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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말하자. 없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을 저지하기 위해 등원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지할 방법이 없다.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기로 작정하면,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작심하면 막을 재간이 없다.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옥쇄전략을 펴는 것이다. 지난해 말처럼 의원 수십 명이 등산용 자일로 몸을 친친 감은 채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과 같은 방법 말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한나라당이 어수룩하게 두 번 당할 리 없고, 김형오 의장이 자일의 매듭을 묶을 시간적 여유를 줄 리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미디어법 저지를 명분으로 등원을 결정했다. 등원을 결정함과 동시에 본회의장 앞 농성을 풀었다. 패착일까? 한나라당에게 처리 명분과 본회의장 진입로를 동시 헌상한 ‘본헤드플레이’일까?

이렇게 평하기는 어렵다. 정반대의 상황, 즉 등원을 거부하는 상태를 지속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처리 명분을 뺏고 본회의장 진입로를 틀어막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이 다른 명분, 즉 ‘파업 벌이는 야당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는 주장을 앞세워 일방 처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앞으로 넘어지나 뒤로 넘어지나 코가 깨지기는 마찬가지라면 코피라도 제대로 흘려보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 의사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면서 상황 변화를 유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처참하게 당해주자는 판단으로 이해하는 게 합당하다. 의사일정 지연전술을 통해 한나라당의 ‘독선’을 부각시키고 처참한 패배를 통해 한나라당의 ‘독판’을 각인시키자는 전략으로 이해하는 게 온당하다.

이렇게 보면 분명해진다. 민주당의 전략은 사전적 차원의 옥쇄가 아니라 사후적 차원의 옥쇄다. 국회의사당 내에서의 맞바람이 절대열세이기에 국회의사당 밖에서의 역풍을 기대하는 것이다. 의석이 아니라 여론으로 막판 뒤집기를 이루려는 것이다. 96년 노동법 날치기 이후의 역풍과 같은 대반전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떨까? 민주당의 이런 전략은 먹혀들 수 있을까?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당이 진정성을 갖고 저지에 나선다는 전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게 패배한다는 전제를 설정하면 관건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독주에 대한 국민의 인내심이다. 국민이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이명박 정부의 숱한 독주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독주를 집약해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재벌과 조중동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이다. 국민이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 지배를 여론시장 내의 미세 조정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여론시장의 판을 뒤흔드는 새판짜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방송의 위축에 대한 국민의 우려심이다. 국민이 방송의 위축을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위축 사례 가운데 하나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의 결정적 위기로 간주할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르지만 같은 얘기다. 몸통은 하나인 얘기다. ‘민주’라는 화두에 얽힌 문제다. ‘민주’ 구호에 미디어법 사례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문제다. 

▲사진=민주당이 12일 최고위원과 원내대표단,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갖고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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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라인이 설정됐다. 13일이다. “야당과 미디어법 내용 등에 관한 논의는 13일로 끝내고 이후에는 본회의 처리수순을 밟겠다”고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인 나경원 의원이 못박았다.

어떨까? 실제로 밀어붙일까?

전망이 대체로 같다. 또 하나의 쟁점법안인 비정규직법은 몰라도 미디어법은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론이 전망한다.

이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의 태도가 다르다는 점을 든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는 반면에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직권상정 명분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국회에서 ‘6월 표결처리’를 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만큼 김형오 의장이 직권상정 부담을 덜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근거로 드는 건 한나라당 내부 분위기다. 비정규직법 강행처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지만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소장 개혁파조차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물 건너간다고 말하는 점을 중시한다. 전열이 정비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분석을 그대로 받으니까 궁금해진다. 한나라당이 유독 미디어법에 대해 자신하는 이유가 뭘까?


힌트는 한나라당 원내 핵심당직자가 했다는 말에 숨어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으로 단독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미디어법의 경우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고 사회적 파장이 크지 않다는 얘기, 다시 말해 강행처리해도 후폭풍이 거세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해할 수 없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 여론은 미디어법 처리에 대해 부정적이다. 다소간의 수치 차이는 있지만 대세는 ‘강행처리 반대’, 나아가 ‘한나라당 미디어법 반대’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도대체 이렇게 낙관하는 근거가 뭘까?

두 마디 말이 있다. 나경원 의원과 진수희 의원의 말이다.

나경원 의원이 말했다. 6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미디어법에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진수희 의원이 말했다. 지난 6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여의도연구소의 미디어법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최고위원회의에 보고하면서 나경원 의원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디어법이 미디어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목적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40.4%,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45.9%였으며, 미디어법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대답한 비율이 43.6%, 명칭만 들어봤다는 응답이 49%였다고 보고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안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실상 미디어 법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지 이 조사에선 분간할 수 없지만 내 추측으로는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뭘 모른 채’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야당의 선전에 휘둘리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렇기에 ‘진리는 끝내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곱씹을 대목이 있다. 두 의원의 발언이 ‘국민 무시’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것과는 별개로 씹고 또 씹어야 할 다른 포인트가 있다.

두 의원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이 믿고 있다. 미디어법을 “언론장악이라는 프레임(나경원)”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록 그것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진수희)”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믿고 있다.

또 이런 얘기가 된다. 상당수 국민은 미디어법 처리를 ‘민주’의 시금석으로 이해한다.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되면, 그래서 재벌과 조중동에 방송 소유와 경영의 길을 터주면 여론이 독점되고 다양한 의사표현의 길은 막힌다고, 결국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린다고 우려한다.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다. 한나라당이 공언한 대로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면 어느 하나는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 ‘허구의 프레임’이 걷히면서 ‘민주주의 요구’가 한풀 꺾이든지, 아니면 근거없는 낙관에 빠졌던 한나라당이 ‘민주주의 요구’에 기름을 붓던지…. 아, 하나 더 있다. 비록 부차적이지만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린다. 강행처리 저지의 결기와 실천력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 또한 갈림길에 놓인다. 

예단은 하지 말자. 두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어느 경우가 현실화할 것이라고 섣부르게 내다보지는 말자.

현실은 여러 요인의 분자운동에 의해 움직인다. 미디어법 또한 그런 환경에 노출돼 있다. 비정규직법을 매개로 미디어법을 국민 시선에서 떼어놓은 한나라당의 ‘성공적인 전략’을 무시할 수 없고, 미디어법 처리를 ‘결사저지’하는 과정에서 보일 민주당의 ‘부서지는 모습’이 국민을 어떻게 움직일지 또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는 아직 전반전 종료 휘슬도 울리지 않은 상태다.

▲사진 = 국회 문방위 회의장 앞에서 농성하는 민주당 의원들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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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이전에 이미 엄마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엄마의 실종을 계기로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었음을 뻐아프게 깨닫는다.” - 정홍수, 「피에타, 그 영원한 귀환」,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1. ‘바보 엄마’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 이름 석자 뒤에 붙는 별명은 전투적이다. ‘승부사’라는 닉네임이 그렇고, 그 닉네임에 붙는 ‘냉철’ ‘뚝심’ 등의 수식어가 그렇다. 이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행적에 새겨진 이미지는 남성적이다.

하지만 다르다. 국민과의 접촉면에서 내보인 그의 면모는 사뭇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비해도 전혀 다르다. 대국민 접촉면에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비교 속에서 부각되는 그의 이미지는 (흔히 말하는) 여성적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다스런’ 사람이었다. 걸핏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열린우리당원과 국민에게 편지를 쓰던 사람, 품격을 팽개치고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던 사람, 때론 ‘내 편’을 지키기 위해 ‘네 편’에게 삿대질을 하던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어설픈 통기타 솜씨에 의지해 ‘상록수’를 멋없이 부르던 사람, 종교가 뭐냐는 추기경의 질문에 눈을 내리깔고 ‘나이롱’ 신자임을 고백하던 사람, 가슴이 답답하면 비서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우던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던한’ 사람이었다. 지난 행적을 꼬투리 잡아 공격을 가하던 검사에게 뒤끝을 보이지 않은 사람, 상대편이 ‘정신병자’ 운운해도 그냥 웃고만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 탓’이 국민 스포츠가 되었어도 천장 한 번 올려다보며 한숨만 내쉰 사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사람으로 비쳐졌다. 끌어안는 사람, 바로 ‘엄마’였다. 때론 그악스럽게, 때론 호들갑 떨면서, 그러면서도 가족을 챙겨주는, 그래서 그의 존재가 귀찮고 짜증나면서도 당연시됐던 ‘보통 엄마’였고 ‘바보 엄마’였다.

2. ‘모진 아버지’ 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은 ‘독선적인’ 사람이다. 자수성가 신화를 읊조리면서 자신의 경험과 사고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사람, 그렇게 일방적으로 부여한 정당성을 앞세워 순종을 강요하는 사람.

이명박 대통령은 ‘모진’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율로 다스리는 사람, 반항하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사람.

이명박 대통령은 ‘편애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가치에 대한 호오에 따라 애증을 여과없이 내보이는 사람, 직업과 성적에 따라 상벌을 엄연히 구분하는 사람.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사람으로 비친다. 내치는 사람, 바로 ‘아버지’다. 행여 온화한 모습을 보여도 그 뒤로 엄한 시선을 감춘 사람, 그러면서도 권위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 그는 ‘가부장’이고 ‘모진 아버지’다.

3. ‘모진 아버지’의 핍박과 ‘바보 엄마’의 설움

출발이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 같은 신화에 기대어 대통령이 된 사람들이다. 빈곤한 가정환경, 자수성가한 경력, 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였던 이력 등을 무기 삼아 대권을 손에 쥔 사람들이다.

과정도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혁’의 열망을 안고, 이명박 대통령은 ‘성장’의 기대를 안고 대통령이 됐지만 얼마 못가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통령 탓’을 ‘고스톱’에 필적할 만한 국민스포츠로 만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르다. 스타일이 다르고 이미지가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끌어안는 스타일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내치는 스타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 엄마’의 이미지로 남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모진 아버지’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민심을 ‘盧추모-反MB’로 흐르게 한 근원이다.

여기에 살아있는 권력의 무리한 수사와 죽은 권력의 인간적 고뇌가 ‘모진 아버지’의 핍박과 ‘바보 엄마’의 설움으로 묘사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민심의 저울 위로 올리게 한 것이다.

▶국민여론조사 - 검찰의 ‘노무현 수사’에 대해
‘검찰수사가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간 잘못은 없는지 그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60.0% : ‘법절차에 따른 정당한 검찰권 행사였으므로 별도의 책임규명은 불필요하다’ 34.7%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9년 5월 25일 조사

4.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에 대한 반발

움직이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저주를 퍼부은 사람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통분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정치인에 대한 정서를 바꾸지 않고 정치적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 이들은 상수다.

움직이는 건 부동층이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었다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사람들이 수시로 움직이면서 국면을 열고 정국을 좌우한다. 이들의 선택에 따라 국민 여론의 향배가 달라지고 정당 지지도가 춤을 춘다. 이들은 변수다. 캐스팅 보트권을 쥔 결정적 변수다.

이들은 이중적이다. 2008년엔 촛불을 들었고, 2009년엔 향불을 피웠지만 같은 해 벌어진 총선에선 뉴타운에 열광했고 용산참사에 냉담했다. 민주 의제엔 호응했지만 민중 의제엔 불응했다.

이들의 이중성은 하나의 가치에서 나온다. 바로 자유다. 이들은 극심한 경쟁체제에 순응하면서 능력을 키우려 하고 능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국가는 기회를 제공하고 통제를 제어하면 할 도리를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자유로운 이익추구’의 여건만 만들면 된다고 믿는다. 나머지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능력에 맡기면 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사회적 통제(교육과 부동산)에 반발했고 이명박 정부의 정치사회적 통제(표현의 자유)를 거부한다.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反MB’로 기운 것은 필연이다. ‘747’로 대변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 이데올로기가 ‘자유로운 이익추구’의 장을 열어줄 것이라던 믿음이 깨진 상태에서 광장 봉쇄로 상징되는 공안 회귀가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장마저 앗아간다고 판단하면서 이들은 불만을 키워왔다. ‘자유로운 이익추구’의 장이 줄어드는 상태에서 ‘이미 잡은 물고기’라고 여겼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장마저 위축되니까 반발한 것이다. 이들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상실과 퇴행을 결정적으로 확인하는 계기였다.

5. ‘모진 아버지’의 ‘엄마’ 되기

중도강화·친서민으로 집약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은 ‘엄마’ 되기다. ‘모진 아버지’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어진 엄마’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화장이요 이벤트다.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점을 보면 그렇다.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고 원주 마이스터고를 찾아 ‘엄마’의 손길을 연출하려고 한다.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엄마’의 눈길을 연출하려고 한다. 그곳에서 또 다시 ‘소싯적’을 자랑해 탈을 냈지만 아무튼 그렇게 시도한다.

‘무차별’을 강조하려는 점을 보면 그렇다. 떢복이집·슈퍼 주인과 담소를 나누고, 보육원의 아이를 들어올리고, 마이스터고 학생들과 ‘짬밥’을 푸는 모습을 통해 차별없는 애정을 강조하려고 한다. 능력·지위를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엄마’의 무차별적 사랑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 전에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시도한다.

‘보살핌’을 부각시키려는 점을 보면 그렇다. 사교육 근절을 다짐하고, 청년실업을 근심하는 모습을 통해 자애로운 보살핌을 부각시키려 한다.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무한대 사랑을 부각시키려 한다. 그 과정에서 학원심야교습 금지를 놓고 오락가락하면서 날림정책을 노출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시도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친서민은 청와대가 말하는 것처럼 ‘MB다움’의 회복이 아니다. 그건 ‘노무현스러움’의 모방이다.

6. ‘엄마’ 되기는 성공할까?

성공할 수 없다. 앞 다르고 뒤 다른 언행 때문만이 아니다. 부응할 수 없다. 부동층의 2가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자유로운 이익추구’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올려야 한다. 바닥에서 맴도는 경기를 끌어 올려 ‘자유로운 이익추구’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기약이 없다.

‘자유로운 의사표현’ 요구는 오히려 억압한다. 미디어법 처리를 강행하려 하고,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다그치고, 시국선언 한 전교조를 압수수색한다.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집토끼’인 보수층이 떠나간다. 그러면 ‘산토끼’를 잡아봤자 별무소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외길로 달린다. 이게 문제가 된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억압하는 행태가 ‘모진 아버지’의 ‘엄마’ 되기를 가로막는다. 회초리 든 손을 뒤로 숨긴 채 다른 한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인식케 한다.

▶국민여론조사 -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행보에 대해
‘기대 안돼’ 55% : ‘기대 돼’ 37%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9년 6월 29일 조사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날은 유동적이다. 민심은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反MB’ 정서가 2007년 대선과 같은 ‘반발성 투표행위’를 낳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개별적이란 게 문제다. ‘盧추모’도 ‘反MB’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맞춰져 있다는 게 문제다.

‘盧추모’ 정서가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지 않는다. 깜짝 반등은 반짝 효과였을 뿐이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다시 내려간다. 왜일까? 별개로 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별개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잊지 않는다. 2002년 대선 때 자기들이 뽑은 대선 후보를 제치고 정몽준 후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던 구 민주당의 행태를, 참여정부 때 당과 청와대가 분리돼 따로 놀았던 과정을,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거리를 뒀던 전력을, 그리고 지금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를 발전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목도했고 목도하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을 별개로 본다.

‘反MB’ 정서가 표심을 한나라당에서 이탈시킬 것이라고 보는 건 속단이다. 4.29재보선 때처럼 잠시 동안의, 부분적인 이탈은 나타날 수 있지만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이탈을 예단하기는 힘들다.

박근혜 전 대표가 버티고 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류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관계를 빚는 동렬의 정치인으로 대기하고 있다. 바로 이 박근혜 요인이 완충역할을 한다. 박근혜 요인이 ‘反MB’ 정서가 한나라당으로 확산되는 걸 차단하고, ‘反MB’의 반사이익이 민주당으로 흐르는 것을 막는다. 여차하면 한나라당이 이명박 대통령을 버림으로써 ‘反MB’ 정서로부터 탈출할 여지를 만든다.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그렇게 작용할 여지를 축적한다.

▶국민여론조사 - 대통령과 정당 지지도

                       4월 18일       5월 25일       6월 22일 
이명박               32.7%           27.4%          25.3%
한나라당            31.4%           21.5%          23.3%
민주당               13.0%           20.8%          20.7%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8. 그러면…

‘盧추모’는 ‘촛불’을 밝히지 않고, ‘反MB’는 탄핵 카드를 꺼내지 않는다. ‘盧추모’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걸 꺼리고 ‘反MB’가 파국상황을 부르는 걸 경계한다. 그 대신 개인적으로 행동한다. 개인적으로 검은 리본을 달고, 개인적으로 MB비판 댓글을 단다. 민주당에도, 진보정당에도 기대지 않는다.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주목할 현상이다. 민심이 ‘민주주의 위기’를 우려하고 ‘소통’ 요구를 쏟아내면서도 反MB 민주전선 구축에 나서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민심이 말하는 건 이런 것이다.

국민에게 ‘민주’는 채권이다. 돌려받지 못한, 떼일 위기에 놓인 채권이다. 그래서 돌려받으려 한다. 하지만 돌려받지 못한다. 사채업자처럼 조폭을 동원할 게 아니기에 어떤 방도를 강구해야 할지 몰라 발을 구르고 있다. ‘싸움의 기술’을 알려달라고, ‘투쟁의 비전’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채권을 돌려받는다고 해서 이문이 남는 건 아니다. 채권을 돌려받아봤자 본전치기일 뿐이다. 국민은 플러스알파를 원한다. 본전치기에 이문내기를 추가하려고 한다. 약탈하는 것도 싫지만 빼앗기는 것도 싫기에 성장하면서도 분배를 이루는 전략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략과 방도를 국민 앞에 내놔야 한다. ‘반대하는 민주’가 아니라 ‘제시하는 민주’, ‘구호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생활상의 진보’를 내놔야 한다.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니 진보니 하는 구분법도, 민주당이니 진보정당이니 하는 구별법도 뛰어넘어야 한다. 민주당에서 ‘진보’의 여지를 끌어내고, 진보정당에서 ‘구체’의 내용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민주당은 대장간에 가 담금질을 받아야 하고, 진보정당은 저잣거리에 나가 세상물정을 배워야 한다.

연대는 고안되는 것도, 기획되는 것도 아니다. 저잣거리에서 국민들에 의해 담금질 되면서 숙성되는 것, 밑에서 끊임없이 부대끼면서 ‘민주’의 실천력을 배가시키고 ‘진보’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것, 이게 바로 연대다.

▶국민여론조사 - ‘2010 지방선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가 나온다면 지지할 의향이 있는가’
‘지지하겠다’ 48.1% : ‘지지하지 않겠다’ 36.4%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9년 6월 22일 조사

※이 글은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를 맞아 ‘광장’ ‘코리아연구원’ 등이 오늘(7일) 오전 9시 30분부터 공동개최하는 ‘노무현의 시대정신과 그 과제’ 심포지엄의 발표문으로,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쇠고기 협상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지지율을 까먹었고 자신의 주요 정책을 민심 무마카드로 내놨다. 집권 초기의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530만 표 차 당선이란 프라이드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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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겨온 자산을 잃었다. 바로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실용’의 핵심은 ‘초월’이다. 이념의 대립구도를 초월해 오로지 성과와 이익을 강조하는 효율주의다. 본인과 그 주변이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이 ‘실용’이 무너졌다. 쇠고기 협상에 ‘졸속’ ‘굴욕’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실용’의 거품은 터졌다. ‘실용’은 고사하고 ‘실력’조차 의심 받는 처지에 몰려 버렸다.

설상가상이다. 여기에 또 한 번, 아니 결정적으로 ‘실용’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꺼내들었지만 결국 자신을 덫에 가둬놓을 자충수다. 강경진압이다.

잘 둘러볼 필요가 있다. 여권이 며칠 동안 주장해온 바와 강경진압은 호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추가협상 후 민심이 촛불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촛불집회는 이제 극렬 좌파·반미 전문이 주도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장담했다.

여권이 정말 이렇게 확신했다면 강경진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조금만 참으면 자멸할 집회였다.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 다수가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집회였다. 그런 집회에 물대포를 쐈고 소화기를 뿌렸으며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그렇게 강경진압 함으로써 자기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자기 손으로 ‘실용정부’ 간판을 떼어내고 ‘실력행사’ 담화문을 갖다 붙였다.

왜였을까? 조금만 참으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둘러 강수를 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자멸’의 길을 유도하지 않고 정치적·도덕적으로 부담이 큰 ‘진압’의 길을 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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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여권의 ‘촛불집회 변질’ 주장이 올가미가 돼 버렸다.

그런 주장이 강성 우파에 명분을 주고 말았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면 두고 볼 게 뭐가 있냐고, 당연히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에 기름칠을 해 버렸다. 촛불집회장에 극렬 좌파·반미 전문만 남았다면 당연히 ‘비타협적으로’ 맞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우파의 대결논리가 득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은 갇혀 버렸다. 좌우 이념을 초월하기는커녕 우파, 그것도 강성 우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촛불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강성 우파의 목소리에 눌려버렸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진압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 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렇게 진압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미몽이다.

‘착각’과 ‘미몽’ 반대편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립지대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도덕적 사안 때문에 중립성향의 국민이 이탈한다. 여느 사안보다 탄력성이 작은 도덕 문제 때문에 중립지대의 국민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탄력성이 작다는 건 한 번 마음 먹으면 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회귀 현상이 발생한다. 최루액과 각목을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빚어진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느냐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논란이 조성할 지형이 중요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형성되면 흡수한다. 이념공세를 흡수해 버린다. 그게 과거 독재시절 확인한 원리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자명하다. 소수화다. 이명박 정부가 소수화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조리 장악하고 의회마저 석권했다 하더라도 고립된 섬이 된다. 민심의 바다 한켠에 유폐된 무인도가 된다. 그와 함께 ‘실용’엔 용도폐기 딱지가 붙여진다.

반박 소지가 있는 두 문제를 마저 짚고 마무리하자.

하나. 왜 단정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변질된 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하는 게 오히려 국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그 한 예가 강경진압의 맞은편에서 ‘극렬 저항’하는 사람들의 면모다. 이들이 극렬 좌파·반미 전문의 전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택배기사와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극렬저항’한 사람은 택배기사였고 ‘강경진압’에 팔이 부러진 사람은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둘. 성격 규정이 잘못 됐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모호한 ‘자화자찬’에 불과했다고, 이명박 정부의 본체는 본래 우파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우파 본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실용 변질’로 표현한 이유가 있다. ‘변질’이 ‘본색’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게 그 이유다.

▲사진 제공=프레시안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