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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2/25 한상률의 귀국 배경? 거꾸로 보면…
  2. 2008/08/29 쉰둘 회사원이 진단하는 '촛불의 길' (1)


한상률은 거물이다. 그가 거물인 게 아니라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인물이 거물이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 당직자가 말했다지 않는가. “(한상률이) 입을 열면 정권 실세 아무개 씨가 바로 간다”고. (한겨레 보도)

그래서 모두 의아해 한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시점에, 정권 실세의 명운을 쥔 그가 갑자기 귀국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여러 추측을 내놓는다. 암 투병 중인 부인을 간호하기 위해서 라고도 하고, 박연차 게이트 재판이 사실상 마무리 됐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명쾌하지 않다. 행여 구속되면 그는 ‘간호’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옥바라지’를 받아야 한다. 박연차 게이트 재판이 얼추 마무리 됐다고 하지만 자신에 대한 재판은 개시도 안 됐다.

어쩌면 전제를 잘못 설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그의 귀국을 바라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를 거역하긴 힘들 것이라는 전제에 사로잡혀 의아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상률은 수동태가 아니다. 정권(실세)이 이래라 해서 이렇게 하고, 저래라 해서 저렇게 하는 로봇이 아니다. 생존본능과 보호본능이 극점에 이르는 상황에 몰리면 그 또한 자기 위주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한 인간이다. 이렇게 전제를 설정한 다음에 그의 귀국 배경을 찬찬히 살피면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일반적 분석과는 달리 지금이 귀국 타이밍일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지금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겐 더 할 나위 없는 타이밍일 수도 있다. 레임덕의 전조를 보이는 지금, 그러면서도 권력 기반이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은 지금이 타이밍일 수도 있다.

차기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귀국하면 여지를 확보하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수사 고삐를 느슨하게 만들 여지도, 자신에 대한 사법처리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를 개입시킬 여지도 잃어버린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차기 정부이기에 ‘원칙’대로 처리할 공산이 크다. 혹여 이명박 정부를 향해 단절 또는 청산의 칼을 뽑아든다면 ‘제물’이 될 공산마저 있다. 정권 실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항간의 설이 사실이라면 한상률을 쳐서 이명박 정권의 실세를 끌어내고, 이명박 정권의 실세를 쳐서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 명분을 강화하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한다면 지금이 적기다. 지금 귀국해야 '협상'할 수 있고, '소출'을 키울 수 있다. ‘입만 뻥긋하면’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는 자신의 특수 지위를 이용해 ‘협상’할 수 있다. 레임덕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협상발’이 떨어지니까 권력기반이 유지되고 있는 지금 판을 벌여야 ‘소출’을 극대화할 수 있다.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인지 모른다. 협상하려고 귀국한 게 아니라 협상을 끝내고 귀국한 것인지 모른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한상률 전 청장 주변에는 국정원 직원이 상주하는 것으로 안다”고. (경향신문 보도)

이 전언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한상률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랬던 이명박 정부가 정권 실세를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한상률의 귀국을 방조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사진=한상률 전 국세청장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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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는 억압받는 촛불의 편에 서 주세요."

지난 23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청 앞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다. 정진석 추기경을 만나겠다는 한 무리의 시민들과 이를 막는 경비들의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늦더위 속에 거센 몸싸움을 벌인 이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교구청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단식을 시작했다. 5일간 펼쳐진 농성의 시작이었다.

50대 회사원과 중년의 아주머니, 일흔이 다 된 할머니 등은 정 추기경을 만나기 전에는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며 곡기를 끊었다. 5일간 물과 소금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이들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모두 천주교 신자였던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는 느닷없이 왜 서울대교구 교구청으로 달려가 단식농성을 시작하게 됐을까. 사회단체 활동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그들. 그저 평범한 '무명씨'일 뿐인데, 생업과 가정을 접고 거리로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대개 인터뷰를 사절해서 그 가운데 올해 쉰둘의 박정훈(가명, 중소기업 전무이사)씨를 28일 전화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올봄 여중고생들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에 저도 자주 참여한 것 같아요. 유신과 군사정권, 민주정부 시절을 보내면서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지만 고질적인 병폐는 여전하지요. 산업현장에는 부정과 부패, 뒷거래가 횡행하거든요. 뒷거래 없이는 견딜 수가 없어요.

개인적 양심으로는 부정한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수치심이 있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못 버틴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부정부패가 정말 많이 사라졌지만, 잔존 찌꺼기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도로 활개 치기 시작했어요. 20년,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지요. 그동안 쌓아온 '민주 성장'이 급격하게 퇴보하는 걸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촛불을 들었죠."

박씨는 절박하다고 했다. 업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일일이 모두 다 전달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직감할 것이라고 했다. 뒷돈 없이는 살 수 없는 부조리의 시대가 다시 온다면 그 얼마나 암울하겠냐고 그는 개탄했다.

물론, 본인은 이미 쉰 살이 넘어 살아야 할 날들보다 산 날들이 훨씬 많지만, 당장의 문제에 눈감고 있자니 후대의 삶이 걱정된다고 했다. 부정과 부조리에 눈감고 편승하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봄 지나 여름 되니 어느덧 KBS와 MBC 앞을 전전하며 '공영방송 사수' '방송 민영화 저지'까지 외치게 됐다고 했다.

촛불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로 촉발됐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현안마다 촛불을 들며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일갈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이를 갈고 정권교체를 준비해온 것에 비해 진보개혁진영은 '허송세월'을 한듯 하여 답답하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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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의 위정자가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일을 추진하는 게 가장 큰 문제지요. 하지만 진보개혁세력들이 얼마나 상황을 간과했는지, 반대로 수구세력은 얼마나 이를 갈고 준비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조중동의 왜곡보도에 따라 검찰과 경찰이 무리하게 네티즌을 탄압하고, 촛불을 모조리 잡아들이려 하고, 무고한 시민을 향해 색소탄을 쏘고, 국민을 돼지몰이 하는 등 민주국가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터지는 데도 소위 민주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무력하게 판판히 깨지며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야말로 한국은 '조선일보의 나라'인가 속으로 곱씹고 또 곱씹게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면 지지 세력을 복원하고 진보개혁세력을 무력화 할 게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진보 쪽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힘도 없이, 관망하는 아주 슬픈 상황이 된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던 중년의 '등촌동 아주머니'와 '할머니' 등과 함께 명동성당으로 달려가게 됐다고 했다. 촛불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벌인 '작전'이었다고 했다.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에 읍소를 해서 종교인들이 나서면 조금 더 달라진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대했다고 했다. 이것도 이름 없는 '무명씨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게다.

천주교 최고 지도자의 적극적인 힘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의 씨앗은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27일 오후 5일간 외면해오던 그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다양한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줄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국민의 뜻과 함께 하고 행동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추기경님께서 내용상 표 나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지만 촛불의 시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며 "교회 전체가 당장 나서지는 않는다 해도 어떤 상황이 만들어지면 촛불의 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어도 '무명씨'들의 이런 노력이 쌓인다면 한국사회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87년 6월항쟁과 달리 2008년 촛불운동은 주도세력이 없는 자각된 시민 일반의 불복종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87년 당시에는 그야말로 깨어 있는 대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시국의 문제점을 부각했지요. 지금은 일사분란 한 조직체계도 없고 긴밀한 네트워크도 없어요. 촛불시민은 개인들이기 때문에 정권이 작정하고 구속하고 탄압하면 숨을 수밖에 없죠. 전사 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다 생업이 있고.

그래서 정부도 쉽게 보고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한 일반 시민들 막 잡아가는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무력을 휘둘러도 일개 시민이 뭘 대응하겠냐는 식인 거죠. 네티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고. 촛불시민은 구심점이 없으니까 쉽게 스러질 수 있어요. 저도 그렇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데. 촛불이 그냥 스러지기에는 대한민국의 앞날이 너무 걱정되는데. 뭐라도 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쉰이 넘은 나이라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때도 묻히고 살 법하다. 더군다나 중소기업 중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박씨는 그냥 이렇게 촛불이 스러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든단다. 사람들을 모아 명동성당으로 달려간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열정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자산 아닐까. 박씨야말로 시인 김수영이 노래한 '풀'처럼 가장 먼저 눕고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촛불민초'가 아닌가 싶다.

무명씨도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절박감을 갖고 있는데, 진보개혁 정치인들은 어떤 절박감을 갖고 있을까. 오늘 아침 조간에 실린 민주당 당직자들의 줄넘기 사진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 사진은 아고라에서 발췌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