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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블로그 활동을 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좋아서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미디어의 틀에 구속되지 않고 여러 형태의 글쓰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소득을 거머쥡니다. '발견'입니다.

저의 부족한 표현력, 짧은 생각, 엉성한 구성을 발견합니다. 깊이 숙고하고 여러 번 퇴고를 해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확인합니다.

더불어 발견합니다. 글 밑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발견합니다. 저의 부족한 표현력, 짧은 생각, 엉성한 구성을 질타하는 댓글을 보면서 '야성적인 지성'을 발견합니다. 당사자의 항변성 논리도 아니고 전문가의 학자연한 고견도 아닌 자연상태의 '나안'을 발견합니다. 이게 민심이고 이게 여론이다 싶은 생각을 합니다. 이게 가장 정확한 시각이다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반갑고 뿌듯합니다. 그리고 배웁니다.

2.

'몰락한 386'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부적절한 단어, 세밀하지 못한 분류, 정교하지 않은 규정이 어김없이 걸러지는 걸 보면서 '보론'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원문을 보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현 시국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이어가야 할 필요성을 확인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부터 고쳐야 하는지를 끝까지 파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제 눈길을 사로잡은 댓글 두 구절이 있었습니다.

'속상해서' 님이 그랬습니다. '분노'는 "무력감의 다른 형태"라고 했습니다. 절절이 와 닿는 표현이었습니다.

얼마 전 다른 글('맥빠지는 선거, 서성이는 표심')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습니다. 표심이 서성이고 있다고,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믿고 의지할 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총선 투표율이 극히 낮을 것이라고 예감하면서 그 원인을 여기서 찾았습니다.

'속상해서' 님의 지적에 따르면 범위가 확장됩니다. 노무현 후보 지지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로 입장을 바꾼 상당수 유권자도 넓게 보면 방황하는 유권자입니다. 분노가 무력감, 즉 체념으로 이어진 겁니다.

문제는 원인이었습니다. 분노한 이유가 뭔지를 규명해야 했습니다.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게 바로 이 문제라고 봤습니다. 그 한 가운데 386이 있었다고 여겼습니다.

이념 대 민생의 이분법적 구도에 빠져 선택적 해법을 찾아선 안 됐습니다. 꼭 이 두 개념을 갖고 풀어야 한다면 이래야 했습니다. 민생 해결을 위한 이념적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진보적 입장에서 민생 해법을 제시해야 했습니다.

민주당과 386은 그걸 놓쳤습니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해법을 컨닝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민주당의 '정체성' 문제였습니다.

진보는 무정형의 개념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제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로 진보의 태도입니다. 진보의 속성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맞춰 진보의 스펙트럼 또한 끊임없이 조절돼야 하는 것입니다. 민주당과 386의원은 이 점에서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부정확했습니다. 386의 몰락 이유를 진단하면서 정밀하게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a' 님의 지적이 정확합니다. "386정치인의 실패는 자기정체성의 진화에 실패(한 것)"이라는 'a'님의 표현이 가장 분명하고 예리한 것입니다. 진화에 실패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진보의 의무를 저버린 것입니다.

4.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렵니다.

IMF환란 10년을 거치면서 중산층이 몰락했습니다. 재산과 소득, 교육과 여가 모든 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객관적 형세만 놓고 보면 '진보에의 요구'는 점증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계급 투표'의 여지는 넓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 지형은 보수 일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치 세력이 '진보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니까 유권자가 체념했고 이 체념이 복고적 투표성향을 낳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치 균형이 깨지고 있고 이념의 긴장관계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박합니다. 다시 균형 관계를 잡는 게 시급합니다.

하지만 멀어 보입니다. 총선에서 살아남은 민주당 인사들의 면면이 그렇습니다. 386보다 더 '과거'와 '보수'로 경도돼 있습니다.

5.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언론이 분류합니다. 보수 대 진보로 분류하고, 진보의 한 축으로 민주당을 놓습니다. 과연 옳은 분류일까요?

진보를 상대적 개념으로 쓰는 거라면 굳이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민주당은 진보가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중도'를 표방하고 있기도 합니다.

여기서 두 개의 물음표가 찍힙니다.

386은 왜 '중도' 민주당에 기거한 걸까요? 스스로 진보와 혁신을 주장하던 386이 '중도'에 몸을 실은 이유가 뭘까요? 현실 때문일까요? 이른바 원조 진보는 아직 성숙돼 있지 않아 개혁의 주도권을 쥘 수 없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중도' 민주당을 숙주로 삼은 걸까요? 그렇다면 386의 몰락을 '기생 부화'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종 판정해도 되는 걸까요?

이른바 원조 진보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민노당의 의석수는 반토막이 났고 진보신당은 원외정당으로 밀려났습니다. 유권자는 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은 걸까요? 왜 원조 진보는 '진보에의 요구'를 세력화하지 못한 걸까요?

발제하는 걸로 만족해야 겠네요. 짧은 필설로 담아내기엔 너무 큰 담론입니다. 고민과 반성, 그리고 인고의 나날을 보낸 다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물음입니다. 하지만 길게 보고 느긋하게 대처할 일도 아닙니다. 이 두 물음에 답을 내놓지 못하면 '서성이는 표심'에 거처를 제공할 수 없고, '체념하는 표심'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여러분의 '나안'과 '지성'이 필요합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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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후보 홈페이지

이번엔 민주당의 이인제 후보다. "국민들이 눈이 멀었다"고 했다. "각종 비리와 범죄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이명박 후보와 지난 대선 불법자금 당사자인 이회창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크게 변화가 없는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과 분노로 인해 국민들이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인제 후보에 앞서 대통합민주신당의 김근태 공동 선대위원장도 거의 똑같은 말을 했다. “국민 60%가 김경준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는데 이런 와중에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우리 국민이 노망든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오죽 갑갑했으면 저런 말을 할까 싶다. 위장전입에 위장채용, 땅 투기 의혹에 BBK의혹까지 생채기를 낼 만큼 냈는데도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대선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갑갑해 할 만하다.

아예 모르는 것 같지도 않다. 이인제 후보는 국민이 눈이 먼 이유를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과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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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위원장 홈페이지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과 분노"는 절반의 이유다. 국민이 '눈이 멀고 노망이 든' 이유를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길거리에 나가보면 안다. '전통적 범여권 지지층'이 선술집에서, 택시 안에서 입을 모은다. 찍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게 현실이고 민심이다.

무슨 말이냐고?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당시라고 해서 '김대중 정권에 대한 반감과 분노'가 없었던 게 아니다. 이른바 '홍삼 트리오'의 비리가 각종 게이트로 표면화됐고, 벤처·부동산·카드 거품은 터졌거나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곤두박질 쳤고 결국 탈당을 강요받았다.

지금과 비교해서 나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바람이 불었고 '이회창 대세론'은 꺾였다.

왜였을까? 5년 전에는 바람에 몸을 실었는데 지금은 왜 '노망'이 들어 거동조차 제대로 못하는 걸까?

대선이 정권 심판의 기능만을 담당하는 건 아니다. 미래 비전을 채택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 범여권은 이걸 간과하거나 실천을 못하고 있다.

5년 전의 노무현 후보에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정체성이 있었다. '비주류 출신의 개혁일꾼'이라고 하는 뚜렷한 색깔이 있었다. 10년 전의 김대중 후보가 '정권교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면 5년 전의 노무현 후보는 '확실한 개혁'이란 비전을 내걸었다. 이런 비전이 '미워도 다시 한번'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지금의 범여권은 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가족행복시대'라는 거창한 꿈이 오히려 지금의 '불행'을 부각시킨다. "내가 당선되면 그것이 곧 정권교체"라면서도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애써 비껴간다.

색깔도 없다. 아니, 스스로 색깔을 회색으로 만들고 있다.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을 '과거로의 회귀'로 착각했는지 민주당과의 합당,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를 섣불리 추진했다가 면구스런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개개인의 경쟁력도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참여정부의 2인자로 '실정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인제 후보는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눈이 먼 게 아니라 차마 눈 뜨고 못 봐 고개를 돌린 것이다. 노망이 든 게 아니라 마음이 차갑게 식어 몸까지 굳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소식이 들린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김효석 원내대표가 오늘 열린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을 치하했다고 한다. "끈질기게 (BBK의혹의)진실을 파헤치는데 앞장서준 의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고 했단다. 이번 주가 BBK 수사의 고비가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국민 60%가 김경준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는 이런 와중에도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세태가 갑갑해 '노망'을 입에 올린 마당에 뭘 또 기대하는 걸까? 어떤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보기에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걸까?

믿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의혹 제기와 검찰의 수사결과는 급이 다르다고, 그래서 검찰이 이명박 후보와 BBK의 연관성을 밝혀내기만 하면 그게 마무리 펀치가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대통합민주신당이 창조한국당과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작업을 물밑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확신이 전망으로 이어지나 보다. BBK로 타격을 입은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30%대로 하락하고, 정동영·문국현 단일화로 범여권 후보 지지율이 30%로 올라서면 이명박 대 이회창 대 범여권 단일후보의 3자 황금분할구도가 성립되고 그러면 이길 수도 있다고 전망하나 보다.

꽤 그럴듯한 그림이다. 정치는 생물이니까 가능성이 없다고 딱 자를 수도 없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이른바 '3자 황금분할구도'는 판세를 재조정하는 것이지 판을 끝내는 게 아니다.

요체는 여전히 정체성이고 색깔이며 비전이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