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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으련다. 4개 시민단체 협상대표들은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지만 그런 말조차 하지 않으련다. 입만 아프다.

‘분노’가 관심과 애정의 변형된 감정이고 화해와 용서를 지향하는 감정이기에 그렇다. 더 이상 야당들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이유도, 여지도 없다. 이제는 끓는 감정을 치우고 차디찬 머리를 앞세워야 한다. 

전례가 없었다. 민주ㆍ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이 지금처럼 허약하고 무능하고 지리멸렬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야권연대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한나라당 세력과 개별 대결하는 구도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근육강화제’를 처방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 거부했다. 진보신당에 이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마저 복용을 거부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당사자들이 ‘자진’의 길을 선택한 마당이니 화타가 부활하고 허준이 환생해도 살려낼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베풀 수 있는 호의는 사망진단서를 발급해주는 일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망 진단을 내림과 동시에 장기 적출을 시도해야 한다. 썩은 장기는 도려내 거름으로 삼고 멀쩡한 장기는 적출해 다른 생명체에 이식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야당들이 ‘나체쇼’를 벌인 덕분에 썩은 장기와 멀쩡한 장기를 가려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기득권 온존구조와 허약한 리더십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연대 필요성보다 자기 밥그릇을 우선시하는 기득권 세력이 말초 단위가 아니라 중추 단위에 견고히 버티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 당의 지도부는 그런 중추조직 밑에서 옴짝달싹도 못함이 유감없이 보여줬다.

국민참여당은 기득권 편입열망과 허약한 경쟁력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지방선거를 통해 당의 존재감을 알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광역후보 한 자리는 기필코 챙겨야 했던 다급함을 여실히 드러냈고, 거래품목이 없어 단 한 사람에 기대어 ‘투기 매매’를 해야 했던 옹색함을 여지없이 보여줬다(진보신당은 전에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내과 처방도, 개별 처방도 더 이상 소용없다. 기존 야당의 존재와 경계를 인정하고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는 방법은 더 이상 ‘근원적 처방’이 아니다.

민주당이 지방선거 후 지도부를 교체해봤자 소용없기에 더욱 그렇다. 당 대표직에 누가 앉든 견고한 기득권 온존구조를 깰 수 없고, 기득권 온존구조를 깨지 않는 한 당 대표직에 누가 앉든 체질개선은 달성될 수 없기에 그렇다.

국민참여당이 지방선거 후에도 ‘홀로 주행’을 해봤자 부질없기에 더욱 그렇다.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의 존재이유를 설파하고 당의 역할을 넓힐 매개체를 확보하지 못한 채 간판을 유지해봤자 변두리 다방의 색 바랜 간판 신세를 면할 수 없기에 그렇다.

내과 처방이 아니라 외과 처방을 해야 한다. 개별 처방이 아니라 통합 처방을 해야 한다. 기득권 온존구조에 저항하는 민주 인사들을 추려내고, ‘소이’보다 ‘대동’을 우선시 하는 개혁 인사들을 추려내고, ‘구호’보다 ‘실질’을 숭상하는 진보 인사들을 추려내 다시 짜야 한다. 기존 질서 유지를 전제로 한 연대가 아니라 질서의 재정립을 목표로 한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새싹은 산불이 휩쓸고 간 둔덕에서 피어난다.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는 씨 내릴 한 뼘 땅을 찾지 못해 고사하지만 산불이 휩쓸고 간 둔덕에서는 재가 되어 버린 수풀과 나무를 자양분 삼아 반드시 피어난다. 

Posted by '토씨'


김정진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감사에게 감사드린다. 김정진 감사의 ‘요약 정리’ 덕에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맞다. 김정진 감사가 정리한 것처럼 <노회찬은 ‘양념 정치인’이다>라는 글의 요지는 “진보신당의 ‘야권연대 5+4협상’ 무산 선언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김정진 감사가 요약한 것처럼 “문제는 힘을 기르는 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김정진 감사는 “사회경제적 정책을 중심으로 서민들을 대변하는 정당”인 진보신당이 “힘을 기르는 방법”은 “이념적 노선과 정책에 의한 정치적 주장”을 펴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원칙론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제기하고 싶은 점은 “힘을 기르는 방법” 또는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념적 노선과 정책에 의한 정치적 주장”을 펼 것인가 하는 점이다. ‘5+4협상’은 바로 이 논점을 관통하는 사안이다.

김정진 감사는 “‘5+4협상’은 한마디로 묻지마 반MB연대”로, “다수파 독식을 합리화 해주는 후보결정방식”을 앞세워 “소수 정치세력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는데 딱 한 가지만 제기하겠다. 김정진 감사가 이미 “묻지마 연대”로 규정해 버렸으니까 ‘반MB연대’의 의미와 필요를 제기하는 건 생산적이지 않다. 그래봤자 논의가 공전될 테니까. 대신  비근한 사례 하나를 제시하겠다. 

지난해 10월 경기 안산 상록을 재보선 때 추진했던 후보단일화 얘기다. 당시 진보신당은 민노당, 창조한국당과 함께 임종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을 후보로 추대했고, 김영환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했다.

다를 바가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민주당의 행태와 본질은 다를 바가 없다. 진보신당의 이념에 입각해 보면 신자유주의에 속박되고 기회주의 행태를 보이는 정당에 불과하다. 더구나 안산 상록을에선 김영환 민주당 후보의 과거 전력이 문제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진보신당은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반 년 전에 ‘반MB연대’에 동참해놓고 이제 와서 그건 ‘묻지마 연대’에 불과하다고 패대기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경험 때문인가? 후보 단일화 방식에 합의해놓고 임종인 후보의 말 한 마디를 걸고 넘어져 파기한 민주당의 행태에 진저리를 쳐서 그러는 건가? 그 때는 민주당의 실체와 속성에 대해 잘 몰랐는데 한 번 ‘당하고’ 나니까 경계심이 들어서 그러는 건가?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지만 행여라도 그런 것이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애당초 응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것이 ‘묻지마 연대’에 불과한 것이라고 확신했다면, 민주당의 행태를 믿지 못했다면 애당초 ‘5+4협상’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것이 김정진 감사가 강조한 진보신당의 “이념적 노선과 정책”의 순결성을 보장하는 길이었을 테니까.

혹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5+4협상’에 참여했지만 진보신당의 “이념적 노선과 정책”을 관철할 여지가 없었기에, 김정진 감사가 따로 떼어 강조한 것처럼 비정규직 문제나 한미FTA문제에 대한 진보신당의 정책을 투영할 여지가 없었기에 탈퇴를 선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가치이자 기준이었다면 안산 상록을에서는 왜 이 문제를 앞세워 후보단일화 시도를 먼저 깨지 않았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일개 국회의원을 뽑는 국지적인 선거이기에 그랬다는 얘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상대적 관점에서 보면 지방선거 또한 비정규직ㆍ한미 FTA와 같은 사안을 논하기에는 국지적인 선거이니까.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건 경쟁력이었다. 김정진 감사가 “소수 정치세력에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이란 표현을 통해 이미 간접적으로 밝힌 것처럼 후보단일화 경쟁에 뛰어들어봤자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5+4협상’에서 탈퇴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안산 상록을 재보선 때도 그랬다고, 그 때도 김영환 민주당 후보가 임종인 후보를 ‘넉넉하게’ 앞서고 있는데도 진보신당은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다고 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 때의 기개와 도전정신을 거둬들였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다. 김정진 감사가 “힘을 기르는 방법”을 언급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를 사례로 들었으니까 그대로 따르는 게 유용할 것 같다. 

김정진 감사 말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맞(서)” 성공했다. 영남 출신이 호남에 가서 지역주의 타파를 호소한 게 결정적 계기가 돼 전국구 스타로 부상했다. 

<노회찬은 ‘양념정치인’이다>라는 글에서 ‘급’과 ‘큰 물’을 강조한 이유 또한 바로 이것이다. 변방 정치인, 군소 후보에 지나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약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된 것은 ‘큰 물’에서 익사할 가능성을 감수하는 도전정신 때문이었다. ‘큰 물’이 오염됐다고 피하지 않고 오히려 ‘큰 물’에 들어가 오염원을 제거하겠다고 “정치적 주장”을 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가 질 게 뻔하다고 할 때에, ‘호랑이굴’에서,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으로 정치적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노무현 사례'가 웅변한다. 이념 못잖게 중요한 게 태도라는 점, 때론 태도가 이념의 설득력과 전파력을 높여준다는 점을.  

*김정진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감사 반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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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노회찬은 인기가 많다. 방송 시사토론의 단골 패널이자 각종 강연의 인기 연사다. 새로운 소통수단으로 떠오른 트위터 분야에서 최다의 팔로우어를 확보한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도통 오르지 않는다. ‘삼겹살 불판’ 발언으로 대중 앞에 혜성 같이 나타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진보신당 대표를 맡은 지 2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지지율은 납작 엎드려 있다. 각종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고, 서울시장 가상대결에선 한명숙 전 총리에 크게 밀리고 있다.

왜일까? 야권의 그 어느 정치인보다 노출이 잦고 인기가 많은데도 왜 노회찬 대표의 '키'는 자라지 않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 그는 ‘삽겹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재료인 ‘삽겹살’이 아니라 양념인 ‘기름장’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대중이 그를 알게 된 건 민노당 평의원이던 시절이다. 대중이 그를 확인한 건 진보신당 대표가 되고서다. 대중 앞에서의 그는 평의원이었고 군소정당의 대표였고, 대중은 그를 ‘감독’이 아니라 ‘해설자’로 간주했다.

대중이 그에게 환호하는 건 적절한 비유를 섞어 ‘바른 말’을 할 때다. 그의 ‘어록’을 통해 정치사회적 배설을 할 때다. 대중에게 전달되는 그의 말은 정치적 무게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고, 대중은 그에게 정치적 ‘행위’까지 갈구하지는 않았다.

노회찬 대표의 ‘미발육’을 입증하는 반증사례가 있다. 손학규와 정동영이다.

각종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두 사람은 꼭 이름 석자를 내민다. 한 사람은 ‘철새’ 전력이 문제 되고, 한 사람은 ‘지역주의 회귀’ 행태가 문제 되는데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모노톤의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노회찬 대표가 명함을 못 내미는 반면에 잡티가 묻은 이들은 한 자리를 차지한다. 최근 추세만 놓고 보면 노회찬 대표보다 노출도가 현저히 떨어지는데도 이들은 한 자리를 차지한다.

결국 힘이 ‘급’을 규정한다. 좋든 싫든 이들은 정치를 움직일 힘을 갖고 있다고, 이들의 정치적 ‘행위’ 여하에 따라 야권판이 달라지고 정치지형이 달라진다고 대중이 보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노회찬 대표는 힘이 없다고, 그가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경기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해설자’의 언변에 불과하다고 대중이 간주하는 것이다.

노회찬 대표가 질적 전환점을 돌파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자신의 위상을 ‘해설자’ 급에서 ‘감독’ 급으로 올리지 않는 한 그는 제자리를 맴맴 돌 수밖에 없다. 질 좋은 ‘기름장’ 취급은 받을지언정 ‘삽겹살’ 대접은 받지 못하는, 외화내빈의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이랬어야 한다. 그가 ‘급’을 올리려면 ‘큰 물’로 갔어야 한다. 엎어지든 깨지든 그곳에서 힘을 키웠어야 한다. ‘기름장’ 신세를 우선 털어내고 ‘삼겹살’의 지위를 확보한 다음에 ‘국산’ 마크를 노렸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탈했다. ‘큰 물’에서 이탈해 ‘웅덩이’에서 물장구치는 걸 선택했다. ‘당의 가치’ 명분에 밀려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게 거꾸로 ‘당의 가치’를 높이는 길일 수도 있는데 포기했다. 그나마 확보한 ‘자신의 가치’마저 깎일지 모른다는 우려감에 ‘도전’이 아니라 ‘방어’를 택한 것이다.

▲사진=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진보신당이 저러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안다. 후보 단일화 협상 대표를 바꾼 데 이어 막판 협상에 불참해버린 이유는 경쟁력 때문이다.

진보신당이 내세울 후보는 노회찬ㆍ심상정 두 사람 뿐이다. 그나마 대중 인지도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 이 두 사람뿐이다. 헌데 문제가 있다. 노ㆍ심 두 사람의 경쟁력이란 것도 상대적이다. 진보신당 안에서는 ‘센터’ 급이지만 밖에 나가면 ‘가드’ 급이다.

그래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 광역단체장 후보를 경쟁으로 뽑는 대신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6곳을 민주당 외의 야 4당에 넘기자는 ‘5+4협의체’의 안을 수용할 수 없다. 그러면 ‘어시스트’에 만족해야 한다. 당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럼 어떨까? 진보신당이 끝내 후보 단일화 협상을 깨고 독자출마를 하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다. 또 다시 경쟁력이 발목을 잡는다.

‘한겨레’가 오늘 보도한 가상대결 조사결과를 보면 그렇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민주당 한명숙-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대결을 벌일 경우 노회찬 후보의 지지율은 8.7%였다. 경기지사 선거에서 한나라당 김문수-민주당 김진표-민노당 안동섭-진보신당 심상정-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가 맞붙을 경우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은 4.5%였다. 노ㆍ심 모두 한자리수의 지지율에 민주당 후보, 심지어 국민참여당 후보에게도 현저히 뒤지는 지지율이었다.

물론 달라질 수 있다. ‘한겨레’의 조사는 어디까지나 가상대결이니까, 선거전이 시작돼 분위기를 타면 지지추세가 급변할 수 있으니까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니다. 그래봤자 진보신당에 득이 될 요인은 없다.

‘5+4협의체’가 이미 방향을 잡았다. 진보신당이 끝내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4+4’의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기로 작심했다. 진보신당을 뺀 단일 후보를 내기로 한 것이다.

이러면 진보신당이 몰린다. 야4당간의 후보 단일화 경쟁에 국민의 이목을 빼앗기고, ‘4당 단일 후보’의 위세에 선거전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지지율이 오를 요인은 보이지 않고 까먹을 요인만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당의 존재감을 전파할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진보신당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은 배증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진보신당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아니라 실리(實利)와 실리(失利)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연대의 실리(實利)에 복무하려면 당의 실리(實利)를 포기해야 하고, 당의 실리(失利)가 염려돼 독자 출마를 강행하면 더 큰 실리(失利)를 감수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빠져있는 것이다.

묘수는 없다. 뾰족수도 없다. 일단 독자 선거전을 치르다가 적당한 때를 골라 ‘야4당 단일후보’와 최종 단일화 시도에 나서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만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 후보와 ‘야4당 단일후보’가 박빙의 경쟁을 벌여 진보신당 후보의 표가 판세를 좌우할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진보신당의 위신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신당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후보 단일화 ‘대의’에 굴복한 것이 되니까, 결국은 손바닥 뒤집기를 연출한 것이 되니까 그렇다.

이리 찾고 저리 찾아도 출구가 없다. 그 놈의 경쟁력 때문에, 조직력이 아니라 인물에 의존하는 당의 현실 때문에, 당이 의존하는 인물 경쟁력마저 2% 부족하기 때문에.

 ▲사진 출처=진보신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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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10.28재보선은 한쪽만 겨냥하지 않는다. MB만 심판하는 게 아니라 야권도 심판대 위에 올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MB보다 더 심한 내상을 야권에 입힐 수도 있다.

경남 양산 송인배 전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이 출마하기로 했다. 노무현의 이름으로 출마하기로 했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그렇게 규정했다. “(송인배 전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신해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친노 세력도, 민주당도 합심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송인배 전 비서관이 민주당 입당 원서를 제출한 어제 이해찬 한명숙 문재인 김두관 등 친노 세력의 ‘머리급’ 들이 총출동했다.

송인배 전 비서관이 양산에서 승리하면 날개를 달 것이다. 특히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누르고 당선하면 거침없이 질주할 것이다. 송인배의 승리는 곧 노무현의 승리가 될 테니까 친노 세력의 정치세력화는 날개를 달 것이고 영남 공략은 더욱 예각화 될 것이다.

정반대다. 송인배 전 비서관이 양산에서 패배하면, 박희태 전 대표에게 속절없이 무너지면 동력이 사그러든다. 노무현의 가치를 내세워 영남을 공략하고, 영남을 기반으로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려던 움직임은 위축된다. 더불어 민주당과의 통합 줄다리기에서 주도권을 배앗기고 가치를 전제로 한 통합 주장 역시 힘을 잃을 것이다.

경기 안산상록을에서 이른바 ‘진보 후보’가 나왔다. 민노당이 지지하고 진보신당이 지지하는 후보다. 근데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전 열린우리당 의원 임종인이다. 진보진영에서 잔뼈가 굵은 독자 후보를 내세운 게 아니라 민주당의 (부분) 전신인 열린우리당에서 후보를 임차한 셈이다(임종인 전 의원이 17대 국회 말미에 진보적 색채를 강화하면서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고는 하나 그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어느 당도 선택하지 않았다).

입증한다. 이 같은 현상은 반MB민주연대 갖고는 안 된다는 진보진영의 주장, 거기에 알파가 플러스 돼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주장의 실행력을 입증한다. 별로 없다는 것을, 주장은 거창하나 실행력은 미약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래도 꼬이고 저래도 꼬인다. ‘진보 후보’ 임종인이 ‘민주 후보’를 자처할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않으면,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에 어부지리를 선사하는 결과를 빚으면 진보진영의 ‘알파’에 대한 효용 논쟁을 부른다. 거꾸로 ‘진보 후보’ 임종인이 ‘민주 후보’에 자리를 내주면 진보 진영의 역부족 현실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경기 수원장안에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본인은 아무 말을 안 하지만 민주당이 먼저 바람을 잡는다. 그를 후보로 내세우면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경기지사를 지낸 경력 때문에 지역 인지도가 높으니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주장한다.

화근이 될 수 있다. 경기지사까지 지낸 손학규 전 대표가 낙선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면 민주당은 치명타를 입는다. 경쟁력을 갖춘 거물 후보를 내세우고, 수도권의 반MB정서까지 타고 선거를 치렀는데도 패배하면 민주당의 위상은 곤두박질친다. 민주당의 위신과 위상이 곤두박질 칠 뿐만 아니라 민주당 중심의 통합 논의 또한 곤두박질친다. ‘허세’ 민주당에게 자신의 가치까지 내주며 통합 또는 연대를 꾀하는, 어리석은 정치세력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친다. 격전지 세 곳 모두에서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기지 않는 한 야권의 어느 한 쪽은 다친다. 아울러 역학구도가 바뀐다. 통합과 연대를 둘러싼 줄다리기의 형세가 바뀌고 주체와 객체가 확실히 갈린다.

어떨까? 이런 결과가 대연합 추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판정은 유보하자. 어차피 재보선 결과가 나와야 경우의 수를 조합할 수 있다. 10.28재보선이 야권에 숨통을 틔워주는 호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10.28재보선에 역설적 현상을 부를 계기가 내포돼 있다는 점만 추리면서 쉼표를 찍자.

  ▲사진=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10일 친노 인사들과 만나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염치도 알고 분수도 아는 모양이다.

6·4 재보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단다. 선거 승리가 기정사실이 되자 방송사 카메라 기자들이 손학규 대표에게 “박수를 쳐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냥 웃기만 했단다. "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 더 잘하라는, 제대로 야당 역할을 하라는…채찍이자 격려로 받아들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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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게 도리다. 민주당의 재보선 승리는 성취가 아니다. 자기들이 땀 흘려 일군 열매가 아니다.

수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15% 안팎, 그런데도 재보선에서 승리했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0%대 초반, 민주당의 갑절에 이르는데도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승리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볼 이유는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거리 현상도 그렇게 웅변하고 있다. 민주당이 열고 있는 장외집회는 썰렁하다. 몇몇 의원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해도 소 닭 보듯 하는 게 촛불을 든 시민들의 반응이다. 민주당이 유권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주당의 승리 비결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가장 속 편하고 일반적인 분석이 ‘이삭줍기’ ‘어부지리’ ‘반사이익’이다. 하지만 이 건 반쪽짜리 분석이다. 이 점을 놓고 보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에 즈음해 상당수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민주당은 ‘제자리 맴맴’, 민노당·진보신당은 ‘소폭 상승’이었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국민 정서가 녹아있다. 촛불집회를 정치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촛불집회의 경험을 정당 지지로 연결 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제자리 맴맴 도는 민주당이야 그렇다 쳐도 촛불집회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에 그치고 있는 점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 이 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왜 하필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얻은 걸까? 비록 소폭이긴 하지만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의 당 지지율 상승폭이 민주당보다 컸는데 왜 ‘반사이익’은 민주당으로 돌아간 걸까?

해답은 두 개다.

먼저 투표 연령층. 재보선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장년층의 투표성향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들에게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낯선 존재다. 낯설 뿐 아니라 믿음이 가는 존재가 아니다. 이들 눈에는 두 당의 족적보다는 왜소한 당세가 먼저 들어온다. ‘반이명박’ 정서를 대변하기엔 당세가 약하다고 평가한다.

장년층의 이런 성향이 민주당의 승리를 가져다 줬다고 봐야 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달리 믿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울며겨자먹기로 밀어줬다고 봐야 한다. 비유가 뭣하지만 ‘홧김에 서방질’ 했다고 봐야 한다.

다음은 후보군. 민노당이나 진보신당은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6곳의 선거구 가운데 경기 포천에만 민노당이 후보를 냈을 뿐이다. 광역의원의 경우에도 부산·경남에 집중해 후보를 냈다.

유권자가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까지 배제하고 싶어도 배제할 여지가 거의 없었던, 다시 말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던 선거라고 봐야 한다.

이 점에 기초하면 민주당의 재보선 승리는 ‘현금’이 아니라 ‘어음’에 불과하다. 만기일인 2년 후 지방선거에 가서 수금을 하지 못하는 ‘부도어음’이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전혀 아니라는 얘기다.

▲사진=6·4 재보선 선거운동 장면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에게 거리는 낯선 장소가 아니다. 대학 시절부터 생머리에 7cm 하이힐과 치마 차림으로 시위 현장을 뛰어다녔던 심 대표다. 그가 서울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한 것이 1978년이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지난 30년의 시간 대부분을 거리에서 보냈다.

대학 입학 직후 서울대의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이른바 ‘대문’(대학문화연구회)을 활짝 열었고,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구로공단 대동전자에 취업했다. 80년대 노동운동의 분기점이 됐던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심 대표는 그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와 금속산업연맹 등을 거쳤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제도 정치권으로 진입했지만 그렇다고 거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의정생활 4년 동안에도 각종 항의집회에 빠진 적이 없다.

'심상정 대표가 미국산 쇠고기 논란으로 뜨거워진 거리에 다시 섰다.'

-왜 자꾸 거리인가?

“정치라는 것이 우리 사회 계급·계층간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 아닌가. ‘거리의 정치’ 비중이 커진다는 것은 제도정치가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도권’과 ‘거리’, 어느 것이 옳고 틀리고가 아니라 정치가 ‘거리의 정치’를 제도권 안으로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민노당을 향해 (지난 17대 국회에서) 원내에 들어와서도 왜 자꾸 가두시위에 나서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민노당이 원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나 철거민의 정당한 요구와 이해를 대변할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거리에 나선 것이다.

제도권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면 ‘거리의 정치’는 여전히 존재하고 더욱 격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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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오는 시민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도 그렇지만 0교시 부활과 한반도 대운하, 그리고 대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수도권 규제 완화나 법인세 감면 등 이명박 정권의 폭주가 도를 넘고 있다.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 불안감이 앞으로 국민들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다양한 계층의 불만과 갈등을 국회가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건가?

“범 한나라당 의석이 200석이 넘는다. 이것이 이명박 정권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파트너로 작용하기보다 소수의 독과점으로 다수 국민들의 우려와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통해 집권한 정부인데, 당연히 보수적 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권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여준 국정운영은 시장권력을 배경으로 하는 신권위주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자인데, 위임받은 범위가 가이드라인을 벗어날 때, 다수 국민의 건강과 생명, 생존을 위협할 때, 뽑아놨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주권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위임한 범위를 넘어설 조짐이 보인다. 광우병 쇠고기가 대표적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통째로 넘기는 것은 브레이크를 해체하는 것이다.”

‘거리의 정치’를 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민주적 과정을 통해, 그것도 500만 표 이상의 압도적 차이로 집권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구호가 거리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참담한 실패를 반증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누구도 ‘거리의 정치’ 이후의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보신당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추락한다고 해서, 통합민주당이나 진보신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다고 본다. 진보정치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만 진보세력이 국민들의 확대되는 요구를 떠안을만한 비전과 프로그램, 실천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대안세력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국면에서 한나라당은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고, 민주당은 무능 정당이라는 것을 정운천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 부결로 또 보여줬다.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은 아직까지 국민들의 과감한 변화와 혁신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의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국민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했는데, 지난 총선을 보면 국민들은 돈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을 투표로 드러냈다. 진보신당은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 맞춰줄 수 있나.

“많은 국민들이 진보 정치를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개발독재 시절에 나타났던 외형적 성장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다수 국민의 요구를 배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정치를 새롭게 판단하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본다.”

-진보신당이 가지고 있는 대안은 뭔가?

“마라톤에 이명박 정부는 선두와 중간, 후미그룹 가운데 선두그룹을 더 앞으로 당기겠다는 것이다. 중간과 후미그룹에 써야 할 예산 등을 선두그룹에 집중하는 것이다. 조세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기업 법인세를 대폭 감면해주고 오히려 간접세를 늘리겠다는 것 아닌가.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선두와 중간 및 후미그룹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다. 그런 대기업 위주의 경제가 아니라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내수 기반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경제가 필요하다. 즉 성장률 중심의 정책이 아니라 경제 주체간 균형있는 발전을 이끌 수 있도록 조정이 필요하다.”

-앞서 진보세력이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는데 앞으로 어디서 보여준 건가? ‘거리의 정치’인가?

“18대 국회가 다수 국민의 이해를 배제하는 정치를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제도권에서 배제되는 민심과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제도권 밖의 정치라는 측면에서 ‘거리의 정치’는 필연적이다. 그 거리가 도로가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상 광장일 수도 있고, 기업일 수도 있다. 그동안 했던 대중단체 중심의 동원식 집회나 이에 대한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똑같은 거리의 정치라 하더라도 정치가 만드는 거리, 정치가 만드는 광장이어야 한다고 본다. 진보정치가 생활 속의 진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만나는 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고민이 필요하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