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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어긋났다. 본과 말, 주요와 부차를 뒤집어버렸다.

그가 그랬다. KBS와의 특별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제20차 라디오연설’에서 미디어법을 언급하면서 그랬다. 방송은 장악될 수 없다고 했고, 미디어산업 선진화가 긴요하다고 했다.

늘 듣던 얘기였다. 정부가 강조했고 한나라당이 주장했던 얘기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얘기였다. 그래서 식상했다.

정작 듣고 싶었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정말 듣고 싶었던 얘기는 미디어법 개정 취지가 아니라 미디어법 처리 절차였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국회의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는 않겠다”고 끊었다.

대통령의 말이 본말을 뒤집은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청난 논란과 극심한 갈등을 야기한 게 바로 미디어법 처리 절차였다. 정치권을 일순간 마비상태로 몰아넣은 게 바로 미디어법 강행 처리였다. (백 번 양보해 미디어법 개정 취지를 받아들인다 해도) 그 취지를 갉아먹은 게 바로 재투표와 대리투표 논란이었다.

말해야 했다. 국정을 최종 책임 지는 대통령이라면 국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법 처리 절차에 대해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 법률안 공포권과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입장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좋게 해석할 여지는 없다. 방송법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제기된 상태이니까, 헌법재판소가 심리할 테니까, 대통령으로서 심리에 영향을 미칠 발언을 해서는 안 되니까 라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게 헤아리고자 했다면 이런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미디어법 처리 절차에 대해 말을) 하지는 않지만, 너무 늦으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말은 하면 안 됐다. 그렇게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우회적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선 안 됐다. 헌재의 심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언급을 하면 안 됐다. 하지만 했다. 하지 않겠다면서 했다.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익히 짐작했던 일이다. 청와대가 미디어법의 관전자가 아니라 지휘자에 가까웠다는 일반적 분석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은 놀라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다.

하지만 KBS는 다르다. 놀랍고 신기하다.


특별대담에 나선 KBS가 물었다. 미디어법의 처리 절차를 물은 게 아니라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동안 논란이 심했던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절차의 적법성을 가지고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만, 야당에서는 언론장악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이 기회에 대통령께서 갖고 계신 우리 언론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놀랍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이 짧은 질문에 녹아있다. 언론이라면, 시의성에 목메는 언론이라면 ‘구문’은 뒤로 미루고 ‘신문’을 앞세우는 게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언론이라면, 정권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라면 ‘총론’의 밋밋함을 뒤로 미루고 ‘각론’의 날을 벼리는 게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삼 확인한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본말전도 발언은 KBS의 본말전도 질문에 따른 것이었다. 미디어법 절차의 적법성을 가지고 논란이 '있지만' 대놓고, 각을 세워 묻지 않음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이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우회적으로 말하는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사진=라디오연설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비정규직법 논의의 핵심은 ‘예측’이다. 이 법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몇 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되는지를 ‘예측’하고,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불경기가 언제쯤 가시는지를 ‘예측’한 다음에 방비책으로 호미를 선택할지 가래를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게 비정규직법 논의의 핵심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예단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70만 해고 대란’이 도래할지,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월 2∼3만 해고’에 그칠 것일지 예단할 수 없다. 예측의 근거가 희박하고 고용시장의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단할 수 없을뿐더러 양당의 주장을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평가할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의 최대 근거로 삼는 불경기 지속기간에 대해서는 ‘엿장수 맘대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선 국민 앞에서 펼친 행보부터가 ‘엿장수 맘대로’다. 한나라당이 애초 설정한 유예기간은 최대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의원총회에서 3년으로 정리했고, 다시 여야3당과 양대 노총이 참여한 5인 연석회의에 와서는 2년으로 줄였다.

들어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경기전망을 들어보지 못했고, 한나라당의 기업경영환경 진단을 들어보지 못했다. 도대체 각각의 유예기간이 어떤 경기 ‘예측’에 근거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듣기는 했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장밋빛 전망을 듣기는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 지난 15일 라디오연설에서 “지난 1분기에 OECD 국가 중 우리 한국만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이루었다”며 희미하게나마 터널 끝에 불빛이 보인다고 말했고, 지난 29일 라디오연설에서 “OECD와 IMF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거들었다. 지난 5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분기에 경제지표가 호전되면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바닥을 쳤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며 “올 4분기나 내년 1분기에는 좋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교롭다. 정부의 이런 장밋빛 ‘예측’을 경청하고 나니까 한나라당의 음울한 ‘예측’이 생뚱맞다. 정부는 경기가 갈수록 좋아진다는데 왜 유독 한나라당만 ‘2년 고행’을 강요하는지 아리송하다.

이런 점 때문일까?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장관 모두 토를 달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표 호전에도 불구하고 “실제 회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고, 윤증현 장관은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을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말은 틀리지 않다. 지표경기와 실물경기에 시차가 있고, 성장과 고용이 따로 노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바닥을 쳤다고 경기가 ‘V'형으로 급반등하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 ‘만사불여튼튼’의 태세를 갖춘 걸까?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앞날에 대비하는 걸까? 그래서 오늘자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는데도 유예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걸까?

맞는 것 같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짧은 앞날이 아니라 주∼욱 지속되는 긴 앞날을 위해서 심모원려한 것 같다. 윤증현 장관이 한 말에 따르면 그렇다.

그가 그랬다. 지난 15일 한 강연에 나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외환위기 때 다소 미흡했던 과제로 이번에도 못하면 우리 경제가 도약하지 못할 것"이라며 “임금·근로시간을 더욱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노사정 협의를 거쳐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노동유연성을 강구해야 한다는 윤증현 장관의 말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 주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이 된다.

▲사진=한나라당 의원들이 6월 30일 비정규직법 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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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두 말을 비교하자. 이 작업을 끝내야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대운하 사업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 - 2008년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
▲(대운하 사업을) 내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 - 2009년 6월 29일 라디오연설

다른가? 두 말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가?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호평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를 특정함으로써 대운하 포기 의사를 좀 더 분명히 밝혔다고 상찬한다. 그러니까 이제 대운하 논란은 접자고 당부한다.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읽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로 한정함으로써 “임기 후”의 여지를 확보한 측면이 있고,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내 믿음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대운하 사업의 정당성을 확인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련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그러지 않았는가. “의구심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말라고…. ‘꼬투리 잡기’로 욕먹을 수 있으니까 관두련다. 하지만 이 점만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의했다. 대운하 사업의 핵심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의를 확장해 적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일만 하지 않으면 4대강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든 그건 대운하 사업이 아닌 게 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운하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일은 ’의구심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쟁을 일삼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에서 보를 필요 이상으로 건설해도, 그 보의 숫자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도 그건 단순한 물놀이용 보여서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에서 바닥을 필요 이상으로 긁어내도 그건 강의 수량을 풍부히 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며 이걸 선박 운항과 연결 짓는 건 오해 또는 의구심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라고 믿고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 피해액을 마구 부풀려도 그건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단순 계산착오라고 믿고 입 닫아야 한다. 행여 입을 열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다시 말해 대운하와 연결 짓는 건 피해야 한다.

어떤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합리적 의심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제압당하는, 기적과도 같은 전도현상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설정한 프레임에 객관적 사실이 갇히는, 기막힌 왜곡현상을 목도할 수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4대강 사업이 ‘언터처블’이 되지 현상을 체감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잘못됐다. 주어가 잘못됐고 시제가 잘못됐다. 합리적 의심이 “제압당하는” 중도 아니고, 객관적 사실이 “갇히는” 중도 아니며, 4대강 사업이 “언터처블이 되는” 중도 아니다. 그건 단지 청와대가 뇌리 속에서 그리는 현재진행형의 희망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일각, 즉 합리적 의심과 객관적 사실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 가운데 일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장단 삼아 춤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라디오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이 말 그대로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마디를 하니까 열 마디를 쏟아낸다. 이명박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을 언급하니까 정치권과 언론이 해석 반 제언 반으로 갖가지 처방전을 쏟아낸다. 인적 쇄신(청와대와 내각 개편)을 점치고, 정치시스템 개편(개헌과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을 예상하고, 심지어 정계 개편(자유선진당과의 정책 연대나 통합)까지 전망한다.

부질없다. 현실성과 효과가 없어서 부질없고, 본질에서 비껴나서 부질없다. 정치권과 언론이 쏟아내는 처방전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을 언급한 바탕엔 국정쇄신 요구가 깔려있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민 요구를 아랑곳하지 않는 국정기조,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독선적 국정운영을 바꾸라는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근원적 처방”을 내놨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알 수 있다. 정치권과 언론이 쏟아낸 처방전이 왜 개살구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개헌과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은 현재의 정치시스템이 아니라 미래의 정치시스템과 관계된 문제다. 그래서 해당사항이 없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과는 궤가 다른 문제다.

자유선진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은 국정쇄신 요구를 거스르는, 퇴행적 모색이다. ‘독선’에 모터를 달아주자는 논리다.

그나마 주의 깊게 살필 수 있는 게 인적 쇄신인데 이 건 감질 난다. 국정의 중심, 즉 이명박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한 청와대 비서진을 대폭 물갈이해도, 내각을 조각 수준으로 갈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장관이나 수석은 이명박 대통령의 구령에 맞춰 도열하는 존재들이다.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고와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떠한 방편도 효험을 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변신' 만이 "근원적 처방"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말하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내 탓이오”라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은 채 “네 탓이오”만 연발한다.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는)” 민심을 탓하고,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권을 질책하며, “상대가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정쟁의” 정치문화를 개탄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내 덕이오”라는 말을 추가한다. 일자리 나누기와 희망근로로 일자리를 늘렸고,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확대와 대출만기 연장으로 자금난을 크게 해소시켰으며, 영세업자와 무점포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도 크게 늘렸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렇게 “서민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국민통합을 이루는 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위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을, 과정이야 어떻든 경제를 살리면 국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점을, (경제살리기)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굳게 다짐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고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다.

그런데도 평가하지 않는다. 정치권과 언론 모두 맥락은 제쳐놓은 채 파편 같은 말 한 마디에 매달린다. 국정 기조와 동의이음어인 이명박 대통령의 사고 기조에 대해 평가하지 않고, 나아가 스스로 내놓은 처방전의 정합성조차 검증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원망과 비판의 눈초리를 조금씩 풀면서 그 틈새로 기대와 흥미의 눈초리가 싹트도록 유도하고 있다. 별점을 매길 생각은 않고 ‘개봉박두’만 외치고 있다.

그 덕분에 이명박 대통령은 웃는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말한 것처럼 포장된 덕에 호흡을 가다듬는다. 국정쇄신 요구를 적절히 컨트롤하면서….

▲사진=라디오 연설을 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부질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기대하는 건 김치 국물 마시는 행위와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떡 줄 생각이 없다.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그랬다. “대통령 사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대통령 사과 요구에 대해 이렇게 잘랐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다. 오늘 아침 라디오 연설에서 민주당이 요구한 사과의 말, 그리고 자유선진당이 요구한 유감의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에게 짤막하게 위로의 말만 전한 뒤 북한 핵문제와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연설 내용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어렵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뻣뻣하게 나오는 이유를 살피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아일보’의 황호택 논설실장이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장 노무현스러운 죽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며 “사즉생으로 절벽 아래로 한 몸 던지면 자신이 일으켜 세워 보존해 가고자 했던 가치와 이념을 살려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승부수’로 이해한 것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과 국민장 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와 법치의 원칙을 여러 차례 포기했다"며 "노무현 측에서 제기한 주장들, 예컨대 수사가 정치보복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도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정당한 ‘법치’로 바라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에워싼 보수세력의 시각이 이렇다. ‘노무현 수사’는 지극히 정당한 법치다. ‘노무현 서거’는 지극히 정치적인 승부수다. 그래서 허용할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는 법치를 허무는 일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부수에 말리는 일이다.

벗어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보수세력의 시각에서 탈출할 수가 없다. 그러면 정권기반이 붕괴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을 위해 덕수궁 앞을 내주고, 영결식을 위해 서울광장을 열어준 일만 갖고도 맹비난하는 보수세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배신자, 겁쟁이, 장사꾼’이라고 비난하면서 ‘하야’를 입에 올리는 보수세력이다. 보수세력의 기류가 이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노무현 수사’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 마디 부연해야겠다. 강경 보수파의 목소리를 보수세력 전체의 시각으로 일반화하는 건 아닌지 마저 살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른바 온건 보수파로 분류할 수 있는 한나라당 내 소장파의 동태를 보면 그렇다. 이들은 아무 규정력이 없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시민 분향소에 나와 조문하지도 못했고 정부의 책임을 묻지도 못했다. 기껏 한다는 게 박희태 대표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일이다. 박희태 대표가 물러나야 국정 쇄신의 물꼬가 트인다면서 용퇴를 거론하는 게 전부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한다.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기대할 바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대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를 보면 안다.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촛불이 꺼진 후에 이른바 ‘MB본색’이 노골화됐다. 진정성이 스며있지 않은 사과는 그냥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다른 점을 보자. 보수세력의 시각에서 도출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이다.

실현될지 모른다. 민주당이 요구한 ‘노무현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여권이 받아들일지 모른다.

보수세력의 시각에 따르면 국정조사를 안 받을 이유가 없다. 비리가 있어서 수사했고, 혐의가 있어서 소환조사했다고 하지 않는가. 꿀릴 게 전혀 없다. 어쩌면 국정조사는 ‘노무현 수사’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실장이 한탄했던 현상, 즉 ‘피의자’ 노무현이 졸지에 ‘순교자’가 된 세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

때마침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검찰 수사과정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환영할 일이다.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다면 하나의 매듭을 풀 수 있다. 치졸한 정치보복과 정당한 법치라는.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두 주장을 저울에 올릴 수 있다. 검찰의 수사방식과 수사내용을 검증할 수 있다.

생산적이기만 하다면 그렇다. 지금까지 봐왔던 통과의례식 국정조사, 시간끌기식 국정조사의 병폐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

▲사진=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

1.
미국 코미디언들이 입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오바마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바마가 코미디언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오바마 스타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적이고 신중하고 우스갯소리도 별로 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잦은 말실수에 다소 ‘멍청한’ 이미지”의 부시와는 달리 오바마는 코미디언들에게 놀림감을 별로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낙담하는 건 아니랍니다. 미국 코미디언들은 오바마 대신 조지프 바이든 차기 부통령을 ‘밥’으로 삼으려 한다고 합니다. NBC 투나잇쇼의 제이 레노는 “신은 우리에게 바이든을 내려주셨다”고 자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이든은 장광설에 말실수가 많다고 하네요.

‘경향신문’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2.
그러고보니 미국 대선이 다시 떠오르네요. 제 철 만난 메뚜기처럼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던 코미디 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코미디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캐나다 퀘백 주의 유명 코미디언인 마르크 앙토앵 오데트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사칭’해 페일린에게 전화를 건 일이 있습니다. ‘멍청한’ 페일린이 ‘가짜 사르코지’ 앞에서 “저는 8년 안에 대통령이 될 것 같아요”라고 허풍을 떨다가 전세계적으로 망신을 산 일이 있습니다. 한국식 표현으로 하면 ‘낚인’ 것이죠.

3.
없습니다. 우리나라엔 저런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조폭과 바보가 활개 치는 프로그램은 많아도 정치인이 직접 출연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정치인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조롱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또한 없습니다.

겨우 있다는 게 성대모사입니다. 정치인의 목소리를 빌리는 것이 전부입니다. 목소리만 빌려오지 정치를 끌어오지는 못합니다. 정치인의 유명세를 빌리기만 할 뿐 정치행각을 도마 위에 올려놓지는 못합니다(이에 ‘근접’한 프로그램이 하나 있긴 합니다만 아직 ‘도달’했다고는 볼 수 없기에 여기선 얘기하지 않으렵니다).

그 연유는 모두가 다 압니다. 사이버 모욕죄를 만들려는 참입니다. 정치인 패러디 포스터를 만든 게 정치문제화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나라 현실에서 살아있는 정치인을, 그것도 아주 힘이 센 정치인을 대놓고 조롱할 만큼 간이 부은 코미디언은 없습니다.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한 사진을 감상해도 실명을 박아 보도하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지 않습니까.

4.
흔히 하는 수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왜 정통 정치코미디가 없을까?”
“뻔하지, 정치 자체가 코미디잖아.”

세간의 이런 인식을, 정치의 이런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YTN의 ‘돌발영상’이었습니다.

‘돌발영상’엔 이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근엄한 표정으로 하나마나한 얘기를 읊조리는 정치인의 모습, 핏대 세우며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정치인의 모습 뒤에 감춰진 다른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딴짓하고 헛소리하고 허풍떨고 윽박지르는 정치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돌발영상’을 볼 수 없습니다. ‘돌발영상’은 지금 방송되지 않고 있습니다.

5.
갈증을 달랠 길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아주 오래된, 전통적인 풍자놀이가 있었습니다. ‘○○○시리즈’가 있었고 ‘△△△고스톱’이 있었습니다. 대놓고 조롱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비껴나 풍자하는 데에는 그런대로 쓸 만한 ‘거리의 코미디’가 있었습니다.

다시 발흥할지 모릅니다. 이 ‘거리의 코미디’가 되살아날지 모릅니다. 선술집의 소주잔 사이에서, 안방의 ‘국방색’ 담요 위에서 활짝 피어날지 모릅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동서고금이 증명합니다. 풍자와 조롱은 민초의 스포츠입니다. 힘 센 자, 가진 자를 풍자하고 조롱하는 건 억눌린 서민들의 카타르시스 해소법입니다. 막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권력이 행사되던 시절에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이버 공간마저 갇히려는 형국이라 특정할 순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곤거릴 대나무 숲은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겁니다.

PS. 뉴스를 보다 보니까 이게 눈에 띄네요. CBS 심야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비드 레터맨이 그랬답니다. “매주 ‘대통령의 대단한 연설’ 코너를 만들어 부시의 실수를 비꼬았는데 이젠 소재가 없어졌다”고 아쉬워했답니다.

몰랐습니다. 미국에 대통령 라디오연설이 있는 건 알았지만 ‘대통령의 대단한 연설’이 있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도 만들었습니다. 미국을 따라 대통령 라디오 연설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만들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대단한 연설’은 어느 곳에서도 만들지 않습니다.

Posted by '토씨'

백 번이라도 양보할 수 있다. 방송사와 사전 협의도 하지 않은 채 방송 날짜·시간·간격을 제시한 점, 방송사에 편집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 야당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은 점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이 정말 소통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에게 국정을 소상히 알리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자세가 돼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으면 된다.

하지만 아니다. 첫 연설을 청취한 후의 소감은 백 번 양보해도 기대는 난망하다는 것이다.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부터 “있는 사실 그대로 투명하게 알리겠다”고 했다.

방향을 잘 잡았나 싶었다. 경제실정이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를 제대로 파악했나 싶었다.

근데 웬일인가? 뒤에 나오는 얘기는 달랐다. 외환보유고가 2400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IMF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기업엔 투자를, 야당엔 협력을, 국민에겐 에너지를 절약과 해외소비 자제를 당부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숱하게 들은 주장이었고, 고등학교 경제교과서 수준에 불과한 원론적인 얘기였다.

이런 식의 연설은 무익하다. 하나마나 한 숫자타령을 읊고, 경제학의 ABC를 암기하고, 국민의 자세를 다그치는 연설은 의미가 없다. 실상을 알고 대책을 듣고 싶은 국민의 바람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다 반감만 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 박정한 평가인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음부터는 “작더라도 생활 속에서 공감하는 주제”를 얘기하겠다고 했으니까 좀 더 기다려볼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역시 기대난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반문했다. 언제 경제가 나아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선진국들이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0%대로 잡고 있는데 어떻게 장담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내년까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부인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쉽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 인식이 그렇다면, 경제 예측이 그렇다면 먼저 밝혔어야 했다. 대선 때 힘주어 강조한 ‘747공약’은 달성하기 어렵다고, 국민에게 헛된 꿈을 안겨준 데 대해 죄송하다고 먼저 머리 숙였어야 했다.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슬쩍 걸치는 식으로 발언할 게 아니라 대국민 연설 기회에 대놓고, 솔직하게 고백했어야 했다.

그래서 기대난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설’이라는 형식이 규정하는 내용의 한계, 즉 일방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성인데 이게 묻어있지 않다. “생활 속에서 공감하는 주제” 이전에 먼저 풀어야 하는 숙제, 즉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한 자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에 한 가지 사실을 환기시켜야 겠다. 6월 19일의 일이다.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특별기자회견’으로 느닷없이 바꾸면서 청와대가 설명했다. “담화가 권위적인 뉘앙스가 있는데다 이 대통령이 진솔하게 사과하려는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바꿨다고 했다.

자문해야 한다. 그 때의 그 자세를 지금은 왜 보이지 않는지 물어야 한다. 더불어 설명해야 한다. ‘담화’와 ‘연설’이 어떻게 다른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정답이 있다면….

▲사진=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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