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12 그분이 오신다, 암행하면서… (6)
  2. 2008/04/11 박근혜는 정말 승자일까? (10)
  3. 2008/03/06 민주당은 공천혁명…한나라당은? (1)

2월 9일.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정두언 의원을 만난다. 사흘 전 이명박 대통령과 밀담을 나눈 정두언 의원으로부터 메시지를 전해 듣기 위해서였다. 전달된 메시지는 “귀국 후 곧바로 정치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이 정권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연구해 달라”는 것.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한다. 그리고 이틀 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베이징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내달 귀국하면 이 계파니 저 계파니 하는 정치는 안 할 생각”이라고 표명한다.

2월 11일. 이해봉 의원의 대놓고 말한다. “현역 의원이 입당하면 당연히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게 하는 게 관행인데 아직 아무 조치가 없다”며 “국내에도 없는 정치 실세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고 직공을 가한다. 그리고 박근혜계는 이명박계 원외위원장들이 당협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는 움직임 뒤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있다고 말한다.

극명하게 갈린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본인 입으로 ‘계파 초월’을 선언하는데 맞은편에서는 ‘계파 암약’을 성토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상반된 현상, 이 상반된 주장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까?

분리 추출할 필요가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귀국 후 ‘암행’하려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파 갈등이 심화되는 이유를 나눠 살필 필요가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암행’해야 이유는 정치 전면에 나서지 말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부 때문이다. 여권이 분열하는 걸 막으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바람 때문이다.

계파 갈등이 심화되는 이유는 대비하기 위해서다. 불안한 공존상태가 깨질 때를 대비해 세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비타협적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분리 추출하니 자연스레 모아진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암행’은 시한부일 것이란 점, 오히려 그의 ‘암행’이 시한부 종료 시점을 앞당길 것이란 점이 도출된다.

당협위원장 갈등 배후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있다는 박근혜계의 시각이 반증한다. 당협위원장 자리를 조정해야 하는 안경률 사무총장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 안경률 사무총장이 이재오계라는 점을 놓고 ‘이재오 배후’를 의심하는 박근혜계의 시각이 증명한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의사와 행동은 기실 중요하지 않다. 박근혜계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뇌관은 바로 이것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암행’은 박근혜계의 눈을 더 게슴츠레 하게 만든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암행하면 할수록 그의 행동과 의사는 해석의 영역에 방치된다. 그리고 이 해석의 공간에서 박근혜계의 계파적 시각이 활보하게 된다.

이치가 그렇다.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시점은 ‘적’이 보이지 않을 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가할지 모르기에 너나 할 것 없이 경계태세를 강화한다.

박근혜계 입장에선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암행’은 ‘암약’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가할지 알 수 없게 하는 비정규전이다. 그래서 매개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암행’은 계파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접착제다.

마냥 두고 볼 수가 없다. 박근혜계의 이런 대응을 ‘오해의 소치’로 일축하면서 괘념치 않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움직임이 계파 결속을 넘어 계파 확장을 위한 동력으로 직동될 게 분명하기에 수수방관할 수가 없다.

얻는 것도 있다. 정치 전면에 복귀할 명분이다. 박근혜계의 계파적 공세가 거세질수록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양지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재림하는 모습이 아니라 끌려나오는 모습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계파의 정치 공세에 휘둘리는 피해자로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공격이 아니라 정당방위를 위해 정치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를 연출할 수 있다.

때가 되면 터지게 돼 있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암행’은 ‘출도’를 선포하기 위한 예비수순에 불과하다.
 
▲사진=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오마이뉴스

Posted by '토씨'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총선의 최대 승자가 박근혜 전 대표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잠자는 숲속의 달성공주가 됐고, 일곱 난쟁이는 26명으로 불어났으며, 못된 왕비는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누가 봐도 분명한 해피 엔딩이니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런 평가를 내리는 건 당연지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정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금언이 근거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수성전 승리…그리고 갇혔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크게 두 가지다.

갇혔다. 철저하게 영남지역에 갇혀버렸다. 그래서 지역주의의 대표가 됐고 계파의 보스가 돼 버렸다.

단적인 예가 있다. 친박연대의 득표율이다. 영남을 제외한 다른 곳에서 10%대 초반의 득표율을 올린 반면 충청지역에서 한자릿수 득표율에 그쳤다. 또 한명의 지역주의 대표, 이회창 총재의 방어선에 막혀 전국으로 나아가는 교두보를 잃어버렸다.

수도권에서는 이명박 방어선에 막혔다. 한나라당이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압승을 거둔 비결은 강북지역민의 이해심리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다는 불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뉴타운 성과를 대비시킨 게 결정적 승인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표의 승리는 공성전에서의 승리가 아니다. 영남 수성전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물론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성문을 열고 나가 개활지에서 진을 펼칠 시간은 충분히 있다. 그런데 공교롭다. 이번엔 다른 게 발목을 잡는다.

모두가 입을 모은다.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박근혜 전 대표는 명실상부한 '국정의 동반자'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한다. 찬사에 가까운 호평이지만 오히려 이게 족쇄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정의 동반자' 지위를 향유하고자 한다면 꼭 그 만큼 '국정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당 대표가 돼 이명박 대통령과 정례회동이라도 하게 되면 더더욱 책임의 폭과 깊이는 커진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정동영 전 장관의 행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태자'에서 졸지에 채권 추심에 시달리는 '보증인' 신세로 전락해버린 게 정동영 전 장관이다. 이명박 정부 정책이 실패하면 박근혜 전 대표도 그렇게 된다.

'국정의 동반자'='국정의 보증인'

또 하나, 확인된 바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까지 조연 또는 공동주연을 맡은 적이 없다. 이회창 대표가 한나라당을 떠난 후 늘 정점에만 서 있었다. 정점에 오른 주인공에서 2인자 또는 경쟁자로 위치 이동을 한 건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이후다. 불과 몇 달 안 된 현상일 뿐 아니라 그 몇 달 동안 화음보다는 마찰음이 더 컸던 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전망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당장 대표직에 도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당권과 거리를 두다가 한나라당이 곤란한 지경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를 자임할 공산이 크다고 예측한다. 어떨까? 이 전망이 맞아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견지할 '여당 속의 야당' 노선 또한 양면성을 지닌다. '여당'을 강조하면 박근혜 전 대표의 존재감이 약화되고 다른 제3의 경쟁자를 키워준다. '야당'을 강조하면 한나라당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정국 주도력이 반감된다. 한나라당엔 무능 낙인이 찍히고 정부와의 관계는 혼선으로 비쳐진다. 열린우리당이 그렸던 족적을 되밟게 된다.

어떤 경우든 박근혜 전 대표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의 총선 승리는 단지 일회성 전투에서 거둔 전황일 뿐이다. 전쟁 즉 차기 대권까지 가기 위해 박근혜 전 대표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정치는 절대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상대를 봐가며 상대보다 나은 가치와 모습을 창출하려 한다. 그래서 상대게임이라고들 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전개되는 공천 갈등에도 이런 흔적이 진하게 묻어있다.

한나라당이 없었다면 '박재승 혁명'이 가능했을까?

이렇게 보면 어떨까? 민주당의 '공천 혁명'을 오직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뚝심 덕이라고 볼 수 있을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직'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는 어렵다. 민주당의 공천 혁명이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 덕이었다면,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은 다른 요인 덕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공천 배제 대상을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로 정하지 않았다면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이 관철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정상 참작 여지와 당선 가능성을 내세운 저항세력에 막혀 좌초했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민주당 안팎의 여론이 저항세력을 견제하고 박재승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뚝심이 혁명을 낳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제 시선을 돌려보자. 그럼 한나라당은 어떻게 상대게임을 할까? 민주당의 공천 혁명을 개혁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을까?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박재승 위원장의 뚝심을 모델로 삼고 민주당의 공천 혁명을 윤활유 삼아 개혁 공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공천심사위가 민주당의 경우를 비교사례로 삼아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이 현실화하려면 조건이 추가돼야 한다. 민주당과 똑같이 공천심사위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세력과 여론이 조성돼야 한다.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

민주당 계파는 대선을 기점으로 해체·약화됐지만 한나라당 계파는 굳건히 서 있다. 민주당은 공멸을 피해야 하지만 한나라당은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당은 '우리'를 우선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나라당은 '나'를 챙기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은 '박재승 혁명'을 지렛대 삼을 수 있을까?

이게 화근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특수성 때문에 개혁보다는 안배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쾌속보다는 만만디 행보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 공존의 틀이 깨지지 않는다. 균열현상을 보여도 틀이 깨지는 최악의 경우를 막을 수 있다.

'봐주기 공천'이 나타나는 이유, '화약고'라 불리는 영남지역 공천 확정 시점을 늦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요인이 있긴 하다. 인수위의 과속과 조각 파동으로 민심이 요동친다고 한나라당 스스로 말한다. 그래서 걱정한다. 이러다가 200석은 고사하고 과반의석 확보도 어렵다고 말한다. 엄살기가 다분한 자가 진단이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대선 직후의 분위기에 견주면 이상 조짐이 있는 건 분명하다. 한나라당이 목표 의석수를 하나 둘 줄이다보면 위기감에 휩싸일 수 있다.

이런 위기감이 개혁 공천을 다그칠 수 있다. 민주당보다 조금 나은 공천을 이루지 못하면 총선에 밀리게 된다는 절박감이 윤리 공천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요인이 한나라당의 직진을 이끌지는 미지수다.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위기감이 오히려 계파 공존의 절박성을 키울 수 있다. 만에 하나 한나라당 의석수가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려면 특정 계파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 특정 계파를 자극함으로써 분란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소'는 버리고 '대'를 잡아야 한다.

이렇게 보니 한나라당은 또 하나의 상대게임에 빠져있다. 민주당보다 나은 공천이 아니다. 개혁 공천보다 나은 실리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공존 틀, 이걸 버릴 수가 없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