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참 대단한 민주당이다. 의석수가 한나라당의 절반도 안 되는 꼬마 정당이, 게다가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이 정치 교사를 자임하고 나섰다. 꼬마 야당이 공룡 여당에게 온몸으로 훈수를 두고 나선 것이다.

원혜영 원내대표가 그랬다. 청와대의 ‘장관 인사청문특위 비토’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원구성에 응할 수 있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고 국회의장과 한나라당 대표의 ‘대타 유감 표명 ’을 받아들인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실적으로 대통령 사과의 재발방지를 받아내는 건 포기했다"고 했다. "우리는 대통령의 사과 뒤에 원구성을 해야 한다는 단계론이었으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일괄로 하지 않으면 협의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원혜영 원내대표의 말은 장황했으나 설명 요지는 아주 간명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원혜영 원내대표의 이런 판단을 놓칠 리 없는 한나라당이다. 순간적으로 알아챘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무조건 밀어붙이면 이긴다’는 경험칙을 뇌리에 새겼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참 통 큰 민주당이다. 한나라당에 귀중한 가르침을 줬는데도 수업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선물까지 선사했다.

원구성에 전격 합의하기 하루 전에 민주당이 밝혔다. 민노당·창조한국당과 함께 정연주 KBS 사장 해임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이 방안을 원구성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거둬들였다. 이 연계전략을 전격적으로 거둬들이고 한나라당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당초 합의했던 ‘상임위원장 6자리’만 재확인한 뒤에 조건없이 원구성에 응하기로 했다.

3.
참 기발한 민주당이다. 기존의 정치학 원론을 뒤집고 새 학설을 제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서류에 사인을 하자 언론장악저지대책위가 성명을 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언론자유는 오늘 죽었다"고 했다.

이 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원혜영 원내대표는 원구성에 전격 합의를 해줬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면적인 국정의 난맥상을 대처하는 데 있어 국회라는 공론의 장을 확보하고 이를 중심으로 대응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우 새롭다. 언론이 자유로워야 여론의 공개시장이 살고, 여론의 공개시장이 살아야 대의제가 구현될 수 있다는 정치학의 ABC와는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언론자유”가 죽었는데도 “공론의 장”을 살릴 수 있다고 하니 이 어찌 새로운 주장이 아니겠는가.

부활의식은 고사하고 위령제도 치르기 전에, 봉분에 풀이 돋아나기도 전에 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니 이 어찌 기발하지 않겠는가.

4.
어디 이뿐인가? 참 신묘한 재주도 지녔다. 하나의 논리를 갖고 만사에 갖다붙이는 고탄력 고무줄급 재주까지 선보였다.

대통령의 사과는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청와대가 ‘장관 인사청문특위’에 비토를 놓으면서 내건 명분이 ‘법과 원칙’이었다. 인사청문회법에는 국회의 임명동의를 받아야 하는 공직자 후보에 한해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며 “법을 어기라는 말이냐”고 반문했었다.

청와대의 이 주장에 따르면 민주당의 사과 요구는 씨알이 먹힐 수 없는 것이었다. 청와대 보고 “법과 원칙을 어겨 죄송합니다”라고 고개 숙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요구했다. “전면적인 국정의 난맥상”을 걱정했으면 대통령 사과와 같은, 가능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요구에 매달릴 게 아니었는데도 요구했다. 그리고 또 다시 “전면적인 국정의 난맥상”을 이유로 이 요구를 거둬들였다.

그나마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던 ‘정연주 해임 국정조사’ 방안까지 거둬들였다. 똑같이 “전면적인 국정의 난맥상”에 시급히 대처해야 한다는 이유로 ‘없던 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언론자유”의 죽음을 선포하면서도 그것보다 더 급하고 중한 상위의 ‘국정’을 설정하며 뒤로 물러났다. “전면적인 국정의 난맥상”에 “국회라는 공론의 장”이 채택할 수 있었던 구체적인 대처방법을 스스로 포기했다.

5.
그래서 그렇다. 민주당이 참으로 대단하고, 통 크고, 기발하고, 신묘한지는 몰라도 지켜보는 느낌은 참으로 칙칙하다.

그럴 바에는 뭣하러 뛰쳐나왔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신네들의 오락가락 행보가 오히려 “국정의 난맥상”에 진지하게 대처하려는 ‘거리의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고, 황당하게 만들고, 진을 빼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묻는 것만으로 부족하니까 이 말을 덧붙이자.

정당이 자리할 곳이 국회라는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니까 인정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제쳐놓고 국회로 돌아가는 걸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대신 내놓기 바란다. 국회에서 어떻게 “전면적인 국정의 난맥상”에 대처할 것인지, 그 전략을 내놓기 바란다. 이번과 같이 지리멸렬하게 대응하다가 “어쩔 수 없었다”고 푸념하면서 무기력하게 끌려가지 않을 방책이 뭔지를 제시하기 바란다.

▲사진=김형오 국회의장 주재로 11일 열린 여야3당 원내대표 회담 ⓒ한나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곡을 해야 할 판이다. 조문을 읽고 조종을 울려야 할 상황이다.

정연주 사장을 애도하는 조문이 아니다. KBS의 공영성에 조종을 울리려는 것도 아니다. 그건 전체가 아니다. 부분일 뿐이다.

‘국가’가 무너졌다. ‘국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위패를 준비해야 할 만큼 ‘국가’의 신뢰는 기사상태에 빠졌다.

총동원됐다. 국가의 중추기관이 거의 망라되다시피 했다. 정연주 사장 한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 국가 운영을 담당하는 중심축이 횡과 종으로 도열해 매스게임을 연출했다.

감사원은 해임을 권고했고, 검찰은 배임 기소를 담당했으며, 경찰은 해임 가결을 보위했다. 조중동은 해임의 정당성을 설파했고 대학은 한 이사, 나아가 정연주 사장의 해임 기반을 조성했다.

더불어 무너졌다. 권력기관의 권위가 무너졌고 언론기관의 불편부당성이 붕괴됐으며 학문기관의 순수성이 얼룩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감사원이 해임 권고의 사유로 삼은 ‘현저한 비위’와 검찰이 기소의 근거로 든 ‘업무상 배임’이 법원 판결로 확정되면 되는 것인가? 조중동이 공격 논리로 삼았던 편파성이 국민에 의해 인정되고 동의대가 해고 사유로 들었던 근무 태만이 입증되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국가기관 총동원은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가 되고 나라 바로세우기의 일환이 되는 것인가?

인정할 수 없다. 아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비위와 배임은 논란 요소를 제거하지 못한 일방적 주장에 머물러 있으며, 편파성은 역편파의 증좌로 설파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고, 근무태만은 감독태만의 역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국민 다수가 전폭적 동의를 표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칼을 빼들 때가 아니라고, 지금은 좀 더 많이 토론하고 좀 더 충분히 입증해야 할 때라고 여긴다. 비위와 배임은 최소한 법원의 심판이라도 한 번 받아봐야 한다고 보고 있고, 편파와 근무태만을 읊조리려면 그 주체의 정당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간주한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 공감대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정권의 국정 일정표에 맞춰 국가기관이 군말없이 시중을 드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어떤 국민이 국정에 신뢰를 보내고 자발적 참여를 마다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물으면 될 일 같다. 밀어붙이면 될 것이다. 이사회가 가결한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을 청와대가 받아들이면, 그래서 다른 사장을 앉히면 과정의 굴곡이 있더라도 KBS 물갈이는 얼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거기서 그칠 것 같지 않다. 그 다음이 문제다. 그렇게 새로 짠 국가기간방송 KBS를 통해 뭘 방송하려고 하는 것인가?

정연주 사장과 함께 국가기관의 권위와 국가행정의 신뢰가 순장됐는데 도대체 ‘정연주 무덤’ 위에 무슨 꽃을 피울 수 있단 말인가?

▲사진=KBS 이사회장 앞에서 사복경찰들이 사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마음이 무척 안 좋네요. 참담하다고 할까…. 그래도 ‘보류’ 정도로 신중히 판단하길 기대했는데…. 감사원이 수십 년 전으로 퇴보하고 만 것 같습니다.”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 결과를 접한 이문옥 전 감사원 감사관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이문옥 전 감사관의 감사원에 대한 소회는 남다르다. 1990년 삼성 등 재벌 로비에 의한 비업무용 부동산 투기 감사중단을 폭로한 뒤 ‘공무상 비밀누설’로 옥고를 치르며 떠났던 감사원이다. 법원으로부터 복직판결을 받아 1999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던 감사원이다. 어찌 소회가 남다르지 않겠는가?

이문옥 전 감사관은 이날 감사위원회 결과가 나오기 직전까지 다짐하듯 몇 번이나 ‘지켜보자’고 말했다. 실낱같은 믿음이라도 지키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 전 감사관의 목소리는 해임요구 결과를 전해들은 후 무겁게 가라앉았다.

“국민감사청구 절차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친 이명박 정부 성향 뉴라이트 단체들의 감사청구에, 온갖 무리수를 두며 정연주 사장을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상황에서 검토할 시간이 남아 있는데도 KBS 이사회 일정에 맞추듯 몰아붙여 결정을 내린 것은 글쎄, 오비이락도 이만저만한 오비이락이 아닐뿐더러 국민들에게 오해를 살 충분한 이유를 주고 말았네요. 짜여진 틀대로 진행됐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그는 “감사원이 또다시 역사에 남을 먹칠을 하고 말았다”며 탄식했다.

이문옥 전 감사관은 감사원이 ‘정연주 찍어내기’의 선봉에 선 것을 태생적·구조적 한계 탓이라고 했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지난 5월 임기를 남기고 자리에 물러나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감사원장 임명권한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적어도 감사위원까지 바라보는 영향력 있는 내부구성원들이 이번 감사위원회에서 어떤 방향을 잡았겠습니까?

특감 결과는 대통령 직속이라는 감사원의 위치와 맞물린 문제입니다. 이번 뿐이 아니었죠. 김대중 정부 때도 고 정몽헌 현대 회장과 관련한 감사 건과 관련해 감사원이 ‘고발할까요?’라고 청와대에 물었고, 청와대는 ‘통치행위’라며 못하게 했잖아요.”

“친목단체를 하나 만들어도 감사는 집행부가 아닌 회원들이 임명을 하지 않냐”고 되물은 이 전 감사관은 해법은 ‘감사원 독립’이라고 했다.

“완전한 독립기관이 되던가 아니면 국회 소속으로 가야죠. 대통령 책임제 국가에서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인 경우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감사원 독립 이야기가 하루 이틀 나온 말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감사원을 장악하고 싶다는 유혹은 어느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야당 시절엔 그렇게 감사원 독립을 외쳐놓고는 여당이 돼선 아무 말도 안하는 걸 보면….”

하지만 요원하다. 이문옥 전 감사관이 내놓은 ‘감사원 독립’이 근본적인 해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권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당장의 방법은 뭘까?

얼마 전 허리 수술을 받은 부인을 돌보러 가야 된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이 전 감사관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제가 경험한 잘못된 권력의 폐해는 정말 무섭더군요. 결국 남은 것은 국민밖에 없네요. 방송도 감사원도 국민이 지켜줘야 합니다.”

▲사진 제공=시민사회신문

Posted by '토씨'


※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제 글에 대해 ‘댓글’을 달았습니다. 지난 24일 <미디어토씨>와 <프레시안>에 게재된 ‘원희룡의 바른말, 시원한데 허전하다’에 대한 ‘댓글’을 26일 ‘프레시안’에 기고했습니다. 문제를 먼저 제기한 제 입장에서 당사자인 원희룡 의원의 ‘댓글’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이 글을 싣습니다.


그렇습니까? ‘보수의 혁신’을 통해 한나라당을 환골탈태시키고 싶었다고요? 함께 하기 위해 혼자라도 먼저 시작해야 할 때가 많았다고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원희룡 의원이 제 글에 대한 ‘댓글’에서 밝힌 입장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겠습니다.

저는 원희룡 의원을 향해 “왜 한나라당에 있는가?”라고 질문한 적이 없습니다. “당과 맞지 않으면 떠나라”는 공격도 한 일이 없습니다. 원희룡 의원이 왜 한나라당에 입당했냐고 비판한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건 원희룡 의원의 자유의지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작금의 정치지형을 볼 때 원희룡 의원이 한나라당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보다 안에서 할 일이 더 많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판했고 당부했습니다. 한나라당 안에서 세를 모아 견제를 하라고, ‘과속 방지턱’의 역할을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접점은 딱 하나입니다. 원희룡 의원과 제가 차분히 논의해야 할 주제는 이것입니다. “함께 하기 위해 혼자라도 먼저 시작하는 (일)”, 그 다음의 전략과 세력입니다.

원희룡 의원은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만이 한나라당을 거듭나게 만들 것”이라며 “대의명분을 세우고 치밀한 전략 위에서 힘과 세력을 조직해 현실에 굳게 발 디디고 서서 실효성 있게 문제를 풀어가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원희룡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 그리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게 바로 그것일 겁니다.

대전제에 대해서는 공감을 이룬 것 같으니 구체적인 사례를 갖고 얘기했으면 합니다. 원희룡 의원이 직접 거론한 YTN 문제입니다. 그에 대해 원희룡 의원이 세워야 할 전략과 조직해야 할 세력은 뭘까요?

대의명분은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희룡 의원 스스로 “경선 당시 특보라는, 소위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는 인사를 (YTN 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선을 넘은 것”이라고 지적했고 저 또한 그런 지적에 동의합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을 넘은” 인사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위한 전략이 뭘까요?

원희룡 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 전략이란 것을 제시했습니다. “자진사퇴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원희룡 의원이 제시한 전략은 오직 이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저는 이것이 전략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건 '제3자의 하나마나 한 훈수’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묻고 싶군요. 구본홍 YTN 사장이 자진사퇴할까요? 원희룡 의원은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믿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합니다. 3선의 관록에 견주면 순진하다는 지적보다는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더 타당하겠네요.

구본홍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YTN 사원들이 사장실에 대못질을 하고 사옥 앞에서 출근저지를 하는데도 미동도 않고 있습니다. 구본홍 사장 본인의 입장에선 ‘수모’라면 ‘수모’일 수도 있는 일을 겪으면서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설령 구본홍 사장 본인이 자진 사퇴할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움직일 처지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원희룡 의원 스스로 쓴 표현, 즉 정부의 “방송장악” 전략에 따르면 YTN은 하나의 고비입니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YTN 사원과 국민의 반대에 막혀 뒤로 물러서면 다른 “방송장악” 구상도 흔들릴 테니까요.

제가 보기엔 구본홍 사장의 자진사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도 그렇게 믿는다면 그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거나 외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희룡 의원이 “자진 사퇴”를 주장하며 내건 “가능하다면”이란 가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그 다음 전략으로 뭘 제시할 건가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겠네요. 구본홍 사장이 "자진 사퇴"하면 만사가 끝나는 건가요?  원희룡 의원은 “자진 사퇴”가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이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자진 사퇴”는 “가장 좋은 해법”이 아니라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왜냐고요? 원희룡 의원의 다른 말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랬죠?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사퇴 압력에 대해 “KBS를 정상화 하고 언론 독립성을 살리는 방향에서 사장 교체를 주장하는 것은 몰라도 한나라당 정권 만들기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이를 요구하는 식은 안 된다”고요.

상반된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는 발언으로 이해합니다만 아무래도 좋습니다. 원희룡 의원의 말에 따르면 “독립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당위이니까요. 이 점만 확인하고 말을 잇겠습니다.

YTN 사장 선임 문제는 곁가지입니다. 줄기는, 본질은 정권의 “방송장악” 욕심에 있습니다. 이런 욕심이 “선을 넘은” 인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욕심이 YTN 뿐만 아니라 ‘스카이 라이프’와 '아리랑TV'에 특보 출신 사장을 앉혔고, KBS 사장을 몰아내려 합니다. 세간에선 이렇게 읽고 있습니다.

원희룡 의원이 전략을 세우고 세력을 조직화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진 사퇴”와 같은 땜질식 처방을 무기력하게 읊조릴 게 아니라 정부와 한나라당의 방송정책에 대해 전면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그 방지책을 내놔야 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이 힘을 얻도록 세를 규합해야 겠지요.

원희룡 의원의 진단에 따르면 KBS는 약간 다를지 몰라도 종국적인 처방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든 말든 “독립성”은 반드시 보장해야 하니까요.

어떻습니까? 행동에 나서 보시지요. 이참에 정부와 한나라당의 방송관련 법률안에 대해 총체적인 입장을 내놔 보시지요. 그 입장을 의원총회에 회부해 당론으로 채택해 달라고 원내대표에게 요청해 보시지요. 이런 요청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같은 당 동료의원들의 연서명을 받아 보시지요. 그게 원희룡 의원이 밝힌 “혼자라도 먼저 시작”하는 것이고, 뒤를 잇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일 것입니다.

나아가 대안적 성격의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홍역을 앓는 우리 방송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방송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사제도안을 입법화해 보시지요. 그게 아니라면 인사권자의 "선을 넘은" 인사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는 보완책도 좋습니다. 물론 10명 이상의 의원 서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원희룡 의원의 문제의식이 세력을 조직화할 수 있는지, 나아가 원희룡 의원이 자평한대로 한나라당이 “꾸준히 변화해 왔(는지)”를 잴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원희룡 의원에게 문제제기를 한 게 바로 이것입니다. 원희룡 의원의 ‘댓글’에도 불구하고 애초의 문제제기를 거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희룡 의원이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바른말’이 힘을 얻으려면, 그래서 한나라당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원희룡 의원 먼저 ‘바른말’을 몸소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답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원희룡 의원이 제 ‘답글’에 대해 다시 입장을 밝혀주신다면 성심성의껏 ‘재답글’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드리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 글 보기>
‘원희룡의 바른말, 시원한데 허전하다’
‘김종배 님의 비판에 대한 댓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