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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온탕을 오가는 게 국회 스텝이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눈 씻고 찾아봤지만 없다. 여야 원내대표가 장장 7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기에 혹시 논의가 됐을까 싶어 찾아봤지만 일언반구, 일점일획도 없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이해할 수 없다. '원안 고수'를 주장해온 민주당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반드시 개정'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태도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라며 일분일초라도 빨리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꿩을 구워먹었는지 입을 닫았다.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미디어법에 올인하고 있다.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개정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김형오 국회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체념한 것이라면 미디어법도 일찌감치 접었어야 한다. 그게 일관된 태도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밑밥’이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조문정국을 끝내고, 원외에 머물던 민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정규직법을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정치의안’인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민생의안’인 비정규직법을 멍석으로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오해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왜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처럼 들을지 모르겠다.


정반대다.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법 원안이 뒷전으로 밀리다가 자연스럽게 유지된다면 굳이 성낼 까닭이 없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최선책은 ‘시행 유예’가 아니라 ‘시행 고수’라는 생각을 바꿀 근거가 생기지 않는 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양면성을 새삼 거론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논의를 뒷전으로 밀어놨다가 어느 순간 기습 상정해 처리할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고는 하나 자고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게 우리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행여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파장은 엄청나게 커진다. 쌍용자동차 문제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린 노동계에 휘발유를 붓고 노정 대립을 극한으로 치닫는다. ‘시행 고수’ 분위기를 감지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업주를 다시 들썩거리게 만들면서 노동시장을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는다.

분명히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차제에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개정을 포기한 것인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개정 논의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요구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내놓는 그때그때의 의제에 즉자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입에 올리지 않는 게 비정규직법 개정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오히려 고리를 걸어야 한다. 미디어법 논의가 비정규직법 개정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냐고 한나라당에 묻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게 그나마 의정의 소모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악책이다.

▲사진=6월 30일 비정규직법 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한나라당

Posted by '토씨'

생뚱맞지만 다시 던지자. 이런 질문이다.

박근혜계는 정말 ‘여당 속의 야당’인가?

묻는 이유가 있다. 이런 발언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 컨트롤이 되지 않고 있는 야당을 상대로 협상과 타협은 한계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제 더 이상 기다리게 되면 국민들에게 무능한 집권당으로 낙인찍히게 될 위기다. 남은 기간 동안 특단의 대국민 홍보과정을 거친 뒤 결단을 내려 우리의 갈 길을 가야 한다.

민주당이 미디어법 4자회담을 하자고 주장했지만 대화를 하는 것처럼 시간을 끌어서 기간을 넘기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전통적 수법이므로 이번엔 단호히 처리해야 한다.

미디어법은 당연히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이번에도 해결 못하면 국민들이 집권당의 능력을 어떻게 바라보겠느냐.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1년 6개월 유예’가 당론인데 이를 ‘1년 유예’로 양보한다면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시간으로 충분치 않다.

분기와 결기가 뚝뚝 묻어나는 발언들의 주체는 이명박계가 아니다. 김무성-이경재-홍사덕-박종근 의원이다. 박근혜계로 분류되는 중진들이다.

확인된다. 차이가 없다. 이명박계가 가재라면 박근혜계는 게다. 이들이 으르렁대는 건 영토 안에서 땅따먹기 싸움을 할 때뿐이다. 영토 밖에 나가면 이들은 혈족이요 같은 편이다.

사실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박근혜계의 ‘허리’가 아니라 ‘머리’가 이미 실체를 드러낸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3월 2일 한나라당 농성장에 나타나 “한나라당이 많이 양보했으니 미디어법 처리 시기는 야당이 양보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을 거든 적이 있다.

일각에서는 대운하와 수도권 규제완화 등의 사안에 대해 박근혜계가 다른 시각을 보여왔다고 평가하지만 부질없는 소리다.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이명박 정부는 잰걸음을 놓는데 박근혜계가 태클을 걸지 않는 장면이다.

당연한 현상인지 모른다.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계 중진들의 ‘이구동성’에 대해 “정치를 오래하다 보면 서로 상황 인식이 비슷해진다”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정치를 오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서 정치를 오래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명박계와 박근혜계는 같은 정당, 같은 지지기반에서 정치를 하다 보니 같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범하다. 이 같은 진단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치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식 밖’의 진단이 무수히 쏟아졌고, 지금도 무수히 쏟아진다. 박근혜계의 선택에 따라 국정의 방향이 달라지고 정책이 수정될 것처럼 묘사했고, 묘사한다. 이렇게 묘사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주가를 띄우고 박근혜계의 색깔을 조절한다.

왜일까? 왜 이렇게 착시현상이 난무하는 걸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행보’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침묵 끝의 짧은 한 마디’가 어차피 ‘동색의 초록’이라면 그 궁금증은 말초적인 흥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일반적인 분석, 즉 박근혜계의 거취에 따라 한나라당의 전열이 달라지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집행력이 좌우된다는 분석 또한 설득력이 없다. 어차피 ‘가재는 게 편’이라면 박근혜계의 거취가 속도를 약간 조절할지는 몰라도 방향을 트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

박근혜계에게 ‘여당 속의 야당’이란 지위를 선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유가 없을뿐더러 폐해가 심각하기까지 하다. 박근혜계를 그렇게 묘사할수록 신기루가 퍼진다. 한나라당 안에 중심을 잡아주는 저울추가 있는 것처럼, 한나라당 안에 미련의 여지가 남아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너무 거친가? 센티미터 눈금자를 갖다대야 할 미세한 정치공학문제에 킬로미터 눈금자를 갖다대는 걸까?

그렇다고 치자. 이렇게 인정하고 일반적인 분석틀로 돌아간다고 치자.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까? 없다.

박근혜계의 중진들이 ‘합창’을 하는 현실이라면 MB입법 전열에 균열이 발생할 여지는 없다. 이명박계 대 박근혜계라는 구분법 또한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사진=지난 3월 2일 한나라당 농성장을 찾은 박근혜 전 대표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데드라인이 설정됐다. 13일이다. “야당과 미디어법 내용 등에 관한 논의는 13일로 끝내고 이후에는 본회의 처리수순을 밟겠다”고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이 못박았다.

어떨까? 실제로 밀어붙일까?

전망이 대체로 같다. 또 하나의 쟁점법안인 비정규직법은 몰라도 미디어법은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이 전망한다.

이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든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국회에서 ‘6월 표결처리’를 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만큼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드는 건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다. 비정규직법 강행처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지만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소장 개혁파조차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물 건너간다고 말하는 점을 중시한다. 전열이 정비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분석을 그대로 받으니까 궁금해진다. 한나라당이 유독 미디어법에 대해 자신하는 이유가 뭘까?


힌트는 한나라당 원내 핵심당직자가 했다는 말에 숨어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으로 단독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미디어법의 경우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고 사회적 파장이 크지 않다는 얘기, 다시 말해 강행처리해도 후폭풍이 거세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해할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여론은 미디어법 처리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소간의 수치 차이는 있지만 대세는 ‘강행처리 반대’, 나아가 ‘한나라당 미디어법 반대’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도대체 이렇게 낙관하는 근거가 뭘까?

두 마디 말이 있다. 나경원 의원과 진수희 의원의 말이다.

나경원 의원이 말했다. 6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디어법에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진수희 의원이 말했다. 지난 6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여의도연구소의 미디어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하면서 나경원 의원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디어법이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목적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40.4%,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45.9%였으며, 미디어법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43.6%, 명칭만 들어봤다는 응답이 49%였다고 보고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실상 미디어 법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지 이 조사에선 분간할 수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뭘 모른 채’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야당의 선전에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진리는 끝내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곱씹을 대목이 있다. 두 의원의 발언이 ‘국민 무시’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씹고 또 씹어야 할 다른 포인트가 있다.

두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이 믿고 있다. 미디어법을 “언론장악이라는 프레임(나경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진수희)”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믿고 있다.

또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은 미디어법 처리를 ‘민주’의 시금석으로 이해한다.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되면, 그래서 재벌과 조중동에 방송 소유와 경영의 길을 터주면 여론이 독점되고 다양한 의사표현의 길은 막힌다고, 결국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린다고 우려한다.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다. 한나라당이 공언한 대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면 어느 하나는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허구의 프레임’이 걷히면서 ‘민주주의 요구’가 한풀 꺾이든지, 아니면 근거없는 낙관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민주주의 요구’에 기름을 붓던지…. 아, 하나 더 있다. 비록 부차적이지만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린다. 강행처리 저지의 결기와 실천력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림길에 놓인다. 

예단은 하지 말자. 두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경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내다보지는 말자.

현실은 여러 요인의 분자운동에 의해 움직인다. 미디어법 또한 그런 환경에 노출돼 있다. 비정규직법을 매개로 미디어법을 국민 시선에서 떼어놓은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전략’을 무시할 수 없고, 미디어법 처리를 ‘결사저지’하는 과정에서 보일 민주당의 ‘부서지는 모습’이 국민을 어떻게 움직일지 또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는 아직 전반전 종료 휘슬도 울리지 않은 상태다.

▲사진 = 국회 문방위 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는 민주당 의원들 ⓒ민주당

Posted by '토씨'

“창을 베고 누워 아침을 기다렸다(침과대단·枕戈待旦)”고 했다. “지난 1년간 한시도 마음속의 갑옷을 벗어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대표 1년’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맞다. 민주당은 창을 베고 누웠고, 갑옷을 벗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창을 휘둘러 본 적도 없고, 상대 장수의 갑옷을 벗긴 적도 없다. 그저 갑옷 입고 창 벤 채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뿐이다.

박한 평가일지 모르겠다. ‘MB악법’ 저지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하는 민주당에게 ‘퍽치기’를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련다. 노력만큼 성과가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예를 하나 들자. ‘노무현 추모’ 정국이 한창일 때 민주당이 5대 요구조건이란 걸 내놨다.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총장 등의 경질, 특검과 국정조사 실시 등을 내걸며 이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6월 임시국회에 등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이다. 들어본 적이 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5대 요구조건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걸 들은 기억이 없다. 어느새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그 대신 끌려간다. 비정규직법 문제에 질질 끌려다니며 오락가락한다. 처음엔 해고대란은 없다며 비정규직법 유예 불가를 선언하더니 5인 연석회의에 가서는 ‘6개월 유예’를 제시하고, 다시 비정규직법 원안 고수로 유턴한다.

결과는 참담하다.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에 참여함으로써 ‘등원 거부’ 전열은 사실상 무너졌고, 정국 화두는 비정규직법으로 옮아가 버렸다.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에서 ‘6개월 유예’를 제시함으로써 논란의 축은 ‘원안 고수’에서 ‘시행 유예’로 이동해 버렸다. 한나라당의 정국 탈출 전략에 모터를 달아주고, 한나라당이 펼친 그물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것이다.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런 오류가 시정될 것 같지 않다.


정세균 대표가 말했다. 대표 임기 2년차의 정책노선으로 정부와의 ‘친서민’ 경쟁을 설정하면서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검승부를 해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를 ‘이벤트’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갇힌다. 민주당이 실제로 이런 노선을 걸으면 이명박 대통령의 프레임에 갇힌다. 청와대가 쳐놓은 ‘친서민’ 링에 올라 아웃복싱을 구사하면 잘해야 ‘아류’, 못하면 ‘반대만 일삼는 야당’으로 전락한다.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앉은 자리에서 '친서민' 이미지를 획득한다. 

지금이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민주당은 고리를 걸지 못하고, 정국을 주도하지 못한다. 정국 전체를 관통할 큰 화두를 던지지 못하고 매번 개별정책에 갇혀버린다. 청와대와 여당이 설정한 프레임에 갇혀 ‘안티’ 행보만 반복한다. 그렇게 오락가락 하고 일희일비한다.

문제의 근원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규모, 즉 ‘스몰야당’은 구실이 되지 못한다. 근원은 전략과 의지다.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탄’을 관통하는 전선을 치지 못하고, 그 전선에서 지구전을 펼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정세균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가 끝난 후에 친노 세력을 포함한 민주개혁진영의 연대와 통합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상태라면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탄’을 한 데 아우르는 전선 속에서, 싸우면서 구축하는 연대가 아닌 한 그건 이른바 ‘윗대가리들’ 만의 이합집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긴요한 과제는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탄’ 때문에 길거리에 내몰리고 그 길거리에서마저 끌려가는 민초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지금 가장 긴급한 과제는 아우성치는 민초들을 이끌 수 있는 비전, 즉 ‘싸움의 기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원적인 과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 현장과 ‘민생 파탄’ 현장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다시 말해 ‘개별 싸움’을 ‘전체 싸움’에 편입시킬 수 있는 ‘고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짜놓은 링 위에서 청와대가 설정한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게 아니라 선명하면서도 질기게 싸울 수 있는 자기 판을 짜는 것이다.

▲사진=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5일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1.
입은 다른데 하는 말은 똑같습니다. 모두가 과거를 탓하고 남을 탓합니다.

어떤 쪽에서는 비정규직법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법이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잡았어야 했다고 합니다. 어떤 쪽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주도해 만든 법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당시 환경노동위 위원장을 맡았던 한나라당이 직권상정으로 법을 통과시켰다고 합니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탓하는 ‘현재’가 웅변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법은 숙성되지 않은 채 통과됐습니다.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시간과 상황에 쫓겨 날림으로 만든 법입니다. 계란으로 치면 ‘반숙’ 상태로, 스테이크로 치면 ‘레어’ 상태로 통과된 법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노른자물과 핏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민생을 얼룩지게 만듭니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날림이 ‘현재’의 혼란을 부르는 현상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법이 순종을 강요하면 폭력이 됩니다. 그것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애먼 국민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샌드위치맨 신세로 전락합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로 몰립니다.

2.
재연될지 모릅니다. 비정규직법의 오류가 또 다시 나타날지 모릅니다.

미디어법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기필코 통과’를, 다른 쪽에서는 ‘결단코 저지’를 다짐합니다. 한쪽에서는 신방겸영이 세계적 추세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신방겸영이 여론독재를 부를 것이라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여론을 수렴할 만큼 했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여론 수렴은커녕 여론다양성 정도조차 조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쪽에서는 국민이 미디어법을 잘 모른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국민이 미디어법을 반대한다고 합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차이라고 표현하기가 어색할 정도로 상극의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상상해 봅니다. 이런 상태에서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어떤 양상이 나타날지 가늠해 봅니다. 비정규직법보다 더한 혼란과 반발이 야기될 게 뻔합니다.


3.
같은 게 있고 다른 게 있습니다.

당사자의 한 축이 반발한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형식논리임이 분명하지만 아무튼 같습니다. 비정규직법 제정 때는 민주노총이 반발했고 미디어법 개정 때는 언론노조가 반발합니다. 그런데도 입법을 밀어붙인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하지만 다릅니다. 비정규직법 제정 ‘이후’와 미디어법 개정 ‘이후’는 천양지차에 비견될 만큼 다릅니다. 형식논리로 보거나 실제 상황에 견줘도 완전히 다릅니다.

비정규직법은 그래도 여지가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용기간 제한 조항을 유예하거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줘서 법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숙고할 여지를 최소치라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디어법은 그럴 수 없습니다. 신문과 대기업이 방송을 소유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나중에 문제가 된다 해도 ‘원위치’ 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후 개정된 법이 선행된 계약을 무효화하기 힘들기에 그렇고, 신방겸영 기간 동안 발생할 방송조직의 굴절과 여론지형의 왜곡을 되돌릴 수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과거’를 탓하면서 똑같은 ‘과거’를 만들려고 합니다. ‘미래’를 낙관했던 ‘과거’의 전철을 ‘현재’ 되밟고 있습니다.

▲사진=민주당 의원들이 1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문방위 회의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비정규직법 논의의 핵심은 ‘예측’이다. 이 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몇 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되는지를 ‘예측’하고,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불경기가 언제쯤 가시는지를 ‘예측’한 다음에 방비책으로 호미를 선택할지 가래를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게 비정규직법 논의의 핵심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예단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70만 해고 대란’이 도래할지,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월 2∼3만 해고’에 그칠 것일지 예단할 수 없다. 예측의 근거가 희박하고 고용시장의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단할 수 없을뿐더러 양당의 주장을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평가할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의 최대 근거로 삼는 불경기 지속기간에 대해서는 ‘엿장수 맘대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선 국민 앞에서 펼친 행보부터가 ‘엿장수 맘대로’다. 한나라당이 애초 설정한 유예기간은 최대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의원총회에서 3년으로 정리했고, 다시 여야3당과 양대 노총이 참여한 5인 연석회의에 와서는 2년으로 줄였다.

들어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경기전망을 들어보지 못했고, 한나라당의 기업경영환경 진단을 들어보지 못했다. 도대체 각각의 유예기간이 어떤 경기 ‘예측’에 근거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듣기는 했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장밋빛 전망을 듣기는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 지난 15일 라디오연설에서 “지난 1분기에 OECD 국가 중 우리 한국만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이루었다”며 희미하게나마 터널 끝에 불빛이 보인다고 말했고, 지난 29일 라디오연설에서 “OECD와 IMF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거들었다. 지난 5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분기에 경제지표가 호전되면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바닥을 쳤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며 “올 4분기나 내년 1분기에는 좋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교롭다. 정부의 이런 장밋빛 ‘예측’을 경청하고 나니까 한나라당의 음울한 ‘예측’이 생뚱맞다. 정부는 경기가 갈수록 좋아진다는데 왜 유독 한나라당만 ‘2년 고행’을 강요하는지 아리송하다.

이런 점 때문일까?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장관 모두 토를 달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표 호전에도 불구하고 “실제 회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고, 윤증현 장관은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을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말은 틀리지 않다. 지표경기와 실물경기에 시차가 있고, 성장과 고용이 따로 노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바닥을 쳤다고 경기가 ‘V'형으로 급반등하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 ‘만사불여튼튼’의 태세를 갖춘 걸까?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앞날에 대비하는 걸까? 그래서 오늘자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는데도 유예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걸까?

맞는 것 같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짧은 앞날이 아니라 주∼욱 지속되는 긴 앞날을 위해서 심모원려한 것 같다. 윤증현 장관이 한 말에 따르면 그렇다.

그가 그랬다. 지난 15일 한 강연에 나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외환위기 때 다소 미흡했던 과제로 이번에도 못하면 우리 경제가 도약하지 못할 것"이라며 “임금·근로시간을 더욱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노사정 협의를 거쳐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노동유연성을 강구해야 한다는 윤증현 장관의 말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 주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이 된다.

▲사진=한나라당 의원들이 6월 30일 비정규직법 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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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한나라당 쇄신특위 위원장이 그랬다. 지난 11일과 12일에 잇따라 말했다. “국정쇄신과 당 쇄신 중에 본질은 국정쇄신”이라고 했고, “자기 자신을 버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당과 국정운영이 국민의 여망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게끔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고 했다. 국정 쇄신과 당 쇄신 사이에서 오락가락 한다는 비판이 비등하자 내놓은 발언이 이랬다.

근데 다르다. 이때의 말과 지금의 행동이 다르다.

쇄신특위가 미루기로 했단다. 쇄신안을 마련했지만 비정규직법 처리 문제가 매듭지어질 때까지 쇄신안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절차를 미루기로 했단다. “비정규직법 처리가 (여권의) 최대 현안이자 관심사”라는 이유 때문이란다. “여야가 비정규직법 처리를 두고 국회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쇄신특위가 당내 분란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유란다.

어이없다. 쇄신특위의 궁극적 목표가 국정쇄신이라면서 최대 국정사안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한다. 당의 전열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애당심’에 입각해 최대 국정 사안에 뒷짐 진다.

백번 양보하자. 말은 저렇게 해도 심저엔 크고 넓은 확신이 깔려있다고 인심 좋게 받아들이자. 비정규직법 처리를 놓고 여야3당과 양대노총이 5인 연석회의를 벌이고 있으니까, 이 테이블에서 합의를 도출하면 대화 타협 소통의 전형을 창출하는 거니까, 그러면 국정쇄신의 모범이 탄생하는 거니까 기대감에 부풀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자.

그럼 이건 어떨까? 미디어법 말이다.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다. 국민의 70% 이상이 미디어법의 일방처리에 반대하고, 국민의 60% 이상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MBC 조사). 국정의 정책기조와 운영기조 모두 반대하는 게 “국민의 입장”이고, 국정의 정책기조와 운영기조 모두를 바꾸라는 게 “국민의 여망”이다.

그런데도 말이 없다. 한나라당 원내지도부가 미디어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재삼재사 다짐하는데도 일언반구 말이 없다.

혹시 개별 정책사안은 쇄신특위의 논의 사항이 아니어서 그럴까? 쇄신특위는 국정운영의 설계도를 그리고 당운영의 조감도를 그리는 일에만 몰두하는 기구여서 그럴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쇄신특위에서 ‘부자 감세’에 대해 논의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던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묻는다. 눈 크게 뜨고 귀 활짝 연 다음에 묻는다.

‘원희룡 위원장님, 어디서 뭐 하세요?’

저기 멀리서 희끗하게 보인다. 원희룡 위원장의 뒷모습이 살짝 보인다.

쇄신특위가 설문조사를 했단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상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실용론’에 대한 의견을 물었단다. 그 결과 응답자의 88.1%가 ‘청와대의 중도실용주의 국정 운영기조 재정립’에 ‘공감’했단다. 이를 두고 쇄신특위는 “쇄신특위의 쇄신 방향 및 문제의식과 상당부분 일치했다”고 평가했단다.

 ▲사진=원희룡 의원이 지난 2일 쇄신특위 6차회의 결과를 브리핑한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원희룡 의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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