 기류가 더 성한 이유를 분석하고 그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읊조리는 건 무력하다.

민주개혁진영의 복원을 꾀하고자 했다면 다른 길을 걸었어야 한다. '정통' 민주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개혁의 패러다임을 제시했어야 한다. 이것이 이번 대선을 매개로 새로운 정치 지형과 조류를 창출하는 지름길이었다.

반론이 있다. 정동영 후보는 선후관계를 나눴을 뿐이라고, 민주당과의 통합을 먼저 이룬 다음에 문국현 후보와의 연대를 추진하고자 했었노라고 말한다.

사실관계가 틀린 항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당한 항변도 아니다. 선후관계를 잘못 나눈 게 문제다. 정동영 후보가 정말 미래에 천착했었더라면 문국현 후보와의 연대를 성사시킨 다음에 이 새로운 물결로 민주당에게 후보 단일화(합당이 아니다)를 압박했어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조류를 진작시키면서 분열도 막는 가장 좋은 길이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거꾸로 갔다. 그리고 이제 와선 문국현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민노당과의 연합정부 구성을 주장한다. 갈짓자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 후보가 그랬다.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참여정부의 황태자였지 않느냐는 패널 질문에 "나는 일하고 욕먹는 소였다"고 했다.

이 말을 그대로 빌리자. 트위스트를 추는 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소가 달구지를 잘못 끄면 1년 농사 수확물이 진창에 빠질 수도 있다. 소는 소다워야 가치가 빛난다. 묵묵히 일하다가 담담하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그런 면모 말이다.

대통합민주신당도 정동영 후보도 죽어야 산다. 그래야 민주개혁진영도 산다.

Posted by '토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동영 후보 ⓒ정동영 블로그

정동영 후보는 뭘 믿고 밀어부쳤던 걸까?

민주당과의 통합 협상은 하루만에 '원위치' 됐다. 시민사회세력, 친노파, 중진 등 대통합민주신당 내 각 세력이 제각기 모여 정동영 후보가 주도한 통합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고, 최고위원회는 민주당과의 통합 협상을 하루만에 '원위치' 시켰다.

도대체 뭘 믿고 밀어부쳤느냐는 질문은 이 대목에서 나온다. 당내 반발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실익도 없는 통합보다는 정책연합을 기반으로 한 후보 단일화가 낫다는 의견이 당내에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동영 후보는 통합을 밀어부쳤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민주당에 지분의 절반을 넘기는 파격안에 사인을 했다.

정동영 후보는 "대선 승리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50%대에서 맴맴 도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면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호남의 적자'임을 각인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지지율을 20%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내에 회의론이 확산된다.

하지만 말 그대로다. 그건 '일면'이다. 호남표 결집이 꼭 통합을 통해서만 달성된다는 등식은 없다. 이 등식이 '참'으로 인정받으려면 후보 단일화로는 호남표 결집을 이룰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면을 볼 필요가 있다. 정동영 후보의 말을 이렇게 바꾸면 다른 면이 보인다. "대선 패배에 대비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통합은 대선 패배 대비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지분의 절반을 민주당에 넘겨주고, 지도체제를 바꾸는 전당대회를 내년 6월로 미루면 어떤 현상이 빚어질까? 다른 건 몰라도 정동영 후보가 안전판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민주당엔 대표주자가 없다. 이인제 후보는 적격자가 아니다. 그는 아무리 좋게 봐도 호남·충청 연합의 가교일 뿐이다. 그가 호남세력의 맹주로 등극할 여지는 거의 없다.

이게 틈새다. 설령 대선에서 패배한다 해도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면 정동영 후보는 기사회생의 여지를 확보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다. 전북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만든 정동영 후보와 연합하면 호남의 정치적 지분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로는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정동영 후보는 대통합민주신당 내 반 정동영계에 포위된다. 자신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분간 2선으로 후퇴해야 하는데 이게 곧장 세력 위축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하지만 통합을 하면 자신이 2선으로 후퇴하더라도 대체세력에 자신의 지분을 신탁할 수 있고, 적당한 시기에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

대선 패배 후 당이 쪼개지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돼도 퇴로를 확보할 수 있다. 공천싸움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탈당과 분당이 연출될 경우 정동영 후보는 '명분'을 거머쥘 수 있다. 합당 약속을 지키는 '신의의 정치인'이라는 명분이다. 물론 이 명분이 열어주는 길은 '호남선'이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