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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사퇴하면, 나아가 공천심사위 외부위원 전원이 사퇴하면 민주당이 진창에 빠진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손학규·대표는 왜 불씨를 던진 걸까? 무엇 때문에 부정·비리 전력자로 지목돼 공천 신청자격이 박탈된 신계륜·김민석 전 의원을 비례대표추천위에 포함시켜 개혁 공천 이미지에 먹칠을 하려 했을까?

엄밀히 말하면 손학규 대표에게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잘못됐다. 박상천 공동대표와의 합작품이니까 두 사람에게 묻는 게 사리에 맞다.

하지만 박상천 공동대표에게는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공천 심사 내내 박재승 위원장이 주도하는 개혁 공천에 문제를 제기하고 발목을 잡아왔던 인물이다. '늘 그래왔다' 정도로 치부해도 된다.

손학규가 '반개혁' 인사를 한 개인적 동기는?

그래서 손학규 대표에게만 질문을 던진다. 그간의 행보와는 사뭇 다른 선택을 한 것이기에 개인적 동기를 따로 떼어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당규 때문이라는 손학규 대표의 설명은 합리적이지 않다. 당규에는 비례대표추천위원을 공동대표가 임명하도록 돼 있지 특정인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형식적인 사유가 아니라 내용적인 연유를 살필 필요가 있다.

단서는 결과에 있다. 신계륜·김민석 전 의원의 비례대표추천위 참여는 유지하되 개혁 공천의 기조는 유지하기로 했다. 개혁 성향의 외부인사인 정현백 교수를 추가로 비례대표추천위에 포함시켰다. 오늘 아침 공천 심사에 복귀한 박재승 위원장과 만나 거듭 "국민의 눈에 맞춰 비례대표, 지역공천 잘 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겉으로 보기엔 신계륜·김민석 전 의원의 비례대표추천위 합류를 관철시킨 것 같지만 내용상으로는 '반개혁 공천'의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손학규 대표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개혁 공천의 고삐를 다시 죔으로써 정치적 자해를 범하는 우를 차단하게 됐다. 개혁 공천의 당위와 필요성을 재삼 확인함으로써 비례대표추천위에서 '반개혁' 심사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좁혀버렸다. 그러면서도 불만이 극에 이른 구민주당계에게도 면을 세우게 됐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이들과 첨예하게 각을 세우는 일을 피하게 됐다.

중요한 성과다. 총선 이후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보면 알짜배기 수확을 거둔 셈이다.

총선 이후 대비한 다목적 포석

개혁 공천의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총선에서 선전을 할 수 있는 모티브를 유지할 수 있게 됐고, 이런 모티브가 '예상외의 선전'으로 확인된다면 그의 대표 입지는 굳건해진다.

총선 이후 새로 짜게 될 당내 역학관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형식적으로 중용과 조정의 리더십을 확보함으로써 총선 이후 당 지도부 구성과정에서 혹여 발생할지 모를 계파의 공격 명분을 약화시켰다. 오히려 '중간자'의 위치를 확보함으로써 구민주당계와 열린우리당계 사이에 빚어질지도 모를 갈등을 조정할 수 있게 됐고, 나아가 계파를 오가며 다른 계파를 견제하는 '양동 연합'의 실마리를 확보했다. 그러면서도 내용적으로는 개혁 공천 덕분에 수도권 386을 축으로 하는 우군을 다수 확보하기도 했다.

손학규 대표는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아주 잠깐 얼굴 찡그리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두고두고 만면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계기를 확보한 것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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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의 선택이라고 평하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강금실 민주당 최고위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핏 봐선 '헌신' 같다. 그의 말대로 '백의종군'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라고 평한다.

이유가 있다. 그의 불출마 선언엔 두 가지 요소가 섞여 있다. 당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은 점, 그리고 자기 일관성을 확보한 점이다.

민주당은 '선봉장' 잃고 강금실은 '금배지' 버리고

당의 요구는 서울 출마였다.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그가 서울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키길 바랐다. 절박한 요구였다. 민주당의 생사를 가를 서울과 수도권에서 '장수' 한 명은 산술급수가 아니라 기하급수의 문제였으니까.

강금실 최고위원은 이런 요구를 내쳤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을 비롯한 당 안팎의 거듭된 출마 요구를 단호히 내쳤다. 평면을 잘라 보면 '파업'에 가까운 태도였다.

이랬던 그가 비례대표, 그것도 상위 순번을 배정받는 건 겸연쩍은 일이다. 당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먼저 돌본다는 비판을 자초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소한 자기 일관성은 확보했다고 평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강금실 최고위원이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까지 내침으로써 금배지에 연연해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갖추게 됐다. 지역구 불출마가 불안감의 발로가 아니라 금배지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리를 확보했다.

그러니까 차선이다. 민주당은 '선봉장'을 잃은 대신 '지원군'을 얻었다. 강금실 최고위원은 금배지를 버리는 대신 명예를 얻었다.

그럼 된 걸까? 일종의 '셈셈'이니까 만사가 다 해결된 걸까? 민주당은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강금실 최고위원은 아니다.

이게 궁금하다. '백의종군'은 보통 궁지에 몰린 사람이 택한다. 무고에 의한 것이든, 지은 죄가 있어서든 궁지에 몰려 개전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 꺼내드는 카드다.

하지만 강금실 최고위원은 아니다. 그가 궁지에 몰린 적이 없고 몰릴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왜 '백의종군'을 하려 할까? 이왕 정치판에 뛰어들었다면, 그래서 당 최고 지도부에까지 올랐다면 국회에 진출해 날개를 펴는 것이 순리일 텐데 왜 그러지 않는 걸까?

권력 의지·정치 욕심이 없다

그래서다. 강금실 최고위원의 '절박성'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과연 권력의지, 정치욕심이 있는지부터 점검할 일이다.

복기하면 알 수 있다. 2006년에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그 뒤 정치권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둬왔다. 그랬던 그가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대선 때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에 대선 패배의 암울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을 때다. 정치를 할 요량이었다면 지방선거 후 거의 궤멸상태에 이르렀던 열린우리당에 뛰어들어 입지를 확보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거꾸로 판이 얼추 정리될 때 돌아왔다.

정치를 하려고 돌아왔다고 보기 힘들다. 그것보다는 도와주려고 돌아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권력 의지에 충만해 정치 도전장을 낸 게 아니라 채무감 때문에 노력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렇게 보면 4월 9일 이후의 선택도 대략 예감할 수 있다. 강금실 최고위원과 정치 사이의 거리는 더욱 더 넓게, 그리고 멀리 벌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 뿔이 난 모양이다. 어제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을 맹성토했다.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부정․비리 사범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돼 공천에서 탈락한 그다. 글 말미의 ‘보론’에서 밝혔듯이 SK로부터 받은 불법정치자금은 자신이 수수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그다. 억울하다고 생각해, 희생양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간주해 박재승 위원장을 성토하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모양이다.

근데 별 감흥이 없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쓴웃움’만 나온다.

‘여론정치’ 비난하는 김민석, 그의 과거는?

김민석 최고위원이 그랬다. 박재승 위원장의 공천심사위를 향해 “주제 파악에 실패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의 성토와 호소에 ‘쓴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에게 꼭 돌려주고 싶은 말도 이것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의 큰 주장은 박재승 위원장이 “원칙에 입각한 비전 없이 단칼 정치의 포퓰리즘적 흥행성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의 지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단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묻고 싶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이런 비판을 할 ‘주제’가 되는지를 묻고 싶다.

2002년 대선 때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그토록 강조해마지 않는 “원칙” 그리고 “정당 운영의 기본”을 무시하고 정몽준 후보 쪽으로 ‘전향’했다. 단지 “여론의 지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가 속한 정당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한 노무현 후보를 부정하고 당 밖의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다.

이랬던 그가 “일시적 여론을 업고 극대화된 포퓰리즘”을 비판하고 “억울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잔혹한 정치”를 성토한다.

과연 이런 성토의 진정성을 국민이 알아줄까? 도대체 그는 뭘 믿고 이런 주장을 과감히 펴는 걸까?

아마도 이것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국민적으로 확인된” 시점이고, 지난 몇 년은 자신이 “노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찬바람을 맞았던” 기간이라고 한다.

뚜렷이 대비된다. 노무현의 실정과 김민석의 고난이 대비된다. 잘하면 그의 정몽준 지지 행적은 정당화되고, 못해도 정몽준 지지 행적에 대한 비난을 반감시킬 수 있는 대비다.

근데 문제가 있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하거나 변명하고 싶었으면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박재승 위원장을 향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정 책임에 대해 무감각하게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고, “정작 중요한 실정 책임에 대해선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은폐하듯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김민석이 ‘must’해야 할 것

자가당착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의 주장대로 “노대통령에 반대한 후보단일화 추진”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 캄캄한 터널을 헤쳐 왔(다)”면 이른바 친노 세력 또한 지난 몇 년 간 정치권과 국민들로부터 매타작을 적잖게 받아왔다. 다시 말해 그가 몇 년 동안의 고난으로 과거의 행적을 씻어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친노 세력 또한 지난 몇 년 간 실정 책임을 감수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의 ‘정몽준 지지’가 정치적 판단의 문제였다고 강변할 수 있다면 노무현 정부의 실정은 정책적 판단의 문제였다는 역강변도 성립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민석 최고위원은 친노 공천 배제를 주장할 ‘주제’가 못 된다. 그 얘기를 꺼내는 순간 자기 창에 찔리는 신세가 된다. 그가 친노 세력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요량이라면 그 또한 예외로 놓을 수 없다. 그가 구구절절 상론한 ‘사법적 잣대’는 검토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책임만 갖고도 공천 배제를 감행할 수 있다면 그 또한 1순위에 오를 인물이다.

시기와 기간은 잣대가 될 수 없다. 민주당은 이미 철새 행각을 벌인 정치인들의 입당을 거부했으니까.

되돌아 볼 일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must’라면서 박재승 위원장에 자신의 문제제기에 답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그가 ‘must’해야 할 것은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주변의 권고를 경청하는 것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1.

‘저승사자’도 사람인가 봅니다.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하네요.

박재승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랬습니다. “공천 탈락 대상자 중에는 제 후배도 있다”고 했습니다. 칼 같은 공천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인간적 고뇌가 적지 않았음을 토로한 것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그 또한 사람인 것을….

국민의 칭찬은 잠깐입니다. 그리고 멀리 있습니다. 봄 들녘의 아지랑이 같은 것입니다.

원망은 오래 갑니다. 오랜 지인이 가까운 곳에서 보내는 가시 돋친 눈길이기에 피부가 따끔거립니다.

국민의 지지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라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금배지를 달려 하거나 더 높은 자리를 꿈꾼다면 국민 지지는 귀중한 자산일 겁니다. 그렇게 이미지 하나로 정치적 위상을 높인 사람도 여럿 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런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가능해 보이지도 않습니다. 공천심사위원장을 맡는 건 금배지를 달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특정 정당의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면 정치색이 규정돼 사법부의 요직을 맡기도 쉽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남는 것 하나 없고 오히려 원망만 사는 일을 왜 하는 걸까요?

박재승 위원장이 그랬더군요.

“욕먹기 싫어서 안 한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2.

‘악질검사’가 한 명 있습니다. 조폭들에게 ‘해방 이후 최고의 악질검사’로 소문 난 조승식 대검 강력부장입니다. 아, 어제 퇴임을 했으니까 ‘전’ 강력부장이군요.

검사 생활 29년 가운데 20년을 조폭과 깡패를 잡아들이는 데 보냈다고 합니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씨, 칠성파 두목 이강환 씨, 영도파 두목 천달남 씨 등을 모조리 잡아넣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악질검사’에게 친한 친구가 결별을 통보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마을에서 나고 같은 초․중․고교를 다닌 ‘불알친구’가 의절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오늘부터 내 머릿속에서 네 이름을 지워버리겠다.”

이런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1989년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해제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장교와 민간인 등 20여 명이 부동산 투기를 해 수십 억 원을 챙겨 구속됐습니다. 이 사건에 조승식 검사의 ‘불알친구’가 연루돼 구속됐는데, 이 친구를 구속시킨 장본인이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일하던 조승식 검사였습니다. 조승식 검사는 수사관들에게 친구 집 약도를 그려줬고, 집 문을 열어주지 않고 버티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해 문을 열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국세청에 통보해 친구의 부당이득을 추징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배신감이 컸나 봅니다. ‘불알친구’는 조승식 검사에게 의절을 선언했고 두 사람은 그 뒤 9년 동안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행여 아는 사람 경조사에서 만나기라도 할까봐 상대방 동선을 미리 파악해 피해 다녔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팠나 봅니다. 조승식 검사가 어제 퇴임을 하면서 그랬다는 군요.

“친구를 가슴 아프게 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시 묻습니다. 왜일까요? ‘악질검사’는 왜 친구를 ‘배신’한 걸까요? 왜 마음고생을 사서 한 걸까요?

조승식 검사의 이 말이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검찰 간부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지만 현장에서 조폭을 잡는 강력부 평검사는 지금도 할 수 있다.”

3.

소명의식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욕먹기 싫어서 안 한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라는 박재승 위원장의 반문을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등 떠밀어서도 아니고, 제 잘 나서도 아닙니다. 그냥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니까 한 것입니다.

믿음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을 겁니다.

‘악질검사’가 ‘불알친구’와 화해했다고 합니다. 9년 뒤 한 상가에서 조우해 새벽 6시까지 술을 마신 뒤 다시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됐다고 합니다. 이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라면, 참된 지인이라면 옳은 길을 가는 자신의 마음을 언젠가는 이해할 것이라고 확신한 겁니다.   

4.

새로울 것 없는 얘기입니다. 학교 다닐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배운 ‘윤리’이고 ‘도덕’입니다.

그런데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요? ‘저승사자’와 ‘악질검사’를 보면서 슬며시 미소 짓는 이유가 뭘까요?

교과서와 현실의 간극 때문일 겁니다. 원칙주의자가 ‘꼴통’으로 비하되는 세태 때문일 겁니다. 이런 세태에 함몰돼 딱딱하게 굳어버린 윤리의식 때문일 겁니다.

Posted by '토씨'

정치는 절대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상대를 봐가며 상대보다 나은 가치와 모습을 창출하려 한다. 그래서 상대게임이라고들 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전개되는 공천 갈등에도 이런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한나라당이 없었다면 '박재승 혁명'이 가능했을까?

이렇게 보면 어떨까? 민주당의 '공천 혁명'을 오직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뚝심 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직'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공천 혁명이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 덕이었다면,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은 다른 요인 덕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공천 배제 대상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로 정하지 않았다면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정상 참작 여지와 당선 가능성을 내세운 저항세력에 막혀 좌초했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당 안팎의 여론이 저항세력을 견제하고 박재승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뚝심이 혁명을 낳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제 시선을 돌려보자. 그럼 한나라당은 어떻게 상대게임을 할까? 민주당의 공천 혁명을 개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을 모델로 삼고 민주당의 공천 혁명을 윤활유 삼아 개혁 공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공천심사위가 민주당의 경우를 비교사례로 삼아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이 현실화하려면 조건이 추가돼야 한다. 민주당과 똑같이 공천심사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세력과 여론이 조성돼야 한다.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

민주당 계파는 대선을 기점으로 해체·약화됐지만 한나라당 계파는 굳건히 서 있다. 민주당은 공멸을 피해야 하지만 한나라당은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당은 '우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나라당은 '나'를 챙기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박재승 혁명'을 지렛대 삼을 수 있을까?

이게 화근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개혁보다는 안배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쾌속보다는 만만디 행보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공존의 틀이 깨지지 않는다. 균열현상을 보여도 틀이 깨지는 최악의 경우를 막을 수 있다.

'봐주기 공천'이 나타나는 이유, '화약고'라 불리는 영남지역 공천 확정 시점을 늦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요인이 있긴 하다. 인수위의 과속과 조각 파동으로 민심이 요동친다고 한나라당 스스로 말한다. 그래서 걱정한다. 이러다가 200석은 고사하고 과반의석 확보도 어렵다고 말한다. 엄살기가 다분한 자가 진단이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대선 직후의 분위기에 견주면 이상 조짐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한나라당이 목표 의석수를 하나 둘 줄이다보면 위기감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런 위기감이 개혁 공천을 다그칠 수 있다. 민주당보다 조금 나은 공천을 이루지 못하면 총선에 밀리게 된다는 절박감이 윤리 공천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요인이 한나라당의 직진을 이끌지는 미지수다.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위기감이 오히려 계파 공존의 절박성을 키울 수 있다. 만에 하나 한나라당 의석수가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려면 특정 계파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 특정 계파를 자극함으로써 분란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소'는 버리고 '대'를 잡아야 한다.

이렇게 보니 한나라당은 또 하나의 상대게임에 빠져있다. 민주당보다 나은 공천이 아니다. 개혁 공천보다 나은 실리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공존 틀, 이걸 버릴 수가 없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