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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열린다는데…
남북정상회담은 거의 기정사실이 된 것 같습니다. 청와대 브리핑 내용은 신중하지만 언론은 기정사실로 간주합니다. 개성 비밀접촉설부터 5월 금강산 또는 개성 회담설까지 다채로운 보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기사 보기>
반갑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표류하던 남북관계에 중대한 전기가 마련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궁금합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이명박 정부가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만든 10.4정상선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퍼주기’라고 비난하던 것을 이어받는 건가요? 아니면 ‘없던 일’로 하는 건가요?

이건희 전 회장의 특명, 그런데…
2007년 10월에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펴내 삼성의 판ㆍ검사 관리실태 등을 또 폭로했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한 구절입니다. 삼성 제품 판매량이 경쟁사에 뒤처지자 이건희 전 회장이 “모든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줘서 경쟁사를 망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네요. <기사 보기>
‘황제’의 ‘말발’이 안 먹힐 때도 있나 봐요. 제 집에는 에어컨도 냉장고도 안 온 걸 보니…. 공짜 가전제품은 고사하고 오히려 며칠 전 PDP TV 패널이 나가 거금 30만원 주고 고쳤으니…. 

다시 한자 공부를 하자면…
전국 4년제 일반대학 171곳의 2008년 장학금 지급내역을 보니까 전체 장학금 1조 9459억 중 가계 곤란 장학금은 2997억으로 15%인 반면 성적 우수 장학금은 7411억으로 38%나 됐습니다. 가계 곤란 학생은 학비 버느라 알바 뛰어야 하고 성적 떨어져 성적 우수 장학금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죠. 결국 부유한 집안 학생만 혜택 본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기사 보기>
교수님들이 설마 모를까 싶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기합니다. 장학금의 ‘장(獎)’ 자는 ‘장려하다’는 뜻이지 ‘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많던 학파라치는 어디로 갔나?
권영길 민노당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학파라치 시행 이후의 개인과외 증가속도를 분석했는데요. 학파라치 시행 전 18개월인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 동안은 한 달 평균 증가 건수가 531건이었던 반면 시행 후 6개월 동안은 한 달 평균 1291건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기사 보기>
학원업자가 개인과외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 이건 그렇다치고 궁금한 건 따로 있습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SAT학원의 경우 한 달 수강료가 200~300만원에다가 ‘웃돈’으로 2000~3000만원이 오가기도 했다는데 학파라치는 그동안 어디서 뭘 했을까요?

메신저가 어디 휴대폰 뿐이랴
서울경찰청이 현직 경찰관 3만 5천명 전원에게서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조회해도 좋다’는 동의서를 받기로 하고 성매매 단속 분야의 경찰관부터 우선적으로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비리 차단 차원이라고 하는데요. 서울경찰청은 불법 유흥업소 단속과정에서 업주나 종업원들과 통화한 사실이 있고 합리적인 소명을 하지 못하면 징계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기사 보기>
근데 서울경찰청이 혹시 모를까 싶어 참조 삼아 한 마디 덧붙입니다.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란 사실을…. 검은돈도 원화에서 달러화로, 돈상자도 라면상자에서 케잌상자로 진화했듯이 메신저 수단 역시 진화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간이 부었나? 헛심 쓰는 건가?
6.2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내일부터 시작되는데요. 벌써부터 ‘공정가’가 운위되고 있다네요. 일부 지역에선 기초의원 1억, 광역의원 3억, 기초단체장 5억 이상이란 공천 헌금기준이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 보기>
공천 희망자의 간이 부은 걸까요? 아니면 검ㆍ경이 헛심 쓰는 걸까요? 검찰과 경찰이 지방선거 앞두고 토착비리를 근절하겠다고 벼른다는 뉴스, 한두 번 나온 게 아닙니다.

Posted by '토씨'


정부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해줄 계획이란다. 오늘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이 안건을 의결한 뒤 31일에 사면장을 내줄 계획이란다. 

근데 왜일까? 심드렁하다. 새롭다는 느낌도 ‘안 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됐던 사안이기 때문도 아니고 사면이 기정사실이 됐기 때문도 아니다. 말 그대로다. 새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이미 사면복권을 받았다. 원위치 되는 일반 사면복권이 아니라 ‘찬란한 부활’에 가까운 특별 사면복권을 받았다. 대통령에 앞서서 언론이, 그리고 사회 저명인사들이 이미 금테 두른 사면장을 발부해 줬다.

사면복권론의 주된 논거였던 ‘이건희 역할론’을 읽으면 나온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전 회장의 위상과 파워와 인맥을 활용해야 한다는 ‘역할론’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국제 스포츠계의 유력한 스폰서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 스포츠계의 스폰서이기 이전에 삼성전자를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일군 오너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CEO다. 한마디로 이건희 전 회장은 ‘거인’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건희 전 회장은 ‘구세주’다. 평창, 아니 대한민국에 국익을 안겨줄 백마 탄 왕이다. ‘죄인’의 멍에를 벗고 IOC위원으로 복귀하면 평창 유치는 따 논 당상과 다를 바 없으니 그는 전지전능한 구세주다.

이건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선험적인 단정이다. 그래서 반론과 반문을 허하지 않는다. 이건희 전 회장이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유치 경쟁국에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반론을 허하지 않는다. 이건희 전 회장이 IOC 위원 겸 스폰서로 맹활약할 때 평창이 연거푸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이유가 뭐냐는 반문 또한 허하지 않는다.

이런 상식적인 반론과 반문은 국익이라는 맹목적인 목표 앞에서 내동댕이쳐진다. 신성불가침의 대전제가 돼 버린 국익 앞에서 상식적 문제제기는 감성적 상황논리에 무릎 꿇는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논리 말이다.

확장될 게 뻔하다. 아니 이미 확장되고 있다. 어떠한 상식적 문제제기도 허하지 않는 국익론이 이건희 전 회장 앞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있다. 평창이라는 지역 범위를 뛰어넘어 대한민국 경제라는 거시 틀에서 ‘이건희 역할론’을 스멀스멀 피워올리고 있다. 국부 확대-생산 유발-일자리 창출이라는, 그 누구도 감히 토 달지 못하는 국익을 앞세워 ‘거인’ 이건희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15% 가량을 점하는 삼성전자를 국익의 실현 통로로 설정하면서 ‘구세주’ 이건희의 역할론을 부각하고 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퍼붓는 광고에 일희일비하는 언론이 가장 먼저 나서서 ‘이건희 역할론’을 전파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형식적인 사면장이 뭐가 대수겠는가. 2005년에 일었던 ‘이건희 신드롬’을 능가하는 영화가 재현되는 마당에 형식적인 사면장 하나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하나 있긴 하다. 사면장 수령 여부가 등기이사 등재 여부를 가른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또한 괘념할 일이 아니다. 삼성은 이미 3세 경영체제 정비를 마쳤다. 이건희 전 회장의 분신들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경영 일선에 포진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형식적인 등기이사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사진=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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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아주 상징적인 현상입니다. ‘한겨레’의 고광헌 사장이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삼성 광고 없는 경영’을 선언한 게 그렇습니다.


얼핏 봐선 난센스입니다. 언론사 사장이 ‘일개’ 그룹의 광고와 관련해 중대선언을 하는 게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삼성의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한겨레’ 전체 광고매출에서 삼성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15% 정도였다고 합니다. 신문사 수입의 80∼90%를 광고수입이 차지하니까 삼성의 광고는 ‘한겨레’의 경영을 좌우할 정도로 큰 요소였다고 봐야 합니다.


이미 예상했던 현상입니다.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를 줄 수 없다’고 공식통보한 게 그렇습니다. ‘한겨레’가 삼성의 비리를 집요하게 보도해온 데 대한 대응이란 점만을 놓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4월 삼성이 이건희 회장 사퇴와 전략기획실 해체를 선언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삼성의 광고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계가 내다봤습니다. 전략기획실은 ‘창구’였습니다. 전략기획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언론사의 광고 요청을 전략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검토해 집행 여부를 조율하는 ‘창구’였습니다. 그런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니까 광고 집행의 탄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삼성의 그룹 분위기로 볼 때 개별 계열사가 전략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광고 집행을 결정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생뚱맞게 전략기획실의 부활을 주장하지 않는 한, 광고에 눈이 멀어 기업 감시의 눈길을 접지 않는 한 언론사가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행여 삼성이 광고 집행을 재개한다고 해서 경영상황이 확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삭뚝삭뚝 자르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내년 광고홍보비를 대폭 줄이고 있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해 광고홍보비를 큰 폭으로 삭감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 들려오는 얘기로는 30% 삭감은 ‘기본’이라고 합니다.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부광고의 집행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언론에는 한 푼도 집행하지 않은 반면 신생․소규모 인터넷 언론에는 정부광고를 집행했다며 편파․편중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부터 살고 봐야 하는 대기업에 광고 집행을 늘리라고 얘기할 수 없는 일이고, 설령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씨알이 먹히지도 않습니다. 정부 광고 집행이 공평하게 이뤄지리라 기대하기 어렵고, 정부광고에 목을 메는 현실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언론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업의 긴축 경영으로 전체 광고시장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건 공통된 어려움입니다.

특정 언론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언론사가 직면한 광고 위축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금력과 권력의 견제에 시달려야 하는 특정 언론사들은 어떻게 경영 혹한기를 넘겨야 할까요? 내년 한 해 거세게 휘몰아칠 2중고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특정 언론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실 별로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긴축 경영 외에 뾰족수가 없습니다.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는 일 외에 별달리 손 쓸 방도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한다고 해서 긴축의 극단적 조치를 함부로 동원할 수가 없습니다. 감원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영환경에 놓여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뉴스를 생산해왔기에 감원은 곧장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계인원으로 뉴스를 생산해왔기에 감원은 즉각 생산기반의 붕괴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죽는 길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언론사가 아니라 독자를 향해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독을 해주면, 클릭을 해주면 도움이 될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면 브랜드 가치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당장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종이신문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구독자가 늘면(실제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촛불시위 후 자발적 구독자가 수만명 늘었습니다) 비용이 늘어납니다. 종이와 잉크를 구독자 증가분만큼 더 투입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올해 들어 종이값만 해도 20% 이상 뛰었습니다.


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수입도 확대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독료 수입이야 구독자수 증가분에 정비례해서 늘겠지만 그것은 경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문값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독자 수가 하루아침에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 늘어 유가부수 1,2위를 다투는 정도가 되면 광고단가 인상이라도 꾀해보겠지만 자발적 구독자 증가분은 이런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또 어찌어찌 해서 구독자 증가분을 광고단가 책정에 포함시킨다 해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앞다퉈 광고 집행을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 상당기간은 광고단가가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광고량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묻고 또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권력의 개입에 휘둘리는 방송계가 언론대란의 제1전선이라면 금전의 논리에 난도질 당할 처지에 몰린 온오프라인 신문은 제2전선입니다. 

Posted by '토씨'

1.
<중앙일보>를 떠올립니다.

9년 전이었습니다. <중앙일보>가 삼성 계열사에서 분리됐다고 발표했죠. 그리곤 스스로 이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자립언론’이라고….

SBS도 떠올립니다.

올해 초입니다. ‘SBS홀딩스’란 지주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경영투명성 등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공익적 방송’이라고….

2.
말이 참 많았습니다.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두고 ‘위장’이다 아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SBS의 지주회사 설립을 두고도 눈 가리고 아웅이다 아니다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삼성의 입김이 사라지고 태영의 지배권이 약화되느냐는 반문도 적지않았습니다.

알 길이 없습니다. 논란 뒤편에 숨어있는 실체적 진실이 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아야 할 필요성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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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목합니다.

<중앙일보>가 ‘자립언론’이라고 자칭한 것을, SBS가 ‘공익적 방송’이라고 자기 설정한 것을 눈 여겨 봅니다. 이 짧은 표현에 작금의 언론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중앙일보>는 사영 신문사입니다. SBS는 민영 방송사입니다. 두 곳 모두 사기업이자 민간회사입니다. 재벌이 지분을 갖든 말든, 지주회사체제이든 아니든 큰 상관이 없습니다. 법률에 저촉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재벌에서 분리됐음을 강조하면서 ‘자립’을 강조했습니다. SBS는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다며 ‘공익’을 부르짖었습니다. 왜일까요?

4.
다 아는 얘기입니다.

언론사로서 응당 견지해야 하는 공익적·공공적 성격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적 소유가 공익적·공공적 성격을 제고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 이전에 먼저 독자와 시청자가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부의 방송 민영화 방침에 대한 평가잣대가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놓쳐선 안 됩니다. <중앙일보>가 ‘자립언론’을 내걸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 SBS가 ‘공익적 방송’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을 흘려선 안 됩니다. 그것은 ‘재벌언론’이 짊어져야 했던 ‘편향성’의 굴레, ‘민영방송’이 떨쳐낼 수 없었던 ‘상업성’의 멍에 때문이었습니다. 독자가 그렇게 간주하고 시청자가 그렇게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5.
이명박 정부는 지금 거꾸로 달리고 있습니다.

독자가 비판했고 <중앙일보>가 지우려 했던 ‘재벌’의 흔적을 방송에 새기려 합니다. 시청자가 경계했고 SBS가 중화하려 했던 ‘상업성’의 문신을 새기려 합니다.

‘가지 않은 길’을 내달리는 거라면 ‘개척정신’ 만이라도 평가해줄 텐데 그마저도 아닙니다. 무모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스팔트 길에서 소달구지를 몰려고 합니다.

▲사진=이명박 정부에 의해 민영화 1순위로 지목된 YTN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1.
이용철 변호사의 말 한 마디가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저 혼자 이 거대한 삼성을 상대로 싸울 엄두나 용기가 안 났습니다."

지난 2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삼성전자 이경훈 변호사로부터 500만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을 공개한 직후였었죠. 돈을 돌려준 시점이 2003년인데 왜 이제야 공개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용철 변호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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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 변호사 ⓒ오마이뉴스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이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돈을 받았다가 되돌려줄 때 그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었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이른바 '끗발'로 따지면 결코 어느 자리에도 뒤지지 않을 자리입니다. 삼성이 500만 원을 챙겨 보낸 사실이 증명합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 있던 그가 '엄두'와 '용기'를 입에 올렸습니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건에 대해서 공개해봐야 거대한 삼성을 상대로 해서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삼성을 상대로 저 혼자서 싸울 엄두나 용기가 안 나서 그 당시에는 이것을 조용히 돌려주는 것으로 끝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코 놓칠 수 없는, 놓쳐서도 안 되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이용철 변호사는 비겁했던 걸까요?

2.
김명호 교수를 기억하시나요? 자신에 대한 판결에 불만을 품고 판사에게 석궁을 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그를 두고 <한국일보>는 '공익제보자(내부고발자)'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몸담았던 성균관대학의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했던 사람이니까 <한국일보>의 규정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 김명호 교수가 지금 철창에 갇혀 좌절하고 있습니다. 내부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억울한 사연을 법원이 풀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순진함'이 어느새 '분노'로 변했고, 그 '분노'가 폭력을 낳았습니다.

3.
김명호 교수 같은 사람을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료 교수의 친일 행적을 지적했다가 강단에서 쫓겨났던 김민수 교수가 있습니다. 감사원 감사 비리를 고발했다가 거꾸로 수의를 걸쳐야 했던 이문옥 감사관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나은 편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니까 내부 고발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죠. 하지만 다른 이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국일보>로 돌아가 보죠. 이 신문이 1990년 이후 우리 사회의 대표적 내부고발자 20명을 전화 인터뷰해 그 결과를 지난 1월에 보도했습니다. 조사결과가 충격적입니다. 20명중 17명이 내부고발이 자신 외에 가족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쳤으며, 12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20명 가운데 19명이 소속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18명은 징계와 해고를 당했으며, 13명은 오명을 뒤집어썼고, 11명은 공갈·협박을 받았습니다.<한국일보 기사보기>

4.
과거일까요? <한국일보>가 전화 인터뷰한 20명의 내부고발자는 과거 속의 인물일까요? 그들이 겪은 고초는 과거완료형의 일일까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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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 ⓒ오마이뉴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 의혹을 최초 제기했을 때 우리 사회 일각과 일부 언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성으로부터 수십 억 원을 받아 챙긴 사람이 어떻게 뒤통수를 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 부부가 경기도 부천시 노래방에서 술을 팔다가 적발된 사실을 들춰내기도 했습니다. 이들만이 아닙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용철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했다며 징계를 운운하기도 했습니다.

집단 따돌림과 공갈·협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더 광범위하고 더 집요합니다. <한국일보> 전화 인터뷰에 응한 20명의 내부고발자는 소속 집단으로부터 따돌림과 공갈·협박을 당했지만 김용철 변호사는 우리 사회와 언론으로부터 그렇게 당하고 있습니다.

궁금합니다. 김용철 변호사는 돈을 잘 벌까요? 어떤 사람들이 사건을 의뢰할까요? 이른바 돈 되는 사건을 맡길 돈 많은 의뢰인이 선뜻 나설까요?

5.
조폭문화라 해도 좋고 군사문화라 해도 좋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이 의리와 복종의 관성에서 허우적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일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는 너는 얼마나 깨끗한데?"라고 반문합니다.

옳은 반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반문해 보렵니다. 독야청청하는 한 그루 소나무로 살았다면 과연 비리 사슬을 목격할 수 있었을까요?

김용철 변호사가 고백했습니다. 삼성의 갖가지 비리 의혹을 공개하면서 그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직접 관여했노라고, 사법처리도 감수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양심은 번민 속에서 다듬어지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위태롭게 한발 한발 내딛다가 그예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눈에 잡히는 작은 알갱이 같은 것입니다.

6.
저는 '엄두'와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용철 변호사를 탓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세간에서 수군거리는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 동기'에 대해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딱 한 가지만 부여잡으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삼성 특검법'을 수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용철' 변호사의 뒤늦은 '엄두'와 '용기'가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Posted by '토씨'

#1

어제 선배 몇 분과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 젓가락질 사이로 이런저런 얘기가 쉴새없이 섞여 나왔죠.

한 선배가 말하더군요. 요즘 자괴감을 느낀다고…. 좀 뜨악했습니다. 자괴감을 느낀다는 선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거든요.

귀를 기울였습니다. 웃음과 자괴감의 부조화를 해소시킬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얘기를 듣곤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삼성의 이른바 '떡값'도 받지 못하고, 신정아 씨의 명품 선물도 받지 못하는 자기 신세가 처량하다고 하더군요. 언감생심, 그런 건 바라지도 않는다고, 아무리 자기 급이 낮아도 그렇지 에버랜드 입장권 한 장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농담이었습니다. 이른바 '바보 시리즈'를 재생한, 아주 식상한 썰렁 개그였습니다.

60년대에나 통했을 법한 이런 썰렁 개그가 첨단시대라는 지금에도 어김없이 유행합니다. 비리사건이 터지고 로비 리스트가 나오고 '떡값'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나한테는 안 보낸 거야?"

이 썰렁 개그엔 냉담한 시선이 깔려있습니다. 세월이 가고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비리 사슬, 로비 커넥션에 대한 염증이 '동승 욕구'라는 전도된 형태로 표출됩니다. 일종의 좌절감과 적대감의 역설적 표현인 셈이겠죠.

#2

점심 식사 자리를 파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비껴 달리는 지하철인지라 곳곳에 빈자리를 남겨뒀더군요.

맞은편 승객을 쳐다보기가 민망해 천장을 올려보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삼성의 이른바 '떡값'과 신정아 씨의 명품 선물은 급이 같은 건가? 몇몇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는 변양균 씨와 명절 때마다 삼성 돈을 받았다는 정관계 인사들은 동급인가?

두 경우 모두 사법부의 판결이 나오지 않았으니까 뭐라 말할 수는 없겠죠. 한쪽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다른 한쪽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돈과 선물을 전달했다고 하니 급이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아직 입에 담을 단계는 아닙니다.

법 논리는 법률 전문가들이 알아서 챙길 테니까 여기선 상식만 갖고 얘기하렵니다. 어쨌든 양쪽 모두 '잘 봐달라'는 뜻으로 돈과 선물을 건넸다면 급은 몰라도 성질은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의아합니다. 신정아 씨 사건이 터졌을 때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연일 대서특필했고, 어떤 언론은 마치 '권력형 비리'의 단서라도 잡은 양 신정아 씨의 알몸 사진까지 실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웠던 언론이 싸늘히 굳어 버렸습니다.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나에게도 삼성 돈이 전달됐다"며 증거 사진까지 제시했는데도 구겨버립니다. 신문 서너 쪽을 건너 뛰어 정치면 한 귀퉁이에 상자 기사로 박아버립니다. 사진도 싣지 않습니다. 상자 기사 위로는 대선에 골몰하는 정치권의 소식을 차곡차곡 쌓습니다. 오늘 신문이 그렇습니다.

도대체 열정이 냉정으로 급변한 이유가 뭘까요? 많은 사람이 한 마디씩 합니다. 자기들도 받았으니까 뒤가 구려서, 광고를 의식해서, 판을 키우면 대선에 영향을 미칠까봐 등등 나름의 분석을 내놓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내칠 수 없는 분석입니다. 그래서 더 씁쓸합니다. '보고 싶은 만큼 보인다'는 옛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합니다. 언제부터 진실이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걸까요?

우리 언론에게 진실은 보고 싶을 때만 보는 만화나 영화 같은 것인가 봅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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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기사. 삼성의 돈을 받은 검사를 '떡값검사'로 표기한 점이 눈길을 끈다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이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해 달라는 ‘참여연대’ 등의 고발에 대해 수사가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로비 대상 검사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게 이유입니다. 어느 검사가 로비를 받았는지 모르는데 고발 사건을 어떤 검사에게 맡길 수 있느냐는 취지입니다.

주목할 표현이 있습니다. ‘로비’라는 단어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삼성이 검사들에게 500~2천만 원의 돈을 건넨 이유는 ‘로비’ 차원입니다.

그런데도 다수는 ‘떡값’이란 표현을 씁니다. ‘뇌물’이 아닙니다. 로비를 목적으로 뿌린 돈이라면 ‘뇌물’이 분명한데도 왜 ‘떡값’이란 표현을 쓰는 걸까요?

'대가성‘ 때문입니다. ’뇌물‘이란 단어를 단정적으로 쓰기 위해선 ’뇌물‘을 받은 사람이 그 대가로 뭘 줬느냐를 밝혀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 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돈을 줬네, 안 줬네 공방이 가시지 않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 점을 고려한 것이겠죠.

그래도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떡값’의 본래 형태는 추석이나 설에 회사가 종업원에게 지급한 특별수당입니다. 명절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담긴 게 바로 ‘떡값’입니다. ‘떡값’은 ‘뇌물’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