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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나름’이라는 말 그대로다. 행위는 하나인데 해석은 둘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해빙’ 또는 ‘데탕트’로 해석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어제 청와대에서 만나 ‘웃음꽃’을 피운 것을 중시하면서 이렇게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두 사람 간의) ‘해빙(무드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고 전망했고, ‘중앙일보’는 “‘데탕트’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두 사람 사이에 입장차가 여전한 것으로 진단했다. “의견 교환도 있었고 공감한 부분도 있었다”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말 가운데 ‘도’ 한 글자를 뽑아내 이렇게 짚었다. 이 한 글자에 의지해 ‘경향신문’은 “일부 현안을 두고는 이견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풀이했고, ‘한겨레’는 “두 사람이 주요 현안에 의견 일치를 본 것 같지는 않다”고 추정했다.

가르지 말자. 두 개의 해석 가운데 어느 게 객관적 사실에 근접한 것인지 가르지 말자.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소상히 밝히지 않는 한 이 역시 보기 나름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닌’ 정치인의 일반적 생리를 간과했는지 모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공감하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공감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평가절하 했는지 모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다 보니 보기 나름의 진단을 내놓은 것이다.

유용하지 않다. ‘정답을 모르는 찍기’라는 점에서 유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정치발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보더라도 유용하지 않다.


과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도리와 책무를 강조하고 촉구하는 작업은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계파 수장의 일거수일투족만 좇는 보도 행태가 공간을 넓혀줬다. 계파 수장이 계파 논리에 경도돼 계파의 안위를 챙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신과 계파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과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닦아줬다.

이번에도 똑같다. 왜 말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어야 할 대목에 가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북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 국정 현안을 거론해 놓고서도 “구체적 내용은 얘기하지 않겠다(박근혜)”고 차단막을 치는데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에 대해 하루 빨리 입장을 밝혀야 정치 갈등이 줄어든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남북문제,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가 정치 갈등을 낳는 주요인인 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면 여권 유력 정치인에게만 ‘귓속말’을 할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얘기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차기를 노리는 여권 유력 정치인이라면 민감한 국정 현안을 대통령에게만 ‘낮은 목소리’로 말할 게 아니라 국민 앞에서 당당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볼 뿐 아니라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6일 청와대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품을 적잖이 들인 점은 인정한다.

22년 전 기사를 뒤졌다. 색 바랜 신문에 침을 바르고, 필름통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찾아냈다. 1987년 6월항쟁 전후의 ‘경향신문’ KBS·MBC 보도를 들춰냈다. 정권에 아부했고 시민에 등 돌렸던 세 매체의 과거사를 대서특필했다.

이해한다. ‘동아일보’가 세 매체의 과거사를 들춰낸 이유를 이해한다. 경멸과 냉소를 가득 담아 ‘너희가 언제부터 민주언론 진보언론이었는데?’라고 되묻기 위해서다.

‘동아일보’가 그랬다. 세 매체가 서울광장에서 열렸던 ‘6.10민주회복범국민대회’를 6월항쟁 정신과 연결한 것을 문제 삼으며 “최근 6.10범국민대회와 관련해 민주주의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것은 지난 일을 모른 체하는 행태”라고 했다.


이런 식의 비판은 처음이 아니다. 6월 15일자 ‘황호택 칼럼’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6월 10일만 되면…제철을 만난 듯 지면에 활기가 넘치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경향신문’과 KBS·MBC는 ‘관제언론’을 하고 있었던 반면에 ‘동아일보’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6월 민주항쟁에서 선두에 서서 붓으로 싸웠다고 했다. 이렇게 “과거사를 들추는 이유는 우리 자랑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관제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인정한다. ‘동아일보’가 들춰낸 과거사는 사실에 부합한다. KBS와 MBC는 분명 ‘관제언론’이었다. ‘땡전뉴스’의 첨병으로서 하루가 멀다 하고 나중에 6월항쟁의 주역이 된 ‘일부 극소수 불온세력’을 성토하는 ‘보도특집’을 방송하곤 했다. ‘경향신문’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5공 시절에 ‘경향신문’이 전두환 세력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놨다는 기록을 찾기는 힘들다. ‘동아일보’는 대척점에 서 있었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고, 민주언론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과거사 들추기를 인정하지 못한다. 동의하지도 않는다.

‘동아일보’는 자충수를 뒀다. 헛심 쓰면서 헛물만 켰다. 두 개의 반문을 끌어내는, 누워 침뱉기식 우를 범했다. 이런 것이다.

첫번째 반문은 ‘그럼 너희는?’ 이다. 그럼 ‘동아일보’의 과거사는 그리 떳떳하냐는 반문이다. 회고 시점을 22년 전에서 일제강점기로 확장하면 ‘친일’ 전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역사학계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두번째 반문은 ‘그랬던 너희는?’ 이다. 22년 전 민주항쟁의 선봉에 섰던 ‘동아일보’가 지금은 어느 세력의 선봉에 서 있느냐는 반문이다. 각계각층이 민주주의 후퇴 또는 위기를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데도 ‘동아일보’는 이명박 정부 옹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 반박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미 반박하고 있다. ‘친일’ 전력 주장은 진실이 아닐 뿐 아니라 시대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공과 과를 두루 아우르지 못한 단견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민주주의가 부여한 자유를 좌파세력이 악용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따로 재반박하지는 않으련다. 그래봤자 평행선을 달릴 뿐이니까….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동아일보’가 스스로 내놓은 논란의 해법을 상기하고 환기시키련다.

‘황호택 칼럼’이 그랬다. “어떤 신문의 논조가 옳고 그른지는 독자의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도 했다.

이 ‘훈계’를 받들어 ‘동아일보’에 권한다. 스스로 설정한 금도를 자신에게 적용시키기를 권고한다. 역사의 평가는 차후의 일이니까 그렇다치고 당대의 독자 판단이 어떻게 내려지고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살피기 바란다. 정말 일부 좌파세력만이 ‘동아일보’를 공격하는지 객관적으로 진단하기 바란다. ‘동아일보’ 또한 한 때의 영광을 우리고 또 우리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독점한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해 보기 바란다.

세상사 이치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 나가 “우리 집안은 삼정승 육판서를 배출한 명문가라오”라고 하면 “그래요? 그럼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는데요?”라고 반문하는 게 세상 인심이고 시대 정서다.

▲‘동아일보’ 6월 26일자 기사

Posted by '토씨'

아주 상징적인 현상입니다. ‘한겨레’의 고광헌 사장이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삼성 광고 없는 경영’을 선언한 게 그렇습니다.


얼핏 봐선 난센스입니다. 언론사 사장이 ‘일개’ 그룹의 광고와 관련해 중대선언을 하는 게 격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삼성의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큽니다. ‘한겨레’ 전체 광고매출에서 삼성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15% 정도였다고 합니다. 신문사 수입의 80∼90%를 광고수입이 차지하니까 삼성의 광고는 ‘한겨레’의 경영을 좌우할 정도로 큰 요소였다고 봐야 합니다.


이미 예상했던 현상입니다. 삼성이 ‘한겨레에 광고를 줄 수 없다’고 공식통보한 게 그렇습니다. ‘한겨레’가 삼성의 비리를 집요하게 보도해온 데 대한 대응이란 점만을 놓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4월 삼성이 이건희 회장 사퇴와 전략기획실 해체를 선언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다. 삼성의 광고 재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언론계가 내다봤습니다. 전략기획실은 ‘창구’였습니다. 전략기획실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언론사의 광고 요청을 전략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검토해 집행 여부를 조율하는 ‘창구’였습니다. 그런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니까 광고 집행의 탄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삼성의 그룹 분위기로 볼 때 개별 계열사가 전략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광고 집행을 결정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생뚱맞게 전략기획실의 부활을 주장하지 않는 한, 광고에 눈이 멀어 기업 감시의 눈길을 접지 않는 한 언론사가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행여 삼성이 광고 집행을 재개한다고 해서 경영상황이 확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삭뚝삭뚝 자르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내년 광고홍보비를 대폭 줄이고 있습니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해 광고홍보비를 큰 폭으로 삭감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 들려오는 얘기로는 30% 삭감은 ‘기본’이라고 합니다.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체 광고시장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정부광고의 집행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언론에는 한 푼도 집행하지 않은 반면 신생․소규모 인터넷 언론에는 정부광고를 집행했다며 편파․편중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부터 살고 봐야 하는 대기업에 광고 집행을 늘리라고 얘기할 수 없는 일이고, 설령 그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씨알이 먹히지도 않습니다. 정부 광고 집행이 공평하게 이뤄지리라 기대하기 어렵고, 정부광고에 목을 메는 현실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언론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업의 긴축 경영으로 전체 광고시장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건 공통된 어려움입니다.

특정 언론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모든 언론사가 직면한 광고 위축에다가 설상가상으로 금력과 권력의 견제에 시달려야 하는 특정 언론사들은 어떻게 경영 혹한기를 넘겨야 할까요? 내년 한 해 거세게 휘몰아칠 2중고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특정 언론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실 별로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긴축 경영 외에 뾰족수가 없습니다.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는 일 외에 별달리 손 쓸 방도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한다고 해서 긴축의 극단적 조치를 함부로 동원할 수가 없습니다. 감원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경영환경에 놓여있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뉴스를 생산해왔기에 감원은 곧장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계인원으로 뉴스를 생산해왔기에 감원은 즉각 생산기반의 붕괴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죽는 길입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언론사가 아니라 독자를 향해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독을 해주면, 클릭을 해주면 도움이 될까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면 브랜드 가치가 올라갑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당장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종이신문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구독자가 늘면(실제로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촛불시위 후 자발적 구독자가 수만명 늘었습니다) 비용이 늘어납니다. 종이와 잉크를 구독자 증가분만큼 더 투입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올해 들어 종이값만 해도 20% 이상 뛰었습니다.


비용이 증가하는 만큼 수입도 확대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독료 수입이야 구독자수 증가분에 정비례해서 늘겠지만 그것은 경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문값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독자 수가 하루아침에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 늘어 유가부수 1,2위를 다투는 정도가 되면 광고단가 인상이라도 꾀해보겠지만 자발적 구독자 증가분은 이런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또 어찌어찌 해서 구독자 증가분을 광고단가 책정에 포함시킨다 해도 사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앞다퉈 광고 집행을 줄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 상당기간은 광고단가가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광고량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묻고 또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권력의 개입에 휘둘리는 방송계가 언론대란의 제1전선이라면 금전의 논리에 난도질 당할 처지에 몰린 온오프라인 신문은 제2전선입니다. 

Posted by '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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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부가 언론 논조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정부 부처 대변인들, 그리고 청와대 국내언론 담당 비서관 등이 지난 9일 ‘국정홍보회의’를 열어 미국산 쇠고기 관련 언론 논조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서울신문>이 세게 쓰더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원래 논조가 그러니까” 등등의 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니,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국정 현안에 대한 언론 논조를 살피지 않는 건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국민 여론을 살피는 한 방편이 언론 논조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론 논조를 분석했다는 것만 갖고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국정홍보회의는 일부 언론의 ‘쇠고기 논조’를 “적대적인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광고를 줄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를 했습니다. 정부가 <한겨레>와 문화관광체육부의 공동 사진전에 대한 협찬을 취소한 사례를 시범케이스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적’을 운위하고 ‘차별’을 모색한 게 문제입니다.

국정홍보회의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하지만 국정홍보회의는 이를 뒤로 제쳤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공격을 모색했습니다.

2.

소통은 차이를 전제로 하는 개념입니다. 수평과 평화를 속성으로 하는 개념입니다.

소통은 다르기 때문에 행하는 일입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이해가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바로 소통입니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존재이기에, 그래서 배척할 수 없기 때문에 공통분모를 확대하고 나아가 합일을 이루려는 노력이 소통입니다.

‘적’에겐 이런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적’은 단지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공존과 합일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찍어 누르거나 뿌리를 도려내는 방법 말고 다른 대처법은 없습니다.

3.

국정홍보회의는 국민을 ‘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논조를 보였다는 일부 언론의 기사에 촛불을 든 수만 명의 국민이 등장합니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우려를 표하는 80% 가까운 국민이 등장합니다. 정부의 잘못된 협상을 꼬치꼬치 지적하는 다수의 전문가가 등장합니다. 일부 언론은 이들의 목소리를 집중해서 전달했을 뿐입니다.

이런 논조를 “적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은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적의 선무방송’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과의 의견차를 좁히려는 시도가 아니라 국민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기도와 같습니다.

4.

대통령이 아무리 소통을 강조해도 소용없습니다. 몸소 실천에 나선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현장방문을 강화하는 계획을 세운다고 합니다만 부질없습니다. 대통령이 나가려는 현장은 광장이 아닙니다. 경호원의 통제 아래 조성되는 무대일 뿐입니다.

대통령이 광장에 나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경호상의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광장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는 다릅니다. 청계광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열릴 때 대학로에서 쇠고기 수입 찬성 집회가 열리는 게 다반사입니다. 대통령이 만사 제쳐놓고 여러 개의 광장을 두루 살피는 건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발품을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게 중요합니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여당지와 야당지,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실체를 인정하고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이들 모두의 논조를 살피고 경청하는 게 훨씬 생산적입니다. 언론이 바로 광장입니다.

5.

국정홍보회의는 바로 이 여론 광장을 막으려고 합니다. 다양한 여론 가운데 특정한 여론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이러면 대통령은 외눈박이가 됩니다. 난청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설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먼저 역정을 내고 징계를 해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엉뚱한 짓을 벌이는 국정홍보회의를 질타해야 합니다. 소통 의지가 정말 절실하고 간절하다면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준엄하게 꾸짖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사진=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문화관광체육부 홈페이지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턱없이 낮다. 49%대다.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오늘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그렇게 나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경향신문> 조사에선 49.1%, <한겨레> 조사에선 49.4%로 나왔다.

비슷한 기간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각각 84.8%(1998년 2월 23일)와 71.4%(2003년 3월 29일)였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턱없이 낮은 수치다.

"해보나 마나“에서 ”해볼 만하다“로 바뀐 민주당

민주당은 크게 반긴다. 대선 직후에 ‘총선은 해보나 마나’라며 울상을 짓더니 요즘은 ‘한 번 해볼 만하다’며 얼굴을 펴고 있다.

얼굴에 화색이 도는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한 부류가 경기 출신 의원들이다. <중앙선데이>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1월 중순 1차 조사를 한 8개 경기지역에서 지지율이 두 배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비쳐질까? 민주당이 심기일전하는 모습이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나쁠 건 없다.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승부다. 경기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선수가 풀죽은 모습을 보이면 관중도 맥이 풀리는 법이다. 반대로 선수가 심기일전해 전투태세를 갖추면 경기는 박진감을 띤다. 유권자로선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가짐을 다잡는 것과 객관적인 전력을 진단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한겨레> 조사를 보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한나라당 지지도가 47.8%인 반면 민주당은 13.9%에 불과했다. <중앙선데이> 조사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지지도가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하지만 한나라당도 동반 상승했다. 지지도가 44.3%에서 55.2%로 올랐다.

민주당이 고무되기 전에 고심해야 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빠지고 있지만 한나라당의 지지도는 유지되거나 상승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빠지고 있지만 민주당은 그 음덕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힌트는 <경향신문> 조사 결과에 숨어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에 대해 78.6%가 ‘잘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일시적이라는 얘기다. 두 달여 동안 보여준 모습에 실망하긴 했지만 최종 판정을 내린 건 아니라는 얘기다.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회초리를 든 것이지 냉소를 듬뿍 얹어 결별을 선언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고질적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보다 민주당에 대한 염증이 더 크다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은 ‘초보’이니까 개선 여지가 있지만 민주당은 ‘중고’이기 때문에 리폼 여지가 별로 없다고 본다는 얘기다.

민주당으로선 ‘리폼’ 만이 살 길

민주당으로선 다른 도리가 없다. 오직 한 가지 수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환부를 도려내는 것, 이 것 외에는 다른 묘수가 없다.

관건은 공천이다. ‘중고’ 정치인을 경기조율사인 ‘고참’으로 탈바꿈시켜야 하고, ‘고참’ 주변에 ‘젊은 선수’를 배치해야 한다.

어제 오늘 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 그동안 수도권 출마 종용을 받던 정동영․강금실 전 장관이 서울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이러면 ‘고참’ 배치는 어느 정도 달성되는 셈이다.

수도권 출마를 강하게 거부하는 박상천 공동대표가 남아있긴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정동영․강금실 두 사람의 서울 출마가 확정되는 순간 박상천 공동대표는 고립된다. 또 그만큼 공천심사위의 결단 여지는 넓어진다.

문제는 ‘젊은 선수’다. 이들의 배치 문제가 남아있다.

김홍업 의원이 그랬다고 한다. 수도권 출마 의사를 묻는 공천심사위원들 앞에서 말했다고 한다. “중진도 아니고 9개월 된 정치 신인이 어떻게 수도권 출마를 할 수 있나.”

바로미터가 나왔다. 자칭 ‘정치 신인’이라는 김홍업 의원의 주장에 빗댈 수 있다. 공천심사위가 ‘젊은 선수’ 즉 ‘정치 신인’의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를 보면 안다. 이 걸 보면 리폼 정도와 그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 게재된 것입니다.

Posted by '토씨'

삼성중공업이 광고를 실었다. 오늘자 조간 대부분에 광고를 실었다. ‘대부분’이다. ‘일부분’인 <한겨레>엔 싣지 않았다. 

매우 공손하다.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했다. ‘국민 여러분’과 ‘지역 주민들’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다짐도 했다. “주민 여러분의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 서해 연안의 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말은 공손한데 그 말에 담은 메시지는 단호하다. 단호하다 못해 야멸차기까지 하다.

이런 구절이 있다.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충돌하여…원유가 유출되면서…오염되었습니다.”

아주 선연하다. 인과관계를 분명히 적시해 놓고 있다. 충돌→유출→오염은 시간순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결과인 셈이다. 그럼 원인은 뭘까? ‘갑작스런 기상 악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선박 충돌이 빚어졌다는 얘기다.

인과관계를 이렇게 딱 잘라 규정한 근거는 검찰 수사결과다. 대전지검 서산지청이 어제 발표한 수사결과엔 ‘쌍방과실’만 들어있지 ‘중과실’ 주체는 규명돼 있지 않다. 세간에서 제기되는 삼성중공업의 ‘무리한 운항지시’는 없다. 아예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니 다짐 또한 단호할 수밖에 없다. 삼성중공업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한 건 “생활 터전이 조속히 회복되고…생태계가 복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생태계가 복원돼야 생활터전이 회복될 터이니 기실 하나다. 생태계 복원에만 신경 쓰겠다는 것이다. ‘생활터전 회복’은 둘째 치고 당장의 문제인 ‘생활 구호’는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조간이 삼성중공업의 5단 통광고를 게재하고 있을 때 <한겨레>는 태안군청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고단할수록 하나 되는 우리” “어려울수록 함께하는 사람들”이 태안에 힘을 보내야 “희망의 바다”가 된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더부룩해진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돼야 하는 걸까? 왜 ‘우리’ 사회는 ‘너’를 콕 찍어내지 못하는 걸까?

그래도 좋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목숨은 살려놓고 보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마저도 아니다. 태안군청은 소나기가 계속 퍼붓고 있다는데, “이제 시작”이라고 하는데 삼성중공업은 아니라고 한다. 태안군청은 전면광고를 통해 ‘자원봉사’를 호소하는데 삼성중공업은 버젓이 선언한다. “이제 긴급 방제가 마무리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간극이 너무 크다. 상황 진단의 차이가 너무 크고 다가서는 태도가 너무 판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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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간부 성향조사'….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용어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만 해도 심심치 않게 나돌던 용어가 바로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가 측근들과 함께 언론사를 쥐락펴락하던 시절이었다. '광화문팀'이라는 사조직이 여론동향을 체크하고, 측근들이 케이블 인허가에 개입하고, 현철 씨 본인은 방송사 인사에 간여하던 시절이었다. G클리닉 CCTV에 잡힌 현철 씨의 모습은 그랬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라는 용어가 종종 삐져나오곤 했다.

사라진 줄 알았다. 아니 최소한 공식무대에선 퇴장한 줄 알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중앙일보 사장실로 찾아가 험한 설전을 벌이고, 현직 기자가 언론사 대책문건을 만든 적은 있지만 권력이 언론사 간부를 뒷조사해 '성향보고서'를 작성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랬다. 기자실에 '대못질'을 해 기자들의 공분을 사기는 했을지언정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을 뒷조사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사를 세무조사하고 노무현 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했지만 잘잘못을 떠나 그건 최소한 공식무대에서 진행된 공개정책이었다.

그래서 죽은 줄 알았다.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와 같은 전근대적이고 음험한 인적 통제는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경향신문>이 내놨다. 대통령직인수위가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를 지시했다며 보고서 문건을 공개했다. <경향신문 기사 보기>

이 문건에 따르면 조사대상은 '언론사 사장단 및 편집국장, 정치부장, 문화부장'은 물론 '주요 케이블 및 종교방송사를 포함한 방송사 대표 등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를 두루 망라한다. 심지어 '주요 단체장 상임이사와 감사' 그리고 '주요 광고주 업체 대표'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조사내역도 광범위하다. '생년·출신지·최종학력·주요경력·최근활동·연락처'를 포괄하고 있다.

쓰임새가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공언을 기준으로 삼으면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는 애당초 시도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그랬다. "대통령으로서 친한 정도에 따라 (언론을)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수위의 누군가는 참지 못했다.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인수위가 출범한지 며칠 되지도 않아 서둘러 지시했다.

왜였을까? 왜 참지 못했을까? 성향조사를 통해 뭘 하려 했을까?

방점을 찍어야 하는 대목이 세 군데 있다.

인수위가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대상은 정부부처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자명하다. 정부부처는 그들만의 시각으로 언론사 간부의 성향을 조사하게 돼 있다. '친정부'와 '반정부'의 이분법적 시각이다.

조사 대상에 언론사 문화부장과 케이블 방송 대표를 포함시킨 점도 눈길을 끈다. 언론사 문화부는 '비정치 분야'에 해당한다. 케이블 방송도 그렇다. YTN이나 MBN과 같은 보도 채널이 있긴 하지만 대개는 오락채널이다. 그런데도 인수위는 이들의 성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가 '성향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무서운 발상이다. 문화·오락분야에까지 정부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어떻게 성향을 '유도'한다는 걸까?

주요 광고주업체 대표의 성향까지 조사하도록 한 것에 세 번째 방점을 찍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명천지에 5공시절의 폭압적이고 물리적인 통제책을 다시 꺼내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노무현 정부처럼 대놓고 '맞짱' 뜨는 방식도 소모적이다.

가장 조용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광고를 통한 간접통제다. 70년대 '동아 자유언론 수호투쟁' 과정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방식이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삼성의 '비판언론' 광고차단도 비슷한 사례에 속한다.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저해하는 첫 번째 주체로 광고주를 꼽았다는 여론조사도 여럿 발표된 바 있다.

우려를 떨쳐낼 수 없다. 쏠림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정치지형은 한나라당 독점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자리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도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총선 압승도 점쳐지고 있다. 이러면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이 완전히 장악한다.

이런 마당에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가 '성향 유도'로 연결되고, 그에 따라 정부 감시·견제 기능이 위축된다면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여론권력마저 석권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가정 상황이 실제 상황이 되면 이명박 당선자는 '절대 권력'을 넘어 '전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견제를 통해 균형이 잡히고, 균형을 통해 시행착오를 사전에 걸러낸다는 역사의 교훈과 행정의 원칙은 허망하게 무너진다.

대선이 정점에 올랐을 때 이명박 당시 후보의 측근이 그랬다. 언론을 향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때의 협박성 발언이 '언론사 간부 성향 조사'로 실천되는 것이라면 정말 좌시할 일이 아니다. 그 폐해가 끔찍하고 그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색출해야 한다. 누가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를 기획하고 지시했는지를 찾아 엄벌해야 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진노한 일이 있다.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이 언론에 흘러나갔을 때다.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만복-김양건 대화록'이 언론 보도를 탔을 때도 그랬다. 인수위는 발칵 뒤집혔고 제보자를 색출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자신의 '언론 불간섭' 공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면서 '언론사 간부 성향조사'를 기획한 사람에 대해서도 진노를 하고 색출을 지시할 것인지를 지켜봐야 한다.

재미 삼아 관전하는 게 아니다. 절박하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불온한 발상과 음험한 시도가 초장에 제어되지 못하면 언론은 죽는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