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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게 더 욕된 걸까? 새해 예산안을 직권상정 하는 것과 사상 최초로 준예산 사태를 부르는 것 가운데 어떤 게 더 욕된 걸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 후자다. 전자는 ‘원 오브 뎀’이지만 후자는 ‘최초’다. 직권상정은 김형오 의장 외에도 수많은 국회의장이 선례를 남겼지만 후자는 누구도 테이프를 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전자로 가면 귀 한 번 아프고 말지만 후자로 가면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야가 연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는 공동으로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김 의장의 ‘입장’에 대해 국회의장실 관계자가 “정 안 될 경우 직권상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 의장 만이 아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초의 준예산 사태를 부른 공동정범이란 낙인이 찍히는 점은 차치하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예산안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연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내년 초에라도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준예산 집행 기간을 하루라도 줄여야 한다. 헌데 문제가 있다. 내년으로 넘기면 처리 여지가 더 좁아진다. 어느 한쪽이 대폭 양보하면 ‘그럼 왜 버텼냐’는 반문이 돌아올 것이고 양쪽이 한 발씩 양보하면 ‘그럼 왜 싸웠느냐’는 핀잔이 날아올 것이다. 어떤 경우든 덤터기 쓰는 불상사를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분석이 나온다. 직권상정과 강행처리 수순이 개시됐다고, 지금 펼치는 여야 협상은 폭풍을 예고하는 살랑바람이라고 풀이한다. 초재기에 몰린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을 요청하고, 역사적 오명을 쓰지 않으려는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을 감행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렇게 제야의 종소리와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겹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시나리오가 하나 있긴 하다. 여야가 막판에 한 발씩 양보해 대타협을 이루는 극적 상황이다.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 한나라당이 양보를 하려면 청와대의 동의를 구해야 하지만 그곳에서는 4대강 사업 고수를 재삼재사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 양보할 여지도 없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보의 개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보의 높이와 준설량을 대폭 조정하자는 카드를 꺼내들진 않았을 것이다. 숫자놀음을 하다가 ‘0’을 몇 개 뺀 후 생색내는 게 퇴로 확보 차원에선 더 용이했을 테니까. 한나라당이 양보하는 건 4대강 사업의 전면 수정을 뜻하는 것이고 민주당이 양보하는 건 4대강 반대투쟁의 전면 폐기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발 걸쳐보자. 양보와 타협이 실현될지 모른다고 가정하자. 그럼 이렇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사건’이라고….

이명박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던 국정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거나 민주당이 스스로 내걸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하니까 ‘사건’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사진 출처=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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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냉온탕을 오가는 게 국회 스텝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눈 씻고 찾아봤지만 없다. 여야 원내대표가 장장 7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기에 혹시 논의가 됐을까 싶어 찾아봤지만 일언반구, 일점일획도 없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이해할 수 없다. '원안 고수'를 주장해온 민주당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반드시 개정'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태도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라며 일분일초라도 빨리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꿩을 구워먹었는지 입을 닫았다.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미디어법에 올인하고 있다.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개정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김형오 국회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체념한 것이라면 미디어법도 일찌감치 접었어야 한다. 그게 일관된 태도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밑밥’이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조문정국을 끝내고, 원외에 머물던 민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정규직법을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정치의안’인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민생의안’인 비정규직법을 멍석으로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오해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왜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처럼 들을지 모르겠다.


정반대다.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법 원안이 뒷전으로 밀리다가 자연스럽게 유지된다면 굳이 성낼 까닭이 없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최선책은 ‘시행 유예’가 아니라 ‘시행 고수’라는 생각을 바꿀 근거가 생기지 않는 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양면성을 새삼 거론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논의를 뒷전으로 밀어놨다가 어느 순간 기습 상정해 처리할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고는 하나 자고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게 우리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행여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파장은 엄청나게 커진다. 쌍용자동차 문제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린 노동계에 휘발유를 붓고 노정 대립을 극한으로 치닫는다. ‘시행 고수’ 분위기를 감지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업주를 다시 들썩거리게 만들면서 노동시장을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는다.

분명히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차제에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개정을 포기한 것인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개정 논의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요구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내놓는 그때그때의 의제에 즉자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입에 올리지 않는 게 비정규직법 개정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오히려 고리를 걸어야 한다. 미디어법 논의가 비정규직법 개정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냐고 한나라당에 묻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게 그나마 의정의 소모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악책이다.

▲사진=6월 30일 비정규직법 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한나라당

Posted by '토씨'

솔직하게 말하자. 없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해 등원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지할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로 작정하면,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작심하면 막을 재간이 없다.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옥쇄전략을 펴는 것이다. 지난해 말처럼 의원 수십 명이 등산용 자일로 몸을 친친 감은 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과 같은 방법 말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어수룩하게 두 번 당할 리 없고, 김형오 의장이 자일의 매듭을 묶을 시간적 여유를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미디어법 저지를 명분으로 등원을 결정했다. 등원을 결정함과 동시에 본회의장 앞 농성을 풀었다. 패착일까? 한나라당에게 처리 명분과 본회의장 진입로를 동시 헌상한 ‘본헤드플레이’일까?

이렇게 평하기는 어렵다. 정반대의 상황, 즉 등원을 거부하는 상태를 지속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처리 명분을 뺏고 본회의장 진입로를 틀어막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다른 명분, 즉 ‘파업 벌이는 야당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앞세워 일방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앞으로 넘어지나 뒤로 넘어지나 코가 깨지기는 마찬가지라면 코피라도 제대로 흘려보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의사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상황 변화를 유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처참하게 당해주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합당하다. 의사일정 지연전술을 통해 한나라당의 ‘독선’을 부각시키고 처참한 패배를 통해 한나라당의 ‘독판’을 각인시키자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온당하다.

이렇게 보면 분명해진다. 민주당의 전략은 사전적 차원의 옥쇄가 아니라 사후적 차원의 옥쇄다. 국회의사당 내에서의 맞바람이 절대열세이기에 국회의사당 밖에서의 역풍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석이 아니라 여론으로 막판 뒤집기를 이루려는 것이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이후의 역풍과 같은 대반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떨까? 민주당의 이런 전략은 먹혀들 수 있을까?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저지에 나선다는 전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전제를 설정하면 관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다. 국민이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이명박 정부의 숱한 독주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독주를 집약해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이다. 국민이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 지배를 여론시장 내의 미세 조정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여론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새판짜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방송의 위축에 대한 국민의 우려심이다. 국민이 방송의 위축을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위축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결정적 위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르지만 같은 얘기다. 몸통은 하나인 얘기다. ‘민주’라는 화두에 얽힌 문제다. ‘민주’ 구호에 미디어법 사례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문제다. 

▲사진=민주당이 12일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단,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갖고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데드라인이 설정됐다. 13일이다. “야당과 미디어법 내용 등에 관한 논의는 13일로 끝내고 이후에는 본회의 처리수순을 밟겠다”고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이 못박았다.

어떨까? 실제로 밀어붙일까?

전망이 대체로 같다. 또 하나의 쟁점법안인 비정규직법은 몰라도 미디어법은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이 전망한다.

이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든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국회에서 ‘6월 표결처리’를 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만큼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드는 건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다. 비정규직법 강행처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지만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소장 개혁파조차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물 건너간다고 말하는 점을 중시한다. 전열이 정비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분석을 그대로 받으니까 궁금해진다. 한나라당이 유독 미디어법에 대해 자신하는 이유가 뭘까?


힌트는 한나라당 원내 핵심당직자가 했다는 말에 숨어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으로 단독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미디어법의 경우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고 사회적 파장이 크지 않다는 얘기, 다시 말해 강행처리해도 후폭풍이 거세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해할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여론은 미디어법 처리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소간의 수치 차이는 있지만 대세는 ‘강행처리 반대’, 나아가 ‘한나라당 미디어법 반대’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도대체 이렇게 낙관하는 근거가 뭘까?

두 마디 말이 있다. 나경원 의원과 진수희 의원의 말이다.

나경원 의원이 말했다. 6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디어법에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진수희 의원이 말했다. 지난 6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여의도연구소의 미디어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하면서 나경원 의원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디어법이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목적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40.4%,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45.9%였으며, 미디어법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43.6%, 명칭만 들어봤다는 응답이 49%였다고 보고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실상 미디어 법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지 이 조사에선 분간할 수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뭘 모른 채’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야당의 선전에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진리는 끝내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곱씹을 대목이 있다. 두 의원의 발언이 ‘국민 무시’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씹고 또 씹어야 할 다른 포인트가 있다.

두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이 믿고 있다. 미디어법을 “언론장악이라는 프레임(나경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진수희)”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믿고 있다.

또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은 미디어법 처리를 ‘민주’의 시금석으로 이해한다.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되면, 그래서 재벌과 조중동에 방송 소유와 경영의 길을 터주면 여론이 독점되고 다양한 의사표현의 길은 막힌다고, 결국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린다고 우려한다.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다. 한나라당이 공언한 대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면 어느 하나는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허구의 프레임’이 걷히면서 ‘민주주의 요구’가 한풀 꺾이든지, 아니면 근거없는 낙관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민주주의 요구’에 기름을 붓던지…. 아, 하나 더 있다. 비록 부차적이지만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린다. 강행처리 저지의 결기와 실천력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림길에 놓인다. 

예단은 하지 말자. 두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경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내다보지는 말자.

현실은 여러 요인의 분자운동에 의해 움직인다. 미디어법 또한 그런 환경에 노출돼 있다. 비정규직법을 매개로 미디어법을 국민 시선에서 떼어놓은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전략’을 무시할 수 없고, 미디어법 처리를 ‘결사저지’하는 과정에서 보일 민주당의 ‘부서지는 모습’이 국민을 어떻게 움직일지 또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는 아직 전반전 종료 휘슬도 울리지 않은 상태다.

▲사진 = 국회 문방위 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는 민주당 의원들 ⓒ민주당

Posted by '토씨'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랬단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단다.

실제로 그랬던 모양이다. 이상득 의원이 홍준표 원내대표의 ‘통제권’ 밖에서 종횡무진했다고 한다.

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이 미디어 관련법을 직권상정하기에 앞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다수 참석자가 경제법안만 처리하고 미디어관련법 등은 미루자는 의견을 내놓자 이상득 의원이 제동을 걸었단다. “그렇게 하면 우리 핵심지지층을 다 잃는다”며 “이번에 강하게 가야 한다”고 했단다.

기습상정 직전에 고흥길 문방위원장을 만나 법안 처리를 독려했고, 최근에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나 직권상정 문제를 논의했다고도 한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대통령 형님’의 위세는 대단했고 ‘만사형결(萬事兄結)’의 위력 또한 엄청났다. 한나라당을 진압했고 문방위 회의실 문을 열어젖혔다. 이상득 의원의 ‘개인플레이’가 ‘만사형통(萬事兄通)’의 신기를 다시 낳은 것이다.


여기서 잠깐 숨을 고르자. 아직 마침표가 찍히진 않았다. ‘통’했는지는 모르지만 ‘결’이 완료 된 건 아니다. 본회의장에서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려야 ‘결’이 이뤄진다.

어떨까? 김형오 의장은 ‘만사형결’의 신화를 강화하는 조연이 될까? 아니면 ‘먹통’의 한 선례를 남길까?

일단은 전자 쪽이다. 국회의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는 그렇다.

김형오 의장의 측근이 말했단다. “김 의장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단다. 의장실 관계자는 또 이렇게 말했단다. “6개 법안으로 구성된 미디어법 전체를 상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단다.

맥락이 같다. 측근과 관계자의 말은 고흥길 문방위원장의 직권상정 20분 전에 발표된 김형오 의장의 성명과 맥을 같이 한다. 김형오 의장이 이 성명에서 밝혔다. “대화와 타협 없이 본회의를 맞을 경우 의장으로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을 단호히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직권상정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발언과 성명이다. 여차하면 여권의 입법 속도전에 가속엔진을 달아줄 수 있음을 시사한 언급이다.

그럼 23일 표명한 입장은 뭐냐고, “상임위에 상정됐다고 곧바로 본회의에 가져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건 뭐냐고 되물을 수 있지만 반향과 의미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동아일보’가 “확인됐다”고 단정해 보도한 사실, 즉 이상득 의원과 최근에 만나 직권상정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선다. 두 사람이 논의했다는 ‘최근’이 직권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23일 이후라면, 그리고 ‘최근 논의’가 어제의 직권상정 가능성을 시사한 성명을 낳는 데 일조했다면 상황은 암울하다.

미디어 관련법을 비롯한 쟁점법안의 운명을 가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국회가 권력견제기관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통법부의 오명을 다시 뒤집어쓸 쑤 있기에 하는 암울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마지막까지 예단만은 피하자. 김형오 의장이 악역을 떠맡을 거라고 단정하지는 말자.

지켜보는 입장에선 국회의 추락이 참담하고 김형오 의장 입장에선 1월의 ‘지조’가 민망스럽지 않은가.

▲사진=고흥길 국회 문방위원장이 미디어 관련법을 기습상정하려 하자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제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이견이 없다. 모두가 입을 모은다. 여야 합의는 ‘미봉’에 불과하다고, 2월 임시국회에서의 재격돌은 기정사실이라고 전망한다.

어떻게 될까? 재격돌이 불가피하다면 누가 열쇠를 쥐고 있을까? 한나라당? 민주당? 둘 다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형오 국회의장이 재격돌 향배를 결정할 열쇠를 쥐고 있다.

먼저 2월 임시국회 상황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합의’든 ‘협의’든 원만한 처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야가 ‘합의처리 노력’ 또는 ‘협의처리’하기로 한 쟁점 법안들이 순차적으로, 즉 ‘협의처리’ 법안이 먼저 처리되고 그 다음에 ‘합의처리 노력’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협의처리’ 법안이 ‘합의처리 노력’의 정도를 규정하는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월 임시국회가 열린다고 여야 간의 ‘합의’ 또는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볼 근거는 거의 없다.

압박할 게 뻔하다. 2월 임시국회에서마저 쟁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지지층의 호된 질타에 시달리기에 여권이 김형오 의장을 강하게 압박할 게 뻔하다. 쟁점법안 일괄처리를 위한 직권상정을 요구할 게 자명하다.

김형오 의장이 여권의 요구를 받아들일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에서처럼 대화와 타협을 끌고 갈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를 거치면서 김형오 의장은 성과를 거뒀다. 국민 뇌리에 고뇌하는 모습을 각인시켰고 중립 이미지를 아로새겼다. 고뇌 어린 충정으로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요구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의장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 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이게 무기가 될 수 있다. 그 덕분에 김형오 의장은 ‘여당 출신 의장’에서 ‘중립 의장’으로 자리 이동을 했다. 그 덕분에 김형오 의장이 취하는 조치는 ‘편파적인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으로 치장될 수 있다. 김형오 의장이 ‘참을만큼 참았다’고 외치면서 감행하는 직권상정을 ‘고뇌 어린 충정’으로 감쌀 포장지가 마련된 것이다.

여건도 좋다. 본회의장 점거농성은 풀렸다. 민주당이 재차 점거농성에 들어가려 해도 쉽지 않다. 한나라당이 앉아서 두고 볼 리가 없다.

이런 상황이 김형오 의장의 선택을 추가로 규정한다. 직권상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 해소됨으로써 김형오 의장이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마냥 내칠 명분이 약화되는 것이다.

여야 합의가 1월 임시국회의 ‘반전 드라마’였다면 직권상정은 2월 임시국회의 ‘반전 드라마’다. 그럴 가능성은 상존한다. 

▲사진=김형오 국회의장이 5일 여야 원내대표 회담을 주재하고 있다.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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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역으로 헤아리면 보인다. 여권이 로텐더홀을 먼저 ‘접수’하려는 이유를 살필 수 있다.

직권상정을 하려면 심사기일을 지정해야 한다. 이게 문제다.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건 곧 직권상정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민주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보좌진과 당직자를 총동원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의원들을 엄호하려 할 것이다. 본회의장 바로 앞의 로텐더홀에 인력을 증강배치해 직권상정 길에 바리케이드를 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심사기일을 지정하기 전에 로텐더홀을 먼저 ‘접수’해야 한다. 그래야 심사기일 지정과 직권상정 사이의 시간적 간극과 물리적 마찰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여권의 흉중이 이렇다. 작심한 것이다. 직권상정을 통해 85개 중점법안을 강행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궁금하다. 왜 이리 강수를 두는 걸까? 여야 원내대표가 이룬 ‘가합의’를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든 이유가 뭘까? ‘가합의’를 잘 손질하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모양새 좋게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데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뭘까?

물론 간단하다. 강경파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가합의'를 일거에 내쳤기 때문이다.

관심사는 이런 현상이 아니다. 강경파가 무리수를 감수하면서까지 '가합의'를 부정해야 했던 이유, 이게 궁금하다.

시간이다. 이것이 문제다. 이들은 시간을 질질 끌 만큼 여유롭지가 않다. 오히려 절박하다. 그래서 다급해하고, 그래서 경직되는 것이다.

몇 개의 어록에 새겨져 있다. 여권의 다급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상황을) 구조적 문제로 돌리게 되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 (12월 1일, 박근혜계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한미FTA)문제가 새해로 넘어가 3월에 춘투와 결합이 되게 되면 소위 FTA 문제를 중심으로 반대세력들이 결집하고 또 3월 춘투상황과 같이 뭉치면 국가 경영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온다. (12월 23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 - (민주당 의원들은)시간 끌어서 이명박, 한나라 아무것도 못하게 해서 4월 춘투로 모티브를 잡겠다는 것이다. (12월 31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 공히 걱정한다. 올 봄에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오는 걸 우려한다. 제2의 촛불이 켜지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여야 원내내표가 ‘가합의’한 대로 쟁점법안 처리를 미루면 갈등이 ‘봄’을 관통한다. 단순히 스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봄 정국에 기름을 붓는다. 그래서 차단하려는 것이다. 무리수가 따르더라도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쟁점법안 처리를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쟁점이 뇌관이 되는 일을 방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봄’을 통제하는 법적 장치를 완비하려는 것이다.

결국은 이런 것이다. 체념을 강요하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쟁점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자포자기의 심정을 유발하고, 그래도 불복하는 사람들은 억누르려는 것이다.

잘될까? 여권의 이런 셈법이 먹혀들 수 있을까?

그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게 아니라 앞서 복기한 어록이 가능해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말에 따르면 문제의 근원은 ‘구조’에 있다. 법안이 아니라 먹고살기가 어려워지는 ‘민생구조’에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와 박종희 의원의 말에 따르면 법안 강행처리에도 불구하고 ‘상수’는 엄존한다. 한미FTA는 먹고살기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상수’로 기능하고, 춘투는 생존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분명하다. 여권 인사들의 진단에 따르면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85개 법안과는 무관하게, 직권상정과는 무관하게 ‘속불’은 계속 타들어가게 돼 있다.

강행처리가 자포자기의 정서를 유발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어설프다. 객관적 판단보다는 주관적 희망에 경도돼 있다. 85개 중점법안을 기정사실로 만들면 오히려 공분과 결기를 강화시킬 수 있다. 차라리 현재진행형의 ‘쟁점’으로 남겨두면 타협의 여지에 주목한 국민들을 방관 지대에 머물게 하련만 과거완료형의 ‘현실’로 굳혀버리면 배수진을 친 극한적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여권 내 온건파가 그토록 우려했던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권 입장에선 이런 부작용을 감안해도, 이런 부작용이 우려돼도 어쩔 수 없다.

멈칫 대면 뒤에서 공격당한다.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물 정부’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고, 떠나는 보수 지지층을 속절없이 배웅해야 한다.

이럴 바에는 밀어붙이면서 상황을 관리하는 게 낫다. 일단 85개 법안과 ‘봄’의 연결선을 끊고, 개각과 같은 국정 이벤트를 펼쳐 상황을 희석시키는 게 낫다. 사태를 예의주시하다가 불복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이른바 ‘사회질서법’을 앞세워 통제하는 게 낫다.

장사 비법은 ‘단골’ 확보에 있고, ‘단골’ 유지 비법은 ‘한결같음’에 있다.

▲사진 = 국회 경위들이 3일밤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중이던 민주당 당직자들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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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