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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특별연설을 통해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했다고 해서 정색할 필요는 없다.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에게 돈을 쓰는 (것)”을 낭비로 여겼다고 해서 정색할 필요 또한 없다. 어쩌면 그건 한국 보수의 가장 솔직한 입장일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발언엔 최소한의 진정성이 담겨있다. 성장을 우선시 하는 한국 보수의 입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냥 평가하면 된다. 친절하게도 사탕발림을 하지 않고 본색을 드러냈으니 그냥 하나의 입장으로 여기고 평가하면 된다. 다가올 선거를 통해 국민의 호오 입장을 분명히 내보이면 그만이다. 어차피 총선과 대선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될 게 복지다. 흐름이 그렇다.


2007년 대선의 화두는 경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장이었다. 양극화 심화에 시름 앓던 국민이 이명박 후보의 747 성장정책에 ‘혹’ 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수도권 40대가 환호했고, 생계불안에 시름앓던 자영업자들이 박수쳤다. 성장 정책으로 어장을 키울 것이라고 기대했고,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보수의 주장에 고개 끄덕였다.

하지만 파탄났다. 어장을 키울 것이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747공약은 일찌감치 불시착 했고, 연간 60만개씩 총 3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 또한 ‘뻥’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창출된 일자리는 매년 30만개 안팎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몸으로 체감한다. 학자들이 언급하던 ‘고용없는 성장’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더 이상 성장 정책에 현혹되지 않는다. 경제지표와 장바구니 경제가 따로 노는 현실을 몸으로 겪으면서 더 이상 어장에 기대하지 않는다.

국민이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구호에 열광한 건 그 때문이었다. 성장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 성장을 해봤자 일자리 창출로 환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국민은 자연스레 복지로 눈을 돌렸고 용케도 그 때 청와대가 내민 게 ‘친서민’이었다.

이렇게 보면 복지 화두는 이명박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있었다. 복지 화두를 선점하고 담론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무상급식과 같은 상징 공약에 각을 세움으로써 담론의 주도권을 야권에 넘겨버렸다.

무상급식 거부가 이명박 정권의 첫 번째 패착이라면 예산안 강행처리는 두 번째 패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년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의 비중과 규모는 사상 최대”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그의 주장일 뿐이다. 국민은 그런 총론보다 결식아동 급식비와 청소년 공부방 예산이 삭감된 것을 더 크게 느낀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 포퓰리즘” 발언은 이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것과 진배없다. 야권의 보편적 복지에 선을 긋고, 국민의 복지 요구에 등을 돌리는 최종 선언과 진배없다. 민심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역행 선언이다.

물론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대강에 20조원을 쏟아 붓기에 여력이 없고, 고정 보수층이 ‘포퓰리즘’에 진저리를 치기에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거듭 확인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 포퓰리즘” 비판은 최소한 솔직하기는 하다.  한국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보수를 둘러싼 정치환경에 순응했다는 점에서도 솔직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솔직하게 임하면서 임기를 마치면 된다. 그러면 보수층으로부터 박수는 받을 테니까. 문제는 다음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 대권을 노리는 한나라당 주자들이 문제다. 민심의 흐름이 복지인데 대통령은 거기에 선을 긋기에 난감한 처지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친박계 의원이 “보편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몰아세워 복지 논쟁을 보혁 대결로 이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리를 두는 것일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무상급식 논쟁을 과도하게 키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오세훈 서울시장 측이다. 그쪽은 반겼다. “보수 진영에 불리할 수 있는 ‘선별적 복지론’이 대세를 형성하는 데 이 대통령의 연설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반겼다.

“보수 진영에 불리할 수 있다”는 판단과 “대세를 형성한다”는 발언이 모순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쪽은 반겼다. 이미 잡은 길, 그냥 내달리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3일 신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2008년 10월 리먼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년 가까이 됐을 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 중도실용’이란 아젠다를 들고 나왔다. 다시 1년 후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 아젠다를 던졌다.

효과는 쏠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으로 지지율을 5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공정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가 지난 16~18일 전국의 성인 남녀 2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4.3%였다.

진보세력은 ‘쇼’ 또는 ‘이벤트’라고 비판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아젠다를 정치적 곤경을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 정도로 치부한다.

맞다. ‘친서민’ 아젠다가 노무현 서거국면과 김대중 서거국면의 경과점에서 나왔고, ‘공정한 사회’ 아젠다 역시 6ㆍ2지방선거 참패 뒤끝에 출시된 점을 볼 때 그 같은 혐의점을 떨쳐낼 이유는 전혀 없다. ‘친서민’과 동시에 천성관 사태가 터졌고, ‘공정한 사회’와 동시에 ‘유명환 딸’ 특채 파문이 불거진 점까지 고려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아젠다는 ‘속빈 강정’이라고 비판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아젠다는 여전히 살아있다. 정국을 반전시키고 위기를 돌파하는 동력으로 기능한다. 왜일까?

물량공세 때문일까? 언론을 통해 아젠다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아젠다가 유행을 탄다면, 유행은 반복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것만으론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체험을 뛰어넘는 홍보는 없다. 국민은 홍보 이전에 ‘천성관’을 보고 ‘유명환 딸’을 봤다.

다른 면을 봐야 한다. 못 미더우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국민의 심저다. 고단한 살림살이에서 비롯된 기대감이다.

‘친서민’과 ‘공정한 사회’를 글로벌 금융위기의 반사체로 이해하면 헤아릴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위기국면에 빠져들고 국가의 시장개입 필요성이 점증하는 상황이 그 같은 아젠다를 낳았다고 파악하면 가늠할 수 있다. 진정성 여부와는 별개로 핀트 조절만은 정확했다는 사실을, 그 핀트가 국민의 심저에 닿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적 레토릭 면에 국한해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비서진)은 현존하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앞선 감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해를 살지 모르겠다. 이 같은 진단이 ‘엠비어천가’로 비쳐질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다. 이렇게 진단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아젠다는 성공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좌우대립축의 중간영역 적당한 곳에서 인기영합주의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기 쉽다”는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의 지적에 힘입어 하는 말만이 아니다. 증좌도 있다.

지방선거 때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야권의 무상급식 공약을 내쳤다. 친서민 중도실용을 외치던 그들이 ‘친서민’을 홍보할 수 있는 실용정책을 거부했다. 그러다 이제 와서야 중산층까지 아우르는 ‘친서민’ 정책을 내놓는다. 중산층 보육료까지 국가가 책임지겠다면서 생색을 낸다.

이게 증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아젠다엔 레토릭만 있을 뿐 뿌리는 없다. 더불어 증명한다. 중산층 보육료 지원에 대해 핵심 지지기반인 보수언론이 ‘좌향좌’로 평하는 것이 증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 아젠다는 “정치적 현실로도 제약이(정정길)” 있다. 좌우대립축에서 먼저 보수파에 의해 기회주의적 정책으로 공격 받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다는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젠다가 기회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진보세력의 우월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진보세력은, 진보 야권(민주당 전당대회 주자들도 대부분 진보임을 자처하니 일단 포함시키자)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초호화 이벤트에 걸맞은 명품을 출시하지 못한다면 진보세력은 히트상품에 어울릴 법한 이벤트를 창안하지 못한다. 무상급식 성공사례에 힘입어 복지를 강조하고 진보를 운위하지만 거기서 멈춘다. 논의만 무성할 뿐 무상급식 후속 상품을 출시하지 못하고, 복지ㆍ진보와 같은 추상어를 대체할 생활어를 개발하지 못한다. 흔히 얘기하는 정치적 비전, 정치 프레임을 만들지 못한다. 진보 야권엔 컨텐츠도 없고 기획력도 없다.

박정한 평가가 아니다. 진보 야권의 히트상품인 무상급식 공약이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정책에서 빌려온 것이라는 점을 참조하면 결코 박정한 평가가 아니다. 한가한 지적도 아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따뜻한 보수’ ‘복지국가론’을 ‘열공’하고 있다는 점을 참조하면 결코 한가한 지적이 아니다.

보수정권마저 ‘친서민’을 외칠 정도로 진보적 복지정책이 블루오션을 형성하고 있는데 진보세력은 여전히 도랑물에서 ‘개헤엄’을 치고 있다. 강조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점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 아젠다를 내놨다.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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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이건 반복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나타나는 엇박자 현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는 머슴’을 다짐한 후 ‘강부자’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행보를 긋자마자 ‘천성관’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은 후 ‘김신조’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거듭 ‘공정한 사회’를 강조할 즈음에 ‘유명환 딸’이 나왔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무슨 인기 드라마도 아닌데 시즌 원·투·스리를 잇따라 내보낸다. 등장 배우와 에피소드는 다르지만 콘셉트와 포맷은 하등 다를 바 없는 정치소극을 철마다 반복한다.

다른 게 있긴 하다. 드라마는 재탕·삼탕·사탕을 거듭할수록 김이 빠지지만 정치소극은 시즌 원·투·스리를 거듭할수록 열을 올린다. 국민 혈압을 올리고 국민 짜증을 키운다. 전철을 귀감 삼는 게 아니라 전철을 쳇바퀴 삼는 정치소극이 국민으로 하여금 ‘썩소’를 짓게 만든다.

자승자박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설정한 프레임에 눌리고, 갇히니 자승자박이다.

정치적으로 전혀 득이 되지 않는 자승자박의 행보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이유는 야당의 몽니 때문도 아니고 반대세력의 공세 때문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말한 것처럼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 개각을 잘못한 책임만이 아니다. ‘친서민’ 정책은 펴지 않으면서 ‘친서민’ 구호를 제창하고, ‘공정’ 시스템은 허술한 상태로 놔둔 채 ‘공정’ 구호를 연발하는 책임만도 아니다. 이런 것들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사고방식이다.

과소평가한다. 민심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국민은 종합해서 바라보는데, 대통령은 이를 중시하지 않는다. 국민은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은 광복절 경축사와 ‘공정’과는 거리가 먼 광복절 특사를 연계해서 바라보는데, 대통령은 국민이 분리해 바라볼 것이라고 간주한다. 국민은 기득권자를 사면복권해준 대통령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오히려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 기준이 기득권자에게 “매우 불편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모습에서 과소평가의 흔적을 발견한다.

과대평가한다. 자신을 너무 크게 생각한다. 국민은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는데, 대통령은 따라줄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은 ‘하는 것 봐서’라며 유보하는데, 대통령은 화두를 던지면 국민이 곧장 동참할 것이라고 간주한다. 국민 감정은 ‘유명환 딸’ 문제로 부글부글 끓는데, 오히려 대통령은 유명환 낙마를 “화가 복이 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자신하는 모습에서 과대평가의 흔적을 발견한다.

결국은 하나다. 과소평가든 과대평가든 결국은 착시에 따른 현상이란 점에서 본질은 같다. 제 발 밑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착시이고, 국민과의 거리를 재는 데 원근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착시다. 그래서 되풀이하는 것이다. 거리를 재지 못하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혹여 반박이 나올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행보를 그을 때 지지율이 가파르게 올라가지 않았느냐는 반문, ‘친서민’이든 ‘공정한 사회’든 민심의 염원을 담아낸 화두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또한 착시다.

기대와 평가는 엄연히 다르다. 40%대였던 대통령 지지도는 기대감의 반영이었지 평가 결과는 아니었다.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하는데도 여당인 한나라당이 참패했던 지방선거가 그렇게 말했다. 구호와 철학은 확연히 다르다. 구호는 정치적 수사만으로도 연명할 수 있지만 철학은 일관된 실천이 결여되면 폐기된다. ‘머슴’의 묘연한 행적과 여전히 울상 짓는 서민의 현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반짝효과는 챙길지 모른다. ‘친서민’ 행보를 그을 때 지지율이 올라갔던 것처럼 ‘공정한 사회’ 구호가 지지율 화살표를 잠깐 잡아 올리고, ‘친서민’ 화두가 유행어가 됐던 것처럼 ‘공정한 사회’가 잠깐 화제를 낳을지 모른다. 아주 잠깐 바람을 일으킬지 모른다. 하지만 부질없다. ‘강부자’와 ‘김신조’에 버금가는 인사 패착과 ‘유명환 딸’에 버금가는 불공정 행태가 되풀이되는 한 그 바람은 먼지만 일으킨다. 그 먼지가 다시 바람개비를 뒤덮는다.

거듭 말하지만 문제는 착시다. 착시가 착오를 낳고, 착오가 자승자박을 낳는 악순환이 문제다.

※이 글은 오늘자 ‘경향신문-시론’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나 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외고 문제를 당과 정부에만 맡겨두지 말라”며 “청와대가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단다.

당연한 지시다. 상황론으로 봐도 그렇고, 원칙론으로 봐도 그렇다.

외고 문제를 놓고 당과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 일각의 의지는 강력한데 교과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외고 폐지를 주창하는데 교과부는 외고 존속 또는 국제고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제탑 역할을 자임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정의 최종 책임을 청와대가 져야 한다는 원칙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견제’는 타당하지 않다.

이 신문이 보도했다. 청와대의 움직임을 ‘드라이’하게 전하면서 그에 대한 지적을 ‘꼼곰하게’ 처리했다. “청와대의 개입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며 “불과 2년 전 외고 폐지 정책에 반대했고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엘리트 교육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정책의 근본 기조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도 나온다”고 했다. “하나의 친서민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한다. ‘조선일보’의 지적을, 조중동의 일관된 ‘외고 폐지 반대’ 논조를 주목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청와대는 외고 문제를 가속 페달 삼아 친서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의 다음번 이슈 중 하나로 30-40대 학부모의 관심이 많은 외고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헌데 보수 세력은 마뜩치 않다. ‘조선일보’가 전한 반대론의 구절들, 즉 “정책의 근본 기조”를 거론하고 “친서민 포퓰리즘”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세력은 외고 폐지를 정체성의 문제로 본다. 보수 정권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중과 영합하는 배신 행위로 간주한다.

보수 세력의 시각이 이렇다면 그들이 펼칠 행동은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당과 교과부를 오가며 전개된 지엽적 논란이었기에 점잖게 대응했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논란에 종지부를 찌고 정책방향을 결정하면, 그리고 그 방향이 외고 폐지면 날선 공격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곤란해진다. 이렇게 '집토끼‘가 가출해버리면 ‘친서민’을 화승총 삼아 벌이던 ‘산토끼 사냥’이 공염불이 된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된다.

물론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양다리를 걸치는 방법이 남아 있다. ‘산토끼’도 잡고 ‘집토끼’도 다독이는 양면 전략, 즉 외고를 존속시키되 입시제도만 손보는 식의 방안, 또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식의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22일 전국 5490명을 대상으로 ARS조사한 결과를 봐도 여지는 있다. 응답자의 55.5%가 외고 전환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전환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특성화고(28.0%)-자율형ㆍ자립형사립고(23.3%)-일반 인문계고(22.2%)-국제고(21.6%)로 의견이 갈렸다. 보기 문항에 일부 문제(자율형 사립고는 추첨으로, 자립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도 한묶음으로 처리한 것)가 있지만 아무튼 갈렸다.

하지만 양다리 걸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뾰족수라고 생각했던 게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이미 막아버렸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그런 우회로에 바리케이드를 쳐버렸다. 외고 해법의 핵심은 학생을 시험이 아니라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쳐놓은 이 바리케이드를 타고 넘는다 해도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야당과 서민의 극렬한 반발이다. 외고 폐지의 대안은 일반고로의 전환이라면서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추첨 선발’을 최소한의 절충책으로 받아들여온 야당과 서민이 이명박 정부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외고 문제만이 아니라 친서민 정책 전반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여건이 그렇게 조성돼 있다. 상징성이 크고 민감성이 큰 외고 문제를 건드리는 순간, 그리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외고의 핵심 문제로 사교육을 부각시킨 순간 여건은 그렇게 조성됐다. 외고문제는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을 재는 가장 유효한 잣대가 돼 버렸다.

어쩔 것인가? 청와대는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갈림길에 선 청와대의 선택이 궁금하다.

 ▲사진=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27일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태산명동에 서일필인가? 판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정부가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단다. 교과부가 다음 주 외부기관에 의뢰할 ‘외고 개편 연구용역’의 초기 구상 핵심내용이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말로 외고가 자율형 사립고가 아니라 국제고로 전환된다면 공염불이 된다. 외고발 사교육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애초 구상이 무너져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중학교 내신 상위 50% 안에서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반면에 국제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내신 반영은 기본이고 영어시험이 추가된다.

여권 관계자는 입학 전형이 내신 위주로 바뀌어 사교육비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고, 영어 시험도 외고와는 달리 중학교 범위 내에서 출제돼 사교육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다. 현실을 호도하는 소리에 가깝다.


사교육 논란의 핵심 문제는 출제 수준이 아니라 시험 유무다. 어떤 형태든 시험이 유지되는 한 사교육에 의지한 경쟁은 근절되지 않는다. 시험이 상대평가인 한 남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입학할 수 있기에 1점을 위한 과다 투자는 불가피하다. 내신이 예외일 수 없고 영어가 예외일 수 없다.

다른 문제도 있다. 국제고에서 영어 시험을 치르는 건 교육당국이 보증한 ‘자율권’이다. 그래서 맘대로 할 수 있다. 지금은 중학교 범위 내에서 출제한다지만 언제든 출제 수준을 높일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등이 추진하는 ‘자율형 사립고로의 전환’ 방안이 반쪽짜리인데도 공감을 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교육 유발 요인이 재생되고 변이될 여지를 차단하려 한 그 취지에 공감한 것이다.

헌데 교육당국은 이 ‘최소치’를 허물려 한다.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을 짐짓 모른 체 하면서 고름이 번지는 환부에 파스를 붙이려고 한다.

평가는 이 정도로 갈음하고 시선을 돌리자. 추이다.

금은 이미 갔다. 외고 문제를 놓고 여권 내부, 보수세력 내부의 균열상이 분명히 드러났다. 보수정당 의원들은 외고를 아예 없애자 하고, 보수언론은 외고를 유지하자 하고, 보수정부는 국제고로 대충 ‘퉁’ 치려고 한다. 어떻게 될까? 여권 내부, 보수세력 내부의 이 균열상이 어떤 지각 변동을 야기할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하다. 친서민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 인사들은 교육문제를 운위할 때마다 ‘친서민’을 앞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교육비 부담이 서민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인 만큼 총리실이 중심이 돼서 좀 더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운찬 총리에게 주문한 바 있고, 정두언 의원 역시 “외고의 자율형 사립고 전환은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서민을 따뜻하게 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가받을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그 때 그 발언에 진정성이 담겼었던 것인지, 구현 의지가 있었던 것인지 어렵지 않게 가늠될 것이다. 외고의 향후 진로에 따라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지폐의 부피가 달라지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서민이니까.

▲캡쳐=오늘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Posted by '토씨'

1.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색 바랜 흑백사진 두 장을 꺼내들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사진, 그리고 얼마 후 서울로 올라와 찍은 사진입니다.

그는 흑백 사진 두 장을 내보이며 말했습니다. “어려웠던 이 시절에 가졌던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평범한 가정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부가 서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정몽준 대표가 재벌 출신이라는 점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재벌 2세 이미지를 탈색하고 친서민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정몽준 대표는 사진첩을 뒤졌습니다.

2.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야겠습니다.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정몽준 대표가 꺼내든 흑백사진 두 장을 보면서 ‘궁색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몽준 대표가 태어난 때는 1951년 10월입니다. 그 흑백사진이 찍히던 시절, 정몽준 대표는 강보에 싸인 젖먹이였습니다. 천지분간도 못했을 그 핏덩이 시절에 의지해 “어려운 가정”과의 정서적 유대를 구축하려고 하니 실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3.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출신’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서민과 약자를 위해 한 평생 바친 사람이 적잖습니다. 정반대로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도 그걸 콤플렉스로 여기며 일신의 영달에 몸 바친 사람도 적잖습니다.

‘출신’이, ‘과거’가 칸막이가 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 아래서 태어나 각고의 노력 끝에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칸막이입니다. ‘과거’에 대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고 성공 신화를 절대화하는 사람들에게 간혹 나타나는 칸막이입니다.

달라진 사회경제적 환경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만을 내세웁니다. 똑같은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처럼 자수성가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을 낙오자로 간주합니다. 자수성가를 독선의 자양분으로 삼으면서 소통을 거부합니다.

자수성가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에게 사회 시스템과 복지 체계는 별로 안중에 없습니다. 자신이 각고의 개인적 노력 끝에 성공을 일궜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다그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다그치면서 경쟁과 효율의 논리를 강제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제하면서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끔찍합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이 되면 가족이 힘들어집니다. 이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면 국민이 고달파집니다. 이해와 배려, 보호와 지원은 기대할 수 없고 경쟁과 평가, 훈계와 상벌이 강제되기 때문입니다.

4.
국민이 재벌 2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자수성가 이데올로기에 빠진 가부장과 똑같이 경쟁의 논리, 효율의 논리에 물들어 있을까봐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상사를 적자생존의 경제논리로 바라볼까봐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기업형 슈퍼마켓이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듯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복지를 초토화시킬까봐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정몽준 대표가 정치 지도자로 안착하려면 지워야 합니다. 색 바랜 사진 몇 장으로 ‘출신’을 지우려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시선에 “어려운 가정”의 실상을 천연색으로 담아야 합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4만원 어치 살 게 아니라 인근 쪽방촌에서 4만원에 벌벌 떠는 서민들의 흑백 생활상을 살펴야 합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진=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8일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희한하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됐는데도 또 나온다. 이번엔 박준영 전남지사다. 청와대가 차기 총리로 박준영 지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얼핏 보면 실현 가능한 카드가 아니다. 자유선진당처럼 민주당이 반발할 게 뻔하다. 아마도 그 강도와 폭은 더 세고 넓을 것이다. 그런데도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왜일까? 왜 이런 얘기가 쉼없이 흘러나오는 걸까?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짚을 수 있다. 이런 카드에 깔려있는 계산법을 헤아릴 수 있다.

심대평 전 대표나 박준영 지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급이 다르다. 지금까지 언론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들은 특정 지역 출신으로 국민통합․화합의 상징요건을 갖추곤 있지만 힘이 없다. 반면에 심대평 전 대표나 박준영 지사는 특정 지역과 특정 정당에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힘과 상징성을 함께 갖고 있는 이들이 총리가 될 경우 발생하는 정치적 파장은 넓고 크다.

열매는 고스란히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돌아간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지역주의 극복 의지를 구체화하면서 ‘친서민’과 함께 새 국정 기조의 양 날개로 삼을 수 있다. 계층 통합과 지역 통합의 아젠다를 선점하면서 국정에 대한 계층적․지역적 평가를 희석시킬 수 있고,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지형을 만들 수 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치 총리’가 실세 총리를 자임하는 경우, ‘정치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권한 분점을 요구하는 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방비책을 만들어뒀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개편했다. 조직을 키웠고 권한을 집중시켰다. 정부 출범 때 8수석 1특보 체제였던 청와대를 1정책실장 8수석 6특보 2기획관 1보좌관으로 키웠다. 그러면서 이른바 실세들에게 권한을 더 부여했다. MB맨이라 불리는 윤진식 경제수석에게 정책실장 자리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게 상근 경제특보 자리를 줬고, 이동관 대변인에겐 기존의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을 아우르는 홍보수석 자리를 줬다. 이렇게 조직을 키우고 권한을 집중시키면서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누가 총리가 되든 힘을 가질 수가 없다.

우려할 건 따로 있다. 총리 후보를 보듬고 있던 특정 정당의 반발이다. 하지만 이 또한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당장은 평지풍파를 겪겠지만 길게 봐선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야기되는 건 특정 정당의 반발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분열상도 야기된다. 지금 자유선진당이 보여주는 모습과 같은 양상이 야기된다. 꼭 나쁜 일은 아니다. 특정 정당, 다시 말해 야당 입장에선 적전분열이지만 여당 입장에선 교란이다.

과정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성사 되면 좋고 성사가 안 돼도 홍보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의지를, 국민 통합․화합 의지를 선전할 수 있다. 이렇게 선전하면서 선거제도 개혁과 행정구역 개편을 매개로 정치개혁을 다그칠 수 있다. 이렇게 다그치면서 야당이 국정에 각을 세우고 날을 가는 현상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성격이 이렇다. 실세형 지역 인물을 총리에 앉히려는 시도는 ‘써봤자 3점’인, 아니 ‘써봤자 3점’도 안 되는 게임이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기에 충분한 게임인 것이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