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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준 정치인’이었다. 2007년 대선 때 정계에 뛰어들려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포기 했던 사람이다. 그의 변신은 쉼표를 마침표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 하필이면 이명박 정부 총리냐고 물을 필요도 없다.

그를 정치인으로 설정해 놓고 보면 헤아릴 수 있다. 2007년 대선 때 반 이명박 진영에 서려고 했던 행적과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가 그랬다. 2007년에 정계 입문을 저울질할 때 충청을 유독 강조했다. 충청이 나라의 중심이라며 향우회 등을 찾아다녔다. 분명했다. 충청을 자신의 정치적 지역기반으로 삼고자 했다. 그의 이런 전력에 작금의 상황을 대입하면 대충 계산이 나온다.

지금이 기회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된 후 지역 정치는 요동치고 있고 지역 민심은 들끓고 있다. 이런 때에 그가 중앙정치 무대에 진입하면, 그래서 행정복합도시 문제를 해결하면 어렵지 않게 안착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행정복합도시 해결 열쇠를 건네받아 자물쇠에 꽂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곧추 설 수 있다. 충청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세울 수 있다.

그가 충청을 확보하기만 하면 해볼 만 한 판을 만들 수 있다. 후발 주자의 한계를 딛고 차기 대선에서 해볼 만 한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를 영남에 가둘 수 있다. 박근혜 대세론의 열쇠가 되는 충청에 빗장을 걺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가 영남발 수도권행 행로의 중간 기착지를 없앨 수 있다.

이러면 이명박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이명박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원조’ 계파 인물들과는 달리 자신은 뉴 페이스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니까 밀어달라고 설득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지표만 놓고 보면 경제가 세계금융위기 여파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조짐을 보이는 시점에 총리를 맡게 된다. 실제로 실물경기가 지표만큼 좋아지면, 그래서 국민이 경기 호전을 체감하기만 하면 날개를 달 수 있다. ‘경제전문가 정운찬’의 ‘능력’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중도실용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서민 경제를 보듬는 모습을 보이면 ‘경제’를 자신의 확고한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 

이게 이유다. 정운찬 교수가 정계 입문 신고식을 민주당이 아닌 이명박 정부에서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민주당에 몸을 싣는 것보다 이명박 정부와 한 배를 타야 부가가치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다.

민주당에 몸을 담으면 리스크가 너무 크다. 민주당엔 구심이 없다. 게다가 야권 재편이 어떻게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판에선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 정치 번외자였던 자신의 치명적 한계, 즉 조직 기반을 다질 언덕을 확보할 수 없다. 2007년에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도포기 했는데 지금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찌어찌 해서 충청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더라도 전략적 가치는 떨어진다. 여권 구도에서 향유할 수 있는 만큼의 충청 지분의 가치를 민주당에선 누릴 수 없다.

너무 한쪽만 살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복합 요인이 어지럽게 작동하는 정치판은 더더욱 그렇다. 얻는 만큼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설명해야 한다. 민주당에서 이명박 정부로 유턴한 정치 행보는 둘째 치고라도, 총리직을 수락하기 직전까지 비판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행여 이명박 대통령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식힐 재간이 없다면 더더욱 조목조목 설명해야 한다. 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사업의 총괄 책임자가 된 합당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초한다. 소신 따로 행동 따로의 기회주의적 지식인이라는 비난을 자초한다.

구현해야 한다. 지표에 머물고 있는 경기를 끌어올려야 한다. 국민 상당수가 여전히 거두지 않는 ‘위장 친서민’이란 시각을 불식시키면서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려면 돌파해야 한다. 윤진식-강만수-윤증현으로 촘촘히 짜인 현 경제팀의 두터운 벽을 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초한다. 학문 따로 실물 따로의 반쪽짜리 전문성이라는 비아냥을 자초한다.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총리직 수락을 정치적 도전으로 간주할 박근혜계의 견제를 극복해야 한다. 더불어 이명박계 내 잠재적 경쟁자들의 견제, 그리고 자유선진당 같은 충청 기반 정치세력의 견제 또한 이겨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초한다. 견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지면 생동하는 현실 앞에선 무력한 허약한 지식인이란 냉소를 자초한다.

▲사진=차기 국무총리로 내정된 정운찬 서울대 교수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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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뻔하다.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심대평 총리 카드는 이미 없던 일이 됐고, 심대평 총리 카드 무산 과정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없던 일이 될 공산이 크다. 청와대와 이회창 총재 모두 더 이상 언급치 않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되기 십상이다. 

어떨까? 그럼 끝나는 걸까? 소동 또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면 되는 걸까? 그렇지가 않다. 그렇게 털고 가기엔 이번 사태가 던지는 시사점이 너무 크다.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둘째 문제다. 모두가 정당정치 원리에서 일탈했다는 게 우선적인 문제다.


청와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명박 대통령은 심대평 총리 카드를 단순한 인사 문제로 바라봤다. 세종시 문제는 정부 입장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고(이회창 총재의 말은 청와대가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었다), 강소국 연방제 문제는 개헌이 수반되는 문제여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주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는 심대평이란 인물을 뽑아갈 생각만 했지 반대급부를 내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게 문제다. 심대평이 누군가. 야당의 당원이자 공당의 대표다. 당적이 다른, 이런 인물을 기용하려면 정식으로 정책연합을 제안해 ‘인물 받고 정책 주는’ 거래를 시도했어야 하고, 동시에 여당으로부터 사전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이게 정당정치 책임정치의 기본원리다. 하지만 청와대는 하지 않았다. 거래는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봉사만 기대했다. 자신들이 설정한 ‘국민통합’이란 가치를 앞세우며 무조건적인 지원만 바랐다. 독선과 독주 행태를 재연한 것이다.

이회창 총재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이회창 총재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유선진당에게 심대평 총리 카드는 정책연합의 매개였다. 현안과제인 세종시 문제를 풀고, 종국적 과제인 강소국 연방제의 물꼬를 트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정당했다. 이회창 총재가 청와대측에 두 과제를 심대평 총리 카드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제시한 건 이상할 게 없었다. 청와대에선 개헌이 수반되는 문제를 어떻게 조건으로 걸 수 있느냐고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된다. 이회창 총재는 강소국 연방제 추진을 약속하라고 했지 강소국 연방제를 당장 내놓으라고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문제가 있다. 이회창 총재가 심대평 총리 카드를 정책연합 차원에서 바라본 건 지극히 정당했으나 처리과정은 상당히 부실했다.

당의 정치적 좌표와 정체성이 걸린 문제라면 당내 의사결정구조에 올리는 게 옳았다. 혼자 판단할 게 아니라 당내 의사결정구조에 정식안건으로 올려 집단 토의와 집단 결론을 끌어냈어야 한다. 세종시와 강소국 연방제 사안은 이미 당론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게 이회창 총재의 주장이지만 어폐가 있다. 당론이 정해졌다 하더라도 당론 추진과정에 중대한 변수가 돌출되면 새롭게 전략을 짜고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이회창 총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심대평 전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회창 총재의 말은 “의원총회에서 (세종시와 강소국 연방제) 얘기가 있었다고 한 게 다(였)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언론에 계속 흘러나오는 걸 "유감스러운 일"로 규정하면서 논의 차단을 시도한 적도 있다. 정당정치의 기본인 당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모두가 ‘밀실’을 선택했다. 심대평 총리 카드를 인사 문제로 바라본 청와대는 물론 정책연합 차원에서 접근한 이회창 총재 또한 밀실에서 비선 채널을 통해 얘기를 나눴다.

합당하지가 않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짠 여야구도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면서 비밀에 붙인 건 합당하지가 않다.

과거엔 이러지 않았다. 결국 무산된 DJP연합도, 국민은 물론 당원의 반발까지 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도 과정만은 공개됐다. DJP연합은 두 당이 실무협상단을 꾸려 공식협상을 벌였고, 대연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고 제안했다. 연합 또는 연정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과정의 투명성만큼은 최소한으로나마 확보하려고 했다. 헌데 이번은 다르다. 청와대와 야당 당수가 국민 앞에서 진실게임을 벌이는 꼴사나운 장면을 연출할 정도로 비밀리에, 장막 뒤에서, 자기들끼리만 얘기를 주고받았다. 덕분에 전락했다. 국민은, 지역구민은 눈 뜬 장님으로, 결과가 도출된 후에 일방 통보를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했다.

코미디에 가까운 정치 현상에 정색하는 이유가, 대충 털고가는 분위기인데도 없던 일로 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대평 총리 카드를 마냥 ‘선의’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심대평 총리 카드 무산 이후에 불거진 자유선진당의 분란을 단순히 ‘집안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대평 파문은 결코 일회적이고 부분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당정치의 실상과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사진=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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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됐는데도 또 나온다. 이번엔 박준영 전남지사다. 청와대가 차기 총리로 박준영 지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얼핏 보면 실현 가능한 카드가 아니다. 자유선진당처럼 민주당이 반발할 게 뻔하다. 아마도 그 강도와 폭은 더 세고 넓을 것이다. 그런데도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왜일까? 왜 이런 얘기가 쉼없이 흘러나오는 걸까?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짚을 수 있다. 이런 카드에 깔려있는 계산법을 헤아릴 수 있다.

심대평 전 대표나 박준영 지사는 다른 사람들과는 급이 다르다. 지금까지 언론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들은 특정 지역 출신으로 국민통합․화합의 상징요건을 갖추곤 있지만 힘이 없다. 반면에 심대평 전 대표나 박준영 지사는 특정 지역과 특정 정당에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다. 힘과 상징성을 함께 갖고 있는 이들이 총리가 될 경우 발생하는 정치적 파장은 넓고 크다.

열매는 고스란히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돌아간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지역주의 극복 의지를 구체화하면서 ‘친서민’과 함께 새 국정 기조의 양 날개로 삼을 수 있다. 계층 통합과 지역 통합의 아젠다를 선점하면서 국정에 대한 계층적․지역적 평가를 희석시킬 수 있고,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지형을 만들 수 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치 총리’가 실세 총리를 자임하는 경우, ‘정치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의 권한 분점을 요구하는 경우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방비책을 만들어뒀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개편했다. 조직을 키웠고 권한을 집중시켰다. 정부 출범 때 8수석 1특보 체제였던 청와대를 1정책실장 8수석 6특보 2기획관 1보좌관으로 키웠다. 그러면서 이른바 실세들에게 권한을 더 부여했다. MB맨이라 불리는 윤진식 경제수석에게 정책실장 자리를,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에게 상근 경제특보 자리를 줬고, 이동관 대변인에겐 기존의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을 아우르는 홍보수석 자리를 줬다. 이렇게 조직을 키우고 권한을 집중시키면서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누가 총리가 되든 힘을 가질 수가 없다.

우려할 건 따로 있다. 총리 후보를 보듬고 있던 특정 정당의 반발이다. 하지만 이 또한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당장은 평지풍파를 겪겠지만 길게 봐선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야기되는 건 특정 정당의 반발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분열상도 야기된다. 지금 자유선진당이 보여주는 모습과 같은 양상이 야기된다. 꼭 나쁜 일은 아니다. 특정 정당, 다시 말해 야당 입장에선 적전분열이지만 여당 입장에선 교란이다.

과정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성사 되면 좋고 성사가 안 돼도 홍보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 의지를, 국민 통합․화합 의지를 선전할 수 있다. 이렇게 선전하면서 선거제도 개혁과 행정구역 개편을 매개로 정치개혁을 다그칠 수 있다. 이렇게 다그치면서 야당이 국정에 각을 세우고 날을 가는 현상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성격이 이렇다. 실세형 지역 인물을 총리에 앉히려는 시도는 ‘써봤자 3점’인, 아니 ‘써봤자 3점’도 안 되는 게임이다. ‘못 먹어도 고’를 외치기에 충분한 게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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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 똑같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모두 청와대를 비판한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무산된 데에는 청와대의 책임이 적잖다고 입을 모은다.

서툴렀다고 한다.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를 총리로 기용하려면 사전작업에 공을 들였어야 한다고 한다. 명색이 정당 대표인 사람을 기용하려면 정책연합과 같은 청사진을 내놓고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 협상을 벌였어야 한다고 한다.

일탈했다고 한다. 심대평 총리 카드는 지역주의 연합에 다름 아니라고 한다. 통합형 개각 효과를 극대화하고, 충청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지역주의 세력과 무분별하게 연합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한다.

덤터기를 썼다고 한다. 심대평 대표의 탈당으로 선진창조모임의 원내교섭단체 지위가 상실되는 바람에 한나라당은 완충장치를 잃은 채 민주당과 가파른 대립을 벌이게 됐다고 한다.

이런 비판을 종합하면 결론은 쉽게 나온다. 청와대는 손해를 봤다. 혹을 떼려다가 혹을 붙이게 됐다. 통합형 개각은 김이 샜고, 정치적 노림수는 자충수가 됐다.

근데 왜일까? 켕긴다. 너무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저 살피지 않은 이면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이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심대평 대표의 탈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대전충남지역 일부 기초단체장들이 심대평 대표와 행동을 같이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하니까 이미지만 상처를 입은 게 아니라 조직이 약화되는 결과도 안게 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심대평 대표가 탈당 선언을 하면서 이회창 총재에게 각을 분명히 세웠기 때문에 ‘배후 기습’에도 대비해야 한다. 세력은 약해졌는데 전선은 이중으로 쳐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 청와대, 나아가 한나라당에게 두 가지 기회를 만들어준다. 맹주가 사라진 틈을 비집고 진군로를 열 기회를 열어주고, 이게 아니더라도 거중 조정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자유선진당 단독 구도가 되든, ‘심대평당’과의 경쟁 구도가 되든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어느 당이든 대전충남 지역에서 지배주주의 지위를 잃고 소액주주가 되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은 반감된다. 이런 처지를 극복하고 다시 지역 맹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지역 민심에 ‘전리품’을 내놔야 한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지원이나 산업경제적 지원과 같은 정책을 끌어내야 한다. 이게 골칫거리가 된다. 대전충남지역에 대한 지원 권한을 갖고 있는 곳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따라서 이들의 행보에 보조를 맞춰야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 자유선진당이나 ‘심대평당’은 이전보다 더 확실히 한나라당에 협조해야 하고, 한나라당은 자유선진당(과 ‘심대평당’)을 쥐락펴략 할 여지가 그만큼 많아진다. 

실상이 이렇다. 당장은 손해 같지만 길게는 이익이 될 수도 있는 게 심대평 총리 카드 무산이다. 대전충남지역의 이익과 직결되는 정책을 잘 조율하면 의외의 큰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야박하고, 수도권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하는 정책을 펴면 민주당의 입지를 넓혀주는 결과를 빚겠지만 이런 극단적 상황을 배제하면 조율 기술에 따라 충청 지역을 관리할 수 있다.

근데 문제가 있다. 이런 분석과 전망 또한 단선적이다. ‘전칭’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들여다보면 안다. 대전충남지역에서 반MB 정서가 유포되는 동안에도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호감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래서 분석했다. 일각에서 ‘심대평 총리’ 카드에 친박근혜 정서를 희석시키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는 것으로 봤다.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 총리’를 기용하고 충청 지원책을 잇따라 내놓음으로써 반MB 정서와 함께 친박근혜 정서를 줄이려 한 것으로 봤다. 대전충남지역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어깨를 겨룰 MB직계 인사를 키우려 한 것으로 봤다.

이게 무산됐다. 대전충남지역 민심을 MB에게로 향하게 할 매개를 잃어버렸다. 설령 청와대가 충청지원책을 내놔도 그 효과를 정치적으로 쓸어 담을 채집통을 잃어버렸다. 대전충남지역에서 MB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끌 결정적 계기를 잃어버렸다.

기묘한 현상을 빚을지 모른다. 이런 사정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어부지리를 챙겨줄지 모른다. 청와대가 정책면에서 충청 지지를 이끌어내더라도 그보다 더 큰 정치적 지지를 박근혜 전 대표가 챙기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상황이 연출될지 모른다. 이회창이라는 걸림돌이 왜소해진 상태에서 정부의 충청 지원책을 뒷바람 삼으면 지지율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진=탈당 선언한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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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동문서답을 하는 걸 보니 그렇다.

국정을 쇄신한다고 했다. 그래놓곤 꺼내든 카드가 보수대연합이다. ‘박근혜 총리’ 카드가 그렇고 그 뒤에 나온 ‘심대평 총리’ 카드가 그렇다.

보수대연합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난국의 원인을 보수지지층 이탈에서 찾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을 불렀고 이것이 국정 추진력을 반감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까진 별 이견이 없다. 6·4재보선 결과를 봐도 보수지지층이 이탈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처방이다. 엇나가도 한참 엇나가고 있다. 정책이 아니라 공학으로 풀려고 한다. 가슴을 열어야 할 판에 방탄복을 껴입으려 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난국을 풀지 못한다. 

수치를 보면 안다.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거둔 득표율은 60%가 넘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친박세력, 자유선진당이 건진 의석수 또한 60%가 넘었다. 지금은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 나아가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을 합해도 30%를 겨우 넘는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의 지지율을 합해도 30%대를 넘기지 못한다. 반토막이 난 것이다 .

다른 수치가 있다. 쇠고기와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은 70%를 상회한다. 한미FTA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반대여론 또한 50%에 육박하거나 이미 넘어섰다. 어림잡으면 이명박 대통령 또는 보수세력을 지지했던 국민의 30%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말해준다. 보수지지층 이탈을 부른 가장 큰 요인은 정책이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태도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해법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정책을 바꾸는 것이다. 포기할 건 깨끗이 포기하고 수렴할 건 더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 그러면 풀린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추락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현상, 앞으로 국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45%에 달했던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끌어오면 더욱 확실해진다. 문제는 정책이고 해법은 수정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엉뚱한 데서 해법을 찾는다. 보수지지층이 떨어져나간 현상을 애석해 하고 있을 뿐, 왜 이탈했는지에 대한 자성이 없다. 그래서 틀렸다.

가능하지도 않다. 공학적 해법이 먹혀들 여지도 별로 없다.

6.4재보선이 증명한다. 전통적 지지층, 또는 절대적 지지층은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지역감정의 포로가 되어, 특정 정치인의 후광에 갇혀 묻지마 지지를 보내던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가 증명한다. 한나라당의 10년 아성이 무너졌다. 다른 곳이 아니라 강남권에서, 그것도 총선에서 압승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무너졌다. 여느 선거에 비해 정책과 시국 탄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장년층 이상 유권자가 많이 투표한 6.4재보선에서 이런 현상이 빚어졌다.

공학적 해법이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미워도 다시한번’ 식의 투표심리가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특정 정치세력의 유권자 장악능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특정 정치세력은 치유불능의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교본이 될 수 있다. ‘심대평 총리’ 카드가 표본사례가 될 수 있다. 그것이 플러스알파 효과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명박+이회창의 지지율 또는 한나라당+자유선진당 지지율의 단순합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그렇다.

그것 만이 아니다. 더 큰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귀를 열고 가슴을 여는 이미지를 연출해도 모자랄 판에 창을 집어드는 공격적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다.

친박세력 복당을 결정한 한나라당의 의석수는 원내 절대과반을 달성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보수대연합을 통해 의석수를 불리려고 하면 ‘의회독재’를 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니까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둘러보면 안다.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다. 원내 과반의석을 획득한 한나라당이 18대 국회를 개원조차 하지 못한 채 질질 끌려다니는 것은 의석수 때문이 아니다. 국민의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조차 일방독주식으로 의정을 펼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자신들에게까지 번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거리의 정치가 좌파 또는 친북좌파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계층,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는 범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굽힐 때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상이 틀렸다. ‘심대평 카드’는, 보수대연합 구상은 엇나가도 한참 엇나간 해법이다. 반성문을 써야 할 학생이 멱살잡이 한 친구에게 ‘두고 보자’며 눈 흘기는 식의 해법이다. 그래서 틀렸고 그래서 먹혀들 여지가 별로 없다. 국민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성사될 수 없는, 성사돼도 성공할 수 없는 해법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15일 청와대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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