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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서울시장 출마를 보도하는 언론의 접근법이 다릅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한국일보’는 한 줄 걸치기만 했습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 선출과 관련해 눈치작전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외부 인사로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최종 영입대상에 올랐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나라당이 강지원 변호사를 삼고초려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강 변호사와 더불어 이석연 전 법제처장도 접촉 중이다”고 전했습니다. 이게 끝입니다.

한데 다릅니다. ‘조선일보’는 두 신문과는 확연히 다른 보도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했다는 소식을 1면에 전진배치한 데 이어 4면에 인터뷰 기사와 분석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출마에 상당한 무게를 둔 겁니다.

왜일까요? ‘조선일보’는 왜 두 신문과 달리 이석연 전 법제처장에 관심을 보인 걸까요?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팩트의 차이입니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의 취재결과가 ‘설’ 또는 ‘전언’에 머물러 있는 반면 ‘조선일보’는 ‘최종 확인’을 거친 것입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인터뷰를 해서 그의 속내를 직접 들은 것이죠. 이 같은 차이가 기사 처리 방식의 차이를 낳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관점의 차이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이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대수롭지 않은 인물로 바라본 반면 ‘조선일보’는 다른 무엇에 주목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입니다.

똑같습니다. ‘조선일보’가 전하고 부각시킨 ‘이석연의 길’이 ‘박원순의 길’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습니다.

먼저 출마 방식.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그랬답니다. “한나라당에 입당해 경선에 나서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라며 “건전 시민세력과 함께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시민들의 평가를 받아볼 생각”이라고 했답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이 같은 구상은 박원순 변호사가 택한 출마 방식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이른바 ‘시민후보’가 되어 한나라당 내부 경선을 거친 후보와 단일화 경선을 하겠다는 점에서 100% 일치합니다.

다음은 걸어온 길. ‘조선일보’가 정리했습니다. 두 사람의 뿌리가 똑같이 시민운동이고,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도 같다고 했습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경실련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을 했는데 2000년 총선 때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한 낙천·낙선운동에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반대하면서 두 사람의 길이 갈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두 사람이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 노선으로 나뉘었다는 겁니다.

이렇게 뜯어보고 나니까 궁금해집니다. ‘조선일보’가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띄운 의도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상업성을 고려했기 때문일까요?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박원순 변호사의 ‘같은 뿌리 다른 길’이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여서 일부러 키운 걸까요?

아니면 전략적 고려를 했기 때문일까요?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손자의 말을 교본 삼아 박원순 변호사를 ‘잘 아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의도적으로 키우는 것일까요? ‘같은 뿌리’를 가진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내세워야 박원순 변호사의 ‘뿌리’를 들춰낼 수 있고, ‘오른쪽 길’을 택한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내세워야 박원순 변호사의 ‘왼쪽 길’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걸까요?

‘조선일보’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것에 부응하기엔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체급이 낮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지켜볼 필요는 있습니다. 체급이야 보수언론의 ‘영양식’ 집단공급을 통해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이석연 전 법제처장이 박원순 변호사를 향해 쏟아낼 말, 말, 말일 겁니다.

▲사진=이석연 전 법제처장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흥미로운 뉴스다. 뉴스통신사인 ‘뉴시스’가 여론조사기관인 ‘모노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원장이 박근혜 의원을 제쳤단다. 차기 대선 가상대결 조사에서 박근혜 의원이 40.5%를 얻은 데 비해 안철수 원장은 42.4%를 얻었단다.

보수세력으로선 기겁할만한 뉴스다. 박근혜라는 버팀목이 있기에 반MB 정서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어느 정도 안도해왔던 보수세력이다. 이런 보수세력에게 빨간불이 켜졌으니 어찌 기겁하지 않겠는가.

그래서일까? ‘조선일보’가 발빠르게 움직인다. ‘박근혜 대세론의 앞날’을 짚으며 충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빨리, 과감하게 나서라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진단한 ‘박근혜 대세론의 앞날’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내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 후보’에 대한 지지는 41% 대 42%로 팽팽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와 ‘야권 후보’의 대결에선 박 전 대표가 54%로 야권 후보 37%를 크게 앞서고 있는 데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었는데 “내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후보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이상 내년 대선 승부는…50.5 대 49.5 승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 ‘조선일보’가 충고하는 박근혜 의원의 대처법은 뭘까? ‘조선일보’는 ‘발등의 불’과 ‘근본적인 문제’로 나눠 충고한다. ‘발등의 불’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과거처럼 국외자인 듯 처신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선거를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으로 보고 위험부담을 걸머지고 뛰어들 것인지의 고민일 것”이라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당내의 친이·친박 구도를 허무는 데 주도적으로 나서 당을 하나로 만든 후 그 바탕 위에서 당 밖 보수 진영을 대동단결시키고 중간층까지를 끌어안는 정치적 대변신을 보여줄 것이냐”라고 한다.

나름 냉정한 현실진단이요 진지한 충고이지만 엇나갔다. 핵심을 잘못 짚었다.

‘조선일보’의 장황한 논설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무당파층을 누가, 어떻게 잡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 무당파층의 성격이 간단치가 않다. ‘조선일보’ 스스로 내린 진단에 따르면 이 무당파층은 “박근혜 대세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권자층”이다.

왜일까? 왜 이 무당파층은 “박근혜 대세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시그널까지 보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반MB 정서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반MB 정서에 따라 박근혜 의원마저 외면하고 싶었으나 야권에 마땅한 대안이 없어 무당파층 일부가 그나마 박근혜 의원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안철수 원장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조건부 호의’마저 거둬버린 것이다.

무당파층이 내보이는 반MB 정서의 핵심은 불만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 경제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먹고사는 게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보수세력이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처럼 내다팔았던 성장담론이 민생을 호전시키는 데 아무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다. 무당파층이 내보이는 불만은 정치적 불만일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만이다. 그래서 좌로 반클릭 이동했다. 무당파층은 좀 더 공정한 분배와 좀 더 확대된 복지를 요구한다. 

이렇게 진단하면 이해가 한층 쉬워진다. 박근혜 의원이 지금까지 ‘국외자’ 처신을 해온 연유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가재’와 ‘게’는 ‘종’이 다르고, ‘초’와 ‘록’은 ‘색’이 다르다는 것을 무당파층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무당파층을 확보하기 위해 MB와 거리를 뒀던 것이고, ‘복지 밥상’에 수저를 얹은 것이고, 무상급식 프레임 하에서 치러지는 서울시장 선거에 참여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외자’ 처신을 던져버리라고? 한나라당의 구심점으로 우뚝 서라고? 보수진영을 대동단결시키고 중간층까지 끌어안으라고? 이는  이율배반이다. 스스로 대선의 관건은 무당파층 확보라고 해놓고서 무당파층의 정서에 반하는 처신을 하라고 주문한 점에서 모순이다.

물론 ‘국외자’ 처신을 던져버리는 게 무당파층의 정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박근혜 의원이 ‘국외자’ 처신을 던져버리되 무당파층의 불만에 적극 호응하는 노선을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박근혜 의원이 이렇게 하면 보수진영 일각이 반발한다. 포퓰리즘과 기회주의를 운위하며 반발할 게 뻔하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조선일보'부터 그러지 않는가. 포퓰리즘 대항전선의 선봉에 서있지 않은가. 

이러면 만사 끝이다. 박근혜 대세론은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조선일보’의 전망대로 내년 대선이 50.5 대 49.5의 승부가 될 것이 뻔하다면 보수진영 일각의 반발은 0.5%포인트 싸움의 향배를 가르고도 남을 만큼 크고 아프다.

▲박근혜 캐리커쳐=손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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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주장했다. 다시 부상한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장자연 씨 소속사 전 대표 김모 씨 수사가 핵심이라고 했다. “경찰이 핵심인물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아직도 온갖 풍설이 나도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편지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가짜일 수도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맞다. ‘조선일보’ 주장 그대로다.

어찌어찌해서 공개될지 모른다. 장자연 씨가 지인 전모 씨에게 보냈다는 50통의 편지가, 그 속에 담긴 ‘장자연 리스트’가 공개될지 모른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그것이 공개된다고 해서 의혹 해소가 완결되는 건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당사자들이 자기는 아니라고, 리스트는 장자연 씨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강변하면 도리가 없다. 입증해야 한다.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당사자들의 행적을 밝혀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속사 전 대표 김씨가 등장한다. 장자연 씨가 남긴 편지에 따르면 100번이 넘는 성접대 대부분이 김씨의 강요와 협박에 못 이겨 이뤄진 것이라고 하니까 김씨가 증언만 하면 모든 의혹은 말끔해 해소된다.

하지만 쉬워 보이지 않는다. 김씨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힐 이유를 찾기 힘들다. 장자연 씨가 편지에 남긴 성접대가 사실이라고 전제하면 그렇다.

김씨는 2009년 기소돼 지난해 11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 받았다.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심 선고내용에 성상납 강요 혐의는 없다. 재판부가 인정한 혐의는 전속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장자연 씨를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다. ‘사적인 술자리 등에 장자연 씨를 동석시킨 점’도 인정했지만 성상납 강요 혐의를 특정하진 않았다. 애당초 공소사실에 성상납 강요 혐의가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씨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김씨가 성상납 강요 혐의를 인정하면 자신의 죄가 추가된다. 2심이 진행되고 있는 협박-폭행 혐의 외에 성상납 강요 혐의가 추가돼 기소된다. 그리고 강화된다.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던 1심 형량보다 훨씬 무거운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김씨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정반대일 수 있다. 김씨가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해 ‘장자연 리스트’는 허구라고, 장자연 씨가 착오에 의해, 또는 의도적으로 거짓을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하면 판이 뒤바뀐다. ‘조선일보’의 표현을 빌리면 “온갖 풍설”이 “어처구니없는 일”로 공인된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장자연 씨가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성상납을 강요받은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이 증언을 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어렵다. 그 뒤에 돌아올 멍에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재판부가 장자연 씨의 편지 내용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검찰이 김씨에게 성상납 강요 혐의를 덧붙여 추가기소하지 않더라도,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을 기소하지 않더라도 재판부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미 기소된 사람들이 있다. 2년 전 ‘장자연 리스트’ 파문 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특정인 등을 거명해 고소당한 민주당 의원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아, 깜빡했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긴 하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전면 재수사를 하는 방법이다. 정말 그렇게 할지, 그렇게 한다 해도 끝까지 파고들지 잘 모르겠지만….

▲사진=고 장자연 씨 영정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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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말했다. 방송권을 따려는 신문사들이 허가권을 쥔 이명박 정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정부 비판기사를 자제하고 있다는 말, 그리고 정부는 종편을 따려는 신문사들의 처지를 역으로 이용해 친MB적 상황을 유도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소리를 전하면서 경고했다. “장난치면 안 된다”고, "방송허가 빌미로 정치게임 말라"고. <원문 보기>

그러면서 ‘까놓고’ 말했다. 이렇게.

“방송계의 다양성 확보. 다시 말해 보수, 우파 또는 주류사회의 폭넓은 견해를 대변하는 매체의 출현이라는 대의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주목하자. 그가 말하는 방송은 ‘보수, 우파 또는 주류사회의 견해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방송이 아니다. ‘대변’하는 방송이다.

김대중 고문은 공적 재산인 방송을 ‘사기업’인 신문과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다양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보수, 우편향의 논조를 가진 신문도 있고, 진보, 좌파성향의 논조를 가진 신문도 있(는)” 것처럼 방송도 좌파 방송이 있으면 우파 방송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양성은 모든 방송이 공정성 틀을 통해 구현해야 하는 가치인데도 오히려 두 개의 편으로 방송을 가르는 기준으로 여긴다. 

김대중 고문의 기상천외한 방송관을 접하니 반문이 절로 나온다. 이런 것이다.

그럼 왜 이른바 좌파방송을 물고 늘어지는 걸까? 김대중 고문의 주장대로 ‘보수, 우파 또는 주류사회의 폭넓은 견해를 대변하는’ 방송이 정당하다면 ‘진보, 좌파 또는 비주류사회의 폭넓은 견해를 대변하는 방송’ 또한 정당한 것 아닐까? 그는 뭐라고 답할까?

‘YES’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가 몸담고 있는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이 방송을 공격한 주된 논리가 편향성이었으니까 ‘YES’라고 대답하면 이전의 공세는 부당한 침공이 된다. 'NO'라고 해도 곤란하다. 그렇게 답하는 순간 독선에 빠진다. 방송이 우파는 대변해도 좌파는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배째라‘ 주장과 비슷하다.

혹시 이런 걸까? 종편은 좌파 우파 대변해도 되지만 지상파는 그러면 안 된다는 주장일까? 지상파는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니까 특정 이념에 경도돼선 안 되지만 종편은 케이블을 이용하는 '사기업'이니까 특정이념을 대변해도 된다는 주장일까?

어림없다. 이런 식으로 지상파와 종편을 나누려면 다시 짜야 한다. 방송통신위가 갖고 있는 종편 허가권과 심의징계권을 내놓고 원하는 곳은 누구나 신고만 하면 종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양성은 자율성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달리 방법이 없다. 김대중 고문의 방송관을 논리 영역에서 해석할 방도가 없으니 그냥 이렇게 이해하자. 실수한 거라고, 무심결에 천기를 누설해 버린 것이라고 이해하자.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려는 진짜 이유를, 방송통신위가 ‘돈 있는 신문사만의 잔치판’을 여는 진짜 이유를 얼떨결에 내비친 것이라고 이해하자. 방송원리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고 정치게임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자.

Posted by '토씨'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올해 초부터 접촉했다고 한다. 세종시에 기업과 대학 등을 유치하기 위해 10여 곳을 접촉했다고 한다. 삼성과 한국품질재단, 삼진엘엔디, 동양E&P, 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기업은 물론 세계 10대 병원그룹인 싱가포르계의 파크웨이그룹과 호주 최대 금융투자회사인 맥쿼리그룹, 그리고 서울대 KAIST 보스턴 대학 등을 접촉했다고 한다. <기사 보기>

시점에 주목하자. 정부가 기업과 대학 등을 접촉한 시점은 주로 올해 초다. 파크웨이그룹과는 1월과 4월에, 삼성과 서울대 KAIST와는 3월에, 맥쿼리그룹과는 6월에 접촉했다. 세종시 수정 입장이 공식화되기 전에, 더 정확히 말하면 정부와 여당이 공식적으로 ‘원안 고수’ 입장을 펼 때 접촉한 것이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추측하지는 말자. 정부가 일찌감치 세종시 수정 입장을 세우고 기업과 대학들을 접촉했다는 식의 단선적인 추측은 삼가자. 정부 관계자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단다. “당시에는 세종시의 기능 변경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세종시의 자족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기업과 투자 유치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했단다.

선의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의 이 같은 말에 따르면 정부가 애초에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족기능이 떨어져 세종시가 유령도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닌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근데 꼬인다. 선의로 해석하면 할수록 정부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식적인 추측은 이런 것이다. 정부가 올해 초부터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고, 그래서 세종시가 유령시가 되는 걸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헌데 이게 아니다. ‘조선일보’는 다르게 해석했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 문제를 본격 제기하기 전에 이미 기업 유치 작업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 5월에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세종시에 ‘천연약재박물관’ 설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했다. “기업 투자에 상당한 진척이 있다”는 정운찬 총리의 발언, “3-4개 기업과 협상 중”이라는 권태신 총리실장의 발언도 사례에 포함시켰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해석과 사례에 따르면 정부의 행정비효율 논리는 몰라도 유령도시 우려만은 애당초 과장 또는 왜곡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행정부처 이전을 전제로 기업과 대학 유치에 일정한 성과를 냈는데도 국민 앞에서는 유령도시 운운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 접촉 개시 시점과 유치 성사 시점을 나눠보는 경우다. 애초에는 행정부처 이전만을 ‘당근’으로 제시해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세종시 수정 입장을 정한 후 세제 혜택과 토지 저가 제공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해 성사시킨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해석엔 맹점이 있다. 행정부처 이전이란 ‘당근’보다 세제 혜택과 토지 저가제공이란 ‘당근’의 중량과 신선도가 더 크다는, 입증되지 않은 전제를 깔고 있기에 그렇다. 아울러 아직 확정되지 않은, 기껏해야 정부가 이제야 검토하는, 그래서 기업과 대학에 ‘보증’할 수 없는 방안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또 하나, 어쩌면 더 중요한 맹점이 있다. 나눈다는 것이다. 행정부처 이전이란 ‘당근’과 세제 혜택과 토지 저가제공이란 ‘당근’을 조합할 수 없는 별개의 인센티브로 나눈다는 문제다.

상식적으로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다. 세종시의 자족기능이 정말 문제였다면, 그래서 행정부처 이전에 기업과 대학 유치를 추가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면 일찌감치 꺼내들 수 있었다. 행정부처 이전에 세제 혜택 및 토지 저가제공 카드를 추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세제 혜택과 토지 저가제공은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아니라 기업도시에 적용되는 인센티브인 것처럼 선을 그어버렸다. ‘하다가 안 된’ 게 아니라 ‘애당초 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 11월 16일자 1면 머리기사

Posted by '토씨'


민족문제연구소는 낙관했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한 만큼 논란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반발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친일인명사전’에 ‘창업주 김성수’와 ‘사장 방응모’의 이름이 오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격하게 반발한다.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다. 이들이 주되게 반박하는 건 내용이 아니라 발간 주체다. ‘동아일보’는 사설 한 귀퉁이에서, ‘조선일보’는 단신 처리한 사실기사에서 “객관적인 자료”의 신빙성과 친일 행적 선정 기준을 잠깐 문제 삼기는 했지만 공격 포인트는 발간 주체에 맞추고 있다.

‘동아일보’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공산주의 지하조직”이었던 ‘남민전’에 가담한 전력을 부각시킨 뒤에, 또 좌파 인사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너그럽게 평가한 점을 제기한 뒤에 규정했다. ‘친일인명사전’을 “좌파사관”의 소산으로 치부했다. <사설 전문보기>

‘조선일보’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주체를 “조국 광복 운동에 손가락 하나 담근 적이 없는 정체불명의 인사들”로 규정한 뒤에, 또 해방 직후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인사(688명)와 광복회가 2002년 내놓은 친일인사 명단(692명)보다 훨씬 많은 4389명을 추린 점을 부각시킨 뒤에 저의를 의심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곳에서 ‘박정희는 친일잔당’과 같은 “붉은색 구호들”이 쓰여 있었던 점을 들어, 또 같은 곳에서 ‘대통령 선거 다시 하자’는 피켓이 등장하고 애국의례 대신 민중의례가 진행된 점을 들어 규정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대한민국 정통성(을) 다시 갉아먹은” 행위로 규정했다. <사설 전문보기>

왜일까? 왜 두 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객관적인 자료”에 대한 논박보다는 발간 주체의 ‘정체’를 공격하는 데 주력했을까?

'서론'만 놓고보면 답이 얼추 나온다. 오늘 제기한 문제만 놓고 보면 '저의'가 대충 읽힌다.


상승한다. ‘친일인명사전’이 제시한 “객관적인 자료”를 논박하면 논란이 커진다. 최종적인 사실규명(그들 입장에서)에 이를 때까지 그들이 ‘보위’하려는 사람들의 친일 행적은 국민적 화두가 된다.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런 논란 자체가 이면을 들추는 일이다. 국민들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또는 혐의)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빚는다. 더구나 ‘친일인명사전’이 제시한 “객관적 자료”를 근저에서 부정하는 사실 규명이 아니라 공과 과를 함께 봐야 한다는 식의 가치 평가로 논란이 전개되면 친일 행적은 부분적이라 해도 사실로 굳어진다.

효율적인 방법은 ‘권위’를 깨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주체의 대표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격하시킬 수 있다. 발간 주체를 “정체불명의 인사들” 또는 ‘좌파’로 몰면 그들이 만들어낸 ‘친일인명사전’의 의미를 자동으로 삭감시킬 수 있다. “정체불명의 인사들”의 놀음 결과, 또는 ‘좌파’의 이념공세 부산물쯤으로 평가절하 할 수 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친일인명사전’의 수정이 아니라 폐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이 8일 백범 김구 선생 묘 앞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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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큰일’을 벌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마지막 금기’로 설정했던 고교별 수능 성적을 공개해버린 것이다. ‘조선일보’ 스스로 표현했듯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이다.

거든 사람이 있었다.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그가 앞장서서 수능 원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끝에 결국 교과부로부터 CD에 담긴 해당 자료를 넘겨받았다. 2200여개 고교의 수능 원자료가 담긴 CD였다.

하지만 반쪽짜리였다. 교과부가 넘겨준 자료는 교명 대신 코드로 처리된 자료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조선일보’가 “별도의 확인과정을 거쳐” 2200여개 고교 중 1500개 안팎의 고교 이름을 확인했다. 그리곤 보도했다. 2009학년도 수능 성적 중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의 고교별 평균점수를 분석한 결과 상위 30개 고교 중 26개교가 특목고(과학고는 수시전형 진학이 많다는 이유로 분석대상에서 제외했다)였다고, 고교별로는 대원외고가 1등, 민족사관고가 2등, 한국외대부속외고가 3등이었다고 보도했다.

짚을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과부는 해당 자료를 넘기면서 단서를 달았다. ‘연구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단서였다. 그런데도 조전혁 의원은 해당 자료를 언론사에 넘겼다. ‘연구 목적’이 아니라 ‘보도 목적’으로 쓰일 게 분명한데도 스스럼없이 넘겼다. 무엇이었을까? 그 의도가.

교과부는 어느 고교인지 식별이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코드를 붙였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별도의 확인과정”을 밟는 데 성공했다. 2200여개 고교 중 1500개 안팎 고교의 코드 번호가 뭔지를 밝혀냈다. 어디였을까? 그 통로가.

궁금하지만 미루자. 그보다 더 급한 게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순간, 누가 열었는지는 둘째 문제가 된다. 급한 건 상자에서 튀어나온 질병을 퇴치하는 일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학교 서열화 심화 해결 방책을 찾는 게 무엇보다 긴요하다.

‘조선일보’는 1500개 안팎의 고교 가운데 “상위 100개 학교들만 기사에 적시했다”며 “나머지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 서열화’에 대한 우려를 감안해 공개 여부를 점차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건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르면서 뺨치는 격이다.

이치가 그렇다. 특목고와 일반고 간의 서열화 현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누구나 다 아는 공지의 사실이다.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조선일보’의 고교별 수능 점수 공개로 특목고 내, 그리고 일반고 내의 서열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됐다는 점이다. ‘일반고보다 나은 특목고’로도 모자라 ‘더 나은 특목고’ ‘더 나은 일반고’ 현상까지 빚게 됐다는 점이다. ‘일반고보다 나은 특목고’에 가기 위해 기를 쓰던 학생과 학부모에게 ‘더 나은 특목고’ ‘더 나은 일반고’에 가기 위해 용을 써야 하는 부담을 지우게 됐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건가?

절망하지는 말자. 그래도 솟아날 구멍이 열려 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반쯤은 열려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몇몇 한나라당 의원들이 입을 모았다. 지난 6일 안병만 교과부 장관을 불러 앉혀놓고 외국어고를 폐지하라고 입을 모았다. 입시기관화 된 외국어고 때문에 사교육이 창궐하니까 차라리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면 된다. ‘일반고 전환’이 아닌 게 찜찜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번 시도할 만하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까 이렇게 가능한 것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헌데 왜일까? 불안하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보내는 박수가 ‘나이롱 박수’로 끝날 것 같다는 예감에 빠져든다. 이런 점들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제동을 걸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국어고 폐지’를 합창한 지 이틀 뒤에 사설을 실어 반대했다. 외국어고를 폐지할 게 아니라 “존재 목적을 살리는 대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들어갈 수 있도록 선발 방식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등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던 차(전인지 후인지는 알 수 없지만)에 조전혁 의원은 ‘조선일보’에 수능 원자료를 넘겨 고교별 수능점수 보도 길을 열어줬다. 어떤가? 이 현상이 외국어고 폐지 주장에 부합하는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드로 처리된 교명을 확인하는 과정은, 게다가 1500개 안팎의 방대한 교명을 확인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해냈다. 교과부는 ‘공개 절대 불가’를 외치는데도, 교과부 관계자가 아니면 쉬 접근할 수 없는 교명을 용케 확인했다. 어떤가? 이 현상이 외국어고 폐지 주장에 부합하는가?

자칫하다간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여권이 혼선을 빚으면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고, 교과부의 단속이 느슨해지면 교육 보도가 혼미해질 수 있다.

어찌어찌해서 외국어고 폐지에 성공하더라도 고교별 수능점수 공개가 관행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목고 내 서열화 현상 대신 자율형 사립고 내 서열화 현상이 빚어질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일반고도 마찬가지다. 창궐할지 모른다. 고교 선택제 시행과 함께 ‘더 나은 일반고’ 근처에서 위장전입이 급증할지 모른다. 근거리 배정 원칙이 적용될 3단계 전형을 노린 사람들이 총리 이하 다수 장관들이 개척한 ‘선의의 위장전입’ 관행을 좇을지 모른다.

▲캡쳐=‘조선일보’ 오늘자 1면 머릿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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