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하게 말하자. 없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해 등원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지할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로 작정하면,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작심하면 막을 재간이 없다.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옥쇄전략을 펴는 것이다. 지난해 말처럼 의원 수십 명이 등산용 자일로 몸을 친친 감은 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과 같은 방법 말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어수룩하게 두 번 당할 리 없고, 김형오 의장이 자일의 매듭을 묶을 시간적 여유를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미디어법 저지를 명분으로 등원을 결정했다. 등원을 결정함과 동시에 본회의장 앞 농성을 풀었다. 패착일까? 한나라당에게 처리 명분과 본회의장 진입로를 동시 헌상한 ‘본헤드플레이’일까?

이렇게 평하기는 어렵다. 정반대의 상황, 즉 등원을 거부하는 상태를 지속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처리 명분을 뺏고 본회의장 진입로를 틀어막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다른 명분, 즉 ‘파업 벌이는 야당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앞세워 일방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앞으로 넘어지나 뒤로 넘어지나 코가 깨지기는 마찬가지라면 코피라도 제대로 흘려보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의사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상황 변화를 유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처참하게 당해주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합당하다. 의사일정 지연전술을 통해 한나라당의 ‘독선’을 부각시키고 처참한 패배를 통해 한나라당의 ‘독판’을 각인시키자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온당하다.

이렇게 보면 분명해진다. 민주당의 전략은 사전적 차원의 옥쇄가 아니라 사후적 차원의 옥쇄다. 국회의사당 내에서의 맞바람이 절대열세이기에 국회의사당 밖에서의 역풍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석이 아니라 여론으로 막판 뒤집기를 이루려는 것이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이후의 역풍과 같은 대반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떨까? 민주당의 이런 전략은 먹혀들 수 있을까?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저지에 나선다는 전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전제를 설정하면 관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다. 국민이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이명박 정부의 숱한 독주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독주를 집약해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이다. 국민이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 지배를 여론시장 내의 미세 조정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여론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새판짜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방송의 위축에 대한 국민의 우려심이다. 국민이 방송의 위축을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위축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결정적 위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르지만 같은 얘기다. 몸통은 하나인 얘기다. ‘민주’라는 화두에 얽힌 문제다. ‘민주’ 구호에 미디어법 사례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문제다. 

▲사진=민주당이 12일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단,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갖고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민주당

Posted by '토씨'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언론재단이 9월초 중·고교생 4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주류 언론, 특히 조·중·동에 대한 불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 및 사회기관 30개를 선정해 '전혀 신뢰하지 않는 경우 0점, 중립적인 신뢰는 50점, 매우 신뢰하는 경우 100점'으로 해서 점수를 매기게 한 결과 MBC(59.2), KBS(55.69), 네티즌(55.05), 포털(54.57), ‘한겨레’(52.87)가 1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반면 ‘중앙일보’는 36.42로 22위, ‘동아일보’는 34.82로 24위, ‘조선일보’는 33.81로 25위에 그쳤다.

10대가 대학생이나 성인이 됐을 때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뉴스매체로 46.1%가 인터넷 포털을, 24.8%가 지상파TV를, 11.5%가 인터넷 신문을 꼽은 반면 무료신문은 6.9%, 신문은 4.9%에 불과했다.

현재 10대가 학교에서 가장 많이 읽는 신문은 ‘한겨레’(35.1%)였고 이들이 성인이 돼 스스로 신문을 구독하게 될 경우 선택할 신문도 ‘한겨레’(22.5%)가 1위였다.

이 연구결과에 가정 즉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면’이란 가정이 덧붙어져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온다.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올지 모른다고, 조·중·동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예단할 수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돼 있다.

그 이유 역시 가정에 있다.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면’이란 가정이 너무 허술하고 유동적인 게 문제다.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되는 건 부동의 진리다. 하지만 지금의 10대가 성인이 돼서도 지금의 의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부동의 진리가 아니다.

적절한 예가 하나 있다.

‘한겨레’가 창간된 시점은 1988년 5월. 87년 6월항쟁의 기운이 여전하던 그 시절에 6월항쟁의 거름을 받고 태어났다.

승승장구했다. 판매부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심지어 당시 대학생 일부는 ‘한겨레’를 교재 삼아 세미나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멈췄다. 판매부수 증가가 멈췄다. 그리곤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다. 크게 늘지도 않고 크게 줄지도 않는 판매부수를 보이고 있다.

조·중·동은 어떨까?

당시의 20대에게 조·중·동은 규탄대상이었다. 집회장에서 종종 붙태워지는 신문이 조·중·동이었고 취재거부를 당하기 일쑤였던 기자도 조·중·동 소속이었다(세 신문에 대한 태도에 편차가 있긴 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판매부수 면에서 여전히 부동의 1위를 견지하고 있고 조·중·동은 굳건히 신문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왜일까? ‘한겨레’에 우호적이고 조·중·동에 적대적이던 386세대가 신문시장의 주류인 40대(신문시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연령대를 40대로 설정한다. 이들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신문구독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가 됐는데도 왜 언론지형에 지각변동이 오지 않는 걸까?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경품 지급이나, 논조보다 정보를 우선해서 살피는 신문 읽기 방법 등의 요인이 선호도와는 일정하게 다른 구독 패턴을 낳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어쩌면 가장 본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 계층의식이다. 이것이 세대 의식을 대체한다.

세대 의식은 한정적이다. 그 시대 그 세대에게서나 의미를 갖는 의식이다. 연령대로 묶인 세대 의식은 나이가 들어 사회에 진출하고 생활조건·환경을 달리하면서 계층 의식으로 분화한다. 더불어 그 때의 세대 의식은 희미해진다.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세대 의식은 어느 순간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 강고한 삶의 논리에 포박당한 계층 의식이 들어선다.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서민층은 신문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인구 분포로는 서민층이 절대 다수를 점하지만 신문 시장에 유효한 영향을 미치는 층은 중상층이다. 그리고 기업과 관공서다.

의식은 그리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실질 구매력이다. 그리고 실질 구매력은 계층에 따라 달리하는 지갑의 두께와 비례한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살피자.

시대가 바뀔수록 매체 선호도가 바뀌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매체가 어느 세대에겐 라디오일 것이고, 어느 세대에겐 TV일 것이며, 또 다른 어느 세대에겐 신문 또는 인터넷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매체 종류에 따라 흥망성쇠를 달리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아니 그럴 가능성을 높이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갈라선 안 된다. 신문사와 인터넷에, 신문사와 지상파 또는 케이블TV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설정하고 선호도와 영향력을 기계적으로 재선 안 된다.

현재의 10대가 선호하는 포털에 콘텐츠를 채워주는 곳 가운데 한 곳이 조·중·동이다(‘다음’은 빼고). 언론사 사이트별 조회수만 놓고 따져도 조·중·동의 조회수와 ‘한겨레’의 조회수에는 수백만의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어느 순간 조·중·동이 10대가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지상파 또는 케이블TV에 등장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문어발식으로 현재의 10대를 끌어안으려 할지 모른다.

초를 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연구결과를 폄하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유동 상태임을 강조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인터넷 : 방송 : 신문이라는 구분법으로 선호도와 신뢰도를 재는 게 지금 이 시점에서도 완벽하지 않고 앞으로는 더욱 더 불명료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언론지형의 지각변동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보라고 고언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Posted by '토씨'


석 달 전입니다. 촛불이 켜지기 바로 직전의 상황입니다.

‘PD수첩’이 4월 29일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송합니다. 이 방송을 기점으로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조중동이 반박에 나섭니다. 이른바 ‘인터넷 괴담’과 ‘PD수첩’ 내용을 한 데 묶어 ‘혹세무민’으로 몰아갑니다.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났지요. 조중동의 논조에 반발한 네티즌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에 나섭니다.

석 달 전의 상황, 그리고 석 달 동안의 흐름을 갖고 살필 수 있습니다. 조중동이 방송과 포털 때리기에 골몰하는 이유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중동으로선 감내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습니다. 바로 ‘자존’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自尊’입니다. 의제 설정력과 여론 지배력에서 월등히 앞선다는 자존감에 씻을 수 없는 생채기가 났습니다. 조중동이 연합을 해서 한 목소리를 냈는데도 여론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요. 무력감에 빠질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自存’입니다. 당장의 광고 감소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장래의 일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위축되는 신문시장인데 여기에 ‘반 조중동’ 정서까지 급속히 번지면 경영기반이 위축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위기감에 휩싸일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새삼스레 복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면적 분석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정치공세로 파악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이명박 정부의 여론장악을 돕기 위해 조중동이 발 벗고 나선 것으로 분석하는 건 피상적입니다.

다른 요인을 마저 살펴야 합니다. 정치적 측면 이외의 요소, 즉 경제적 측면입니다.

조중동의 방송·포털 때리기는 영토 수호 전쟁입니다. 영토 확장을 위한 정벌전이기도 합니다.

상황이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매체 영향력 순위에서 조중동은 뒤로 밀렸습니다. 1위 자리는 늘 방송사에게 넘겨줬습니다. 뉴스 콘텐츠 전달 창구의 주도권은 포털에 빼앗겼습니다.

‘올드 신문’이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속보성을 생명으로 하는 스트레이트 영역에서 ‘올드 신문’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초간지’가 활개 치는 곳에서 ‘일간지’는 명함을 내밀기도 쉽지 않습니다.

발굴 특종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있지만 이건 한계가 뚜렷합니다. 금맥 캐기와 비슷한 일이니까 효용성이 떨어집니다.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분야는 ‘편집’ 부문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를 재료로 해서 의제화를 시도하는 것이죠. 이러려면 시각과 입장이 담보돼야 합니다. 언론이 아닌 포털은 범접하기 힘들고 중립을 지켜야 하는 방송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드 신문’이 독점해오다시피 했고 바로 이 덕에 시장 위축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헌데 탈이 났습니다. 포털 토론방이 등장했고 방송 시사프로그램이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토론방이 의제화에 선수를 쳤을 뿐만 아니라 조중동이 설정하는 의제를 중화시켰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이 탁월한 전파력을 앞세워 분석과 해설과 입장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전달’했습니다.

여기서 살필 수 있습니다. 방송 공격을 ‘PD수첩’에 집중하고, 포털 비판을 ‘아고라’에 맞추는 이유를 살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PD수첩’을 눌러놔야 시사프로그램이 위축됩니다. ‘아고라’를 낚아채야 포털을 단순 전달자로 묶을 수 있습니다.

이건 당장의 목표입니다. 이번 싸움에서 손에 넣어야 하는 전리품입니다.

이것 말고 하나 더 있습니다. 지형의 변화입니다. 미디어 시장 전체에 큰 지각 변동이 올 수 있도록 판을 조성하는 근본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조중동은 방송 진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상파가 안 되면 케이블TV의 보도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에라도 진출하려고 합니다.

목표는 분명한데 여건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비판 여론이 비등합니다. 조중동이 방송에까지 진출하면 여론 독과점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합니다. 기반이 부실합니다. 방송에 진출한다고 해서 기존의 공룡 지상파의 공세를 이겨낸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정지작업은 필수입니다. 핵심은 신뢰입니다. 기존 지상파의 신뢰지수를 떨어뜨림으로써 자신들의 방송진입 반발 여론을 희석시켜야 합니다. 더불어 기존 지상파의 ‘편파성’을 부각함으로써 다른 ‘편파성’이 스며드는 것에 대한 견제 심리를 완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상파 진출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설령 지상파 진출이 안 된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케이블이나 IPTV에 진출한다고 해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지상파의 ‘시사’ 영역을 위축시켜놔야 케이블이나 IPTV의 ‘시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포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참에 싹을 자르고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는 순간 그들은 종합미디어그룹이 됩니다. 덩치가 커지는 것이죠.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지출이 늘고 또 그만큼 매출을 올려야 합니다.

관건은 광고입니다. 유료화가 요원하고, 그래서 광고 수입이 곧 컨텐츠 수입과 동의어로 통하는 우리 시장에서 파이를 키우는 방법은 상대의 파이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역시 신뢰입니다. 포털의 신뢰지수를 줄임으로써 광고주의 광고 집행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입니다.

포털에 대한 입김을 강화하게 되면 부산물도 챙길 수 있습니다. ‘쥐꼬리’ 수준인 컨텐츠 판매료의 단가를 올릴 수 있습니다.

분명합니다. 조중동이 방송과, 포털과 싸워야 하는 이유는 아주 자명합니다. 정치와 이념을 떠나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방송과 포털을 제압해야 합니다.

조중동이 지금 벌이는 싸움은 ‘불퇴전의 투쟁’입니다.

Posted by '토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독선이 독주를 하는 게 바로 독재다. 막연한 개념도 아니다. 아직도 국민 뇌리에 끔찍한 영상으로 남아있는 게 바로 독재다.

이 독재가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나라당이 친박 의원 일괄 복당을 결정하는 순간, 최대 182석의 공룡정당 탄생이 예고되는 순간부터 나오는 우려다. 여기에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나 별반 차이가 없는 자유선진당이 버티고 서 있는 사실이 덧대지면서 더욱 증폭된다. 의회독재·보수독재가 펼쳐질지 모른다고 염려한다.

그럴까? 정말로 머리수에 의존한 의회독재·보수독재가 나타나는 걸까?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반대 요인을 마저 살펴야 한다.

경험이 웅변한다. 의회독재가 어떤 봉변을 당했는지는 정치 경험이 보여준다.

전두환식의 ‘묻지마’ 독재는 논외다. 주권재민의 정치체제가 성립된 87년 6월항쟁 이후만 살펴도 몇 가지 사례가 눈에 띈다. 1996년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이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가 국민 저항에 부닥쳐 재개정을 한 일이 있다. 2004년이다. 한나라당과 구민주당이 손을 잡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촛불에 화상을 입은 일이 있다.

이 두 사례엔 공통점이 많다. ‘수’만 놓고 따지면 의석수보다 국민수가 훨씬 많다는 걸 확인해준 사례다. 머리수만 믿고 밀어붙이다간 정당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각인케 한 사례다.

이런 경험과 교훈을 망각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한나라당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머리수만 믿고 ‘단순무식’ 모드로 진입하면 반대층을 결집시킨다. 그렇다고 ‘좌고우면’ 모드로 전환하면 지지층이 반발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똑같은 경험과 교훈을 기억하고 있는 민주당이 어떤 전략을 펼지는 자명하다. 소수 야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단상’에서 농성하고 ‘거리’에 호소하는 전략을 펴기 십상이다.

한나라당으로선 크나큰 고민거리다. 민주당을 ‘단상’에서 끌어내면 ‘일방’의 이미지로 채색되고 ‘거리’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서면 ‘불통’의 멍에를 덮어쓴다.

어찌할 것인가? 머리수의 효과를 살리면서 부작용을 극소화할 수 있는 비책이 뭔가?

아주 간단하다. 야당을 회의장으로 끌어들여 표결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것처럼 모양새와 실리를 동시에 챙기는 데 더 좋은 방법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 제1야당의 면을 세워줄 수 있는 흥정물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독점이윤’을 포기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좌고우면’ 모드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지지층으로부터 ‘물여당’ 비난을 사기 딱 좋은 컨셉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른 해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미 시험가동하고 있는 해법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바로 갈라치기다. 쇠고기 추가협상 후 촛불민심이 둘로 갈라졌다고 판단해 강경 모드, 밀어붙이기 태세로 돌아선 것과 같은 모습을 견지하는 것이다. 정책과 법률안을 쪼개 놓고 국민 여론을 갈라치는 것이다. 국민이 한 데 모이는 걸 방지하고, 국민 입장이 하나로 결집하는 걸 막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리의 정치’를 원천봉쇄하고 민주당의 ‘저항’을 ‘몽니’로 몰아 고립시키는 것이다. 필수품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려면 정책 반대집단을 귀퉁이로 몰아 가둬놓을 울타리가 필요하다. 때로는 ‘좌파’ 때로는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워 중립지대의 국민이 결합하는 것을 막는 이념지형이 필요하다.

이건 의회의 몫이기 이전에 언론, 홍보, 선전 부문의 책무다. 이 분야가 앞길을 열어야 '독선'은 고뇌의 결단이 되고 '독주'는 과감한 추진력이 된다. 

이렇게 보니 눈이 트인다. 보수세력이 포털과 방송에 맹공을 가하고, 집권세력이 대국민 홍보체제를 강화하는 곡절, 그 필연성을 비로소 헤아릴 수 있다. 그건 정지작업이다.

▲사진=10일 개원한 18대 국회(위)와 의회 지형을 좌우할 ‘촛불’(아래) ⓒ오마이뉴스

'이슈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일본에 뺨 맞은 MB독트린  (230) 2008/07/15
'의회독재'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7) 2008/07/11
'독도' 때문에 떠는 MB  (61) 2008/07/10
조중동이 개각에 뿔 난 까닭은  (24) 2008/07/09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