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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도 ‘검사선서’를 했을 것이다.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명예를 걸고” 다짐했을 것이다. 헌데 보이는 행태는 영 다르다.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9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차명계좌는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번엔 ‘시사저널’ ‘조선일보’를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민주당의 박지원, 우윤근 의원에게 1만 달러를 건넸다고 진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데이’ 발언은 취중에 뱉은 말이라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아니다. 맨 정신에 한 말이다.

타당하지 않다. 그가 검사로 재직할 때 준수했을 ‘검사윤리강령’에 어긋나는 행동이기에 타당하지 않다. ‘검사윤리강령’ 제16조는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검사는 직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사실이나 취득한 자료를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권보호수사준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언동이다. 제64조, 즉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수사 중인 사건의 혐의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어긴 언동이다.

상관없는 건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현직 검사가 아니니까 ‘검사윤리강령’이나 ‘인권보호수사준칙’을 지킬 필요가 없는 건가? ‘노무현 차명계좌’도 ‘박연차 1만 달러’도 수사 중인 사건이 아니라 종료된 사건이니까, 부당한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니까 공개해도 되는 건가?

그렇지가 않다. ‘현직 검사가 아니니까’라는 논리에 대한 반박은 전직 고검장의 말로 갈음할 수 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 한 말이다. 수사에 대해서는 퇴직을 한 뒤라도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검찰의 수사 전통을 무너뜨렸다는 말이다. 전직 고검장의 말은 ‘검사선서’에 나와 있는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를 상기시키는 말이다.

그럴싸한 건 ‘국민의 알권리 보장’ 논리뿐인데 이마저도 함량 미달이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 마디마디가 그렇다.

그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줬다는 진술을 받긴 했지만 수사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수사를 하지 못해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정치자금법 위반죄 공소시효가 지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전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1만 달러를 전달했는지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반쪽짜리 내용이다. ‘박연차 전 회장이 ~라고 카더라’라는 수준에서 멈춰있는 함량 미달의 내용이다. 본인마저 사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이런 반쪽짜리 내용을 버젓이 입에 올렸다. 자기 입으로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입에 올렸다. 수사 중인 피의사실조차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는 판에 마침표를 찍은 사안을 거침없이 공개했다.

백번, 아니 천번 양보해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1만 달러를 입에 올린 건 사법 차원이 아니라 정치 개혁 차원이라고, 정치 개혁을 위해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좋게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걸린다. 이전의 다른 사례가 눈에 밟힌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의 몸통은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라고 말했을 때 여기저기서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쏟아냈던 질책이다. 타인의 명예와 직결되는 발언을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내뱉는 건 무책임한 언동이라는 질책이다. 따져보면 이 질책은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다른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하지 않은 사례다. 그는 사석에서는 얘기를 해도 국민 앞에서는 입을 닫았다. 이 사례는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입을 연 것이라는 '호의적 해몽'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사진=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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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나서기 어렵다. 개각이 못마땅해도, 개각에 자신을 향한 암수가 숨어 있어도 나서기 어렵다.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명분 말이다.

현재 전개되는 개각 논란은 공학 차원의 것들이다. 계파 구도를 전제로 유ㆍ불리를 따지는 것들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애용하는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과 계파와 연관된 말들만 오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나서려면 판이 바뀌어야 한다. 후계구도니 세력판도니 하는 논의 틀을 뛰어넘는 ‘플러스알파’가 나와야 한다. 그게 바로 도덕성이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의 도덕성 문제가 불거져야 ‘국민을 위한’다며 보폭을 넓힐 수 있다.

관건은 청문회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 인준 청문회에서 뭐가 나오느냐에 따라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 행보가 달라지고 정치판이 달라진다.

헌데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과 다수 언론은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미국 뉴욕의 한인식당 종업원을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 수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청문회 검증항목 1호라고 입을 모으지만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눈 여겨 볼 게 있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의 행동 개시 시점이다.


각종 보도를 종합하면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경남지사 불출마를 선언한 건 1월 26일, 이보다 두 주 앞선 1월 1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해 “더 큰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중앙일보 보도). 그러니까 최소한 1월 12일 이전에 ‘큰 꿈’을 꾸기로 작정했다는 얘기다. 그 계기가 뭘까?

바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지난해 12월(발표는 1월 8일)이었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는 이 때를 기점으로 판을 키우고 무대를 옮기기로 작심한 것이다.

점검사항이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가 단지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기대어 의혹이 ‘클리어’ 됐다고 자신한 것인지, 아니면 그것 말고도 다른 ‘믿는 구석’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청문회 전도를 가늠할 수 있다.

청문회의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도 이 점을 주목하는 것 같다. 전병헌 정책위의장이 어제 “김 총리 내정자는 3선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스스로 포기했는데, 스스로 포기하는 과정에 뭔가 석연치 않았던 그런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정가에 많이 알려져 있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확실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한 걸 보면 그렇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당 등이 검찰의 ‘미진한 수사’를 공격할 수는 있어도 검찰 수사 결과를 뛰어넘는 다른 결과, 즉 ‘박연차 돈’이 김태호 총리 내정자에게 전달됐다는 확증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러려면 ‘박연차 돈’을 대신 전달한 사람의 증언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게 원천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전병헌 의장이 언급한 “석연치 않았던 내용들”이 일각에서 제기하는 빅딜설(경남지사 불출마를 조건으로 정권이 의혹을 덮어줬다는 의혹)을 뜻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렵다. 선후관계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설령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그건 당사자만이 아는 일이니까, 하지만 당사자는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니까 캐기 어렵다.

그래도 단정하지는 말자. 지금까지 검토한 건 ‘박연차 돈’ 수수 의혹 한 건 뿐이다. 이것 말고도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이 여럿 있고, 청문회에서 예상치 못했던 의혹이 불거진 경우도 여럿 있다. 청문회는 열려봐야 안다.

▲사진=김태호 국무총리 내정자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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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직접적인 증거 또한 아니다.

한명숙 전 총리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만날 때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이 동석했다는 ‘한겨레’ 보도 역시 ‘정황’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필이면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으로서 곽영욱 전 사장이던 희망하던 공기업(석탄공사와 남동발전)를 관할하던 정세균 대표가 왜 동석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새롭지는 않다.

‘한명숙 공대위’의 양정철 대변인이 일찌감치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와 곽영욱 전 사장은 안면이 있던 관계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하지만 일대일로 만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한겨레’의 보도는 양정철 대변인의 이같은 주장을 뒤엎는 것은 아니다. 양정철 대변인의 주장처럼 가깝지 않은 사이였다면 한명숙 총리가 곽영욱 전 사장을 총리 공관으로까지 부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 아울러 그런 자리에 당시 장관이던 사람까지 동석시켜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직접 증거는 아니다.

어차피 진실은 법원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대로 검찰이 돈이 오간 직접적인 증거, 즉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어차피 최종 판단은 법원에 의해 내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눈길을 돌린다. ‘한명숙 사건’과 아주 유사한 다른 사건에 눈길을 돌린다.

한나라당의 박진 의원이 재판을 받고 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법정에서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다.

흡사하다. 한쪽은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한쪽은 받은 일이 없다고 맞서는 면에서, 만난 건 사실이지만 돈이 오가지는 않았다는 항변이 나오는 면에서, 돈을 건넸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를 목격한 사람이 없다는 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검찰이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기소했다는 면에서 두 사건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법원의 태도는 아주 신중하다. 원고와 피고가 팽팽히 맞서는 것을 보고 이례적으로 시연까지 연출했다. 돈을 줬다는 박연차 전 회장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을 골라 박진 의원을 만날 때 입었던 것과 같은 양복을 입히기까지 했다. 박연차 전 회장이 정말 2만 달러가 든 봉투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면 폼새에서 티가 나지 않았겠느냐는 가설 위에 이렇게 재연극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정표가 될지 모른다. 박진 의원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한명숙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의 참고사례가 될지 모른다. 법원 연출의 재연극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어차피 그 또한 정황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법원의 판단 잣대는 다른 데서 구할 것이다. 그것이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뇌물 공여자의 진술의 일관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을 증거로 인정하는지 아니면 증거의 직접성을 중시하며 이런 진술과 정황을 배척하는지 지켜볼 일이지만 아무튼 하나의 창은 될 수 있다. 치열하고도 기나긴 법정 공방의 끝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창 말이다.

박진 의원에 대한 판결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 출처=한명숙 전 총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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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주장했다. 자신들은 ‘빨대’가 아니라고 했다. 명품시계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손상했다는 평가를 받는 몇몇 사례의 사실 여부를 검찰이 언론에 확인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어제 ‘박연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럼 왜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나쁜 빨대를 색출하겠다고 했을까’ 라는 식의 반문은 던지지 말자. 생산성이 없다. ‘나쁜 빨대’를 색출한 결과 검찰이 아닌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이것도 물어보지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고가의 명품시계 두 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 “비싼 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이유에 대해서는 집에 가서 물어보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답변을 피했다고 검찰은 밝혔다”는 보도가 어떻게 나오게 된 건지도 물어보지 말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나온 고인의 부산상고 동기의 증언, 즉 권양숙 씨가 노건평 씨의 부인으로부터 명품시계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고 “논두렁에 버리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증언에 따르면 보도된 사실관계가 틀리기에 반드시 정보 제공-확인 경위를 밝혀야 하지만 그래도 일단 관두자.

검찰이 어제 추가로 밝힌 내용이 있다. “수사 대상이 방대하고 사건 관계자가 많아 검찰 이외의 경로를 통해 수사 내용을 입수할 수 있었고, 언론이 먼저 정보를 입수한 뒤 사실관계 확인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중대한 문제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주장이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검찰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검찰 이외의 경로’에서 ‘노무현’을 캤거나 ‘노무현 수사’를 손금 들여다보듯 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게 누구일까? 검찰은 ‘사건 관계자’를 거론했지만 가능성은 낮다. 명품시계를 예로 들 경우 당사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나 박연차 전 회장측이 언론에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그것도 사실과 다르게 언론에 ‘선사’할 리 만무하기에 그렇다. 박연차 전 회장도 아니다. 그는 당시 감옥에 있었다. 그럼 누구일까? 박연차 전 회장의 측근을 의심해 볼 수 있지만 이들 또한 가능성이 높지 않다. 언론이 이른바 ‘포괄적 뇌물’의 대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태광실업이 수주하려던 베트남 화전을 적극 밀어줬다고 보도했을 때 앞장서서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사람들이 박연차 전 회장의 측근들이다. 그럼 누구일까? ‘검찰 이외의 경로’는 어디일까?

왜 흘렸을까? 언론에 정보(그것도 사실과 다른 정보)를 흘린 주체가 ‘검찰 이외의 경로’라면 정보 제공 목적이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압박해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렸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수사 이외의 목적, 어떤 특정한 목적 말이다. 그게 뭘까?

여기서 던지는 의문이 일말의 타당성이라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캐야 한다. 허투루 넘기지 말고 반드시 밝혀야 한다. 검찰이 ‘면피’하려고 애먼 사람을 잡는 게 아니라면, 실제로 ‘검찰 이외의 경로’에서 ‘언론플레이’가 이뤄졌다면 그건 음험한 기획과 교활한 공작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이 12일 ‘박연차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검찰이 그랬다.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내용 일부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공소권 없음' 처분한 사건이고 참고인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해한다.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사정기관 입장에서 법이 정한 울타리를 벗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근데 웬일인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마디 더 했다. “박연차 전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64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공여했다는 피의사실은 박 전 회장의 자백과 관련자 진술 등에 비춰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공여자만 기소했을 때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고 판단해 이 부분도 내사종결했다”고 밝혔다.

이해할 수 없다. 법리를 비웃는 언급이 요상하다. 


우선 표현부터가 적절하지 않다. ‘(포괄적) 뇌물’이란 표현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라는 표현이 호응하지 않는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금품을 받은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그 같은 사실을 알았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 수사를 중계방송했던 언론이 수없이 읊조렸던 법률 상식이 이랬고, 국민이 반강제적으로 교육받은 법률 상식이 이랬다.

그런데도 검찰은 엉뚱하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금품이 오간 사실을 알았는지는 일언반구도 없이 박연차 전 회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 간에 금품이 오간 사실만 갖고 ‘(포괄적) 뇌물 혐의’가 인정된다고 했다.

명기한 금액도 그렇다. 640만 달러 전체를 ‘(포괄적) 뇌물’이라고 했다. 권양숙 씨가 받았다는 100만 달러와 노건평 씨의 사위 연철호 씨가 받았다는 500만 달러, 그리고 추가로 밝혀냈다는 40만 달러를 뭉뚱그려 ‘(포괄적) 뇌물’이라고 했다.

밝혀지지 않았다. 권양숙 씨가 받은 100만 달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 시인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연철호 씨가 받은 500만 달러의 성격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 씨에게 건네기 위한 돈이었는지, 아니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주장대로 정상적인 투자금이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40만 달러 또한 검찰은 100만 달러와는 별개의 돈이라고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100만 달러에 포함된 돈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합산해버렸다. 640만 달러 전액을 ‘(포괄적) 뇌물’로 규정한 다음 “인정된다”고 했다.

실상이 이렇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내용을 미공개한다고 밝히면서도 할 말은 다 해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혐의를 거두지 않은 채 오히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했던 말, 즉 “검찰 수사는 정당했다”는 주장을 다른 버전으로 재생했다.

검찰은 달라지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존했을 때나 서거했을 때나, 공소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똑같다. 사건의 본질인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중 인지’ 관련 증거는 내놓지 않은 채 혐의만 거듭해서 확인한다. 고장 난 레코드처럼….

Posted by '토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보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말문이 막힌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으면서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몇시간 동안 멍한 표정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뉴스만 쳐다봤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있었습니다. 이승과 저승이 교차했을 찰나에 고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습니다.

잔인하게 호기심을 내보이는 게 아닙니다. 가장 절박하고 가장 솔직하고 가장 암울했을 시점이 바로 그 찰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각이 조금씩 나오더군요. 수행한 경호원에게 "담배 있느냐"고 물은 다음에 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바라보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했다고, 그리곤 곧장 몸을 던졌다고….

……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맺지 못한 채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김경한 법무장관이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종료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공소대상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 종결은 당연한 것이란 해설도 뒤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사법논리로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사 이치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흘러가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잠깐 동안의 애도 물결이 걷히고 무감과 무심이 다시 세상을 휘감을 때 '노무현'이란 이름 석 자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호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인정했던 100만 달러 수수 사실의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서 하는 말도 아닙니다.

'대통령 노무현',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무심한, 그리고 냉정한 기억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100만 달러를 수수한 게 객관적 사실이고, 가족의 이런 행동을 막지 못한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은 남게 될 겁니다.

그런데도 다시 묻습니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흘러가버리면 '노무현'이란 이름 석 자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요?

살아생전에 고인이 했던 말이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100만 달러 수수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나는 몰랐다고, 이렇게 말하는 게 구차하지만 그래도 진실이니 어쩔 수 없다던 고인의 말이 귓가를 맴돌기  때문입니다. 고인이 유서에 남겼다는 말의 여운이 너무 길기 때문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는 말에 행간이 깔려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모두 묻혀버립니다. '나는 몰랐다'는 그 짧은 언사에 담겼을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고뇌가 해소되지 않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자신을 내몰아야 했던 한 인간의 번민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 고뇌와 번민이 진실이라면 그렇습니다. 나는 몰랐다고 두번 세번, 아니 수십번이라도 항변하고 싶지만 그러면 부인과 자식의 등을 떠미는 것 같아 차마 하지 못한 한 인간의 비애가 묻혀버립니다. 검찰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면 그 고뇌와 번민마저 변명과 합리화로 채색돼 묻혀버립니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두 달을 끌어온 사건입니다. 어떤 국민에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했고, 또 어떤 국민에겐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정치보복과 표적수사의 혐의를 불러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엇갈리는 시선 한 가운데 있었던 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지’ 여부였습니다. 가를 수가 없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끝내버리면, 그래서 진실다툼의 여지를 영원히 없애버리면 엇갈리는 시선을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딱히 제시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법논리를 뛰어넘는 더 큰 논리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치논리로 풀자고, 검찰이 가리지 못하면 정치권이 청문회를 해서라도 '옥'과 '석'을 가리자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내키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방법이 고인을 더 욕되게 하는 결과를 빚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앞섭니다.

그냥 이대로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요? 무력하게, 소극적으로 고인을 애도하는 것으로 끝내야 하는 걸까요? 다시 말문이 막힙니다.

▲사진=지난 4월 30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욕한 바 있다.

이 말을 빌리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었다. 검찰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렇다. 이렇게 돼 있다.

2007년 6월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6월 29일까지 100만 달러를 준비하라고 부탁한다. 기간은 딱 나흘. 시간에 쫓긴 박연차 회장이 직원 130명을 동원해 100만 달러를 환전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전달한다. 이 돈은 6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세기에 실려 아들 노건호 씨에게 전달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제올림픽기구 총회 참석차 과테말라로 가는 도중에 기착한 미국 시애틀에서 아들에게 100만 달러를 유학비용으로 건넨 것이다.

거짓말이 된다. 검찰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100만 달러를 받아 “빚을 갚는 데 썼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은 거짓말이 된다. 국민에게 사과를 하며 스스로 밝힌 내용마저 꾸며낸 것이 된다.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법을 어긴 게 된다. 검찰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외환관리법을 어긴 셈이 된다. 외환관리법상 여행 떠날 때는 1인당 1만 달러 이상을 반출하려면 세관당국에 신고하도록 돼 있고, 유학비용을 보낼 때는 외국환은행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애틀로 100만 달러 가방을 들고 나가며 신고를 했다는 기록과 보도는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 직위를 이용해 탈법행위를 한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누스 행태를 보였다는 것도 그렇고, 해외 은닉계좌로 돈을 빼돌리는 후진국 독재자의 행태를 답습했다는 것도 그렇다. 이런 행태가 실제 있었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파산자란 공격에 앞서 도덕적 파탄자란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라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은 펄쩍 뛴다. 김경수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에게 전화를 건 적도, 노건호 씨에게 돈을 준 적도 없다”고 전면 부인한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 역시 “그 돈은 미국으로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부인한다.

진실 규명은 불가피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떠나서도 꼭 필요하다. 국민의 정신건강이 걸린 문제다.

관건은 증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면 전화통화 내역이 남아있을 것이고, 100만 달러 가방이 전달됐다면 누군가가 날랐을 것이다. 이 소통과 유통의 흔적을 검찰이 찾아내는지가 관건이다.

전자는 쉽지 않다. 통화기록이 남아있다 해도 송신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확정하기는 힘들다. 청와대 유선전화를 썼다면 그렇다. 문제는 후자다. 박연차 회장이 100달러짜리 지폐를 100개씩 묶은 100다발을 가방에 넣어 전달했다고 하니까 묵직하고 큼직한 가방이 손을 탔을 게 분명하다. 누가 들어 옮겼을까? 노건호 씨가 직접 들어 날랐을까?

눈길을 끈다. 검찰이 당시 권모 시애틀 총영사와 이모 노건호 씨 경호원을 불러 조사한 사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검찰은 개연성을 추적했을 것이다. 권모 당시 총영사는 몰라도 이모 경호원이 100만 달러 가방을 옮겼을 개연성을 점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얘기도 나오지 않는다. 소환 조사 사실만 보도될 뿐 이모 경호원 등이 어떤 진술을 했는지는 전혀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가정할 수밖에 없다. 두 가지 경우다. 이모 경호원 등이 검찰 앞에서 100만 달러 가방을 날랐다고 진술했으면 어떻게 될까?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똑같은 진술을 하면 어떻게 될까? 정반대로 이모 경호원 등이 돈 가방은 구경도 못 했다고 진술했으면 어떻게 될까?

전자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다치고 후자라면 검찰과 언론이 다치는 걸까? 맞지만 틀리다. 도덕적 차원에서 보면 이런 규정이 성립되지만 사법적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가 않다. 시애틀에서 100만 달러 가방이 전달됐어도, 이모 경호원 등이 직접 돈가방을 날랐거나 목격했어도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모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또 한 명의 인물, 권양숙 씨가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이 받았다고 했다. 받기는 받았는데 어디에 썼는지는 말 못한다고 했다. 권양숙 씨가 부산지검에 나가 이렇게 진술했다. 권양숙 씨가 이렇게 버티고 서 있으면 모든 게 치환된다. 설령 100만 달러 가방이 시애틀에서 전달됐다 해도 모든 게 설명된다. “빚 갚는 데 썼다”는 ‘고백’도, 대통령 전세기에 100만 달러 가방이 실린 것도 모두 권양숙 씨의 ‘작품’이 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뒤로 빠진다.

어찌 된 일일까? 사정이 이런데도 검찰은 단호하다. 권양숙 씨는 참고인일 뿐이라고 하고, 추가 소환 조사 계획은 없다고 한다. 다른 걸 쥐고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그게 뭘까?

▲사진=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 ⓒ사람 사는 세상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