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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몇 가지 던지자.

첫째 질문. 정운찬은 월경한 걸까?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을 넘은 걸까?

아니다. 두 마디 말에 따르면 월경이라고 볼 수 없다.

‘한겨레’가 보도했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는 “보수 진영에선 ‘합리적 자유주의자’, 진보 진영에선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된다”고 했다. 어떤 민주당 의원이 말했다. “MB의 중도가 허구라면 좋지만, 실질적 노선 이동이라면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이 두 마디 말에 입각하면 정운찬 내정자의 행보를 월경이라고 규정할 수가 없다. 흔한 말로 ‘중도’로 분류되는 인물이, 민주당조차 동요하게 만들 정도로 세를 떨치는 MB의 중도실용노선에 몸을 의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제자리 찾아간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질문. 민주당이 ‘빵빵’했다면, 민주당의 전도가 양양했다면 정운찬 내정자가 등을 돌렸을까? 굳이 리스크를 안고 이명박 대통령과 손을 잡았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총리직 수용을 변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기회를 엿봤을 것이다. 어차피 민주당도 같은 중도실용이라고 하지 않는가.


셋째 질문. 이것이 진짜 질문이다. 민주당의 살 길은 뭔가? ‘우리 편’이라고 여겼던 인물까지 놓칠 정도로 힘이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힘을 키울 건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운찬 총리 내정 소식에 당혹해 하는 민주당의 모습에 답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고유 ‘브랜드’라고 여겨온 중도실용노선이 침범 당한 데 대해 당혹해한다. 자신들이 ‘원조’라고 믿고 MB의 중도실용노선을 ‘짝퉁’이라고 일축해왔는데 혹시 그게 아닌가 하며 당혹해한다. 자기들 편이라고 여겼던 중도 인물까지 빼 갈 정도로 MB의 중도실용노선이 세를 얻기에 당황해 한다. 그래서 다시 추스르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이 미디어법 투쟁이 외연을 넓히는 데 무슨 도움이 됐냐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생활밀착형 정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도실용노선엔 중도실용노선으로 ‘맞짱’을 떠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타당해 보인다. ‘생활밀착형 정치’라는 당위명제가 갖는 무게감이 클뿐더러 미디어법 투쟁 등 이른바 ‘민주 투쟁’이 지리멸렬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정체 현상을 보이는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중도층을 끌어들이면서 상승곡선을 타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일각이 주장하는 대응 전략은 또 다른 패배를 부른다. 

전망의 근거를 다른 데서 찾을 필요가 없다. 민주당 의원이 그러지 않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이 “실질적 노선 이동”이 아닐까 의아해하지 않는가. 이게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것이 민주당 의원조차 헷갈리게 할 정도로 위력을 떨치는 현실이 중요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등한 게임이 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책 결정권을, 한나라당이 입법권을 사실상 쥐고 있는 현실만으로도 야당의 이른바 ‘생활 정치’가 한계 지워지는데, 여기에 주도권까지 이미 빼앗겼다면 더 말 해 뭣하겠는가. 자칫하다간 민주당의 중도실용노선이 보수층에겐 ‘MB짝퉁’으로, 진보층에겐 ‘한나라당 2중대’로, 중도층에겐 ‘대책 없는 딴지걸기’로 비치기 십상이다.

미디어법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민주투쟁’이 민주당의 외연 넓히기를 옥죄었다는 주장도 그렇다. 실용이 대세인 상황에서 이념에 치중된 공허한 싸움을 벌였다는 이런 주장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런 싸움은 애당초 국민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전제,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민주․이념이 아니라 생활․실용이라는 전제다.

하지만 이런 전제는 호도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족적을 심각하게 호도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안다. 민주당이 그동안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노무현 서거에서 비정규직법으로, 비정규직법에서 미디어법으로, 미디어법에서 김대중 서거로, 김대중 서거에서 4대강 사업으로 철마다 전선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성과다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안다. 바로 이런 패착이 정운찬 내정자가 ‘민주’를 경시하고 ‘중도’를 강조하는 현상을, 분열의 원인은 거론치 않고 통합의 당위만을 강조하는 현상을, 그러면서 자기 선택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아주 이상한 현상을 낳은 것이다.

민주당 일각의 진단은 잘못돼 있다. ‘올인’하지 못한 게 문제인데도 ‘올인’한 걸 문제 삼는다.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한 게 문제인데도 싸움을 벌인 걸 문제 삼는다. ‘민주 투쟁’을 ‘생활 정치’의 동력으로 활용하지 못한 게 문제인데도 ‘민주 투쟁’ 을 벌인 걸 문제 삼는다.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조화와 배치인데도 또 다시 선택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알아야 한다. 민주당이 이런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한 판판이 깨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좌판을 벌이는 처지를 면치 못하는 한 가게 주인 한나라당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좌판 생활을 청산하고 가게를 차리더라도 특화 상품을 팔지 않는 한 정운찬 아니라 정운찬 아류조차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민주당 스스로 ‘우리편’으로 알았던 정운찬 내정자가 등을 돌리는 판에 자기들끼리 일괄통합이니 단계통합이니 하며 거친 말싸움을 벌이기에 하는 말이다. 통합의 내용과 성격은 뒤로 물리고 통합의 방법만을 앞세우며 당권 싸움을 벌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선 통합이 특효약이 될 수 없다.

▲사진=3일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 장면 ⓒ민주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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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진단은 명료하다. 문제의 근원을 이미지에서 찾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좌파들의 집요한 이념공세로 인해 마치 극우주의자인 것처럼 이미지가 왜곡돼 있다”고 보고, “이명박 대통령은 애초 비주류, 중도실용주의자였으나 대통령이 된 뒤 정당·이념 대립구도 속에서 오른쪽으로 비치게 됐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근원적 처방’을 이미지 개선에 맞춘다. ‘MB다움의 회복’ ‘중도 이미지 회복’을 위해 종교계·언론계와 같은 여론주도층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각종 소외현장을 찾아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늘린다고 한다.

사족 같지만 오해의 소지를 한 점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풀자. 그럼 이런 얘기가 된다.

청와대의 진단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잘못 한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곧 비주류·중도실용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한 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권 인사들이 흔히 하는 말로 국민이 ‘오해’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진단에 따르면 정책기조는 잘못 된 게 없다. 이명박 정부는 줄곧 중도실용노선에 입각해 서민을 보듬는 정책을 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한 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이 좌파들의 이념공세에 의해 각색됐기 때문이다.

복습까지 마치고 나니까 눈이 좀 트인다.

청와대는 단정한다.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소통길에 문제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 길이 포장도로가 아니라 자갈길이어서 소통이 덜컹거렸다고 확신한다.

그래서인가 보다.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려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악의적 선동세력’에 점령된 방송을 구해낸 다음에 소통의 간선도로를 구축하려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보다. 서울시가 나서서 서울광장의 사용규정을 강화하고, 8월 1일에 개장하는 광화문광장의 사용여지를 틀어막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길거리 선동을 일삼는 좌파세력을 밀어낸 다음에 소통의 광장을 열려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보다. 엄연히 국회가 있는데도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것을 만들려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정쟁만 일삼는 정당에 점령돼 상습 병목 현상을 보이는 국회 대신 별도의 소통 직행노선을 닦으려는가 보다.

말하지 말자. ‘악의적 선동방송’보다 ‘우호적 홍보언론’이 더 많고 더 세지 않았냐고 되묻지 말자. 좌파 세력의 길거리 선동보다 우파 세력의 길거리 구호가 더 우렁차지 않았냐고 셈하지 말자. 국회의사당이 병목구간이 된 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과속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따지지 말자.

국정쇄신 하랬더니 홍보쇄신에 나서는 청와대다. 소통 하랬더니 소탕을 꾀하는 청와대다. 더 무슨 말을 하고, 더 무슨 말을 듣겠는가. 청와대를 향한 소통(길)이 꽉 막혀 있는데….

 ▲사진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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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황석영 씨를 떠올린다.

이명박 대통령을 ‘중도실용주의자’로 평가했던 그의 판단은 여전히 유효한지, 이명박 정부에 협조하기로 한 그의 작심은 여전히 굳건한지, 이명박 정부로부터 중도실용적인 대북정책을 끌어내겠다던 그의 자신감은 여전히 튼튼한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도실용주의자’라는 걸 믿는다며 그 예로 PSI 참여 보류 결정을 들었다. 거듭 확인했다. 지난 18일 블로그에 글을 올려 자신의 결정이 정당함을 강변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밝혔다.

“저는 북한의 서바이벌 게임이라 할 수 있는 로켓 발사 이후 급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지켜보면서, 만약에 우리 정부가 PSI에 참여하게 된다면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대화의 문은 닫히고 말 것이며 정부에 걸었던 기대를 포기하리라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대통령이 PSI 참여를 전면 보류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라시아 순방의 동행을 제안해왔을 때 서슴지 않고 응낙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지요.”

바로 이것 때문이다. 황석영 씨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가, 황석영 씨의 ‘중도실용적’ 선택이 타당한 것인지를 거듭해서 묻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정부가 오늘 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이같이 결정했다.

이로써 무너졌다. 황석영 씨가 부여잡았던 ‘믿음의 근거’는 채 열흘도 안 돼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일구려 했던 황석영 씨에게 왜 코앞을 내다보지 못했느냐고 다그치는 것처럼 비쳐질지 모르겠다. 황석영 씨에게 ‘점쟁이’의 능력을 요구하면서 결과론을 들이미는 것처럼 비쳐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니다. 비판성 반문은 지극히 정당하다.

이미 예견됐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한 직후 내외신이 2차 핵실험 가능성을 점쳤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북미대화에 즉각 나서기 어려운 형편을 들어, 그리고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는 북한의 의도를 들어 그렇게 내다봤다.

더불어 점쳐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PSI 전면참여 보류 결정은 말 그대로 보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북한이 2차 핵실험에 나서면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세력의 반발에 밀려 PSI 전면참여 결정을 내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런데도 황석영 씨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과소평가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에 기댔다. 그러면서 호언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남북관계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이 기간 동안 가시적 변화를 끌어내겠노라고 했다.


말을 돌리자. 황석영 씨의 ‘판단 미스’를 물고 늘어지면서 생채기를 낸다고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 건 없다. 그 대신 물어보자. 황석영 씨가 그 과도한 자신감을 앞으로 어떻게 정책에 투영시킬지를 물어보자.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며, 어떻게 이미 결정된 PSI 전면참여를 되돌릴 것이며, 어떻게 대북 강경파를 제압할 것이며, 어떻게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낼 것인지 그 묘책을 물어보자.

간절하기에 하는 말이다. 황석영 씨의 말대로라면 이명박 정부의 PSI 전면참여 선언으로 남북관계는 다음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혹한기를 맞게 될 터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면 개성공단이 문 닫고 남북왕래길이 닫힐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묻고 또 묻는다. 조소가 아니라 열망을 깔고 묻는다. 있는가? 황석영 씨는 힘이 있고 묘책이 있는가?

▲사진=소설가 황석영 씨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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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어둡다. 통합신당의 '손학규 체제'가 삐그덕거린다고 한다. 대표적 증좌로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을 꼽는다. 다른 친노 의원 몇몇의 동요 조짐도 있다고 한다. 출발과 동시에 장애물이 가로막고 섰다는 얘기다.

정말 그럴까?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과 친노 의원들의 동요는 장애물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손학규 대표 쪽 입장에서 보면 '불감청고소원'에 가깝다.

'손학규 체제'의 성격이 그렇다. 손학규 대표의 임기는 총선 때까지다. 선거용 대표이고 선거용 체제다.

'손학규 체제'가 총선의 최우선 전략으로 상정하는 게 '탈노무현'이다. '노무현의 덫'에 걸려 참패한 대선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노무현 색깔'을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한나라당 출신 손학규 대표를 밀어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내 인사 그 누구도 '노무현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이들의 상황 인식에 따르면 이해찬 전 총리의 탈당은 '호재'이지 '악재'가 아니다. 친노 의원 몇몇이 동반 탈당을 해준다면 공천과정에서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으니까 더없이 좋다. 이들에게 친노 세력의 동요와 이탈은 결코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탈색제에 가깝다.

궁금해진다. '탈노무현'이 지상과제였다면 손학규 외에도 대안이 있었다. 쇄신파 초선의원들의 주장대로 외부 인사를 영입할 수도 있었다. 구체적으로 실명이 거론된 외부 인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명도가 문제였다고 한다. 그 누구를 영입해도 손학규만한 지명도를 갖출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손학규 노선'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념에서 벗어나 중도실용적 입장에서 민생을 챙길 노선이 필요했고, 그런 이미지를 갖춘 인물이 긴요했다고 한다. 작금의 정치트렌드가 중도실용이기에 그에 부합하는 인물이 절실했다고 한다.

손학규여야만 했던 이유를 정리하다 보니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손학규는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탈노무현'과 '중도실용'을 양바퀴로 삼는 선거전략이라면 이미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 적이 있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통합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고건 대망론이 나왔고, 고건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세론을 형성했을 때 정운찬 대안론이 나왔다.

하지만 두 명의 주인공은 흥행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인사'라는 말 한 방에, 정운찬 전 총장은 '현실 정치의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액션 한 번 펼치지 못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손학규 체제'는 삼세 번 도전 끝에 겨우 손에 쥔 성과다. 그토록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길을 마침내 열어젖힌 최초의 성과다.

탄탄대로일까? '손학규의 길'은 여의도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가 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한다. 지뢰가 곳곳에 널려있다고 한다.

야당 난립이 문제라고 한다. 통합신당 외에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이 따로 후보를 내면 표가 분산돼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또 다시 통합이 모색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다. 지역기반이 돼야 할 호남에서마저 외면당했다. 자생력이 거의 없어진 정당이 후보를 내봤자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런 정당과 비싼값 들여 통합 흥정을 할 이유가 없다. 창조한국당도 그렇다. 대선 득표율 7%로는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대선자금 용처 문제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실탄도 떨어졌다.

두 당은 경쟁자가 될 수 없다. 무시와 고사작전으로 가는 게 싸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충청지역 출신 의원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이회창 씨의 '자유신당'으로 옮겨가려는 의원들이 대여섯 명 된다는 얘기가 흉흉하게 돌고 있다.

이건 아프다. 대선 결과만 놓고 보면 한 번 해볼만한 곳이 충청 지역이다. 현역 의원의 조직에 중앙당의 지원을 결합해 총력전을 펼치면서 자유신당과 한나라당의 각축 틈새를 파고든다면 몇 석 건질 수도 있는 지역이다.

의석 몇 개를 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상징성이다. 수도권 109개 지역구 가운데 5곳에서만 금배지를 건질 수 있다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 조사결과가 현실화된다면 통합신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곤두박질친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면 충청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야 한다.

이런 마당에 최일선에 서야 할 현역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통합신당으로선 진지를 잃는 것과 진배없다.

다른 방법이 없다. 정공법 외에는 달리 동원할 카드가 없다. 호남 기반을 확실히 다지고, 충청지역의 동요를 잠재우고, 수도권을 지키려면 '맞짱'을 뜨는 수밖에 없다. 모든 아젠다를 독점하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와 '맞짱'을 떠 유권자들의 견제심리를 극대화하는 길이 최선이다.

'손학규의 길'을 밟기로 한 이유가 이것이다. 손학규 대표를 간판으로 내걸었으니 '노무현 색깔'이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나머지 한 방, 즉 중도실용노선으로 이명박 당선자와 정책대결을 펼치려고 한다. 누가 진짜 중도실용의 전도사인지를 가리려고 한다.

입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5월말까지는 통합신당이 원내 제1당이다. 문제를 제기하고 제동을 걸 힘은 남아있다.

하지만 이게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견제'와 '딴죽'은 한 끗 차이다. 통합신당이 이명박 당선자의 독주를 견제한다고 나서도 유권자는 '딴죽걸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다.

'손학규 노선'은 이명박 당선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교육문제나 부동산문제, 기업정책에 관해 손학규 대표도 자율과 세제완화, 시장우선을 주창했다. '견제'를 할 만큼 독특한 정체성도, 뚜렷한 차별성도 없다.

두 눈 질끈 감고 노선 전환을 감행해볼 수 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말바꾸기가 두고두고 총선 유세장의 '오징어 땅콩'이 되기 십상이고, 그러면 '손학규 노선'의 한 축인 '중도실용'은 '무척추 기회주의'로 전락한다.

멀리 있지 않다. 지뢰는 통합신당이 밟고 서 있다. 손학규 대표 자체가 지뢰다.

그래서다. 눈여겨봐야 한다. 탈당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친노 의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반손학규' 진영을 형성했던 쇄신파 초선의원들이나 일부중진들이 탈당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이들에겐 명분이 있다. '손학규 노선'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선명한 정체성을 강조한다. 이명박 당선자와의 '맞짱'만 고려한다면 이들의 노선이 더 위력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판이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명분과 노선이 금배지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더 실질적인 요소는 조직과 실탄이다. 이들에겐 이게 없다.

뛰쳐나가봤자 새로 당을 만들 거처가 없다. 어떻게 천막당사라도 짓는다 해도 일용할 양식을 구할 방법이 없다. 반면에 통합신당은 대선 때 쏟아부은 390억원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다.

명분도 완전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한두 번 탈당한 게 아니다. 민주당→열린우리당→중도개혁통합신당→통합민주당→대통합민주신당의 궤적을 그린 사람들이다. 선명성을 내세워 탈당한다고 해서 유권자가 곱게 봐준다는 보장이 없다.

이리 보고 저리 재도 통합신당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노무현의 덫'이 문제가 아니다. 사방이 늪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