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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선 공약을 뒤집느냐는 말은 하지 않겠다. 세종시만 갖고 따질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747’도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자칫하면 반문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 왜 대운하 공약 실현을 반대했느냐’는 반문이다.

토도 달지 않겠다. 세종시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  그리고 ‘정치적 순수성’이 맞느냐 그르냐는 여기서 가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딱 하나만 얘기하자. 이명박 대통령의 실천방식이다. 양심에 따르고 역사적 소명의식에 순응하는 그의 행동방식이다.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솔직하지 못했다. 당당하지도 않았다. 정치권에서 세종시 논란이 이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대평 총리 무산 파동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세종시 논란이 거세게 이는데도 청와대는 ‘입장이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앞에서 그렇게 언급하면서 뒤에서 모색했다. 심대평을 대체할 충청 출신 총리를 찾았다. 충청지역 여론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돌파력을 조금이라고 끌어올리기 위해 묘수 찾기에 나섰다.

때를 놓쳐버린 것이다. 결단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킴으로써 진정성을 설파할 선제적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이미지를 망쳐버린 것이다. ‘양심’과 ‘역사적 소명의식’, 그리고 ‘정치적 순수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행보를 그음으로써 국민 뇌리 속에 부정적 영상을 심은 것이다.


이게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천방식, 다시 말해 ‘대통령과의 대화’ 화법이 잘못됐다고 평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설득 포인트를 잘못 잡았다. 데생 수준의 이미지에 채색을 하는 발언만 쏟아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이 반문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역사적 소명에 머리 조아리고자 했다면 왜 그동안 좌고우면 했냐고, 왜 그동안 이중플레이 했냐고 되묻게 만들었다.

하려면 확실하게 했어야 한다. 맨 처음에 입장을 밝혀 논의 주도권을 쥐든지, 아니면 맨 나중에 입장을 밝혀 수정안을 보완하든지 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핀트라도 바꿨어야 한다. 중간 타이밍에 ‘국민과의 대화’를 여는 게 불가피했다면 경위를 밝히는 데 주력했어야 한다. 자신이 왜 몇 달을 ‘모르쇠’로 일관했는지, 왜 총리 뒤에 숨었어야 했는지 밝혔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밝혔어야 했다. 자신이 설정한 ‘정도’를 걷고자 했으면서도 ‘샛길’을 밟아야 했던 연유를 설명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하지 않았다. 때와 상황을 고려치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끝내버렸다. ‘경위’ 대신 ‘입장’만 일방적으로 ‘연설’했다.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제목이 방증하듯이 국민과 대화한 게 아니라 대통령이 대통령과 대화한 것이다. 그렇게 거울과 대화하면서 자기 내면의 울타리를 증축한 것이다.

▲사진=지난 28일 열린 ‘대통령과의 대화’ 장면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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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명박 대통령의 두 말을 비교하자. 이 작업을 끝내야 다음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

▲대운하 사업은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 - 2008년 6월 19일 특별기자회견
▲(대운하 사업을) 내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 - 2009년 6월 29일 라디오연설

다른가? 두 말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가?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호평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를 특정함으로써 대운하 포기 의사를 좀 더 분명히 밝혔다고 상찬한다. 그러니까 이제 대운하 논란은 접자고 당부한다.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읽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로 한정함으로써 “임기 후”의 여지를 확보한 측면이 있고,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내 믿음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대운하 사업의 정당성을 확인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으련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그러지 않았는가. “의구심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말라고…. ‘꼬투리 잡기’로 욕먹을 수 있으니까 관두련다. 하지만 이 점만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의했다. 대운하 사업의 핵심을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의를 확장해 적용하면 이런 얘기가 된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일만 하지 않으면 4대강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든 그건 대운하 사업이 아닌 게 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운하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일은 ’의구심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쟁을 일삼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에서 보를 필요 이상으로 건설해도, 그 보의 숫자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도 그건 단순한 물놀이용 보여서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믿고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에서 바닥을 필요 이상으로 긁어내도 그건 강의 수량을 풍부히 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며 이걸 선박 운항과 연결 짓는 건 오해 또는 의구심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라고 믿고 입 닫아야 한다. 정부가 4대강 피해액을 마구 부풀려도 그건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단순 계산착오라고 믿고 입 닫아야 한다. 행여 입을 열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다시 말해 대운하와 연결 짓는 건 피해야 한다.

어떤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합리적 의심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제압당하는, 기적과도 같은 전도현상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은가? 대통령이 설정한 프레임에 객관적 사실이 갇히는, 기막힌 왜곡현상을 목도할 수 있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4대강 사업이 ‘언터처블’이 되지 현상을 체감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건 잘못됐다. 주어가 잘못됐고 시제가 잘못됐다. 합리적 의심이 “제압당하는” 중도 아니고, 객관적 사실이 “갇히는” 중도 아니며, 4대강 사업이 “언터처블이 되는” 중도 아니다. 그건 단지 청와대가 뇌리 속에서 그리는 현재진행형의 희망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일각, 즉 합리적 의심과 객관적 사실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 가운데 일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장단 삼아 춤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라디오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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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

“할 때가 되면 하고 안 할 때가 되면 안 하면 되지 미리 안 한다 할 필요가 있느냐.”

“4대강 정비를 하는 대신 대운하는 국민이 원치 않으면 절대 안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건의를 받고 한 말이다.

주목할 게 있다. 박희태 대표의 말 한 구절이다. “국민 원치 않으면 절대 안 한다”는 한 구절에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 새로운 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직접 천명한 말이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6월에 국민 앞에 나와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박희태 대표는 그 때 그 말을 복기한 것에 불과한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심드렁하게 받았다. 6월 그 때의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면 결코 내보일 수 없는 삐딱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뭘까? 이명박 대통령이 손바닥을 반쯤 뒤집은 이유가 뭘까? 궁지에서 탈출했다고 믿기 때문일까? 국민 저항이 분출되는 엄혹한 상황을 돌파했다고 믿기 때문일까? 국민 저항이 다시 조직되기 어렵다고 확신하기 때문일까? 밀어붙여도 된다고 자신하기 때문일까?

이것 갖고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근거가 확보되지 않은 믿음은, 그런 허약한 믿음에 기초한 거친 행동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뭔가를 부여잡았다고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속내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실마리는 ‘때’다. 6월 그 때와 지금 이 때가 다르다는 점이다.

촛불이 타오르던 6월 그 때는 팍팍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먹고살기가 팍팍하지 않았고, 지금처럼 처지가 불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 개개인이 정책적 판단을 생계에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생태 환경보다 생계 환경에 골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뇌리에 대운하가 남아있다면 지금처럼 좋은 때는 없다.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일자리를 조금이라도 창출하고 먹거리를 조금이라도 늘리면 허물 수 있다. 외곽 즉 지방에서부터 대운하 반대 여론을 각개격파할 수 있다.

사례도 있다. 4월 총선에서 욕망의 선거를 부채질 해 수도권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뉴타운 공약 하나로 여당의 정치신인이 야당의 정치거물을 제압하는 결과를 창출했다.

크게 욕심 부릴 필요는 없다. 수도 한복판에 깃발을 꽂는 것까지 기대할 필요는 없다. 교두보만 확보하면 된다. 60∼70%에 달하는 대운하 반대 여론을 50%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된다. 찬반 여론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국민이 원치 않는 상황”을 희석시키면 ‘안 할 때’를 ‘할 때’로 바꿀 수 있다. 국민의 찬반 여론을 경청한 대통령이 통치권 행사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포장할 수 있다.

물론 걸림돌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자신할 수는 없다. 아니 이미 걸림돌은 삐져나와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는 둘째 치고 여권 내 대운하 반대론자들이 엄존하고 그 맨 앞자리에 박근혜 전 대표가 서 있다. 

여권 내 반대론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박근혜 전 대표를 제어하지 못하면 추진력이 반감된다. 여권 내에서조차 동의를 구하지 못한 날림 정책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래서 쏟아붓는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 예산 14조원 가운데 절반 가까운 돈을 낙동강에 쏟아 부으려는 것이다. 대운하 기초사업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대운하 여론 조성사업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기에 돈을 뭉텅이로 쏟아 부으려 하는 것이다.

낙동강 유역을 대운하 찬성 쪽으로 돌려놓으면, 영남의 민심을 얻으면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대운하 찬성 입장을 끌어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가 입 닫고 있게 만들 수 있다. 더불어 여권 내 반대론자들이 조직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여권 내 교란요인만 제거하면 밀어붙일 수 있다. 지지율 10%에 불과한 민주당의 반발을 누르는 것쯤은 일이 아니다.

어떨까? 떡 줄 사람의 계산은 이렇다 치고 떡 받을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참고할 게 있다. '부산일보'의 사설 한 구절이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즉시 효과가 나타나지만 지역발전 대책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적 효과뿐"이라고 했다. "한쪽엔 현금을 주고 다른 한쪽엔 어음을 주는 꼴"이라고 했다.

평가가 박하다. 수도권 규제완화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에는 지방발전대책의 온기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팍팍한 살림살이를 약한 고리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실제 지방에서는 그 팍팍한 살림살이와 팍팍한 심사가 웬만한 자극으로는 깨지지 않을 정도로 굳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놓지지 말자. 바로 이 점이 대운하의 '할 때'와 '안 할 때'를 가르는 요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사진 제공=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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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정말 집요한 정부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속도 조절은 해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반 년 전의 일을 들추고 있다. 지나간 일을 꺼내 징계하고 처벌하려 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김이태 연구원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11월 28일부터 12월 12일까지 내부 특별감사를 실시했고 이번주 중으로 징계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5월 23일 ‘아고라’에 글을 올려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계획”이라고 양심선언한 것을 다시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서울 종로경찰서가 탤런트 맹봉학 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버지로 출연했던 그를 처벌할 계획이다.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7월18일 새벽 안국동 로터리 근처 대로변에서 연좌를 해 교통을 방해하고 ‘촛불다방’ 관계자를 연행하러 온 경찰 호송차를 몸으로 막은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왜 저러는가 싶다. 뭣하러 벌집을 쑤시는가 싶다. 반발을 부를 게 뻔해 보인다. 

김이태 연구원을 징계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부원장(당시 원장은 공석)이 김이태 연구원을 징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뒤집는 것이다. 최근의 움직임은 당시의 약속을 뒤집는 것이다.

촛불이 사그러진 지금 일반인도 아니고 탤런트를 콕 찍어 처벌하려고 한다. 한참 전에 끝난 일을, 주동자도 아닌 일반 참가자를 끝까지 처벌하려 한다. 유모차 부대 수사 파문을 능가할 파장을 자초하는 것이다.

모를 리 없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상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밀어붙인다. 무소의 뿔을 곧추 세우고 내달리려 한다.

이유가 뭘까? 왜 논란을 자초하고 반발을 감수하려는 걸까?

대입하면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강행처리한 새해 예산안을 보면 보인다. 정부와 여당이 전쟁모드로 밀어붙이려는 입법안을 보면 보인다. 김이태 연구원과 맹봉학 씨는 본보기다.

한 푼도 깎지 않았다. 4대강 정비사업 예산 7910억원을 한 푼도 깎지 않고 통과시켰다. 야당과 일부 삭감하기로 해놓고서는 슬그머니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불법행위 집단소송법’을 그대로 밀어붙이려 한다. ‘떼법’ 방지를 위해, ‘떼법’ 피해자 구제를 위해 불가피하다며 임시국회에서 전쟁상황을 불사하고서라도 통과시키려 한다.

맞닿아 있다. 김이태 연구원 징계와 맹봉학 씨 처벌은 이 두 사안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김이태 연구원을 징계하면 입단속을 할 수 있다. 제2, 제3의 김이태 연구원이 ‘내부정보’를 양심선언하는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다. 그래야 차단할 수 있다. 4대강 정비사업을 대운하와 연결짓는 시도를 차단할 수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이번주에 국토해양부와 ‘4대강 정비방안’에 대한 25억원짜리 연구용역을 체결할 계획이다.

맹봉학 씨를 처벌하면 경고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제2, 제3의 맹봉학이 나오더라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누를 수 있다. 그래야 다질 수 있다. ‘불법행위 집단소송법’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일부 시민들은 연말을 맞아 ‘촛불’을 추억하기 위해 다시 ‘촛불’을 켜고 있다.

뒤탈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강경일변도, 일방통행식 조치가 반발을 야기할 가능성은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야당은 무력하다. 야당의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한나라당의 절반에 불과하다. 시민단체는 타격을 입었다. 촛불시위 주동자는 처벌받았고, 덩치 큰 시민단체는 다른 사안에 머리가 복잡하다. 국민은 눈 돌릴 틈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생계에 이것저것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반발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가야 한다. 지금을 놓치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지금 밀어붙여야 MB입법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고, MB입법을 달성해야 내년 한 해 국정 드라이브를 걸 수 있고, 국정 드라이브에서 성과를 내야 내후년 지방선거가 레임덕의 서막이 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그러지 않았는가. 이제는 전쟁모드라고…. 

전쟁모드에선 물불을 안 가리는 법이다.

▲사진 = 김이태 한국건설연구원 연구원(위, '한겨레'에서 퍼옴)과 탤런트 맹봉학 씨(아래, '다음' 인물정보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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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대통령과의 대화-질문있습니다’라고 했던가? 제목 그대로다. 토론은 없었다. 질문과 응답만 지루하게 되풀이 됐다.

질문은 미적지근했고 응답은 두루뭉술했다. 최고의 핫이슈인 불교계 반발이나 재논란 조짐을 보이는 대운하에 대한 특화된 질문이 없었고 방송정책을 둘러싼 공방도 질문에서 빠졌다. 응답은 원론으로 일관했고 여기에 자화자찬이 더해졌다. 그나마 구체적인 내용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대화’가 ‘김 빠진 사이다’가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형식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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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분간 20개가 넘는 질문을 소화하려 한 게 무리다. 대통령의 모두 발언과 마무리 발언시간을 빼고 사회자의 이음 멘트를 빼고 나면 항목당 질문·응답 시간은 길어야 3∼4분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질문에 날을 세우고 답변에 알멩이를 채운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질문과 응답 모두 단문형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버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니까, 국정의 최고책임자이니까 정치·경제·외교·안보·사회·문화를 두루 다뤄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런 형식을 고수하는 한 누가 패널석에 앉든, 누가 주빈석에 앉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모든 걸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결과를 빚는다.

특화해야 한다. 대통령과 정말 진지하게 ‘대화’하려면 주제를 특화해야 한다. 그래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가능해지고 맥락과 실태를 두루 아우르는 응답을 유도할 수 있다.

전범이 없는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줬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그리고 ‘기자실 통폐합 토론’에서 보여줬다. 국가적 이슈가 된 하나의 사안을 놓고 심도 있는 ‘대화’, ‘끝장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이 형식을 차용해야 한다.

반론이 나올지 모르겠다.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주무부처 장관이 설명하면 된다는 반론이다. 그래야 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흘려버릴 얘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주장도 아니다.

개별 정책이 말 그대로 정책의 범주 안에서 논란이 되는 건 장관이 설명해도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과의 개별 인터뷰를 통해, 기자 간담회를 통해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는 국가적 이슈는 그런 게 아니다. 개별 정책이 정책 범위를 벗어나 정치 쟁점이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건 장관이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 정책 요소 외에 정무 요소를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특정 장관이 전권을 갖고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안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사안에 여러 부처의 권한과 책임이 얽혀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농수산식품부와 외교통상부가 얽혀 있고, 방송정책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얽혀 있다.

특정 장관을 불러다 앉혀놓고 국가적 이슈를 다루는 건 문제가 있다.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홍보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쏟아지는 국민 여론을 수용해야 하는 자리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건 정책 권한과 함께 정무 권한을 함께 갖고 있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말해야 하고 들어야 한다.

‘대화’를 소통의 한 양식으로 설정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일방적 홍보와 훈계가 아니라 꼼꼼히 설명하고 찬찬히 듣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소통을 하려면 절대적인 양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과 풍부한 근거 말이다.

제한되는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대화’ 주제가 한 이슈로 국한되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대화’를 ‘자주’ 하면 풀릴 문제다.

▲사진=‘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온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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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소신’은 의견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 누구나 다 안다. 소신은 의견이다.

그럼 이렇게 묻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소신은 의견일까? 그래서 표현의 자유를 맘껏 구가해도 되는 걸까?

한승수 총리는 그렇다고 했다. 어제 국회에 출석해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의 대운하 발언은 ‘개인적 소신’일 뿐이라고 했다. 대운하는 ‘끝난 얘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총리가 ‘끝난 얘기’라고 했으면 그렇게 믿어야 할 텐데 시중의 반응은 그렇지가 않다. 두 사람의 발언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어떤 게 더 진실에 근접한 것인지를 재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종환 장관의 소신을 ‘개인적 소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종환 장관의 소신을 의견이 아닌 사실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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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은 것이다. 소신이 사실로 간주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물은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소신은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다. 고위 공직자가 어떤 의도로 말을 하건 시중은 그것을 의지 또는 정책방향으로 읽는다. 한국은행 총재가 공식석상에서 말을 할 때 토씨 하나까지 꼼꼼히 고르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에겐 개인적 소신일지 몰라도 시중은 ‘시그널’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세 살 젖먹이가 아니고서야 이 평범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정종환 장관이라면 더 말 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되풀이 말했다. 이미 ‘끝난 얘기’를 국회에서 말했고 기자들 앞에서 말했다.

이쯤되면 옐로 카드를 꺼내들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경고 멘트라도 해야 한다.

‘입방정’으로 치부할 게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온 조치를 기준으로 삼으면 정종환 장관의 언동은 국론분열행위에 해당한다.

‘PD수첩’에 그러지 않았는가. 오역이 왜곡을 낳고 왜곡이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야기했다고 단정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사법당국까지 동원해 준엄한 단죄의 칼을 겨누지 않았는가.

인터넷에 그러지 않았는가. 이름 없는 무명소졸의 단순한 퍼나르기조차 여론을 왜곡하는 것으로 몰아 규제의 사슬을 채우려 하지 않았는가.

한 치도 가볍지 않다. 대운하가 갖는 폭발력이 미국산 쇠고기에 견줘 결코 가볍지 않다. 정종환 장관의 언동이 방송과 인터넷의 혹세무민 행위에 견줘 결코 가볍지 않다.

왜일까? 사안의 중대성이나 행위의 엄중함으로만 따지면 옐로카드가 아니라 레드카드를 꺼내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왜 말이 없고, 총리는 왜 ‘개인적 소신’이라고만 치부하는 걸까?

다시 읽고 다시 들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르지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이랬다. “대운하는 국민이 반대하면 추진하지 않겠다.”

정종환 장관의 말은 이랬다. “대운하는 국민이 필요하다고 할 때 다시 할 수도 있다.”

전혀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은 ‘국민이 반대하면’이란 가정법을 쓴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국민이 찬성하면’이란 가정법을 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정종환 장관은 동의이음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사진=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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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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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는 걸까? 본인은 그렇다고 하는데 느껴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그런 언사를 듣는 마음에 감흥이 일지 않는다. 전혀….

또 다시 ‘재협상 불가’를 선언해서만은 아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금지로 ‘퉁’ 치려는 태도 때문만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태도다.

대운하를 포기한다면서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라고 단서를 달아서만은 아니다. 공기업 ‘민영화’ 대신 ‘선진화’라는 생뚱맞은 단어로 논점을 피해가는 태도 때문만도 아니다. 이미 예상했던 태도다.

그보다 선행하는 게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이 대통령은 아직 뭘 ‘반성’해야 하는지를 깨우치지 못했다.

‘담화문’에서 ‘기자회견문’으로 바뀐 원고를 꼼꼼히 살피면 발견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반성’해야 하는 대목에서 ‘상황론’을 대고 있다.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쇠고기 협상을 서둘렀다고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계속 거부하면 한미FTA가 연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쇠고기 협상을 벌였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했다.

이건 ‘반성’이 아니라 ‘경위 설명’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밝히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의 논리를 적용하면 쇠고기 협상은 ‘오류’ 또는 ‘과오’의 결과물이 아니라 ‘부득이한 상황’의 부산물이 된다. 이 대통령이 머리 조아리고 정부가 석고대죄를 하더라도 '정상 참작의 여지'는 확보하게 된다.

납득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의 '반성'을 해석하자면, 마음이 급한 나머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지 못하는 불찰을 저질렀다는 것인데 '불찰'의 범위가 너무 좁다. '식탁 안전'을 위협하는 건 30개월 이상 쇠고기 뿐이지 30개월 미만 특정위험물질은 아니다. 

‘식탁 안전’ 만을 거론한 것도 문제다. ‘검역 주권’도 함께 제기하는 국민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국민은 내주지 않아도 될 ‘검역 주권’마저 송두리째 내준 정부의 ‘졸속 협상’을 성토하고 있다.  개혁 의지가 아무리 충천했어도, 한미FTA가 아무리 중요했어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많이 내줬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말이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이 대통령의 ‘상황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꼬인다.

어제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고 와서 전했다. 한미FTA가 미국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을 옥죄는 수단으로 쇠고기를 움켜쥐고 있었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판단했다고 한다. 똑 같이 한미FTA ‘상황론’을 얘기하는데 차원이 전혀 다르다. 한쪽은 한미FTA를 관철시키기 위해 손에 꼭 쥐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한미FTA를 위해 냉큼 풀어줬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주장과도 맞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확산 일로를 걷자 한나라당 지도부가 나서서 그랬다. 한미FTA와 쇠고기는 별개이니까 17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한미FTA를 처리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이런 한나라당과는 180도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바뀐 건 표현뿐이다. 5월 22일의 담화문에 포함됐던 ‘광우병 괴담’ 표현이 사라졌고, ‘송구’라는 단어는 ‘뼈저린 반성’이란 단어로 한 단계 격상됐다. 표현은 그렇게 변했다. 하지만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5월 22일의 담화문이나 오늘의 기자회견문이나 본질은 같다. '쇠고기 협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졸속협상이었다'고 인정하지 않기는 매 한가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재협상 불가’를 외친다.

변한 건 없다.

▲사진=지난달 2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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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