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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은 아닌 것 같다.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의원이 위촉한 비상대책위원을 보면 눈길이 꽂히는 인물이 적잖다. 경제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119조 2항을 입안했던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들어가 있고,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웠던 이상돈 중앙대 교수도 들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며 제 할 말을 다 했던 사람들이다. 기존의 한나라당 색깔과는 다른 인사들이다.

의지는 확실한 것 같다. 박근혜 위원장이 한나라당의 낡은 보수 이미지를 깨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인사들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위촉할 생각을 했겠는가. 한나라당을 합리적 중도 보수로 좌클릭시키려는 의지가 두터운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의지가 꼭 그만큼의 성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지 따로 결과 따로인 경우도 흔하다. 의지는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 사실상 전권을 위임받은 박근혜 위원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 또한 여러 제약요인들을 헤쳐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을 옥죄는 제약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당내에 여전히 깔려있는 보수본색까지 포함하면 세 가지이지만 이는 고려치 말자. 바람보다 먼저 눕는 갈대의 속성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이니 당내의 보수본색은 박근혜 위원장이 어느 정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제쳐두자.

박근혜 위원장이 당장 맞닥뜨려야 하는 제약요인은 이명박 정부다. 힘이 빠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1년 넘게 정책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색깔이 박근혜 비대위에 스며들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나오지 않았는가. 박근혜 위원장이 도입을 추진하던 ‘취업활동 수당’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손사래쳤다고 하지 않는가.

이명박 정부의 어깃장은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박근혜 비대위가 대선 공약을 가다듬는 브레인 집단이라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총선 전까지 한나라당을 환골탈태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이명박 정부와 정책 협의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박근혜 비대위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에 천막당사를 칠 때와는 판이 완전히 디른 것이다.

그래도 이건 괜찮다. 여차하면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우면 되니까, 이를 통해 자연스레 정책 차별화를 꾀하고 거리두기를 모색하면 되니까 최소한 본전치기는 한다. 제약요인이긴 하지만 못 넘을 벽은 아니다. 더 큰 제약은 따로 있다. 뼛속까지 보수인 유권자층이다.

박근혜 비대위가 한나라당을 좌로 반클릭 이동시키면 이들이 반발한다. 보수의 정체성을 버리고 좌파의 포퓰리즘을 흉내 낸다고 비난한다. 가상상황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상황이다.

2007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일 때 당심과 민심이 갈렸다. 당심은 박근혜 후보에게 기울었지만 민심은 이명박 후보를 선호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민심은 보수색이 짙은 박근혜 후보보다는 중도 이미지의(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렇게 보였던) 이명박 후보를 미더워했다.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경제를 살리는 데 이명박 후보가 더 낫다고 평가했다. 민심의 이런 평가는 경선 결과에 그대로 투영됐다.

하지만 모두가 이명박 후보의 중도 이미지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다. 뼛속까지 보수인 유권자층은 이명박 후보를 탐탁치않게 여겼다. 그래서 무소속으로 나온 이회창 후보를 선택했다. 무려 355만 명에 달하는 보수 유권자가 이명박 후보를 등졌다(이들 중에서 박근혜 지지자들을 뺀다 해도 그 숫자는 적잖았다).

대선 때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이들은 강경보수 노선을 주문했고, 어정쩡한 중도 이미지를 걷어낼 것을 다그쳤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공안몰이요 대북봉쇄다.

이들이 태클을 걸면 박근혜 비대위는 흔들린다. 왼쪽에서 진보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오른쪽 측면을 치면 박근혜 비대위는 좌우 연타를 맞는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에 ‘맞짱’ 뜨는 상황을 가정해볼 수 있지만 이는 헛된 그림이다.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우는 건 최소한 본전치기이기에 부담이 덜 하지만 이들과 ‘맞짱’을 뜨는 건 최소한 중상이다. 어차피 박빙의 승부를 펼쳐야 하는 대선을 고려한다면 한 표 한 표가 천금 같다.

어떻게 될까? 박근혜 위원장이 이런 점을 고려해 머뭇거리면, 의지와는 다르게 보수 본색이 다시 발동하면 어떻게 될까? 비대위가 잘 굴러갈 수 있을까?

▲사진=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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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욕하지 마라. 이명박 대통령이 불통이라고 욕하지 말고, 독선적이라고 비판하지도 말라.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리석은 백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이명박 대통령만의 이유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가 말했다. 어제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신경 안 쓴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뭐라 그러면 저는 무조건 패스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일이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이면 밀고 나가는 것이지 누가 욕한다고 신경 쓰면 아무 일도 못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통인 이유는 그가 ‘선각자’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이지지’한 인물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안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이 뭔지 훤히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각자’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알고 있는데 뭣하러 듣겠는가. 더구나 그것이 어리석은 백성의 무지한 욕설이라면 더더욱 들을 이유가 없다. 힘만 빠진다. 괜히 병이 날테니까 말 그대로 ‘무조건 패스’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은 존재라고? 그러니까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한다고? 웃기지 마라.

알지 않는가.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는 시대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고, 나라에 도움 되는 일”은 어리석은 백성의 응석을 받아주는 게 아니다. 어리석은 백성의 무지함을 깨우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진정으로 대통령이 가야 하는 길이다.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마련한 TV토론 이름도 ‘국민과의 대화’가 아니라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붙인 것이다. 라디오 연설을 하는 이유도 같다.

국민도 국민 나름이다. 건전한 상식과 선량한 마음을 갖고 있는 다수의 보통 국민 목소리라면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목소리는 대개가 세상물정 어두운 어린 것들의 투정 섞인 비난이요, 감정 섞인 욕설이다. 이런 말을 굳이 들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다른 사람은 둘째 치고 이명박 대통령을 믿고 따르던 한나라당마저 ‘MB노믹스’ 폐기를 주장하고, 2030세대의 마음을 못 잡아 안달나지 않았느냐고? 괘념치 말라. 어차피 역사란 배신과 지조의 기록이다. 훗날 사가가 판단할 것이다. 임기 5년은 짧고 할 일은 많다.

대통령은 ‘봉황’이다. 동방 군자의 나라에 나서 사해 밖을 날아 물은 지주에서 마시고 깃은 약수에서 씻고 잠은 풍혈에서 자는 존재다. 백로조차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않는 법이거늘 어찌 ‘봉황’이 저잣거리 욕설에 일일이 귀 기울이겠는가. 그래서 사해 밖을 난다. 태평양을 건너고, 인도양을 건너고, 대서양을 건너 지구촌을 누빈다. 경제영토를 확장하려면 1분1초가 아깝고, 한반도 남녘땅이 좁다.

봉황, 아니 하루에 구만 리를 나는 대붕의 기세로 일해도 모자랄 판에 어찌 저잣거리 민심에 갇혀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불통이 아니라 패스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금쪽같기에 실용적 관점에서 패스하는 것이다. 병이 나서 일 못하면 국민과 나라의 불행이다. 그러니까 더이상 욕하지 마라.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는가. 

그나저나 청와대는 이 글도 '패스'하려나? 비록 인터넷에 올리는 글이긴 하지만 그래도 'MB어천가'인데….

▲사진=이명박 대통령 부부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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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현동으로 가지 않는단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건립계획을 백지화 한다기에 당연히 논현동으로 유턴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서울 강북지역이나 경기도 지역에서 사저 터를 물색하고 있단다.
'한겨레' 보도다.

한데 그 이유가 눈길을 끈다. 경호시설 부지 매입이 쉽지 않다는 이유와 함께 경호상의 문제를 거론한다. 주변 주택이 전부 4~5층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의 논현동 주택이 완전 노출되는 게 문제란다.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와 한 말이다.

예전에도 그랬다. 내곡동 사저 건립계획이 문제가 됐을 때도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호상의 문제를 들어 논현동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청와대는 이렇게 만전을 기한다. 바람 불면 넘어질까, 비가 오면 젖을까 노심초사를 거듭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제일주의를 부르짖는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전직 대통령을 경호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국가 원수를 지낸 사람을 예우하지 않는 것은 요즘 유행어로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은 나라의 최고급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각종 위협에 노출되는 것은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국가가 전직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뿐더러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수위가 있다. 과유불급이면 빈축만 산다.

최규하·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는 주택가에 있다. 다른 집들이 좌우를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도 경호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굳이 전직 대통령 여러 명을 거론할 필요가 있다. 표본 사례 하나만 거론해도 충분하다. 전두환 씨의 경우다.

이 사람이 대통령 자리를 꿰차기 위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재임 중에 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세상이 다 안다. 그래서 한 때 시선이 모아졌다. 그가 살고 있는 연희동 사저에 사람들의 눈길이 꽂혔고, 일부 대학생들이 그가 사는 곳을 급습할 것이란 보도도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골목 어귀에서 잠시 실랑이가 있었긴 했지만 전두환 씨가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위협에 노출된 적은 없다. 전두환 씨마저 이렇게 버젓이 잘 지내고 있는 판에 도대체 무엇이 염려되고,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국민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여기지 않는 한 경호를 놓고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제 발에 저려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고의 진리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왁자한 저잣거리다. 경호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장 안전하고 학실한 경호는 민심의 철책을 치는 것이다.

청와대는 왜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우려하는 걸까? 민심이 보위하는 게 아니라 민심에 포위됐다고 느끼는 걸까?

▲사진=이명박 대통령 논현동 사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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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날 해봤자 소용없다. 한나라당이 당을 쇄신한다고 해도,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유명인을 영입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박근혜 의원이 대학에 나가 젊은이의 손을 잡아도, 민생정책을 쏟아내도 소용없다. 깨진 쪽박으로 물푸기이고,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깨진 쪽박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밑 빠진 독은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이다.

돌아가는 꼴이 그렇다.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를 규탄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쐈다. 영하의 엄동설한에 덜덜 떠는 시민들을 향해 물세례를 퍼부었다. 날치기에 비통해 하는 농민들을 향해 이명박 대통령이 염장을 질렀다. 60세 이상의 고령층에 1ha 미만의 경작지를 가진 영세농에게 “농업도 수출산업”이라고 해서 화를 돋구었다. 

반응이 좋을 리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인권위조차 물대포 사용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농민들은 나락에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올려놓고 불을 질렀다.

고스란히 전이되게 돼 있다. 내년 총선에서, 그리고 대선에서 이런 민심이 표심으로 연결되게 돼 있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에겐 악몽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미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50대 이상은 한미FTA 찬성 의견이 많았던 반면 20대부터 40대까지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는 게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바 있다. 비준안 날치기 이후에도 이런 여론 흐름은 그대로 이어졌다.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비준안 날치기에 대해 50대 이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던 반면 20대부터 40대까지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이런 민심이 내년 총선으로 이어지면 한나라당은 필패다. 이미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확인된 바 있다. 20대부터 40대까지를 잡지 못하면 한나라당은 도저히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재삼재사 확인된 바 있다.

대선을 노리는 박근혜 의원에게도 화가 미친다. 어차피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임에서 뺄셈요인이 발생했다는 건 악재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경북지역의 농민이 제일 먼저 들고 일어난 걸 보면 더더욱 악재다. 박근혜 의원에 대한 경북 민심을 고려할 때 큰 뺄셈요인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나올 법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내년 대선을 박빙의 승부로 예상하면 그렇지가 않다. 한 표라도 더 건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 표라도 더 빠져나가는 건 악재 중의 악재다. 게다가 박근혜 의원은 선도적으로 비준안에 찬성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그래봤자 집토끼 싸움이라고, 크게 봐선 여야 고정 지지층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제한전이라고, 정작 중요한 건 중도·무당파층이라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이 산토끼에 기댈 여지는 적다.

이명박 정권은 악순환의 무한궤도에 이미 진입해 버렸다. 비준안 날치기 후폭풍을 조기에 소멸시키려면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 물대포만 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최루액을 섞어서라도 시위 군중을 해산시켜야 한다. 한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정권의 폭력성과 일방성이 부각된다. 중도·무당파층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렇다고 온건하게 대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규탄 시위를 장기화 해버린다. 내년 총선 선거운동과 규탄 시위를 접목시켜버린다.

행여 기대할지 모른다. 돈으로 콘크리트를 치면 성난 민심이 분출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할지 모른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산으로 예상 손실을 보전해주고, 다리 놔 준다고 나설지 모른다.

총선을 앞두고 염불보다 잿밥에 더 신경 쓰는 민주당의 적극 협력 덕에 일부 성공할지 모르는 전략이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다. 어차피 예산은 한정돼 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어봤자 구멍은 나게 돼 있다. 이 또한 깨진 쪽박으로 물푸기다.

▲사진=2008년 촛불시위 때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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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다. 한쪽에선 친박신당을 만들자 하고, 다른 한쪽에선 반박신당을 모색하고 있단다. 친박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 밑에서 한나라당 간판으로 선거를 치르기 어려우니 차제에 새 정당을 만들자고 한단다. 반박 진영에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친이세력 일부가 이들과 함께 하려 한단다.

관전 소감이 흥미 만점인 이유가 있다. 친박 진영이 뛰쳐나가 신당을 만들고, 반박 진영이 박세일 신당을 중심으로 뭉치면 한나라당은 공중분해 된다. 99칸 대가옥이 졸지에 폐가로 돌변한다. 대지 면적이 넓고 용적률도 제법 되는 쓸만한 저택을 저마다 내팽개치는 꼴이니 어찌 재밌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 했고,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다. 한나라당 간판으로 그러모은 표가 만만치 않다. 친박과 반박이 동시에 이 표를 내던지고 ‘맨땅에 헤딩’하는 우를 범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다.

달리 봐야 한다. 관전 포인트를 ‘현상’에 놓을 게 아니라 ‘배면’에 놓아야 한다. 신당론이 겨냥하는 공격대상 말이다.

친박 일각에서 거론하는 신당론의 핵심은 ‘MB탓’이다. 영남권의 한 의원이 그랬단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정기조를 바꾸고 인사 쇄신을 하라고 해도 안 먹혀들지 않느냐”며 “당을 따로 만드는 것이 대선으로 가는 데 훨씬 낫다”고 했단다. 한나라당 간판으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이 ‘MB탓’에 기초한 것이다. 한나라당 간판에 녹이 슨 주된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 탓이니까.

이렇게 보면 친박신당론의 공격 대상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정책 차별화를 넘어 정치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게 친박신당론의 요체다.

친박신당론의 요체가 이것이라면 해법은 있다. 한나라당에서 뛰쳐나가 신당을 만드는 모험수보다 훨씬 안전하면서도 효과는 톡톡히 누릴 수 있는 해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거나 관철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친박신당론은 화법을 바꾼 요구가 된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나가주세요’란 요구를 하기 위해 신당론을 띄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반박신당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이건 분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권력의 생리가 그렇고 정치의 본질이 그렇다. 기우는 해는 쳐다보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새 출발을 하겠다는 사람들 아닌가. 친박신당론의 태도가 ‘나가주세요’라면 반박신당론의 태도는 ‘관심 없어요’ 이다.

같다. 친박에게도 반박에게도 이명박 대통령는 '찬밥'이다. ‘함께 가야 할 사람’이 아니라 ‘멀리 해야 할 사람’이다. 친박신당론과 반박신당론은 모두 ‘탈MB’를 지향한다.

두 신당론의 지향점이 ‘탈MB’라는 점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좌가 있다. 목표다. 신당을 띄워 거두고자 하는 목표 면에서도 두 신당론은 같다.

박세일 이사장이 주도하는 신당의 색깔은 중도정당이다. 보수 정당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친박 일부가 모색하는 신당 역시 좌로 반클릭하는 걸 지향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기조가 마뜩치 않고 한나라당 간판이 맘에 안 든다는 얘기는 색깔을 세탁하겠다는 얘기와 진배없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두 신당론이 쳐다보는 지점만은 똑같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통 보수의 가치만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도·무당파층을 끌어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철수 원장에 뎄기 때문이다.

두 신당론에서 다른 점은 오직 하나다. 박근혜 의원에 대한 입장만이 갈린다. 친박신당론은 박근혜 의원을 보위하고자 하고, 반박신당론은 박근혜 의원을 공격하고자 한다. 한쪽에선 위기에 처한 박근혜 대세론을 되살리기 위해 똘똘 뭉치려 하고, 다른 쪽에선 위기를 틈타 끌어내리려 한다.

하지만 동기는 같다. ‘탈MB’ 이후의 보수진영 내 패권을 거머쥐려 한다는 점에서 동기는 같다. 사방이 망망대해인데도 함께 노 저을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선장이 되겠다고 멱살잡이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제 정리하자. 친박신당론과 반박신당론은 춤을 추는 것이다. 이명박과 안철수 사이에서 박근혜 의원을 놓고 춤을 추는 것이다. 한쪽에선 블루스를, 다른 쪽에선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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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다급한가 보다. ‘쇄신’ 얘기만 나오면 감초처럼 등장하는 원희룡 의원은 그렇다쳐도 이명박 정권의 실세라는 이재오 의원까지 ‘객토’를 주장하고 나섰으니 살기 위한 몸부림이 참으로 처절해 보인다. 하지만 부질없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 안에서 쇄신을 주장하는 이들이 우선 목표로 삼는 게 지도부 교체다. 홍준표 대표를 끌어내리고 새 얼굴로 단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굴까? 그런 대임을 맡을 만한 사람이 누굴까? 한 사람 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이다.

서울시장 보선을 통해 확인했다. 민심의 줄기는 반MB다. 이 민심의 줄기를 되돌리려면 ‘도토리’로는 안 된다. 존재감도 없고 영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인물에게 당 간판을 맡겨봤자 별무소용이다. ‘맞짱’ 뜰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뜨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차별화를 이룰 수 있는 인물이어야만 한다. 그런 인물은 박근혜 의원 밖에 없다. 하지만 박근혜 의원은 나서지 않는다. 나설 수도 없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입은 상처 때문만은 아니다. 꽤 아픈 상처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견딜만 하다. 한나라당 안에 대항마가 없으니까 ‘반창고’를 붙이면 세균 침입은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년 총선에서 더 큰 상처를 입으면 처방을 받을 필요조차 없게 된다. 그걸로 끝이다.

반문이 나올지 모르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의원이 총선에 전력투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문, 그러려면 스스로 앞에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문 말이다. 맞다. 박근혜 의원 입장에서 내년 총선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점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게 박근혜 전진배치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주도’와 ‘지원’은 다르다. 박근혜 의원이 사실상 당권을 장악하고 내년 총선을 주도하는 것과 ‘리베로’의 역할로 총선을 지원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총선의 결과에서 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총선 이후에 차이가 난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 즉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는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능성이 현실화 될 경우의 대처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선 반반이지만 안철수 교수가 총선 즈음에 대권 행보를 시작하는 상황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총선을 거치는 동안 녹초가 되어 이후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주저앉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려면 운기조식을 해야 한다. ‘올인’이 아니라 ‘본전치기’를 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행여 모른다. 총선 승리를 자신한다면 다르게 움직일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세론에 콘크리트를 치고, 안철수 기대론에 초를 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집 팔고 땅 팔아 ‘올인’에 나설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시금 확인했다. 반MB의 본산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다. 박근혜 대세론이 가장 먹혀들지 않는 곳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다. 한데 공교롭게도 내년 총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곳은 이곳이다. 박근혜 의원이 나경원 후보를 지원하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결과가 이것이다.

혹시 모른다. 박근혜 의원이 앞뒤 재고 양옆 힐끗거리다가 공천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불상사가 발생할까봐 적극 움직일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자파 세력을 넓히고, 그걸 대선 기반 삼기 위해 동분서주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거듭 확인했다. 서울시장 보선으로 박근혜 대세론에 상처를 입었는데도 오히려 그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대안은 없는 상태에서 위기감만 커지다보니 박근혜 의원을 바라보는 의원들의 눈빛이 더욱 간절해지고 있다.

박근혜 의원이 고려할 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괜히 앞에 나서 이명박 대통령과 ‘맞짱’ 떴다가 집토끼를 잃는 어리석음을 경계할 때이다. 대세론이 흔들릴수록, 외환에 시달릴수록 더 믿고 의지해야 하는 건 일단 집안 식구다. 이명박 대통령과 잘못 ‘맞짱’ 떴다가 외환에 내우까지 겹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차별화를 하더라도 조용하게 함으로써 보수파의 반발을 제어해야 한다. 차별화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정책을 통해 함으로써 중도파에 한 발 걸쳐야 한다.

보고 또 봐도 확실하다. 박근혜 의원이 지금 택할 수 있는 카드는 ‘못 먹어도 고’가 아니라 ‘써봤자 3점’ 전략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 의원 몇몇이 박근혜 전진배치론을 전제로 당 쇄신을 주장하는 건 둘 중 하나다. 정치적 생명에 위협을 느껴 앞뒤 안 재고 투정하는 것이거나, 틈을 타서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올리기 위해서다. 뭘 모르거나, 음흉하거나, 둘 중 하나다.

▲사진=박근혜 한나라당 의원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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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승리의 일등공신은 누구일까? 물론 서울시민이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그 다음은? 안철수 원장? 이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처음과 끝을 장식한 사람이다.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을 10배 끌어올린 이가 그이고, 흔들리던 지지율을 다시 곧추 서게 한 이도 그이다.

하지만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일등공신 반열에 오를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다.

복기해보면 그렇다. 나경원 캠프는 일찌감치 인물론으로 승부를 걸었다. 박원순 캠프가 들고나올 심판론에 정면대응하는 건 어렵다고 보고 애당초 인물론으로 컨셉을 잡았고, 그에 따라 네거티브 공세에 몰두했다. 한데 초를 쳐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파문이 나경원 캠프의 이런 전략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마치 X맨처럼 나경원 캠프의 선거전략을 교란시켜버렸다. 더불어 힘을 보탰다. 심판론을 적극 제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물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박원순 캠프에 멀리서나마 힘을 보탰다. 박원순 시장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심판론이 유지·강화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나경원 캠프에 초를 쳐버렸다면 박원순 캠프엔 보약을 선사했다.

보고 또 봐도 틀림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아도 부족함이 없다.

끝난 일 같지가 않다. 서울시장 보선이 끝났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까지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제2라운드와 제3라운드에서 펼쳐질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상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에게 떨어진 불은 혁신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서울시장 보선과 같은 결과를 빚지 않으려면 환골탈태는 필수다. 시작은 전열정비다. 뼈대부터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지도부 개편 또한 병행돼야 한다.

하지만 교란시킬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환골탈태를 제어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파문을 수습하면서 했던 말을 빌리면 ‘본의 아니게’ 그런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파문은 한나라당 지도부에겐 면피용으로 제격이다. 우리는 앞에서 열심히 싸웠는데 내곡동 사저 파문이 뒤에서 총질하는 결과를 빚었다며 책임론을 청와대로 돌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면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는 요원해지고, 총선과 대선을 대비한 체질 개선은 무위로 끝난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내부 분란을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만이 가득 찬 눈길을 밖으로 돌려놓는 것이라는 말.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3라운드에서의 역할이 남아있다. 이 역시 교란이다.

한나라당이 살려면 선을 그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선을 긋고 당 주도의 국정운영을 실현해야 한다. 청와대가 아니라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쥐고 국정 전반을 이끌어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감을 줄여가야 한다. 과거처럼 대통령의 탈당까지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여권의 질서는 확실히 바꿔놔야 한다.

문제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흐름은 순응하면서 ‘정권 재창출에 필요하다면 나를 밟고 가라’고 등짝을 내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요원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4년간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건대 이런 헌신적인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워낙 부지런하고 앞장서기를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로 봐서도 그렇다. ‘워커홀릭’에게 망중한은 고문이다.

게다가 임기가 적잖이 남아있다. 총선 이후, 즉 임기를 반년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차기 대선주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상황에서 뒤로 한 발 물러나는 건 그렇다쳐도 임기가 1년 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지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분석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활약상이 계속된다면 한나라당에겐 악재가 되고 야권엔 호재가 된다. 서울시장 보선에서 거듭 확인했듯이 물결치는 민심의 핵심은 반MB 정서이니까.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치러진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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