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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현상’에 대한 언론의 진단은 단편적이다. 일말은 보여주지만 전체는 보여주지 못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박찬종’이란 잣대다. 1995년 서울시장에 나왔던 박찬종 씨의 경우에 ‘안철수 현상’을 대입하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초반 돌풍을 이어가다 막판에 고꾸라진 박찬종 씨와 비슷한 궤적을 밟을지 아닐지를 전망하는 것이다. 언론의 이런 분석틀은 ‘안철수 현상’을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데서 기인한다.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 차원으로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찬종 씨의 이른바 ‘무균질’ 정치와 안철수 씨의 ‘반한나라 비민주’를 정치적 측면에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잘 볼 필요가 있다. ‘제3후보’는 박찬종 씨만 있었던 게 아니다. 멀리로는 정주영 씨와 그의 아들 정몽준 씨가 있었고, 가까이로는 문국현 씨가 있었다. 이들도 ‘제3후보’였다. 박찬종 씨 못잖게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제3후보’였다.

이들은 박찬종 씨와 달랐다. 박찬종 씨가 ‘무균질’ 정치를 내세워 정치개혁에 올인하다시피 한 반면 이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에 방점을 찍었다. 정주영·정몽준 씨의 ‘성장담론’을, 문국현 씨는 ‘공존담론’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달랐지만 정치 아이콘이 아니라 경제 아이콘을 앞세워 제3의 유권자층을 흡수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안철수 씨에게도 이런 측면이 있다. 그가 안철수연구소를 세워 국내 굴지의 IT업체로 키웠다는 점, 아울러 그가 끊임없이 기업 생태계를 언급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존을 주장해왔다는 점이 그렇다. 안철수 씨는 대중들에게 정치적 성향 이전에 성공신화와 경제철학을 먼저 내보였고, 이를 통해 대중의 호응을 끌어낸 인물이다.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점을 같이 봐야 한다. ‘새 정치’에 대한 열망 못잖게 ‘새 경제’에 대한 열망이 같이 녹아있는 점을 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박찬종’ 잣대는 반쪽짜리다. 그 잣대는 ‘새 정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 경제’에 대한 대중의 열망까지는 재지 못한다. 따라서 첨가해야 한다. ‘박찬종’ 잣대 외에 또 하나의 잣대를 추가해야 한다. 바로 ‘문국현’ 잣대다. 닮아있다. 안철수 씨가 얘기하는 기업 생태계는 공정한 시장을 구축해 공존기반을 다지려 한다는 점에서 문국현 씨의 경제철학과 일맥상통한다.

그럼 어떨까? ‘박찬종’ 잣대에다가 ‘문국현’ 잣대까지 추가해 놓고 재면 안철수 씨의 미래에 대해 어떤 진단이 내려질까?

얼핏 봐선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 같다. 박찬종 씨나 문국현 씨나 결국은 기성 정치질서의 벽을 넘지 못했으니까 '안철수 현상' 역시 ‘반짝’ 현상에 그치고 말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환경’을 고려하면 달리 볼 여지가 충분하다.

정치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박찬종 씨가 대선에 도전한 1992년, 그리고 서울시장에 출마한 1995년은 모두 3김정치 시대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김영삼·김대중 씨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다시 말해 고정 지지층의 충성도가 대단히 높았던 때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그 때에 비해서는 고정 지지층의 충성도가 약화된 상태다. 정치적 틈이 더 벌어져 있는 것이다.

경제적 환경 또한 크게 바뀌었다. 문국현 씨가 출마했던 2007년 대선에서 대중은 성장담론을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쏠렸다. 문국현 씨의 공존담론에 호응을 보인 사람들은 전체 투표자의 5.8%, 상대적 진보층만이 표를 던졌을 뿐 제3의 유권자층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그의 성장담론에 쏠렸다. 하지만 파탄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장담론은 집권 4년 동안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더불어 확산되고 있다. 나눔없는 성장이 갖는 허상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면서 대중의 정서가 급속히 공정과 분배 담론으로 쏠리고 있다. 문국현 씨가 뛰었던 2007년에 비해 공존담론이 주효할 수 있는 바탕이 더 튼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씨가 박찬종 씨나 문국현 씨와는 다른 정치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나머지 하나의 요인만 해결한다면 그렇다. 제3후보, 제3세력이 갖는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대중적 의구심만 떨쳐내면 그렇다.

이 문제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는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씨가 박원순 씨와 ‘개인적’ 후보 단일화에 나선다고 한다. 이를 통해 ‘범야권’에 몸을 실을 공산이 크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마지막 장벽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철수 씨가 서울시장 후보가 되던 안 되던 '안철수 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씨가 "응징" 대상으로 지목한 한나라당이 격분해 검증을 벼른다고 하니까 시련이 없지 않겠지만 어차피 이는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 검증파고만 무사히 넘는다면 '안철수 현상'은 사그러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다만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따라 '폭발'과 '잠복'의 차이만 보일 뿐.

▲사진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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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 대표 본인만 당 정체성 훼손이 아니라고 보는 게 문제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인 원내 활동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700~800여명의 당원들이 최근 순식간에 당을 떠났는가? 문 대표가 답을 해야 한다. 문 대표와 의견이 다르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 게 현재의 창조한국당이다. 당 쇄신? 문 대표가 당무를 지배하지 않는 것이다.”

창조한국당과 자유선진당의 이른바 ‘창자연대’에 반발해 지난 7일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국민은행 들머리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는 김서진 창조한국당 최고위원을 12일 만났다.

그의 앞에는 ‘그만두고 싶을 때, 딱 한걸음만 더!’라는 부제가 붙은 ‘그래도 계속 가라’는 제목의 책이 놓여있었다. 대선 직후부터 내홍이 끊이지 않았던 창조한국당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이 반영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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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최고위원은 단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통해 “‘사람중심 희망정치’라는 새로운 정치실험을 주장했던 문국현 대표는 부패하고 무능한 구태정치를 답습하는 작금의 행태에 대해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며, 이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문 대표 개인이 자유선진당에 합류하는 것이 정치적 도리”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폭거’, ‘희대의 꼼수’, ‘정치적 코미디.’ 기자회견문에 담긴 표현이다. 그러면서 그는 ‘문국현 대표, 당신이 떠나라’고 일갈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의 전제라는 ‘쓰리 포인트’(쇠고기, 대운하, 중소기업) 외에 다른 것은 상관없다는 말인가. 더구나 쇠고기 청문회를 둘러싼 자유선진당의 태도는 이마저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공기업 재벌 분양정책’(그는 공기업 민영화를 이렇게 불렀다) 등 창조한국당의 지향과 벗어난 기조를 자유선진당이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정당의 핵심은 자신의 가치와 노선을 국민으로부터 평가 받는 것인데 이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김 최고위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이미 기정사실이 됐다. 되돌릴 길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해체’를 주장한다.

“‘창자연대’ 해체를 위한 당내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단순히 원내교섭단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식투쟁은 그동안 계속 흔들려온 당 정체성 확립 요구라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언제까지 단식을 계속할지는 뜻을 같이하는 당원 동지들과 논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지금은 기한 없이 진행할 생각이다.”

당 내외에서는 김 최고위원의 단식투쟁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 최고위원의 위치를 망각한 당 대표 흔들기, 또는 민주당과의 합당을 바라는 탈당파그룹의 당 훔치기라는 비난이 그것이다.

“나는 ‘사람중심 희망정치’라는 창조한국당의 기조와 이를 위해 처절하게 일해 온 당원들을 잊을 수가 없다. 부분 정책연대는 자유선진당이든 민주노동당이든 필요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다른 문제다. 정책정당을 표방한 이상 편법과 변칙이 아닌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민주당과의 합당? 명확히 지역정당인 민주당과 어떻게 한다는 것 역시 정도가 아니지 않는가.”

쇄신 방향을 묻자 그는 자괴감을 토로하며 말을 이어갔다.

“당 대표의 절대적 권위에 의한 사당화가 근본적 문제다. 지난달 12일 전당대회를 통해 집단지도체제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실제로 당을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당 대표와 이를 둘러싼 분위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된다.

이번 경우에도 나중에 중앙위 회의를 통해 추인은 됐지만 기습적인 ‘창자연대’ 직전까지 어떤 타협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보고를 요청해도 구두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다양한 의견에 대한 논의과정과 합의가 정당의 기본적 메커니즘임에도 창당 이후 당헌 당규에 의거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

결국 핵심은 문국현 대표다. 김 최고위원이 단식 기자회견문에 적시한 것처럼 문 대표가 당을 떠나는 것만이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고 창조한국당이 사는 길이 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진정성이 담긴 정치에 목말라 하고 있다.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볼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다소 강한 표현을 썼다. 지금도 문 대표가 생각을 바꾸길 희망한다. 하지만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킨다면 떠나야 하는 게 맞다. 당의 정체성에 반한다면 나를 비롯해 누구나 마찬가지다.”

59년 광주 태생인 김서진 창조한국당 최고위원은 경실련 기획실장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거쳐 지난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후보로 강북구 갑에 출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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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 정치는 생물이라더니 그 말 그대로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 손을 잡았다. 대선 때 현 민주당의 후보 단일화 요청을 뿌리친 그가 엉뚱하게도 원조 보수를 자처하는 이회창 총재와 동거를 선언했다.

가치 평가는 뒤로 미루자. 그렇게 ‘가치’를 강조하던 문 대표가,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부르짖던 문 대표가 어떻게 원조 보수, 그것도 차떼기 원조와 동거를 결심하느냐는 말이 적잖게 나온다. 새로운 정치를 외치던 그가 어떻게 지역주의에 몸을 실은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도 미루자.

생물의 기본 속성은 환경 적응이고, 그 무엇보다 앞서는 논리는 생존 논리다. 공동 교섭단체를 구성하면 돈 가뭄을 해결하고 소수정당의 설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데 ‘공자님 말씀’이 대수겠는가. 그냥 그렇다고 치자.

먼저 이 점을 짚자. 그렇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까?

‘용불용설’에 몸을 맡긴 문국현

문 대표가 채택한 생존 이론은 ‘용불용설’이다. 쓰면 진화하고 안 쓰면 퇴화한다는 생물학의 기본 이론을 채택했다. 의석 세 개의 용도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연한 선택 같다. 의석 세 개로 ‘나홀로’를 고수하는 건 어리석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원 오브 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의석수가 과반수에서 한두 개 모자란다면 모를까 한나라당과 친박세력이 절대 다수를 점하는 18대 국회에서 ‘3’이란 숫자는 하잘 것 없다.

미래 투자가치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3개의 의석이 30개가 되고, 30개의 의석이 당 지지율 30%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이 앙다물고 고난의 행군을 감수해 보겠지만 현실은 녹녹치가 않다. 미디어에 의존하는 작금의 정치구조에서 비교섭단체는 화면발을 세울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문 대표는 CEO 출신다운 선택을 했다. 복리 이자를 주는 투자처를 찾았다. 복리 이자 뿐만 아니라 인센티브까지 얹어줄 자유선진당을 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영속적이라는 보장이 없다. 고수익엔 고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이게 정글과 시장의 공통된 속성이다. 문 대표라고 해서 이 자연법칙을 피해갈 수 없다. 항구적인 고수익을 장담할 수 없다.

친박세력의 복당이 모색되고 있다. 일괄과 선별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 어차피 복당은 기정사실이 되다시피 했다. 이 움직임이 실현되면 문국현-이회창 연합의 가치는 반감된다.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여지가 원천적으로 박탈된다.

물론 다른 상황이 있긴 하다. 정치가 항상 머릿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지지율과 정당의 지지율이 표의 작동원리를 규정하기도 한다. 의석수가 아무리 많아도 민심이 등을 돌리면 정치 기반은 약화되고 정책 추진력은 떨어진다. 그에 반비례해 야당은 반사이익을 챙기고 정치 기반을 강화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원리가 작동한다. 반사이익이 고르게 분배되는 게 아니다. 반사이익을 챙기는 쪽은 ‘선명야당’이지 ‘잡탕야당’이 아니다. 잡탕 교섭단체는 기껏해야 ‘개평’ 정도나 챙길 뿐이다.

고수익을 향유하는 쪽은 이회창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더 큰 상황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지율 반등에 성공하지 못하면, 한나라당이 의정으로 민심을 달래지 못하면, 그래서 보수세력에 정치적 위기가 닥치면 세력을 재편하고 지형을 달리 짤 수 있다. 대선 때 거대정당 열린우리당이 소수정당 구민주당이나 신생정당 창조한국당에 손을 벌린 것과 같은 이치다.

격발제는 이미 갖춰져 있다. 한나라당이 만지작거리는 개헌이 그것이다.

만에 하나,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문 대표가 상종가를 칠 수 있을까? 아니다. 상종가를 치는 쪽은 문 대표가 아니라 이회창 총재다. 이 총재는 느긋한 입장에서 문 대표를 용도폐기할 수도 있고, 서열을 강요할 수도 있다.

문 대표가 택할 대처법은 따로 없다. 갈라서거나 묻어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서 미뤄놨던 ‘문국현의 가치’가 부상한다. 문 대표가 어떤 대처를 하든 그의 ‘가치’는 훼손되게 돼 있다. 문 대표는 스스로 "좌우를 넘나드는 창조적 연대"라고 했지만 그건 그만의 생각이다. 오히려 좌도 우도 아닌 무척추 이미지로 비치기 십상이다.

확연히 드러난다. 문 대표와 이 총재의 동거 성격이 다르다. 이 총재는 생활비만 내놓는 동거이지만 문 대표는 인생을 거는 동거다. 이 총재에게 공동 교섭단체는 일시적 안식처 또는 정치적 도약대이지만 문 대표에게는 가진 돈을 올인 해야 하는 카지노다.

이렇게 정리할 만하다. 문국현 대표가 CEO의 기질을 발휘했는지 몰라도 단수가 그렇게 높은 건 아니다. 대기업 회장의 셈법을 구사한 게 아니라 구멍가게 사장의 주먹구구를 보였다는 얘기다. 장기 투자를 한 게 아니라 목전의 이익에 급급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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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 말한 게 아니다. 그래서 새로울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꾸준히 빠지는데 민주당 지지율이 반비례해서 오르지 않는다. 오르긴 오르는데 굼벵이가 낮은 포복으로 등산하듯 오른다.

궁금한 건 이유였다. 견제론이 급부상했는데도 민주당이 그 열매를 따먹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얼마 전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던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요 며칠의 상황이 말끔하게 정리해준다.

대운하 쟁점, 누가 만들었나?

대운하가 총선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국 115개 대학 2466명의 교수들이 지난 25일 '한반도대운하를 반대하는 전국교수모임'을 만들었고 한 교수는 대운하에 반대하는 노래까지 만들어 열창을 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어제는 SBS가 국토해양부의 대운하 관련 보고서를 공개했다. 대운하 추진계획이 없다던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내년 4월에 착공한다는 일정을 제시한 보고서다.

파문은 커지고 여론은 술렁이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하는 게 없다. 그냥 얹혀가려고만 한다. 여론이 술렁이면 우리는 대운하를 반대한다고 표명하고, 파문이 일면 왜 한나라당 총선공약에 대운하가 빠졌느냐고 따지는 게 전부다.

10년 집권여당의 내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교수들의 대운하 반대논리를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반대논리도 없고, 언론사의 발품에 필적할만한 조사활동도 보여주지 못한다. 게다가 의지조차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당 분란으로 내상을 심하게 입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까지 나서 대운하 전도사 이재오 후보와 '한판 붙자'고 하고, 심상정·고진화 후보 등이 '대운하 반대 연대'를 선언하는데 민주당은 헐렁한 이벤트조차 기획할 줄 모른다.

이러니 길 수밖에 없다. 척추가 없으니 곧추 서지 못한다. '잘 하겠다'고만 읊조릴 뿐 '어떻게 잘 할 것인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주판알만 튕긴다. 친박연대와 무소속연대가 한나라당 표를 잠식하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며 표수를 계산한다.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유권자는 '견제야당'을 부르짖는 민주당을 보면서 견제심리를 발동한다. 너희들은 뭐가 다르냐고 반문한다. 이게 이유다. 민주당 지지율이 맴맴 도는, 또는 감질나게 기어오르는 이유가 이것이다.

'견제야당' 주장에 역견제심리 발동

견제하고 싶은데 믿고 맡길 세력이 없다. 발 뻗고 쉴 정치적 거처가 없다. 방황은 필연이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방황한다.

총선 투표율이 50%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민주당이 견제세력을 결집하지 못하니 한나라당 지지층이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의무' 투표심리는 비례해서 줄어든다. 민주당이 견제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니 과거의 지지층이 '열성'을 보일 까닭이 없다. '해봤자' 투표심리가 비례해서 늘어난다.

딱 그만큼이다. 개혁공천을 부르짖던 민주당이 나눠먹기 공천으로 소단원의 막을 내린 것과 같다. 견제를 부르짖었지만 당위적 주장을 절박한 요구로 끌어올리지 못한다. 민주당의 '깜냥'은 딱 그만큼이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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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는 '반토막 정치'를 하고 있다.

수치가 그렇다. 대선 때 두 자리 수 득표율을 자신했지만 결과는 5.8%로 반토막이 났다. 대선 이후 창조한국당의 지지율은 2.2%(한국사회여론연구소 1월 15일 조사결과)로 문국현 후보의 대선 득표율을 절반 넘게 까먹었다.

당내 사정도 그렇다. 창조한국당을 지탱하는 두 바퀴 가운데 하나인 '정치인 그룹'이 들썩거리고 있다. 김갑수 대변인은 이미 탈당했고 김영춘·정범구 최고위원도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이 실제로 발걸음을 뗀다면 창조한국당에는 '비정치인 그룹'만 남게 된다.

마이너스 정치이자 밀어내기 정치다. '좀 더 많은 지지'와 '좀 더 많은 세력'을 지향하는 정치의 속성에 비춰보면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왜일까? 문국현 대표는, 창조한국당은 왜 '비정치적인' 길을 걷는 것일까?

질문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걷는 게 아니라 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인은 발버둥치지만 시대가, 상황이, 유권자가 그리 떠미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선 득표율이나 당 지지율 모두 원한다고 올라가고 돌아선다고 내려가는 게 아니란 점을 고려하면 이런 얘기가 성립할 법도 하다.

하지만 아니다. 대선 득표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 지지율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최근의 당내 사정도 그렇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당내에서 파열음이 새어 나왔고, 최근에는 아예 대놓고 욕하고 있다. '정치인 그룹'에서 문국현 대표 측근의 행동이 문제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국현 대표는 말이 없다. '정치인 그룹'과 '비정치인 그룹'으로 갈려, 또는 '정치인'과 '측근'으로 갈려 총선 전략을 놓고 싸우고 있는데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문제가 된 '대선자금 용처'에 대해선 측근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조사를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보면 창조한국당의 '반토막 정치''는 문국현 대표 본인에게서 비롯된다고 판정해도 무방하다.

물론 문국현 대표가 아예 말을 안 한 건 아니다. 다보스 포럼 참석차 스위스에 가서 말했다.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실험이 부도위기에 처했다는 보도를 듣고 있다"며 "CEO인 대표를 몰아내고 부도를 내는 것은 주주인 당원들 몫"이라고 했다. 자신은 아직 공식적인 CEO가 아니라면서 "CEO로 선택해주면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문국현 대표의 말을 곱씹어도 오진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확진에 한 발 더 다가선다. 문제의 핵심은 역시 문국현 대표다.

문국현 대표의 말은 참으로 묘하다. 자신이 엄연히 대표를 맡고 있는데도 한 발 뺀 채 말한다. '부도 위기의' 당 상황을 제3자적 관점에서 얘기하고, 대선 때 자신을 중심으로 당이 창당되고 운영된 게 엄연한 사실인데도 "아직 공식적인 CEO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무책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 하지만 자제할 필요가 있다. 개인 재산 수십 억원을 쏟아부은 당이다. 자칭 '아시아 최고 경영자' 자리를 내놓고 뛰어든 정치판이다. 반 년도 안 된 정치 실험만으로 손을 털기에는 아쉬움이 짙게 남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다.

그래서다. 표면을 보고 판정을 내리는 건 섣부른 일일 수 있다. 일단 유보하고 문국현 대표의 심드렁한 태도 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인지도 모른다. 대선 때 정동영 후보와의 단일화를 단호하게 거부한 그다. 총선을 앞두고 통합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는 당내 인사들에게 "그러려면 당을 나가라"고 말한 그다.

순혈주의를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이질적 요소를 드러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당세가 위축되는 한이 있더라도 '문국현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가다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게 '새' 정치라고 확신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혀 딴판의 주장을 하기도 한다. 총선에서 243개 지역구 모든 곳에 후보를 내겠다고 하고, 500만표 이상을 득표할 수 있다고도 하고, 제1야당을 자신하기도 한다.

호응하지 않는다. 이런 확대 지향의 정치는 순혈주의, 가치 중심의 소수정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문국현 대표의 심드렁한 태도 이면을 구성하는 요소는 이처럼 이중적이다. 두 개의 요소가 하나의 질서 속에 맞물리는 게 아니라 각각의 요소가 서로를 배척한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이게 정답인지 모른다. 문국현 대표의 방황이 창조한국당의 혼란으로 외화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위기다. 리더십의 위기이고, 당 정체성의 위기다.

문국현 대표의 방황이 심모원려의 왜곡된 표현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그게 아니라 좌고우면, 갈팡질팡의 소산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새' 정치인의 아마추어리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해야 한다. 갈 길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문국현 대표는 "주주인 당원들이 CEO로 뽑아주면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건 본말이 전도된 얘기다. 창조한국당의 위기는 문국현 대표에게 리더 권한을 부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문국현 대표의 리더십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토씨'

발걸음이 잽싸다. 대선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각 정파가 총선 모드로 돌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일찌감치 '독자 창당'을 선언했다. 정동영 후보는 이인제 후보와의 단일화로 유턴했고, 문국현 후보는 제 갈 길을 가겠노라고 천명했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한나라당도 '이회창법'을 발의하면서 마지막 옥죄기에 나섰다.

나쁘게 볼 건 아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생물이 생존본능에 입각해 자연적응 노력을 하는 걸 어떻게 탓하겠는가.

문제는 귀추다. 각 정파의 자연적응 노력이 진화 결실을 맺을지, 도태의 나락에 빠질지가 관심사다. 먼저 '자연상태'부터 확인하자.

총선은 내년 4월 9일에 열린다. 이게 문제다. 누가 당선되든 대선 이후의 아젠다를 독점하게 돼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를 통해 발표될 국가운영대계가 국민을 휘감는다.

검증은 없다. 비전의 선포이고 계획의 공표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믿거나 혹은 안 믿거나 둘 중 하나에 쏠릴 수밖에 없다.

총선의 고유기능, 즉 정권심판 기능은 애초에 기대할 바가 못 된다. 쟁점은 오직 한 가지, 밀어줄 것이냐, 견제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자연상태'는 이처럼 척박하다. 대선에서 패배한 정파는 당선자의 프레임에 갇혀 총선을 치러야 한다. 스포츠로 치자면 '어웨이 경기'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정동영 후보 쪽의 전략은 간명하다. 민주당과의 재결합으로 지역 거점을 마련하고, 이미 발의한 'BBK특검법'과 'BBK검사 탄핵소추안'으로 전선을 구축하려 한다. 지역 거점으로 '기본'을 확보하고 이명박 견제구도로 '플러스 알파'를 배가하려는 전략이다.

명징하긴 한데 단순하다. '도' 아니면 '모'다. 잘하면 원내 2당의 지위를 얻을 수 있지만 잘못하면 갇힌다. 지역주의에 갇히고 이명박 프레임에 갇히기 딱 좋다.

'개'나 '걸'일 수도 있다. 협공을 당하기 십상이다. 지역주의 회귀는 지지층의 반발을, 이명박 프레임은 반대층의 역공을 살 수 있다. 이러면 결과는 하나다. 지리멸렬이다.

문국현 후보 쪽은 적잖이 기대한다. 문국현 후보의 '가치'를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갖고 설파하면 국민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총선은 그래서 중요하다. 대선에서 끌어올리지 못한 인지도를 제고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문국현 후보 쪽의 희망 섞인 기대를 냉정한 진단으로 바꾸려면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총선은 대선과 성격이 다르다. 대선이 인물 경쟁력에 크게 좌우되는 반면 총선은 정당 투표 경향이 강하다.

바로 이게 문제다.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은 극히 미미한 존재다. 의석이라곤 단 한 석 밖에 없는 군소정당에 불과하다. 대통령 당선자 견제심리가 발동될수록 사표 방지심리가 동반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다. 사표 방지심리가 성하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군소정당에 미친다.

문국현 후보의 '가치'도 그렇다. 형식적으론 대선에서 심판 받은 가치다. 이미 효용이 다 한 가치보다 대통령 당선자의 '살아있는 가치'에 유권자의 눈길이 더 쏠릴 가능성이 크다.

이회창 후보 쪽의 전략은 '강소 정당'이다. 작지만 강한 정당을 건설하는 비결은 '분점'이다. 지역을 분점하고, 국회를 분점하는 것이다. 국민중심당의 힘을 빌어 충청지역을 잠식하고, 이회창 후보의 경쟁력으로 영남권 일부를 흡수하면 이 구상은 실현된다.

효과는 클 수 있다. 대통령 당선자를 배출한 새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캐스팅 보트권을 행사할 수 있고, 새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안정적 의정운영을 위한 파트너십을 구가할 수 있다.

갈 길은 분명한데 장애물이 적잖다. 충청에선 JP가 나섰고 영남은 박근혜 전 대표가 터 잡고 있다. '안보'를 장대 삼이 뛰어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높다.

이명박 후보 쪽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련만 그렇지도 않다. 이른바 '이회창법'을 발의해 이회창 후보 쪽의 숨통을 끊으려 한다.

컨셉은 철저히 '차단'에 맞춰져 있다. 이회창 후보를 경선에 불복하고 '이적' 행위를 일삼은 사람으로 묘사해 총선 입지를 아예 도려내려 한다. 행여 들썩일지도 모를 박근혜계 의원들을 '이회창법'으로 누르려 한다.

자연스럽게 도출됐다. 각 정파의 생존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이합집산이다.

만에 하나 박근혜계 의원들이 이회창 후보 쪽으로 전향하면 어떻게 될까? 만에 하나 통합신당 의원들이 문국현 후보 쪽으로 이동하면 어떻게 될까? 물어볼 것도 없다. 어느 한 정파의 총선 전략은 치명타를 입는다.

그럼 이합집산의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이명박-이회창 후보 경계선에 서 있는 박근혜계 의원들의 동인은 두 개다. 이명박 후보 당선 여부와 당내 숙청 여부다. 그가 당선된다면 굳이 자리를 뜰 이유가 없다. 얼마 만에 맛보는 여당 프리미엄인가? 꿀을 마다 할 벌은 없다.

하지만 당내 숙청이 이뤄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선기간 내내, 그리고 경선 후 상당기간 동안 이명박 후보 쪽과 대립각을 세워온 사이다. 일부에 국한되더라도 '손보기'가 감행된다면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탈출해야 한다.

정동영-문국현 후보 사이에 낀 의원들은 누구인가? 호남 출신은 아니다. 가장 크게 동요할 의원들은 수도권 출신들이다. 수도권 내 지역연고 투표성향은 많이 약화됐다. 통합신당이 지역주의로 회귀해 총선에 임한다고 해서 당선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구태'라는 비난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일부 의원들은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공천싸움까지 벌여야 한다. 그럴 바에는 문국현 후보 쪽으로 넘어가 명분을 찾는 게 더 합당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금배지'를 걸어야 한다. 번민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 판이다.

얼추 정리가 끝났다. 내년 총선은 '더 많은 의석'을 건 싸움이 아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게임이다. 생존게임이란 얘기다. 그런데 공교롭다. 이 정파의 생존게임을 좌우하는 요소가 또 다른 생존논리다. 의원 개개인의 생존본능이 총선의 자연상태를 규정한다.

※지금까지의 분석은 '공학'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당장의 성공과 패배보다 더 중요한 '가치'와 '노선'의 정립 여부다. 능력이 닿는 한에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별도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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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결렬로 제길 가는 문국현 ⓒ문국현 홈페이지

자해 수준이 아니다. 자폭에 가깝다.

절박할수록 기대가 커지고,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깊어진다. 정동영-문국현 후보 단일화 결렬은 '행여나' 하는 지지층의 기대감에 재를 뿌렸고, '그럼 그렇지'라는 상처감에 소금을 뿌렸다.

'필연'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럿 있었다. 검찰의 BBK 수사결과는 후보 단일화가 약동할 공간을 없애버렸다. 두 후보는 겨우 남은 코딱지만한 제 논에 먼저 물을 대려했다. 선거법의 형평성 원칙은 완고했다.

실망하고 낙담할수록 모든 게 미워지는 법이다. 뭘 탓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쓸데없다. 열거한 요소들은 제마다 항변거리를 갖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는 '요행수'에 불과하다. 단일화의 속성이 거래라면 아전인수식 협상은 필수전략이다. 특정 후보·정당에 더 많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형평성 원칙은 국민과 정치권이 사전에 다짐한 철칙이다.

근본원인은 따로 있다. 2002년과 비교하면 대번에 알 수 있다. 후보 단일화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노무현 후보는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한 발 더 나가 영남표 일부를 끌어왔지만 정동영 후보는 그러지 못했다.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호남표 일부마저 빼앗겨 버렸다.

더 큰 차이는 단일화 파트너에 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몽준 후보는 중도표와 부동표를 응집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표 일부를 잠식했다. 문국현 후보는 아니다. 노무현 정권에 실망해 이명박 후보로 건너가거나 부동 상태가 돼 버린 표를 끌어오지 못했다. 본인은 범여권 표를 잠식했고, 그 기세마저 이회창 후보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애초부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후보 단일화가 아니었다. 파이를 키우는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파이를 나눠먹는 후보 단일화였다.

그런데도 완고했다. 문국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완고했고, 지금도 그렇다. 왜일까?

꿈이 다르다. 정몽준 후보는 일신의 영광, 즉 '차기'가 목표였지만 문국현 후보는 조직의 영광, 즉 범여권 세력의 물갈이가 목표다. 정몽준 후보가 대선 투표일 하루 전에 단일화 파기를 선언한 결정적 이유가 "정동영도 있고 추미애도 있다"는 노무현 후보의 명동 유세였다는 점이 반증한다. 문국현 후보가 애초부터 세력 통합을 일축한 사실이 웅변한다.

두 후보가 품었던 꿈의 크기가 그들의 보폭을 규정했다. 정몽준 후보는 조직의 저항을 물리칠 이유가 분명했고, 그래서 조직을 키우지 않았다. 문국현 후보는 조직을 키워야 하는 이유가 절실했고, 그래서 조직의 요구를 저버릴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두 후보의 귀착점은 같다. 정몽준 후보는 단일화 파기로 갈라섰고, 문국현 후보는 단일화 결렬로 제 길을 가고 있다.

5년이다. 정몽준 후보는 5년 뒤에 자신이 비수를 꽂았던 한나라당에 몸을 의탁했다. 그럼 문국현 후보의 5년 후는?

물론 정몽준 후보와 같은 미래를 점치는 사람은 없다. 관심사는 문국현 후보의 꿈이 성사되느냐 하는 점이다. 길은 두 갈래다. 범여권 세력을 대체할 새 세력을 구축하는 길과, 후보 단일화 협상 결렬로 비수를 꽂은 범여권 세력에 흡수되는 길이다.

5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내년, 아니 몇 달만 기다리면 알게 된다. 총선이 모든 걸 밝혀줄 것이니까.

아, 깜빡했다. 이 점을 확인하고 마무리하자. 후보 단일화 결렬에 대해 언론은 단서를 단다. '사실상' 결렬이다. '완전' 결렬이 아니다. 정동영-문국현 두 후보 가운데 한 명이 '결단'을 내리는 반전 시나리오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박하다. 정동영 후보가 마음을 비우기엔 도열한 금배지 수가 너무 많다. 문국현 후보가 마음을 비우기엔 그의 꿈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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