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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 선배 몇 분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젓가락질 사이로 이런저런 얘기가 쉴새없이 섞여 나왔죠.

한 선배가 말하더군요. 요즘 자괴감을 느낀다고…. 좀 뜨악했습니다. 자괴감을 느낀다는 선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거든요.

귀를 기울였습니다. 웃음과 자괴감의 부조화를 해소시킬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얘기를 듣곤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삼성의 이른바 '떡값'도 받지 못하고, 신정아 씨의 명품 선물도 받지 못하는 자기 신세가 처량하다고 하더군요. 언감생심,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아무리 자기 급이 낮아도 그렇지 에버랜드 입장권 한 장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농담이었습니다. 이른바 '바보 시리즈'를 재생한, 아주 식상한 썰렁 개그였습니다.

60년대에나 통했을 법한 이런 썰렁 개그가 첨단시대라는 지금에도 어김없이 유행합니다. 비리사건이 터지고 로비 리스트가 나오고 '떡값'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나한테는 안 보낸 거야?"

이 썰렁 개그엔 냉담한 시선이 깔려있습니다. 세월이 가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비리 사슬, 로비 커넥션에 대한 염증이 '동승 욕구'라는 전도된 형태로 표출됩니다. 일종의 좌절감과 적대감의 역설적 표현인 셈이겠죠.

#2

점심 식사 자리를 파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비껴 달리는 지하철인지라 곳곳에 빈자리를 남겨뒀더군요.

맞은편 승객을 쳐다보기가 민망해 천장을 올려보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삼성의 이른바 '떡값'과 신정아 씨의 명품 선물은 급이 같은 건가? 몇몇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는 변양균 씨와 명절 때마다 삼성 돈을 받았다는 정관계 인사들은 동급인가?

두 경우 모두 사법부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뭐라 말할 수는 없겠죠. 한쪽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다른 한쪽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돈과 선물을 전달했다고 하니 급이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아직 입에 담을 단계는 아닙니다.

법 논리는 법률 전문가들이 알아서 챙길 테니까 여기선 상식만 갖고 얘기하렵니다. 어쨌든 양쪽 모두 '잘 봐달라'는 뜻으로 돈과 선물을 건넸다면 급은 몰라도 성질은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의아합니다. 신정아 씨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연일 대서특필했고, 어떤 언론은 마치 '권력형 비리'의 단서라도 잡은 양 신정아 씨의 알몸 사진까지 실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웠던 언론이 싸늘히 굳어 버렸습니다.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나에게도 삼성 돈이 전달됐다"며 증거 사진까지 제시했는데도 구겨버립니다. 신문 서너 쪽을 건너 뛰어 정치면 한 귀퉁이에 상자 기사로 박아버립니다. 사진도 싣지 않습니다. 상자 기사 위로는 대선에 골몰하는 정치권의 소식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오늘 신문이 그렇습니다.

도대체 열정이 냉정으로 급변한 이유가 뭘까요? 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합니다. 자기들도 받았으니까 뒤가 구려서, 광고를 의식해서, 판을 키우면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봐 등등 나름의 분석을 내놓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내칠 수 없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더 씁쓸합니다. '보고 싶은 만큼 보인다'는 옛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합니다. 언제부터 진실이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요?

우리 언론에게 진실은 보고 싶을 때만 보는 만화나 영화 같은 것인가 봅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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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명 검찰총장 ⓒ검찰청 홈페이지

정상명 검찰총장이 어제 출입기자들과 만찬 간담회를 가졌다. 오는 23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터라 환송 자리를 겸한 간담회였다. 정 총장은 이 자리에서 주목할 만한 말을 꺼냈다.

"예전에 (언론에 내가) 특급수방수라고 나왔는데 마지막이 희한하다. 이 난국을 봐라. 소방수로 왔다 가는 것이 팔자인 듯하다."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난국"을 해결할 "소방수"임을 자임했으니까 기자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 했다. <세계일보>는 이 발언을 1면 상자 머릿기사로 배치할 정도였다.

뜻풀이가 긴요하다. 정 총장이 '진화'해야 할 "난국"은 어느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가? 한나라당인가? 아니면 대통합민주신당인가? 혼돈의 땅을 어디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 총장의 말 뜻은 180도 달라지지만 속내를 알 길은 없다.

방점을 "난국"에서 "소방수"로 옮겨 찍으면 어떤 풀이가 나올까? 해결하고 가겠다는 얘기가 된다. 자신의 임기 만료 전에 '진화'하겠다는 의지가 녹아있는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 총장 본인 스스로 "팔자"라고 했다. "생각하면 이번 사태는 아주 간단하다. 진실은 하나니까 그걸 향해 검찰은 나아갈 것"이라고도 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 구절의 본뜻을 이해한 듯한 말이다.

정황도 있다. 정 총장이 23일 물러나면 임채진 내정자가 그 다음날 총장에 취임하게 된다.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정치 외풍을 많이 타는 검찰이다. 그 조직의 총수가 취임과 동시에 정치 공방에 휘말릴 운명에 처해 있다. 이 또한 "난국"이다.

'동일체'니 뭐니 해서 한 몸뚱이임을 강조해온 검찰 아닌가. 후배가 고위직에 오르면 '물 먹은' 선배들이 사직서를 써 후배의 부담을 덜어주는 '전통(?)'을 간직해온 검찰 아닌가. 선임자가 십자가를 질 '전례'와 '관행'은 분명 있다.

그런데 공교롭다. 다른 말이 나온다. 검찰 고위 관계자가 그랬다고 한다. "26일까지 어떤 결과물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했단다('오늘의 주요뉴스' 참고). 이러면 십자가를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갈피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 검찰 총수는 "소방수"를 자임하고 있고, 익명의 검찰 고위관계자는 아직 불을 진화할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둘 중 하나다. "소방수" 정 총장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떠나든가, 아니면 사건의 진실을 알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니까 정치권은 김치국 마시지 말라고 선언하고 떠나든가….

정 총장이 어떤 걸 선택하든 임채진 내정자는 부담을 던다. 전자의 경우라면 책임은 온전히 정 총장이 지게 되고, 후자의 경우라면 진실 공개의 파급력이 줄어든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