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얼굴은 멀쩡했습니다. 경계하는 눈길이 느껴지긴 했지만 얼굴 어느 구석에서도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랜 노동에 굳어지고 갈라진 손바닥 외에 특이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말하더군요. 취재를 온다고 해서 박스 테이프로 얼굴과 손의 그것을 뜯어냈다고, 옷으로 가릴 수 없는 부분만 모두 떼어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소매를 걷어 팔뚝을 보여줬습니다. 물고기 비늘처럼 갈라진 피부였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어린선’이란 병을 앓아왔습니다. 흔히 ‘뱀살’로 불리는 병입니다. 얼굴부터 발끝까지 피부가 물고기 비늘처럼 일어나는 병입니다. 이 병이 그의 42년 인생을 너무 굴곡지게 만들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잔뜩 화가 난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다짜고짜 그를 나오라고 했습니다.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옷을 걷어올리라고 하더니 “이건 때”라며 집에서 씻고 오라고 혼을 냈습니다. 그는 집에 가 숟가락을 집어들었습니다. 그 숟가락으로 맨살을 벅벅 긁었습니다. 울면서….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남 순천에 있는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교관이 휙 한 번 훓어보더니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어오라고 했습니다. 진단서를 들고 찾아갔더니 ‘입소 불가’라고 짧게 말하곤 내쳤습니다. 울며불면 매달리는 그를 매정하게 내쫓았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막노동을 할 때였습니다. 질통을 지고 가는데 뒤따라오던 형이 질통을 발로 찼습니다. 아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냥 싫다고 하면서 질통을 진 그의 등짝을 떠밀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막노동판과 동대문 봉제공장을 전전하던 20여년 동안 한 곳에서 1개월 이상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이 고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멸시를 버텨내지 못하고 번번히 작업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가장 길게 일한 곳이 6개월, 딱 한 번이었습니다.

그는 5년 전부터 봉제공장을 다니지 않습니다. 그 대신 역시 봉제일을 하는 부인과 함께 집에 재봉틀을 들여놨습니다. 도급을 받아 집에서 재킷이며 바지며 남방을 만듭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일은 집에서 한다고 해도 물량을 따려면 동대문 주변에 몰려있는 공장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자신이 만든 샘플을 보여주고 일감을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반응은 똑같습니다. 샘플을 보고 좋아라하던 공장주나 의류점 주인이 그와 마주 앉기만 하면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그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경기 한파에 봉제 물량이 줄었고, 싸늘한 편견에 그 적은 물량마저 더 줄어들었습니다. 그가 1월 한 달동안 벌어들인 돈은 27만원입니다. 그 돈으로 설 차례상을 차렸고 두 남매에게 2만원짜리 점퍼를 하나씩 사줬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습니다. 먹고사는 게 궁핍한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습니다. 전남 장흥 고향집에 계신 노모가 쌀이며 김치며 이것저것 보내주기에 밥상은 차릴 수 있습니다. 동대문 공장주들의 편견도 어렵지만 피해갈 수 있습니다. 직접 영업을 하는 대신 벼룩시장 같은 데 난 도급물량을 받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같은 동네 같은 주민이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고자질하는 건 참을 수가 없습니다.

1월말이었습니다. 형사 세 명이 서울 보문동에 있는 그의 지하방에 들이닥쳤습니다. 며칠 전 현금지급기에서 도난 된 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용의자가 당신이라며 집을 이 잡듯 뒤졌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CCTV 카메라에 찍힌 도둑의 얼굴생김새가 그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축구공처럼 둥근 그의 얼굴과는 달리 도둑의 얼굴은 갸름한 ‘마상’이었습니다. 한 눈에 알아볼 만큼 얼굴형이 달랐는데도 동네 주민은 형사 앞에서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이번 한 번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는 오토바이 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오토바이에 걸려 넘어졌는데 이 광경을 본 동네 주민이 그가 오토바이를 훔쳐가려 한다며 파출소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한국 사람입니다. 서울 신설동 로터리 주변에서 같은 한국말 쓰고 같은 한국 김치 먹고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다니지 못합니다. 맘대로 거리를 활보하지 못합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녀석 손을 잡고 동네목욕탕을 가는 것조차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름은 ‘수인(囚人)’입니다. 편견의 감옥에 갇혀 사는 ‘수인’입니다.

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