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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아픈 건 5대0의 스코어가 아니다. 이건 참을 수 있다. 그렇다고 원내과반의석이 무너지는 게 아니다. 따끔하긴 해도 뻐근하진 않다.

정작 아픈 건 조짐이다. 수도권이 흔들리는 조짐이 문제다. 인천 부평을에서 졌고 경기 시흥에서 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기교육감 선거에서도 졌다. 추세는 분명 수도권의 이반이다.

수도권이 어떤 곳인가? 대선 때 '이명박 바람'을 일으킨 곳이다. 영남 지배력을 확장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할 진지이기도 하다. 바로 이 수도권이 흔들리고 있다.

주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나라당이 아픈 게 아니라 이명박계가 아프다. 더 좁히면 이재오계가 아프다. 이재오계 입장에서 수도권의 이반은 자신들의 발밑을 살펴야 할 만큼 큰 위기다.

바로 이 점이 한나라당의 역학구도를 바꾼다. 이재오계의 응집과 이재오의 부상을 재촉하는 촉매제가 된다. 바로 이 점이 한나라당의 내홍을 더 고착화시킨다. 이재오계와 박근혜계의 갈등구도를 더 심화시킨다.

치유책을 다른 데서 찾을 수가 없다. 수도권이 이반하는 원인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 또는 심판의지 때문이라면 목청을 높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국정 성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치던지, 국정기조와 방향을 조정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여야 하고, 구심점을 세워야 한다.

이재오계가 모여야 하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박근혜계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다. 아니 절박성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주이야박' '월박' 현상이 4.29재보선으로 더 심화될 수 있다. 10월 재보선을 거쳐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러면 세력이 약화되고 수도권 이반이란 외환에 세력 위축이란 내우가 겹친다.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모여야 하고, 구심점을 세워야 한다.

그렇다고 속단하지는 말자. 지금까지의 논리는 이재오계의 논리다. 한나라당 내 한 계파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 보다 더 힘이 센 논리가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논리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에선 이재오계가 당내투쟁을 전면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면 한나라당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국정 지지력이 저하된다.

바로 이 점이 규정한다. 다른 선택카드가 없다. 당내분란을 적당한 선에서 관리하는 데 현 지도체제만큼 적절한 카드는 없다. 영남 중진, 다시 말해 이상득계를 축으로 하는 현재의 지도체제는 이재오계를 달래고 박근혜계를 쓰다듬는 완충기제다. 같은 이명박계임을 내세워 이재오계를 다독거리고 같은 영남 출신임을 내세워 박근혜계를 어루만지는 완충기제다.

크게 흔들 수가 없다. 현 지도체제를 뒤엎는 대개편을 자청하면 이재오계와 박근혜계의 격돌을 자초한다. 그냥 두는 게 상책이다.

문제는 힘의 지속시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권세로 언제까지 한나라당 내 계파논리를 억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참패가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되풀이된다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보다 개인의 생존본능이 급팽창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계파별로 이명박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서는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국정성과를 하루 빨리 내놔야 하고 이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대공세를 예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29재보선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국정 추진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더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MB본색'을 더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국정에 속도를 붙일 수 있고, 그래야 대선 때의 지지층을 재결집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이후 1년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4.29재보선은 이명박 대통령에 경종을 울리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처지는 진군나팔을 불 것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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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도 부모가 있고, 전경도 부모가 있지 않습니까. 내 자식만은 안 다쳐야 하는데, 그게 부모 마음이죠. 모두 귀한 자식들입니다. 부모들 가슴에 상처 주는 일 없도록 서로 절대 다쳐선 안 됩니다.”

청와대와 경찰이 촛불집회에 대해 잇따라 강경진압 방침을 재확인했던 지난달 30일. 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외아들을 경찰 폭력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고 강경대 군의 부모를 찾았다. 만나자마자 ‘다쳐선 안 된다’며 몇 번이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지난 두 달여간은 아픈 경험을 다시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경대 엄마가 힘들어 했죠. 경찰한테 맞아 앞니 모두가 나가 버렸는데…. 다시 경대 일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 많이 하지요.”

고 강경대 군의 부친 강민조(67) 씨가 부인 이덕순(60) 씨를 다독이며 말한다. 이덕순 씨는 강경대 군 사망 사건이 일어난 지난 91년 ‘법정소란죄’로 재판정에 선 강민조 씨의 공판 참석을 막는 전경으로부터 얼굴을 방패로 찍혔다. 아들의 죽음과 남편의 감옥행에 절규하던 이 씨에게 날아든 전경 방패는 지금도 쉽게 기억에서 지우기 힘든 일이다.

“경찰 폭력이라고 하면 치가 떨리죠. 지금도 하루같이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이번에 쇠고기 촛불집회 현장에 가서도 ‘아들 같은 사람들이 다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과 함께 ‘전경들이 나한테 달려오면 또 어떡하지’하고 불안해했죠.”

강민조 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경찰폭력 피해 부모들의 모임 등에 참석하며 활발히 사회참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일에도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사회원로 100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지난 18년 동안 큰 집회는 안 나가본 적이 없다. 그 사이 ‘새파랗게 젊은 전경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다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덕순 씨는 그동안 평범한 주부로 살았지만 쇠고기 촛불집회를 TV로 보다 ‘앉아 있을 수만 없어서’ 강민조 씨와 몇차례 서울시청 앞을 찾았다고 한다.

“학생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특하던지 모르겠더라구요. 마냥 어리광만 부릴 것 같은 나이인데도 말도 잘하고 표현력도 좋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경대가 죽기 전까지 ‘안일’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아들로 인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이 씨가 덧붙인다. 그러면서 “경대가 살았더라면 아마 직장 다니다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겠냐”며 웃어보인다.

“촛불집회에 가면 어떻게 알아보고 ‘경대 부모님 오셨냐’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나 하나 기억을 못하니 미안하더라구요.”

다시 경찰의 강경 진압 이야기로 돌아갔다. 안타까운 심경이 묻어나는 말들이 이어진다.

“위에서 시키니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유난히 폭력적인 전경들이 있더라구요. 내 경험상 시위대는 절대 먼저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요. 평화적인 집회를 보장하란 이야기를 전경들도 이해는 할텐데….”

강민조 씨는 ‘치고 받는 시위가 아니라 웃으면서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어미니 이 씨는 몇 번이고 ‘부모 마음’을 강조한다. “전경도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이성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자식들은 시위대건 전경이건 안전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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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이야기가 나오자 강민조 씨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혹시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함부로 진압 명령을 내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도….”(강민조 씨)

강민조 씨는 특히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전날 ‘불법 과격시위 같은 집회는 공동체 이익을 갉아먹는 해충과도 같다’라고 한 발언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촛불집회에 한번이라도 나와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기 생각만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조중동 보는 그대로 세상을 보는 것 아닙니까.”

이덕순 씨가 말을 받는다.

“광우병은 벼락 맞을 확률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벼락 맞을 확률에 안전하다고 말하는 대통령도 포함 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안전한 식품을 먹고 싶다는 게 국민들, 특히 주부들 생각입니다. 게다가 이젠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도 지났잖아요. 그걸 옛날식으로 국민들한테 강요하려고만 들려니… 후세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네요.”

*뒷이야기=고 강경대 군의 아버지 강민조 씨는 아들이 죽은 지난 91년 4월 이후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평범한 사업가에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일을 하면서 민주화유공자 특별법 제정,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 전면에 나선 투사가 됐다. 한편으론 ‘강경대 한방무료진료소’를 열고 해마다 경대의 생일 때 경로잔치를 열었다. 지역감정을 없애자는 운동도 벌였다.

어머니 이덕순 씨는 경대가 죽은 후 광주로 내려가 98년까지 ‘경민회관’이란 식당을 운영하면서 해마다 5월이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거두는, 광주 운동판의 대모역할을 했다.

지난 94년 5월의 어느날 늦은 저녁 경민회관을 찾았을 때, 이사 오기 전 서울 집의 경대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경민회관 2층 방에 어머니가 자리를 펴주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다시 찾은 집에서도 그 때 봤던 경대 방이 그대로 옮겨져 왔다. 경대가 쓰던 책상 위 경대의 영정만 조금 더 커졌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어미니 이 씨는 오는 사람마다 ‘거둬 먹이기’ 바쁘다. 94년도에는 난생 처음 전라도식 생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엔 강민조 씨의 고향 영광에서 올라온 오디차와 쑥떡을 쉴새없이 권했다.

경대의 누나 강선미 씨는 지난해 결혼을 했다. 이달이 출산 예정일이다. 촛불집회를 지켜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경대가 태어난 지 37년만에 새 식구가 들어온다는 생각에 강민조 씨와 이덕순 씨는 살짝 들떠 있었다.

▲사진 제공=시민사회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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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쇠고기 협상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지지율을 까먹었고 자신의 주요 정책을 민심 무마카드로 내놨다. 집권 초기의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530만 표 차 당선이란 프라이드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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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겨온 자산을 잃었다. 바로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실용’의 핵심은 ‘초월’이다. 이념의 대립구도를 초월해 오로지 성과와 이익을 강조하는 효율주의다. 본인과 그 주변이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이 ‘실용’이 무너졌다. 쇠고기 협상에 ‘졸속’ ‘굴욕’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실용’의 거품은 터졌다. ‘실용’은 고사하고 ‘실력’조차 의심 받는 처지에 몰려 버렸다.

설상가상이다. 여기에 또 한 번, 아니 결정적으로 ‘실용’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꺼내들었지만 결국 자신을 덫에 가둬놓을 자충수다. 강경진압이다.

잘 둘러볼 필요가 있다. 여권이 며칠 동안 주장해온 바와 강경진압은 호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추가협상 후 민심이 촛불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촛불집회는 이제 극렬 좌파·반미 전문이 주도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장담했다.

여권이 정말 이렇게 확신했다면 강경진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조금만 참으면 자멸할 집회였다.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 다수가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집회였다. 그런 집회에 물대포를 쐈고 소화기를 뿌렸으며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그렇게 강경진압 함으로써 자기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자기 손으로 ‘실용정부’ 간판을 떼어내고 ‘실력행사’ 담화문을 갖다 붙였다.

왜였을까? 조금만 참으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둘러 강수를 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자멸’의 길을 유도하지 않고 정치적·도덕적으로 부담이 큰 ‘진압’의 길을 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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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여권의 ‘촛불집회 변질’ 주장이 올가미가 돼 버렸다.

그런 주장이 강성 우파에 명분을 주고 말았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면 두고 볼 게 뭐가 있냐고, 당연히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에 기름칠을 해 버렸다. 촛불집회장에 극렬 좌파·반미 전문만 남았다면 당연히 ‘비타협적으로’ 맞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우파의 대결논리가 득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은 갇혀 버렸다. 좌우 이념을 초월하기는커녕 우파, 그것도 강성 우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촛불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강성 우파의 목소리에 눌려버렸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진압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 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렇게 진압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미몽이다.

‘착각’과 ‘미몽’ 반대편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립지대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도덕적 사안 때문에 중립성향의 국민이 이탈한다. 여느 사안보다 탄력성이 작은 도덕 문제 때문에 중립지대의 국민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탄력성이 작다는 건 한 번 마음 먹으면 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회귀 현상이 발생한다. 최루액과 각목을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빚어진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느냐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논란이 조성할 지형이 중요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형성되면 흡수한다. 이념공세를 흡수해 버린다. 그게 과거 독재시절 확인한 원리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자명하다. 소수화다. 이명박 정부가 소수화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조리 장악하고 의회마저 석권했다 하더라도 고립된 섬이 된다. 민심의 바다 한켠에 유폐된 무인도가 된다. 그와 함께 ‘실용’엔 용도폐기 딱지가 붙여진다.

반박 소지가 있는 두 문제를 마저 짚고 마무리하자.

하나. 왜 단정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변질된 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하는 게 오히려 국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그 한 예가 강경진압의 맞은편에서 ‘극렬 저항’하는 사람들의 면모다. 이들이 극렬 좌파·반미 전문의 전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택배기사와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극렬저항’한 사람은 택배기사였고 ‘강경진압’에 팔이 부러진 사람은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둘. 성격 규정이 잘못 됐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모호한 ‘자화자찬’에 불과했다고, 이명박 정부의 본체는 본래 우파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우파 본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실용 변질’로 표현한 이유가 있다. ‘변질’이 ‘본색’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게 그 이유다.

▲사진 제공=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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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 대체로 일치한다. 여의도연구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할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엄정 대처’로 모드를 바꾼 데에는 여의도연구소의 ‘희망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31.9%로, ‘촛불집회를 그만 해야 한다’가 67%로 나온 데 고무됐다고 한다.

허튼 분석은 아닌 것 같다. 여의도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를 입에 올린 한나라당 의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 인사들의 이런 태도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 어이가 없다.

우선 수치에 문제가 있다. 여의도연구소의 ‘국정운영 지지도’ 결과는 다른 여론조사 결과보다 10%P 정도 ‘뻥튀기’ 돼 있다. 여의도연구소가 여론조사를 벌인 지 하루 뒤에 실시된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선 ‘국정운영 지지도’가 20.3%로 나왔다. 또 KBS의 25일 조사에선 22.6%로 나왔다. 촛불집회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10%P 가량 ‘뻥튀기’ 돼 있다.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촛불집회를 ‘그만 해야 한다’가 58.5%였다.

수치만 놓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여권이 모두 ‘거품 목욕’을 하고 있는 셈이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괜찮다. 수치에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10%대에서 20%대로 올라섰고, 촛불집회에 대한 입장이 ‘찬성’에서 ‘반대’로 많이 돌아선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여권이 '10%P 차‘가 아니라 ’추세‘에 방점을 찍고 흡족해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까지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어이가 없다고 평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도 아니다. ‘추세’를 읽은 다음에 보이는 태도가 전도돼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가 올라가고, 촛불집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올라가는 동력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게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상승 추세를 보인 것이 이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 때문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고 국민 반발이 거셌던 일부 정책을 포기 또는 변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단 ‘반성’ 모드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조금씩 돌아서고 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국민' 상당수가 아니라 과거 '이명박 지지자' 일부가 그렇게 돌아서고 있다고 있다는 분석이다.  

촛불집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올라가는 것이 쇠고기 추가협상에 대한 전폭적 동의 때문이 아니라 재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낙담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 ‘차악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여론이 이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여권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좀 더 머리를 숙이는 태도, 좀 더 귀를 여는 자세로 임하는 게 정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국민 여론을 보다 확실히 다잡는 게 정석이다.

근데 거꾸로 가고 있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말을 토해낸다. 국가정체성을 운운하며 ‘엄정 대처’를 주문한다. 속전속결로 장관 고시를 강행하려고 한다. ‘속도 위반’에 ‘불법 유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착각은 금물이다. 여권은 촛불집회장에서 시민을 일부 극소수 반미·좌파 세력과 분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 같은데 이건 한참 엇나간 분석이다.

여권이 먼저 돌아봐야 하는 건 이명박 대통령이 아직도 ‘고립된 섬’에 유폐돼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국정운영 지지도는 거북이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 초반대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대선 때 얻은 지지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중립지대나 반대진영에 있는 국민은 논할 것도 없다. 이명박 지지층의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아직도 ‘가출’ 상태로 남아있다.

이게 이명박 대통령과 여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그렇게 자문하면서 작금의 ‘변신 모드’가 타당한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반성' 모드를 풀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은지를 되새겨야 한다. 

▲사진=지난달 2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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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촛불정국을 반전시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제 하루 동안 나타난 현상이 그렇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제기한 MBC ‘PD수첩’을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사망한 미국의 아레사 빈슨 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이 아니라는 미국 국립프리온질병병리학감시센터의 발표에 힘입은 조치다.

▲5개 부처 장관은 합동 담화문을 발표해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의 파업을 ‘불법적인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면서 엄정대처를 다짐했다. 때마침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가결 요건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을 ‘독’에 비유하면서 그 부작용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더불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실명제 확대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상승작용을 기대하는 것 같다. ‘PD수첩’을 치면 광우병 우려에 물타기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압박하면 국민 대토론을 제어할 수 있다. 노동계를 자극하면 촛불집회를 교란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이렇다.

‘6·10 100만 촛불대행진’을 정점으로 촛불집회 참가 인원이 줄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촛불의 성격을 쇠고기에서 5대 정책으로 확장하기로 한 데 대해, 또 ‘정권 퇴진운동 불사’ 발언을 한 데 대해 ‘변질’ 논란이 일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건너간 후 쇠고기 논란은 ‘재협상’에서 ‘추가협상’으로 좁혀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로서는 소나기가 가랑비로 약화됐다고 판단할만한 양상이다.

이런 양상에 노동계의 ‘불법적인 정치파업’을 접목시키면 어떻게 될까? 촛불집회장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가 조직적으로 참가하고 시위 양상이 과격해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의 상황으로 판단하는 듯 하다.

강수는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정부가 궁지에 몰려있는 게 엄연한 사실인데, 노동계의 파업에 대해서도 ‘생계형’이란 이유로 국민 다수가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잘 통할 수 있을까?

걱정할 것 없다. 세 가지 요건이 구비돼 있다.

하나는 상징. 파업 찬반투표 가결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현대자동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파업 강행을 선언했다. 이처럼 좋은 여론전 소재는 없다. 민주노총의 ‘불법성’과 ‘정치성’을 상징하는 요소이고,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에 집결하는 순간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이다.

다른 하나는 완충제. 마냥 강수로 나가는 건 아니다. 화물연대의 핵심적 요구인 표준요율제 즉각 시행, 유가보조금 지급기준 완화, 노동자 지위 인정에 대해서는 야멸차게 거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원책도 내놨다.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대상을 확대해주기로 했고 경유 화물차를 LNG 화물차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돈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 뿐인가. 추가협상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에 합의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쇄신책도 준비하고 있다.

마냥 강수로 나가는 게 아니다. 강온 양면책을 씀으로써 ‘역공’에 대한 반발을 극소화시킬 수 있는 완충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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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하나는 우군. 보수언론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어제를 기점으로 보수언론이 ‘반격’의 선봉에 서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의 적격성을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고, 촛불집회의 ‘변질’된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보수인사도 나서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 씨는 촛불집회를 ‘불장난’ ‘난동’으로 규정하면서 ‘의병’의 궐기를 촉구하고 나섰고, 보수단체들은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대로 가면 된다. 이렇게 대처하다 보면 갈린다. 촛불민심이 강과 온으로 갈리고, 노동계 파업에 대한 국민 여론이 찬과 반으로 갈린다. 이렇게 분열이 심화되면 대오는 흩어지고 힘은 약화된다.

이건 유형의 성과다. 더불어 무형의 보너스도 챙길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건설기계노조 파업으로 시시각각 물류 마비, 공사 중단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손실액이 추산되고 있고 궁극적으로 경제위기감이 유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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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다. 덤터기를 써온 정부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치더니 한 게 뭐냐는 국민 질책에 시달려온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감이 증폭되면,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노동계의 ‘불법적인 정치파업’이 지목되면 정부는 최소한 ‘독박’을 피할 수 있다. 경제 실정 비판에 ‘동반 책임론’을 들이댈 수 있다. 만에 하나 파업이 전면화 되고 장기화 된다면 이런 실정 상쇄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새삼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 대표들과 만나 그랬다.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한 불교계 대표가 맞받아쳤다. “소나기가 아니라 장맛비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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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관건이다. 정부의 바람, 또는 의도는 그냥 그 자체일 뿐이다. 정부의 바람 또는 의도가 먹혀들지 여부를 재려면 마저 하나를 살펴야 한다. 상대요인이다.

오는 21일 또 한 번의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재협상 시한으로 설정한 20일 이후 처음 열리는 촛불집회다. 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운집하는지, 이 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대응책을 어떻게 모아내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아직 교호작용은 끝나지 않았고, 상황은 굳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진 맨 위=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OECD장관회의에 참석해 인터넷을 ‘독’에 비유했다 ⓒ청와대
▲사진 위에서 두 번째=촛불집회의 ‘정치성’을 부각한 <동아일보> 기사
▲사진 위에서 세 번째=노동계 파업이 민생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을 부각한 <조선일보> 기사
▲사진 맨 아래=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을 비판한 <중앙일보> 기사

Posted by '토씨'

"촛불집회 참가자가 구속됐다. 연행자 561명 가운데 '첫 구속'이다. 법원은 10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모(44)씨와 윤모(51)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전모(44)씨는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아침을 먹다가 뉴스를 들었다. 이씨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고, 윤씨는 노숙자이며, 전씨는 생수판매업 자영업자란다. 무릇 그들이 궁금해졌다.

노숙자와 일용직 노동자, 자영업자가 촛불집회 첫 구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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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어렵사리 전씨와 만나게 됐다. 구속은 면했지만 영장실질심사까지 마치고 유치장을 나오게 된 터라 밀린 일이 많았다. 당장 생수를 공급해줘야 하는 일터들이 산적했다. 생일도 겹쳤다. 유치장에서 나온 이튿날, 전씨의 가족은 하루 앞당겨 '미리 버스데이'해줬다. 전씨는 집회에 참석했다 풀려난 게 무슨 대수라고 인터뷰까지 해야 하느냐고 사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씨의 영업용 자가용 1톤 트럭이 마침 '고장이 나줬'다. 생수업자는 차가 고장 나면 배달을 못하니 일을 할 수 없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마지못한 그는 검정색 배낭을 둘러메고 약속장소로 나와 주었다. '무명씨 이야기' 두 번째 주인공은 '촛불집회 첫 구속자' 전씨다. 물론 영장실질심사에서 풀려났지만.

다섯 번째 촛불집회에 나간 날 사고가 터졌다. 8일 새벽 1시 20분께 서울 광화문 세종로사거리 이순신 동상 앞에 그는 서 있었다. 대치하는 장소까지 갈 맘은 없었는데 어찌하다보니 그 앞까지 서게 됐다. 몇몇 시위군중이 철망을 타고 전경버스로 올라가려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안쓰러웠다.

'왜 못 올라가는 거야.'

속으로 읊조렸다. 발을 딛는 걸음마다 자꾸 미끄러지는 게 보였다. 답답했다. 전씨는 중3때부터 외삼촌을 따라다니며 암벽등반을 했다. 순간 산이 생각났다. 산에선 등반이 어려운 사람은 돕는 게 예의다. 그가 나섰다. 앞으로 달려가 먼저 올라가는 사람의 발에 손을 대주고 한발 한발 전경버스로 오르게 했다. 잇달아 그도 올랐다.

"전경 버스 위에 딱 섰는데, 버스 아래 전경들이 중지를 거꾸로 세우며 욕하는 게 보였어요. 꼭지가 돌았죠. 어린놈들이 이래도 되는 거야? 욕이 튀어나왔어요. 소리도 지르고. 경찰서에 갔더니 체증사진이 많더군요. 기물파괴는 하지 않았고, 사람 때리지 않아 구속을 면한 것 같아요."

전경버스 위에 서 있던 그는 양쪽 팔을 붙들린 채 시위군중과 멀리 떨어진 전경버스까지 끌려갔다. 전경들은 그의 다리를 꺾어 넘어뜨린 뒤 발로 밟고 걷어찼다고 했다. 명치를 얻어맞아 일순간 숨도 못 쉬었다.

멀리서 "야 이 놈들아 사람 죽이겠다, 그만해라" 소리가 들린 뒤에야 매질이 끝났다.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온몸에 멍이 들었다. 지금도 양 어깨와 등은 움직일 때마다 소스라치게 아프다.

"얻어맞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이런 XX는 죽여야 된다'는 소리였어요. 어린놈들이 마흔 넘은 아저씨한테 너무 하네 싶었어요. 하긴 때리고 맞을 때는 그런 게 없죠. 하하."

경찰의 고백 "아저씨 조사하고 있지만 내 마음도 같은 편이에요"

멋쩍게 웃었다. 경찰 조사를 받는 동안 그는 한 경찰로부터 웃지못할 '대한민국 현주소'도 들었다. 한 경찰은 "아저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지만 사실 내 마음도 그쪽"이라는 말을 했다. 그는 87년 6월 항쟁이 생각났다. 경찰서에서 조사하는 사람이나, 조사받는 사람이나 같은 마음이지만 서로 서 있는 위치가 다른 것뿐이라는 그때 생각이 도로 났다고 했다.

전씨는 체육교육을 전공한 83학번이다. 입학은 했지만 졸업은 못했다. 산을 워낙 좋아하는 산악인이라 주로 산에서 세월을 보냈다. 샐러리맨으로 직장생활도 했다. 체질적으로 메이는 게 싫은 그는 금세 관뒀다. 그 뒤로 사회단체 상근도 해봤다. 10년간은 전국의 사찰을 돌며 한옥 목수생활도 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서원이나 향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생수업을 시작한 건 작년 5월이다. 노모 때문이다.   

"남동생은 파주 출판단지로 출근하고 여동생은 결혼하니까 어머니 돌볼 사람이 없더라구요. 어머니가 척추관 협착증이 있어 거동이 불편하시거든요. 가족 중 누군가는 어머니를 모셔야 해서 제가 정착하기로 했어요. 사방팔방 떠도는 것도 지겹기도 했고."

아는 형이 제안한 것이었다. 시간을 잘 활용하면 주중 하루는 시간을 빼 산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 게 결정타가 됐다. 산을 못 가면 몸살이 나는 터라서...

그는 한 달에 200만원을 번다. 동료 가운데 300만원 버는 사람도 있다. 생수 팔아 한 달에 300만원 벌려면 새벽부터 컴컴해질 때까지 일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기름값이 너무 올라 죽어라 뛰어봤자 본전치기도 어렵다고 했다. 경유가격이 무섭게 오르지 않았냐는 게다.

시장에 가면 파리 날리는 가게가 너무 많다고 했다. 장사꾼들이 울상이라고 전했다. 밑바닥  경제는 이미 사망신고를 받은 것처럼 침울하다고 걱정했다. 노무현정부 때도 살기 어려웠지만 이명박정부와 비교할 게 못된다고 했다.

기름값 너무 올라 생수 팔아봤자 본전치기도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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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는 이명박정부에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촛불집회도 그래서 나갔다고 했다. 비단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때문이 아니라는 게다.

"슬쩍 흘리고 국민들을 상대로 '간 보기'하는 정부가 너무 얄미워요. 한반도 대운하, 공기업민영화, 의료보험민영화 후순위로 뺀다, 이 말은 결국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추진하겠다 이 소리 아니에요?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야 워낙 '있는 놈들'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 해명이 꼴불견 아닌가요?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어요.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알면 '재협상'하라 요구에 '추가협상' 운운합니까."

전씨는 목청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듯 했다. 미국에서는 20개월령 미만 뼈 없는 살코기만 먹는다는데, 우리는 왜 30개월 이상 뼈와 내장까지도 다 수입해 먹어야 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에서는 전혀 소비되지 않는 부위를, 그래서 사료로 쓰던 것들을, 우리가 'OK'하고 수입하니 미 축산업자들은 얼마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땡큐'하겠냐고 했다. 바로 이런 점이 촛불을 내릴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경찰에서 풀려난 뒤 처음으로 14일 촛불집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허가받은 집회에만 참여한단다.

- 거리행진은?

"안할 거예요."


- 전경버스 위에는 또?

"아이쿠 무슨 소리예요. 이제 안 올라가요."

- 특별한 이유라도?

"노모께서 풀려난 뒤 처음 받은 생일상에 절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얘야, 집회에 나가는 건 좋은데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서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럼 되겠니? 너도 이제 나이가 꽤 들었잖니. 마흔도 넘은 애가."

전씨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아버님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삼남매 키우셨는데, 이 정도도 못 하면 장남이 아니라고 스스로 마음먹었다. 암만 울컥해도 어머니를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그가 촛불집회에 나가 폭력을 쓰지 않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 전씨는 재판을 앞두고 있어 이름과 사진 등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했다. 대신 뒷모습 촬영은 허락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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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성적은 부모 경제력에 비례해 나올 게 확실해지겠지. 선생 노릇? 요즘 같아선 뭐….”

‘학교교육 만족 2배, 사교육비 절반’을 약속한 이명박 정부의 첫 작품인 ‘4·15 학교자율화조치’가 발표된 지 50여일이 지났다.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어떨까? 신흥 교육과열 지역으로 불리는 용인 수지의 모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하는 동기를 찾았다. 보자마자 “소주 한잔?”이다.

아직은 폭풍전야… “미래는 불 보듯”

“아직 여파가 본격적으로 밀어닥친 건 아냐. 하지만 학교에서는 교육청 눈치, 옆 학교 눈치보고, 학부모들은 아이들 더 잡아 달라고 하고, 아이들은 대치동 학원으로 몰리고, 엉망이다.”

교과부의 교육자율화 조치 발표는 전격적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교육계와 시민사회는 일찌감치 이명박 정부가 가장 먼저 시장과 경쟁논리를 앞세워 교육을 손 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 조치에 대해 교육시민단체들은 “그나마 앙상한 골격을 유지해온 공교육의 ‘마지노선’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방안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4·15 학교자율화조치를 일부에선 ‘4·15 공교육 포기조치’라고 부른다.

수치가 그렇게 말해준다. 지난달 25일 통계청은 사교육비가 작년에 비해 1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사교육비에 대한 통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의 증가폭이다. 학교자율화조치 이후 처음 치러진 지난달 23일 사설 모의고사에선 지난해에 비해 시험을 치른 학교와 학생이 2배로 늘었다. 이날 하루만 사설 모의고사업체는 40억여 원을 벌어들였다. ‘입시경쟁 교육 2배, 사교육비 2배’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그래도 학부모 대부분 환영하더라. 제 살 깎아먹기, 얘들 죽이기 아니냐고? 학부모들도 알지. 하지만 옆집에서 하면 안할 도리가 있나. 자식 둔 죄지. 인생을 수능 한번으로 결정하는 제도도 불합리하고…. 정말 죽어나가야 정신이 들려나.”

미래형이 아니다. 이미 어린 목숨이 희생됐다. 학교자율화조치가 발표되던 그날 밤 전교 1등을 하던 대일외고 학생이 14층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떨어졌다. 학원 교습시간 연장 조례 제정을 추진하던 정연희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이 지난 3월 13일 “일하다 죽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공부하다 죽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고 말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어린 목숨이 경쟁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죽어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공교육

교사직 7년차, 그 중 4년을 고3 담임으로 일했다. 부친도 아이들을 가르쳤고, 배우자도 교사다. 그래서일까? 참담해 보인다.

“자율화 조치, 황당해. 공교육 포기 조치라고도 하지만 내 생각엔 ‘무한경쟁 조치’야. 이명박 대통령이 그 험난한 경쟁 속에서 여기까지 온 건 알겠는데, 학생들한테까지 그 길을 강요하는 것 같아. ‘너 못해? 그럼 낙오’라고 서슬 퍼렇게 몰아붙이는데 배겨낼 재간이 있겠어. 사실 자율화라는 말 자체가 사기지, 학교 운영의 권한을 학부모, 학생, 교사에게 동등하게 준다면 모를까 교육감, 학교장한테 주는 게 어떻게 자율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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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는 임용고사에 합격하기 전까지 학원 강사로 뛴 전력이 있다. 학원교육의 생리나 입장도 잘 아는 편이다.

“학원 수업이란 게… 애들 망가트리는 것일 수 있어. 요약정리해서 찍어주면 암기하는 식이잖아. 당장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석차는 올릴 수 있어도 사교육에 길들여진 애들은 학년이 높아지고 학문이 깊어질수록 요약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해 고생하지. 사설모의고사도 그래. 실상을 보면 재수생에 학원생까지 치르다보니 변별력이 없어. 업체와 학원들만 장사 시켜주는 셈이지.”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도마 위에 전교조도 올랐다.

“불만 많아. 공교육 포기 정책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0교시 수업으로 내몰리는 학생들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지 못해. 이전에 네이스 반대운동할 때 내건 게 뭐야? 학생인권과 정보 주권 아냐? 그런데 지금은 뭐야? 송두리째 학생 인권이 날아갈 판에 위원장 단식만으론 부족한 거 아냐? 참교육 실천 구호가 지금만큼 절실할 때가 있나.”

다혈질 조합원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학생들로 돌아간다.

“나는 요즘 애들이 이기적이고 개인화됐다는 이야기 인정해. 자기 것 확실히 챙기지. 하지만 자기 행동과 생각을 명확히 밝히는 만큼 책임 질 줄 알아. 연예인 때문에 촛불을 들었다고? 그렇게 즉흥적이지 않아. 촛불집회에 놀러가는 것 같지만 아냐. 즐기면서도 목적을 가지고 놀아. 그래서 무서운 거야.”

학생들이 촛불을 든 배경에 학교자율화 조치가 있었는지 물었다.

“맞아. ‘0교시 수업하고 급식으로 광우병 쇠고기 먹고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진다’는 이야기 많이 한다. 아이들도 상식으로 판단하는 거지. 솔직히 이번 파동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교사들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집회 문화를 축제로 바꾼 게 학생들이잖아. 얘들의 행동이 어른들을 자극한 게지.”

많이 놀랐다고 한다. 대신 촛불을 들고 나선 아이들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고 했다.

“교육청에서 공문 날아왔어. ‘광우병은 괴담’이란 내용이었는데 결국 아이들한테 전달하진 않았다. 지시에 의해 교육을 할 순 없잖아. 광우병을 괴담이라고 하는 괴담도 문제고. 그래도 교사 자존심이 있지.”

주변에 나이 든 보수적 교사들도 광우병 문제만큼은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광우병 괴담’ 공문 내려왔는데 못 돌리겠더라”

“오랜만에 만나 칙칙한 이야기만 했다. 그래도 MB가 이렇게 얼굴 볼 기회도 만들어 줬네.”

시덥잖은 농으로 자리를 파했다. 돌아가는 길에 졸업한 제자들과 딱 마주쳤다. 그 친구들이 느닷없이 나타난 ‘담탱이’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술잔 기울이며 내내 갑갑해 하던 선생 얼굴은 대번에 활짝 핀다.

“야, 너 요즘 어떻게 지내냐. 연락도 없고.”

▲사진=서울 대치동 사설학원 모습(위)과 학교자율화 조치와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교사 모습(아래)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