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단한 뚝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50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성과가 나왔다. 52개 품목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생활필수품 50개가 뭔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경제부처의 모습을 떠올리면 거의 광속에 가까운 집행력이 아닐 수 없다.

나쁠 건 없다. 정부가 나서서 서민 생활에 직결되는 생필품 가격을 집중 관리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상당수가 70년대식 가격 통제를 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을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해서라도 물가를 잡을 수만 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두 눈 질끈 감을 의사도 조금은 있다. 하지만 두 눈 질끈 감을 일은 없다. 70년대식 가격 통제는 정부 스스로 안 한다고 했다. 눈을 감을 게 아니라 크게 뜨고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면 된다.

남은 방법은 수입 원자재에 붙는 할당관세를 줄이거나 없애고, 담합이나 불공정행위를 단속하고, 매점매석 차단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등의 일이다. 정부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이제 따져볼 일만 남았다. 그렇게 해서 물가를 잡을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 말대로 생활필수품을 집중 관리할 수 있을까?

길게 말할 것 없다. 몇 가지 반박 사례를 대는 것으로 족할 것 같다.

1. 정부가 52개 생필품에 끼워 넣은 게 이동전화 통화료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직 인수위가 밀어붙이려 했던 게 통신료 인하다. 어떻게 됐을까? 달성하지 못했다. 30% 가격 인하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2. 얼마 전 한 방송이 보도한 게 있다. 농협이 직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의 물건이 산지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가락동 농수산시장에서 떼 온 것이라고 고발했다. 이 뉴스에 나온 직판장 관계자 실토했다. 직판을 하려면 비용이 너무 들어 채산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 구조를 뜯어고치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3. 정부는 할당관세를 낮추거나 없애면 소비자물가지수를 0.1%포인트 끌어내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자장면 값은 이미 500원 올랐다. 라면도 올랐고 과자도 올랐고 빵도 올랐다. 이미 오른 가격이 다시 내려갈까? 버스 떠난 다음에 손 흔드는 격이 될 공산이 농후하다.

4. 담합과 불공정 거래행위 단속은 긴요하다. 물가 관리 차원에서 그렇고 시장질서 확립 차원에서도 그렇다. 근데 권한이 약하다. 기업을 조사하러 나간 공정거래위 직원이 회사 직원들의 몸싸움에 밀리기 일쑤이고 확보한 서류를 탈취당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바로 잡으려면 더 강력한 조사권한을 줘야 할 텐데 그러면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쇠퇴하고 규제완화도 퇴색한다.

5. 52개 품목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원비다.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정부는 그런다. 시도 교육청이 나서 학원수강료 표시제가 지켜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단속할 것이라고 한다. 좋은 말이긴 한데 손발이 없다. 자고나면 늘어나는 게 학원 간판이다. 한 교육청이 관리해야 하는 학원만 줄잡아 수백 수천 개다. 이 학원들을 서너 명의 공무원이 단속을 한다?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경험칙이 증명하는 바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52개 생필품 집중 관리가 정부와 서민 모두를 옥죄는 요소로 기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0일 또는 한 달 주기로 발표될 생필품 물가지수가 정부의 성적표가 되고 이런 성적표를 지켜보는 서민이 허탈해질 수 있다. 애물단지에 긁어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