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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의 대화'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1/31 '대통령과의 대화' 진짜 문제는… (3)
  2. 2009/11/30 거울 보면서 독백한 이명박 대통령 (11)


뭐가 다를까 싶다. 언론은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낙점한 패널 2명과 묻고 답하는 형식을 문제 삼지만 그게 뭐 그리 중요할까 싶다. 언론 주장대로 기자회견을 연다고 해서, 패널을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구성도 전문가 패널과 국민 대표로 다양화한다고 해서 진짜 '대화'가 이뤄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기자회견을 여는 경우에도 출입 기자단이 사전에 질문을 뽑아 청와대에 넘겼다. 대부분 이런 ‘관행’을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그래왔다. 기자회견을 해도, ‘국민과의 대화’를 해도 논쟁식 질문은 애당초 허용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해도 질문자가 묻고 또 묻는 진행방식은 거의 없었다. 진행자 또는 청와대 홍보수석이 으레 ‘시간 부족’을 이유로 단발성 질문으로 제한했고, 그 탓에 질문은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일관했다.

크게 다르지 않다. 내일 있게 될 ‘대통령과의 대화’와 지금까지 있어왔던 ‘대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끝장’을 못 봤고, 못 볼 것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해하지는 말자. 청와대를 두둔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 같은 지적이 청와대의 자신감 부족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래봤자’ 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집하는 청와대의 소심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어차피 한 목소리인데 방송사 공동중계를 고집하는 청와대의 과욕을 더욱 부각시킨다.


다만 강조하고자 하는 건 내용이다. 뭘 하나를 물어보더라도 국민의 궁금증과 갑갑함을 속 시원히 풀어줄 ‘소통’이다. 묻고 또 물어서 대통령의 뜻과 방침을 국민 앞에 오롯이 드러내는 ‘논쟁식 묻고 답하기’다. 설령 기본 질문이 청와대에 건네지더라도, 그래서 대통령이 ‘모범답안’을 준비한다 해도 묻고 또 묻는 방식이 도입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애드립’ 질문에 ‘애드립’ 답변이 이어지면 대통령의 속내와 정책의 실체를 좀 더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그래서 ‘차라리’를 강조한다. 패널 두 명이 돌아가며 질문하는 좌담 방식이 아니라 패널 한 명이 진행의 완급을 조절하며 질문하는 대담 방식이 ‘차라리’ 낫다. ‘너 한 번 나 한 번’의 부담감을 털어내고, 제 입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는 사명감을 갖고, 청와대에 밉보이더라도 할 말 다 하겠다는 결기로 날 선 질문을 던지는 ‘대표 대담’이 ‘차라리’ 낫다. 그렇게 ‘what’이 아니라 ‘why’를 묻게 하는 게 낫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기자들이나 분야별 전문 패널이나 각계각층의 국민 대표가 논쟁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만 이 방식이 거추장스럽다면, 정히 '단촐한 대화'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대통령과의 대화’에 ‘원산지’ 표시를 해서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패널조차 제 입맛 따라 낙점하는 청와대의 태도를 볼 때 '언감생심' 같긴 하지만…. 

▲사진=2009년 11월 27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 장면 ⓒ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왜 대선 공약을 뒤집느냐는 말은 하지 않겠다. 세종시만 갖고 따질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747’도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자칫하면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왜 대운하 공약 실현을 반대했느냐’는 반문이다.

토도 달지 않겠다. 세종시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  그리고 ‘정치적 순수성’이 맞느냐 그르냐는 여기서 가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딱 하나만 얘기하자. 이명박 대통령의 실천방식이다. 양심에 따르고 역사적 소명의식에 순응하는 그의 행동방식이다.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하지 못했다. 당당하지도 않았다. 정치권에서 세종시 논란이 이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대평 총리 무산 파동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세종시 논란이 거세게 이는데도 청와대는 ‘입장이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앞에서 그렇게 언급하면서 뒤에서 모색했다. 심대평을 대체할 충청 출신 총리를 찾았다. 충청지역 여론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돌파력을 조금이라고 끌어올리기 위해 묘수 찾기에 나섰다.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결단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킴으로써 진정성을 설파할 선제적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미지를 망쳐버린 것이다.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 그리고 ‘정치적 순수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행보를 그음으로써 국민 뇌리 속에 부정적 영상을 심은 것이다.


이게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천방식, 다시 말해 ‘대통령과의 대화’ 화법이 잘못됐다고 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설득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데생 수준의 이미지에 채색을 하는 발언만 쏟아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이 반문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역사적 소명에 머리 조아리고자 했다면 왜 그동안 좌고우면 했냐고, 왜 그동안 이중플레이 했냐고 되묻게 만들었다.

하려면 확실하게 했어야 한다. 맨 처음에 입장을 밝혀 논의 주도권을 쥐든지, 아니면 맨 나중에 입장을 밝혀 수정안을 보완하든지 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핀트라도 바꿨어야 한다. 중간 타이밍에 ‘국민과의 대화’를 여는 게 불가피했다면 경위를 밝히는 데 주력했어야 한다. 자신이 왜 몇 달을 ‘모르쇠’로 일관했는지, 왜 총리 뒤에 숨었어야 했는지 밝혔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밝혔어야 했다. 자신이 설정한 ‘정도’를 걷고자 했으면서도 ‘샛길’을 밟아야 했던 연유를 설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때와 상황을 고려치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내버렸다. ‘경위’ 대신 ‘입장’만 일방적으로 ‘연설’했다.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제목이 방증하듯이 국민과 대화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대통령과 대화한 것이다. 그렇게 거울과 대화하면서 자기 내면의 울타리를 증축한 것이다.

▲사진=지난 28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 장면 ⓒ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