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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데 없다. 한나라당이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완화하고 노동법 개정을 미루기로 했다. 초중등교육법에서 교원 평가결과를 ‘인사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하려던 의무규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으로 바꾸기로 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 연장 등을 담는 노동관련법은 이번 회기 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법’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어찌된 일일까? 이번 회기에선 민생·경제법안을 처리하고 이른바 사회질서법은 협의해서 추진하자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했던 한나라당이다. 전교조에게 매타작을 퍼붓던 한나라당이다. 노동계에 고통 ‘분담’을 강요하던 한나라당이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갑자기 태도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그 이유가 뭘까?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말에 답이 있다.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법들은 이번에 처리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계산법이 숨어있다.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법들”을 다르게 해석하면 “특정 계층의 결기와 결속을 집단화하는 법들”이 된다.

이런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이 발화점이 돼 국민적 저항으로 확산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1996년 노동법을 날치기해 국민적 저항을 자초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을 강행처리했다가 당이 존립 위기에 내몰렸던 악몽을 다시 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른 것이다. 교원평가제를 고르고 비정규직을 고른 것이다. 이미 조직화 돼 있는, 그래서 언제든 집단적 반발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교사와 노동자를 일단 누르려는 것이다. 이들이 ‘생존’ 명분으로 국민에 파고들고, ‘연대’ 기치아래 거리에서 뭉치는 걸 막으려는 것이다. ‘생존’이 ‘민주’와 만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반발’을 고립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방송과 통신이고, 그게 바로 신문-방송 겸영과 사이버모욕죄 도입이다.

인터넷은 조직돼 있지 않다. 그래서 “집단적 반발”을 조직할 구심이 없다. 방송은 조직돼 있지만 결속력이 약하다. 설령 방송이 “집단적 반발”을 한다 해도 같은 언론 범주에 드는 다른 신문이 방송의 후방을 칠 수 있다. 그래서 “집단적 반발”을 최소할 할 소지가 있다.

이렇게 방송과 인터넷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에 “특정 계층의 집단적 반발”이 나타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에 전달되는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집단적 반발”을 “조직적 사보타지”로 각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태도를 누그러뜨린 게 아니다.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이다.

▲사진 = 전국언론노조가 오늘 오전 6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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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언론재단이 9월초 중·고교생 4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류 언론, 특히 조·중·동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및 사회기관 30개를 선정해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경우 0점, 중립적인 신뢰는 50점, 매우 신뢰하는 경우 100점'으로 해서 점수를 매기게 한 결과 MBC(59.2), KBS(55.69), 네티즌(55.05), 포털(54.57), ‘한겨레’(52.87)가 1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36.42로 22위, ‘동아일보’는 34.82로 24위, ‘조선일보’는 33.81로 25위에 그쳤다.

10대가 대학생이나 성인이 됐을 때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뉴스매체로 46.1%가 인터넷 포털을, 24.8%가 지상파TV를, 11.5%가 인터넷 신문을 꼽은 반면 무료신문은 6.9%, 신문은 4.9%에 불과했다.

현재 10대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읽는 신문은 ‘한겨레’(35.1%)였고 이들이 성인이 돼 스스로 신문을 구독하게 될 경우 선택할 신문도 ‘한겨레’(22.5%)가 1위였다.

이 연구결과에 가정 즉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면’이란 가정이 덧붙어져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온다.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올지 모른다고, 조·중·동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예단할 수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돼 있다.

그 이유 역시 가정에 있다.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면’이란 가정이 너무 허술하고 유동적인 게 문제다.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는 건 부동의 진리다. 하지만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돼서도 지금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부동의 진리가 아니다.

적절한 예가 하나 있다.

‘한겨레’가 창간된 시점은 1988년 5월. 87년 6월항쟁의 기운이 여전하던 그 시절에 6월항쟁의 거름을 받고 태어났다.

승승장구했다. 판매부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심지어 당시 대학생 일부는 ‘한겨레’를 교재 삼아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췄다. 판매부수 증가가 멈췄다. 그리곤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크게 늘지도 않고 크게 줄지도 않는 판매부수를 보이고 있다.

조·중·동은 어떨까?

당시의 20대에게 조·중·동은 규탄대상이었다. 집회장에서 종종 붙태워지는 신문이 조·중·동이었고 취재거부를 당하기 일쑤였던 기자도 조·중·동 소속이었다(세 신문에 대한 태도에 편차가 있긴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판매부수 면에서 여전히 부동의 1위를 견지하고 있고 조·중·동은 굳건히 신문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왜일까? ‘한겨레’에 우호적이고 조·중·동에 적대적이던 386세대가 신문시장의 주류인 40대(신문시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연령대를 40대로 설정한다. 이들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신문구독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가 됐는데도 왜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오지 않는 걸까?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경품 지급이나, 논조보다 정보를 우선해서 살피는 신문 읽기 방법 등의 요인이 선호도와는 일정하게 다른 구독 패턴을 낳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 계층의식이다. 이것이 세대 의식을 대체한다.

세대 의식은 한정적이다. 그 시대 그 세대에게서나 의미를 갖는 의식이다. 연령대로 묶인 세대 의식은 나이가 들어 사회에 진출하고 생활조건·환경을 달리하면서 계층 의식으로 분화한다. 더불어 그 때의 세대 의식은 희미해진다.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세대 의식은 어느 순간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강고한 삶의 논리에 포박당한 계층 의식이 들어선다.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서민층은 신문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구 분포로는 서민층이 절대 다수를 점하지만 신문 시장에 유효한 영향을 미치는 층은 중상층이다. 그리고 기업과 관공서다.

의식은 그리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실질 구매력이다. 그리고 실질 구매력은 계층에 따라 달리하는 지갑의 두께와 비례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살피자.

시대가 바뀔수록 매체 선호도가 바뀌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매체가 어느 세대에겐 라디오일 것이고, 어느 세대에겐 TV일 것이며, 또 다른 어느 세대에겐 신문 또는 인터넷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매체 종류에 따라 흥망성쇠를 달리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니 그럴 가능성을 높이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갈라선 안 된다. 신문사와 인터넷에, 신문사와 지상파 또는 케이블TV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설정하고 선호도와 영향력을 기계적으로 재선 안 된다.

현재의 10대가 선호하는 포털에 콘텐츠를 채워주는 곳 가운데 한 곳이 조·중·동이다(‘다음’은 빼고). 언론사 사이트별 조회수만 놓고 따져도 조·중·동의 조회수와 ‘한겨레’의 조회수에는 수백만의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어느 순간 조·중·동이 10대가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지상파 또는 케이블TV에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문어발식으로 현재의 10대를 끌어안으려 할지 모른다.

초를 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연구결과를 폄하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동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인터넷 : 방송 : 신문이라는 구분법으로 선호도와 신뢰도를 재는 게 지금 이 시점에서도 완벽하지 않고 앞으로는 더욱 더 불명료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언론지형의 지각변동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보라고 고언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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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은 의견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누구나 다 안다. 소신은 의견이다.

그럼 이렇게 묻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소신은 의견일까?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맘껏 구가해도 되는 걸까?

한승수 총리는 그렇다고 했다. 어제 국회에 출석해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대운하 발언은 ‘개인적 소신’일 뿐이라고 했다. 대운하는 ‘끝난 얘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총리가 ‘끝난 얘기’라고 했으면 그렇게 믿어야 할 텐데 시중의 반응은 그렇지가 않다. 두 사람의 발언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어떤 게 더 진실에 근접한 것인지를 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종환 장관의 소신을 ‘개인적 소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종환 장관의 소신을 의견이 아닌 사실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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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은 것이다. 소신이 사실로 간주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물은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소신은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가 어떤 의도로 말을 하건 시중은 그것을 의지 또는 정책방향으로 읽는다. 한국은행 총재가 공식석상에서 말을 할 때 토씨 하나까지 꼼꼼히 고르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에겐 개인적 소신일지 몰라도 시중은 ‘시그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 살 젖먹이가 아니고서야 이 평범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정종환 장관이라면 더 말 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되풀이 말했다. 이미 ‘끝난 얘기’를 국회에서 말했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이쯤되면 옐로 카드를 꺼내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경고 멘트라도 해야 한다.

‘입방정’으로 치부할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조치를 기준으로 삼으면 정종환 장관의 언동은 국론분열행위에 해당한다.

‘PD수첩’에 그러지 않았는가. 오역이 왜곡을 낳고 왜곡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야기했다고 단정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사법당국까지 동원해 준엄한 단죄의 칼을 겨누지 않았는가.

인터넷에 그러지 않았는가. 이름 없는 무명소졸의 단순한 퍼나르기조차 여론을 왜곡하는 것으로 몰아 규제의 사슬을 채우려 하지 않았는가.

한 치도 가볍지 않다. 대운하가 갖는 폭발력이 미국산 쇠고기에 견줘 결코 가볍지 않다. 정종환 장관의 언동이 방송과 인터넷의 혹세무민 행위에 견줘 결코 가볍지 않다.

왜일까? 사안의 중대성이나 행위의 엄중함으로만 따지면 옐로카드가 아니라 레드카드를 꺼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왜 말이 없고, 총리는 왜 ‘개인적 소신’이라고만 치부하는 걸까?

다시 읽고 다시 들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르지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이랬다. “대운하는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

정종환 장관의 말은 이랬다. “대운하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

전혀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은 ‘국민이 반대하면’이란 가정법을 쓴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민이 찬성하면’이란 가정법을 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종환 장관은 동의이음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진=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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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촛불정국을 반전시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제 하루 동안 나타난 현상이 그렇다.

▲농림수산식품부가 광우병의 위험성을 제기한 MBC ‘PD수첩’을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초 사망한 미국의 아레사 빈슨 씨의 사인이 인간광우병이 아니라는 미국 국립프리온질병병리학감시센터의 발표에 힘입은 조치다.

▲5개 부처 장관은 합동 담화문을 발표해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의 파업을 ‘불법적인 정치파업’으로 규정하면서 엄정대처를 다짐했다. 때마침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가결 요건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을 ‘독’에 비유하면서 그 부작용을 정면에서 비판했다. 더불어 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실명제 확대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상승작용을 기대하는 것 같다. ‘PD수첩’을 치면 광우병 우려에 물타기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압박하면 국민 대토론을 제어할 수 있다. 노동계를 자극하면 촛불집회를 교란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이렇다.

‘6·10 100만 촛불대행진’을 정점으로 촛불집회 참가 인원이 줄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촛불의 성격을 쇠고기에서 5대 정책으로 확장하기로 한 데 대해, 또 ‘정권 퇴진운동 불사’ 발언을 한 데 대해 ‘변질’ 논란이 일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건너간 후 쇠고기 논란은 ‘재협상’에서 ‘추가협상’으로 좁혀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로서는 소나기가 가랑비로 약화됐다고 판단할만한 양상이다.

이런 양상에 노동계의 ‘불법적인 정치파업’을 접목시키면 어떻게 될까? 촛불집회장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가 조직적으로 참가하고 시위 양상이 과격해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의 상황으로 판단하는 듯 하다.

강수는 아닐까? 아무리 그래도 정부가 궁지에 몰려있는 게 엄연한 사실인데, 노동계의 파업에 대해서도 ‘생계형’이란 이유로 국민 다수가 지지를 보내고 있는데 잘 통할 수 있을까?

걱정할 것 없다. 세 가지 요건이 구비돼 있다.

하나는 상징. 파업 찬반투표 가결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현대자동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파업 강행을 선언했다. 이처럼 좋은 여론전 소재는 없다. 민주노총의 ‘불법성’과 ‘정치성’을 상징하는 요소이고, 민주노총이 서울광장에 집결하는 순간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공격할 수 있는 거리이다.

다른 하나는 완충제. 마냥 강수로 나가는 건 아니다. 화물연대의 핵심적 요구인 표준요율제 즉각 시행, 유가보조금 지급기준 완화, 노동자 지위 인정에 대해서는 야멸차게 거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원책도 내놨다.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대상을 확대해주기로 했고 경유 화물차를 LNG 화물차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돈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그 뿐인가. 추가협상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에 합의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쇄신책도 준비하고 있다.

마냥 강수로 나가는 게 아니다. 강온 양면책을 씀으로써 ‘역공’에 대한 반발을 극소화시킬 수 있는 완충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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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하나는 우군. 보수언론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어제를 기점으로 보수언론이 ‘반격’의 선봉에 서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의 적격성을 집요하게 제기하고 있고, 촛불집회의 ‘변질’된 면모를 부각하고 있다.

보수인사도 나서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 씨는 촛불집회를 ‘불장난’ ‘난동’으로 규정하면서 ‘의병’의 궐기를 촉구하고 나섰고, 보수단체들은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대로 가면 된다. 이렇게 대처하다 보면 갈린다. 촛불민심이 강과 온으로 갈리고, 노동계 파업에 대한 국민 여론이 찬과 반으로 갈린다. 이렇게 분열이 심화되면 대오는 흩어지고 힘은 약화된다.

이건 유형의 성과다. 더불어 무형의 보너스도 챙길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건설기계노조 파업으로 시시각각 물류 마비, 공사 중단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경제손실액이 추산되고 있고 궁극적으로 경제위기감이 유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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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다. 덤터기를 써온 정부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큰소리치더니 한 게 뭐냐는 국민 질책에 시달려온 정부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감이 증폭되면,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노동계의 ‘불법적인 정치파업’이 지목되면 정부는 최소한 ‘독박’을 피할 수 있다. 경제 실정 비판에 ‘동반 책임론’을 들이댈 수 있다. 만에 하나 파업이 전면화 되고 장기화 된다면 이런 실정 상쇄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새삼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 대표들과 만나 그랬다. “소나기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한 불교계 대표가 맞받아쳤다. “소나기가 아니라 장맛비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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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관건이다. 정부의 바람, 또는 의도는 그냥 그 자체일 뿐이다. 정부의 바람 또는 의도가 먹혀들지 여부를 재려면 마저 하나를 살펴야 한다. 상대요인이다.

오는 21일 또 한 번의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재협상 시한으로 설정한 20일 이후 처음 열리는 촛불집회다. 이 집회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운집하는지, 이 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대응책을 어떻게 모아내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아직 교호작용은 끝나지 않았고, 상황은 굳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진 맨 위=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OECD장관회의에 참석해 인터넷을 ‘독’에 비유했다 ⓒ청와대
▲사진 위에서 두 번째=촛불집회의 ‘정치성’을 부각한 <동아일보> 기사
▲사진 위에서 세 번째=노동계 파업이 민생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을 부각한 <조선일보> 기사
▲사진 맨 아래=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을 비판한 <중앙일보> 기사

Posted by '토씨'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청와대에 인터넷 담당 비서관을 두고 한나라당에 인터넷 사이드카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건가? 아무리 둘러봐도 할 게 없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설명대로 인터넷 여론 동향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라면 탓할 게 없다. 인터넷 여론에 귀를 열고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데 어떤 사람이 반대를 하겠는가.

근데 거슬린다. 당장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귀에 거슬린다. 오늘 그랬다.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불신이 짙게 깔린 발언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인터넷을 ‘독’으로 간주한다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어떻게 하려는 걸까?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대응’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대응’하겠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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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대응’할 방법이 딱히 없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여론동향 감지팀을 꾸려 실시간으로 인터넷 여론을 살핀다 해도, 특정 이슈에 답글이나 조회수가 갑자기 몰린다 해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뾰족하게 대응할 수단이 없다. 설령 그것이 ‘괴담’에 해당된다 해도 ‘실시간’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다.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니까, 제재를 한다 하더라도 사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실시간’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간과해선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인터넷 소통이 ‘수평성’과 ‘기하급수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이다. 블로거가 다른 블로거의 글을, ‘아고라’ 방문자가 발제자의 글을 순식간에 퍼나르는 게 인터넷 소통의 특징이다. 한 사람이 퍼나른 글을 10명이 되 퍼나나르는 게 인터넷 소통의 속성이다.

대표적인 예가 청와대의 엠바고 문제를 다룬 YTN의 ‘돌발영상’이다. YTN 사이트에서 어느 순간 삭제됐지만 또 어느 순간 부활했다. 각종 포털사이트에 ‘돌발영상’이 재생됐고 심지어 유튜브에까지 가서 부활했다.

이런 특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대응’이란 말은 쉬 꺼내지 못한다. ‘웹2.0시대’라는 거창한 단어를 구사할 필요조차 없다. 인터넷엔 지켜보는 눈이 수백 만, 수천 만 개에 달한다는 평범한 사실만 각인하고 있어도 ‘대응’이란 말은 함부로 꺼내지 못한다.

직시해야 한다. 인터넷은 수직적 소통이 발붙일 수 없는 곳이다. 최악의 경우 포털사이트 편집진과 코드를 맞춘다 해도, 그래서 문제의 글이 메인에 올라오는 걸 차단한다 해도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네이버에서 진행되는 논쟁을 보면 안다. 실시간 인기검색어의 등락을 놓고 네이버 편집진과 네티즌이 논쟁을 벌인다. 특정 검색어가 단 몇 초만에 등장과 퇴장을 거듭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경위가 무엇인지, 진위가 무엇인지는 둘째 문제다. 강조하고자 하는 건 네티즌의 감시 눈길이 미세한 곳까지 뻗쳐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포털사이트 편집진을 ‘장악’하면 여론 물길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건 무모할뿐더러 아둔하기까지 하다.

방법은 따로 없다. ‘대응’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사후 ‘대응’하는 게 아니라 사전 ‘예방’하는 게 상책이다. 정보를 열어 ‘괴담’이 발붙일 여지를 없애고, 입을 열어 네티즌과 토론하고, 귀를 열어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사진=네티즌 토론장인 ‘아고라’에선 한나라당의 사이드카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