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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국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질타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오락가락 추궁을 한다는 게 근거다. 지난 2일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잠수사) 2명씩 들락날락 하면서 어떻게 46명을 구조하느냐”고 호통 치더니 어제는 서갑원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천안함 격실에 환풍기가 달려 있어 장병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군의 주장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였다고 따졌다며 이렇게 질책했다. <기사 보기>

기가 차다. ‘중앙일보’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질책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천안함 격실마다 천장에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다고, 전기 스위치로 닫을 수 있지만 방수기능이 별도로 갖춰지지 않은 환풍기였다고, 천안함의 전원이 모두 나가 환풍기를 닫는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불어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69시간 생존이 가능하다는 설명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아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사 보기>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거하면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은 제기할만한 사실을 제기했고 추궁할만한 문제를 추궁한 것이다.

물론 ‘중앙일보’ 기사엔 없다. 두 의원의 추궁이 잘못됐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다만 비교했을 뿐이다. 닷새 전 같은 야당 의원의 질문 맥락과 180도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오락가락’ 추궁을 지적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그것이 정녕 문제라면 ‘중앙일보’, 나아가 모든 언론 또한 과녁에서 탈출할 수 없다. 언론도 어제 달랐고 오늘 달랐다. 내부폭발과 외부충격 사이, 기뢰와 어뢰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추정 보도’를 남발했다.

하지만 크게 탓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부각시킨 언론이 없지 않고, 그들의 의도를 경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결과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면을 잘라 보면 성급한 추정과 섣부른 예단에 빠진 부실 보도임에 틀림없지만 군사정보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해당 의원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비공개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의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도 ‘헛다리’를 짚었다는 확증이 서지 않는 한 국회의원들의 ‘추궁 환경’을 언론과 다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건 만은 그렇다.

‘중앙일보’가 질타할 대상은 국회의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니라 국방부의 ‘용인할 수 없는 입씻기’다. 천안함의 내부 구조는 상세히 브리핑하면서도 격실 천장에 방수가 안 되는 환풍기가 달려있는 사실은 쏙 뺀 국방부의 처사를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그게 먼저고, 그게 본질이다.

국회의원의 추궁을 받아 확인 보도를 한 ‘동아일보’의 ‘대응법’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Posted by '토씨'


거듭 말한다. 세상사 보기 나름이다. 그러니까 좋게 보자.

한나라당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정당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암기에 관한 한 영재급의 능력을 갖고 있다.

조윤선 대변인이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4대강) 예산 심의를 반대하고 있는데 의원 본인들도 중앙당과 입장이 같은지 아니면 예정대로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건지 분명히 입장을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많이 본 장면이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서 연출됐던 모습의 복사판이다.

민주당이 요구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 제정의 당사자이니까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응답했다. 원안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당의 존립을 걸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에 불거졌다. 한나라당 안에서 갈등과 공방이 불거졌다.

익히 들은 목소리다. ‘동아일보’가 17일자에서 보도한 내용의 재생판이다.

‘동아일보’가 조사했다. 민주당의 지역구 의원들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4대강 사업과 관련해 12명(20%)이 ‘영산강 등 수질개선이 시급한 곳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기타’ 의견을 보인 12명까지 합하면 당론과 의견이 다른 의원이 24명(40%)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다. 조윤선 대변인의 촉구는 민주당의 '이간계'를 교본 삼고 ‘동아일보’의 조사결과를 공식 삼아 응용에 나선 것이다.

근데 어쩌랴. 암기력은 탁월한데 응용력이 떨어진다. 공식을 외우는 건 좋은데 대입할 문제와 아닌 문제를 구분하지 못한다.

조윤선 대변인이 대상으로 삼은 민주당 의원들이 말한다. “바닥 준설과 하천 정비가 영산강에 필요하지만 보와 둑 쌓는 공사가 핵심인 4대강 사업은 얘기가 다르다”고 한다. 돌아오는 대답이 민주당 지도부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일보’ 조사 결과에는 맹점이 있다. 당론과 다른 의원 수를 ‘더블’로 올려준 ‘기타’ 의견 대부분이 ‘1조원 안팎으로 예산을 줄이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면’ ‘예산안이 나오면’ ‘청와대의 개선안이 나오면’ 등의 단서를 단 것으로 민주당의 '즉각 중단' 당론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민주당 의원들의 응답이 성에 안 차더라도 본전치기는 한다. 파워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민주당의 후방을 조금은 교란시킬 수 있다. 내주는 것 하나 없이 거둬들이기만 한다면 소소하지만 이득까지 챙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한나라당은 되로 받고 말로 준다.

한나라당의 이간계 따라하기 덕분에 박근혜 전 대표는 정당성을 확보했고 활동공간을 넓히게 됐다. 이치가 그렇다. 민주당과 똑같이 남의 당 의원들에게 지도부와 다른 입장을 표명하라고 요구하는 판에 어떻게 자기 당 의원의 이견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박근혜 전 대표가 세종시 입장을 표명할 때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지도부 입장은 원안 추진이었는데. 박근혜 전 대표는 날개를 달게 됐다(참고로 '한국일보'가 한나라당 의원 147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세종시 '수정 추진' 응답은 76명, '원안 또는 플러스알파 추진' 응답은 39명이었으며, '정부안이 나온뒤 입장을 밝히겠다'거나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등의 '답변 유보'가 32명이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 샛문을 열려다가 자기집 뒷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남의 집 ‘피라미’를 그물에 가두려다가 자기 집 ‘월척’을 방생해 버린 것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다. 암기만 하고 응용은 소홀히하다가 통합교과형 문제 앞에서 주저앉는 수험생들이 하는 말이다.

“그냥 찍을 걸….”

▲사진=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


‘동아일보’가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낸 서울남부지법의 마은혁 판사는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멤버였다”고, 1987년 결성된 ‘인천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인민노련)’의 이론-선전 부문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보기>

‘중앙일보’가 상세히 짚었다. 법원이 “이념 앞에서 길을 잃(고)” 있다고, 소신을 넘어선 일탈적 판결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법원 안팎에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했다. “김영삼 정부 첫해인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는 사법시험 합격자도 판사로 임용되기 시작했다”고 따로 짚었다. <기사 보기>

새삼 분석할 필요가 없다. 이들 신문이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법연구회’를 과녁 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법연구회’ 소속인 마은혁 판사를 지렛대 삼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살필 필요가 없다.

지겹다. 법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오히려 그것이 다원화 된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행여 이념 문제 때문에 판결 오류가 나온다면 3심제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다는 따위의 말은 그만 하자. 중․고등학생도 다 아는 얘기도 귀 닫고 맘 닫으면 생뚱맞은 소리로 들리는 법이다.

아주 짧게 딱 하나만 짚자. 이런 의문문으로 되묻자.

그래서? 뭘 어쩌자고?

그럼 마은혁 판사를 잘라야 하나? 20여 년 전의 사상․활동 경력을 문제 삼아 법원에서 내쫓아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향서를 쓰도록 해야 하나?

그럼 신원조회를 해야 하나? 군사독재시절로 돌아가 임용 때 사상․시위 전력을 조회해야 하나? 아니면 신영철 대법관처럼 사건 배당에 개입해 국보법 위반 전력 판사에겐 시국사건을 맡기지 말아야 하나?

설마 이건 아닐 것이다. 대명천지에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정론지’가 이렇게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되묻는 것이다. 뭘 어쩌자는 것이냐고….

 ▲사진=노회찬 마들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 장면. 마은혁 판사가 이 모임에 참석해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노회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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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낙관했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한 만큼 논란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반발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낙관에도 불구하고 ‘친일인명사전’에 ‘창업주 김성수’와 ‘사장 방응모’의 이름이 오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격하게 반발한다.

“객관적인 자료”가 아니다. 이들이 주되게 반박하는 건 내용이 아니라 발간 주체다. ‘동아일보’는 사설 한 귀퉁이에서, ‘조선일보’는 단신 처리한 사실기사에서 “객관적인 자료”의 신빙성과 친일 행적 선정 기준을 잠깐 문제 삼기는 했지만 공격 포인트는 발간 주체에 맞추고 있다.

‘동아일보’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임헌영 소장이 “공산주의 지하조직”이었던 ‘남민전’에 가담한 전력을 부각시킨 뒤에, 또 좌파 인사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너그럽게 평가한 점을 제기한 뒤에 규정했다. ‘친일인명사전’을 “좌파사관”의 소산으로 치부했다. <사설 전문보기>

‘조선일보’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주체를 “조국 광복 운동에 손가락 하나 담근 적이 없는 정체불명의 인사들”로 규정한 뒤에, 또 해방 직후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인사(688명)와 광복회가 2002년 내놓은 친일인사 명단(692명)보다 훨씬 많은 4389명을 추린 점을 부각시킨 뒤에 저의를 의심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가 열린 곳에서 ‘박정희는 친일잔당’과 같은 “붉은색 구호들”이 쓰여 있었던 점을 들어, 또 같은 곳에서 ‘대통령 선거 다시 하자’는 피켓이 등장하고 애국의례 대신 민중의례가 진행된 점을 들어 규정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대한민국 정통성(을) 다시 갉아먹은” 행위로 규정했다. <사설 전문보기>

왜일까? 왜 두 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객관적인 자료”에 대한 논박보다는 발간 주체의 ‘정체’를 공격하는 데 주력했을까?

'서론'만 놓고보면 답이 얼추 나온다. 오늘 제기한 문제만 놓고 보면 '저의'가 대충 읽힌다.


상승한다. ‘친일인명사전’이 제시한 “객관적인 자료”를 논박하면 논란이 커진다. 최종적인 사실규명(그들 입장에서)에 이를 때까지 그들이 ‘보위’하려는 사람들의 친일 행적은 국민적 화두가 된다.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런 논란 자체가 이면을 들추는 일이다. 국민들이 정규 교육과정에서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또는 혐의)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빚는다. 더구나 ‘친일인명사전’이 제시한 “객관적 자료”를 근저에서 부정하는 사실 규명이 아니라 공과 과를 함께 봐야 한다는 식의 가치 평가로 논란이 전개되면 친일 행적은 부분적이라 해도 사실로 굳어진다.

효율적인 방법은 ‘권위’를 깨는 것이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주체의 대표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격하시킬 수 있다. 발간 주체를 “정체불명의 인사들” 또는 ‘좌파’로 몰면 그들이 만들어낸 ‘친일인명사전’의 의미를 자동으로 삭감시킬 수 있다. “정체불명의 인사들”의 놀음 결과, 또는 ‘좌파’의 이념공세 부산물쯤으로 평가절하 할 수 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친일인명사전’의 수정이 아니라 폐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이 8일 백범 김구 선생 묘 앞에 '친일인명사전'을 헌정하고 있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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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느긋하다. 부동산 가격이 뛰는데도 팔짱을 끼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말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거래량이나 거래금액으로 볼 때 정상화에 다가가는 과정”이라며 “현재로선 추가적인 조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정부를 빼곤 모두가 우려한다. 부동산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말했다. “(주택가격 상승)기미는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언론도 논조 차를 뛰어넘어 입을 모았다.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가 윤증현 장관의 인식이 안이하다며 총부채상환비율 강화와 같은 부동산 가격 안정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어떻게 봐야 할까? ‘정상화 과정’과 ‘경계 수준’으로 현격히 갈리는 이 입장 차를 인식 차에서 기인한 것으로 봐야 할까?

그렇게 보긴 어렵다. 7개월 동안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 지난해 연간 증가액과 거의 같고,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4개월째 상승하는 판에 지표 독법의 차이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르게 본다. ‘한겨레’는 정부의 안이한 태도를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의도의 문제로 본다. 부동산을 지렛대 삼아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아닐 수도 있다.

‘동아일보’가 지난 3일 보도한 게 있다. 수도권에서 부동산 가격이 뛰면 한나라당의 득표율이 상승한다는 분석결과였다.

‘동아일보’가 미국 플로리다 대학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와 함께 2000-2008년에 치러진 7차례 선거와 선거기간 전국 아파트 가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왔다고 했다. “2004년과 2008년 총선 사이 아파트 평균값이 3.3제곱미터당 100만원 미만 오른 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이 1.4%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지만 300만원 이상 오른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의 득표율이 8.2%포인트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지역정서가 강한 지방보다는 수도권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졌다고 했다.

보수화 때문이라고 했다. “집값이 오르면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집값 상승지역으로 유입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 거주자들도 보수화돼 ‘표심의 보수화’로 연결된다”고 했다.

의미있는 분석이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막연하게 얻은 경험칙을 정교한 데이터로 입증한 분석이다.

부동산이 문제였다. 교육과 함께 부동산이 수도권의 개혁표심연대를 무너뜨렸고, 민주당의 지지층을 와해시키는 한 요인이 됐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말기에 강력한 부동산시장 규제책을 펼쳤지만 강남불패세력은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이 원위치할 것이라고 비웃었던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 바람에 민주당 후보들이 추풍낙엽이 된 건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오히려 '동아일보'의 분석결과를 망원경 삼을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운명을 가를 내년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수도권이다.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불신, 분노를 가장 많이 축적해온 곳도 수도권이다.

어떻게 될까? 이런 수도권에 ‘동아일보’의 분석결과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달라진다. 정부가 끝까지 방치하면, 그래서 수도권 부동산시장이 더욱 출렁이면 판도가 달라진다. 수도권 표심이 보수화 되면 ‘방어전’을 치러야 하는 이명박 정부는 한숨 돌리게 된다. 수도권에서 반타작만 해도 지방선거 참패로 집권기반이 급속히 약화됐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된다.

물론 단순한 전망이다. 정부가 ‘동아일보’ 분석결과를 정책에 반영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복합 요인이 작용하는 선거판을 부동산 요인 하나로 재단하는 것도 지극히 단순하다. 표심의 정치적 정서는 아예 도외시한 반쪽짜리 예측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피는 이유가 있다.

정부가 팔짱을 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의도 여부와는 상관없이 ‘동아일보’ 분석결과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반대의 단순 전망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실망과 불신, 분노가 누적돼왔기에 지방선거에서 중간평가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 또한 정치적 요인 하나로 재단하는, 지극히 단순한 전망임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실망과 불신, 분노가 쌓여도 그것을 정치적으로 모을 구심이 없으면 스러진다. 실망과 불신, 분노가 정치참여를 이끌어내도 그것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또 다른 실망과 열패감을 부른다. 그리고 두 정치적 정서 틈새에서 개인과 욕망이 줄타기를 한다.

▲캡쳐=‘동아일보’ 8월 3일자 기사

Posted by '토씨'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품을 적잖이 들인 점은 인정한다.

22년 전 기사를 뒤졌다. 색 바랜 신문에 침을 바르고, 필름통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찾아냈다. 1987년 6월항쟁 전후의 ‘경향신문’ KBS·MBC 보도를 들춰냈다. 정권에 아부했고 시민에 등 돌렸던 세 매체의 과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해한다. ‘동아일보’가 세 매체의 과거사를 들춰낸 이유를 이해한다. 경멸과 냉소를 가득 담아 ‘너희가 언제부터 민주언론 진보언론이었는데?’라고 되묻기 위해서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세 매체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6.10민주회복범국민대회’를 6월항쟁 정신과 연결한 것을 문제 삼으며 “최근 6.10범국민대회와 관련해 민주주의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것은 지난 일을 모른 체하는 행태”라고 했다.


이런 식의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6월 15일자 ‘황호택 칼럼’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6월 10일만 되면…제철을 만난 듯 지면에 활기가 넘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경향신문’과 KBS·MBC는 ‘관제언론’을 하고 있었던 반면에 ‘동아일보’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6월 민주항쟁에서 선두에 서서 붓으로 싸웠다고 했다. 이렇게 “과거사를 들추는 이유는 우리 자랑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제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들춰낸 과거사는 사실에 부합한다. KBS와 MBC는 분명 ‘관제언론’이었다. ‘땡전뉴스’의 첨병으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중에 6월항쟁의 주역이 된 ‘일부 극소수 불온세력’을 성토하는 ‘보도특집’을 방송하곤 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5공 시절에 ‘경향신문’이 전두환 세력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놨다는 기록을 찾기는 힘들다. ‘동아일보’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고, 민주언론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과거사 들추기를 인정하지 못한다. 동의하지도 않는다.

‘동아일보’는 자충수를 뒀다. 헛심 쓰면서 헛물만 켰다. 두 개의 반문을 끌어내는, 누워 침뱉기식 우를 범했다. 이런 것이다.

첫번째 반문은 ‘그럼 너희는?’ 이다. 그럼 ‘동아일보’의 과거사는 그리 떳떳하냐는 반문이다. 회고 시점을 22년 전에서 일제강점기로 확장하면 ‘친일’ 전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역사학계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두번째 반문은 ‘그랬던 너희는?’ 이다. 22년 전 민주항쟁의 선봉에 섰던 ‘동아일보’가 지금은 어느 세력의 선봉에 서 있느냐는 반문이다. 각계각층이 민주주의 후퇴 또는 위기를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데도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옹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반박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미 반박하고 있다. ‘친일’ 전력 주장은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시대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공과 과를 두루 아우르지 못한 단견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부여한 자유를 좌파세력이 악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따로 재반박하지는 않으련다. 그래봤자 평행선을 달릴 뿐이니까….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내놓은 논란의 해법을 상기하고 환기시키련다.

‘황호택 칼럼’이 그랬다. “어떤 신문의 논조가 옳고 그른지는 독자의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도 했다.

이 ‘훈계’를 받들어 ‘동아일보’에 권한다. 스스로 설정한 금도를 자신에게 적용시키기를 권고한다. 역사의 평가는 차후의 일이니까 그렇다치고 당대의 독자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고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살피기 바란다. 정말 일부 좌파세력만이 ‘동아일보’를 공격하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또한 한 때의 영광을 우리고 또 우리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 보기 바란다.

세상사 이치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 나가 “우리 집안은 삼정승 육판서를 배출한 명문가라오”라고 하면 “그래요? 그럼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는데요?”라고 반문하는 게 세상 인심이고 시대 정서다.

▲‘동아일보’ 6월 26일자 기사

Posted by '토씨'

부질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기대하는 건 김치 국물 마시는 행위와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떡 줄 생각이 없다.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그랬다. “대통령 사과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대통령 사과 요구에 대해 이렇게 잘랐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다. 오늘 아침 라디오 연설에서 민주당이 요구한 사과의 말, 그리고 자유선진당이 요구한 유감의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에게 짤막하게 위로의 말만 전한 뒤 북한 핵문제와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연설 내용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어렵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뻣뻣하게 나오는 이유를 살피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아일보’의 황호택 논설실장이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장 노무현스러운 죽음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며 “사즉생으로 절벽 아래로 한 몸 던지면 자신이 일으켜 세워 보존해 가고자 했던 가치와 이념을 살려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승부수’로 이해한 것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과 국민장 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와 법치의 원칙을 여러 차례 포기했다"며 "노무현 측에서 제기한 주장들, 예컨대 수사가 정치보복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도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정당한 ‘법치’로 바라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에워싼 보수세력의 시각이 이렇다. ‘노무현 수사’는 지극히 정당한 법치다. ‘노무현 서거’는 지극히 정치적인 승부수다. 그래서 허용할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는 법치를 허무는 일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부수에 말리는 일이다.

벗어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보수세력의 시각에서 탈출할 수가 없다. 그러면 정권기반이 붕괴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을 위해 덕수궁 앞을 내주고, 영결식을 위해 서울광장을 열어준 일만 갖고도 맹비난하는 보수세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배신자, 겁쟁이, 장사꾼’이라고 비난하면서 ‘하야’를 입에 올리는 보수세력이다. 보수세력의 기류가 이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노무현 수사’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 마디 부연해야겠다. 강경 보수파의 목소리를 보수세력 전체의 시각으로 일반화하는 건 아닌지 마저 살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른바 온건 보수파로 분류할 수 있는 한나라당 내 소장파의 동태를 보면 그렇다. 이들은 아무 규정력이 없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시민 분향소에 나와 조문하지도 못했고 정부의 책임을 묻지도 못했다. 기껏 한다는 게 박희태 대표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일이다. 박희태 대표가 물러나야 국정 쇄신의 물꼬가 트인다면서 용퇴를 거론하는 게 전부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한다.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는 언감생심이다.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기대할 바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기대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를 보면 안다.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촛불이 꺼진 후에 이른바 ‘MB본색’이 노골화됐다. 진정성이 스며있지 않은 사과는 그냥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다른 점을 보자. 보수세력의 시각에서 도출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이다.

실현될지 모른다. 민주당이 요구한 ‘노무현 수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여권이 받아들일지 모른다.

보수세력의 시각에 따르면 국정조사를 안 받을 이유가 없다. 비리가 있어서 수사했고, 혐의가 있어서 소환조사했다고 하지 않는가. 꿀릴 게 전혀 없다. 어쩌면 국정조사는 ‘노무현 수사’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실장이 한탄했던 현상, 즉 ‘피의자’ 노무현이 졸지에 ‘순교자’가 된 세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전환점이 될지 모른다.

때마침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검찰 수사과정에 대한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환영할 일이다.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다면 하나의 매듭을 풀 수 있다. 치졸한 정치보복과 정당한 법치라는.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두 주장을 저울에 올릴 수 있다. 검찰의 수사방식과 수사내용을 검증할 수 있다.

생산적이기만 하다면 그렇다. 지금까지 봐왔던 통과의례식 국정조사, 시간끌기식 국정조사의 병폐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

▲사진=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