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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달지 않으련다. 아니, 적극적으로 장단 맞추련다.

조중동의 주장은 옳다. 법관윤리강령에 ‘정치적 중립 의무’가 명시돼 있고, 법원공직자윤리위가 판사의 정치인 후원금 납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했다고 하지 않는가.

서울남부지법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마들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낸 건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조중동 주장대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정치적 관계가 있는” 민노당 관계자 12명의 국회 로텐더홀 점거 사건 재판을 맡은 상황을 감안하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항변은 성립되지 않는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자신의 가족상에 문상하고 조의금을 낸 데 대한 답례였다는 항변은 범부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자식 결혼식 때 낸 축의금 액수를 확인한 뒤 꼭 그만큼의 축의금을 상대방 결혼식에 내는 건 일개 필부나 하는 일이다. 판사는 고고해야 한다. ‘셈셈’ 계산법은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적 예의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노회찬 대표와 민노당과의 관계도 그렇다. 노회찬 대표가 민노당원이었던 건 예전의 일이고, 지금은 제 갈 길 가는 다른 당의 대표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래봤자 초록이다. 동색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매지 않는 법이다. 일반인의 처신이 이럴진대 판사는 오죽하겠는가. 아예 오얏나무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한다. 피고인의 사돈에 팔촌까지 살펴 신종플루 환자 보듯 해야 한다.

거듭 확인한다. 조중동의 지적은 지극히 타당하다. 마은혁 판사의 행동에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더라도 스스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판사의 처신은 다른 어느 직업보다도 신중해야 한다(조선일보)”고 하지 않는가. “국가권력과 관련한 형사소송에서 ‘공정’을 기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중앙일보)”고 하지 않는가. “개인적 사상, 가치관, 종교 등으로부터 오는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한다(동아일보)”고 하지 않는가.

마은혁 판사는 마땅히 그랬어야 한다. 조중동이 일깨우기 전에 몸소 실천했어야 한다.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한 마은혁 판사라면,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으로부터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된 마은혁 판사라면 더더욱 그랬어야 한다.

근데 왜일까? 개운치가 않다. 조중동의 일갈에도 불구하고 체증이 가시지 않는다. 조중동의 쾌도난마와 같은 논리를 정독하면 할수록 난감함이 배가된다.

마은혁 판사보다 훨씬 높은 판사가 있었다. 마은혁 판사의 사적인 행동보다 훨씬 심각한 공적인 행위가 있었다. 마은혁 판사의 정치중립 의무 위반 ‘논란’보다 더 확실한 재판개입 ‘사실’이 있었다.

신영철 대법관, 그는 지금도 건재하다. 야당의 탄핵 움직임과 여론의 성토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조중동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신영철 대법관의 '배째라' 태도를 준엄하게 꾸짖지 않는다. 

 ▲사진=신영철 대법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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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되물을 때가 됐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쉬 묻지 않던 걸 꺼낼 때가 됐다. 이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말 완성됐는가?

불행하게도 부정의 증좌를 여기저기서 발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쉼없이 터져 나오는 사례들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조롱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눈이 충혈 되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보고 들었던 표현의 자유 문제는 거론치 않겠다. 이것 말고도 사례는 수두룩하다.

사법부의 최고 직위에 있는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개입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촛불시위 참가자에 대한 재판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임의로 사건을 배정했고 판사들을 압박했다.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는 본론 따로 결론 따로 식의 해괴한 결정을 내렸다. 대리투표가 자행되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하면서 탄생한 법률의 효력을 인정하는 망측한 판단을 내렸다.

입법부의 최대 정당인 한나라당은 대리투표를 저질렀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희롱했다. 야당 의원들의 심의 표결권한을 침해하면서 날치기 장면을 연출했다.

행정부에 속한 검찰은 널뛰기 수사를 벌였다. ‘노무현 수사’ 때는 이 잡듯 뒤지더니 이명박 대통령 사돈 기업 수사 때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국가를 이루는 입법-사법-행정부의 실태가 이렇다. 그들 모두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조롱하고, 재판관의 독립된 양심을 침해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방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건 교정과 자정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판 개입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대법관이란 사람은 물러나지 않는다.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위배 사실이 공인됐는데도 원내1당은 야당 탓을 한다. 부실 수사의 증거가 속속 제시되는데도 검찰총장은 수사를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불가역적인 상태로 굳어지지 않았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원칙의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여전히 힘의 바람에 휘둘리고 있다.

그래도 국민은 믿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고, 침해된 민생과 민권을 국가 제도를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 다수 국민의 여론을 따르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면서도 제도권을 박차고 나가 힘으로 순종을 강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시스템에 따라,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러니다. 국가의 민주화는 땅을 기는데 국민의 민주의식은 하늘을 난다. 국가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는데 국민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갇혀있다. 

그리고 흩날린다. 아이러니 현상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길게 토해낸 한숨이 하늘과 땅 사이를 맴돈다. 

▲사진=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1만배를 하고 있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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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 것 같다. 신영철 대법관이 왜 버티는지, 일선판사들의 반발이 들불처럼 번지는데도 꿈쩍않는 이유가 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자리보전과 같은 사사로운 이해 때문이 아니다. 사법부 수호라는 역사적 소명을 한 몸 바쳐 받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전했다. “‘신영철 대법관은 일부 좌파 성향의 젊은 판사들에 맞서 사법부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서란다. 바로 이런 생각 때문에 사실상 칩거상태에 들어갔단다.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안 읽고, 식사는 집무실에서 혼자 도시락을 시켜먹으며 외부와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신영철 대법관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장판교에 홀로 선 장비의 심정일 게다. 내가 무너지면 퇴각하는 유비 일행이 다친다는 생각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버티고 선 장비의 결기일 게다.

그래도 크게 염려하지는 말자. 신영철 대법관은 장비만큼 외롭지는 않다. 원군은 이미 도착해 있다.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이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주장했다. “판사님들 한 분 한 분이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시리라 믿고 있다”고 했다.

분명하지 않은가. 신영철 대법관이 싸우는 대상은 ‘좌파의 젊은 판사들’만이 아니다.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이성적·합리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판사들’이기도 하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신영철 대법관의 싸움은 배수진을 쳐야 할 만큼 독해야 한다. 물러서면 안 된다. 그러면 법원이 붉게 물들고 재판이 여론에 의해 휘둘려진다.

이것만이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이 불퇴전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는 가치, 바로 헌법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그랬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이 재판권 독립에 상처를 준 헌법 위반이라고 들고 나오는 일선 판사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신영철 대법관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했다.

‘조선일보’의 주장에 따르면 신영철 대법관의 싸움은 헌법을 수호하는 싸움이다.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제106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집단의 힘으로 이 헌법 규정을 뒤집으려는 몰지각한 좌파 판사들과의 비타협적 투쟁이다.

싸움의 성격이 이렇게 엄중한데 어쩌겠는가. 고난이 닥쳐도 감내해야 하고 난관에 봉착해도 돌파해야 한다. 법원 뒷문으로 출퇴근 하고, 구내식당을 멀리 한 채 사무실에서 도시락 시켜 먹는 것쯤은 능히 견뎌야 한다. 부차는 장작더미에서 잠을 자고 구천은 쓸개를 핥지 않았던가. 선친의 원수를 갚고 중원의 패자가 되려는 사사로운 동기만으로도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헌법 수호라는 역사적 소명 앞에서 뭘 못하겠는가. 장작더미가 아니라 바늘요에서 잠을 자고 쓸개가 아니라 겨자를 뭉텅이로 씹더라도 헌법이 훼손되는 건 막아야 한다.

신영철 대법관은 ‘성전’을 벌여야 하고 곁에 있는 이들은 ‘영광 있으라!’를 외쳐야 한다. 그게 정도이고 그게 도리다.

헌법 제106조에 시선이 꽂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제103조를 외면한다면 그렇다. 지금까지 판사회의를 한 단독·배석판사 전원이 ‘좌파’라면 그렇다. 연판장 돌리기와 같은 극한적 수단을 멀리하면서 사퇴 촉구 대신 ‘업무 수행 부적절’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게 여론과 분위기에 휩쓸린 비이성적·비합리적 행동이라면 그렇다.

▲캡처=신영철 대법관의 근황을 전한 19일자 ‘경향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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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징계는 애당초 기대할 일이 아니었다. 대법원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신영철 대법관에게 주의 또는 경고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는 순간 징계는 물 건너 간 것이었다.

징계위 직행 코스를 버리고 윤리위 우회 코스를 선택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그랬던  그가 안면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의 또는 경고 권고를 무시하면 대법원 윤리위의 뒤통수를 때리는 셈이니 도리상 징계는 취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랄 일은 따로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상황 인식이다.

분명히 규정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 “재판의 내용이나 진행에 관여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축소했다. ‘재판 관여’의 파장을 앞장서 축소했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동으로 인해 법관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손상되는 결과가 초래" 됐다고만 했다. 그래서 “유감”을 표명하며 ‘엄중 경고’하는 선에서 그쳤다.

맞을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관여’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뢰에 손상을 주는 선에서 그친다면 경고해서 반성케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앞으로 더 잘 해 신뢰를 회복토록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일선 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인식은 안이할뿐더러 위험한 것이기까지 하다.

의정부지법 윤태식 판사가 그랬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똑같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관여’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것은 문화나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 침해의 문제”라고 했다.

윤 판사의 주장에 따르면 신영철 대법관은 국기사범이다. 헌법 제103조, 즉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조항을 침해한 사람이 된다.

징치하는 게 마땅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관여’로 규정했다면, 그리고 그런 행위가 헌법을 위반한 소지가 있다면 마땅히 징치하고 단죄했어야 한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정도에서 벗어나 타협책을 찾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선택에 대해 실망감에 앞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면 무너진다. 법질서가 무너지고 법의 권위가 손상되며 법의 강제력이 훼손된다. 대한민국 법률 수호기관의 최고수장마저 헌법 침해 사건과 타협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법질서에 순종하겠는가. 오로지 ‘법치’가 관철돼야 할 법원에서마저 ‘정치’가 횡행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법원의 권위에 무릎 꿇겠는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대법관을 늪에서 빼내는 대신에 사법부 전체를 사지로 내몰았다. 

▲사진=이용훈 대법원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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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존경받아야 한다는 건 안다. 대법관은 그래야 한다. 인권과 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자임하는 곳이 법원이라면, 그 법원의 최고 어른이 대법관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신영철 대법관에게서 고개를 돌린 한 판사의 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서울중앙지법의 이옥형 판사가 그랬다. “대법관은 정의로워야 하고 불의와 부당한 간섭에 비타협적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법관이 있다면 그 존경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이건 수치다. 신영철 대법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치욕스런 언사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후배 법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모멸감을 느껴도 부족할 언사다.

존중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존중받아야 한다는 건 안다. 대법관은 그래야 한다.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마지막 창구가 법원이라면, 그 법원의 최고 어른이 대법관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신영철 대법관을 보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어느 피고인의 선택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지난해 촛불시위 과정에서 휴교 문자 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기소됐다가 1,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장모 씨가 기피신청을 냈다. 촛불시위 관련 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 한테서는 재판을 받을 수 없으니 재판부를 바꿔달라고 했다.

이건 수치다. 신영철 대법관의 존재 의미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치욕스런 청구다. 법관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공정성조차 의심받았다는 점에서 모멸감을 느껴도 부족한 청구다.


하지만 아니다. 신영철 대법관은 무치(無恥)하다. 부끄러움이 없다. 그의 행적이 그렇게 말한다.

진작 내놨을 것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면 진작 표명했을 것이다. 적어도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자신의 행적을 ‘재판 관여’로 결론 내린 그 순간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법원 진상조사단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그랬고, 후배 법관들의 비판글이 쏟아지는 지금도 그렇다. 달다 쓰다 말 한 마디 없이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어느 들짐승마냥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다.

이해할 만하다. 돌아가는 사정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미 9부 능선에 올랐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가 주의 또는 경고 조치면 족하다고 결정했다. 두 눈 질끈 감고 경고 한 번 받으면 끝이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괜히 나설 이유가 없다. 섣불리 한 마디 해서 후배 법관들 가슴에 불지를 이유가 없고, 국민 머리에 열불을 댕길 이유가 없다. 그래서다. 후배 법관들의 비판 글이 쏟아진 어제, 기자들의 눈을 피해 대법원 뒷문으로 퇴근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신영철 대법관에게 뭐라 하지 말자. 소용없다. 그에게 고언을 보내고 비판을 가해도 소용없다. 그는 ‘벽’이다. 그의 ‘무치(無恥)’를 법원의 수치로 여기는 후배 법관들을 울부짖게 만드는 ‘통곡의 벽’이다.

▲사진=신영철 대법관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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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타령이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를 재판 개입으로 판정했는데도 ‘조선일보’는 색깔론과 음모론을 또 펼친다. “국민은 이번 파동을 통해 대한민국 법원이 횡적으론 이념의 좌우로, 종적으론 세대간 갈등으로 크게 찢겨 있고 사법부 안에 세계 어느 나라 사법부에도 없는 사조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재판 개입)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법원 인사이동이 끝나고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 취임한 뒤에야 ‘폭로’가 이뤄지면서 법원 안팎에선 ‘뭔가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계속 제기됐다”고도 한다.

평가는 안 하련다. 이미 반박이 적잖이 나왔다. 대신 이 점만 뽑아내련다. 무위로 그쳤다는 사실, 무력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가 색깔론과 음모론을 들고 나오자 한나라당이 호응했다. 한나라당의 주요인사들이 나서 법관의 독선을 비난하고 법관의 사법부 흔들기를 힐난했다. 이른바 조선일보-한나라당 연합이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도 먹혀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신문사와 정당이 손을 잡았는데도 판은 마음대로 조율되지 않았다.

왜였을까? 진상조사단은, 그리고 대법원 수뇌부는 왜 힘의 논리를 외면했던 걸까?


오로지 진실만을 좇는 양심 때문이었을까? 사법부 독립 의지의 발현이었을까? 믿고 싶지만 믿기 힘들다. 애초부터 그런 태도를 견지했다면 ‘신영철 파문’이 이렇게 커졌을 리가 없다. 진상조사단 구성 이전에 몰아주기 배당에 대해 ‘문제없다’는 막무가내식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수의 언론은 다르게 풀이한다. 파문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분석한다. 신영철 대법관에 면죄부를 주면 일선 판사들이 집단반발하면서 사법파동으로 번질 것을 대법원 수뇌부가 우려했다고 풀이한다.

이 분석을 대입하면 들어맞는다. 진상조사단이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서는 칼을 들이대면서도 이용훈 대법원장의 석연찮은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파헤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살을 주고 뼈를 지키는 타협용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대법원 수뇌부가 외부의 ‘힘’보다 내부의 ‘힘’을 더 중시했고 더 우려했다는 바로 이 점이 다음과 같은 반문을 성립시킨다.

내부의 ‘힘’의 발원지가 ‘조선일보’ 주장처럼 이념에 경도된 일부 판사들의 사조직이었다면 대법원 수뇌부가 흔들렸을까? 수직적 서열구조의 정점에 있는 수뇌부가 막강파워의 신문사와 정당의 엄호사격까지 받는 마당에 굳이 ‘일부’의 ‘음모’에 휘둘려야 했을까?

그럴 이유가 없다. 내부의 ‘힘’이 정말 소수였다면 전법대로 하면 됐다. 고립 후 섬멸하는 고전적인 방법을 쓰면 됐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국민으로 하여금)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게)” 하는 그들이니까 응당 그렇게 해야 했다.

다르게 봐야 한다. 고립시키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내부의 ‘힘’이 컸다고 봐야 한다. 대법원 수뇌부가 사법파동을 우려할 지경에 이를 정도로 내부의 ‘힘’이 컸다고 봐야 한다.

이런 힘은 단지 ‘수’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신영철’에 비판적인 판사가 옹호하는 판사보다 많아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게 결코 아니다. 법원은 국회처럼 다수결 원리가 강요되는 조직이 아니다.

상호작용의 결과로 봐야 한다. 법원의 법리와 국민의 상식이 교호작용을 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으로 봐야 한다. '작은 언론'과 '게릴라 언론'이 벌떼연합을 구축하면서 탄력을 부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상호작용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새롭게 보인다. 고립된 건 ‘조선일보’다. 여론을 선도하고자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원내 제1당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1등신문의 파워를 발휘하려고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한 언론이, 한 시각이, 한 논조가 여론을 주무르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사진=‘조선일보’ 3월 17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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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과가 나왔으니 ‘결과론’을 펼쳐보자.

한나라당의 처지가 어떻게 될까? 물어보나 마나다. 뻘쭘하게 됐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뺨을 얻어맞았는데도 대놓고 투덜거릴 수가 없게 됐다.

신영철 대법관은 재판 개입을 하고서도 국회 청문회에선 하지 않았다고 위증을 했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은 다른 정당과 함께 왼쪽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것이다.

여기까진 참을 만하다. 자신들만 맞은 게 아니니까 ‘독박’은 쓰지 않은 셈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두둔하고 나섰다. 권력지향적이고 정치지향적인 법관들의 사법부 흔들기라고 했고, 법관의 독선이 큰 문제라고 한탄했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을 기만한 사람을 감싸는 우를 범하면서 오른쪽 뺨마저 내민 것이다.

여기서 말문이 막힌다. 자신들을 합리화할 논리를 찾을 수가 없다. ‘우리도 당했다’는 류의 변명은 내놓을 수가 없다.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의혹을 맹비난할 때 한나라당은 ‘사실판단’ 영역에서 싸운 게 아니라 ‘가치판단’ 영역에서 싸웠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에 대해 ‘몰라서’ 두둔한 게 아니라 ‘알면서’ 감쌌다. 재판 개입이 아니라 사법행정지휘권 발동 차원이었다고 ‘해석’하며 싸웠다. 한나라당은 ‘당했다’는 말을 내놓기 위해 반드시 성립시켜야 하는 전제 즉 ‘몰랐다’를 입증할 수가 없다.

어찌어찌해서 ‘우리도 당했다’는 이미지를 연출한다고 해도 상황이 종료되는 게 아니다. ‘당했다’면 응분의 대응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국회의 권능을 농락한 신영철 대법관의 위증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고발해야 하고 사법처리를 촉구해야 한다. 이게 한나라당이 입만 열면 읊조리는 ‘법치’의 ABC다.

하지만 난감하다. 그러면 판을 너무 키운다. ‘법치’의 최종단계인 사법적 판단에 심각한 왜곡현상이 발생했었음을 재삼재사 확인시키는 결과를 빚게 되고 ‘결과적으로’ ‘법치’에 대한 국민 신뢰를 반감시키는 정치적 손실을 입게 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 난감한 처지를 헤쳐가려면 부정해야 한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재판 개입 소지’ 판단을 인정하지 않은 채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조사결과를 조율했다고 내몰아야 한다.

헌데 그럴 수가 없다. 이러면 ‘결과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재판 개입 여부에 대한 최고 판단기관의 권위마저 인정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사법부 흔들기를 하는 셈이 된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강조해온 ‘법치’의 근간을 스스로 흔드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실상이 이렇다. 좌우를 둘러봐도 그렇고 앞뒤를 훓어봐도 그렇다. 모든 건 ‘법치’로 통하고, ‘법치’로 통하는 모든 길에 혈전이 쌓여있다. ‘신영철 의혹’을 정치적으로 풀려고 한 한나라당의 처사가 이런 현상을 자초한 것이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