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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는 억압받는 촛불의 편에 서 주세요."

지난 23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청 앞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다. 정진석 추기경을 만나겠다는 한 무리의 시민들과 이를 막는 경비들의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늦더위 속에 거센 몸싸움을 벌인 이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교구청 앞에 돗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단식을 시작했다. 5일간 펼쳐진 농성의 시작이었다.

50대 회사원과 중년의 아주머니, 일흔이 다 된 할머니 등은 정 추기경을 만나기 전에는 한 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며 곡기를 끊었다. 5일간 물과 소금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이들은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모두 천주교 신자였던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는 느닷없이 왜 서울대교구 교구청으로 달려가 단식농성을 시작하게 됐을까. 사회단체 활동가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그들. 그저 평범한 '무명씨'일 뿐인데, 생업과 가정을 접고 거리로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대개 인터뷰를 사절해서 그 가운데 올해 쉰둘의 박정훈(가명, 중소기업 전무이사)씨를 28일 전화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올봄 여중고생들로부터 촉발된 촛불집회에 저도 자주 참여한 것 같아요. 유신과 군사정권, 민주정부 시절을 보내면서 한국사회가 많이 변했지만 고질적인 병폐는 여전하지요. 산업현장에는 부정과 부패, 뒷거래가 횡행하거든요. 뒷거래 없이는 견딜 수가 없어요.

개인적 양심으로는 부정한 짓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수치심이 있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못 버틴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부정부패가 정말 많이 사라졌지만, 잔존 찌꺼기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도로 활개 치기 시작했어요. 20년,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지요. 그동안 쌓아온 '민주 성장'이 급격하게 퇴보하는 걸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촛불을 들었죠."

박씨는 절박하다고 했다. 업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일일이 모두 다 전달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직감할 것이라고 했다. 뒷돈 없이는 살 수 없는 부조리의 시대가 다시 온다면 그 얼마나 암울하겠냐고 그는 개탄했다.

물론, 본인은 이미 쉰 살이 넘어 살아야 할 날들보다 산 날들이 훨씬 많지만, 당장의 문제에 눈감고 있자니 후대의 삶이 걱정된다고 했다. 부정과 부조리에 눈감고 편승하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단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봄 지나 여름 되니 어느덧 KBS와 MBC 앞을 전전하며 '공영방송 사수' '방송 민영화 저지'까지 외치게 됐다고 했다.

촛불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로 촉발됐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현안마다 촛불을 들며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고 일갈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며 이를 갈고 정권교체를 준비해온 것에 비해 진보개혁진영은 '허송세월'을 한듯 하여 답답하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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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의 위정자가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일을 추진하는 게 가장 큰 문제지요. 하지만 진보개혁세력들이 얼마나 상황을 간과했는지, 반대로 수구세력은 얼마나 이를 갈고 준비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조중동의 왜곡보도에 따라 검찰과 경찰이 무리하게 네티즌을 탄압하고, 촛불을 모조리 잡아들이려 하고, 무고한 시민을 향해 색소탄을 쏘고, 국민을 돼지몰이 하는 등 민주국가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터지는 데도 소위 민주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무력하게 판판히 깨지며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야말로 한국은 '조선일보의 나라'인가 속으로 곱씹고 또 곱씹게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면 지지 세력을 복원하고 진보개혁세력을 무력화 할 게 뻔해 보이는 상황에서, 진보 쪽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힘도 없이, 관망하는 아주 슬픈 상황이 된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같은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던 중년의 '등촌동 아주머니'와 '할머니' 등과 함께 명동성당으로 달려가게 됐다고 했다. 촛불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벌인 '작전'이었다고 했다. 같은 천주교 신자로서 교회에 읍소를 해서 종교인들이 나서면 조금 더 달라진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대했다고 했다. 이것도 이름 없는 '무명씨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게다.

천주교 최고 지도자의 적극적인 힘을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의 씨앗은 발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27일 오후 5일간 외면해오던 그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정 추기경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의 다양한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줄 것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나 자신도 부족하지만 국민의 뜻과 함께 하고 행동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씨는 "추기경님께서 내용상 표 나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지만 촛불의 시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며 "교회 전체가 당장 나서지는 않는다 해도 어떤 상황이 만들어지면 촛불의 소리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큰 변화를 만들 수는 없어도 '무명씨'들의 이런 노력이 쌓인다면 한국사회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87년 6월항쟁과 달리 2008년 촛불운동은 주도세력이 없는 자각된 시민 일반의 불복종운동이라는 점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87년 당시에는 그야말로 깨어 있는 대학생들이 전면에 나서 시국의 문제점을 부각했지요. 지금은 일사분란 한 조직체계도 없고 긴밀한 네트워크도 없어요. 촛불시민은 개인들이기 때문에 정권이 작정하고 구속하고 탄압하면 숨을 수밖에 없죠. 전사 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다 생업이 있고.

그래서 정부도 쉽게 보고 조중동 광고중단 운동한 일반 시민들 막 잡아가는 것 같아요. 아무렇게나 무력을 휘둘러도 일개 시민이 뭘 대응하겠냐는 식인 거죠. 네티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거고. 촛불시민은 구심점이 없으니까 쉽게 스러질 수 있어요. 저도 그렇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데. 촛불이 그냥 스러지기에는 대한민국의 앞날이 너무 걱정되는데. 뭐라도 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쉰이 넘은 나이라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때도 묻히고 살 법하다. 더군다나 중소기업 중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박씨는 그냥 이렇게 촛불이 스러져가는 것을 바라만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든단다. 사람들을 모아 명동성당으로 달려간 것도 다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의 이런 열정은 한국사회의 중요한 자산 아닐까. 박씨야말로 시인 김수영이 노래한 '풀'처럼 가장 먼저 눕고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촛불민초'가 아닌가 싶다.

무명씨도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절박감을 갖고 있는데, 진보개혁 정치인들은 어떤 절박감을 갖고 있을까. 오늘 아침 조간에 실린 민주당 당직자들의 줄넘기 사진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 사진은 아고라에서 발췌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1.
언론은 ‘개’입니다. ‘파수견’이라고들 부르죠.

사명은 짖는 것입니다. 어둠을 가르는 발소리가 심상치 않으면 무조건 짖어야 합니다. 발소리의 주인공이 도둑이든 방문객이든 무조건 짖어야 합니다. 그렇게 짖어서 주인을 깨워야 합니다. 물론 그 다음 일은 집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죠.

언론과 비슷한 존재가 있습니다. 의사입니다. ‘파수견’에 빗대자면 ‘안내견’ 쯤 되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이 진찰을 요청합니다. 연신 기침을 해대는 사람입니다. 정확한 병명은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의사는 당장 주의를 줍니다. 병명이 감기인지, 폐렴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담배를 피우지 말고 찬바람 맞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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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누구도 욕하지 않습니다.

집 주인이 촛불을 들고 살펴보니 도둑이 아니라 방문객이었다고 해서 개를 개 패듯 하지는 않습니다. 짖는 소리가 컸다고, 너무 자주 짖었다고 발로 차지 않습니다. 파수견은 파수견으로서의 역할을 다 한 것입니다. 그런 파수견을 패면, 그래서 다시는 짖지 않으면 나중에 도둑이 들었을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에게 삿대질을 하지 않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폐렴도, 감기도 아니고 단지 사레 들린 것으로 판명났다고 해서 왜 담배를 못 피우게 했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사로선 상대방이 최적의 환경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 의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건강 예방법은 들을 수 없습니다.

3.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IMF의 악몽입니다.

IMF 환란이 터진 직후 종합지의 한 경제 기자가 신문지면에 ‘반성문’을 실었습니다. ‘펀더멘탈은 튼튼하다’는 정부 말만 믿고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소홀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IMF 환란을 막지 못했다고 반성했습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만약 이 기자가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그런데도 IMF 환란이 터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이 기자는 혹세무민하는 기자가 됐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기자가 당시 충분한 경제 데이터를 갖고 분석하고 해석해서 판단을 내리고 그래서 경보음을 울렸다면 결과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게 ‘파수견’의 역할이라고 확신합니다.

4.
맥은 모두 같습니다. ‘파수견’이나 ‘안내견’이나 경제 기자나 모두가 ‘가능성’의 영역에서 논해지는 존재들입니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고 ‘합리적 의심’에 기초해 경종을 울리고 예방을 해야 한다는 명제, 이 명제 위에서 비교되고 교차되는 존재들입니다.

‘PD수첩’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 즉 미국 쇠고기가 한국민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주관적으로, 일방적으로 지어낸 가능성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공론화됐고 당시도, 지금도 논의와 연구가 진행 중인 가능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더불어 졸속협상으로 그 가능성이 ‘만에 하나’에서 ‘만에 둘’로 확대될 또 다른 가능성을 경계한 것입니다.

5.
이런 ‘PD수첩’을 단죄하려고 합니다. 검찰이 나서서 기소를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가당치가 않습니다. 검찰의 사실상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140쪽에 이르는 공개질의는 가당치가 않습니다.

검찰의 행태가 가당하려면,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PD수첩’의 보도내용이 ‘조작’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검찰이 주장한 ‘왜곡’ ‘과장’에 의도성을 얹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다우너 소는 ‘절대’ 광우병과는 상관없다는 사실, 크로이츠펠트 야콥병(CJD)과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인의 MM형 유전자와 광우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확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정반대의 입장에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제기한 ‘PD수첩’의 보도내용은 ‘조작’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사실이 그렇지가 않다면 검찰의 으름장은 ‘파수견’을 개 패듯 패고 ‘안내견’에 삿대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6.
아, 한 가지 사실을 덧붙여야 겠네요. 경제 기자 얘기가 나왔으니까 추가하는 겁니다.

IMF 당시 경제를 총괄했던 사람은 강경식 경제부총리였습니다. 이 사람이 기소됐습니다. 환란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판결은 무죄로 나왔습니다. 법원은 정상적인 직무범위 안에서의 정책 판단에 대해서는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수백 만 명의 직장인을 거리로 내몰고 수많은 가족공동체를 파탄 냈던 IMF 환란의 당사자에게 내린 판결이 이랬습니다. 고의로 환란을 유도한 게 아니라 단순한 판단 착오로 인한 것이었다면 정상적인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포인트는 ‘판단’입니다. 수집된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해서 내린 판단에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는 게 당시 법원의 판결 취지입니다.

이 사실을 토대로 검찰에 꼭 묻고 싶네요.

판단의 자유를 구가하는 주체는 오직 정부 당국자여야 한다는 법은 설마 없겠죠?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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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나올 거야?"
"나갈 거야."
"조심해."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행진에 참여했다 시위군중과 전투경찰 대치전선에서 방패를 든 아들과 마주친 '촛불시민' 아버지 이야기가 잔잔한 화제다.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형사였던 아버지가 쫓기던 대학생의 뒷덜미를 잡고 보니 아들이었다던 21년 전 추억까지 인구에 회자될 정도로 대한민국은 다시 국민항쟁으로 후끈 달아올라있다. 

지난 2일 새벽까지 밤이슬을 맞아가며 서울의 거리에서 1박2일 국민엠티를 치른 이웅 씨. 그를 첫 번째 '무명씨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소개할까 한다. 올해 마흔여덟인 이 아저씨는 인터뷰를 계속 사양했다. 세간에 별스럽게 취급되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아유~ 넉 달 뒤엔 우리도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이 될 텐데요. 아들은 아들대로, 저는 저대로 각각 자기 일을 한 건대, 공연히 말나는 게 싫은데. 쑥스럽고, 할 말도 없어요.^^"

재작년 10월 전투경찰로  입대한 아들이 올 10월이면 제대하는데 자칫 아들에게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겪은 그날의 기억을 잊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는 또박또박 그때 이야기를 전했다.

방패 들고 씩 웃는 아들 보고 머리가 '쭈뼛'

지난 1일 밤 10시, 이웅 씨는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앞 효자동 길에 서 있었다. '고시철회' '협상무효'가 적힌 빨간색 종이를 들고 다른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시내 곳곳을 누비던 터였다.

밤이 이슥해지자 경찰 방송차량의 선무방송이 시작됐고, 옮기는 발걸음마다 행로가 막힌 시민들은 경찰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서울 세종로와 광화문 일대 도로 한 가운데 세워진 닭장차와 닭장차 사이에는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도록 촘촘히 차벽을 쌓았고, 전투경찰들의 군홧발과 방패도 간격을 두지 않고 딱 붙여놓았다. 청와대로 가는 길은 모두 막힌 상태였다.

가진 '무기'라고는 500ml짜리 생수통뿐인 시민들은 방패에 살갗을 대고, 군홧발에 운동화로 맞서며 대치했다. 경찰과 대치한 수만 군중 사이에 섞인 이 씨도 목이 쉴세라 구호를 외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노래도 목청껏 불러재꼈다. 방패 든 전경들이 시민을 에워싸고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자, 그는 아들이 걱정됐다. 맨 앞줄에 선 전투경찰을 붙잡고 물었다. 

"어디 소속이에요?"
"…"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시커먼 개미행렬처럼 전투모를 착용한 전경대열 속에서 아들이 씩 웃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지만, 아들 녀석이 맞았다. 이 씨는 그날 오후 아들의 전화를 받아 출동할 줄은 알았지만 현장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막히면 돌아가면 되고, '되고송'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투경찰을 향해 한발, 한발 움직였지만 이 씨는 한동안 한 발짝도 꼼짝 할 수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든 사람들이 동공에서 흐려졌고, 아들의 웃는 얼굴만 또렷해졌다.

"더 있기 어려웠어요.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 자리를 떴죠."

"애가 잠 못 자는데 애비는 잠 자니? 같이 새워"

이 씨 입장에서는 같은 편끼리 싸우는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웠던 게다. 군복만 입지 않았다면 아들도 시민 편에 섰을 테니까. 안타까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격렬해진 몸싸움에 한 몫이라도 보태야했지만 그는 발길을 돌렸다.

"어떻게 할까."
"뭘 어떻게 해. 애도 길거리에서 잠 못 자고 대치하는데, 애비는 잠자니? 같이 새워."

아내의 쿨한 목소리는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아들이 군복 입고 선 것이야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아이들이 미친 소를 먹고 광우병 걸리지 않도록 막는 몫은 당신이 해야 할 일 아니냐는 똑부러진 말솜씨에 그는 다시 삼청동으로 갔다.

"효자동으로 다시 가는 건 애비로서 도저히 못하겠고, 삼청동 쪽에 있었어요."

물대포에 맞아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위해 모닥불을 지폈고, 목이 쉰 사람들에게는 생수를 사서 나눠줬다. 새벽까지 무리를 지어 촛불행진을 하는 군중에게는 박수를 보냈다. 시위 군중을 위해 기꺼이 몸을 던져 '자봉'에 나섰지만 맘 한켠에는 아들이 계속 남았다. 다치고 연행된 건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슬픈 현실이라는 생각에 맘도 서늘했다.

이 씨는 2일 아침 8시 30분이 돼서야 집으로 향했다. 길거리에서 아들과 더불어 꼬빡 밤을 새웠다. 서로 서 있는 위치는 달랐지만, 그렇게 한 공간에 공존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걱정하는 사이, 아들은 어땠을까.

"청바지에 하얀 운동화 신은 아저씨만 보면 아빤가 했어. 출동 끝내고 서에 복귀해서도 혹시 우리 아빤가 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둘러보고 그랬지."

2일 오후 늦게 아버지 이 씨에게 전화한 아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겼다. 아버지 또한 아들이 시위대와 몸싸움하다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단다.

그는 경찰이 이름표를 떼고 시민을 향해 과잉진압을 한 바에 대해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겠냐고 의문부호를 찍었다. 군인은 상부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조직이지 결코 자의적 판단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게다.

"경찰 내부에도 불만이 상당한 것 같아요. 국민들은 비폭력 평화집회를 원하는데 경찰이 강경 진압했으니까. 저 같은 무지랭이는 잘 모르지만, 어청수 청장도 인적 쇄신 대상에 오르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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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이 씨는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 복학생 형이었다. 최루탄 몽둥이를 피해 다니다 결국 경찰에 붙들려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 씨는 21년 전 그날과 2008년 오늘을 비교했다.

"87년 6월항쟁 당시에는 민주대학생협의회, 서울시대학생연합 같은 지도부가 있었어요. 일단 지도부가 정하면 따라갔고,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도부가 없어요.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한데, 그래도 조화로운 게 참 신기해요."

80년대가 장엄했다면 지금은 재밌다

80년대는 장엄했다면 2008년은 신나고 재밌다는 게 특징이란다. 80년대에도 지금처럼 목에 태극기를 걸고 애국가를 불렀지만 그때와 분위기는 딴판이라는 것. 그땐 퍽 슬펐고, 심각했지만 지금은 화가 나고 불쾌한 상황인데 배꼽을 쥐게 하도록 웃긴다는 게다.

"요즘 군중은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시위에 나서는 것 같아요. 행복한 삶의 질을 누군가 떨어트린다는 걸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여기는 거죠."

불과 1년 전만해도 한미FTA 반대집회는 썰렁했다. 운동권이 주도한 깃발과 플래카드, 피켓에 사람들은 식상해 했다. 그러나 벌써 한 달 째 이어진 촛불행진의 주인공들은 인터넷 카페 회원들이다. 패션과 인테리어, 요리, 프로야구 팬 등이 주를 이룬다. 유모차부대에 이어 '하이힐부대'도 출현했다. 미니스커트부대도 나왔다. 이들이 '대한민국 웰빙 저해세력'을 용납할 리 없다.

이 씨는 한때 20대 대학생들의 정치참여율이 낮아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평가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 빠져 지내는 10대에 부정적 시선을 던졌다고 했다. 촛불문화제를 통해 그는 선입견의 때를 벗겼다고 했다. 미래세대에 기대를 걸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는 게다.

"국민이 이명박 씨와 5년 계약하고 청와대에 방 빌려줬는데, 계속 계약위반하면 위약금 물더라도 방 빼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새발의 피예요. 경부운하, 의료보험 민영화, 상수도 민영화 등등 어떻게 해요 정말?"

이 씨는 오늘의 항쟁이 좋은 선례를 남겨 정부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통상마찰 운운하는데 국민건강보다 그게 우선이냐고 되물었다. 내각이 총사퇴해도 네티즌은 촛불을 끄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누구의 말대로 '닥치고 재협상'이 국민적 요구니까. 마지막으로 이 씨는 아들에게 딱 한 마디하고 싶다고 했다.

"제발 다치지 말아라, 하나뿐인 내 아들아."

▲사진=지난 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이웅 씨는 사진 찍기를 극구 사양했다.

Posted by 비회원

이명박 대통령은 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단독 회동을 제안했을까? 박근헤 전 대표는 왜 이런 제안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을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선 비교적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궁지에 몰려있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면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한나라당 안에선 청와대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궁하면 손을 내미는 법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과 국민 지지도가 간절했을 법하다.

박근혜 전 대표도 그리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다. 복당을 거듭 요구했지만 메아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끌려 다닐 수도 없다. 그러면 자신의 이미지가 계파의 이익만 좇는 정치인으로 더욱 고착화될뿐더러 자기 계파에 대한 영향력도 약화된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과 공존을 모색하든 결단을 내리든 선택을 해야 할 처지다.

궁금한 건 따로 있다. 왜 하필 지금일까? 궁금한 건 바로 이것이다.

때가 좋지 않다. 단독 회동이 ‘기브 앤 테이크’의 자리라고 전제하면 그렇다. 일반적 예측처럼 박근혜 전 대표가 복당을 ‘테이크’ 한다면 등가 품목을 ‘기브’해야 한다. 지금 정국이라면 ‘광우병 파동’의 소방수를 자임하는 게 가장 훌륭한 ‘기브’ 품목이 될 것이다.

이미 일단이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어제 스티븐 스미스 호주 외교장관을 만나 한 마디 했다. “미국이 몇 년 동안 광우병 발생 사례가 없기 때문에 완전하게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해결책은 아주 간단하지 않느냐”며 “광우병 소가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해도 좋다고 미국이 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광우병 파동’ 진정책으로 내놨던 방안과 똑같다.

근데 공교롭다. 오래 갈 것 같지가 않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 회동을 한 다음날 출국한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방문하기 위해서 국제선 비행기에 오른다. 일정이 9박 10일이다.

이게 문제다. 소방수의 역할은 당장의 불을 끄는 것이다. 이 역할과 9박10일의 일정은 호응하지 않는다. 그래서다. 거래 품목이 ‘복당’과 ‘소방수’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럼 뭘까? 단독 회동이 ‘기브 앤 테이크’의 자리라면 어떤 품목이 거래되는 걸까?

주목할 현상이 두 개 있다. 최근 박근혜 전 대표 쪽에서 ‘중대 결심설’이 흘러나온 게 하나다.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이중화법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그게 해법이라면”이라고 단서를 달았고, 특별법 제정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두 개의 현상과 어제의 발언을 종합하면 하나의 가설이 성립한다. 미국이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해도 좋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걸 거부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그러면 박근혜 전 대표의 재협상 단서는 충족된다. 다른 해법이 막혔으니까 재협상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더불어 ‘중대 결심’의 명분도 충족된다. 미국의 강경 태도를 빌미삼아 재협상을 정부에 요구하더라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는 만큼 선을 그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를 민심에서 이반한 정부로 규정하고 ‘중대 결심’을 실행에 옮길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 된다면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치유하기 힘든 내상을 입는다. 국민 지지도가 더욱 빠지고 한나라당은 원내 과반 정당 지위를 상실할 뿐 아니라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박근헤 전 대표가 재협상을 선창하는 것만으로도 타격은 크다.

이렇게 보면 단독 회동은 예방적 성격을 띠는 자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광우병 보폭’을 줄이는 게 1차 예방책이고, 박근혜 전 대표의 ‘중대 결심’을 막는 게 2차 예방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시 말해 1차 예방책에만 집중하려 할지 아니면 이참에 분란 요인을 완전히 제거하려 할지에 따라 거래품목이 달라지겠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흐름은 잡혔다고 보는 게 맞다.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기브 앤 테이크’ 이후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바라는 상황은 자신이 호주·뉴질랜드를 방문하는 동안 ‘광우병 파동’이 가라앉는 것이다. 그러려면 미국이 숨통을 틔워줘야 하고 국민이 수긍해줘야 한다. 문제는 이런 바람이 실현되지 않는 경우다. 만에 하나 ‘광우병 파동’이 계속될 경우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 지지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차기‘를 관리해갈 수 있을까? 이게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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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시장원리를 신봉한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공기업 민영화나 규제완화를 강력히 추진하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광우병 쇠고기도 그렇다. 시장원리로 접근한다. 그래서 문제될 게 없다고 한다.

청와대의 '쇠고기 시장원리'를 추려보자. 세 개의 표본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 이명박 대통령

▲일본의 화우 같은 것은 우리 쇠고기 값의 10배다. 소 한 마리 가격이 1억 원 하는 소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 우리도 얼마 안 있으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데 그러면 일본처럼 개방해도 최고의 쇠고기를 먹으려는 수요자가 많아질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

▲월령 30개월 이상 소를 민간업자들이 수입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 청와대 핵심관계자

이 가운데 우선 두 개의 표본만 언급하자. 공통점이 있다.

▲장사꾼이 어떤 사람들인가? 손해 보는 일은 절대 안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국민들이 소 닭 보듯 할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망할 테니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할 것이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으면 수요가 고급화돼 값 싸고 질 낮은 쇠고기는 자연 도태될 것이다.

그럴 듯하다. 경제학의 ABC에 충실한 논리 같다. 하지만 아니다. 경제학의 DEF가 반박한다.

▲상술의 기본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이 기본 상술을 구현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왜냐고? 정부 방침대로 모든 식당에 원산지 표시를 강제한다고 해도 월령을 알아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장사꾼이 송아지 고기라고 우기면 그런 것이다.

▲지금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이니까 3만 달러 시대가 도래하면 소득은 50% 증가한다. 반면에 쇠고기는 (최고치로 잡았을 때)1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상승하니까 1000%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국민은 지금보다 20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부 극소수 부자를 제외하곤 수요가 많아질 턱이 없다.

이렇게까지 세밀하게 들어갈 필요도 없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하나의 표본이 다른 두 개의 표본을 부정한다.

▲미국산 쇠고기는 값이 싸고 질이 좋다. 그런데 굳이 30개월 이상과 미만을 가를 이유가 무엇이고, 굳이 1억 원짜리 비싼 쇠고기를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 그냥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사 먹으면 된다.

정리해 놓고 보니 확연해진다. 청와대는 첫단추를 잘못 뀄다. 미국산 쇠고기는 값 싸고 질 좋다는 평가를 섣불리 내렸고, 그런 어설픈 평가를 국민에게 인식시키려 했다.

청와대가 깔아놓은 좌판에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건 당연하다. 청와대는 '골라, 골라'를 연신 외쳐대지만 소비자들은 고를 마음이 전혀 없다. 그걸 '땡' 제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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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인터넷 5대 괴담' 관련 도표

'디지털 마오이즘'이란다. '인터넷 괴담'이 유포되면서 집단적 감성주의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바로 '디지털 마오이즘'의 일환이라고 한다. 인터넷의 최근 흐름을 "미국 미래학자 재런 러니어 씨가 2006년 인터넷을 통한 감성적 집단주의의 위험을 극단적 좌파나 우파, 마오이즘, 독일 나치즘 같은 집단주의 운동에 빗대 사용한 ‘디지털 마오이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가 행한 성격 규정이 이렇다.

<중앙일보>도 같다. "인터넷이 '정보 소통에 기반한 합리적인 토론' 대신 '감성에 의존하는 다수의 횡포'에 물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근거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동아일보>는 인터넷 종량제, 독도 포기, 수돗물값 14만원 등 이른바 '인터넷 5대 괴담'을 선정해 조목조목 그 허위성을 밝혀낸다. <중앙일보>도 비슷하다. 같은 사례를 분석하면서 '인터넷 괴담'의 '진화과정'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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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인터넷 진화과정' 관련 도표와 사진

할 말이 없다. 두 신문의 지적은 타당하다. 당국이 아니라고 전면 부인하는 것이 있고, 누가 봐도 아닌 것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인터넷 괴담'을 '사실'로 받아들일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이견을 달 여지가 거의 없다.

근데 왜일까? 석연치가 않고 흔쾌하지가 않다.

며칠 전에 그랬다. 두 신문은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한국인 유전자에 대한 우려를 '광우병 괴담'으로 일축했고 나아가 다른 광우병 우려 또한 '괴담'으로 치부했다.

한정했었다. '괴담'을 광우병으로 한정해 논전을 펼치려고 했다. 지금은 아니다. 앵글을 넓히고 있다. '광우병 괴담'에서 '인터넷 괴담'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석연치 않은 게 바로 이것이다. 두 신문의 질타를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도 이것이다. 의도가 읽혀진다. 외곽 때리기다.

광우병 우려를 단번에 제어하기는 어렵다. 걷잡을 수 없이 번졌기 때문이다. 두 신문이 '광우병 괴담'의 핵심으로 꼽았던 한국인 유전자 문제는 정부조차 우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기갑 민노당 의원이 어제 공개한 농림수산식품부의 문건에 그렇게 기재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외곽을 때리는 게 한 방법일 수 있다. 광우병 논란의 본거지인 인터넷의 다른 허위사례를 앞세움으로써 그곳의 권위와 활동성을 제약하는 방법이다. 논란의 당사자를 치기 위해 논란과는 관계없는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문을 막고 설득력을 삭감하는 방법이다.

너무 일방적이고 과도한 해석일까? 며칠 전엔 '광우병 괴담'만 있었지만 '며칠 후'엔 다른 괴담이 추가됐기 때문일까? 그래서 범위를 넓힌 걸까?

그럼 이건 어떨까? 중국인 난동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인터넷은 이른바 '집단적 감성주의'로 넘쳐났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 중국인에 밟혀 죽었다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도 유포됐고 중국인 유학생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땐 이러지 않았다. '디지털 마오이즘'의 일환이라 비난하지 않았다. 국민의 공분을 이해하면서 단지 인터넷의 '과도한' 대응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더 있다. '디지털 마오이즘'만 갖고 따지자면 '황우석 파동'에 필적할 사례는 없다. 소음이 컸고 상처가 깊었던 사건이다. 굳이 반추하지 않아도 누구나 또렷이 알고 있는 사안이다.

이 때 두 신문이 어땠는지도 안다. 인터넷이 논문 조작 사실을 밝혀낸 'PD수첩'을 공적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때 두 신문이 팔짱 끼고 있었던 사실을 똑똑히 기억한다. 집단적 감성이 난무하고 애국주의가 넘실대던 그 때 두 신문은 강 건너 불구경했을 뿐 아니라 'PD수첩' 때리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말을 하고 보니 어폐가 있다. 그 때의 '황우석 옹호'나 지금의 '인터넷 괴담'이나 허위 사실에 현혹돼 집단적 감성주의가 넘실대는 면에선 같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두 신문이 '황우석'을 거울삼아 사태의 재연을 막으려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래서 반박 사례로 삼기엔 역부족인 듯 싶다.

하지만 아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천착하면, 그리고 '황우석 옹호'와 '인터넷 괴담'을 맞세우는 게 아니라 '황우석 옹호'와 '광우병 우려'를 맞세우면 비교사례로 손색이 없다.

두 신문은 그 때 그랬다. '황우석'은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인터넷의 거센 반발은 "합리적 토론"이었고, 그래서 제어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에 '광우병'은 '괴담'이고 '허위'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인터넷의 격한 논란은 "집단적 감성주의"에 불과하고, 그래서 제어해야 한다.

또렷해진다. 두 신문의 기본자세는 확고하다. 논란의 양태는 중한 게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논란의 내용, 즉 진위다.

언론의 본령에 충실한 자세 같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배반하지 않는 언론의 본령을 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진실이 불분명할 때는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 방법을 두 신문은 부정하고 있다. '황우석'에 대해서는 '진실'이라고 단정했고 '광우병'에 대해서는 '괴담'이라고 일축한다.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토론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그렇게 간주했고 그렇게 몰아간다.

이들에게 진실은 규명되고 정립돼야 할 것이 아니다. 선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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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교사'다. 소통의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보여준 이가 바로 그이다.

오만과 독선이라고 했다. 상당수 사람들이 '대놓고 지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에 그런 딱지를 붙였다. 그리고 떨어져 나갔다.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최대의 수혜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반노무현 정서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떨까? 그는 극복하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철을 밟지 않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반노무현의 적자였던 그가 이제는 노무현의 수제자가 되고 있다. 그와 그의 참모·각료들이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추리기도 힘들다. 너무 많다. 그래서 제한한다. 어제 하루 동안 나온 말들로만 제한한다.

▲"친일 문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봐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용서하는데…" : 이명박 대통령,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가 친일 인사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한 데 대해.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광우병 감염 우려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하겠다고 약속했고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맞으면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설거지를 해줬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왜 대통령이 사과하나”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조치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야당 의원들을 향해.

세 사례 모두 지극히 부적절하다. 국민 정서에 어긋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상황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을 용서한 적이 없다. 국민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일제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이 지금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를 내세워 '용서'를 언급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걸 '용서'로 인식하는 국민도 없을뿐더러, 이 대통령의 그런 태도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대통령의 '우리' '용서' 발언이 '국민화합'에 저해가 될 뿐이다.

▲"광우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면 나가야 한다. 저잣거리로 나가고 광장으로 나가 살펴야 한다. 일정이 바빠 짬을 낼 수 없다면 여론조사라도 한 번 의뢰해볼 일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걱정하는지를…. 유 장관은 “저도 미국 가면 쇠고기 자주 먹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그의 개인 행동일 뿐이다. 상당수 국민은 '광우병 마루타'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되돌려줄 말이 있다. “매사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 대변인의 말이다. 바로 이게 문제다. "설거지를 해줬으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먼저 "고맙다"고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터진 게 바로 IMF환란이고, 그 후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설거지' 하기에 바빴다. 그 탓에 양극화가 심화됐고 민생이 피폐해졌다는 원성이 치솟았고 이 민심이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혁명정부가 아닌 이상 전임 정부의 공과는 후임 정부의 자산이자 부채라는 사실을.

개별적인 반론은 이쯤 해두자. 말꼬리 잡을 이유도 없고 논리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

중점을 둬서 살펴야 하는 건 총론이고 맥락이다. 이 대통령-유 장관-이 대변인의 말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건 '괴리'다. 그들이 언급하는 주체와 실제 주체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

이 대통령의 '우리'와 유 장관의 '국민', 그리고 이 대변인의 '남'은 너무 일방적이다. '우리'와 '국민'과 '남'이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건 독선이다.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지 않은 채 옳은 것으로 전제해 놓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는다. 그래서 오만하다.

이런 사례가 있다. <서울신문>이 오늘 보도한 내용이다. 청와대가 대통령실장 직속으로 홍보 전담조직을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정책 홍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향상 업무를 전담할 조직이라고 한다.

기조는 뚜렷하다. '수렴'과 '경청'이 아니라 '설득'과 '홍보'다. 청와대 관계자도 그렇게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부 정책의 진정성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가 국정홍보처를 강화하고 청와대·국정 브리핑을 만든 것과 흡사하다.

흡사한 게 하나 더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그랬다. 국민 참여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의 성격을 '참여정부'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도 그랬다. 너나 할 것 없이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 뿐이다.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부 정책은 별로 잘못된 게 없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민심이다. 그러니까 홍보를 강화하는 건 필연이자 당위다. 사고는 이런 수순으로 진행된다.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소통'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도진개진'이다. 굳이 차이를 찾아야 한다면 어느 정부가 더 꽉 막혀있는지, 그 정도를 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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