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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5 호소 같은 강요-정운찬의 "믿어 달라" (4)
  2. 2008/09/26 MB내각과 아소내각, 붕어빵이네 (5)


목소리는 낮지만 주장은 드높다. 형식은 호소지만 내용은 강요다.

정운찬 총리의 화법이 그렇다. 사안과 대상을 가리지 않고 “믿어 달라”고 읊조리는 그의 언행이 그렇다.

▲지난 3일 용산참사 유족을 찾아가 “저도 어릴 때 어렵게 살아 서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저를 믿고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9월 18일 충청 출신 명사 모임인 ‘백소회’에 참석해 “제가 충청도 출신이고, 충청도 출신인 것을 일생동안 자랑하면서 살았다”며 “(세종시 문제에 대해) 가장 좋은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 믿어 달라”고 했으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총리가 되기 위해 학자 시절의 소신을 꺾은 것 아니냐”고 공격하자 “저는 어린애가 아니다.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쓸 것임을 믿어 달라”고 했다.

얼핏 보면 낮게 엎드려 있는 것 같다. 정운찬 총리가 낮은 자세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되뇌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자세히 보면 우뚝 서 있다. ‘대표’로 ‘대변자’로 꼿꼿이 서 있다. 국민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았는데도 본인이 자신의 지위를 임의로 설정하고 있다.


‘나는 서민 출신이니까 서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나는 충청 출신이니까 충청인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나는 (뛰어난) 학자 출신이니까 현실까지 잘 아는’ 존재라는 그의 논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로 내가 내놓는 정책엔 진정성과 과학성이 가득 담겨 있고 믿어야 한다는 그의 암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넘길 수 있다. ‘자임’의 도가 지나치다 싶지만 그냥 넘길 수 있다. 서민과 충청인과 현실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좋게 해석할 수 있다.

헌데 아니다. 내놓는 정책이 영 가깝지 않다. 서민의 아픔을 담아내지 못하고, 충청인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한다. 용산 참사에 대해 중앙정부가 할 일은 없으니 지방정부에 가서 알아보라고 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안 되니 과천이나 송도 같은 모델을 따르는 게 좋겠다고 한다. 기실 아무 것도 내놓지 않은 채 ‘왕년의’ 연줄에 기대 무조건 양보를 요구한다.

어쩔 수가 없다. 정운찬 총리의 “믿어 달라”는 호소는 ‘나를 따르라’는 강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내놓은 정책이 그나마 서민과 충청인의 아픔과 요구를 최대한 반영한 것이니까 그렇다. 최대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소치마저 잡을 수 없을지 모르니까, 다시 말해  ‘국물’도 없을지 모르니까 그렇다.

※말하다 보니 생각난다. 정운찬 총리보다 22년 앞서서 "믿어 달라"고 선창한 사람이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87년 대선 때 그가 그랬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며, 자신 또한 ‘보통사람’이라며 “나, 이 사람, 믿어주세요”를 연발했다. 대선 유세차 경향 각지를 돌며 그렇게 호소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3당 야합으로 민주화 물결이 짜놓은 여소야대 구도를 일거에 무너뜨렸고, 자신의 중간평가 공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사진=정운찬 총리가 3일 용산참사 유가족을 만나고 있다. ⓒ용산 범대위

Posted by '토씨'

새로 출범한 일본의 아소 다로 내각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세습 내각’이니 ‘세도가 내각’이니 하는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사정을 살펴보니 그럴 만합니다. 각료 18명 가운데 11명이 아버지나 할아버지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의원입니다. 입각한 세습 의원 11명 가운데 4명이 총리 가문 출신입니다. 입각한 세습 의원 숫자가 아베나 고이즈미 내각 때보다 두 배 가량 증가했습니다. 그 뿐인가요? 아소 본인 역시 세습 의원이자 64개 계열사를 거느린 아소 재벌 가문 출신입니다. 

조각 명단을 살핀 도쿄의 한 주부가 그랬다네요. “아소를 포함해 (세도가)2-3세가 서민의 삶을 알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제기할 만한 의문입니다.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하고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들이 서민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처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인간이거든요. 오죽했으면 프랑스 왕비가 빵을 달라는 파리 시민들에게 ‘빵 없으면 고기 먹어’라고 망발을 했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도쿄 주부가 했다는 또 다른 말은 실현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선 경기를 어떻게든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바람이 공염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소 내각이 경기를 살린다 해도 그것이 민생 호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처지가 사고를 규정하고 사고가 정책에 투영되게 돼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소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들이는 열성의 반의 반만이라도 한국 정치를 공부하는 데 쏟았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한국 정치에 회자되는 명언이 하나 있죠? ‘인사가 만사’라는 말…. 한국 정치에 깊게 새겨진 경험이 하나 있죠? ‘인사가 망사’가 된 경험….

너무 오래 됐네요.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니까요. 그럼 이건 어떨까요? 한국 국민 사이에 ‘강부자 내각’이란 표현이 회자되고 있는 사실, 그 ‘강부자 내각’이 펼치는 정책에 대해 한국 서민이 심하게 반발하고 있는 현상을 주의 깊게 봤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무대포 인사’를 감행했을까요?

‘아니오’라고 자답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아소가 이웃나라의 실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고 보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알고도 ‘무대포 인사’를 감행했다고 보는 게 차라리 타당합니다.

그럼 뭘까요? 도대체 어떤 연유로 ‘망사’로 흐를 게 뻔한 인사를 감행하는 걸까요? 욕심일까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고 싶은 욕심에 코드가 일치하고 손발이 맞는 사람을 쓰려 하는 걸까요? 그렇게 해서 국정을 앞만 보고 내달리게 만들려는 걸까요?

하지만 이건 답이 되지 못합니다. 균형을 잃어버리고 통합을 지향하지 않는 국정은 필패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합니다.

도대체 뭘까요? 편향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심리는 어떤 것일까요?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