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금요일 오후 3시경. 한창 붐벼야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상가는 한산하다. 한 시간 가량 지켜봐도 외국 손님을 구경할 수 없다.
다른 곳은 몰라도 서울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도매상가는 붐벼야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치솟는 환율에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와도 이곳에선 환호성이 울려야 한다.
IMF외환위기 때 그랬다. 환율이 1800원대까지 치솟으며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수십 만 명의 직장인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남대문시장 액세서리 상가는 호황을 누렸다. 수출에 효자노릇을 한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기까지 했다.
이곳의 특성이 그렇다. 매출의 80∼90%를 외국 손님이 올려준다. 에이전트를 끼고 들어오는 바이어나 보따리상이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간다. 한두 나라가 아니다. 육대주 손님이 모두 이곳에서 액세서리를 사간다.
이런 외국손님에게 환율 상승은 호재다. 900원대이던 환율이 1300원대까지 올랐으니 상품을 40%가량 싸게 살 수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다.
환율 치솟는데 외국 손님 발길 끊어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삼호상가 운영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대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신들도 그렇게 기대했는데 현실은 영 딴판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상가에 입점한 점포의 60%가 적자를 보고 있고 나머지 40%의 점포 중 20∼30%도 겨우 현상유지를 할 정도라고 한다.
엄살이 아니다. 액세서리의 마진폭은 대략 20∼30%. 월 매출이 1000만 원은 돼야 200만∼300만 원의 이문을 챙길 수 있고, 그래야 월 100만 원 정도의 점포 유지비와 월 100만 원 정도의 운영비(식비·교통비·잡비)를 댈 수 있다. 집에 돈을 가져가는 건 아예 빼고 계산한 것이다. 겨우 적자를 면하려면 월 1000만 원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점포는 전체의 50%가 되지 않는다. 오랜 장사로 단골거래처를 여럿 확보한 점포만이 겨우 버틴다. 21년째 액세서리 장사를 하는 박종대 회장 같은 경우다.
왜일까? 왜 통념과 상식과 예상을 깨고 액세서리 상가가 불황에 허덕이는 걸까?
박종대 씨는 주저하지 않고 하나를 꼽는다. 환율이다. 환율 그 자체가 아니라 환율장세가 문제라고 한다. 자고나면 수십 원씩 등락하는 환율장세가, 하루에 100원 넘게 널뛰는 환율장세가 외국 손님의 발길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아 멀뚱히 쳐다보니 박종대 씨가 알아서 부연한다.
에이전트를 끼고 들어오는 바이어는 큰 손이다. 보통 수억 원씩 물건을 주문한다. 문제는 주문 시점과 결제 시점이 하루 이틀 차이가 나는 점이다. 이 하루 이틀 사이에 환율이 100원, 200원씩 등락을 거듭하니 불안한 것이다. 잘 하면 그만큼 이문을 보지만 잘못하면 그만큼 손해를 본다.
보따리상은 ‘큰 손’ 바이어와는 달리 즉석에서 주문하고 결제하지만 역시 환율장세에 민감하다. 이들은 보통 달러를 남대문시장에 와서 환전한다. 곳곳에 자리한 환전상들을 통해 달러를 내주고 원화를 산다. 전 날의 종가로 환전하는 게 아니다. 환전하는 그 순간의 가격으로 돈을 바꾼다. 환전상들이 수시로 ‘전주’에 전화를 걸어 원화 가격을 체크하고 그에 맞게 환전을 해준다. 그러니 이들 역시 불안하다. 타이밍을 잘 못 맞추면 타격이 크다. 아무리 보따리상이라고 하지만 이들도 한 번 사갈 때 수만 달러, 수천만 원씩을 사간다. 타이밍을 잘 못 맞추면 앉은 자리에서 수백만 원을 날려야 하는 것이다.
이게 원인이다. 한국 환율시장이 앉은 자리에서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배팅하게 몰아가니 버틸 수가 없다. 차라리 발을 안 담그는 게 낫다. 한국 환율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환율 등락폭이 많아야 이삼 원, 삼사 원에 불과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 때문에 한 달에 두 번씩 들어오던 일본 바이어는 한 달에 한 번으로, 다시 두 달에 한 번으로 방문횟수를 줄인다. 석 달에 한 번씩 들어오던 아프리카 보따리상은 방문주기를 6개월로 늘린다.
꼭 그만큼 매출이 줄어드니 늘어나는 건 물량과 한숨이다. 상인들끼리 자조 섞인 다짐을 한다곤 한다. “100만 원 ‘오더’를 과거의 1000만 원 ‘오더’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단다.
원재료 값은 줄줄이 인상
박종대 회장의 설명을 들으니 얼추 머리 속이 정돈된다. 하지만 말끔하지는 않다. 상인이 그 정도의 모험도 감수하지 않나? 아무리 환율장세가 널뛴다 해도 900원대 시절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 아닌가?
박종대 회장 이렇게 되묻는다.
“그 나라 환율은 가만히 있나요?”
우리나라 환율만 오르는 게 아니라고 한다. 브라질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환율 상승폭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뒤로 브라질 손님은 발길을 끊다시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환율 덕을 봐 상품을 싸게 사가도 자기 나라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비싸게 팔아야 하니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고 한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불황도 한몫 하고 있다고 한다. 액세서리는 기호품 또는 사치품에 해당한다. 경기가 곤두박질 쳐 지갑이 얇아지면 제일 먼저 지출을 줄이는 품목이 바로 액세서리라고 한다.
할 말이 없다. 어서 빨리 환율시장이 안정되기를 바란다고, 액세서리 수출만 갖고 보면 최적의 가격대라는 1300원대가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격려성 말을 건네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환율시장 안정이야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줄 수 있지만 ‘환율 1300원’을 덕담으로 건넬 수는 없다. 그게 현실로 고착되면 우리 경제 주름살이 깊어진다.
찰나의 정적이 너무 무거워 화제를 돌린다.
“원가 절감 같은 방법은 없을까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박종대 회장이 숫자를 들이민다. ‘라인스톤’이란 게 있단다. 큐빅 비슷한 것으로 액세서리 보석 대용으로 들어가는 물질이란다. 이게 20% 올랐다고 한다. 주석 값도 올랐고 도금비도 금과 은 가격이 뛰면서 30% 올랐단다. 이 모두가 환율 탓이라고 한다. ‘라인스톤’도 금과 은도 모두 수입하는 것이라고 한다.
삼중고다. 환율이 삼면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내수시장은 죽은 지 이미 오래
그럼 어떨까? 환율 여파를 덜 타는 내수시장은 어떨까?
박종대 회장이 허허롭게 웃는다. 애당초 기대도 안 한다는 투로 몇 가지 사례를 들려준다.
육칠 년 전까지만 해도 내수시장이 쏠쏠했다. 부산과 대구의 경우 지역 도매상만 각 20곳에 달했다. 서울역·강남터미널·부천·부평 지하상가의 경우 액세서리 소매상가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 지역 도매상도 소매 상가도 남아있지 않다. 모두가 문을 닫았다. 경기가 하강하고 지역 경제가 죽으면서 소매상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그 여파로 지역 도매상마저 간판을 내렸다.
“어떤 학자가 그랬다고 하데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되면 액세서리 시장이 죽는다고…. 그래서 무슨 말인가 하고 들어봤더니 논리가 참 간단하더만요. 먹고 살만해지면 액세서리가 아니라 ‘주얼리’로 소비 패턴이 넘어간다는 거예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 무슨 파티에 가는 것도 아니고 학교 가고 직장 가면서 진짜 보석 차고 가는 여자가 얼마나 있답니까?”
박종대 회장의 결론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경기 탓이라는 거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액세서리 내수시장이 바닥에서 몇 년째 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답이 없다. 빛이 보이지 않는다. 터널 끝이 어디인지 좀체 가늠할 수가 없다.
▲사진 위=서울 남대문 삼호상가 내부. 손님이 거의 없다.
▲사진 아래=박종대 삼호상가 운영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