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신당이 중앙위를 열어 '교황식 대표선출'을 결정했다. ⓒ오마이뉴스
밥상머리 싸움이 끝났다. 통합신당이 메뉴를 골라잡았다. 잡탕이다.
대표를 교황식으로 선출하기로 했다. 중앙위원들이 대표 후보를 한 명 씩 써내 과반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하는 방식이다. 대다수가 전망한다. 손학규 전 경기 지사가 대표로 선출될 것이라고 한다. 투표권을 행사할 '추기경' 분포로 볼 때 손학규 전 지사의 당선이 무난하다고 한다.
이 전망에 따르자. 손학규 전 지사가 대표가 돼 가장 먼저 할 일은 최고위원 지명이다. 대상은 각 계파 수장들이다. 계파 안배 차원이다.
지향점이 뚜렷하다. 색 보정은 포기했다. 오히려 혼합색을 꺼내들었다. 가뜩이나 정체성이 모호했던 통합신당 노선이다. 여기에 한나라당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는 사람의 노선을 섞기로 했으니 어떤 색이 만들어질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회색이다.
솎아내기도 사실상 포기했다. 계파 안배는 계파 공존을 목적으로 한다. 계파별로 자기 사람 챙기기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공천 혁명은 물건너갔다.
살아날 수 있을까? 이 정도의 정비로 총선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한 가지만 추가하면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다. 민주당과 합치고 창조한국당을 끌어들이면 생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통합이 어려우면 연합공천이라도 해야 한다고 한다. 정대철 고문이 그렇게 말하고, 민주당의 이인제 의원이 그렇게 주장한다. 이른바 '대안야당론'이고 '견제야당론'이다.
전략이 분명하다. 통합신당이 총선에서 꺼내들 무기는 '지역'과 '견제'다. 이명박 정부 견제심리를 자극하고 지역표심에 기대는 전략이다. 이러면 통합신당이 대선에서 얻은 26% 안팎의 득표율을 다시 챙길 수 있다. 여기에 창조한국당이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 7% 안팎을 보태면 해볼 만하다. 호남지역은 둘러볼 필요도 없고, 충청지역에선 해볼 만하고, 수도권에서는 절망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어쩌면 이게 가장 편한 길인지 모른다. 세상에 완벽한 정책, 흠결 없는 정부는 없다. 오히려 대통령직 인수위가 쏟아내는 정책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집토끼를 잘 다지면서 반사이익을 챙기면 '제2의 한나라당 길'을 밟을 수도 있다.
'구태정치' '지역주의 회귀'라는 비난은 듣고 흘리면 그만이다. 어차피 자신들 외에 대안세력이 없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비등해질수록 사표방지 심리가 발흥할 것이고, 그 과실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일단 살아남고 볼 일이다.
흡사하다. 야당 시절의 김대중 노선과 닮아있다. 27% 안팎의 지역 지지층을 기반으로 삼고 개혁층을 우군으로 삼는 선거전략이다.
하지만 아니다. 외양만 그렇다. 실체는 완전히 다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혁층 확보를 장담할 수 없는 점이다. 통합신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하면 비슷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재로선 김칫국을 먼저 마시는 격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책을 놓고 여론시장에서 논란이 거듭되는데도 통합신당은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그 흔한 대변인 논평조차 접한 기억이 별로 없다. 통합신당발 뉴스의 99%는 대표 선출 싸움이다. 오죽했으면 퇴임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와 각을 세웠을까.
국민에게 각인된 통합신당 이미지는 지리멸렬, 오합지졸, 지지부진이다. 도대체 뭘 믿고 개혁층이 밀어준단 말인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요체는 개혁층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의 의식성향이 '진보' 또는 '중도'라고 답하면서도 대선에서 보수 후보를 선택한 개혁층의 방황심리를 포착하는 게 관건이다. '비주류 대통령' '서민 대통령'에 걸었던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고 여기는 순간 '가치'의 허망함에 진저리치는 개혁층의 정서를 끌어안는 게 포인트다.
통합신당은 여기에 부응하지 못한다. '민주' '개혁' '평화'를 운위하지만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민주'는 민주적 절차가 갖춰짐으로써 절박성이 무뎌졌고, '개혁'은 '좌파신자유주의'란 단어가 상징하듯이 성격이 모호했고, '평화'는 직접적인 위협을 체감할 정도로 절실하지 않았다. 그래서 '흘러간 옛노래'로 간주했다. 국민이 그렇고 느꼈고 개혁층이 그렇게 바라봤다.
이렇게 보면 차라리 통합신당 내 쇄신파의 주장이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는 듯하다. 개혁성이 강한 인물을 당 대표로 영입하고, 공천혁명을 통해 비개혁적 요소를 도려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시대의 흐름과 일정하게 맞닿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선명한 반대논리를 펴야 한다는 그들의 노선도 그렇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이들은 통합신당의 그릇을 깨려 하지 않는다. 통합신당이 갖고 있는 지역 기득권을 버리기엔 못내 아깝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평가가 나온다. 쇄신파의 주장은 고목나무에 물을 주는 꼴이다.
더더욱 중요한 점은 이들의 '선명성'이 아직 실체를 가다듬지 못한 점이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외치지만 신자유주의 대안은 제시하지 못한다. 세계화의 그늘은 우려하지만 '세계' 외의 다른 거처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쇄신파는 경계선에 서있다. '민주'와 '진보'의 경계선에서 개혁의 핵심을 잡지 못한다. 그것이 진보개혁인지, 민주개혁인지 스스로 설명을 하지 못하고 트위스트를 춘다. '지역'과 '민중'의 경계선에서 곁눈질을 하면서 쌍끌이를 하려고 한다.
얼추 정리가 된다. 통합신당 전체, 계파를 막론한 전체의 정체가 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은 진보가 아니다. 스스로 천명하듯이 '중도개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통합신당 강령 어디에도 진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연유와 같다.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대선 결과를 진보세력의 패배로 규정하는 담론이 과연 정밀한 것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민노당은 논외로 하자. 달리 짚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통합신당을 '진보'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통합신당의 참패를 '진보'의 참패로 간주하는 등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수십년간 이어져온 중도개혁 노선이 수명을 다 한 것인지 아니면 중도개혁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를 가려야 한다. '한국형 진보' 모델은 뭔지, 그것은 대체개념인지 보완개념인지를 토론해야 한다.
지금 상황과 단계에서 총선은 목적이 될 수 없다. 모색점이고 경과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