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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서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04 청와대-조선일보-송대성의 공통점은? (12)
  2. 2009/05/26 죽음…죽음…죽음, 그리고 따뜻한 보수 (16)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시국선언을 발표한 서울대 교수 124명을 거론하면서 말했다. "서울대 교수가 전부 몇 분인 줄 아느냐"고 반문하면서 "1700명 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소수 의견일 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밝혔다. 서울대 교수 124명의 성향과 위치를 한정했다. “이번 선언을 주도한 교수들 중 상당수는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소속으로 지난달 26일 전세버스를 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빈소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선언을 주도한 교수들은 5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서울대 교수 시국성명 때도 중심에 섰었다”고 하면서 “현재 서울대 전체 교수는 1786명”이라고 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이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부풀려 졌다며 그 예를 제시했다. “넥타이 매고 검은 옷 입고 조문 오는 친구가 한번 왔다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섯 번을 (조문을) 돌더라는 것이다”라고 했고 “봉하마을에 하루 20만 명이 왔다고 하는데 40명 기준으로 버스로 5000대가 와야 한다. 그 사람들이 오면 작은 골짜기가 뭐가 되겠느냐”라고 했다.

다르지만 같다. 말하는 주체는 3자이지만 말하는 내용은 하나다.

모두가 수의 논리에 집착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고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n분의 1로 자르려고 한다. 일부 세력에 지나지 않는데도 목소리만 큰 사람들로 색칠하려고 한다. 어차피 한통속인 사람들로 몰아가려 한다. 침묵하는 다수는 이들과는 다르다고 믿으려 한다. 그래서 나눗셈을 하고 뺄셈을 한다.

토 달지 않으련다. 한두 번 들은 얘기가 아니다.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듣고 또 들었던 얘기다. 3자의 주장은 한국의 보수세력이 수십년 간 애용해온 ‘일부 극소수 좌경(또는 불온)세력’이란 표현의 재생버전에 불과하다.

그저 한 가지 사실만 환기시키고 넘어가자. 수학을 그토록 좋아하는 3자이니 또 다른 수학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자.

쏟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치러진 후 각종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사가 여론조사결과를 쏟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이명박 정부와 각 정당에 대해 어느 정도 지지하는지, 정부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물어 그 결과를 봇물 쏟아내듯 발표했다.

일관됐고 공통됐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 안팎의 국민이 비판적이었다. 60% 안팎의 국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책임을 정부와 언론에 물었고, 60%가 넘는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을 지지하지 않았다.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일부 극소수 좌경(또는 불온)세력’을 빼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 안팎에 달하는 국민을 빼고 나면 도대체 ‘침묵하는 다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수의 논리를 좋아하는 3자에게는 누워 떡먹기보다 쉬운 수학문제이니까 답을 내놓을 것이라 기대한다.

▲사진=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장면 ⓒ민주당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철거민 5명이 죽었습니다. 그 뒤 그들은 도심 테러범이 됐습니다. 화염병과 시너로 무장한 채 옥쇄투쟁을 한 무서운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 뒤 영정은 파손됐고 유족은 폭행당했습니다. 추모집회 현장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 뒤 진실은 묻혀있습니다. 법원이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결정했지만 검찰은 한사코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회장이 죽었습니다. 그 뒤 동료노동자들은 폭력범이 됐습니다. 죽창으로 경찰을 마구 찔러댄 무자비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 뒤 묻혔습니다. 박종태 지회장이 죽음으로 말하려고 했던 화물노동자들의 처우는 묻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그 뒤 그는 못난이가 됐습니다. 측근비리를 막지 못한 사람이 됐고 비극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 뒤 조문객은 ‘잠재적인 시위꾼’이 됐습니다. 언제 촛불을 들지 모르는 요주의 대상이 돼 버렸습니다.

같습니다. 죽은 자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또 어떤 이는 ‘사회적 생존’을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존재의 조건과 존재의 이유를 부여잡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자들은 추모하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어떤 이들의 ‘해원’을 읍소하고, 또 어떤 이의 ‘번민’을 헤아리려고 합니다. 남은 자들은 그게 남겨진 자들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허락하지 않습니다.

생전이나 사후나 똑 같습니다. 법은 매정하고 공권력은 철통 같습니다. 가슴은 팍팍하고 눈물은 말랐습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습니다. 서슬 퍼런 찬 기운이 돕니다.


내일이 된다고 해서 찬 기운이 녹을 것 같지 않습니다.

김동길 명예교수가 했다는 말이 반증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야단법석”을 떠는 세태를 비판하며 “이 나라에는 법은 없고, 있는 것은 감정과 동정뿐인가”라고 한탄했다는 그의 말이 시사합니다.

이 나라에는 법만 있습니다. 그것도 눈물이 메말라 버린 ‘진시황의 법’만 있습니다.

감정과 동정이란 표현은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그 표현에 ‘부적절’이란 선입견이 깔려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신 배려와 이해란 말을 쓰겠습니다.

현 정권엔, 그리고 보수 집단엔 배려하는 마음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경쟁자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화하려 하지 않고 존중하려 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이해가 법과 상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이해는 법의 대체 개념이 아니라 법의 보완 개념인데도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배려와 이해는 법의 정당성과 법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개념인데도 현 정권과 보수 집단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득하려 하지 않고 굴종하기를 강요합니다. 법을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게 아니라 최우선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따뜻한 보수’는 없습니다.

▲사진=노무현의 눈물 ⓒ프레시안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