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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역설했단다. 어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지난 10년간의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5년으로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계속 지켜나가고 대한민국을 선진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계속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단다.

이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는 우려한다. “여당 내 비공개 행사에서이긴 하지만 야권의 강력한 반발을 부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기사보기>

동의하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다.

헌법재판소가 이미 결정 내린 바 있다. ‘노무현 탄핵 소추’의 첫번째 사유였던 ‘언론 인터뷰를 통한 열린우리당 선거지원 발언’에 대해 정당 후보자가 결정되지 않아 특정 후보를 지지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기각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결정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 재창출 발언은 그리 심각한 게 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말마따나 대통령도 정치인 아닌가. 혼자만 ‘당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독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읽고 또 읽는다. 또 다른 탄핵, 즉 대통령 탄핵이 아니라 정권 탄핵의 요소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엔 대전제가 깔려있다. 후임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가 전임 정부의 그것과 다르면 뒤엎을 수 있다는 대전제다. 한나라당의 가치가 다른 야당의 가치보다 선진화 돼 있다는 대전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논리는 합당한 것일까? 후자는 논외로 하자. 그건 국민이 선거를 통해 결정할 문제이니까 뒤로 물리자. 전자의 경우는 어떨까?

딱히 틀린 논리는 아니다. 국민이 정권을 교체하는 이유가 다른 가치에 입각해 다른 국정을 펴보라는 뜻이니까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국정 혁신을 꾀하는 것은 당위를 넘어 지상명령에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서가 따른다. 혁신 또한 합리적 절차 위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단서다. 이 점에 입각해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국정 혁신은 정상적인 범주에서 일탈해 있다.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하기보다는 가치를 앞세워 감정적 청산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고,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합리적 절차를 밟기보다는 가치를 앞세워 밀어붙이기를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법치를 강조하면서 법에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을 내쫓고, 실리외교를 강조하면서 남북정상이 사인한 외교문서를 외면하고, 신뢰를 강조하면서 여야 합의 결과물(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을 백지화하려는 게 방증사례다.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한나라당 최고위원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추가한 말이다.

개헌을 언급했단다.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레임덕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단임제가 더 좋은 거 아니냐. 다시 안 할 것이기 때문에 소신 있게 일을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단다.

방향을 제시해 버린 것이다. 개헌 논의 주체는 국회라고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대통령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 시안이 제시된 걸 뻔히 알면서도 5년 단임제 대통령제 고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과연 국회의 합리적인 개헌 논의에 보탬이 될까? 개헌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적잖고 개헌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만연한 상황이기에 꼼꼼히 살필 필요가 없는 발언이지만 아무튼 합리적 절차와는 거리가 먼 사례로는 손색이 없다.

이런 말로 마무리해도 될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정권재창출 여부가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로 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정적 변수는 국정운영주체의 일관성이 아니라 국정운영기조의 합리성이다. 이것이 국정 목표인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 추진력, 즉 국민 통합 여부를 가른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11월 30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최고위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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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독선이 독주를 하는 게 바로 독재다. 막연한 개념도 아니다. 아직도 국민 뇌리에 끔찍한 영상으로 남아있는 게 바로 독재다.

이 독재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나라당이 친박 의원 일괄 복당을 결정하는 순간, 최대 182석의 공룡정당 탄생이 예고되는 순간부터 나오는 우려다. 여기에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별반 차이가 없는 자유선진당이 버티고 서 있는 사실이 덧대지면서 더욱 증폭된다. 의회독재·보수독재가 펼쳐질지 모른다고 염려한다.

그럴까? 정말로 머리수에 의존한 의회독재·보수독재가 나타나는 걸까?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반대 요인을 마저 살펴야 한다.

경험이 웅변한다. 의회독재가 어떤 봉변을 당했는지는 정치 경험이 보여준다.

전두환식의 ‘묻지마’ 독재는 논외다. 주권재민의 정치체제가 성립된 87년 6월항쟁 이후만 살펴도 몇 가지 사례가 눈에 띈다. 1996년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가 국민 저항에 부닥쳐 재개정을 한 일이 있다. 2004년이다. 한나라당과 구민주당이 손을 잡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촛불에 화상을 입은 일이 있다.

이 두 사례엔 공통점이 많다. ‘수’만 놓고 따지면 의석수보다 국민수가 훨씬 많다는 걸 확인해준 사례다. 머리수만 믿고 밀어붙이다간 정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각인케 한 사례다.

이런 경험과 교훈을 망각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한나라당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머리수만 믿고 ‘단순무식’ 모드로 진입하면 반대층을 결집시킨다. 그렇다고 ‘좌고우면’ 모드로 전환하면 지지층이 반발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똑같은 경험과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 민주당이 어떤 전략을 펼지는 자명하다. 소수 야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상’에서 농성하고 ‘거리’에 호소하는 전략을 펴기 십상이다.

한나라당으로선 크나큰 고민거리다. 민주당을 ‘단상’에서 끌어내면 ‘일방’의 이미지로 채색되고 ‘거리’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서면 ‘불통’의 멍에를 덮어쓴다.

어찌할 것인가? 머리수의 효과를 살리면서 부작용을 극소화할 수 있는 비책이 뭔가?

아주 간단하다. 야당을 회의장으로 끌어들여 표결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것처럼 모양새와 실리를 동시에 챙기는 데 더 좋은 방법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제1야당의 면을 세워줄 수 있는 흥정물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독점이윤’을 포기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좌고우면’ 모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지지층으로부터 ‘물여당’ 비난을 사기 딱 좋은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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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미 시험가동하고 있는 해법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바로 갈라치기다. 쇠고기 추가협상 후 촛불민심이 둘로 갈라졌다고 판단해 강경 모드, 밀어붙이기 태세로 돌아선 것과 같은 모습을 견지하는 것이다. 정책과 법률안을 쪼개 놓고 국민 여론을 갈라치는 것이다. 국민이 한 데 모이는 걸 방지하고, 국민 입장이 하나로 결집하는 걸 막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리의 정치’를 원천봉쇄하고 민주당의 ‘저항’을 ‘몽니’로 몰아 고립시키는 것이다. 필수품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려면 정책 반대집단을 귀퉁이로 몰아 가둬놓을 울타리가 필요하다. 때로는 ‘좌파’ 때로는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워 중립지대의 국민이 결합하는 것을 막는 이념지형이 필요하다.

이건 의회의 몫이기 이전에 언론, 홍보, 선전 부문의 책무다. 이 분야가 앞길을 열어야 '독선'은 고뇌의 결단이 되고 '독주'는 과감한 추진력이 된다. 

이렇게 보니 눈이 트인다. 보수세력이 포털과 방송에 맹공을 가하고, 집권세력이 대국민 홍보체제를 강화하는 곡절, 그 필연성을 비로소 헤아릴 수 있다. 그건 정지작업이다.

▲사진=10일 개원한 18대 국회(위)와 의회 지형을 좌우할 ‘촛불’(아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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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1.

오늘로 끝이군요. 제17대 국회의 임기가 오늘로 끝이 납니다.

혼자 읊조립니다.

‘벌써?…’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떠나보내는 마음이 안타까워서가 아닙니다. 시차 멀미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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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년 전에 촛불이 일렁였습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탄핵 반대’를 외쳤습니다. 4년 후에 광화문에서도 시민들이 촛불을 흔들며 간간히 ‘MB 탄핵’을 외칩니다. 촛불 사이에서 17대 국회가 탄생했고 촛불 사이에서 18대 국회가 등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년 전의 모습과 4년 후의 모습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17대 국회나 18대 국회나 배경사진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합니다. 5월 29일이 의정사에 한 획을 긋는 경계선이란 느낌을 크게 받지 못합니다.

3.

어설픈 생각일 수 있습니다. 겉핥기식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촛불을 끄고 보면 다릅니다. 상전벽해라고 칭해도 될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151석의 열린우리당이 153석의 한나라당에 자리를 내줬습니다. 더불어 정책도 큰 포물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촛불을 다시 켜고 봐도 다릅니다. 4년 전의 촛불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켜졌습니다. 4년 후의 촛불은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켜졌습니다.

그런데도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본질은 똑 같습니다. 국회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국회 기능에 대한 불신감입니다.

4년 전에는 국회의 횡포에 분노했습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맘대로 흔드는 데 분개했습니다. 4년 후에는 국회의 무능에 절망합니다. 들끓는 민심을 흡수하지 못하는 데 낙담합니다.

4.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4년 전에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탄핵 반대’ 외침 속에서 태어난 금배지들이 큰 역할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여느 국회보다 초선 비율이 높은 국회가 새 바람을 일으킬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껐습니다.

아니었습니다. 17대 국회에 아로새겨진 수사는 ‘무능’ ‘혼선’ ‘아마추어’ 였습니다.

다시 기대했습니다. 실망감을 추스르면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습니다.

역시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100일, 30일이 흐르는 동안 국정과 의정에 새겨진 수사는 ‘난맥’ ‘독선’ ‘들러리’ 였습니다.

민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여의도와 청계광장의 심리적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달라지고 있습니다. 촛불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4년 전의 촛불은 ‘촉구’ 차원이었지만 4년 후의 촛불은 ‘자구’ 차원입니다. 더 이상 국회에 기대할 바가 없다는 생각에 국민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합니다. 촛불을 밝힙니다. '일시'에 그쳤던 촛불을 '일상'으로 끌고가려고 합니다.

5.

왜일까요? 왜 촛불을 끄려하지 않을까요?

국민은 우려합니다. 16대 국회가 횡포를 부렸고, 17대 국회가 무능했다면 18대 국회는 독주를 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민심·민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리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18대 국회가 이 경계심을 불식시키지 않는 한 촛불을 끌 것 같지가 않습니다. 쇠고기 뒤로 도열해 있는 고유가·대운하·FTA·교육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한 촛불을 더 환하게 밝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착잡합니다. 17대 국회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착잡한 게 아니라 18대 국회를 맞이하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촛불이 ‘일상’이 되면 ‘거리의 정치’가 성하게 됩니다. ‘거리의 정치’가 성하면 ‘국회의 위기’는 깊어집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금배지를 받아들 게 아닙니다. 삼가는 마음에, 열린 가슴으로 거리를 내다봐야 합니다. 이것 만이 해법입니다.

▲사진=국회 본회의와 촛불집회 장면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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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를 선언하는 정동영 후보 ⓒ오마이뉴스

1.
박근혜와 추미애, 두 정치인에겐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정치인이 같은 별명을 갖고 있죠. 한 명은 '박다르크', 또 한 명은 '추다르크'.

이런 별명이 붙은 계기는 탄핵 역풍이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빠지자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거리에 나섰습니다. '박다르크'는 전국을 돌며 한나라당을 살려달라고 호소했고, '추다르크'는 삼보일배를 하며 민주당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결과는 딴판이었습니다. '박다르크'는 탄핵 역풍을 뚫고 한나라당을 살려냈습니다. 궤멸 위기에 처했던 한나라당에 121석의 예상치 못한 성과를 안겨줬습니다. '추다르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단 9석을 건지는 데 그쳤고 '추다르크' 본인도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공통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박다르크'와 '추다르크'는 나란히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 패배했습니다. 그리곤 깨끗이 승복을 했고 자기 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습니다.

결과는 2004년과 똑같았습니다. '박다르크'는 압승의 1등 공신이 됐고, '추다르크'는 참패에 고개를 떨궜습니다.

2.
참 공교롭습니다. 두 정치인이 모두 잔다르크의 길을 걸었건만 한 명은 '성인'의 영광을 얻은 반면에, 다른 한 명은 '화형'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 걸까요? 두 정치인의 정치적 위상과 파괴력이 달랐기 때문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박다르크'의 탄핵 이전 위상은 크지 않았습니다. 2002년 대선 국면에서 한나라당을 뛰쳐나가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다가 200여 일만에 복당한 인물이었습니다. '추다르크'는 각광 받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차기' 후보군에 지목될 정도로 촉망받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이런 천양지차를 연출한 걸까요?

3.
물결입니다. '추다르크'는 역류를 헤쳐가야 하는 운명이었던 반면에 '박다르크'는 역류를 비껴갈 피항지가 있었습니다.

'추다르크'가 몸담았던 정당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습니다. 정몽준 지지-노무현 탄핵-노무현 실정이 계기가 돼 지지층이 급속히 분해되고 있었습니다. 썰물이었던 셈이죠. 이런 와중에 '추다르크'는 배를 항구에 대려 했고, 결국은 뻘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박다르크'는 달랐습니다. 노무현 탄핵 역류를 피할 피항지가 있었습니다. '영남 만'이었습니다. 기다리면 됐습니다. 노무현 실정으로 밀물이 찰 때 배를 띄우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노 한 번 젓지 않고 항구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확연히 갈립니다. '추다르크'는 잃었습니다. '박다르크'는 지켰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하나가 빠졌네요. 개척한 잔다르크는 없습니다. 누구도 미지의 땅에 발을 내밀지는 않았습니다.

4.
시선을 돌려보죠. 통합신당(나아가 범여권)이 있습니다. 대선에서 참패했고, 내년 총선에서도 패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말 그대로 누란의 위기입니다. 누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잃는 길과 지키는 길, 그리고 개척하는 길입니다. 잃는 길은 누구도 밟으려 하지 않을 테니까 실은 두 갈래 길입니다.

지키는 길, 즉 '박다르크'의 길은 안전합니다 '호남 만'에 피항해 밀물이 찰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정동영 후보가 호남지역에서 80% 안팎의 득표율을 올렸으니까 '호남 만'이 포근히 안아줄 여지는 충분합니다.

개척하는 길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단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않았기에 그 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험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지름길일지도 모릅니다.

분명합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모든 선원이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을 내려놓든지 '개혁'을 내려놓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