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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하청업체가 부리고
대형 건설사 하청업체 사장이 ‘중앙일보’ 기자에게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실상을 고백했습니다. 그에겐 자기 회사 명함 외에 대기업이 파준 명함이 하나 더 있는데요. “하청업체 사장들이 이사․영업부장 등 다양한 직책의 대기업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공사 수주와 인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 부처․지자체 공무원, 정치인, 교수 등에게 전방위 로비를 한다”는 겁니다. 공사 심의에서부터 준공허가가 나올 때까지 50명이 넘는 공무원․교수 등에게 돈을 뿌리고 술과 밥을 산 적이 있는데 뇌물로 뿌리는 로비금액은 총 공사비의 1% 정도라고 합니다. 지자체 공무원 중 팀장급은 50만~100만원, 과장급은 200만~300만원, 국장급은 400만~500만원 정도 준다고 합니다. 요즘 공무원들은 현금․수표는 받지 않고 미화 100달러 지폐로 주면 받고, 요즘의 신종 로비 수법은 자녀들 취직을 시켜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청탁을 받고 대기업체 신입사원으로 취직시킨 시장․구청장․국장․과장 자녀만 7명은 된다고 합니다. <기사 보기>
재주는 하청업체가 부리고 돈은 대기업이 훑어가고.

아예 모금을 했네
민주당 P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P의원은 2006년 남양주시 기업인 수십명으로 구성된 ‘불암상공회’에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남양주시 별내면 일대 임야 17만평을 산업단지로 용도변경해 주겠다며 임야 매입을 제안했습니다. P의원은 중앙부처 사무관을 불러 투자설명회까지 했고, 이에 따라 기업인들은 180억원을 모아 그해 12월 140억원을 들여 해당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억원이 P의원의 동생이 추진한 태국 콘도 건축비와 임야 용도변경을 위한 정치권 로비자금으로 사용됐습니다. 실제로 국회에서 2007년 해당 지역의 그린벨트 해제를 내용으로 한 법 개정이 추진됐다가 반대 여론에 막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기사 보기>
마지못한 척 하면서 받은 것도 아니고 아예 모금을 했구만.

눈 가리고 아웅
지난해 신한은행 현장 검사반장이었던 안종식 금감원 실장이 어제 국회에 출석해 “지난해 5월 검사 당시 라응찬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정황을 확인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고 말했습니다. 김종창 금감원장을 비롯한 금감원 수뇌부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실을 지난해부터 알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건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올 초 라 회장의 지주사 4연임 결정 때에도 이견을 달지 않았습니다. <기사 보기>
눈 가리고 아웅 해왔다는 것.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죠.

이건 좀
“검찰이 하와이에 머물고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게 이달 중 귀국할 것을 통보했고 현재 천 회장 측 대리인과 귀국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사정당국 관계자가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천 회장은 일단 검찰에 소환되면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귀국 시점을 차일피일 하고 있지만 마냥 들어오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사 보기>
‘마냥 들어오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 뭘까요?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는 분명히 알겠는데 이건 좀.

느긋한 구호
대한적십자사가 지난 1월 발생한 아이티 지진 피해자 구호 성금으로 97억원을 모으고도 지금까지 12억원만 썼습니다. 의료단 항공료로 2억원, 의료단 운영비로 8300만원, 긴급물자 수송비로 1억 6500만원, 국제적십자사연맹을 통한 지원으로 6억 7500만원을 쓴 겁니다. 적십자사는 구호팀이 아이티에 들어가기 전 머물렀던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성금으로 고급호텔을 이용했고, 한 한국식당에서는 1만원짜리 소주 6병까지 마셨습니다. 적십자사는 나머지 돈 가운데 66억원을 지난 4월 33억원씩 두 개의 계좌에 연리 2.6%짜리 정기예금에 넣었습니다. <기사 보기>
긴급 구호 말고 느긋한 구호도 있나 봅니다. 은행 이자까지 챙기는 걸 보면.

교도소행이 아니라 복직?
2006년부터 지난 8월말까지 성매수와 강간, 뇌물수수 등 각종 비위 행위로 파면․해임된 경찰 공무원이 927명이었는데요. 이 중 296명(31.9%)이 복직됐습니다. 복직된 비위 경찰관은 2006년 51명, 2007년 41명이었다가 2008년 79명, 2009년 108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직 명분은 검거 실적이 많다거나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점 등입니다. <기사 보기>
구치소나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복직돼?

뒤통수 때리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각종 집회에 참가했다가 다친 사람들에게 보험급여를 환수해왔습니다. 2007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집회 참가 중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은 뒤 보험급여 환수통보를 받은 사람이 36명이고 실제로 보헙급여를 환수한 사람은 13명, 액수는 490여만원이었습니다. 집회 참가자가 불법행위를 했는지 조회해 경위서를 제출하도록 통보한 뒤 환수하고 있는 겁니다. 대학생 이모 씨의 경우 2008년 6월 1일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다음날 새벽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방패에 얼굴을 맞아 코뼈가 으스러지고 앞니의 절반이 깨져 200만원을 들여 치료를 받았는데 건보공단으로부터 지난달 초 “보헙급여를 물어내야 할 수도 있으니 사건 경위서를 제출하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사 보기>
기껏 안면 치료했더니 뒤통수 때리네.

중노동이어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의 이른바 노예계약 실태를 공개했습니다. 전공의 기간 동안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는다는 서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4명을 뽑겠다고 공고한 과에 남성 지원자가 3명, 여성 지원자가 7명 응시해 성적 상위 5위권에 모두 여성이 들었지만 실제 채용된 사람은 남성 2명과 여성 2명이었다고 합니다. 지원자 중 3개월 된 아이가 있는 여성 지원자는 애초부터 논의 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겁니다. <기사 보기>
전공의 하는 일이 워낙 중노동이어서 그랬나? 그럼 근무환경부터 바꾸지.

내용물보다
정부가 어제 ‘성장․고용․복지의 조화를 위한 국가고용전략2020’을 확정했습니다. 지난해 말 현재 62.9%인 고용률을 2020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길을 터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신설 기업에 2년 이내로 사용기간이 제한된 기간제노동자를 기간 제한 없이 고용할 수 있게 해주고, 청소․경비직도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 규제의 예외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기사 보기>
내용물보다는 포장지에 더 신경 쓰다 보니.

어떻게 볼까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교원 개인의 참정권을 회복하기 위해 관련 법개정 운동을 벌이고 차기 총선․대선에서 이를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지지운동도 검토하겠다”며 “이를 위해 전교조와도 연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교총은 교원과 교원단체의 정당 가입과 공직선거 출마를 허용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사 보기>
전교조 교사 민노당 가입 논란을 교총은 어떻게 볼까?

그나마 다행
전교조 강원지부가 단체교섭안에 ‘성범죄, 공금횡령, 성적조작 등 학교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유로 징계 받은 교원의 비정기 전보는 폐지한다’는 안을 넣어 파문이 일었는데요. 알고 보니 해프닝이었습니다. 전교조 강원지부가 당초 ‘성범죄, 공금횡령, 성적조작 이외에’로 표기하려 했는데 실수로 ‘이외’가 빠진 겁니다. 전교조 강원지부는 지난달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수정 내용을 올렸다고 합니다. <기사 보기>
어이없는 해프닝이지만 그래도 다행. 비상식적인 요구를 이해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노벨평화상 감이네
북한이 지난해 하반기 노동당 간부와 당원을 상대로 진행한 강연에서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에 대한 위대성 자료’를 배포했다고 합니다. 내용은 김정은을 우상화하는 것으로 “청년대장 동지는 3세 때부터 총을 잡고 사격에서 명중을 시켰으며 올해는 자동보총으로 초당 3발씩 사격해 100m 앞의 전등과 병을 줄줄이 맞혔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또 “10대에 동서고금의 명장을 다 파악했으며 육해공 전 분야에 정통하고 기술자도 해내지 못한 ‘축포발사 자동 프로그램’을 며칠만에 완성시켰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농민을 대상으로 한 자료에는 김정은이 2008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을 찾았다가 즉석에서 산성토양을 개량할 수 있는 미생물 비료를 생각해내 연구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이 농장에서 이듬해 3000평당 15톤의 벼를 생산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요. 참고로 지난해 남한의 3000평당 쌀 생산량은 5.2톤이었습니다. <기사 보기>
노벨평화상 감이네. 조만간 북한 주민은 물론 전세계 기아인구의 식량난을 해결해줄 테니까.

Posted by '토씨'

1.
기능직이 우대받는 사회는 건강합니다. 기능직이 장인(마이스터)으로 존경받는 사회는 건전합니다.

기능직이 우대받는 사회는 꿈입니다. 기능직이 장인으로 존경받는 사회는 미몽입니다.

본 적이 없습니다. 겪은 적도 없습니다. 그 대신 ‘공돌이’ ‘공순이’가 천대받던 기억만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기능직이 장인으로 존경받는 사회는 ‘생활의 달인’이란 방송 프로그램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2.
이명박 대통령이 마이스터고를 찾아갔습니다. 의료기기 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원주정보공고를 찾아가 ‘꿈’을 얘기했습니다. “(마이스터고 제도는) 대졸자보다 존경받고, 수입이 더 낫고, 일생 직장으로 일할 수 있고, 어느 때든 대학에 갈 수 있는 제도”라면서 “모든 사람이 대학가는 것보다 마이스터고에 들어가길 원하는 시대가 불과 몇 년 안에 온다”고 했습니다.

바랍니다.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그런 시대가 몇 년 안에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어떻게든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아등바등 대고, 허리띠 졸라매며 수십 수백 만원을 사설학원에 갖다 바치는 시대가 끝나기를 기원합니다. 기껏 대학에 들어갔지만 취직이 안돼 실업자가 되고, 대출받은 학자금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시대가 종식되기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몇 년 안에 그런 신천지가 열릴 것 같지 않습니다.

3.
비정규직이 줄줄이 해고되고 있습니다. 줄줄이 해고되는 비정규직의 태반은 기능직입니다. 정규직도 줄줄이 해고됩니다. 줄줄이 해고되는 정규직의 태반은 근속기간이 오래된 숙련노동자들입니다.

기능직이 천대받고 있습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껌같은 존재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기능직이 장인이 될 여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묵어야 장맛’이 아니라 ‘묵으면 고임금’이란 인식이 경영논리를 휘감고 있습니다.

4.
정부가 막아야 합니다.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반마이스터’ 행태를 제어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지 않습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려는 움직임만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지난 2일 비정규직법을 언급하면서 “근본적인 것은 고용의 유연성”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5월 7일 “노동유연성 문제는 연말까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의 최대과제”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인식이 이렇습니다.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는 게 그의 철학입니다.

5.
마이스터고 제도는 좋은 제도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언대로 마이스터고 학생들 전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고 등록금을 면제해주면 좋습니다. 그 대상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그런데도 감흥이 없습니다. 오히려 병주고 약 준다는 반발감마저 듭니다.

부푼 꿈을 안고 사회에 나온 마이스터고 학생이 맞닥뜨릴 세상은 정글보다 더 살벌한, 살얼음판 생존 난투장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난투장을 정부가 앞장서서 조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마이스터고 제도 이면에서 반마이스터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마이스터고로 지정된 원주정보공고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벽은 이미 깨졌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 걷힌 지 이미 오래고, ‘적과의 동침’이 경영전략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실용의 관점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오월동주를 마다하지 않는 게 세계적 조류다.

그런 점에서 ‘전향’ ‘변절’ 따위의 경직된 언어는 배척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언어엔 변화를 거부하는 절대주의, 교류를 배척하는 폐쇄주의가 진하게 스며있다.

마찬가지다. 황석영 씨를 보는 시각 또한 유연해야 한다. 그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맞은편에 섰다고 해서, 그가 이른바 ‘진보작가’를 자처한다고 해서, 그랬던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해서 ‘전향’이니 ‘변절’이니 하는 험한 언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의 ‘협조’가 중도실용노선을 취하고 싶어 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면 오히려 격려하는 게 타당하다. 그의 ‘협조’가 정말 중도실용노선을 꽃피워 민생문제와 민족문제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박수치는 게 온당하다. 이게 ‘실용주의자’ 황석영 씨를 바라보는 실용적 관점이다.

하나만 덧붙이면 된다. 이렇게 실용적 관점을 굳건히 세우고 그에 부합하는 현실적 평가틀을 세우면 된다. 이 걸 잣대 삼아 황석영 씨의 실용주의가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재면 된다. 그가 현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만 따지면 된다. 그가 씨 뿌리려는 곳이 돌밭인지 옥토인지를 가리면 되고, 그가 수확할 수 있는 게 알곡일지 쭉정이일지를 재면 된다.

어떨까? 그가 쟁기질을 하려는 그곳은 어떤 상태일까? 그는 그곳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전혀 실용주의자 답지 않다. 현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다. 좋게 표현하면 낭만주의자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환상주의자다.

황석영 씨는 확신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자’라고 믿는다. 근거는 딱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오히려 화끈하게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며 “최고경영자 출신으로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석영 씨가 부여잡고 있는 건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 ‘개인적으로’ 한 말, 이 것뿐이다. 아니, 부여잡고 싶은 것이다.

어이없다. 실용주의자라면 응당 주시했어야 할 현실을 거론하지 않은 그의 태도가 어이없다.

황석영 씨는 외면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 했던 ‘개인적인’ 말보다 더 공신력 있고 구속력 있는 게 대선 공약이란 사실, 그 공약에 ‘비핵개방 3000’이란 비현실적 계획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대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 이런 역행현상을 낳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명박 정부의 무전략·무원칙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

주장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협조’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강조할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을 수정하고, 이명박 정부의 원칙과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협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럼 이건 어떨까? 정치인의 약속과 희망은 신기루 같은 것이라는 상식, 정치인의 약속과 희망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지지층의 압박이고, 정치인의 약속과 희망은 정치적 현실에 따라 카멜레온 변신을 거듭한다는 상식은 어떨까? 지금은 전제군주시대가 아니라는 사실, 전제군주의 마음을 얻은 책사 한 명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은 또 어떨까?

황석영 씨는 망상에 빠져있다. 자신의 위치가 당정청 시스템 위에 있고, 자신의 남북교류 염원이 보수층의 대북 적대감을 누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근거없는 환상과 끝모를 낭만에 빠져있다.

이렇게 보니 허탈하다. 황석영 씨가 누군가? 남북화해가 열리기 전에 방북했다가 옥고를 치른 사람이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 걷힌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은 거칠게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을 족적으로 확인시켜준 사람이다. 휴전선 철망 밖으로 삐져나온 가시보다 사람들 가슴속에 박혀있는 가시가 더 사납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드러내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낭만적 환상에 빠져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둘러본다. 혹시 이런 것인가 하고 되짚어 본다.

늘 그랬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다가 극적 반전을 연출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북한의 로켓 발사와 폐연료봉 재처리가 몰고 온 파국적 상황이 또 한 번 극적 반전을 끌어낼지 모른다. 어느 정도 뜸을 들인 뒤 북미간에 통 큰 거래가 이뤄지고, 이명박 정부는 이 대세에 순응할지 모른다.

혹시 황석영 씨는 이 같은 점을 내다본 것일까? 대세를 읽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려는 것일까?

그래도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황석영 씨의 이른바 ‘실용주의’는 빛을 잃는다. 정말 그렇다면 황석영 씨의 ‘협조’가 창출할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의 ‘협조’는 ‘개척’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편승’을 위한 웅크리기가 된다. 그의 거창한 프로젝트인 ‘알타이 문화연합’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그리고 정부 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거래’를 하는 것이 된다.


덧붙일 게 있다. 그의 사회발전전략과 역사인식이다.

▶황석영 씨가 그랬다. 유럽 좌파들도 많이 달라졌다며 장황하게 말했다.

“옛날에는 위에서 파이를 키워서 부스러기를 나눠줘서 하부구조를 이렇게 하겠다는 게 보수였다면, 진보는 분배와 평등을 강조했다. 지금은 전 세계가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에 직면해 있어 고전적 이론 틀로는 안 된다. 아래에서부터 파이를 키우자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비정규직 문제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까지 못 나가고 그저 노동조합 정도에서 멈춰 있는 한국의 진보정당 민노당을 개탄하면서 한 말이다.

이것도 바꾸겠다고 한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 ‘협조’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고, 자신이 이명박 정부에 ‘협조’해 이끌고 싶은 변화 항목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말할 필요가 없다. 불감청고소원이다. 이명박 정부가 ‘아래에서부터 파이를 키우는’ 정책을 편다면,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보호하는 정책을 편다면, 황석영 씨가 그렇게 정책 변화를 끌어낸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먼저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왜 이명박 정부가 비정규직법을 개악하려고 하는지, 황석영 ‘개인’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와 같은 ‘기관’이 외국인 노동자 차별과 착취에 대해 수없이 시정권고를 하는데도 안 고쳐지는지, 그 ‘현실’부터 살피면서 객관적 조건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게 ‘실용주의자’의 면모다.

▶황석영 씨가 또 말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현 정부의 실책”이라면서도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사건이 우리에게만 있는 줄 알았으나 70년대 영국 대처정부는 시위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다.”

말문이 막힌다. 읽고 또 읽어도 발언의 행간을 호의적으로 살필 여지가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는 말 밖에 달리 토해낼 게 없다.

두 눈 질끈 감을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물론이고 용산참사까지 다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하고 앞으로 잘 하면 된다고 되뇌일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서, 다시 말해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면서 앞으로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다.

국민 사이에 낙관주의를 유포하려면 먼저 내놔야 한다. 역사 발전은 나선형으로 이뤄진다는 사실, 궁극적으로 발전하지만 과정에서 퇴행적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사실, 그 퇴행의 시기에 동시대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내놔야 한다. 5공식으로 시위를 폭력진압하고, 5공식으로 국민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명박 정부의 조치도 ‘실책’에 불과한 것인지, 그럼 ‘개전’의 여지는 얼마나 있는 것인지, 자신이 ‘협조’해 ‘개전’의 속도와 폭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먼저 제시해야 한다.

이게 없다면 황석영 씨의 말은 안대 씌우기에 불과하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가야 한다면서도 진보와 보수의 공존을 담보하는 기초조건인 ‘민주’를 외면한다면 황석영 씨의 희망은 심각한 현실 호도에 불과하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수행한 황석영 씨가 이 대통령 등과 함께 사마르칸드 유적을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


Posted by '토씨'

굳이 토를 달진 않겠다. 과하다는 느낌을 거둘 수 없고, 선정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하지 않겠다.

정당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고 장자연 씨 자살로 불거진 연예계의 음습한 관행, 그리고 그런 관행을 가능케 한 노예계약에 대해 비분강개하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보거나 사회정의로 보거나 책잡을 일이 아니다. 공정거래를 앞세우고 인권을 옹호하는 데 어떤 사람이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언론의 비분강개 이면에 선정주의가 깔려있다는 의구심, 언론의 대서특필 이면에 미모의 여배우,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대한 성상납, 미스터리한 진실 등등의 ‘미끼성’ 소재를 활용하려는 ‘장삿속’이 깔려있다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굳이 토를 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분강개의 사회성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돌아보련다. 비분강개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보련다. 다른 노예계약 사례에 대해서도 언론이 이렇게까지 비분강개했고 대서특필했는지를 회상하련다.

▶2007년 6월, 한 여성이 수면제를 다량 복용하고 자살을 기도했다. 한 여고의 행정실에서 1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던 이 여성은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학교측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자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 보호는커녕 계약해지를 유발하는 법이 되고 있다며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학교측으로부터 최종통보를 받은 내용은 6월말로 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 5월, 대불산단 내 모 조선사의 하청업체 대표인 최모 씨가 자살했다. 원청업체와 갈등을 빚다가 대금을 받지 못했고 이 때문에 3개월 동안 직원 급여를 사비로 지급하다가 끝내 목숨을 끊었다. 그는 직원 급여를 맞추기 위해 “처갓집 상가 팔고 전세금 날리고 나라에서 나온 창업자금까지 다 날렸다”라고 유서에 적었다. 그리고 또 하나, 원청업체의 모 이사에게 “살려달라구요”라는 애원도 적었다.

대서특필하지 않았다. 불평등한 지위가 불공정한 거래를 낳고, 불공정한 거래가 사람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데도 언론은 고 장자연 씨에 대해서처럼 비분강개하지 않았다. 아예 보도를 하지 않거나 극히 일부 언론만이 짧게 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식상해서였을까? 그런 사례는 흔하디흔한 것이어서 뉴스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이미 짚을만큼 짚은 문제라서 구구절절 보도하는 게 사족에 가깝다고 결론 내렸던 걸까?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건 어떨까?

▶2005년 12월, 한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던 박모 씨가 목 매 자살했다. 그는 신문사 지국을 운영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1억 3천여만원을 갚지 못한 채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판촉전쟁을 벌이는 대형 신문사가 지원금은 아예 주지 않거나 ‘코딱지’ 만큼 주면서 무리하게 부수확장과 판촉경품을 강요하자 견디다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유서에 이렇게 적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008년 8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의 보조 구성작가 김모 씨가 방송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김 씨의 자살 이유에 대해 경찰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고, 동료작가들은 월 50∼80만원에 불과한 박봉에 인격적 모독까지 비일비재한 현실이 자살의 배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데가 아니다. 고 장자연 씨 자살에 비분강개하는 언론사에서 벌어진 일이다. 언론이 밖을 향해 공정거래를 주창할 때 언론사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금도 횡행한다. 방송사에선 인력회사에서 파견 나온 행정보조직에게 2년 만기가 되기 직전 짐을 싸게 한다. 신문사 지국은 지금도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백화점 상품권, 심지어 만원짜리 지폐를 여러 장 내민다. 이게 현실이다. 노예계약에 비분강개하는 언론이 내부에서 벌이는 일이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친절한 금자 씨가 했던 말,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 외에는 달리 던질 말이 없다.

냉소를 가득 담아 던지는 말만은 아니다. 일말의 기대를 얹고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언론의 지적대로 노예계약을 뿌리 뽑으려면 노예주를 단죄해야 하고 노예상을 도려내야 한다. 10명 안팎이라고 하지 않는가. 고 장자연 씨가 ‘노예’처럼 술시중을 들고 심지어 성상납까지 했다는 대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중에 언론계 인사도 들어있다고 하지 않는가. 밝혀내야 한다. 누군지 밝혀 사회에 드러내야 하고 지금 비분강개하는 것과 똑같은 목소리로 질타해야 한다.

이게 비분강개하는 언론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내보일 수 있는 마지막 창구다.

▲사진=고 장자연 씨 영정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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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목도리를 풀었습니다. 지난 4일 서울 가락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풀었습니다. “(먹고 살기가)너무 어렵다”며 자신의 팔을 잡고 우는 노점상 할머니 박부자 씨에게 20년을 사용했다는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줬습니다. 그리곤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기도해야 하는데….”

아직도 대통령을 ‘나랏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아직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은 사람들은 감동했습니다. 대통령의 ‘눈물’이 정책에 스며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습니다. 쏟아져 나옵니다. 서민을 눈물 나게 하는 정책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목적세인 교육세를 폐지하기로 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러면 교육 재원이 불안정해집니다. 의무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빈곤층에 대한 교육 지원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노동부는 최저임금제를 개악하려고 합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이어 이번엔 60세 이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를 감액 적용하고, 수습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고, 숙식비 공제 한도 규정을 신설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정부와 여당의 이런 정책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사람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어린 학생들입니다.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초년생이거나 사회적 도태의 위험에 처한 노인들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정부여당에 의해 목조르기를 당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라고 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한사코 아니라고 합니다.

노동부는 최저임금제를 완화해야 그나마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해야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줘 고용을 유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은 지방에 배분하는 교육교부금 교부율을 높여 교육 재원이 줄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감세를 밀어붙이면 세수가 줄기 때문에 교부율을 높여봤자 교부금 절대액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야당 반발에 대해 이렇게 응수합니다.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엿가락’ 경영이 득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은 전적으로 사장님 맘에 달리게 됩니다. 비정규직을 몇 년 쓰든, 정규직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든 말든 그건 사장님 맘먹기 나름이 됩니다. 교육 재원은 전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맘에 종속되게 됩니다. 교육 교부금으로 얼마를 줄지는 중앙정부의 조세정책에, 그 교부금을 정말 교육에 투입할지는 지방정부의 양심에 종속되게 됩니다.

본말이 뒤집혔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교부율을 높이면 교육재정이 줄지 않는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고용과 임금의 질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감세를 하지 않으면 됩니다. 적게는 14조, 많게는 20조원에 달한다는 감세 정책을 포기하면, 그렇게 해서 세수를 확보하면 교육비 교부액은 줄지 않습니다. 기업에 고용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명박 대통령의 목도리를 바라봅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목도리를 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누가 ‘유치한 홍보영화’라고 해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홍보’라도 해야 가려집니다. 목도리로 감싸야 가려집니다. 눈물 한 방울 찔끔 흘려야 가려집니다. 서민 목조르기가 가려지고 서민의 눈물이 가려집니다.

대통령이 서민에 감싸준 건 목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눈가리개였습니다.

▲사진=지난 4일 서울 가락시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주장은 타당할까? 반MB민주연합은 낡고 부차적인 전선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 그것보다 훨씬 시급한 것은 반신자유주의연합․민생파탄반대연합이라는 그의 주장은 타당할까?

살펴야 한다. 주장의 타당성을 살피려면 손호철 교수가 내세운 근거를 살펴야 한다.

그가 그랬다. “다수 서민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가져다 준 민생파탄과 사회적 양극화를 한나라당의 반역사적 대북정책보다 더 미워하고 있(다)”고 했다. (손호철 교수 칼럼 보기)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내세운 근거를 부정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그랬다. 6.15선언과 10.4선언 계승을 다짐한 정동영 후보를 외면한 반면 대북지원과 남북교류의 전제조건으로 비핵․개방을 내건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경제살리기를 공언했던 이명박 후보를 앞뒤 가리지 않고 지지한 반면 민주개혁연합을 주장한 민주당에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이 점을 놓고 보면 타당하다. 손호철 교수의 진단과 처방은 틀리지 않았다. 다수 서민이 앞으로 직면해야 하는 상황, 즉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의 경제사정이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손호철 교수가 말한 민생파탄반대연합의 절박성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호철 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먼 산만 바라보며 발밑은 살피지 않는 주장이기에 그렇다.

민생파탄반대연합을 구축하려면 고비를 넘어야 한다. 손호철 교수가 민생파탄의 주범으로 규정한 신자유주의에 대해 야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연합’에 걸맞는 입장 통일을 보려면 한미FTA를 넘어야 한다. 원안 고수, 전면적 재협상, 폐기 등으로 갈린 입장을 그러모아 공통분모를 도출해야 하고 통일된 입장을 도출해야 한다.

난망하다. 이런 고비를 넘는 걸 기대할 수 없다.

노무현-심상정 논쟁이 웅변한다. 간극은 크다. 한미FTA를 둘러싼 두 사람의 입장, 아니 두 세력의 입장 사이엔 틈새가 넓고 깊게 벌어져 있다. 이 틈새를 메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틈새를 메우려고 시도해봤자 공염불에 그치기 십상이다. 원안을 고수할지, 재협상으로 더 많은 걸 따낼지, 아니면 그런 시도 자체가 허망하니 폐기로 몰아갈지를 결정하려면 타진해야 한다. 새로 들어설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과 전략을 타진하고 그 기초 위에서 가능성을 점쳐야 한다. 그러려면 봐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하지만 요원하다. 빨라야 내년 가을이 돼서야 한미FTA 비준 문제가 미국 의회에서 논의될 것이라는 뉴스가 타전된다.

반신자유주의 연합과 민생파탄반대연합은 먼 산이다. 한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뒷동산이 아니다.

그래서 손호철 교수의 주장을 부정하고 손호철 교수에 반문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당장 한미FTA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다면, 한미FTA에 대한 입장 조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면 손 놓고 있어야 되는 것인가? "낡은 민주대연합으로는 현 위기를 돌파할 수 없(으니까)“ ”민주연합은 부차적 전선에 불과하(니까)“ 서로를 소 닭 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궁극’을 강조하며 ‘지금’을 방기하는 것, ‘본질’을 중시하며 ‘부차’를 홀대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궁극적 차이가 너무 크고 본질적 문제가 매우 중할수록 신뢰의 기초와 논의의 바탕을 닦는 건 더욱 절실하다. 각자도생하고서도 이명박 정부를 제어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는 한 힘없는 야당끼리 가능한 선에서 어깨동무를 하는 건 긴요하고도 절실한 일이다.

야3당은 그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공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바로잡고 내년 예산안 처리와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에 힘을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과정을 함께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다. 야3당의 이런 시도를 부정할 수 없을뿐더러 폄하할 필요도 없다. 손호철 교수는 민주대연합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만 그의 이런 사고가 오히려 ‘낡은 것’일 수도 있다.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이 위력을 상실한 사실, 다수 서민이 한나라당보다 김대중․노무현을 더 미워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건 지난 일이다. 민주주의 후퇴가 없던 시절의 얘기고, 김대중․노무현보다 이명박을 더 미워하기 전의 일이다(이명박 대통령의 지금 지지율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지지율과 비슷하다).

찬찬히 살필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가 역사박물관으로 보냈다고 믿었던 ‘낡은’ 권위주의 유물이 버젓이 부활하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그 대응방식이 ‘낡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극히 낮은 지지율을 보내면서도 한나라당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내는 이유 또한 그 대응방식이 ‘낡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낡은 것’조차 제대로 동원하지 못하는 민주당의 무력함, 그리고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을 앞세우는 ‘낡은’ 정치행태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정치는 과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작은 것이라도 실천에 옮기는 게 생산적이다. “현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낡은 민주대연합”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진=야3당 대표의 11월 30일 회동장면 ⓒ민주당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