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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했다. 상황 파악을 잘 하고 처신하라는 속담이다. 헌데 무시한다. 차명진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44명은 이 속담을 비웃는다.

‘수도권의 계획과 관리에 관한 법안’을 오늘 발의하기로 했다. 수도권 과밀 억제를 위해 제정된 ‘수도권 정비계획법’을 폐지하고, 수도권 개발계획의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수도권 광역단체장에게 대폭 이양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불난 집에 휘발유 끼얹는 격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로 들끓는 대전충남지역 민심에 이중가격을 가하는 꼴이다. 내년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가 될 대전충남지역에서 자폭을 감행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

혹시 이런 걸까? 대전충남지역 만큼이나 격전이 벌어질 곳이 수도권이니까, 대전충남지역보다 표밭이 넓은 곳이 수도권이니까 우선 이 곳부터 챙기자는 셈법일까? 법안 발의에 참여한 수도권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가 최우선적으로 반영된 걸까?

익히 보아온 모습이기에 능히 도출할 분석이지만 이번엔 다르다.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심대평 총리 카드 무산 이후, 그리고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원점 복귀 불능, 원안 추진 불가’ 입장 표명 이후 행복도시 문제가 정기국회 최대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공조해 정기국회의 최우선 쟁점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 여파를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갈 것을 꾀하고 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불을 지를 이유가 없다.

또 하나 있다. 수도권 의원들의 ‘궐기’가 감행될 만큼 여권이 느슨하지가 않다. 오히려 청와대의 국정장악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에 정치적 부담을 주는 시도를 일부 의원들이 독자적으로 감행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다르게 봐야 한다. 최소한 청와대의 용인 또는 방조 하에 수도권 의원들이 길 닦기에 나선 것으로 봐야 한다. 이렇게 보는 정황이 몇 가지 있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된 후 청와대와 자유선진당이 진실게임을 벌일 때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행복도시 문제에 대해 “정부 입장이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뒤집어 읽을 수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정부기관 이전 고시까지 마친 문제인데도 정부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재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원안을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청와대의 총리직 제안을 받은 정운찬 내정자가 조언을 구한 김종인 전 의원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통령이 (행복도시 축소에) 집착하는데 그걸 하지 못하겠다면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프레시안’은 김종인 전 의원의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행복도시 문제 등에 대해) 정운찬 내정자의 입장에 대한 청와대의 사전 단속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풀이했다.

▲이렇게 에둘러 갈 필요가 없다. 아주 직접적인 말이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가 그랬다. “솔직히 세종시(행복도시)를 계획대로 건설하는 것이 국가적으로는 비효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년 선거나 국정 지지도 등을 생각하면 수정안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정황들이 말한다. 청와대는 이미 입장을 세웠다. 행복도시를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만, 정치적 여파를 고려해 결행 시기를 고민해왔을 뿐이다. 가급적 지방선거를 피해가는 방법을 강구해왔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결코 ‘돌출’이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수도권 규제완화법 발의를 돌출행동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청와대의 입장에 부응하고, 청와대의 방침에 복무하는 시도로 읽어야 한다.

감행 시기도 달리 읽을 필요가 없다. 청와대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기는 지방선거 이후겠지만 택일은 이미 물 건너갔다. 행복도시 문제는 이미 정기국회의 최대쟁점이 돼 버렸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여권 주류 일각에서 “이왕 불거진 이상 정면으로 돌파하자”는 얘기가 나온다(‘조선일보’ 보도).

한나라당 의원들의 수도권 규제완화법 발의는 강대강 전술의 일환으로 읽어야 한다. 정운찬 총리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나아가 정기국회 내내 쟁점이 될 행복도시 문제에 밀리지 않기 위해 선수를 치고 맞불을 놓은 것으로 읽어야 한다. 돌파를 위한 포석 또는 타협을 위한 포석으로 읽어야 한다.

▲사진=행복도시에 들어설 예정인 중앙청사 조감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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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한 질문부터 던지자. 왜 지금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제안한 선거제도 개혁과 행정구역 개편은 사실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이미 국회에 관련 특위가 구성돼 있는, 해묵은 과제다. 행정구역 개편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지난해 9월 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제 할 때가 됐다”고 언급했던 사안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제야 꺼냈다. 1년씩이나 묵혀뒀다가 이제야 꺼내면서 시점을 못박았다. 정기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묻는 것이다. 왜 지금일까?

민주당은 ‘국면전환용’으로 본다. 논의 개시 시점을 정기국회로 설정함으로써 민주당의 미디어법 원천무효 장외투쟁의 동력을 떨어뜨리고 국회 등원을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해석한다.

그럴 듯한 해석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 과대평가에 기초한 일방적 해석이다.

모른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인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투쟁을 벌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게다가 내부 교란요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디어법 하나 때문에 의원직 사퇴서를 던지는 건 무모한 것이라는 주장, 올해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해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의 장외투쟁이 그리 아프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민주당의 청구를 받아들이지만 않는다면 가만히 있어도 민주당이 알아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지금 국면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전환해야 할만큼 다급하지도, 심각하지도 않다.

다르게 봐야 한다.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 집권기반 강화용으로 읽어야 한다. 이런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기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달라고 주문한 형식적인 명분은 내년 지방선거 때문이다. 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지면 지방선거의 틀이 완전히 바뀌는 만큼 내년 지방선거에서 여야가 합의한 행정구역 개편의 틀을 알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형식적 명분이 실질적 내용을 규정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 할 나위없는 정치적 소득을 안겨준다.

보편상식이다. 지방선거가 정권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는 것은 여러 번의 지방선거에서 정립된 하나의 관행이다. 이 관행이 무너진다. 정기국회에서 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행정구역 개편이 이슈가 되면 정권 중간평가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행여 행정구역 개편 이슈가 시군구 통합 논의로까지 이어지면 소지역주의를 창궐시키면서 ‘대전선’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다. 방어적 입장에서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이명박 정부에겐 호재인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정기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과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면 묻힌다. 내년 예산안을 둘러싼 정부의 재정정책이 묻히고, 4대강 사업비와 사회복지예산의 비교평가도 묻힌다. 그 덕분에 이명박 정부는 소나기를 피해갈 수 있게 된다.

더 넓게 더 길게 봐도 마찬가지다.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다수가 전망하는 것처럼 중대선거구제 도입으로 귀착되면 이명박 대통령은 힘을 얻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당이 좀 손해를 봐도 꼭 이뤄내야 할 일로 여기고 있다지만 엄밀히 보면 손해 보는 건 여당이 아니라 박근혜계다. 여당 전체로 봐선 크게 손해 볼 게 없고, 특히 이명박계 입장에선 남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계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지분 일부를 내놓는 대신에 이명박계의 본거지인 수도권에선 지분 일부를 더 챙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2년 총선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실상의 심판이 된다고 가정하면, 그 심판의 물결이 수도권에서 가장 거셀 것이라고 전망하면, 그래서 수도권 이명박계 의원들의 타격이 영남권 박근혜계 의원들의 타격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상하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구명줄과도 같다. 반MB 덫에 걸릴지도 모를 수도권 이명박계 의원들에게 구명보트를 던져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을 하더라도 자신의 위상과 이명박 정부의 공을 보존할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부기 결과가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겹장사를 하려고 한다. 지역주의 타파와 국민 통합에 고심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획득하면서 정치적 발판까지 강화하는 이중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제64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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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잘리지 않는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그의 인책론을 펴고 있지만 이런 요구가 지금 당장 관철될 가능성은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미국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가 언제 어떻게 한국에 영향을 줄지 내다보기 어렵다. 범위를 예상할 수 없다. 금융에서 시작한 위기가 실물경제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게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만수 장관을 즉각 자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비상대책을 써야 한다. 경우에 따라 물불 안 가리고 가용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의 동의나 여론의 호응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조건 위기를 진화하는 데 진력할 ‘악역’이 필요하다.

비상수단을 준비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외환위기의 책임을, 경제실정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공세와 여론질타를 온몸으로 받아낼 ‘제물’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강만수 장관이다.


명분은 있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고사를 들면 그만이다. 경제가 비상상황인데 경제수장을 바꿔 행정공백을 자초해야 겠느냐고 반문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버티면 된다.

마냥 버티는 게 아니다. 길어봤자 연말까지다. 이때까지 버티면서 급한 불을 끄면 된다.

그래야 맞아떨어진다. 그렇게 해야 청와대가 짜놓은 일정표가 헝클어지지 않는다. 연말 개각을 통해 국정 분위기를 일신하려던 계획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물을지 모르겠다. 왜 연말이냐고? 왜 ‘터닝 포인트’를 연말로 단정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제시할 수 있는 근거는 두 가지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이 첫째 근거다. 그가 제기한 바 있다. 연말 여권 개편론을 주장한 바 있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연말 여권 개편론이 개인 의견인지 청와대와의 교감 아래 나온 주장인지를 물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즉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에 가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사실만 언급했다.

여권의 정황이 둘째 근거다. 청와대나 한나라당 모두 가을 정기국회를 별러왔다. 정기국회에서 ‘좌파 10년’의 흔적을 지우고 MB노믹스의 기초를 닦으려 했다. 야당이 반대하건 여론이 비판하건 아랑곳하지 않고 돌파하려고 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른 후 평시체제로 돌아가려고 했다.

연말까지다. 이 두 가지 근거에 기초하면 강만수 장관의 수명은 연말까지 연장된다고 전망할 수 있다.

돌려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근거를 기초로 다른 점을 추가로 제기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 부여된 시간 역시 연말까지다. 이때까지 외환 불안을 잠재우고 국정 일신의 계기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진창에 빠진다. 위기상황이 구조화 되면서 개각이나 강만수 장관 경질의 ‘약발’도 국정의 동력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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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고무돼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소기의 성과를 냈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세균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회동을 한 직후 민주당 지도부가 보인 모습이 이랬다. 이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대하겠다고 했다며 민주당은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회동은 “생산적”이었다고도 했다.

하루만이다. 그러고나서 하루만에 문건이 공개됐다. 한나라당의 국정감사 전략을 담은 문건이었다. 이른바 ‘노무현 정부 15대 의혹’을 선정해 상임위별로 어떻게 공격할지 그 실행계획을 담은 문건이었다.

이 문건이 실행에 옮겨지면 민주당이 다친다. 전·현직 민주당 의원 여럿이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민주당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른다(검찰의 ‘사정수사’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현재 진행중인 검찰 수사내용을 국회로 끌어들이는 게 온당한 일인지는 분명 짚어야 할 문제이지만 여기선 논외로 한다).

비유가 좀 ‘저렴’하긴 하지만 이것만큼 안성맞춤인 게 없다. 민주당은 몸 대주고 뺨 맞는 신세가 돼 버렸다.

애초부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 대접을 받을 처지가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올인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정책의 골간에 해당하는 법률안들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경제살리기’ 명분아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구현할 법률안들을 통과시키려 하고, ‘법질서 확립’ 미명아래 반대세력 길들이기에 동원할 법률안들을 처리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기초입법’에 해당하는 작업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돌파’는 숙명이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주춤거릴 수가 없고 야당이 공격한다고 물러설 수가 없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 정책이 흐트러진다.

‘초당적 협력’에 목말라 하지 않아도 된다. 한나라당이 과반을 점하지 못했다면, 민주당이 국민 지지를 듬뿍 받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실정은 그렇지가 않다. 한나라당 의석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왜소 야당, 국민의 15% 안팎만이 지지하는 홀대 야당을 대접하기 위해 국정을 양보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고 야당과 협상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다가 시한이 되면 절대 과반을 점한 의석 수로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후의 사정을 조금만 돌아봤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8대 국회 개원 협상이 타결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누구의 비토로 원위치 됐는지, 청와대가 한나라당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주문한 45개 법률안이 뭔지를 조금만 살폈어도 금방 알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번 정기국회 모드가 ‘전투’일 수밖에 없음을 쉬 알 수 있다.

이것 갖고 부족하다면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운영의 동반자”란 립서비스를 받기 훨씬 전에 이보다 더 한 대접을 받았던 사람이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그는 ‘국정의 동반자’일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파트너’로 치켜세워졌다. 말로는 그렇게 환대 받았지만 공천에서, 당 운영에서, 국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고 있지 않다(물론 박 전 대표 스스로 거부하는 면도 있지만).

현실이 이런데도 민주당 지도부는 개선장군이나 되는 양 행세했다. 제1야당의 위상을 확인했다고 자찬했다. 자칫하다간 여권에 휘둘리고 지지층에 비판받는 ‘동네북’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자신들이 ‘동반자’ 대접을 받게 됐다고 동네방네 떠들었다.

천지 분간 못하고 일희일비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을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중심이 없다는 해석 외에 굳이 다른 걸 붙일 필요가 없다.

‘야성’이 뭔지 그 개념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민주당 지도부의 모습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25일 회동 모습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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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례부터 나열하자.

모두 다섯 개다.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된 사건만 다섯 개다. 정상문 전 비서관의 건설공사 수주개입 의혹,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휴켐스 헐값 매입 의혹, 전대월 씨 주가조작 의혹, 강원랜드 비자금 조성 의혹, 대구 주상복합건물 인허가 청탁 의혹 등이다.

집중돼 있다. 수사 시점이 몰려 있고, 수사 대상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또는 참여정부 실세로 맞춰져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보기엔 아귀가 너무 잘 맞아떨어진다. 기획되고 조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사정이 개시되고 있는 것이다.

생경한 일은 아니다. 정부 출범 초마다 벌어졌던 일이다. 삐딱하게 볼 일도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는데 반대할 까닭이 없다. ‘잘못된 것’이 사실이라면 칼을 겨누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그렇다고 마냥 박수 칠 일도 아니다. 사정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본래 뜻에서 벗어나 ‘정치 보복’ 또는 ‘국면 전환’을 위해 악용된 경우가 적잖았던 게 우리 정치사이기 때문이다.

제한하지 않을 수 없다. 검·경이 이제 막 수사에 나선 상태다. ‘잘못된 것’의 실체적 진실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정치 보복’을 운위할 수도 ‘당연지사’를 읊조릴 수도 없다. 일단 지켜보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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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건 예외다. 사정의 결과나 진정성은 검·경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또는 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에 내려도 무방하지만 이건 예외다. 사정 바람이 몰고 올 당장의 정치적 영향은 지금 재야 한다. 사정 결과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사정 분위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사정 바람이 불면 스산해진다. 야당 인사들의 심리가 을씨년스러워지고 어깨가 움츠러든다. 언제 어디서 사정 칼날이 자신을 겨눌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일수록 입을 봉하고 핏대를 누그러뜨리게 돼 있다.

이것이 정기국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여당의 ‘우파입법’에 제동을 걸겠다고 벼르는 야당 인사들의 투쟁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 야당의 전유물에 가까운 국정감사의 김을 빼고, 야당의 보검에 해당하는 폭로전의 열기를 식힐 수 있다.

판도 바꿀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나 참여정부 실세의 비리 의혹이 보도되고 운위되면 집중된다. ‘노무현’에 시선이 맞춰지고 ‘노무현 프레임’이 부활한다.

이러면 새로 묘사할 수 있다. ‘노무현’이 ‘낡은 옷’을 입고 부활하면 ‘이명박’을 변화를 모색하는 새 기운으로 묘사할 수 있다. 더불어 정기국회에서 밀어붙이려는 ‘우파입법’을 ‘정상화’ 또는 ‘개혁’의 일환으로 주장할 수 있다.

소소한 목표도 아니고 일시적 바람도 아니다. 정기국회를 돌파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내년 정국이 달라진다.

10월 29일에 재보선이 예정돼 있다. 그리고 내년 4월에 또 한 번의 재보선이 치러진다. 만에 하나 이 두 번의 재보선을 견뎌내지 못하면 정부의 국정 장악력과 한나라당의 의정 주도력은 반감된다.

정기국회는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보루이자 마지막 기회다. 그것이 울며 겨자먹이든 비판적 지지이든 ‘반이명박’ 정서가 야당으로 흐를 여지를 없애야 한다. 이명박 정부에 반신반의하는 한나라당 지지층을 잡아 당겨야 한다. 그러려면 뭔가 보여줘야 한다. 한나라당 지지층엔 ‘보수개혁’하는 모습을, ‘반이명박’ 정서엔 ‘부패야당’의 모습을 각인시켜야 한다. 사정으로 분위기 잡고 ‘우파입법’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관건은 물론 성과다. 검·경이 수사 결과에 알맹이를 담을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사정이 정기국회에 미칠 영향, 정기국회가 정국에 미칠 영향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 것 말고 하나 더 있다. 국민 정서다. 국민 입에서 '사돈 남 말'이 나오고 국민 시선이 '검찰 저울'을 바라보게 되면 일이 흐트러진다. 이것을 어떻게 막느냐에 따라 사정의 효과가 달라지고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

▲사진 제공=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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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밑지는 걸까? 원구성 협상이 공전되고 국회 파행이 장기화 되면 누가 손해를 보는 걸까?

물어볼 필요가 없다. 급한 쪽이 손해를 보게 돼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다.

6개월을 허비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지지도가 최고점을 형성하는 기간, 그래서 이른바 ‘개혁 드라이브’의 최적기로 평가되는 기간을 맥없이 흘려보냈다.

이 기간 동안 ‘MB 입법’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고유가·고물가 대책을 뒷받침할 법안과 추경예산안을 비롯해 출총제나 부동산 세제 등을 전혀 손대지 못했다.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아무리 늦춰 잡더라도 가을 정기국회에서 이른바 ‘MB 입법’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헝클어진다. 정책 순위가 뒤엉키고 추진력이 떨어진다.

처리가 미뤄진 법안들만이 아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심혈’을 기울이는 방송과 인터넷 관련 법안 등도 가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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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 않는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어제 오늘 다짐성 코멘트를 흘린다. 광복절을 기점으로 어수선한 국정 상황을 해소하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얘기를 흘린다. 공기업 선진화를 필두로 교육, 민생대책 등의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희망사항’이다. 민주당이 ‘보이콧’을 선언한 이상 청와대의 바람은 아전인수식 희망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보이콧’을 풀지 않으면 원구성을 할 수 없고, 원구성을 하지 못하면 국회를 가동할 수 없다.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8월 중에 민주당을 토닥거려 국회로 끌어들이면, 원구성을 이뤄내면 가을 정기국회를 정상적으로 열 수 있다. 그 때 한 두름에 ‘MB 입법’을 몰아붙이면 된다.

근데 공교롭다. ‘사탕’이 없다. 민주당을 토닥거릴 ‘사탕’이 없다.

가장 쉽게 꺼내들 수 있는 ‘사탕’이 ‘자리’인데 여유분이 없다.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공동교섭단체가 등장해버렸다. 민주당에 내주기로 한 상임위원장 자리 6개 가운데 한두 개를 회수하거나 한나라당이 차지하기로 한 12개 상임위원장 자리 가운데 한두 개를 양보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다.

민주당 ‘자리’를 뺏으면 가뜩이나 뿔이 나 있는 민주당을 더 자극한다. 한나라당의 ‘자리’를 내주면 국회 주도권이 그만큼 줄어든다. 더구나 타결 일보직전까지 갔던 원구성 합의안을 놓고 한나라당 내에서 ‘지나친 양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태다.

이건 어떨까? ‘사탕’을 줄 수 없다면 ‘꿀밤’을 연신 먹이는 건 어떨까?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상상이 아니다. 한나라당 안에서 ‘강공’ 얘기가 흘러나온다. 민주당이 끝내 원구성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자유선진당-창조한국당과 협상을 벌여 원구성을 강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새어나온다.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이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 다시 딱지가 붙는다. 청와대엔 ‘오만과 독선’이란 딱지가, 한나라당엔 ‘독주’ 딱지가 붙는다. 더불어 강화된다. 여권의 오만과 독선·독주에 대한 경계심리가 강화된다. 또 물러설 곳이 줄어든다. 국민의 경계심리가 강화되면 될수록 야당이 한 발 뺄 뒷공간은 그만큼 좁아진다.

큰 부담이다. 청와대나 한나라당으로선 불리한 여론지형을 자초하는 것이고 민주당의 투쟁력을 높여주는 꼴 밖에 안 된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아예 깨끗이 마음을 비우는 게 더 생산적일지 모른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각오로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게 상책일지 모른다.

사정이 그렇다. 민주당에 양보안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렇게 원구성을 어렵사리 이룬다고 해서 민주당이 ‘MB 입법’에 순순히 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이미 ‘MB 입법’ 대부분에 대해 ‘불가’ 입장을 밝힌 상태다. 어차피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청와대나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가을 정기국회를 넘길 수 없는 만큼 ‘가을 대회전’은 피해갈 수 없다.

‘강공책’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고, 국민의 비난 세례는 감수해야 할 숙명이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달게 맞고 그 대신 소득을 최대한으로 챙기는 게 낫다. ‘도 아니면 모’를 선택하라고 민주당을 윽박질러 주도권을 잡고 그 주도권을 가을 정기국회까지 이어가는 게 좋다.

분명하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기조는 '강공‘이다.

불분명하다. 민주당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이런 강공 기조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금 당장은 ‘투쟁’을 외치고 있지만 이 구호를 계속 외칠지는 불분명하다.

당내에서 원외투쟁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민생대책에 대한 부담감을 주장하면 할수록 ‘투쟁’ 기반은 약화된다. 그럼 현실론이 고개를 든다. 어차피 이어가지 못할 ‘투쟁’이라면 수단으로 활용하자고, 이 ‘투쟁’을 발판 삼아 ‘전리품’을 하나라도 더 챙기자고, 그게 안 되면 이미 챙긴 ‘전리품’이라도 지키자는 타협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돌파할 수 있을까? 민주당 지도부가 이런 기류를 막아낼 수 있을까? 민주당 지도부의 대처 여하에 따라 가을 정국의 향배가 달라진다.

▲사진=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 회담 장면 ⓒ한나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