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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왕조국가라는 비판에 누가 ‘딴지’를 걸 수 있겠는가. 권력 세습은 물론 전제왕조였던 조선에서도 꺼렸던 왕실 종친('세자'의 고모와 고모부)의 권력 핵심 기용까지 감행하는 북한인데.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북한은 왕조국가라고 비판해봤자 당사자들은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유일체계를 보위해야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할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인데.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김정은 후계체제가 앞으로 어떤 우여곡절을 겪을지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북한 정보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는 미국의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조차 “솔직히 북한의 지도부 내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또는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하는 판인데.

남한 사회가 김정은 후계체제에 당장 대처할 방법은 없다.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당분간 (담담하게) 더 지켜봐야” 한다. 헌데 난감하다. 청와대를 둘러싼 보수세력은 담담하게 지켜볼 용의가 없어 보인다.

‘중앙일보’가 주장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3자의 자세로 방관하는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제시했다. “북한 동포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왜곡되지 않을 방법”을 전제로 “북한 체제의 변혁을 촉진하거나 유발”해야 한다고 했다. ‘동아일보’가 주문했다. “소극적 대북 정책을 계속한다면 3대 세습을 안착시키려는 북의 술책에 말려들 수도 있다”며 “김일성 일가 권력 세습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북한 주민이 정확히 알도록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적극 공세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사뭇 다르다. 조중동의 이 같은 입장은 “(정부가)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에 따라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한국일보’의 주문과 다르고, “압박 일변도로 가면 강성 체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한겨레’의 우려와 다르다.

따지지는 않겠다. 어느 쪽 입장이 타당한지는 살피지 않겠다. 늘 나타났던 입장차이니까, 어차피 평행선을 달릴 입장차이니까 하는 말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역설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 ‘담담하게 지켜보는’ 상황이다. 남한이 북한의 ‘향후’를 담담하게 지켜보기 이전에 북한이 남한의 ‘대처’를 담담하게 지켜볼 개연성이다.

그럴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남한이 압박하면 이를 선군정치와 유일체계를 강화하는 구실로 역이용하고, 남한이 유화책을 펴면 이를 후계체제 안착의 경제사회적 토대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남한의 ‘힘’을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착을 위한 ‘힘’으로 흡수하려 할 것이다.

혹여 모른다. 남한의 대북정책이 김정은 후계체제 안착 여부를 가를 유일한 외부 규정력이라면 그것의 재조정 여하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완전히 뒤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북한의 후계체제는 “내부 사무”라며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또한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하려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 다자회담을 통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점을 중시하면 생산적이지 않다. 대북정책을 놓고 남한 사회에서 입씨름 하는 건 김정은 후계체제 ‘향후’에 결정적 규정력을 미치지 못하면서 남한 사회 내의 이념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다.

입체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후계체제라는 요소 하나에만 단선적으로 대처할 게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 미치는 제 요인을 두루 살피면서 대북정책을 재조정해야 한다.

▲사진=어제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임된 김정은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기정사실이다. 종합편성채널 사업자가 선정되는 건 시간문제다. 논란은 여전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현재 기세로 봐선 12월 사업자 선정 일정이 그대로 추진될 공산이 크다.

이 또한 기정사실이다. 종편 사업자가 두 곳으로 결정되든 세 곳으로 결정되든 결국은 보수신문 일색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 덕에 보수의 목소리가 여론시장에서 더 활개치고 세를 넓힐 것 또한 자명하다.

그래서 묻는다. 진보신문은 뭐하고 있는가?

열심히 대응하고 있기는 하다. 보수신문에 종편을 내주면 여론독과점 현상이 심화되고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하지만 무력하다. 초재기에 들어간 일에 '안된다'고 외치는 것이기에 무력하다. 맞을지는 몰라도 효과적이지는 않은 대응이다.

그래서 거듭 묻는다. 진보신문은 뭐하고 있는가? 아니, 뭘 할 것인가?

먼저 지워야 한다. 진보신문 내에 드리워진 패배주의와 고루함부터 깨끗이 지워야 한다. 방송은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사업이니까 진보신문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라는 패배주의를 지워야 하고, 방송을 하려면 채널을 가져야 한다는 고루한 사고 또한 지워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방송이 바뀌고 있다.

진보신문 스스로 보도하고 있다. 차세대 TV는 스마트 TV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펼쳐 말하자면 TV수상기가 스마트폰 구실을 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채널의 통 콘텐츠 외에 개별 프로그램이 하나의 '앱'으로 TV수상기에 펼쳐져 시청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인터넷 전송망이나 OS주체, 그리고 수상기 가격과 같은 세세한 문제가 여러 개 놓여 있기에 확산 속도를 쉬 전망할 순 없지만 그래도 스마트 TV가 방송의 대세가 될 것이 확실하다면 바뀐다. 채널을 보유한 사업자만이 방송 콘텐츠를 공급하던 '올드'한 시대는 '거'하고 프로덕션 단위의 방송 제작자도 얼마든지 콘텐츠 공급자로 설 수 있는 시대가 '래'한다.

더불어 전환된다. 방송광고도 채널에 따라 집행되던 것에서 프로그램에 따라 집행되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시청연령층이 뚜렷한 프로그램일수록 소구점도 뚜렷하기에 채널에 울며겨자먹기로 광고를 끼워팔던 관행에서 벗어나 선별 집행하는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이런 전망이 유효하다면 진보신문이 밟을 길은 많다. 종편에 목매달지 않아도, 채널에 집착하지 않아도 매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진보의 실험정신과 진보신문의 취재 인프라를 바탕으로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 전파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보수신문이 24시간 분량의 채널 콘텐츠를 수급하기 위해 허덕이고 있을 때 진보신문이 일당백의 킬러 콘텐츠로 맞대응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 신문사가 각개약진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킬러 콘텐츠 하나 만드는 데에도 적잖은 돈은 들어가니까,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한 판에 그런 돈 지출할 여력이 없으니까 쉽지 않을 것이다. 장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정치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킬러 콘텐츠가 아무리 성공해도 광고가 시장원리에 따라 따라붙을 것이라고 호언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진보신문의 길은 연대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종편을 놓고 멱살잡이하는 것과는 달리 진보신문은 어깨동무해야 한다. 동종의 주력 콘텐츠인 신문은 각개약진 하되 이종 콘텐츠인 방송에서는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별 진보신문의 열악한 자본력을 극복하고, 부실한 제작역량을 보충해야 한다.

때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스마트 TV가 상용화되고 보편화될 때까지 기다리며 손 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다. 스마트 TV에 앞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으니까, 스마트폰에서 콘텐츠 경쟁이 펼쳐지고 있으니까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실험 삼아, 역량 축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연대를 모색할 수 있다. TV가 어렵다면 라디오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의지다.

※이 글은 오늘자 ‘경향신문-미디어칼럼’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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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토 달지 않으련다. 아니, 적극적으로 장단 맞추련다.

조중동의 주장은 옳다. 법관윤리강령에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시돼 있고, 법원공직자윤리위가 판사의 정치인 후원금 납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다고 하지 않는가.

서울남부지법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마들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낸 건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조중동 주장대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정치적 관계가 있는” 민노당 관계자 12명의 국회 로텐더홀 점거 사건 재판을 맡은 상황을 감안하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항변은 성립되지 않는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자신의 가족상에 문상하고 조의금을 낸 데 대한 답례였다는 항변은 범부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자식 결혼식 때 낸 축의금 액수를 확인한 뒤 꼭 그만큼의 축의금을 상대방 결혼식에 내는 건 일개 필부나 하는 일이다. 판사는 고고해야 한다. ‘셈셈’ 계산법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적 예의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노회찬 대표와 민노당과의 관계도 그렇다. 노회찬 대표가 민노당원이었던 건 예전의 일이고, 지금은 제 갈 길 가는 다른 당의 대표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래봤자 초록이다. 동색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매지 않는 법이다. 일반인의 처신이 이럴진대 판사는 오죽하겠는가. 아예 오얏나무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한다. 피고인의 사돈에 팔촌까지 살펴 신종플루 환자 보듯 해야 한다.

거듭 확인한다. 조중동의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다. 마은혁 판사의 행동에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더라도 스스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판사의 처신은 다른 어느 직업보다도 신중해야 한다(조선일보)”고 하지 않는가. “국가권력과 관련한 형사소송에서 ‘공정’을 기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중앙일보)”고 하지 않는가. “개인적 사상, 가치관, 종교 등으로부터 오는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한다(동아일보)”고 하지 않는가.

마은혁 판사는 마땅히 그랬어야 한다. 조중동이 일깨우기 전에 몸소 실천했어야 한다.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한 마은혁 판사라면,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으로부터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된 마은혁 판사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한다.

근데 왜일까? 개운치가 않다. 조중동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체증이 가시지 않는다. 조중동의 쾌도난마와 같은 논리를 정독하면 할수록 난감함이 배가된다.

마은혁 판사보다 훨씬 높은 판사가 있었다. 마은혁 판사의 사적인 행동보다 훨씬 심각한 공적인 행위가 있었다. 마은혁 판사의 정치중립 의무 위반 ‘논란’보다 더 확실한 재판개입 ‘사실’이 있었다.

신영철 대법관, 그는 지금도 건재하다. 야당의 탄핵 움직임과 여론의 성토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의 '배째라' 태도를 준엄하게 꾸짖지 않는다. 

 ▲사진=신영철 대법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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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다. 조중동은 외고 폐지-자율형 사립고로의 전환 방안에 반대한다.

사교육 유발이란 하나의 요인만 볼 게 아니라 교육 전반을 봐야 한다며 “수월성 교육을 통해 평준화의 폐해인 학력 저하를 줄이고 교육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해 온”(중앙일보) 점을 놓쳐선 안 된다고 한다. “과열 사교육이 문제라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서는 게 먼저이지 다짜고짜 외고를 폐지하자는 주장부터 내놓는 것은”(조선일보) 부적절하다고 한다.

이해한다. 조중동은 그간 평등교육 주장에 맞서 수월성 교육을 옹호해온 언론이다. 이런 언론이 외고 폐지 방안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존중한다. 조중동의 주장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그들의 주장을 현실에 엄존하는 하나의 입장으로 존중한다. 그들의 주장을 배쳑 대상이 아니라 토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래서 토론하려고 한다. 조중동이 주장하는 외고 폐지 반대 주장이 적합한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려고 한다. 하지만 할 수가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조중동은 주장만 펼 뿐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사교육 문제와 수월성 교육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선택을 요구한다. 아니, 말이 잘못됐다. 조중동은 사교육 문제와 수월성 교육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게 아니다. 형식상으로는 맞세웠지만 내용상으로는 등급을 나눴다. 외고가 사교육을 유발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수월성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외고 폐지는 안 된다는 그들의 논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에게 사교육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그래도 인정할 수 있다. '조선일보' 지적처럼 과열 사교육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내놓는다면 조중동이 주장하는 수월성 교육을 인정할 수 있다. 교육문제에서 경쟁 요인을 완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글로벌 리더를 키운다는 주장을 마냥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인정할 수 있다.


헌데 없다. 조중동의 사설 어디를 뒤져봐도 사교육 해소를 위한 해법은 없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어제와 오늘자 사설에선 일언반구 말이 없다. “외고가 사교육비를 증가시킨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동아일보)면서도 해법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그나마 해법을 제시한 곳은 ‘조선일보’인데, 이 신문의 해법 또한 애매하고 모호하다.

‘조선일보’가 오늘자 사설에서 밝힌 해법은 영어듣기시험과 관련된 것인데 폐지하자는 것인지 완화하자는 것인지 주장이 모호하다. “외고의 언어듣기시험은 조기유학을 갔다 온 학생들 수준에 맞춘 고난도 시험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지적하면서도 “학교 교육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입시라면 곤란하다”는 수준에서 주장을 멈춰버린다.

표현은 모호하지만 해석은 분명하게 하자. ‘조선일보’의 주장을 영어듣기시험 폐지로 받아들이자. 그럴만한 정황이 있다.

‘조선일보’가 해법이라며 하나 추가한 게 있다. “저소득층에게 상당한 입학 쿼터를” 주고 “입학사정관제 방식의 입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고액의 과외를 받을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에게 외고의 문을 활짝 열어줄 방안”이라면서 제시한 것이다.

자세히 살필 필요도 없다. 같은 것이다. '조선일보'의 해법은 대원외고가 외고 폐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입시 개선안과 같은 것이다. 이게 바로 정황이다. 대원외고는 영어듣기시험 폐지를 내세웠다.

그럼 어떨까? ‘조선일보’, 그리고 대원외고의 해법이 외고 폐지론을 제압하는 무기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아니다. 

굳이 상술할 필요가 없다. 외고 폐지를 주도하는 정두언 의원이 이미 밝혔다. 외고는 영어듣기시험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게 아니라고, 그것 말고도 내신과 면접이 있다고, 따라서 이것을 놔두면 사교육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이라는 지적이다.

저소득층에게 입학쿼터를 주는 방안도 그렇다. 이건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던져주는 짓과 같다. 사교육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사교육을 보완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교육 경쟁에 뛰어든 중산층 이상 가정 자녀의 문제는 온존시킨 채 사교육 경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저소득층 가정 자녀를 통해 과열 양상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조중동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도 아니면 모’인 문제에 ‘개나 걸’ 논법을 대입하는 바람에 자충수에 빠지고 말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어듣기시험이다. 조중동이 그토록 강조하는 수월성 교육을 강화하려면, 이를 통해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려면 영어듣기시험을 폐지할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듣기시험을 영어로 한정할 게 아니라 제2외국어로 확대해야 한다.

그게 논리적으로 맞다. 그래야 수월성 교육이 만개하고 글로벌 인재 양성 성과가 커진다. 외국어에 덜 능통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수월하니까, 외국어 교육 수준을 높여야 글로벌 인재 양성이 수월해지니까 그렇다.

하지만 차마 이렇게 말하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면 과열된 사교육 바람을 감내하라는 얘기로 연결되니까, 결국은 외고 폐해론을 강화시키니까….

두고 볼 일이다. 조중동이 이 자충수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 강변 또는 순응의 외길 외에 제3의 길을 여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지켜 볼 일이다.

▲사진=서울지역 외고 합동설명회 장면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믿자. 여권 사정에 상대적으로 정통한 조중동이 한 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믿어도 될 것 같다.

구본홍 YTN 사장은 “사실상 경질(중앙일보)”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전격 사퇴는 “노조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경영진의 인사권 등을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지적 때문(동아일보)”이라고 한다. 구본홍 사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를 선언했지만 여기에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조선일보)”이라고 한다.

조중동의 분석대로라면 정부가 뭔가 작심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게 뭘까? 취임한 지 1년 밖에 안 된 구본홍 사장을, 그것도 노조와의 오랜 갈등을 일단락 짓고 회사를 일단 안정화 시킨 구본홍 사장을 갑자기 “경질”한 이유가 뭘까?

‘조선일보’는 민영화를 전망한다. 공기업의 지분 38%와 KT&G의 지분 19.95%의 매각을 촉발할 것이라고 관측한다.

‘중앙일보’는 구본홍 사장보다 더 강성의 인사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방송법 개혁 등으로 격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YTN을 지금처럼 방치해 놓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더 센 사장을 앉힐 것이라고 내다본다.

능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 이후의 수순을 생각하면 기정사실에 가까운 시나리오다. 구본홍 사장 사퇴는 '쓰나미' 급의 방송판 흔들기 시나리오의 서막이다.


강성 인사를 사장에 앉혀 노조를 ‘진압’하고 민영화를 추진하면 본보기가 된다. YTN 뿐만 아니라 여권이 ‘노영방송’으로 규정하는 MBC에도 본보기가 된다. 본보기가 될 뿐만 아니라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YTN을 상대로 ‘노조 진압 후 민영화’ 시나리오를 실현시키면 MBC를 고립시키면서 MBC 내부에서 대세에 순응하는 움직임을 촉발시킬 수 있다.

하지만 위험하다. 오히려 이 시나리오가 화를 부를 수도 있다. YTN을 지렛대 삼아 MBC를 고립시키는 게 아니라 YTN과 MBC 노조의 연대투쟁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두 노조가 동병상련의 이해공동체로 묶여 강력한 저항전선을 펴는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게다가 미디어법 원천무효 100일 투쟁에 돌입한 민주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연합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모를 리 없다.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려 한다. 도대체 뭘 믿고 돌파 태세를 갖추는 걸까?

힘이다. 정부는 힘이 세고 민주당과 방송 노조는 힘이 약하다고 정부는 판단할 만하다. 민주당이 미디어법 원천무효 100일 투쟁에 들어갔지만 전면전을 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판단할 만하다. 너른 들판에서 진을 펴는 전면전이 아니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유격전을 펴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서 세 규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만하다.

금상첨화다. 이런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정부 손을 들어주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민주당 등이 제기한 방송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날로 민주당의 100일 투쟁은 동력을 잃는다. 더불어 방송노조의 병참선도 끊긴다. 정부가 쐐기를 박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하나 더 있다. 불가피성이다. 정부에겐 내친 김에 달려야 하는 사정이 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공언했다. 연말까지 복수의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했다. 맞춰야 한다. 방송통신위가 실제로 이 일정표에 따라 일을 진행하려면 사전에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시장에 내놓을 채널 수를 정리해야 한다.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나아가 지상파까지 합쳐 몇 개를 시장에 내놓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그래야 고객으로 하여금 채널별로 주판알을 튕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정치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내년 지방선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 방송판 정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심정으로 밀어붙여 상황을 조기에 매듭짓고 여론지형을 조기에 정비해야 한다.

변수는 별로 없다. 정부의 앞길을 막을 장애물은 따로 없다.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는,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를 제외하면 변수는, 아니 관건은 오직 하나다. 역시 힘이다.

민주당의 100일 투쟁은 10월 중순이면 끝난다. 실무절차를 감안하면 정부의 방송판 흔들기도 이때 쯤이 돼서야 본궤도에 오를 것이고, 방송 노조의 저항도 그에 맞춰 정점을 찍을 것이다.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민주당이 100일 투쟁을 통해 유격전을 전면전으로 전환시킬 만큼의 세를 모을지가 관건이다. 방송노조의 저항이 시청자들에게 방송장악 우려를 각인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10월이다. 이 때가 되면 방송판과 정치판의 윤곽이 드러난다.

▲사진 = 사퇴를 전격 선언한 구본홍 YTN 사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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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오어 나싱 게임’은 없다. 강원랜드 카지노엔 있지만 여의도 정치판에는 없다. 그런 단순무식한 게임은 정치판에선 성립되지 않는다.

미디어법만 해도 그렇다. 8개월간의 기나긴 갈등과정을 통해 드러낼 건 모두 드러냈다.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안기는 대가로 ‘옷벗기’를 요구했고, 앞길을 열어주는 대가로 뒷문을 잠갔다.

하나 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통합노선’의 실체를 드러냈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뇌’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 익히 알고 있거나, 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새로 발견된 사례, 결코 놓칠 수 없는 사례들은 따로 있다.


■ 박근혜의 정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위상은 당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충심을 다 바치는 당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 역할을 하는 건 여권 내 지분싸움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그는 주목받았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이자 지분싸움을 넘어 정책싸움까지 벌이는 것인지,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차별화에 나서는 것인지, 세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난장판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을 일방 처리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그가 말했다.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 대신 여야 난투극이 벌어지는데도, 고등수학은 차치하고 산수만 익혀도 한나라당의 여론독과점 규제제도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그는 눈을 감았고, 그 계파 의원들은 찬성 버튼을 눌렀다.

더불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가 세간의 평가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가 아무리 ‘여당 속의 야당’의 길을 걸으려 해도 힘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의 힘은 계파의 결속을 우려하고 보수 지지층의 비난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계파 의원들이 흔들렸다. 미디어법에 대해 이명박계와 전혀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보폭을 제한해버렸다. 보수 지지층이 반발했다. 이유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미디어법을 흔들고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그의 행보를 비난함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가 ‘산토끼’ 사냥을 멈추고 ‘집토끼’ 건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조중동의 실체
각인됐다. 조중동의 위상이 언론기관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언론기관을 넘어 권력기관화 돼 있다는 사실이 각인됐다. 그들은 정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압도하는 막강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최대 명분으로 내걸었던 일자리 창출이 허구라는 사실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 조작을 기화로 또렷이 밝혀졌는데도 미디어법에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태도를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신방 겸영을 허용하면 혜택을 보는 언론사가 조중동과 한두 개 경제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재삼재사 확인되는데도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만사 제쳐두고 미디어법 처리에 매달리는 모습을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달리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국민의 70%가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대하는데도 일부 극소수 언론사를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처사를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의식하고 있다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청와대와 한나라당마저 의식하고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조중동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더불어 달라졌다. 조중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언론기관으로만 보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된 기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믿고 성원해줘야 하는 ‘파수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반대다. 권력집단까지 쉬 움직이는 절대권력으로, ‘선출된 권력’보다 더 위에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조중동을 바라본다. 그들이 이미 가장 막강 정치집단이 된 것으로 간주한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으로 인식한다. 미디어법이 조중동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민주당의 처지
결정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것이다. 애정을 듬뿍 담아 끌어안을 것인지, 아니면 가차없이 내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에 보여줄 민주당의 태도를 보면서 민주당의 운명을 가릴 것이다.

민주당은 뜨거운 감자였다. 버릴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골칫거리였다. 행적을 봐서는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싶지만 그 당이 승계한 전통과 그 당이 확보한 제1야당이란 위상을 쉬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욕하면서 기대했고, 기대한 끝에 실망하곤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 유보적 관망은 상황이 절체절명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때나 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민주주의의 종언’으로 규정한 마당이다.

민주당의 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의 싸움이 ‘면피성 쇼’인지 아닌지를 가리면서 그들에게 ‘독박’을 씌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의원직 총사퇴를 거론하다가 슬그머니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동반 사퇴로 물러앉는 모습에 기회주의가 담겼는지를 경계하면서, 민주당에 조종을 울릴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 민주의 운명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민주 회복’을 요구하던 길거리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커질지 판명 날 것이다. 길거리를 휘감는 허탈과 분노의 감정이 정치적 저항의 촉매가 될지 아니면 정치적 허무주의의 단초가 될지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누적됐지만 ‘민주 회복’의 성과는 축적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반성과 양보를 끌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정치적 반격과 보복이 등장했다. 길거리에 모였지만 돌아온 건 성과가 아니라 경찰 소환장이었다.

미디어법은 이런 악순환의 정점에서 강행 처리됐다. 미디어법은 ‘민주주의 후퇴’ 우려를 ‘민주주의 종언’ 탄식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중요하다. 미디어법 ‘이후’의 판도에 따라 성취감과 허무주의가 운명을 달리한다. 국민의 정치 참여와 정치 이탈이 좌우된다. 미디어법 ‘이후’의 싸움에 따라 박근혜의 정체와 조중동의 실체와 민주당의 처지 또한 다른 운명을 맞는다. 심판대 위에 오를 수도 있고, 스쳐가는 단상일 수도 있다.

▲사진=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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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 없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해 등원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지할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로 작정하면,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작심하면 막을 재간이 없다.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옥쇄전략을 펴는 것이다. 지난해 말처럼 의원 수십 명이 등산용 자일로 몸을 친친 감은 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과 같은 방법 말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어수룩하게 두 번 당할 리 없고, 김형오 의장이 자일의 매듭을 묶을 시간적 여유를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미디어법 저지를 명분으로 등원을 결정했다. 등원을 결정함과 동시에 본회의장 앞 농성을 풀었다. 패착일까? 한나라당에게 처리 명분과 본회의장 진입로를 동시 헌상한 ‘본헤드플레이’일까?

이렇게 평하기는 어렵다. 정반대의 상황, 즉 등원을 거부하는 상태를 지속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처리 명분을 뺏고 본회의장 진입로를 틀어막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다른 명분, 즉 ‘파업 벌이는 야당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앞세워 일방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앞으로 넘어지나 뒤로 넘어지나 코가 깨지기는 마찬가지라면 코피라도 제대로 흘려보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의사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상황 변화를 유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처참하게 당해주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합당하다. 의사일정 지연전술을 통해 한나라당의 ‘독선’을 부각시키고 처참한 패배를 통해 한나라당의 ‘독판’을 각인시키자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온당하다.

이렇게 보면 분명해진다. 민주당의 전략은 사전적 차원의 옥쇄가 아니라 사후적 차원의 옥쇄다. 국회의사당 내에서의 맞바람이 절대열세이기에 국회의사당 밖에서의 역풍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석이 아니라 여론으로 막판 뒤집기를 이루려는 것이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이후의 역풍과 같은 대반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떨까? 민주당의 이런 전략은 먹혀들 수 있을까?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저지에 나선다는 전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전제를 설정하면 관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다. 국민이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이명박 정부의 숱한 독주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독주를 집약해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이다. 국민이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 지배를 여론시장 내의 미세 조정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여론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새판짜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방송의 위축에 대한 국민의 우려심이다. 국민이 방송의 위축을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위축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결정적 위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르지만 같은 얘기다. 몸통은 하나인 얘기다. ‘민주’라는 화두에 얽힌 문제다. ‘민주’ 구호에 미디어법 사례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문제다. 

▲사진=민주당이 12일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단,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갖고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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