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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머리 숙였습니다. 자신의 딸이 외교부 5급 계약직 특채에 응시한 걸 취소했다며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고용되는 것이 특혜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헌데 왜일까요? 일이 바로잡혔는데도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유명환 장관 딸 특채는 빙산의 일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딸 특채가 취소됐다고 해서 물밑에 숨어있는 빙산의 거대한 몸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유명환 장관이 사과한 건 딸이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응시한 겁니다. 이른바 상피제(일정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청 또는 통속 관계에 있는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게 하는 전통)를 어긴 것을 사과한 겁니다.

그럼 어떨까요? 유명환 장관의 딸이 외교부가 아닌 다른 부처에 응시해 채용됐다면 어떨까요?

응당 화제 삼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마냥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를 축하하기에 앞서 축하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수많은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3.
2007년 자료가 있습니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입니다. 이 명단을 보면 행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상위 5개 고교는 모두 대원외고를 비롯한 특목고였습니다. 사법고시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 역시 대원외고였습니다.

특별한 현상도, 유별난 사례도 아닙니다. 불가역적 흐름입니다. 2007년 기준으로 역대 법조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고교를 보면 대원외고가 322명으로 441명의 경기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원외고가 경기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가 짧은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약진입니다. 이것이 흐름이고 추세입니다.

이런 흐름과 추세가 나타나는 요인은 경제력 때문입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풍부해야 사교육 혜택을 듬뿍 받고, 사교육 혜택을 듬뿍 받아야 성적이 껑충 오르고, 성적이 올라야 특목고에 진학하고, 특목고에 진학해야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성공 법칙입니다.

법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풍부해야 학자금 걱정 없이 공부를 하고, 공부에 전념해야 고시를 1년이라도 더 빨리 통과할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성공 법칙입니다. 고시 공부하던 학생이 농사짓는 부모 보기 미안해 한강에 투신하고, 다른 고시생이 시골 사는 부모에게 손 벌리기 미안해 마사지 업소에 칼 들고 뛰어 들어갔다는 뉴스가 반증하는 법칙이죠.

유명환 장관의 딸도 이런 전형적인 경로를 밟았을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니까 외국어 능통자가 될 여건을 갖췄고,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으니까 학자금 걱정 않고 석사 이상의 학위를 딸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응시자격을 얻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결과 이전에 출발점부터 달랐을지 모릅니다.

4.
바뀌는 건 없습니다. 사법고시 대신 로스쿨제를 도입해도, 행정고시 이름을 ‘5급 공채시험’으로 바꿔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습니다. 제도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어도 공부할 만한 사람, 공부할 여건이 되는 사람만이 다가갈 수 있는 관문이라는 점은 요지부동일 테니까요. 오히려 행정고시를 없애고 사법고시를 없애면 채용과정에서 '음서제'의 기운이 더 많이 스며들지 모릅니다.

바꾸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없애라고 할 수도 없수도 없습니다. 공시ㆍ공채 시스템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나마 거머쥐어야 하는 것은 공정 평가와 공정 선발뿐입니다. 굳이 하나 추가하자면 상피제를 들 수 있겠죠. 심하게 감질 나지만 우리 현실이 이렇습니다.

5.
중국에 ‘태자당’이 있습니다. 핵심 요직에 포진하고 있는 당ㆍ정ㆍ군ㆍ재계 실력자들의 자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숫자가 대략 4천명쯤 된다고 합니다. 일본엔 ‘세습의원’이 있습니다. 부모 또는 조부모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들입니다.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 나선 ‘세습후보’가 32명, 이 중 당선된 사람이 18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중국의 ‘태자당’과는 경로가 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ㆍ관ㆍ재계 실력자들의 자녀가 핵심 요직에 두루 포진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의원이 있었고, 어머니 ‘대타’로 비례대표가 된 여성 의원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들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위해야 할까요? 우리만이 아니라 중국도, 일본도 비슷하니까 그러려니 생각해야 할까요? 유명환 장관 딸 소동 뒤끝에 서서 떠올리는 생각입니다.

Posted by '토씨'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자율고 전환을 외칠 때였습니다. 후배와 가벼운 입씨름을 했습니다.

후배가 그러더군요. 자율고로의 전환은 미봉책이라고, 일반계고로 전환시키는 게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더군요. 후배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민주당과 일부 교육시민단체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일반계고로의 전환이 타당하지만 그건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힘을 재야한다고 했습니다. 일반계고로의 전환을 끌어낼 정도로 힘이 있다면 당연히 밀어붙여야 하지만 그럴만한 힘이 없다면 유연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두언 의원의 주장에 힘을 실어줘 자율고로의 전환이라도 관철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흡하긴 하지만 시험을 쳐서 학생을 뽑는 외고보다는 추첨으로 뽑는 자율고가 그나마 사교육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외고 폐지가 무산된 후, 자율고로의 전환이 사실상 무산된 후, 중2-3학년 영어성적과 생활기록부로 외고 신입생을 뽑기로 확정한 후 어떤 한나라당 의원이 말했습니다. “미흡하긴 하지만 현실적인 안”이라고 했습니다. 정두언 의원도 합창했습니다. “매우 미흡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할 때 나름대로의 고심 끝에 나온 결과”라고 했습니다. 외고가 영어듣기평가 폐지-입학사정관제 도입을 타협책으로 내놨을 때 그걸 미봉책이자 기만책이라고 일축했던 그 입으로 그 타협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교과부 최종안을 “현실적인 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습니다. 정두언 의원이 한 입으로 두 말 했다고, 한나라당이 기만 놀음을 했다고 성토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의 ‘입맛 다시기’에 일말의 진정성은 담겨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중플레이’ 했다기보다는 ‘힘겨루기’에서 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확인합니다. 현실의 진상을 확인합니다. 그건 강고한 철벽입니다.

타협책조차 이상으로 내몰았습니다. 자율고로의 전환조차 철딱서니 없는 얘기로 치부했습니다. 이른바 실세 의원이 나서도, 한나라당 소속 국회 교과위 위원 다수가 찬성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그만큼 강고합니다. ‘현실’을 운영하는 세력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완강합니다. 외고 재단만이 아닙니다.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더 보수적인 언론, 이른바 실세 의원보다 더 힘이 센 권력 핵심의 위세는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더 강화될지 모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을 운영하는 세력이 더 공고해질지 모릅니다.

각종 고시에서 합격생 점유율을 꾸준히 높이고 있는 외고 졸업생이 요소요소에서 ‘실세’가 되는 날이 오면 그럴 겁니다. 경찰이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은 뒤 기름칠을 했던 것처럼 이들이 '외고산성'에 기름칠을 할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야를 넘나드는 ‘현실적인’ 타협책으로도 깨지 못한 이 '외고산성'을 어떤 방법으로 허물 수 있을까요? 

 ▲사진=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10월 27일 주최한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 장면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나 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외고 문제를 당과 정부에만 맡겨두지 말라”며 “청와대가 능동적으로, 주도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단다.

당연한 지시다. 상황론으로 봐도 그렇고, 원칙론으로 봐도 그렇다.

외고 문제를 놓고 당과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 일각의 의지는 강력한데 교과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외고 폐지를 주창하는데 교과부는 외고 존속 또는 국제고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관제탑 역할을 자임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정의 최종 책임을 청와대가 져야 한다는 원칙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견제’는 타당하지 않다.

이 신문이 보도했다. 청와대의 움직임을 ‘드라이’하게 전하면서 그에 대한 지적을 ‘꼼곰하게’ 처리했다. “청와대의 개입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며 “불과 2년 전 외고 폐지 정책에 반대했고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엘리트 교육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가 사교육비가 늘어난다는 이유로 정책의 근본 기조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도 나온다”고 했다. “하나의 친서민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한다. ‘조선일보’의 지적을, 조중동의 일관된 ‘외고 폐지 반대’ 논조를 주목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청와대는 외고 문제를 가속 페달 삼아 친서민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친서민 정책의 다음번 이슈 중 하나로 30-40대 학부모의 관심이 많은 외고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헌데 보수 세력은 마뜩치 않다. ‘조선일보’가 전한 반대론의 구절들, 즉 “정책의 근본 기조”를 거론하고 “친서민 포퓰리즘”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세력은 외고 폐지를 정체성의 문제로 본다. 보수 정권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중과 영합하는 배신 행위로 간주한다.

보수 세력의 시각이 이렇다면 그들이 펼칠 행동은 비타협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당과 교과부를 오가며 전개된 지엽적 논란이었기에 점잖게 대응했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논란에 종지부를 찌고 정책방향을 결정하면, 그리고 그 방향이 외고 폐지면 날선 공격을 불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곤란해진다. 이렇게 '집토끼‘가 가출해버리면 ‘친서민’을 화승총 삼아 벌이던 ‘산토끼 사냥’이 공염불이 된다. 플러스마이너스 제로가 된다.

물론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니다. 양다리를 걸치는 방법이 남아 있다. ‘산토끼’도 잡고 ‘집토끼’도 다독이는 양면 전략, 즉 외고를 존속시키되 입시제도만 손보는 식의 방안, 또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식의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22일 전국 5490명을 대상으로 ARS조사한 결과를 봐도 여지는 있다. 응답자의 55.5%가 외고 전환에 대해 찬성하면서도 전환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특성화고(28.0%)-자율형ㆍ자립형사립고(23.3%)-일반 인문계고(22.2%)-국제고(21.6%)로 의견이 갈렸다. 보기 문항에 일부 문제(자율형 사립고는 추첨으로, 자립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데도 한묶음으로 처리한 것)가 있지만 아무튼 갈렸다.

하지만 양다리 걸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뾰족수라고 생각했던 게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이미 막아버렸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그런 우회로에 바리케이드를 쳐버렸다. 외고 해법의 핵심은 학생을 시험이 아니라 추첨으로 선발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쳐놓은 이 바리케이드를 타고 넘는다 해도 다른 장벽이 기다린다. 야당과 서민의 극렬한 반발이다. 외고 폐지의 대안은 일반고로의 전환이라면서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추첨 선발’을 최소한의 절충책으로 받아들여온 야당과 서민이 이명박 정부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외고 문제만이 아니라 친서민 정책 전반의 ‘기만성’을 문제 삼는다.

여건이 그렇게 조성돼 있다. 상징성이 크고 민감성이 큰 외고 문제를 건드리는 순간, 그리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외고의 핵심 문제로 사교육을 부각시킨 순간 여건은 그렇게 조성됐다. 외고문제는 친서민 정책의 진정성을 재는 가장 유효한 잣대가 돼 버렸다.

어쩔 것인가? 청와대는 딜레마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갈림길에 선 청와대의 선택이 궁금하다.

 ▲사진=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27일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열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태산명동에 서일필인가? 판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정부가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단다. 교과부가 다음 주 외부기관에 의뢰할 ‘외고 개편 연구용역’의 초기 구상 핵심내용이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정말로 외고가 자율형 사립고가 아니라 국제고로 전환된다면 공염불이 된다. 외고발 사교육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애초 구상이 무너져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중학교 내신 상위 50% 안에서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반면에 국제고는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내신 반영은 기본이고 영어시험이 추가된다.

여권 관계자는 입학 전형이 내신 위주로 바뀌어 사교육비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이고, 영어 시험도 외고와는 달리 중학교 범위 내에서 출제돼 사교육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쓸데없는 소리다. 현실을 호도하는 소리에 가깝다.


사교육 논란의 핵심 문제는 출제 수준이 아니라 시험 유무다. 어떤 형태든 시험이 유지되는 한 사교육에 의지한 경쟁은 근절되지 않는다. 시험이 상대평가인 한 남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야 입학할 수 있기에 1점을 위한 과다 투자는 불가피하다. 내신이 예외일 수 없고 영어가 예외일 수 없다.

다른 문제도 있다. 국제고에서 영어 시험을 치르는 건 교육당국이 보증한 ‘자율권’이다. 그래서 맘대로 할 수 있다. 지금은 중학교 범위 내에서 출제한다지만 언제든 출제 수준을 높일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등이 추진하는 ‘자율형 사립고로의 전환’ 방안이 반쪽짜리인데도 공감을 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교육 유발 요인이 재생되고 변이될 여지를 차단하려 한 그 취지에 공감한 것이다.

헌데 교육당국은 이 ‘최소치’를 허물려 한다. 누구나 다 아는 현실을 짐짓 모른 체 하면서 고름이 번지는 환부에 파스를 붙이려고 한다.

평가는 이 정도로 갈음하고 시선을 돌리자. 추이다.

금은 이미 갔다. 외고 문제를 놓고 여권 내부, 보수세력 내부의 균열상이 분명히 드러났다. 보수정당 의원들은 외고를 아예 없애자 하고, 보수언론은 외고를 유지하자 하고, 보수정부는 국제고로 대충 ‘퉁’ 치려고 한다. 어떻게 될까? 여권 내부, 보수세력 내부의 이 균열상이 어떤 지각 변동을 야기할까?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확실하다. 친서민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 인사들은 교육문제를 운위할 때마다 ‘친서민’을 앞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교육비 부담이 서민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요인인 만큼 총리실이 중심이 돼서 좀 더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정운찬 총리에게 주문한 바 있고, 정두언 의원 역시 “외고의 자율형 사립고 전환은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서민을 따뜻하게 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에 가장 부합하는 정책”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평가받을 것이다. 여권 인사들의 그 때 그 발언에 진정성이 담겼었던 것인지, 구현 의지가 있었던 것인지 어렵지 않게 가늠될 것이다. 외고의 향후 진로에 따라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지폐의 부피가 달라지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서민이니까.

▲캡쳐=오늘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Posted by '토씨'

1.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스승의 날을 맞아 말했습니다. 모범교사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선생님들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존경받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가장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당연하고 너무 반가운 말입니다.

교권이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학부모가 선생님을 폭행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선생님한테 체벌을 받았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경우를 살피고 경위를 알아봐야 하는 일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 같지 않은 건 분명합니다. ‘스승’이라는 말보다 ‘꼰대’라는 말이 학생들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는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선생님들에게 교권을 세워주고 존경심을 표하는 것처럼 값진 선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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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정한 사제지간의 모습 아닐까요? ⓒ오마이뉴스


2.

현실은 어떨까요? 두 가지 사례만 꼽겠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한 외고가 외부 강사를 초빙해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언어·국사·논술·생물·물리 과목의 특강을 운영 중인데 외부 강사가 받아가는 돈이 10회 기준으로 400∼600만 원입니다.

그럼 이 학교 선생님들은 뭘 하고 있을까요? 학생들의 수강 신청과 수강료 납부를 거들고 있다고 합니다. 학원 총무 신세가 돼 버린 겁니다.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한 선생님이 했다는 이 말로 족해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지난 8일 전북 전주에 있는 한 고교에 덕진경찰서 정보과 소속 형사가 들이닥쳤습니다. 닷새 전에 열린 촛불집회를 신고한 이 학교 3학년 심모 군을 조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명의 선생님이 나섰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수업을 받고 있던 심 군을 교실 밖으로 불러냈고, 학생주임 선생님은 형사가 기다리고 있는 학생주임실로 심 군을 데리고 갔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사를 왜 하느냐고 따졌어야 할 선생님들이, 조사가 꼭 필요하다면 방과 후에 학교 밖에서 하라고 막았어야 할 선생님들이 형사를 도왔습니다.

그게 선생님의 모습이냐고, 학생의 인권을 앞장서서 지켜줘야 할 선생님의 바른 태도냐고 힐난하고 싶지만 참으렵니다.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에, 교육청은 학교에 지시를 내렸습니다.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막으라고 했고 미국산 쇠고기 홍보를 강화하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의 촛불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동원된 어느 선생님의 말도 아직 귓가에 아른거립니다.

“공무원이라 어쩔 수 없다.”

3.

선생님을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경기도 모 고교의 교장이 흡연과 무단외출을 이유로 한 학생을 퇴학시킨 뒤 전학조차 가지 못하게 다른 학교 교장들과 협의한 일이 있습니다. 가녀린 여학생을 주먹으로 마구 폭행한 선생님도 있습니다. 학생을 성추행하고 뒤로 촌지를 챙긴 선생님도 허다합니다. 전주 모 고교의 두 선생님 행태도 이해는 할 수 있을지언정 용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교권과 존경심을 운위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교권을 바로 세우고,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선생님의 상을 정립하는 일은 ‘자율’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이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율의 여건이 마련돼야 합니다. 외부의 간섭이 없어져야 하고 공교육의 본령인 인성교육 토양이 마련돼야 합니다.

이건 선생님들의 몫이 아닙니다. 정부와 교육청이 해줘야 하는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게 하겠노라고 합니다. "분명코 선생님들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서 존중받고, 아이들도 너무 입시에만 매달리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정부 교육정책의)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위해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근데 어찌된 일일까요? 정부가 내놓은 건 학교 자율화 조치입니다. 0교시와 우열반 편성, 방과 후 학교 외부 위탁 등의 길을 열었습니다.

오늘 나온 소식도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관련 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안’을 만들었는데 그 골자가 내년부터 전국 모든 초·중·고교의 학력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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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인수위가 어제 개최한 '영어공교육 강화방안' 공청회 장면 ⓒ오마이뉴스

토를 달지 말자. 일단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자.

대통령직 인수위의 각오는 단단하다. 영어 공교육을 기필코 강화하겠다고 한다. 2010년부터 영어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겠다고 한다. 수준별 수업을 시행하고, 수업시수를 늘리고, 수업규모를 줄인다고 한다.

좋아질 것이라고 믿자. 영어 공교육만 충실히 받으면 외국인 앞에서도 주눅 둘지 않고 유창하게 ‘쏼라쏼라’할 것이라고 기대하자.

그럼 한 가지 문제가 풀린다. 외고를 없애도 된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더 엄밀히 말하자. 외고의 영어과를 없앨 수 있다.

왜냐고? 간단하다. 전 국민의 원어민화가 성사되는데 굳이 외고 영어과를 운영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가 규정하고 있다. 특목고를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에 따르면 ‘영어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은 공교육에서 수행할 수 있다. 특목고가 아니라 일반고에서 얼마든지 실시할 수 있다.

‘전문적인 교육’이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수준별 수업을 실시한다고 하지 않는가. 필요하면 ‘영어 우등반’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하면 된다.

혹여 허점이 있을지 모르니 거꾸로 짚자. 외고 영어과를 그대로 둔다고 치자. 그럼 어떻게 될까?

혼란스러워진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에 따르면 모든 학생이 원어민화 된다. ‘어학 영재’가 된다. 그럼 외고는 무엇을 전형자료로 삼아 ‘어학 영재’를 가릴까?

모든 학생이 원어민화 된다고 해도 올망졸망한 실력 차는 나타날 테니까 점수 차로 뽑으면 될까? 이건 말이 안 된다. 외고의 설립 취지는 영재와 범재를 가르는 데서 시작한다. 이 ‘절대적인’ 구분선을 한두 점의 점수 차에 의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익 900점은 영재이고 899점은 범재라고 하면 누가 승복하겠는가.

말은 안 되는데 현실이 될 공산은 크다. 외고 영어과가 존속하는 한 다른 방법이 없다. 가장 객관적인 평가지표는 성적이다.

이렇게 보니 다른 버전의 얘기가 성립한다. ‘없앨 수 있는’ 근거 뿐만 아니라 ‘없애야 하는’ 이유도 갖춰진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장담했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면 영어 사교육을 없앨 수 있다고, 기러기 아빠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니다. 원어민화 된 중학생 사이에서 다시 성적 경쟁이 붙는다. 외고 영어과에 가려고 실용 영어가 아니라 입시 영어에 매달리게 된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직 인수위의 ‘충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모습이다.

이리 재고 저리 봐도 외고 영어과가 존치될 이유가 없다. 존치시켜서도 안 된다. 근데 어찌 된 일일까?

이명박 당선자와 대통령직 인수위는 외고를 포함한 특목고의 설립제한을 사실상 없애기로 했다. 인가권을 갖고 있는 시도 교육감에게 전권을 넘겨주기로 했다. 외고는 맘대로 세우되 영어과는 설치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아귀가 맞지 않는다. ‘영어 공교육 강화’와 ‘외고 설립 자유화’가 충돌한다. 서로가 상대를 배척한다. 좌충우돌이다.

강화해야 한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기 이전에 정책 줄기, 정책 일관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켜보는 국민들을 더 이상 헷갈리게 하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정책 논리부터 강화해야 한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