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야당이 4대강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일도, 정부여당이 대폭 양보하는 일도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야당의 힘이 너무 약했고, 정부여당의 고집이 너무 셌다.

이렇게 보면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흔하디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정부여당은 실리를 얻고 야당은 명분을 얻는 선에서 끝날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화하지는 말자. 여야 모두 ‘셈셈’이라는 단순 계산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각각 손에 하나씩 쥐긴 했지만 크기는 다르다.

사실 강행처리 그 자체는 특별한 주목거리가 아니다. 이건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벌어졌던 일이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강행처리 자체가 아니라 그 시점이다. ‘거사일’ 8일이 갖는 의미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예산 처리시한인 12월 2일에 맞춘 것도 아니고, 2010년 마지막 날에 임박한 것도 아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설정한 시점, 즉 정기국회 종료일에 맞췄을 뿐이다.

이 때문에 임의성이 부각된다. 강행처리 행태를 통해 정부여당의 일방성이 부각될 뿐만 아니라 강행처리 사유의 임의성 또한 부각된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예산안 강행처리가 “국민을 위한 정의”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국민은 ‘대통령을 향한 정성’으로 간주하기 십상이다.

더불어 불가피성은 약해진다. ‘새해가 코앞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을 여지를 스스로 없애버렸고, 현실론에 경도된 국민의 양해를 얻을 소지도 스스로 없애버렸다. 국민 뇌리에 박힌 독선, 독주 이미지를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독주마저 트랙에서 벗어나는 모습까지 연출한 것이다.

결국 한나라당이 손에 쥔 실리, 즉 ‘돈’은 악성이다. 적금 탄 돈이 아니라 언제든 채권 회수에 들어갈 수 있는 대출금이다.

물론 야당이 손에 쥔 명분, 즉 ‘투쟁거리’ 또한 양성이 아니다. 그건 ‘투쟁거리’일 뿐이지 ‘투쟁성과’가 아니다. 야당이 이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발판이 될 수도 있고 족쇄도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그냥 하루 이틀 ‘규탄’하다가 나 몰라라 흩어지면 족쇄가 된다. 만날 당하기만 할 뿐 끝장 한 번 보지 못하는 약체정당이란 이미지를 다시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개연성은 충분하다. 연말연초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 내려가 눈도장 찍어야 하는 시기, 그래서 대오를 유지하기가 쉽잖다. 엄동설한의 서울광장에 의원들을 불러 모아 ‘으쌰으쌰’ 하기가 쉽잖다.

‘대국민 홍보전을 위한 산개투쟁’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쉽잖다. 이미 목도했다. 미디어법이 강행처리 된 후 민주당이 그랬다. 대국민 홍보전을 위해 산개투쟁을 벌이겠다며 한두 군데 돌아다니다 입을 씻고 팔을 접었다.

어차피 정부여당의 강행처리는 상수다. 새해 예산안 말고도 한미FTA 비준안이 줄 서 있기 때문에 또 한 번의 몸싸움은 예정돼 있는 것과 진배없다. 변수는 야당의 대처다. 야당이 어떻게 ‘아웃복싱’을 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결과가 달라진다.

예산안 강행처리 이후의 야당 투쟁은 이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끝내기 수순’이 아니라 ‘전초전’ 차원에서, ‘근육 풀기’가 아니라 ‘맷집 키우기’ 차원에서 야당의 ‘향후 투쟁’을 바라 봐야 한다.

▲사진=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 장면 ⓒ연합뉴스

Posted by '토씨'


청와대 안팎에서 얘기가 돌았단다.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을 홍보수석에 기용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직후부터 홍보수석에 언론인(출신)을 기용한다는 얘기가 광범위하게 돌았단다.

그럴 만했다. 이미 내정된 김희정 대변인이 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이니까 구색을 맞추려면 홍보수석에는 언론인(출신)을 기용하는 게 무난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언론인(출신) 가운데 어떤 언론인(출신)을 기용하느냐가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세계일보’가 오늘 보도한 게 있다. 청와대가 “종편과 관련 없는 방송계 인사로 한다는 콘셉트”를 설정한 끝에 홍상표 YTN 경영담당 상무를 기용했다는 내용이다. 

눈 여겨 볼 보도다. 홍상표 홍보수석 내정자의 전력-황우석 박사 사태 때의 ‘청부 취재’ 전력과 ‘돌발영상’ 삭제 행적-과는 별도로 챙겨야 할 시사점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콘셉트’에는 그들의 난감한 처지가 묻어있다. 종편 따내기 경쟁에 뛰어든 조중동을 의식하는 청와대의 노심,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려는 청와대의 초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실제가 그렇다. 청와대가 조중동 가운데 일부에만 종편을 허가하면 나머지 일부가 들고 일어설 게 분명하다. 가뜩이나 권력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이른바 ‘우리 편 신문’마저 등을 돌리면 정치적 타격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원하는 모든 곳에 종편을 내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러면 수익이 나지 않아 모두가 망한다는 걸 세상이 다 알고 조중동도 다 안다. 조중동 가운데 일부가 한 곳에만 종편을 허가해야 한다는 언론학계 일각의 주장을 대서특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그 한 곳이 우리 회사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짙게 깔고 말이다.

청와대가 이래도 욕 먹고 저래도 욕 먹는 상황에서 홍보수석에 종편과 이해관계가 긴밀히 맞물린 특정 신문사 출신을 앉히면 괜한 오해를 산다. 종편이 선정되기 전부터 정치적 오해를 다발로 살 수 있다. 다른 곳이 아닌 조중동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떨어지려는 것이다. 백로를 자처하면서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청와대가 진짜로 종편 선정에 개입하지 않아도, 본래대로 방송통신위의 결정을 지켜보고 존중해도 피할 수 없다. 종편 선정 이후 초래될 정치적 논란과 반목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데가 아니라 조중동부터 청와대의 ‘중립적 태도’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홍보수석의 출신배경 이전에 방송통신위원장과 대통령의 특수한 관계를 중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종편 선정에서 탈락한 신문사가 화풀이 겸 종편선정사 견제 차원에서 정치적 논란을 지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청와대가 자초한 화이다. 괜히 미디어법을 손 대 불러들인 화이다. 그냥 감당해야 한다. 홍보수석 한 자리로 식히고 잠재울 화이기에 그냥 감당해야 한다. 

▲사진=청와대의 프레스센터 격인 춘추관 ⓒ청와대 홈페이지 l

Posted by '토씨'


묻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세종시 문제 외에 다른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운 적이 있었나? 공천ㆍ인사 같은 정치 요인 외에 정책 요인을 갖고 정면대결을 불사한 적이 있었나?

없거나 약하다. 본인은 지난 16일 친박계 초선 의원 8명을 만나 미디어법이나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서도 할 말 다 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건 그의 주장일 뿐이다. 다른 주장도 있다. 미디어법은 틀었다가 유턴했고, 쇠고기 수입 문제는 원칙론, 양비론을 펴는 데 그쳤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사실도 있다. 4대강 문제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짚는 이유가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과거가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를 점치는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전망한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로 이명박 대통령이 조기에 레임덕에 빠져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세종시 수정안 부결을 통해 수적 열세를 절감했기에 국정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런 전망엔 전제가 깔려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현실, 즉 수적 열세가 지속되고 강화될 것이란 전제,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가 수적 압박의 선봉에 설 것이란 전제다.

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디어법과 쇠고기 수입 문제, 그리고 4대강 사업에 대해 보여 온 박근혜 전 대표의 태도만이 근거는 아니다. 하나 더 있다. 친박계 초선 의원 8명과의 만남에서 추가한 그의 말 한 마디다. 그가 그랬다. 당 대표 출마 요구에 대해 “당 대표를 맡아 정책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면 또 다시 친이-친박 갈등으로 비칠 것”이라고 대답했다.

명백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당장,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생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 ‘광 팔’ 기회를 모색할지언정 정면 대결을 불사하면서 ‘대박 아니면 쪽박’ 베팅을 할 생각은 현재로선 없다.

그럴 만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부결에 앞장서 정치적 위상을 재확인하고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고는 하나 마냥 이득만 챙긴 건 아니다. 세종시 수정에 찬성했던 보수파 다수의 눈화살을 맞아야 하는 처지에 빠지기도 했다. 지방선거 패배 후 보수파 내에서 당의 화합, 나아가 보수연합 주장이 나오는 판에 보수정권의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일에 앞장설  이유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 입장에서 지금은 관리할 때이지 결판 낼 때가 아니다.

물론 박근혜 전 대표의 계획대로 세상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현안이 불거졌다. 쇠고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전시작전권 전환시점 연기와 한미FTA 실무협상을 합의하는 바람에 쇠고기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정부는 전작권과 FTA는 별개라고, FTA와 쇠고기 역시 별개라고 주장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오히려 상당수 국민은 쇠고기 수입 확대가 FTA 비준의 조건이고, FTA가 전작권의 조건이라는 지적에 고개 끄덕인다. 이런 여론이 강화되면 극심해진다. 2008년 때처럼 촛불이 밝혀질지는 미지수지만 논란이 극심해질 것만은 분명하다.

박근혜 전 대표로선 시험이요 시련이다. 전작권과 FTA와 쇠고기를 갈라서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험이요 양시양비론을 구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련이다. 그의 어록 후렴구가 된 “국민이 원하는대로”를 읊조리면 그의 이념적 정체성이 도마 위에 오름과 동시에 집토끼가 반발할 테고 ‘수입 개방 지지’를 주창하면 그의 정치적 외연이 좁혀지면서 산토끼가 펄쩍 뛸 것이다.

여기까지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정면대결을 피하며 거리두기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시한은 여기까지다. 이 시한을 넘기면 박근혜 전 대표는 입장을 정해야 한다. ‘가’든 ‘부’든 똑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특유의 '묵언전술'로 소나기를 피하려 해도 여론이 풀어주지 않을 것이기에 한 마디 해야 한다.

그에 따라 갈릴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심화될 수도 있고 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은 미우나 고우나, 좋든 싫든 ‘국정의 동반자’요 ‘정치 파트너’다.

▲사진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2008년 1월 회동장면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는 잡았다가 놓친 물고기다. 자로 잴 필요도 없고 어탁으로 뜰 필요도 없는, 마음속의 월척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세종시가 그런 것이다.

그에겐 ‘확신’이었다. “국정의 효율을 생각하든,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든, 통일 후 미래를 생각하든”(14일 대통령 대국민 연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게 세종시 수정안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어항에 담을 수 있다고 믿은 월척이었다. “전국적으로 보면 찬성이 50%가 넘는 (게)”(16일 총리 국회 답변) 세종시 수정안이었다.

이러니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묵직한 손맛이 전율을 타고 전해졌는데 입맛을 다셔야 하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그래서 친이계 의원들을 앞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려는 것이다. 비록 손에서 놔줘야 하지만 그래도 기록에 남기기 위해 ‘인증샷’이라도 찍으려 하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찬반 의원 명단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기 전에 잡기 월척을 잡을 뻔했다는 ‘흔적’을 역사에 남기려 하는 것이다. 마음속의 월척이었던 만큼 흔적 또한 그에 걸맞은 크기로 남기려 하는 것이다.

이해한다. 이것저것 다 빼고 인지상정 차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쉬움만큼이나 클 야속함까지 이해한다. 국민의 50%가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는데도 국회 의석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야당과 친박을 향한 야속함과 섭섭함까지 이해한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역지사지 차원에서 보면 그 다음은 이해할 수 없다.


‘확신’은 논외로 하자. 저마다 갖고 있는 ‘확신’을 앞세우면 평행선을 달릴 테니까. 정운찬 총리뿐만 아니라 여권 인사 다수가 합창한 ‘찬성률 50%’만 갖고 이야기 하자.

‘찬성률 50%’를 상회하는 건 세종시 수정안만이 아니다. 과거의 미디어법도 그랬고 지금의 4대강 사업도 그렇다. 50% 정도가 아니라 70%, 80% 가까운 국민이 반대했고 반대한다. 그런데도 밀어붙였고 밀어붙인다.

야당의 마음이 어떨까? 언론ㆍ환경단체, 나아가 국민의 마음은 어떨까? 국회 의석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여당과 이명박 대통령을 보는 마음이 어떨까? 같거나 더 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갖는 답답함만큼이나 속 터질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갖는 섭섭함만큼이나 속이 상할 것이다. 50%가 아니라 70%, 89%의 반대율을 보이는 사안조차도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여권의 행태를 보면서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알까? 이런 국민의 마음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헤아릴까?

▲사진=국회 국토해양위가 22일 전체회의를 열어 세종시 수정법안을 부결시키고 있다.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아이러니’란 말이 딱 맞다. ‘이율배반’이란 말도 딱 맞다. 청와대의 세종시 국민투표 검토 방침이 그렇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그랬단다. “중대결단을 할 수 있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그랬단다. “대의민주주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국민투표(를) 선택할 수 있다”고. 추리자면 이런 말이 된다.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중대결단, 즉 국민투표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말.

‘아이러니’라고 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 입으로 제 꼬리를 물기에 그렇다. 제 손으로 제 뺨을 때리기에 그렇다.

밀어붙일 때마다 읊조렸다. 감세법안, 미디어법, 4대강사업 등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밀어붙일 때마다 그들은 대의민주주의 원리를 들먹였다. 국회는 국민 대의기관이라고, 그 대의기관에서 다수결의 원리에 의해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우성을 묵살했다.

그 때 그들의 논리에 의지하면 세종시 수정안 표류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반영이자 다수결 원리의 투영이다. 그 때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대의기관의 다수가 미디어법을 찬성한 것이 정당하듯, 대의기관의 다수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것 또한 정당하다.

헌데 청와대는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애용하던 원리를 이제와선 썩은 칼자루 대하듯 한다. 그들이 신봉하는 ‘수의 논리’가 아무 이상 없이 작동하고 있는데도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개탄한다.

견강부회다. 청와대가 개탄하는 ‘작동불능상태’는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빚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야당은 빨리 내라고 한다. 정부가 마련한 세종시 수정 관련 법률안들을 국회에 빨리 제출해 빨리 결론짓자고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대의민주주의에 회부하지 않는다. 세종시 수정 법률안을 제출하지 않은 채 한나라당의 집안싸움에 목매달고 있다. 이렇게 대의민주주의를 피해가기 위해 암중모색하면서 입으론 대의민주주의 작동불능상태를 개탄한다.

독선이다. 청와대가 국민투표를 운운하는 데에는 선험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세종시 원안은 글렀고 수정안은 옳다는 전제다. 청와대가 이중태도를 보이는 데에도 선험적인 전제가 깔려있다. 세종시 원안은 글렀고 감세법안과 미디어법은 옳다는 전제다. 바로 이런 전제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대의기관의 권능과 다수결의 원리를 옹호하고 다른 때에는 대의민주주의의 작동불능상태를 개탄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청와대의 이율배반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일관성을 뽑아내려면 한 가지 방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단어의 뜻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들이 언급하는 ‘대의’를 ‘민심 대변’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 대리’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래야 풀린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사이에서 오락가락, 이율배반 행태를 거듭하며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는 청와대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집' 말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2월 25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가진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

Posted by '토씨'


설마 아닐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찬성 여론이 60% 이상 나오면 “그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호영 특임장관의 발언이 여론조사 실시를 직접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러면 정당이 있을 필요가 없고 국회가 있을 필요가 없다.

다르게 해석하지 말자. 주호영 장관의 발언은 ‘여론 설득 후 박근혜 압박’이란 청와대와 정부의 전략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고 받아들이자. 본인도 그렇게 해명했다. 60% 운운한 것은 일반론이었다고,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했다.

자, 이러면 모든 게 해결된 걸까? 주호영 장관의 발언은 뻔한 일반론으로 머리속에서 지워도 되는 걸까? 그렇지가 않다. 주호영 장관의 발언엔 놓쳐서는 안 될 대원칙이 깔려있다.

주호영 장관은 소통과 순응의 미덕을 강조했다. “(세종시) 수정안이 제시된 이후에도 정치권의 논란이 계속 된다면 각계각층의 국민대표들이 참가하는 만민공동회 방식의 끝장토론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서, 그리고 “수정안에 대한 찬성이 많게 되면 정치권도 무작정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호영 장관은 공론의 중요성을, 다수결의 원리를 강조했다. 결정 이전엔 개방적인 소통을 꾀하고 결정단계에선 순응의 미덕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주 좋은 말이다. 버릴 것 하나 없는 금과옥조와도 같은 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주호영 장관의 원리와 원칙이 정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것일텐데 왜 청와대와 정부는 헌신짝 보듯 하는지, 왜 트위스트 행보를 보이는지 의아하다.

세종시와 쌍벽을 이루는 논쟁사안인 4대강 사업에 대해서, 그리고 아직 여진이 가시지 않은 미디어법에 대해서 청와대와 정부는 개방적 소통을 다 하지 않는다. ‘만민공동회 방식의 끝장토론’을 강구하지 않고, 국민 여론에 겸허히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반대 여론이 60%를 상회하는데도 ‘국민이 뭘 몰라서’ 또는 ‘오해’라면서 밀어붙인다. 무소의 뿔을 뾰족이 세운 뒤 반대 여론을 치받고 앞으로만 내달린다.

의아함을 풀 수 있는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차이를 살피는 것이다. 여론지형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지형의 차이다. 4대강 사업과 미디어법은 박근혜 전 대표가 결사반대하지 않는 사안이라는 점, 그래서 국민 여론이 어떻든 국회 내에서의 밀어붙이기가 가능한 반면 세종시 수정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다. 이런 정치지형의 차이가 국민여론에 대한 강조의 강도를 규정했다.

이렇게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면서도 변치 않는 게 하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번 작정한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밀어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본성은 때와 상황과 사안을 막론하고 고정불변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세종시 터파기 공사현장 ⓒ행복도시건설청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이제는 되물을 때가 됐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기에 그 누구도 쉬 묻지 않던 걸 꺼낼 때가 됐다. 이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정말 완성됐는가?

불행하게도 부정의 증좌를 여기저기서 발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쉼없이 터져 나오는 사례들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조롱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눈이 충혈 되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보고 들었던 표현의 자유 문제는 거론치 않겠다. 이것 말고도 사례는 수두룩하다.

사법부의 최고 직위에 있는 신영철 대법관이 재판에 개입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절 촛불시위 참가자에 대한 재판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임의로 사건을 배정했고 판사들을 압박했다.

사법부의 한 축인 헌법재판소는 본론 따로 결론 따로 식의 해괴한 결정을 내렸다. 대리투표가 자행되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하면서 탄생한 법률의 효력을 인정하는 망측한 판단을 내렸다.

입법부의 최대 정당인 한나라당은 대리투표를 저질렀고 일사부재의 원칙을 희롱했다. 야당 의원들의 심의 표결권한을 침해하면서 날치기 장면을 연출했다.

행정부에 속한 검찰은 널뛰기 수사를 벌였다. ‘노무현 수사’ 때는 이 잡듯 뒤지더니 이명박 대통령 사돈 기업 수사 때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국가를 이루는 입법-사법-행정부의 실태가 이렇다. 그들 모두 헌법적 가치를 부정한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조롱하고, 재판관의 독립된 양심을 침해하고, 공정한 법집행을 방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망적인 건 교정과 자정의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판 개입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대법관이란 사람은 물러나지 않는다.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위배 사실이 공인됐는데도 원내1당은 야당 탓을 한다. 부실 수사의 증거가 속속 제시되는데도 검찰총장은 수사를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았다. 불가역적인 상태로 굳어지지 않았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원칙의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여전히 힘의 바람에 휘둘리고 있다.

그래도 국민은 믿는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다고, 침해된 민생과 민권을 국가 제도를 통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 다수 국민의 여론을 따르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면서도 제도권을 박차고 나가 힘으로 순종을 강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가시스템에 따라, 절차에 따라 민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러니다. 국가의 민주화는 땅을 기는데 국민의 민주의식은 하늘을 난다. 국가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리는데 국민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갇혀있다. 

그리고 흩날린다. 아이러니 현상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길게 토해낸 한숨이 하늘과 땅 사이를 맴돈다. 

▲사진=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1만배를 하고 있는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