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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의원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있단다. ‘중앙일보’가 한나라당 지역구 의원 122명에게 물어본 결과 내년 총선에서 129석 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한단다. 탄핵 역풍으로 121석을 건진 데 그친 2004년 총선 때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숨짓는단다. 그렇게 과반 의석이 무너지면서 여소야대 국회가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본단다. “청와대가 발표하는 50% 안팎의 대통령 지지율은 허구이고 거품”이라며 “우리가 체감하는 민심은 정말 좋지 않다”고 푸념한단다.

어떨까?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런 한탄은 엄살일까, 고백일까? 동정을 유도하기 위한 읍소 전략일까, 아니면 바닥 표심을 가감 없이 반영한 현실 진단일까?

후자에 가깝다. 지난해 치러진 6.2지방선거 결과를 떠올리면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전망이다. 그 때도 한나라당이 참패했으니까. 한나라당 의원들이 바닥 표심이 좋지 않은 이유로 꼽은 항목이 물가-서민경제 침체-구제역-전월세난 순인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물가가 치솟고, 구제역 사태가 발생하고, 전월세난이 본격화한 시점은 6.2지방선거 이후이니까. 여건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졌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기에 한나라당 의원들의 한탄을 마냥 엄살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다. 변수는 남아있다. 대표적인 게 박근혜다.

2004년 총선 때 그랬다.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백마 타고 온 사람이 박근혜 전 대표였다. 그가 전국을 돌며 읍소하는 바람에 121석이나 건져냈다. 내년 총선에서도 그가 뛰면 어찌 될지 모른다. 탄핵 역풍이 열린우리당 지지로 이어졌던 환경에서도 121석이나 건져냈으니, 민주당 지지세가 약한 지금 환경에선 더 많은 의석을 얻어낼지 모른다. 129석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낼지 모른다.

물론 단서가 있다. 2004년에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내년에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비상대권’을 넘겨야 한다는 단서다. 당 지배력을 고스란히 그에게 헌상해야 한다는 단서다. 하지만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 같은 단서엔 전제가 깔려있다. 친이계가 궤멸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전제, 친이계가 자파 인물을 통한 정권 재창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박근혜 대세론에 제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전제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이런 전제는 실현되지 않는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승자독식의 살벌함이 지배하는 게 권력 판이다. 이런 권력 판에서 양보는 곧 자멸을 의미한다. 친이와 친박의 ‘구원’을 염두에 두면 더더욱 그렇다. 어차피 정치적으로 사멸하긴 매한가지라면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게 낫다. ‘이래도 피박, 저래도 피박’이라면 끝까지 가보는 게 낫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변수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정반대 변수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공천과정에서 친이와 친박이 다시 싸우는 모습이 연출될 가능성이다. 친이는 생존을 위해, 친박은 대선 발판 마련을 위해 필사적으로 세를 확장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공천 갈등이 2008년에 맞먹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내달리지는 말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망하는 총선 결과가 대선 결과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일 수 있다. 총선 패배가 한나라당에게 약이 되는 반면 야당에 독이 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패배가 단결을 낳는 반면 승리가 분열을 낳을 수 있다. 패배가 청소로 이어지는 반면 승리가 난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 하나 있다. 요지부동의 상수다. 총선은 정당 투표이지만 대선은 인물 투표다.

▲사진=한나라당 로고 ⓒ한나라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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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제 서울 강남의 JW메리어트 호텔 객실에서 국정원의 고위급으로 추정되는 인사를 만나 밀담을 나눴다고 보도했다. 내용은 구체적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2217호실에서 오후 8시 45분쯤부터 한 시간 가량 이뤄졌다며 대화 내용이 객실 문틈으로 흘러나왔다고 보도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사실무근”이라고 긴급 해명했다. 호텔에서 만난 사람은 국정원 인사가 아니라 국내 기업인이라고 부인했다. ‘중앙일보’가 국정원 인사의 말이라고 보도한 일부 내용은 자신이 한 말이라고도 했다.

아무래도 좋다. 관심사를 ‘국정원 사태에 대한 민주당과 박지원의 입장’으로 한정하면 진실이 무엇이든 힌트는 챙길 수 있다.

‘중앙일보’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에서 국정원 (코미디 첩보전) 책임에 대해 너무 강경하게 주장하고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민주당 의원들도 (국정원 공격을) 안 할 수가 없었다”며 “나도 입장이 난처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고위급 인사가 “당정청 회동 때 국정원 책임론에 대해서는 논의가 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원세훈 원장에게 불만이 있는 TK들이 계속 그러고 있다”고 말한 전후로 이렇게 말했다고 보도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아니라고 했다. "그 분(호텔에서 만난 기업인)이 '요즘 국정원 굉장하더라. 어떻게 된거냐'고 묻길래 '9인회동, 당정청 최고위층이 만나서 나눈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한나라당이 세게 치고 나가 민주당 입장도 난처해졌다. 우리도 그 정보를 몰라서 한바탕 했다'고 답했다"고 해명했다.

공히 등장한다. ‘중앙일보’의 보도에도, 박지원 원내대표의 해명에도 ‘난처한 상황’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왜일까? 민주당과 박지원 원내대표는 ‘코미디 첩보전’ 파문을 일으킨 국정원에 대해 왜 난처해했을까?

언뜻 봐선 난처해할 사건이 아니다. 국정원이 국격과 국익을 떨어뜨린 사건인 만큼 단호하게 책임을 물으면 그만인 사건이다. 그런데도 처음엔 단호하지 않았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24일 “우리 민주당에도 여러 가지 정보가 입수되지만, 정보기관 문제고 국익 차원에서 우리가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랬다가 뒤늦게 원세훈 국정원장의 해임을 주장했다.

민주당과 박지원 원내대표가 이처럼 ‘한바탕’ 한 계기는 ‘당정청 회동 정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그 정보를 통해 여당의 동태를 파악한 다음에 입장을 바꿨다면 거기에 맞는 단어는 ‘난처’가 아니라 ‘줏대’다. 

다른 점을 봐야 한다. ‘중앙일보’가 국정원 고위급 인사의 말이라며 전한 내용이다. ‘중앙일보’ 보도 전에 여러 언론이 진단한 내용이다. TK를 중심으로 한 반원세훈파가 ‘코미디 첩보전’을 계기로 원세훈 국정원장 흔들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에 따르면 민주당과 박지원 원내대표가 난처해한 사정을 헤아릴 수 있다. 사건의 성격으로 봐선 책임론을 제기해야 하지만, 정치적 측면을 고려해선 그럴 수 없어 난처했을 것이다. 책임론을 제기해 결과적으로 국정원 내 TK세력을 도와주면 국정원의 정치색이 강화되고, 국정원의 정치색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스며들면 야당에 유리할 것이 전혀 없어 난처했을 것이다.

엇갈리는 보도와 해명 사이에서 그나마 건져낼 수 있는 건 바로 이것이다.

▲사진=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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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이 선거판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검토됐다. 신경 쓰고 우려하는 건 따로 있다. ‘냉풍’이다.

조짐이 그렇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진실’로 전제한 다음에 어떤 이견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그랬다. “국민적인 단합”을 주문하고 촉구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원론적인 발언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헌데 그게 아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말에 이어 행정안전부가 조치를 들고 나왔다. “조사 결과와 관련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어떠한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국법 질서나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철저히 단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사이버 공간에서 비난ㆍ비방이나 불법행위가 만연하지 않도록 세밀하게 점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정부와 여당은 이렇게 방침을 세웠다. 국민 단합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강제하려고 한다.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기보다는 ‘괴담’으로 치부해 단속하려고 한다. "근거없는 비방"으로 보는 근거가 제시하지 않기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다.

강화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런 방침은 보수 언론의 지원사격 덕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중앙일보’가 “진상이 분명해진 이제 더 이상 무책임한 괴담으로 사태를 호도하지 말아야 한다”며 “더 이상의 논란은 이적행위”라고 못 박은 걸 보면 그렇다. '중앙일보'가 "이적행위'라고 했으니 정부가 그냥 놔두면 체제사범을 방치하는 게 되지 않는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혹세무민하는 괴담'으로 켜진 촛불 때문에 크게 데였으니까, 얼마 전 '촛불'을 향해 "반성하라"고 일갈하며 각오를 다졌으니까 정부는 "근거없는 비방이나 어떠한 불법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더 있다. 애국주의 캠페인을 강화할 이유와 계기는 이것 말고도 더 있다. ‘6.25’다.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6.25’에 천안함을 오버랩시키면 애국주의 캠페인에 날개를 단다. ‘중앙일보’의 주장처럼 “한반도에서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화해정책의 분위기에 취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호전집단과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 왔”으니까 ‘천안함 교훈’은 백 번, 아니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해 밀어붙일 것이다.

자명하다. 대상은 ‘야’와 ‘좌’다. 정부와 여당이 안보 문제에 여야가 없고 좌우가 없다는 전제를 강조하면 할수록 ‘야’와 ‘좌’의 움직임이 더욱 부각된다. 천안함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이 ‘야’니까, 의문점이 제기되고 유통되는 사이버 공간이 ‘좌’의 놀이터가 됐다고 보니까.

예측이 아니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오늘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말했다. 구멍 뚫린 안보태세에 대해 내각이 책임져야 한다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주장에 대해 “민주당과 좌파세력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북한을 두둔하고 비호하고 변호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한 전력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신냉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서해 NLL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다시 냉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 단합 명목아래 특정 세력을 내치는 냉전시대의 행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결과 발표 장면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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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국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질타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오락가락 추궁을 한다는 게 근거다. 지난 2일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잠수사) 2명씩 들락날락 하면서 어떻게 46명을 구조하느냐”고 호통 치더니 어제는 서갑원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천안함 격실에 환풍기가 달려 있어 장병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군의 주장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였다고 따졌다며 이렇게 질책했다. <기사 보기>

기가 차다. ‘중앙일보’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질책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천안함 격실마다 천장에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다고, 전기 스위치로 닫을 수 있지만 방수기능이 별도로 갖춰지지 않은 환풍기였다고, 천안함의 전원이 모두 나가 환풍기를 닫는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불어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69시간 생존이 가능하다는 설명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아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사 보기>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거하면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은 제기할만한 사실을 제기했고 추궁할만한 문제를 추궁한 것이다.

물론 ‘중앙일보’ 기사엔 없다. 두 의원의 추궁이 잘못됐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다만 비교했을 뿐이다. 닷새 전 같은 야당 의원의 질문 맥락과 180도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오락가락’ 추궁을 지적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그것이 정녕 문제라면 ‘중앙일보’, 나아가 모든 언론 또한 과녁에서 탈출할 수 없다. 언론도 어제 달랐고 오늘 달랐다. 내부폭발과 외부충격 사이, 기뢰와 어뢰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추정 보도’를 남발했다.

하지만 크게 탓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부각시킨 언론이 없지 않고, 그들의 의도를 경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결과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면을 잘라 보면 성급한 추정과 섣부른 예단에 빠진 부실 보도임에 틀림없지만 군사정보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해당 의원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비공개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의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도 ‘헛다리’를 짚었다는 확증이 서지 않는 한 국회의원들의 ‘추궁 환경’을 언론과 다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건 만은 그렇다.

‘중앙일보’가 질타할 대상은 국회의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니라 국방부의 ‘용인할 수 없는 입씻기’다. 천안함의 내부 구조는 상세히 브리핑하면서도 격실 천장에 방수가 안 되는 환풍기가 달려있는 사실은 쏙 뺀 국방부의 처사를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그게 먼저고, 그게 본질이다.

국회의원의 추궁을 받아 확인 보도를 한 ‘동아일보’의 ‘대응법’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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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낸 서울남부지법의 마은혁 판사는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멤버였다”고, 1987년 결성된 ‘인천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인민노련)’의 이론-선전 부문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보기>

‘중앙일보’가 상세히 짚었다. 법원이 “이념 앞에서 길을 잃(고)” 있다고, 소신을 넘어선 일탈적 판결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법원 안팎에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했다. “김영삼 정부 첫해인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사법시험 합격자도 판사로 임용되기 시작했다”고 따로 짚었다. <기사 보기>

새삼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이들 신문이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법연구회’를 과녁 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법연구회’ 소속인 마은혁 판사를 지렛대 삼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살필 필요가 없다.

지겹다. 법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오히려 그것이 다원화 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행여 이념 문제 때문에 판결 오류가 나온다면 3심제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는 따위의 말은 그만 하자. 중․고등학생도 다 아는 얘기도 귀 닫고 맘 닫으면 생뚱맞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다.

아주 짧게 딱 하나만 짚자. 이런 의문문으로 되묻자.

그래서? 뭘 어쩌자고?

그럼 마은혁 판사를 잘라야 하나? 20여 년 전의 사상․활동 경력을 문제 삼아 법원에서 내쫓아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향서를 쓰도록 해야 하나?

그럼 신원조회를 해야 하나?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가 임용 때 사상․시위 전력을 조회해야 하나? 아니면 신영철 대법관처럼 사건 배당에 개입해 국보법 위반 전력 판사에겐 시국사건을 맡기지 말아야 하나?

설마 이건 아닐 것이다. 대명천지에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정론지’가 이렇게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되묻는 것이다. 뭘 어쩌자는 것이냐고….

 ▲사진=노회찬 마들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 장면. 마은혁 판사가 이 모임에 참석해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노회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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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었다. 문창극 ‘중앙일보’ 대기자의 칼럼을 밑줄 쳐가며 정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랬다. “나는 한 발 더 나아가(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 난입해 소동을 벌인 걸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입각해 비판한 보수 신문의 사설에 대해 “옳은 지적”이라고 평한 뒤에 ‘한 발 더’ 내디뎠다.

뭔가 대단한 논리를 내놓는가 싶었다. ‘대기자’라는 직함에 걸맞게 장삼이사는 감히 생각지 못할 논리와 가치를 제시하는 줄 알았다. 헌데 아니었다. 그가 “한 발 더 나아가” 내놓은 건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애국이란 단어에 태생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진보주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자기 나라보다 노동계급을 중요시한 공산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국민의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고 했다.

말하지 않으련다.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소리를 낸 게 아니라 ‘한 발 더 물러서’ 낡은 소리를 낸 것으로 보이지만 말하지 않으련다. 그가 “옳은 지적”이라고 평가한 ‘중앙일보’의 사설에 이런 구절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대신 다른 걸 짚으련다. 대기자의 칼럼에 깔려있는 자가당착적 요소다.


문창극 대기자가 말했다. 유신시절에는 애국심이 독재정권의 강화에 이용되었다고, 그래서 반발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요즘 애국가가 울려 나오고 태극기가 펄럭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자신의 이런 감정(또는 양심)을 술회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말했다. “진보를 하든 보수를 하든 대한민국 안에서 해야 한다”고, “그것은 우리의 고난의 역사, 굴곡의 역사를 다 인정하는 동시에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에 대해 자가당착이라고 평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문제 삼는 민중의례는 기실 다른 게 아니다. 애국가 대신 합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진 윤상원 열사를 기리는 노래다. 민주열사에 대해 묵념하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문창극 대기자의 감정을 ‘반발’에서 ‘눈물’로 변하도록 밑돌을 놓은 사람들을 기리는 행위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누리는 민주(와 번영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다. 왜 이걸 문제 삼는가. 왜 이걸 ‘애국’의 맞은편에, 반대가치로 설정하는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문창극 대기자가 지적했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라면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든 않든, 애국가를 부르든 않든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핍박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그래서 되묻는다. 그런데 왜 힐난하지 않는가. 행정안전부가 민중의례를 금지해 “개인의 선택”을 침범했는데 왜 비판하지 않는가. 국민의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간부들을 징계하는데 왜 문제 삼지 않는가.

괜히 따라왔다. 그가 디딘 발걸음을 좇았더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황량하다. 논리가 높이뛰기를 하고 주장이 불규칙운동을 하는, 혼돈의 땅이다.

▲캡쳐 = ‘중앙일보’ 오늘자 ‘문창극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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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나름’이라는 말 그대로다. 행위는 하나인데 해석은 둘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해빙’ 또는 ‘데탕트’로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청와대에서 만나 ‘웃음꽃’을 피운 것을 중시하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두 사람 간의) ‘해빙(무드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고 전망했고, ‘중앙일보’는 “‘데탕트’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두 사람 사이에 입장차가 여전한 것으로 진단했다. “의견 교환도 있었고 공감한 부분도 있었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말 가운데 ‘도’ 한 글자를 뽑아내 이렇게 짚었다. 이 한 글자에 의지해 ‘경향신문’은 “일부 현안을 두고는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풀이했고, ‘한겨레’는 “두 사람이 주요 현안에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지는 않다”고 추정했다.

가르지 말자. 두 개의 해석 가운데 어느 게 객관적 사실에 근접한 것인지 가르지 말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소상히 밝히지 않는 한 이 역시 보기 나름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닌’ 정치인의 일반적 생리를 간과했는지 모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공감하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공감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평가절하 했는지 모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다 보니 보기 나름의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유용하지 않다. ‘정답을 모르는 찍기’라는 점에서 유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정치발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보더라도 유용하지 않다.


과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도리와 책무를 강조하고 촉구하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계파 수장의 일거수일투족만 좇는 보도 행태가 공간을 넓혀줬다. 계파 수장이 계파 논리에 경도돼 계파의 안위를 챙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과 계파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줬다.

이번에도 똑같다. 왜 말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어야 할 대목에 가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북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 국정 현안을 거론해 놓고서도 “구체적 내용은 얘기하지 않겠다(박근혜)”고 차단막을 치는데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하루 빨리 입장을 밝혀야 정치 갈등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북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가 정치 갈등을 낳는 주요인인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면 여권 유력 정치인에게만 ‘귓속말’을 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차기를 노리는 여권 유력 정치인이라면 민감한 국정 현안을 대통령에게만 ‘낮은 목소리’로 말할 게 아니라 국민 앞에서 당당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아니라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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