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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2 고 강경대 부모 “누구도 다쳐선 안돼” (87)
  2. 2008/07/01 강경진압의 역설 'MB 가두기'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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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도 부모가 있고, 전경도 부모가 있지 않습니까. 내 자식만은 안 다쳐야 하는데, 그게 부모 마음이죠. 모두 귀한 자식들입니다. 부모들 가슴에 상처 주는 일 없도록 서로 절대 다쳐선 안 됩니다.”

청와대와 경찰이 촛불집회에 대해 잇따라 강경진압 방침을 재확인했던 지난달 30일. 대학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채 안 된 외아들을 경찰 폭력으로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고 강경대 군의 부모를 찾았다. 만나자마자 ‘다쳐선 안 된다’며 몇 번이고 강조한다. 그들에게 지난 두 달여간은 아픈 경험을 다시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경대 엄마가 힘들어 했죠. 경찰한테 맞아 앞니 모두가 나가 버렸는데…. 다시 경대 일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 많이 하지요.”

고 강경대 군의 부친 강민조(67) 씨가 부인 이덕순(60) 씨를 다독이며 말한다. 이덕순 씨는 강경대 군 사망 사건이 일어난 지난 91년 ‘법정소란죄’로 재판정에 선 강민조 씨의 공판 참석을 막는 전경으로부터 얼굴을 방패로 찍혔다. 아들의 죽음과 남편의 감옥행에 절규하던 이 씨에게 날아든 전경 방패는 지금도 쉽게 기억에서 지우기 힘든 일이다.

“경찰 폭력이라고 하면 치가 떨리죠. 지금도 하루같이 그 때 생각이 납니다. 이번에 쇠고기 촛불집회 현장에 가서도 ‘아들 같은 사람들이 다치면 어떡하나’하는 생각과 함께 ‘전경들이 나한테 달려오면 또 어떡하지’하고 불안해했죠.”

강민조 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지금까지 경찰폭력 피해 부모들의 모임 등에 참석하며 활발히 사회참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일에도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사회원로 100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지난 18년 동안 큰 집회는 안 나가본 적이 없다. 그 사이 ‘새파랗게 젊은 전경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하다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덕순 씨는 그동안 평범한 주부로 살았지만 쇠고기 촛불집회를 TV로 보다 ‘앉아 있을 수만 없어서’ 강민조 씨와 몇차례 서울시청 앞을 찾았다고 한다.

“학생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특하던지 모르겠더라구요. 마냥 어리광만 부릴 것 같은 나이인데도 말도 잘하고 표현력도 좋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경대가 죽기 전까지 ‘안일’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아들로 인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이 씨가 덧붙인다. 그러면서 “경대가 살았더라면 아마 직장 다니다 그 자리에 서 있지 않았겠냐”며 웃어보인다.

“촛불집회에 가면 어떻게 알아보고 ‘경대 부모님 오셨냐’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나 하나 기억을 못하니 미안하더라구요.”

다시 경찰의 강경 진압 이야기로 돌아갔다. 안타까운 심경이 묻어나는 말들이 이어진다.

“위에서 시키니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유난히 폭력적인 전경들이 있더라구요. 내 경험상 시위대는 절대 먼저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요. 평화적인 집회를 보장하란 이야기를 전경들도 이해는 할텐데….”

강민조 씨는 ‘치고 받는 시위가 아니라 웃으면서 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어미니 이 씨는 몇 번이고 ‘부모 마음’을 강조한다. “전경도 대한민국 국민이잖아요. 이성을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자식들은 시위대건 전경이건 안전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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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이야기가 나오자 강민조 씨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혹시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함부로 진압 명령을 내리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도….”(강민조 씨)

강민조 씨는 특히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전날 ‘불법 과격시위 같은 집회는 공동체 이익을 갉아먹는 해충과도 같다’라고 한 발언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촛불집회에 한번이라도 나와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기 생각만 가지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조중동 보는 그대로 세상을 보는 것 아닙니까.”

이덕순 씨가 말을 받는다.

“광우병은 벼락 맞을 확률이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벼락 맞을 확률에 안전하다고 말하는 대통령도 포함 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안전한 식품을 먹고 싶다는 게 국민들, 특히 주부들 생각입니다. 게다가 이젠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도 지났잖아요. 그걸 옛날식으로 국민들한테 강요하려고만 들려니… 후세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네요.”

*뒷이야기=고 강경대 군의 아버지 강민조 씨는 아들이 죽은 지난 91년 4월 이후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평범한 사업가에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일을 하면서 민주화유공자 특별법 제정,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 전면에 나선 투사가 됐다. 한편으론 ‘강경대 한방무료진료소’를 열고 해마다 경대의 생일 때 경로잔치를 열었다. 지역감정을 없애자는 운동도 벌였다.

어머니 이덕순 씨는 경대가 죽은 후 광주로 내려가 98년까지 ‘경민회관’이란 식당을 운영하면서 해마다 5월이면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시민들을 거두는, 광주 운동판의 대모역할을 했다.

지난 94년 5월의 어느날 늦은 저녁 경민회관을 찾았을 때, 이사 오기 전 서울 집의 경대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경민회관 2층 방에 어머니가 자리를 펴주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다시 찾은 집에서도 그 때 봤던 경대 방이 그대로 옮겨져 왔다. 경대가 쓰던 책상 위 경대의 영정만 조금 더 커졌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흰머리가 많이 늘어난 어미니 이 씨는 오는 사람마다 ‘거둬 먹이기’ 바쁘다. 94년도에는 난생 처음 전라도식 생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엔 강민조 씨의 고향 영광에서 올라온 오디차와 쑥떡을 쉴새없이 권했다.

경대의 누나 강선미 씨는 지난해 결혼을 했다. 이달이 출산 예정일이다. 촛불집회를 지켜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경대가 태어난 지 37년만에 새 식구가 들어온다는 생각에 강민조 씨와 이덕순 씨는 살짝 들떠 있었다.

▲사진 제공=시민사회신문

Posted by '토씨'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쇠고기 협상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지지율을 까먹었고 자신의 주요 정책을 민심 무마카드로 내놨다. 집권 초기의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530만 표 차 당선이란 프라이드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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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겨온 자산을 잃었다. 바로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실용’의 핵심은 ‘초월’이다. 이념의 대립구도를 초월해 오로지 성과와 이익을 강조하는 효율주의다. 본인과 그 주변이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이 ‘실용’이 무너졌다. 쇠고기 협상에 ‘졸속’ ‘굴욕’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실용’의 거품은 터졌다. ‘실용’은 고사하고 ‘실력’조차 의심 받는 처지에 몰려 버렸다.

설상가상이다. 여기에 또 한 번, 아니 결정적으로 ‘실용’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꺼내들었지만 결국 자신을 덫에 가둬놓을 자충수다. 강경진압이다.

잘 둘러볼 필요가 있다. 여권이 며칠 동안 주장해온 바와 강경진압은 호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추가협상 후 민심이 촛불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촛불집회는 이제 극렬 좌파·반미 전문이 주도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장담했다.

여권이 정말 이렇게 확신했다면 강경진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조금만 참으면 자멸할 집회였다.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 다수가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집회였다. 그런 집회에 물대포를 쐈고 소화기를 뿌렸으며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그렇게 강경진압 함으로써 자기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자기 손으로 ‘실용정부’ 간판을 떼어내고 ‘실력행사’ 담화문을 갖다 붙였다.

왜였을까? 조금만 참으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둘러 강수를 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자멸’의 길을 유도하지 않고 정치적·도덕적으로 부담이 큰 ‘진압’의 길을 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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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여권의 ‘촛불집회 변질’ 주장이 올가미가 돼 버렸다.

그런 주장이 강성 우파에 명분을 주고 말았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면 두고 볼 게 뭐가 있냐고, 당연히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에 기름칠을 해 버렸다. 촛불집회장에 극렬 좌파·반미 전문만 남았다면 당연히 ‘비타협적으로’ 맞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우파의 대결논리가 득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은 갇혀 버렸다. 좌우 이념을 초월하기는커녕 우파, 그것도 강성 우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촛불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강성 우파의 목소리에 눌려버렸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진압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 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렇게 진압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미몽이다.

‘착각’과 ‘미몽’ 반대편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립지대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도덕적 사안 때문에 중립성향의 국민이 이탈한다. 여느 사안보다 탄력성이 작은 도덕 문제 때문에 중립지대의 국민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탄력성이 작다는 건 한 번 마음 먹으면 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회귀 현상이 발생한다. 최루액과 각목을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빚어진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느냐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논란이 조성할 지형이 중요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형성되면 흡수한다. 이념공세를 흡수해 버린다. 그게 과거 독재시절 확인한 원리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자명하다. 소수화다. 이명박 정부가 소수화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조리 장악하고 의회마저 석권했다 하더라도 고립된 섬이 된다. 민심의 바다 한켠에 유폐된 무인도가 된다. 그와 함께 ‘실용’엔 용도폐기 딱지가 붙여진다.

반박 소지가 있는 두 문제를 마저 짚고 마무리하자.

하나. 왜 단정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변질된 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하는 게 오히려 국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그 한 예가 강경진압의 맞은편에서 ‘극렬 저항’하는 사람들의 면모다. 이들이 극렬 좌파·반미 전문의 전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택배기사와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극렬저항’한 사람은 택배기사였고 ‘강경진압’에 팔이 부러진 사람은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둘. 성격 규정이 잘못 됐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모호한 ‘자화자찬’에 불과했다고, 이명박 정부의 본체는 본래 우파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우파 본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실용 변질’로 표현한 이유가 있다. ‘변질’이 ‘본색’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게 그 이유다.

▲사진 제공=프레시안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