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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다를까 싶다. 언론은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낙점한 패널 2명과 묻고 답하는 형식을 문제 삼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다. 언론 주장대로 기자회견을 연다고 해서, 패널을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구성도 전문가 패널과 국민 대표로 다양화한다고 해서 진짜 '대화'가 이뤄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기자회견을 여는 경우에도 출입 기자단이 사전에 질문을 뽑아 청와대에 넘겼다. 대부분 이런 ‘관행’을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그래왔다. 기자회견을 해도, ‘국민과의 대화’를 해도 논쟁식 질문은 애당초 허용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해도 질문자가 묻고 또 묻는 진행방식은 거의 없었다. 진행자 또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으레 ‘시간 부족’을 이유로 단발성 질문으로 제한했고, 그 탓에 질문은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일관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내일 있게 될 ‘대통령과의 대화’와 지금까지 있어왔던 ‘대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끝장’을 못 봤고, 못 볼 것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해하지는 말자. 청와대를 두둔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 같은 지적이 청와대의 자신감 부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래봤자’ 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집하는 청와대의 소심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어차피 한 목소리인데 방송사 공동중계를 고집하는 청와대의 과욕을 더욱 부각시킨다.


다만 강조하고자 하는 건 내용이다. 뭘 하나를 물어보더라도 국민의 궁금증과 갑갑함을 속 시원히 풀어줄 ‘소통’이다. 묻고 또 물어서 대통령의 뜻과 방침을 국민 앞에 오롯이 드러내는 ‘논쟁식 묻고 답하기’다. 설령 기본 질문이 청와대에 건네지더라도, 그래서 대통령이 ‘모범답안’을 준비한다 해도 묻고 또 묻는 방식이 도입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애드립’ 질문에 ‘애드립’ 답변이 이어지면 대통령의 속내와 정책의 실체를 좀 더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를 강조한다. 패널 두 명이 돌아가며 질문하는 좌담 방식이 아니라 패널 한 명이 진행의 완급을 조절하며 질문하는 대담 방식이 ‘차라리’ 낫다. ‘너 한 번 나 한 번’의 부담감을 털어내고, 제 입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청와대에 밉보이더라도 할 말 다 하겠다는 결기로 날 선 질문을 던지는 ‘대표 대담’이 ‘차라리’ 낫다. 그렇게 ‘what’이 아니라 ‘why’를 묻게 하는 게 낫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기자들이나 분야별 전문 패널이나 각계각층의 국민 대표가 논쟁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만 이 방식이 거추장스럽다면, 정히 '단촐한 대화'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대통령과의 대화’에 ‘원산지’ 표시를 해서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패널조차 제 입맛 따라 낙점하는 청와대의 태도를 볼 때 '언감생심' 같긴 하지만…. 

▲사진=2009년 11월 27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 장면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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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쇠파이프(한화 측은 김 회장이 주먹만 휘둘렀다고 주장한다)였고, 최철원 전 M&M대표는 알루미늄 배트였다. 그리고 이번엔 공업용 칼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6촌동생인 박모 금동산업 대표가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 박모 씨를 폭행하면서 공업용 칼을 집어던졌다고 한다.

각설하자. 노블리스 오블리주니 사회적 책임의식이니 하는 따위의 점잖은 ‘훈계’는 집어치우자.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관심사는 배면이다. 재벌2세들이 걸핏하면 흉기를 집어 드는 이유다. ‘보필’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 숫적으로 우세한데도 흉기를 휘두르는 이유다. ‘싸움’의 법칙을 어기는 이유다.

힌트는 ‘저항’이다. 김승연 회장의 쇠파이프에 위협당한 사람은 김 회장의 아들을 폭행한 사람이고, 최철원 전 대표의 배트에 맞은 노동자는 인수합병에 저항한 사람이며, 박 대표의 칼부림 대상이 된 사람은 박 대표 측 주장에 의하면 업무 지시에 따르지 않은 사람이다.

재벌2세들이 보기에 이들은 ‘별종’이다. 넓게 보면 이들은 ‘NO맨’이다. ‘까라면 까야’ 하는데 ‘까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재벌2세들의 염장을 지르고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유행하는 말로 하면 소통 대상이다. ‘까지’ 않는 연유를 묻고, ‘까게’ 만들 방법을 물어야 할 사람들이다. 헌데 재벌2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까지’ 않는 데 대해 소통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그냥 ‘깠다’. 흉기로….

여기서 파탄 현상을 본다. 소통에 능하지 않은, 아니 아예 소통 의사가 없는 재벌2세들의 진면목을 본다. 그들에게 소통은 ‘나와바리’ 간에나 이뤄지는 대화 양식이지 ‘나와바리’ 내에서 이뤄지는 대화 양식이 아니다. ‘나와바리’ 내에서의 소통은 오로지 상명하복일 뿐이며 그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징치의 대상이지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흉기는 지휘봉이다. 지시와 명령에 따르지 않는 ‘꼬붕’에게 휘두르는 ‘빳다’이다. 그들은 그렇게 여긴다.

사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조 설립 붐이 일었을 때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숱한 재벌, 숱한 기업이 대화를 하려 하지 않고 구사대를 동원해 노조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려고 했던 행태의 잔영이다. 차이가 있다면 구조적 폭력이 개인화 되었다는 점 뿐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렇게 보면 앞서 거론한 재벌2세들은 ‘부진아’다. 대다수 다른 재벌들이 그나마 ‘학습효과’를 통해 저강도 전략으로 돌 때 그마저도 따라가지 못한 ‘부진아’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문화적 충격에 적응하지 못한 ‘부진아’다. 재벌의 특장으로 여겨지는 놀라운 환경 적응력조차 체득하지 못한 재벌답지 않은 재벌2세들이다.

▲사진=최철원 전 M&M 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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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소통법은 스킨십입니다. 서울 이문동 재래시장에 가서 어묵과 뻥튀기를 사먹고, 서울 관악구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안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의미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일각에서는 ‘서민 이미지 연출용 쇼’라고 비판하지만 서민 보기를 소 닭 보듯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스킨십 덕에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는 만큼 의미 없다고 말해봤자 먹혀들 것 같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렵니다. 기왕 내디딘 걸음이라면 생산성에 좀 더 신경 쓰라고 충언하렵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조선시대 임금님의 미행과 같은 행보를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곤룡포 대신 미복 차림으로 저잣거리에 나가 민생을 살필 이유가 없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조선시대엔 신문도 TV도 인터넷도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구중궁궐 속에서 권신들에 둘러싸인 채 국정을 돌봤습니다. 그래서 실제 현실과 보고된 현실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미행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신문 TV 인터넷, 무엇을 통하든 피폐해지는 민생과 들끓는 민성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 봐도 다 압니다. 이미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가난한 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쓰레기를 줍고, 일용노동자로 일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으며)…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삶을 살아(온)”(16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이명박 대통령이 굳이 산 넘고 물 건널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 점 때문에 말하는 겁니다. 스킨십을 계속 할 요량이라면 ‘쇼’라는 비판, ‘감질 난다’는 불만이 쏙 들어가게, 화끈하게 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살피는 스킨십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스킨십을 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직설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용산’에 찾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가서 화끈하게 스킨십 할 것을 제안합니다.

사흘 후면 반 년이 됩니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여섯 달이 됩니다. 해결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족들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앞세워 청와대나 서울광장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장면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헤아려야 합니다. 응어리를 넘어 돌덩이가 돼 버린 유족의 한을 헤아려야 하고, 응어리가 돌덩이가 될 때까지 무관심과 무응답으로 일관한 당국의 처사를 되살펴야 합니다.

가서 듣기 바랍니다. 검찰 수사가 끝났는데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유가 뭔지 경청하기 바랍니다. 가서 헤아리기 바랍니다. 91%의 세입자가 이주를 했는데도 나머지 9%의 세입자가 버텨야 했던 사정을 살피기 바랍니다. 가서 어루만지기 바랍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이주대책과 보상책을 조금이라도 반영할 여지가 있는지 점검하기 바랍니다.

검찰이 이미 ‘불법’으로 규정한 마당에 무슨 진상 규명이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91%의 세입자가 이주한 마당에 어떻게 ‘일부 극소수’ 세입자에게만 지원책을 강구하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청와대가 할 일과 서울시․용산구청이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럴지 모릅니다. 그게 법 현실이고 행정 현실일지 모릅니다. 그런 현실 장벽 때문에 대통령이 가봤자 생색을 낼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권고하는 겁니다. 반드시 ‘용산’을 가보라고 제안하는 겁니다.

소통은 아무 데나 가서 아무 규정력 없는 덕담을 하는 게 아닙니다. 소통 ‘전후’가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한 뒤에 여러 지역 영세상인들이 대형마트 때문에 못 살겠다고 철시한 현상이, 이명박 대통령이 어린이집을 찾아 보육에 관한 덕담을 쏟아내기 직전에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의회 교육위원들이 경기교육청의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 현상이 증명합니다.

‘용산’은 표본입니다. 소통은 규정력 없는 덕담을 나누는 게 아니라 막힌 언로를 뚫는 것이라는 사실을, 난제의 장벽에 구멍을 뚫는 것이라는 사실을, 해결의 실마리를 함께 모색하기 위해 머리 맞대는 것이라는 사실을 체험하고 체득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다른 것은 일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가능한 것만 말하겠습니다. ‘용산’에 가서 밝히기 바랍니다. 유족측이 요구하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수사기록 공개라도 약속하기 바랍니다. 검찰이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공개를 거부하는 수사기록 3천여쪽을 내놓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기 바랍니다. 수사가 종료된 사안이니까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수사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소지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어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공개된 수사기록을 토대로 법원이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면 그 판결에 맞춰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약속하기 바랍니다.

이게 그나마 진짜 소통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이렇게 얼어붙은 가슴에 미지근한 입김이라도 불어넣는 게 스킨십 아닐까요?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천명한 “서민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돌보라는 소명”을 조금이라도 수행하는 것 아닐까요?

▲사진=지난 16일 서울 관악구의 ‘하나어린이집’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답이 나왔다. 이른바 ‘영수회담’을 둘러싼 논란을 일거에 정리할 수 있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다. 이른바 ‘영수회담’의 한 당사자인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말에 답이 담겨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정권은 지지하는 사람들하고만 코드를 맞추고, 국민 통합은 않고 분열시키는 일을 책동한다”고 운을 뗀 뒤 “영수회담을 해봤는데 태도 변화를 못 느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마이동풍’ 했고 정세균 대표는 ‘우이독경’ 했다는 얘기다.

지적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럴 것이 뻔했는데 뭐하러 청와대에 갔냐고, 왜 청와대에 가서 ‘여당 2중대’ 욕을 버냐는 비판이 자연스레 나온다. 

물론 결과론으로 몰아갈 문제는 아니다. “지지하는 사람들하고만 코드를 맞추고, 국민 통합은 않고 분열시키는 일을 책동”하는 행태를 이른바 '영수회담‘ 이전에 알지 못했다면, 이른바 ’영수회담‘을 하고나서야 알게 됐다면 정세균 대표의 청와대행은 의미를 갖는다.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그런 행태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소득일 수 있다.

하지만 몰랐을 리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줄기차게 지적돼 온 게 바로 ‘소통’이었고 ‘통합’이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민주당 먼저 그렇게 비판해 왔다.


다르게 보자. 정세균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알고서도 청와대를 찾아갈 수 있다. 설득하기 위해서, 충고하기 위해서 찾아갈 수 있다. 소통은 양 당사자의 노력이 맞아떨어져야 이뤄지는 것이니까 어느 한쪽이 먼저 노력을 기울이는 걸 뭐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서 찾아갔다고, 회담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받아들이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가서 만났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못 느꼈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꼬인다. 정세균 대표는 미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여기겠다고 한 말을 버리지 않는다.

정세균 대표가 그랬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도 똑같은 말(국정의 동반자)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표에게 한 말은 집안싸움을 정리하는 말이었고, 이건 여야 관계 설정의 문제니까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정부가 어떤 일을 할 때 파트너로서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건 부적합하다. 차라리 코미디라고 규정하는 게 낫다.

본인 스스로 규정한 사실을 부정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하는 사람들하고만 코드를 맞추고, 국민 통합은 않고 분열시키는 일을 책동”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뒤에 가선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당을 “파트너로서 의견을 존중”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동반자’에 대한 기대가 ‘실소’ 거리라면 ‘초당적 협력’에 대한 의지는 ‘썩소’ 거리다.

살펴보면 안다. 정세균 대표는 경제살리기와 남북관계 등에서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고 하지만 기실 할 게 별로 없다. 이 분야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태도는 변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감세를 밀어붙인다. 미국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IB 육성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각종 규제를 풀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 민주당이 반대하는 것들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돌격’ 모드를 가다듬고 있다.

남북관계는 또 어떨까? 정세균 대표가 제안한 게 민주당의 ‘대북 네트워크 활용’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영수회담’이 열린 바로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을 향해 ‘핵무기 포기’와 ‘개방’을 다시금 요구했다. 민주당이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다고 비판한 ‘비핵·개방 3000’ 정책을 다시 읊조린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 이렇다면 ‘대북 네트워크’를 활용할 여지는 없다.

그럼 이건 어떨까? 정세균 대표가 강조한 ‘스몰딜’(정 대표는 “스몰딜이 자꾸 쌓이면 빅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추가경정예산안도 우리 의지를 반영했다”고 주장했다)이 ‘초당적 협력’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또한 가당치 않다. 민주당이 애초에 지적했던 문제, 즉 사기업(그것도 외국자본이 지분을 소유하는)인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에 국민 혈세를 지원하는 문제를 접고 그 대가로 노인 틀니 지원비를 얻어낸 건 ‘스몰딜’이 아니다. ‘스몰’인지 ‘빅’인지를 계산하기에 앞서 ‘딜’이라고 볼 수가 없다.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걸 내주고 ‘생색거리’를 챙기는 걸 두고 ‘딜’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상대에 떡을 통째로 내주고 콩고물을 얻는 걸 ‘거래’라고 인정하는 사람 또한 없다. ‘딜’은 등가교환일 때에나 쓰는 말이다.

알아야 한다. 정세균 대표는 자신이 어느 길을 걷는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돌아봐야 한다. 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훑어봐야 한다.

권하고 싶다. 우선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들어보길 바란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모순돼 있는지, ‘화자’가 아니라 ‘청중’이 돼 들어보기 바란다.

▲사진=<경향신문>의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인터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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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 연신 ‘소통’을 읊조리지만 그 언사에 반성과 실천의 뜻이 담겼다고 볼 수가 없다.

오늘 나온 뉴스가 반증한다.

대운하를 전담하는 국토해양부 ‘국책사업지원단’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총선 직전 폐지했던 지원단을 새로 꾸려 대운하 실무 검토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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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여 소통조차 안 되는 대운하를 만지작거리는 정부

저울에 올려놓으면 미국산 쇠고기와 팽팽한 균형을 이룰 게 대운하다. 그만큼 국민적 반대가 큰 사안이다. 이걸 다시 추진하려고 한다. 한편에선 소통을 강조하며 다른 한편에선 국민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사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 일각에서 보이는 모습처럼 소통을 홍보로 간주하기 때문일까? 소통, 즉 홍보를 강화하면 대운하 찬성 여론이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걸까?

가당치 않다. 미국산 쇠고기보다 홍보를 더 많이 한 게 대운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있기 전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줄곧 주장해온 것이다. 1년여 동안 홍보를 할 만큼 한 게 대운하다.

그래도 요지부동이다. 국민은 꿈쩍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최측근을 내치고 ‘대운하 반대’를 외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를 당선시킨 국민이다. 홍보를 백배 천배 강화한다고 해서 국민 마음이 움직일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더 복잡하다. 미국산 쇠고기보다 훨씬 복잡한 게 대운하다. 미국산 쇠고기는 여권 대 국민의 단순대립구도 아래서 마찰이 빚어졌지만 대운하는 그렇지 않다. 여권 대 국민의 대립구도 이전에 여여 대립구도가 조성될 판이다.

<중앙일보>가 조사를 했다. 18대 국회의원 당선자를 상대로 대운하에 대해 물었다. 한나라당 당선자 다수가 ‘유보’ 입장을 보인 데 비해 박근혜 전 대표와 그 측근들은 단호하게 ‘폐지’를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이전에 여권 내부의 소통부터 처리해야 할 판이다. 친박세력 복당이 이뤄진다면 더더욱 피할 수 없다. 복당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에둘러 갈 수 없다. 그들이 반대하는 한 대운하 특별법 제정은 불가능하다.

그 뿐인가. 미국산 쇠고기를 두고 정부를 엄호했던 보수언론마저도 대운하에 대해선 시큰둥하다. 사설을 통해 ‘재고’를 요청한 보수언론도 있다. 여여 소통뿐만 아니라 범여 소통이 이미 동맥경화에 빠져든 상황이다.

‘다소 부족’에서 ‘아예 무시’로

이런 사정을 의식한 걸까? 정부 일각에서 엉뚱한 말이 나온다. 굳이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참으로 편한 발상이다. 이것도 실용인지,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사고한다. 하지만 국민이 보기엔 ‘악성’이다. 중증 상태에 해당하는 ‘악성’이다. 소통의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

여권 일각, 보수진영 일각, 나아가 국민 상당수가 반대하는 대운하를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소통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소통이 ‘다소 부족’한 게 아니라 소통을 ‘아예 무시’하는 것과 같다.

국토해양부의 조치가 ‘과잉 충성’에서 빚어진 돌출행동이 아니라면, 지원단 부활에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이라면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변한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더 경직되고 있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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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부가 언론 논조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정부 부처 대변인들, 그리고 청와대 국내언론 담당 비서관 등이 지난 9일 ‘국정홍보회의’를 열어 미국산 쇠고기 관련 언론 논조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서울신문>이 세게 쓰더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원래 논조가 그러니까” 등등의 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국정 현안에 대한 언론 논조를 살피지 않는 건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국민 여론을 살피는 한 방편이 언론 논조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론 논조를 분석했다는 것만 갖고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국정홍보회의는 일부 언론의 ‘쇠고기 논조’를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광고를 줄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를 했습니다. 정부가 <한겨레>와 문화관광체육부의 공동 사진전에 대한 협찬을 취소한 사례를 시범케이스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적’을 운위하고 ‘차별’을 모색한 게 문제입니다.

국정홍보회의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하지만 국정홍보회의는 이를 뒤로 제쳤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공격을 모색했습니다.

2.

소통은 차이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수평과 평화를 속성으로 하는 개념입니다.

소통은 다르기 때문에 행하는 일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이해가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바로 소통입니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배척할 수 없기 때문에 공통분모를 확대하고 나아가 합일을 이루려는 노력이 소통입니다.

‘적’에겐 이런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적’은 단지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공존과 합일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찍어 누르거나 뿌리를 도려내는 방법 말고 다른 대처법은 없습니다.

3.

국정홍보회의는 국민을 ‘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논조를 보였다는 일부 언론의 기사에 촛불을 든 수만 명의 국민이 등장합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우려를 표하는 80% 가까운 국민이 등장합니다. 정부의 잘못된 협상을 꼬치꼬치 지적하는 다수의 전문가가 등장합니다. 일부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를 집중해서 전달했을 뿐입니다.

이런 논조를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은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적의 선무방송’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과의 의견차를 좁히려는 시도가 아니라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기도와 같습니다.

4.

대통령이 아무리 소통을 강조해도 소용없습니다. 몸소 실천에 나선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현장방문을 강화하는 계획을 세운다고 합니다만 부질없습니다. 대통령이 나가려는 현장은 광장이 아닙니다. 경호원의 통제 아래 조성되는 무대일 뿐입니다.

대통령이 광장에 나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경호상의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광장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는 다릅니다. 청계광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열릴 때 대학로에서 쇠고기 수입 찬성 집회가 열리는 게 다반사입니다. 대통령이 만사 제쳐놓고 여러 개의 광장을 두루 살피는 건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발품을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게 중요합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여당지와 야당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실체를 인정하고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이들 모두의 논조를 살피고 경청하는 게 훨씬 생산적입니다. 언론이 바로 광장입니다.

5.

국정홍보회의는 바로 이 여론 광장을 막으려고 합니다. 다양한 여론 가운데 특정한 여론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러면 대통령은 외눈박이가 됩니다. 난청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설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먼저 역정을 내고 징계를 해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엉뚱한 짓을 벌이는 국정홍보회의를 질타해야 합니다. 소통 의지가 정말 절실하고 간절하다면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준엄하게 꾸짖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사진=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문화관광체육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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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넌센스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소탕'을 꾀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 지난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소통문제에 있어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던 그 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소탕'을 다짐했다. 촛불문화제 주최자와 이른바 ‘괴담’ 발신자를 찾아내 사법처리하겠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는 건 아니다. 육두문자와 비방이 오가는 건 소통이 아니라 악다구니다. 다른 건 몰라도 ‘괴담’이 정말 괴담이라면, 그리고 정부가 간주하듯이 그런 괴담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돼 있다면 정상적인 소통을 위해서라도 발본색원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건 논리다. 그것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형식논리다. 현실논리, 상황논리는 전혀 다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통이 부족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전혀 다른 현실논리, 상황논리를 떠받치고 있다.

촛불문화제가 왜 열렸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데도 정부가 딴청을 피우는 바람에 발생한 게 촛불문화제다.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우려에 대꾸를 하지 않고, 네티즌의 청원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바람에 더 큰 목소리를 내려고 집어든 게 촛불이다.

‘광우병 괴담’이 왜 유포됐는지도 따질 필요가 없다. 과정을 보면 안다. 정보 소통이 거의 없었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4월 18일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자진해서 밝힌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협상문 행간을 뒤져가며 숨어있던 합의내용을 찾아내고, 미국 연방정부 홈페이지를 누비며 미국의 광우병·검역·동물성 사료 실태를 밝혀낸 건 민간이다. 정부는 단지 한 가지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했을 뿐이다.

정부가 입만 열면 읊조리는 ‘건전한 비판’과 ‘악의적 선동’은 기실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한 장의 종이에 국민이 알아야 하는 정보를 빼곡이 적어 전달했는지, 아니면 백지장으로 던져버렸는지에 따라 반작용이 ‘건전한 비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악의적 선동’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부가 소탕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이른바 ‘괴담’이 유포되게 만든 자신을 질책해야 하고, 이른바 ‘악의적 선동’이 만연하게 만든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에둘러 물을 게 아니다. ‘도의적 책임’이나 ‘정무적 책임’을 운운하는 건 필요 없다. 정부가 국민을 향해 ‘업무방해’와 ‘명예훼손’과 같은 죄목을 거론하는 것과 똑같이 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서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그 실상을 낱낱이 공개한 다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모색하는 ‘소탕’이 정당한 것인지를 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의 ‘소탕’에 대한 ‘차분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어청수 경찰청장 ⓒ경찰청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