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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제왕적 총재 시절도 아닌데 무슨 영수회담이냐는 얘기는 생략하자. 그런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니까, 영수회담을 열어 합의를 볼 수 있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나으니까 굳이 토 달 필요는 없다.

문제는 내용이다. 손학규 대표가 영수회담 의제로 내놓은 품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학 등록금뿐만 아니라 물가, 일자리, 전월세, 저축은행, 가계부채, 한미FTA, 노사분규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총론으로 보면 민생문제 한 가지이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줄줄이 ‘지뢰밭’이다.

이 의제를 모두 논의하려면 날밤을 새워도 모자라다. 대부분이 돈이 들어가는 것들이고, 무엇 하나 쉬 합의하기 어려운 것들이기에 머리 맞대봤자 박치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영수회담 테이블이 웅변대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물론 방법은 있다. 정상회담 하듯 하는 것이다. 실무진이 회담 전에 의제와 합의 내용을 미리 조율하고 두 ‘영수’는 미리 작성한 합의문에 사인만 하는 것이다. ‘영수’가 만나 날밤 새는 게 아니라 ‘영수’가 만나기 전에 머리 맞대는 것이다.

한데 이렇게 하면 다른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국회다. 국회가 뻘쭘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 등록금은 교육과학기술위 소관이고, 물가는 기획재정위 소관이고, 일자리는 환경노동위 소관이며, 전월세는 국토해양위 소관이고, 한미FTA는 외교통상통일위 소관이다. 이렇게  국회의 각 상임위가 현안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영수회담 의제로 올려놓고 실무진들이 사전 조율에 나서 일괄타결을 시도하면 국회의 권능은 무시된다. 6월 회기를 열어 한창 논의하고 있는 국회를 개점휴업 상태로 내몬다.

그래도 좋다. 손학규 대표가 내민 의제 하나하나가 민생을 옥죄는 요인들이니까 다루는 장이 어디든 활로를 열기만 한다면 국민 입장에선 굳이 마다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손학규 대표 측에서 밝힌 것처럼 국회에서 쉬 합의를 보지 못하는 것들이니까 영수회담에서 일괄타결을 시도하는 게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회가 민생현안에 합의를 보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청와대에 있다. 4.27재보선 이후 한나라당 일각에서 ‘민생 프렌들리’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이견을 보였던 곳이 청와대다. 쉬 합의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근원이 청와대인데 그곳에 가 일괄타결을 시도한다는 건 의욕과잉의 소치이거나 현실무시 행태다.

손학규 대표가 진정으로 민생 난제에 활로를 열고자 한다면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목표를 하나로 정하고 집요하게 설득해야 한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 때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만나 해법을 모색했던 것과 같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해야 한다. 손학규 대표가 정녕 “(영수회담을 통해) 국민을 위한 결단이 내려지기를 희망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현실적이다.

손학규 대표가 지금 공을 들여야 하는 건 자신이 제반 민생문제에 두루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걸 웅변하는 게 아니라 단 하나의 민생문제만이라도 제대로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2008년 5월 청와대에서 만났다. ⓒ청와대

Posted by '토씨'


‘중앙일보’가 국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질타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오락가락 추궁을 한다는 게 근거다. 지난 2일엔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잠수사) 2명씩 들락날락 하면서 어떻게 46명을 구조하느냐”고 호통 치더니 어제는 서갑원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천안함 격실에 환풍기가 달려 있어 장병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최대 69시간까지 생존할 수 있다는 군의 주장은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였다고 따졌다며 이렇게 질책했다. <기사 보기>

기가 차다. ‘중앙일보’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질책이다.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천안함 격실마다 천장에 환풍기가 설치돼 있었다고, 전기 스위치로 닫을 수 있지만 방수기능이 별도로 갖춰지지 않은 환풍기였다고, 천안함의 전원이 모두 나가 환풍기를 닫는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불어 전했다. “(국방부 관계자가) ‘69시간 생존이 가능하다는 설명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 아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특별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고 전했다. <기사 보기>

‘동아일보’의 보도에 의거하면 서갑원ㆍ이정희 의원은 제기할만한 사실을 제기했고 추궁할만한 문제를 추궁한 것이다.

물론 ‘중앙일보’ 기사엔 없다. 두 의원의 추궁이 잘못됐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다만 비교했을 뿐이다. 닷새 전 같은 야당 의원의 질문 맥락과 180도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오락가락’ 추궁을 지적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그것이 정녕 문제라면 ‘중앙일보’, 나아가 모든 언론 또한 과녁에서 탈출할 수 없다. 언론도 어제 달랐고 오늘 달랐다. 내부폭발과 외부충격 사이, 기뢰와 어뢰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추정 보도’를 남발했다.

하지만 크게 탓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부각시키고 싶은 것만 부각시킨 언론이 없지 않고, 그들의 의도를 경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결과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면을 잘라 보면 성급한 추정과 섣부른 예단에 빠진 부실 보도임에 틀림없지만 군사정보가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빚어진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해당 의원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비공개로 제공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한, 의원들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도 ‘헛다리’를 짚었다는 확증이 서지 않는 한 국회의원들의 ‘추궁 환경’을 언론과 다르게 평가할 수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건 만은 그렇다.

‘중앙일보’가 질타할 대상은 국회의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아니라 국방부의 ‘용인할 수 없는 입씻기’다. 천안함의 내부 구조는 상세히 브리핑하면서도 격실 천장에 방수가 안 되는 환풍기가 달려있는 사실은 쏙 뺀 국방부의 처사를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그게 먼저고, 그게 본질이다.

국회의원의 추궁을 받아 확인 보도를 한 ‘동아일보’의 ‘대응법’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Posted by '토씨'

청와대의 진단은 명료하다. 문제의 근원을 이미지에서 찾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좌파들의 집요한 이념공세로 인해 마치 극우주의자인 것처럼 이미지가 왜곡돼 있다”고 보고, “이명박 대통령은 애초 비주류, 중도실용주의자였으나 대통령이 된 뒤 정당·이념 대립구도 속에서 오른쪽으로 비치게 됐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근원적 처방’을 이미지 개선에 맞춘다. ‘MB다움의 회복’ ‘중도 이미지 회복’을 위해 종교계·언론계와 같은 여론주도층과의 접촉면을 넓히고, 각종 소외현장을 찾아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늘린다고 한다.

사족 같지만 오해의 소지를 한 점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최대한 풀자. 그럼 이런 얘기가 된다.

청와대의 진단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잘못 한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곧 비주류·중도실용의 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한 건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권 인사들이 흔히 하는 말로 국민이 ‘오해’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진단에 따르면 정책기조는 잘못 된 게 없다. 이명박 정부는 줄곧 중도실용노선에 입각해 서민을 보듬는 정책을 펴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발생한 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정책이 좌파들의 이념공세에 의해 각색됐기 때문이다.

복습까지 마치고 나니까 눈이 좀 트인다.

청와대는 단정한다.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소통길에 문제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 길이 포장도로가 아니라 자갈길이어서 소통이 덜컹거렸다고 확신한다.

그래서인가 보다.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려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악의적 선동세력’에 점령된 방송을 구해낸 다음에 소통의 간선도로를 구축하려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보다. 서울시가 나서서 서울광장의 사용규정을 강화하고, 8월 1일에 개장하는 광화문광장의 사용여지를 틀어막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길거리 선동을 일삼는 좌파세력을 밀어낸 다음에 소통의 광장을 열려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보다. 엄연히 국회가 있는데도 사회통합위원회라는 것을 만들려는 이유가 소통길을 열기 위해서인가 보다. 정쟁만 일삼는 정당에 점령돼 상습 병목 현상을 보이는 국회 대신 별도의 소통 직행노선을 닦으려는가 보다.

말하지 말자. ‘악의적 선동방송’보다 ‘우호적 홍보언론’이 더 많고 더 세지 않았냐고 되묻지 말자. 좌파 세력의 길거리 선동보다 우파 세력의 길거리 구호가 더 우렁차지 않았냐고 셈하지 말자. 국회의사당이 병목구간이 된 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과속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따지지 말자.

국정쇄신 하랬더니 홍보쇄신에 나서는 청와대다. 소통 하랬더니 소탕을 꾀하는 청와대다. 더 무슨 말을 하고, 더 무슨 말을 듣겠는가. 청와대를 향한 소통(길)이 꽉 막혀 있는데….

 ▲사진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역으로 헤아리면 보인다. 여권이 로텐더홀을 먼저 ‘접수’하려는 이유를 살필 수 있다.

직권상정을 하려면 심사기일을 지정해야 한다. 이게 문제다.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건 곧 직권상정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민주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보좌진과 당직자를 총동원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의원들을 엄호하려 할 것이다. 본회의장 바로 앞의 로텐더홀에 인력을 증강배치해 직권상정 길에 바리케이드를 치려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심사기일을 지정하기 전에 로텐더홀을 먼저 ‘접수’해야 한다. 그래야 심사기일 지정과 직권상정 사이의 시간적 간극과 물리적 마찰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여권의 흉중이 이렇다. 작심한 것이다. 직권상정을 통해 85개 중점법안을 강행처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궁금하다. 왜 이리 강수를 두는 걸까? 여야 원내대표가 이룬 ‘가합의’를 한순간에 휴지조각으로 만든 이유가 뭘까? ‘가합의’를 잘 손질하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모양새 좋게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데도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뭘까?

물론 간단하다. 강경파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이명박계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가 '가합의'를 일거에 내쳤기 때문이다.

관심사는 이런 현상이 아니다. 강경파가 무리수를 감수하면서까지 '가합의'를 부정해야 했던 이유, 이게 궁금하다.

시간이다. 이것이 문제다. 이들은 시간을 질질 끌 만큼 여유롭지가 않다. 오히려 절박하다. 그래서 다급해하고, 그래서 경직되는 것이다.

몇 개의 어록에 새겨져 있다. 여권의 다급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 내년 2월이 되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상황을) 구조적 문제로 돌리게 되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 (12월 1일, 박근혜계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 (한미FTA)문제가 새해로 넘어가 3월에 춘투와 결합이 되게 되면 소위 FTA 문제를 중심으로 반대세력들이 결집하고 또 3월 춘투상황과 같이 뭉치면 국가 경영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온다. (12월 23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 - (민주당 의원들은)시간 끌어서 이명박, 한나라 아무것도 못하게 해서 4월 춘투로 모티브를 잡겠다는 것이다. (12월 31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 공히 걱정한다. 올 봄에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오는 걸 우려한다. 제2의 촛불이 켜지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여야 원내내표가 ‘가합의’한 대로 쟁점법안 처리를 미루면 갈등이 ‘봄’을 관통한다. 단순히 스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봄 정국에 기름을 붓는다. 그래서 차단하려는 것이다. 무리수가 따르더라도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쟁점법안 처리를 마무리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쟁점이 뇌관이 되는 일을 방지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봄’을 통제하는 법적 장치를 완비하려는 것이다.

결국은 이런 것이다. 체념을 강요하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쟁점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자포자기의 심정을 유발하고, 그래도 불복하는 사람들은 억누르려는 것이다.

잘될까? 여권의 이런 셈법이 먹혀들 수 있을까?

그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게 아니라 앞서 복기한 어록이 가능해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정길 대통령실장 말에 따르면 문제의 근원은 ‘구조’에 있다. 법안이 아니라 먹고살기가 어려워지는 ‘민생구조’에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와 박종희 의원의 말에 따르면 법안 강행처리에도 불구하고 ‘상수’는 엄존한다. 한미FTA는 먹고살기에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상수’로 기능하고, 춘투는 생존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분명하다. 여권 인사들의 진단에 따르면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 85개 법안과는 무관하게, 직권상정과는 무관하게 ‘속불’은 계속 타들어가게 돼 있다.

강행처리가 자포자기의 정서를 유발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어설프다. 객관적 판단보다는 주관적 희망에 경도돼 있다. 85개 중점법안을 기정사실로 만들면 오히려 공분과 결기를 강화시킬 수 있다. 차라리 현재진행형의 ‘쟁점’으로 남겨두면 타협의 여지에 주목한 국민들을 방관 지대에 머물게 하련만 과거완료형의 ‘현실’로 굳혀버리면 배수진을 친 극한적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여권 내 온건파가 그토록 우려했던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파동과 같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여권 입장에선 이런 부작용을 감안해도, 이런 부작용이 우려돼도 어쩔 수 없다.

멈칫 대면 뒤에서 공격당한다.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물 정부’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고, 떠나는 보수 지지층을 속절없이 배웅해야 한다.

이럴 바에는 밀어붙이면서 상황을 관리하는 게 낫다. 일단 85개 법안과 ‘봄’의 연결선을 끊고, 개각과 같은 국정 이벤트를 펼쳐 상황을 희석시키는 게 낫다. 사태를 예의주시하다가 불복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이른바 ‘사회질서법’을 앞세워 통제하는 게 낫다.

장사 비법은 ‘단골’ 확보에 있고, ‘단골’ 유지 비법은 ‘한결같음’에 있다.

▲사진 = 국회 경위들이 3일밤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중이던 민주당 당직자들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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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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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할 게 있다. 현판이다. 불길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숭례문 현판을 국회에 걸었으면 한다. 원판을 걸기가 어려울테니까 탁본이라도 만들어 국회의사당 입구에에 걸기를 권한다.

이유가 있다.

정말 가관이다. 모두가 '네탓'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통합신당은 '한나라당 탓'이라고 하고, 한나라당은 '노무현 탓'이라고 한다.

통합신당은 숭례문을 개방한 이명박 당선자, 관리책임을 맡은 서울시장과 중구청장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귀책사유를 거론한다.

한나라당은 국가 차원의 문화재 관리시스템이 허술하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쓰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문화재 방재에 쏟아보라고 공격한다.

뻔하다. '네탓'의 동의어인 '면피' 때문이다. 국민을 허탈과 분노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화재사건에 발이 데면 총선 표가 떨어진다. 독박이다. 반대로 상대에 책임을 씌우면 어부지리를 얻는다. 대박이다.

속내를 살피니까 속이 뒤집어진다. 누가 누구를 탓할 계제가 아니다. 그럴 때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아니다.

조문 날에는 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는 게 예의다. 문화국치일을 맞았다면 더더욱 예를 갖춰야 한다.

'똥 묻은 개'와 '겨 묻은 개'가 짖고 싸우면 매 타작을 받거나 뜨거운 물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너'나 또 다른 '너' 모두 잘한 게 없다. 딱 하나만 얘기하겠다.

2005년에 낙산사가 화재로 전소됐다. 보물인 동종이 녹아내렸고 법당이 무너져 내렸다.

그 때도 지금 못잖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때라고 해서 문화재 관리·방재 문제가 제기되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국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문화재 관리·방재를 일원화하고 체계화하는 일을 법률로 강제한 적도 없고, 문화재 관리·방재 예산을 듬뿍 올려준 것도 아니다.

다른 국회가 아니다. 어제 문화관광위에서 '네탓' 공방을 연출한 제17대 국회 얘기다. 지금의 국회의원이 3년 전의 국회의원이었고, 지금의 정당이 그 때의 정당이었다. 이런 마당에 누가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거듭 말하지만 숭례문 현판 탁본이라도 국회에 걸어야 한다.

'숭례(崇禮)'는 '예(禮)를 높인다'는 뜻이다. 딱 맞다. '례(禮)'가 뭔지를 모르는 국회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금언이다.

'숭례문' 현판이 내걸린 이유가 관악산의 불길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이 역시 딱 맞다. 걸핏하면 싸움질로 국민의 화를 돋우는 곳이 국회다. 국회의 불길을 누를 필요와 이유는 충분하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