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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다.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했다. 당사자가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대놓고 욕했다. 크다. 대상이 이상득 의원이다. ‘영일대군’으로 통하는 여권 최고 실세다.

박근혜 답지 않은 발언이라고 봐야 한다. 원칙론이 짙게 스며있는 그의 어록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해와 계파갈등을 우려해 정수성 후보가 출마하는 경주 방문을 피해온 그의 행적에도 어긋난다. 엄밀히 보면 박근혜 전 대표는 정수성 후보를 두둔할 처지가 아니다. 그는 한나라당 당원이고 정수성 후보는 무소속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명박계가 역공을 가한다. 당 후보가 있는데 박근혜계가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는 건 해당행위라고, 정수성 후보 사무실에 걸려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을 떼야 한다고 비난한다.

그런데도 왜 박근혜 전 대표는 발언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을까? 더 넓고 깊은 원칙 때문에? 그 대상이 누구이든 특정 정치인이 특정 후보 사퇴를 종용하는 건 우리 정치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해석은 ‘꿈보다 해몽’에 가깝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남의 당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식 발언을 하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권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논란이 큰 국정사안에 대해 한 마디 하는 걸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광우병과 MB입법에 대해 한 마디 한 적은 있지만 모두 ‘양다리 걸치기식’ 발언이었다.

계파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철저히 계파적 입장에서 상대 계파에 공격을 가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렇게 전제해 놓고 세밀하게 살피자.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가장 센 상대를 골라 공격을 감행했는지를 살피자.

주목할 현상이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우리 정치의 수치’를 언급한 어제, 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경남지역의 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뉴스였다. 대검 중수부가 김무성 허태열 김학송 의원 등의 후원금 내역을 달라고 선관위에 요청했다는 뉴스였다.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부산경남지역의 박근혜계 의원들이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뉴스는 수사초기단계에서 이미 흘러나왔다. 허태열 김학송 의원 등의 실명이 공개된 것도 며칠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어제 뉴스에서 새롭게 추가된 소식이 하나 있었다. 김무성 의원의 실명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 달랐다.

김무성 의원이 누군가. 박근혜계의 좌장 노릇을 하는 의원이다. 그런 그가 대검 중수부의 수사선상에 올랐다면, 행여 그가 사법처리를 받게 된다면 판이 달라진다. 박근혜계의 ‘올망졸망한’ 의원 몇몇이 단죄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박근혜계의 존립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 그래서 진검승부를 불사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맥락을 이렇게 잡고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을 곱씹으면 이런 해석이 가능해진다. 박근혜 전 대표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대검 중수부가 박근혜계의 존립기반까지 흔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상득 의원을 정면에서 겨냥한 게 방증한다.

이상득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이명박계의 최고 어른이다. 바로 이 점이 이상득 의원의 행동반경을 제한한다. 그는 고개 숙일 수 없다. 사퇴 종용 사실을 시인할 수 없고 고개 숙여 사과할 수 없다. 그러는 순간 이명박계의 ‘횡포’가 공인되고 이명박 대통령의 당 관리전략이 의심받는다.

박근혜 전 대표가 ‘불퇴전’의 이상득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은 그에 버금가는 ‘배수진’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함이다. 여권 핵심이 ‘박연차 수사’를 매개로 박근혜계를 치면 자신은 사퇴 종용 논란을 고리로 여권 핵심부를 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내보인 것이다.

이렇게 읽으니 새롭게 보인다.

검찰이 어제 돌연 ‘박연차 수사’ 브리핑을 중단했다. 일부 언론이 너무 앞서나가면서 오보를 생산해 정치권으로부터 항의에 시달린다는 이유로 브리핑을 중단했고, 중수부장과 대검 수사기획관은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의 이런 태도변화는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까? 말 그대로 오비이락에 불과한 걸까?

수사대상에 박근혜계 의원 등이 거론되면서 검찰에 정치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이 검찰 일각에서 제기된다는 보도가 나온 걸 보면 꼭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검찰의 브리핑 중단이 우연의 일치이든, 정치적 고려 때문이든 어떤 경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검찰은 박근혜 전 대표에 답장을 보낼 주체가 아니다.

이미 수없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보고 단계부터 ‘박연차 리스트’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고, 검찰 수사도 청와대와 조율하면서 이뤄지고 있다는 보도가 여러 차례 나왔다.

이런 보도에 기초하면 분명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낼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의 의중에 따라 검찰 수사 속도와 강도가 달라지고, 그의 결정에 따라 박근혜 전 대표의 대응이 달라진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박근혜계에 대한 수사를 접으면 야당이 반발한다. 이 점을 의식해 ‘엄정수사’를 강조하면 여권이 분열된다.

흥미롭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놓고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서 제기됐던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계기가 잡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박연차 리스트’를 무기 삼아 여권 새판짜기에 나설 것이라는 가설이 맞는지를 가늠하는 계기가 잡힌 것이다.

▲사진=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상득 의원 ⓒ이상득 의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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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기사 한 구절이 눈길을 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건평 씨의 첫째사위 연모 씨에게 전달한 500만 달러와 관련한 내용이다. 이렇게 돼 있다.

“박연차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뭘 뜻하는지는 분명하다. 이 구절에 따르면 연모 씨는 ‘경유지’에 불과하며, 500만 달러의 실수령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된다.

믿을 만한 보도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잠시 미뤄두자. ‘노무현’ 이름 석 자보다 더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다. 이것부터 살피자.

시점이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12월”이라고 했다. 박연차 회장이 검찰이 신문하기도 전에 먼저 ‘실수령자=노무현’이라고 진술한 시점이 “지난해 12월”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이면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회장을 구속기소하던 때다. 그 날짜가 바로 12월 22일이다. 이 시점을 전후해 박연차 회장 입에서 ‘실수령자=노무현’이란 말이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싹튼다. 대검 중수부가 박연차 회장을 구속기소할 때 이 같은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돈 준 사람이 자진해서 입을 열었는데도 왜 묻어둔 것일까? 그렇게 묻어뒀던 사안을 왜 이제 와서 다시 꺼내드는 것일까?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박연차 회장을 수사하는 대검 중수부는 지난해 12월의 대검 중수부가 아니다. 지난 2월 9일 새로 교체된 수사팀이다.

이 점을 중시하면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추론이 가능하다. 두 갈래다.

하나. 지난해 대검 중수부는 묻어뒀다. 폭발력이 워낙 큰 사안이기에 노건평 씨 개인 비리를 단죄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부분은 불문에 붙였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대검 중수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때의 파일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강도 높게 수사를 벌이고 있다.

둘. 지난해 대검 중수부가 사안을 덮으려 한 게 아니다. 워낙 폭발력이 큰 건, 조심조심 치밀하게 수사해야 했기에 일단 노건평 씨 개인 비리만 단죄하고 수사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다. 2월 9일 대검 중수부가 교체된 것도 이같이 점을 고려해 수사력 강화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다.

일단 이렇게 추론해 놓고 나머지 사실을 마저 살피자. 역시 시점이다. 지난해 11월이다.

보도가 이미 나왔다. ‘조선일보’가 지난 25일 국세청의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보고서에 박연차 회장 비자금 50억원의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가능성이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보도한 것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월에 이같은 내용의 세무조사 결과를 국세청장으로부터 직보 받았다고 보도했다.

재구성도 가능하다. 국세청의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를 직보 받을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관심은 지대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르지 못했을 것이다. 박연차 회장의 ‘실수령자=노무현’이란 진술을 대검 중수부 차원에서 접수하고 상부로 보고하지 않는 ‘과감성’을 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노무현’ 이름 석 자를 들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대검 중수부 수사 전, 그리고 수사 후에 각각 국세청과 대검 중수부를 통해 ‘노무현’ 이름 석 자와 500만 달러라는 금액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짙다.

쉽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실제 상황이 이랬다면 지난해 12월의 대검 중수부가 사안을 덮기는 쉽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대검 중수부가 독단으로 ‘실수령자=노무현’이란 사실을 덮었다기보다는 피치못할 사정, 즉 ‘노건평 사위 연모 씨’와 ‘노무현’의 연결고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뒤로 물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2월 9일 대검 중수부가 개편된 이유도 바로 이런 사정을 감안해 수사력 강화 차원에서 내려진 조치로 이해해야 한다.

자, 이제 종합할 때가 됐다.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가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넉 달 동안 대검 중수부는, 그리고 청와대는 500만 달러, 50억원의 실소유주를 밝히기 위해 천천히, 그러면서도 아주 치밀하게 수사를 진행했고 조율했다. 그런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조선일보’는 오늘 대검 중수부와 청와대의 ‘합작설’을 보도했다).

왜였을까? 노건평 씨 사위를 잡기 위해서였을까? 단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를 재삼재사 부각시키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였을까? 이미 ‘동네북’이 된 노건평 씨를 ‘부관참시’하기 위해 이렇게 뜸을 들였을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라고 봐야 한다. ‘월척’을 낚기 위해 더 튼튼한 낚시대를 준비하고 날밤을 지새운 것으로 봐야 한다. 이 모든 추론의 시발점, 즉 ‘동아일보’의 ‘박연차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렇다.

근데 웬일일까? 신문지면엔 "노 전대통령에 주려고 건넸다"로 달렸던 제목이 인터넷판에서 "노 전 대통령 인척에게 줬다"로 바뀌었다. 핵심 중의 핵심이 밋밋하게 바뀐 것이다. 이건 또 뭘 뜻하는 건가? 의아하지만 그냥 가자. 기사 본문은 바뀌지 않았으니까.



▲사진=‘동아일보’ 신문지면(위)과 인터넷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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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는 여권의 2인자인가? 그럼 이상득은? 그는 이재오 뒤에 서는 3인자에 불과한가?

이재오는 제 맘대로 정치 보폭을 정할 수 있나? 그럼 MB는? 그는 이재오에게 백지 위임장을 써준 건가?

놓치지 말자. 이재오 전 의원의 입에 귀를 대고 이재오 전 의원의 스텝에 눈길을 주는 것만이 그의 정치 보폭을 재는 방법이 아니다. 이 문제까지 마저 살펴야 한다.

두 문제에 대한 일반론적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여권의 2인자가 아니다. 명실상부한 2인자는 이상득 의원이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재오 전 의원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수도권 출마자들이 이상득 불출마를 떼로 촉구했다가 무위에 그친 일이 있다. 그 뒤 이재오 전 의원은 쫓기듯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이상득 의원은 ‘만사형통’이란 신조어의 주인공이 됐다.

이재오 전 의원의 정치 보폭을 규정하는 사람은 MB다. MB가 레임덕에 빠지지 않는 한 이는 부동의 진실이다. 호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MB가 이재오 전 의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다. 중요한 건 MB의 한나라당 관리전략이고 차출전략이다. 그것에 따라 이재오 전 의원의 쓰임새가 달라진다.


부족하다. 이런 일반론만으로는 이재오 전 의원의 앞날을 완벽하게 점칠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뒤지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를 수사하면서 야당 뿐 아니라 여당에도 칼을 들이대고 있다.

기다려야 한다. 한나라당의 ‘내일’, 그리고 그 ‘내일’에 스며들 MB의 당 관리전략을 알려면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한나라당 의원들 중 누가 ‘거세’되는지를 알 수 있고, 이명박계 대 박근혜계의 힘의 관계가 어떻게 조정되는지를 살필 수 있고, 이재오 전 의원의 쓰임새를 전망할 수 있다.

일단 이렇게 단서를 단 다음에 경우의 수를 살피자.

이상득 의원이 힘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단지 MB의 형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계와 공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MB의 취약한 정치기반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런 사정이 이상득 의원에게 중재자 또는 관리자의 역할을 부여했고, 이재오 전 의원의 ‘파이터’ 기질을 견제했다.

달라진다. 만에 하나 MB가 ‘박연차 리스트’ 수사를 매개로 여권의 판을 새로 짜려한다면, 다시 말해 박근혜계에 대한 공세에 나선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재자’ 이상득 의원의 역할은 줄어들고 ‘파이터’ 이재오 전 의원의 역할은 커진다.

동기는 있다. 마냥 박근혜계를 방치하면 어느 순간 무너진다.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박근혜계가 독자생존, 그리고 MB와의 차별화에 나서면 한나라당에 대한 통제력은 반감된다. MB입장에선 이런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단속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예단은 하지 말자. 이재오 전 의원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전망은 아직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이런 전망이 완성되려면 나머지 요인을 마저 살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반응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정면반발하는지, 아니면 일단 복지부동하는지에 따라 이재오 전 의원의 쓰임새는 또 다시 달라진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일단 복지부동한다면 굳이 이재오 전 의원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다. 대등관계에서 종속관계로 박근혜계의 위상을 격하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굳이 퇴로를 막으면서까지 박근혜계의 극심한 반발을 유도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계가 당내 세력기반을 확고히 다지기만 한다면 오히려 이상득 의원을 통해 수직적 공생을 위한 어르기에 나서는 게 생산적이다.

믿을 만한 구석도 있다. 다른 사안이 아니라 비리 사안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자기 계파 의원들이 ‘검은 돈’을 받은 것에 대해서까지 계파 논리를 앞세워 변호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모른다. 순리와 상식보다 우선하는 게 있다. 바로 생존논리다. 박근혜 전 대표가 수수방관하면 계파의 생존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복지부동이 아니라 분기탱천 모드를 장착할지 모른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편파성을 제기하면서, 그리고 수사 배면의 정치성을 비난하면서 전면전을 불사할지 모른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정면반발한다면, MB 공세를 그대로 놔뒀다간 계파의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해 전면전을 불사한다면 ‘파이터’ 이재오 전 의원의 투입은 기정사실이 된다. 공존상태가 깨지고 생존게임이 전면화 되는 것이기에 MB를 대리해 독전을 할 사람이 절실해진다.

이재오 전 의원이 그랬다. ‘당분간’ 현실 정치는 현역 의원들에게 맡긴다고 했다. 이 말이 맞다. ‘당분간’이다. 이재오 전 의원이 정치적 역할을 하려면, 아니 이재오 전 의원에게 정치적 역할을 맡기려면 ‘당분간’ 기다려야 한다.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끝날 때까지 말이다.

▲사진=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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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전망했다. “박연차 수사의 마지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뭔가 대단한 정보를 손에 쥔 채 한 자락을 펼친 발언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천기누설급의 귀띔도 신통방통한 예언도 아니다.

이미 나왔다. ‘동아일보’가 지난 19일 보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50억원을 받은 정황을 대검 중수부가 잡았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오늘 또 나왔다. 국세청의 박연차 세무조사 결과 보고서에 비자금 50억원의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가능성이 언급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분명해 보인다. 여기저기서 거론하는 걸 보니 검찰의 최종 수사목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해도 된다. 검찰이 야권 인사를 사법처리하기에 앞서 ‘MB맨’인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부터 구속시킨 배경을 헤아릴 만하다. 여권은 살을 주고 뼈를 도려내려 한다. 저위험 고수익을 기대하며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어떨까? 여권의 이런 계산이 실제로 호주머니를 불려줄 수 있을까?

그러려면 확정해야 한다. 박연차 회장의 비자금 50억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흘러간 사실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동아일보’는 ‘정황’이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국세청이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일 ‘가능성’만 언급했다고 했다.

행여 사실 확인 과정에서 삐끗하면, 다시 말해 비자금 50억원의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닌 것으로 확정되면 판은 달라진다. 저위험 고수익 모델이 고위험 저수익 모델로 뒤바뀐다. 비리 단죄 명분이 쇠하고 정치 보복 비난이 성하게 된다.

행여 검찰이 실소유주를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확정한다고 해도 고수익 실현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투자 타이밍을 놓친 게 뼈아프다.

할 거라면 일찍 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정권이 갓 출범했을 때, 그래서 단죄하는 쪽과 단죄당하는 쪽의 신구 명암이 극명하게 교차될 때 사정의 칼날을 뽑았어야 했다. 그래야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논란을 봉쇄하면서, 수비에 신경 쓰지 않고 전원 공격대형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놓쳤다. 촛불시위 때문이든 사정기관 장악 지연 때문이든 아무튼 적기를 놓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 고착돼 있고, ‘MB맨’ 역시 비리 사슬의 한 고리에 놓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래갖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 구정권의 비리를 드러냄으로써 신정권의 개혁을 부각하는 정치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 기껏해야 ‘누가누가 덜 더럽나’의 네거티브 게임이 전개될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논란이 추부길 전 비서관 선에서 그치면, 그리고 이종찬 전 민정수석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대표 선에서 머물면, 아울러 비자금 50억원의 실소유주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확정되면 고수익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이익은 챙길 수 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전주덕진 출마 선언으로 자중지란에 빠진 민주당에 유효타 정도는 날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미 제기되고 있는 의혹, 즉 박연차 로비에 연루된 ‘MB맨’에 막강실세가 끼어있다면 어떻게 될까? 답할 필요가 없다. 죽은 권력보다 산 권력에 더욱 민감한 게 국민정서이고 국민여론이다.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박연차 세무조사를 주도해 ‘비자금 수혜자’의 면면을 꿰뚫고 있는 사람, 박연차 로비의 최종대상으로 ‘로비스트’의 면면을 잘 알 법한 사람, 바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느닷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검찰은 그런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 뿐인가. 올해 초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한 ‘그림 로비’ 의혹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데도 청와대는 수사의뢰를 하지 않았고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다.

의혹이 증폭될 빌미를 스스로 만드는 바람에 투자전략이 꼬이고 있는 것이다.

▲사진=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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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이치는 바뀌지 않았다. 역시 돈이 최고다.

노무현 정부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도덕성을 제일의 가치로 삼았던 정부다. 그런 정부의 사람들이 돈을 받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억’을 받았다.

냉소가 절로 나오게 하는 풍경이다. 돈 앞에 장사 없고 뇌물 앞에 지조 없다는 잿빛 격언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모습이다.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박연차 회장은 ‘친노’니까, ‘같은 편’이니까 대가성 없이 팍팍 후원해준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어불성설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자나깨나 단속을 당하는 대통령 친인척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금기를 몰랐다는 건 소가 콧방귀 뀔 일이다. 백번 봐도 이해할 여지는 없다. 입이 열 개 아니 백 개라도 노무현 정부 사람들은 할 말이 없다.

근데 웬일인가? 노무현 정부 사람들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사람들도 다를 바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노무현 정부 5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하면서 그 흔적에 걸레질을 하는 정부다. 이런 정부의 사람들도 돈을 받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억’을 받았다

실소가 절로 나온다. 국세청이 나서 세무조사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간 크게 돈을 받았다. 국세청이 세무조사 진행상황을 극비에 붙이고 세무조사 결과를 이명박 대통령에 직보를 할 정도로 벼르고 있었는데도 돈을 받았다. ‘노무현 걸레질’에 방해가 될지도 모를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뒷주머니에 현금을 우겨넣었다.

분명하다. 돈에 여야는 없다. 정치노선의 대립도 없고 정파의 치열한 싸움도 없다.

새삼스런 사실이 아니다. 여러 번 목도했다. 차떼기가 횡행하던 시절에도 이랬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여야 대선 후보에게 돈을 갖다 바쳤다. 여야에 따라 액수 차이는 뒀을망정 어느 한쪽을 외면한 적은 없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돈의 작동원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박연차 리스트’는 이 사실을 똑똑하게 보여준다. ‘정파성’조차 건너뛸 정도로 돈의 위력이 대단함을 다시한번 확인해준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정치권이 한 목소리로 정치풍토가 깨끗해졌다고 주장하지만 달라진 건 목소리 톤뿐이다. 후미진 골목에서 돈이 오가는 행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돈은 모든 걸 복속시킨다.

Posted by '토씨'

‘박연차 리스트’가 있단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금품을 건넨 정관계 인사 70여명의 명단이란다. 여야의 국회의원,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거명된 리스트란다.

‘장자연 리스트’가 있단다. 고 장자연 씨가 소속사 대표의 강요에 못 이겨 술 접대와 성 상납을 한 인사 10여명의 명단이란다. 방송계와 기업계 인사뿐만 아니라 유력언론사 대표까지 거명된 리스트란다.

차이가 있다. 똑같이 ‘리스트’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실체는 다르다. ‘박연차 리스트’는 없다. 박연차 회장이 검찰 앞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 또는 정황이 잡힌 인사들을 통칭하는 것일 뿐이다. ‘장자연 리스트’는 있다. KBS가 입수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고 장자연 씨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잠정결론 내린 문건에 실명과 직책 등이 기재돼 있다. 시중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리스트를 빼면 이렇다.

차이가 하나 더 있다. 검찰은 열심히 뒤진다. 박연차 회장을 압박해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을 하나 둘 진술하게 만들고 있다. 경찰은 은근히 뺀다. 처음엔 “문건내용에 폭행·성 강요·술자리 강요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돼 있다”고 했다가 이제 와선 “경찰이 확보한 리스트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납득할 수가 없다. ‘박연차 리스트’와 ‘장자연 리스트’는 본질상 같다. 먹이사슬구조의 정점에 있는 유력인사가 불법적으로 상납을 받았다는 점에서 두 리스트는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상납 품목이 하나는 금품이고 하나는 성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행위의 질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경찰은 뒤로 뺀다. 검찰은 열심히 뒤지는 반면 경찰은 차려준 밥상마저 뒤로 물리려 한다. 그래서 납득할 수가 없다.

납득할 순 없지만 정리할 순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의지를 저울에 올려놓을 수 있다. 한쪽의 용기를 높이 사고 다른 한쪽의 눈치를 성토할 수 있다.

하지만 섣부르다. 삐져나온 현상만 갖고 서둘러 결론내리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정치권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박연차 리스트’가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소리다. 실제로 언론에 의해 보도된 ‘박연차 리스트’엔 박근혜계 인사와 친노 인사만 거명돼 있다. 여당의 주류 인사는 쏙 빠져있다. 그래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수사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바로 이게 예단을 경계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나도는 의혹 또는 음모론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검찰과 경찰의 수사의지를 저울로 재는 건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검찰과 경찰 모두 유력인사의 위세에 눌려 ‘트위스트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할지 모른다. 두 곳 모두 지극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 말이다.

이렇게 짚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일지 모른다. 다른 여러 가능성, 즉 실제로 이명박계 유력인사가 금품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 유력언론사 대표가 성상납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의도 정치에 부정적인 이명박 대통령이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차제에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더라는 보도도 나오는 판이다.

아무튼 지켜볼 일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검찰과 경찰의 '트위스트 수사'를 동시에 감상해야 하는 경우도 상정해야 하고 또 다른 '저울재기'도 준비해야 한다. 권력실세와 유력언론사 대표 중 어느 쪽의 힘이 더 센지를 재는 일 말이다.

▲사진 출처=KBS홈페이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