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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트로이목마’다. ‘파견 목마’는 아니지만 ‘자생 목마’임엔 틀림없다. 배 속에 병사는 숨기지 않았지만 혀와 발에 필살기인 ‘초치기’를 장착한 목마임엔 틀림없다.

그간의 언행이 그렇다. 건건이 여권 내부를 교란한다. ‘보온병’ 발언으로 안보 무드에 김을 빼고, ‘자연산’ 발언으로 여성 표심에 재를 뿌리더니 이번엔 호남 민심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광주의 아들’ 박관현 열사 상석에 발을 올려놓음으로써 정치적 불모지에 씨를 뿌리려던 한나라당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디 이뿐인가. 정동기 감사원장 파문 때는 앞장서 사퇴를 요구해 야당을 돕더니 이번엔 이명박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머리 조아려 한나라당의 위신을 깎아내렸다.


덕분에 민주당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호강을 누린다. 안상수 대표가 즈려밟고 간 길을 따라만 가도 꽃길을 걷는 것과 같은 호사를 누린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자연산’ 발언이 물의 빚을 때 박지원 원내대표가 한 말 말이다. “안상수 대표는 계속 하셔도 좋다”는 그 말 말이다.

반대로 여권은 냉가슴 앓는 곤욕을 치른다. ‘그만 하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와도 차마 뱉을 수가 없다. 그가 전당대회에서 뽑힌 선출직 대표라는 형식적 사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를 끌어내리면 친이-친박의 계파 싸움이 조기에 극점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청와대와 당 주류에 충실한 사람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민주당은 ‘불감청고소원’의 심정으로 안상수 대표를 바라보고, 여권은 ‘불감훼상’의 기원으로 안상수 대표를 바라보는데 달리 어쩌겠는가. 여나 야나 관객이다. 안상수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두근두근, 또는 조마조마 하며 쳐다보는 수동태이다.

어차피 주인공은 안상수 대표다. 자신의 언행으로 여야의 희비를 교차시키는 정치적 ‘상수’다. 여야 시선을 '불감'하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 ‘회전목마’다.

▲사진=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박관현 열사의 묘지 상석에 발을 올리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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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안다. 야당은 고사하고 여당 의원들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개헌론은 빈 구호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도 우긴다. 끝끝내 ‘못 먹어도 고’를 외친다. ‘개헌 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은 지난 18일 친이계 의원 40여명의 ‘개헌 모임’을 주도하고, 그의 ‘절친’ 안상수 대표는 오는 25일로 예정된 ‘개헌 의총’을 고수한다.

왜일까? 왜 이들은 폭주하는 걸까? 단서는 박근혜다. 그의 ‘조용한 행보’가 단서다.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한다. 친이계와 ‘휴전’에 들어간 후 지지율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40%를 상회한다. 이대로 가다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평화’ 상태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굳어지면 ‘주이야박’ 현상을 막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본격화할 '월박' 현상을 제어할 수 없다  계파 화합을 위해서라는데 무슨 명분으로 ‘월박’을 차단하겠는가. 

방법은 싸우는 것이다. 여권 내 구도를 친이 대 친박으로 다시 짜서 한 편을 치고 한 편을 단속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개헌 논의는 ‘박근혜 끌어내기’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반발을 유도하고, 이 반발을 대립구도 재구축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방증이 있다. 이재오 특임 장관이 지난 19일 국립암센터에 가서 행한 강연이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이 ‘군사정권’을 거론했다. “군사정권이 3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돈과 총칼로 지배했다. 이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반대자와는 무조건 싸워야 하는 줄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사정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박근혜 전 대표의 심기를 자극하는 얘기를 대놓고 한 것이다.

거듭 확인한다. 친이계 개헌 논의의 타깃은 박근혜다. ‘박근혜 끌어내기’를 통해 ‘박근혜 끌어내리기’를 꾀하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13일부터 14일까지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9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친이계의 ‘박근혜 끌어내리기’ 전략을 엿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한 45%의 응답자들이 꼽은 지지 이유 가운데 ‘최초의 여성대통령 후보’(18.3%)라는 점만 빼면 친이계가 하기 나름에 따라 평가를 바꿀 수도 있는 것들이다. ‘청렴하고 깨끗하다’(11.5%), ‘아버지에게서 대통령 교육을 받았다’(8.6%), ‘이미지가 좋다’(7.3%), ‘정치를 잘할 것 같다’(6.9%), ‘도덕적이고 정직하다’(6.2%) 등등의 지지 이유는 박근혜를 끌어내기만 하면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를 개헌 논의에 끌어내 공방을 벌이면, 이 공방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를 사적 이익(대권욕)에 사로잡혀 정치과제를 외면하는 인물로 묘사하면, 나아가 싸움을 마다않는 이미지를 씌우면 도덕적이고, 정직하고, 청렴하고, 깨끗하고, 정치를 잘 할 것 같은 이미지에 얼룩을 남길 수 있다.

그럼 금상첨화다. 친이계의 생존도 도모할 수 있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평균 45%이지만 유독 서울(36.5%)과 인천경기(39.4%)에서만 평균치를 밑돈다고 하니까 조금만 힘을 내면 수도권 내 박근혜 비토 여론을 더욱 높일 것이고 그에 비례해 친이계의 거점 착지력도 높일 수 있다. 친이계 의원들의 눈치보기도 그만큼 제압할 수 있고.

하지만 속절없다. 이 모든 전략은 박근혜 전 대표가 친이계의 노림수에 걸려드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친이계의 개헌 논의에 발끈해 정면대응하는 상황을 단서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어차피 안 되는 개헌, 어차피 힘 안 풀어도 되는 게임에 박근혜 전 대표가 굳이 나설 까닭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하는 판 아닌가.

▲사진=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해 9월 1일 국회 본회의에 앞서 박근혜 전 대표를 찾아 '90도 인사'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정말 반란일까? 한나라당이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사퇴를 요구한 게 정말 반란 차원일까? 정말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일까?

그렇게 보기 힘들다. 어제 벌어진 풍경이 그렇게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정동기 사퇴 요구를 주도했던 안상수 대표가 목소리를 낮춘 것이나, 당초 사퇴 요구에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 원내대표가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뒤늦게 선을 긋는 것이나 모두 '반란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권력투쟁일까? 일각의 분석대로 청와대와 당 인사가 두 계열로 갈려 권력투쟁에 나선 걸까?

이 또한 그렇게 보기 힘들다. 부실한 인사검증 시스템 문제가 제기된 데 대해 청와대 참모들이 했다는 얘기가 부정적으로 보는 근거다. “대통령의 의중이 처음부터 정동기 후보자에게 실려 있어 한계가 있었다”는 그들의 해명은 권력투쟁설을 일축한다. 이 해명 그대로라면 투쟁대상은 대통령이 된다.


그래서 새삼 살핀다. 미처 살피지 않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오판’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더 구체적으로는 ‘비토’를 주도한 안상수 대표가 청와대의 ‘시그널’을 잘못 읽었을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물론 정황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세 가지 이유다.

무엇보다 안상수 대표의 언행이 눈에 띈다. 10일의 강성 입장이 다음날 온건 화법으로 바뀐 게 첫째 이유다. 하지만 이건 앞서 짚었으니 생략하자.

이것 말고도 더 있다. 안상수 대표의 캐릭터다. 잇단 ‘설화’ 때문에 정치적 곤경에 몰려있던 그다. 게다가 ‘청와대 대리인’이란 이미지까지 안고 있던 그다. 그래서 그의 지도력은 거의 없었다. 당내에서 ‘말발’을 세우기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런데도 최고위원들은 그의 선창에 전적으로 따랐다. 

단순히 따른 게 아니라 전격적으로 따랐다. 안상수 대표의 ‘사퇴’ 선창이 최고위원 전원의 합창으로 바뀌기까지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퇴 요구 이후의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정무적 숙의를 거듭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이유이자 의문사항인 이 세 가지 항목을 일거에 정리하는 게 바로 ‘오판’ 가능성이다. 안상수 대표가 청와대의 ‘시그널’을 사퇴 유도로 잘못 읽었다면? 안상수 대표가 자신이 잘못 읽은 ‘시그널’을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 뜻’으로 전달했다면? 안 대표의 선창을 고깝게 들을 이유도, 정치적 파장을 깊게 숙의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 관련된 얘기도 들린다.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최고위원이 “정동기 후보자 사퇴 문제를 청와대와 조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안상수 대표가 “이재오 특임장관과 전화 통화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단다.<한국일보 보도>

다른 얘기도 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가 전한 얘기다. "이 장관은 안 대표와 10일 아침 통화에서 '2~3일 정도 시간을 갖고 당·청 간 조율을 통해 정 후보자 거취 문제에 대한 단일한 흐름을 만드는 게 낫지 않으냐'는 의견을 냈는데 안 대표가 그렇게 급하게 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단다.<조선일보 보도>

이 전언에 따르면 안상수 대표는 이재오 장관의 개인 견해를 청와대의 뜻으로 간주한 것이 된다. 어차피 청와대도 ‘사퇴 불가피’ 입장을 세웠다면 자신이 나서 막힌 길을 뚫어주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 된다. 반기를 든 게 아니라 충성을 하려 한 것이 된다. 레임덕의 전조가 아니라 코미디의 한 장면이 된다. 소통 불능이 빚은 코미디 말이다.

사태의 본질이 무엇이든 정동기 사퇴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돼 버렸지만….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17일 청와대 조찬 회동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Posted by '토씨'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말이 인터넷에 돌기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 비슷한 얘기가 돌았다. ‘부고 기사 빼곤 다 좋아’란 말이었는데, 인지도가 생명인 정치인에겐 ‘조지는’ 기사가 무시하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남들은 그가 ‘보온병’ 발언으로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산’ 발언을 한 어제의 오찬자리에서 그가 한 다른 말을 보면 그렇다.

“이번에 수능 끝난 고3 학생을 대상으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내가 ‘안녕하세요. 보온병 안상수입니다’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다들 난리가 났다. 옆 사람을 치고 웃으면서 죽더라 죽어. 그래서 내가 ‘이게(보온병 발언 파문) 그렇게 나쁜 영향만은 아니네’라고 느꼈다.”

안상수 대표가 이런 ‘깨달음’을 ‘자연산’으로 확장하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게 나쁜 영향만은 아니네”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역대 어느 대표보다 존재감이 미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그이기에 더더욱 그러기 십상이다.

그가 내놓은 해명만 봐도 그렇다. “오해의 소지”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본뜻’만은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발언 취지는 “성형 부작용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는 점을 극구 강조했다.


‘자연산’ 발언이 지면과 화면에 도배되다시피 했으니 인지도는 끌어올린 셈, 이제 남은 건 자신의 이미지를 ‘성형’하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그가 강조한 ‘본뜻’이다. 성형술 남발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들, 특히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에게 ‘본뜻’을 호소하면 ‘자연산’은 자연스럽게 희석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나라당 의원은 안상수 대표가 ‘보온병’ 발언에 이어 ‘자연산’ 발언까지 해 “물러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예측했지만 이건 속단이다. 돌아보면 전례를 찾기 힘들다. 한나라당 인사 치고 설화 때문에 물러난 사람이 거의 없다. 오히려 여교사 비하 발언을 한 의원이 그 후에 당당히, 좋은 성적으로 최고위원회에 입성했다.

굳이 찾자면 강용석 의원의 경우가 있긴 한데 이는 사정이 좀 다르다. 그가 한나라당에서 제명된 결정적 이유는 아나운서를 비하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그 부인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비하’ 못잖게 ‘불경’이 문제가 된 경우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자연산’ 발언 때문에 물러날 정도라면 ‘보온병’ 발언 때 진즉 물러났어야 한다. 그 때가 어느 때인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여권이 총력을 다 해 ‘안보’를 외치고 있을 때였다. 바로 이 때 ‘보온병’ 발언을 해 ‘안보’ 분위기 조성에 초를 치고, 병역면제자(이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건강 등의 이유로 정당하게 면제를 받은 사람들까지 한 두름으로 엮는 표현이니까. 가장 적절한 표현은 ‘병역 기피자’인데 안상수 대표가 기피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쓰자) 집합소 면모만 부각시켰다. 그런데도 안상수 대표는 건재했다. 안보와 직결된 황의돈 육군참모총장이 8년 전의 재산문제로 물러났는데도 안보 분위기 조성에 초를 친 안 대표는 살아남았다.

이게 현실이다. 한나라당, 여권의 현주소다. 보기엔 답답해도….

▲사진=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끝난 줄 알았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가 “대통령의 (감세)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며 특히 정치인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못 박고,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감세 철회 검토 입장을 뒤집었을 때 논란은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더 세게 나온다. 소장파들이 감세 철회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겠다며 연판장을 돌린단다.

왜일까? 청와대의 기세가 등등하고 당 지도부의 태도가 박정한데도 왜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뜻을 굽히지 않는 걸까?

환기할 필요가 있다. ‘헤럴드공공정책연구원’과 ‘데일리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이 조사 결과 응답자의 26.6%만이 서울지역 국회의원을 재신임 하겠다고 응답했다. 6.2지방선거 결과도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서울시 구청장 선거에서 전멸하다시피 한 결과다.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감세 철회를 주장하는 의원들의 면면이다. 선창했던 정두언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서대문을이고, 연판장 돌리는 데 앞장 선 권영진 의원과 박준선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노원을과 경기 용인기흥구다.

정리는 어렵지 않다. 소장파 의원들이 감세 철회 뜻을 굽히지 않는 연유는 생존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의 정체성보다 자신의 생존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에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감세를 철회시키지 못한다 해도 한껏 목청을 높이면 지역구민의 매서운 눈길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감세 논란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이완 현상, 나아가 레임덕 현상의 징후다. 살아있는 권력의 위세에 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권력과 차별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공동운명체 의식보다 각자도생 본능이 팽창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전조다. 이제 꼬물대기 시작했을 뿐 만개한 건 아니다. 아직은 솟구쳐 오르는 힘보다 찍어 누르는 힘이 더 세다. 그래서 다시 들어갈지 모른다. 연판장을 돌리고 의총을 소집해도 감세를 철회시키지 못하고 다시 복지부동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시적이다. 설령 역행상황이 빚어진다 해도 그건 잠정적인 것이고, 한정적인 것이다.

배 깔고 누운 땅바닥 온도, 즉 민심이 급랭하면 할수록 부동의 여지는 줄어든다. 자칫하다간 자신들이 동사하기에 직립보행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들을 무릎 꿇게 만드는 압력, 즉 권력의 위세가 약화되면 될수록 직립보행의 부담은 줄어든다. 공기 저항이 줄어들기에 자유보행을 만끽할 여지는 많아진다.

관심사는 그 임계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수도권 소장파의 치고 빠지기식 행보가 이명박 정권의 정체성과 이미지에 미칠 영향이다. 청와대가 수도권 소장파에게 제시할 회유와 압박의 수단이다. 친이와 친박의 계파 갈등과는 별개로 전개될 친이계 내부의 이완과 응집의 반복과정이다. 놓쳐서는 안 될, 아주 흥미로운 관전거리다.

▲사진=한나라당 의원총회 모습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이명박-박근혜 만남은 ‘소문난 잔치’다. 먹을 게 별로 없는 잔치란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만나서 여러 가지 국정 현안에 대해 기탄없이 얘기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럴 여지가 별로 없다. 최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총리’ 건은 이미 물 건너갔다. 지난 16일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그렇게 선언했다. “이제 끝난 문제”라고 했다.

최대 안건이 물 건너간 상황에서 두 사람이 기탄없이 얘기할 게 뭐가 있을까? 4대강 사업? 이건 합의를 보기 어렵다. 이 문제에 관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은 ‘발 안 담그기’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논란에서 한 발, 아니 두 발 비껴 나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야 협조를 당부하고 싶겠지만 박근혜 전 대표가 내보일 수 있는 반응의 최대치는 ‘소이부답’이다.

이것 말고도 있긴 하다. 권력실세들의 국정농단 의혹사건도 있고 다시 불거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도 있다. 하지만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껄끄러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전 대표가 반대하는 것이다. 논의해봤자 갈등만 유발하는 의제들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피하기 위해 여러 소소한 국정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는 있겠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두 사람의 회동을 염원하고 주선한 이들의 목표가 계파 화합, 보수 연합이란 점에 입각해 볼 때 ‘급’이 안 맞는 사안들이다.

빈약한 의제만이 근거는 아니다. 두 사람의 회동이 ‘소문난 잔치’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하는 다른 근거가 있다.


지난 16일 물러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부싸움을 해도 화해하려면 따질 건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권 실세, 청와대 핵심으로 통했던 그가 정치권과의 갈등, 세종시 국회 부결과정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엿볼 수 있다. 이동관 전 수석은 청와대를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와대도 피해자라고, 백 번 양보해서 봐도 쌍방 과실의 당사자라고 생각한다.

이 전 수석의 이런 정서가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청와대 전체가 공유하는 정서라면 두 사람의 만남에 군불을 때는 사람들이 바라는 ‘진정성 있는 대화’는 어렵다. 대화를 하기는 쉬워도 대화f를 좋게 끝내기는 어렵다. 싸움 끝에 화해를 시도하다가 더 큰 싸움을 벌이는 여느 부부들처럼 더 큰 갈등을 안고 등 돌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만남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의제도 그렇고 정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이미 날짜를 잡았다. 7.28재보선 전후로 만나기로 잠정 약속했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두 사람의 만남은 통과의례다. 여권 내에 일고 있는 위기감과 화합 주장을 달래기 위해 잠시 짬을 내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자기 지역구 행사에 나가 눈도장 한 번 찍고 돌아서는 것처럼 책 잡히지 않기 위해 인사치레를 하려는 것이다.

이미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청와대와 친이는 한나라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로매진하고 있고, 박근혜 전 대표는 총리직을 거부하고 박사모는 친이 핵심 이재오 후보의 낙선운동에 몰두하고 있는 점이 확인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마당에 두 사람이 만나다고 뭘 바꿀 수 있겠는가.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9월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Posted by '토씨'


정말 그럴까? 다수가 평하는 것처럼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다시 안정을 찾는 걸까?

언뜻 보면 그렇다. 강성매파 친이계가 당 대표가 됐고 범친이계 4명이 선출직 최고위원의 8할을 점유했으니 이명박 대통령의 직할체제는 강화됐고 친이계의 기득권도 유지된 것처럼 보인다. 정반대로 친박계는 겨우 한 명만, 그것도 턱걸이로 최고위원이 됐으니 정치적 입지가 오그라들게 됐다. 게다가 대의원 투표에선 기존 계파 지분(66.1 대 30.3%)이 철옹성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모른다. 오히려 안정 기반이 불안정 요인을 증폭시킬지 모른다. 이런 이치다.

박근혜 전 대표로선 좌시할 수 없다. 전당대회 결과를 받아들여 자숙할 수 없다. 잠깐은 몰라도 길게 자숙 모드를 유지할 수는 없다.

분명히 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선거 패배로 유효타를 맞았는데도, 자신을 향한 국민 지지율이 굳건한데도 ‘월박’은커녕 ‘주이야박’조차 나타나지 않은 점을 똑똑히 확인했다. 이 현상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죽는다. 자신의 대망이 고사해버린다.

이번에 새로 구성된 지도부가 어떤 지도부인가. 2012년 총선 공천을 주도하고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할 지도부다. 이런 지도부의 독주를 멀건이 쳐다보면 거리가 멀어진다. 대선후보 공천장이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외곽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민심을 잡아 당심을 조이는 것이다. 그렇게 철벽 당 조직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이러려면 나서야 한다. 물밑에서 잠행할 게 아니라 물위에서 헤엄쳐야 한다. 국정과 당 운영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 ‘천천히’가 아니라 ‘빨리’, ‘살살’이 아니라 ‘세게’ 치받아야 한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이렇게 하면 ‘산토끼’는 잡을지 몰라도 ‘집토끼’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아닐 공산이 커지기에 어쩔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표를 어쩔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정치권 재편 움직임이다. 안상수 대표가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언급한 개헌 문제, 그리고 여권 일각에서 모색하는 보수대연합이 그 요인이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가, 친이계가 전당대회 결과에 고무돼 개헌과 연합에 팔 걷어붙이면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는 더 좁혀진다. 개헌 때문에 꿈속의 대권 범위가 좁혀지고 보수대연합 때문에 꿈의 구현 가능성이 좁혀진다.

박근혜 전 대표의 '여유'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소진됐다. 그는 더 이상 '잠 자는 숲속의 공주'로 남을 수 없게 됐다.

▲사진=안상수 새 한나라당 대표가 14일 전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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