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삼아 양념 친 것이겠거니 했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을거리를 선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진보지니 보수지니 하는 구분법도, 여당지니 야당지니 하는 케케묵은 분류법도 쓸모가 없다. ‘모든’ 언론이 합창을 한다. 그래서 심각하다.
이명박 정부의 초대 총리로 내정된 한승수 유엔 기후변화특사를 두고 ‘모든’ 언론이 스케치한 게 있다. ‘청주 한씨’ 가문의 영광이다.
족보를 줄줄 읊는다. 시조인 한란이란 사람은 “청주의 부호로 고려 개국 때 10만 군사의 군량을 대고 평양성을 쌓는 데 조력한 개국공신”이라고 한다. “광해군 시절 한효순이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했고 영조 때는 한익모가 좌의정을, 고종 때는 한계원이 영의정을 하는 등 10여 명의 정승을 배출한” 가문이라고 한다.
어디 과거뿐인가. 생존 인물 가운데에도 내로라하는 저명인사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모두 ‘청주 한씨’라고 한다.
언론의 족보 찾기는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와서 절정을 이룬다. 참여정부의 한명숙․한덕수 총리에 이어 한승수 총리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3연속 재상을 배출하는 “기적”을 일궈냈다고 한다. 문중원이 64만 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한 가문에서 3연속으로 총리를 배출했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 총리를 연달아 세 번이나 배출하는 가문이 있겠나”라는 ‘청주 한씨’ 종친회 관계자의 말을 중계한다.
그러면서 다시 촌수를 따진다. 한명숙 전 총리는 문혜공파 34세손, 한덕수 총리는 안양공파 31세손, 한승수 후보자는 몽계공파 31세손이라고 한다.
참으로 퇴행적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족보 훑고 촌수 따지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참자. 더 한 게 있다.
또 ‘모든’ 언론이 보도한 게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한승수 후보자를 발탁한 데에는 그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이종사촌 형부라는 점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고 전한다. 이명박 당선자로선 박근혜 전 대표의 협조가 필요했고, 그걸 끌어내기 위해 박근혜 전 대표의 친인척 관계까지 고려했다는 보도다.
기가 막힌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퇴행적이라는 말조차 가볍다. 구태의연한 의식을 구질구질하게 재연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너무 센 지적인가? 그렇지가 않다. 앞서 말한 바를 설명하면 얼추 이해하리라 본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가족관계등록부’가 시행되는 시대다. 부부가 합의만 하면 자녀가 아버지 성이 아니라 어머니 성을 쓸 수 있게 된 시대다. ‘호주’가 사라진 시대다. 지금은….
혹시 참고가 될까 싶어 며칠 전에 나온 뉴스가 하나를 전달하며 마무리한다.
나모 씨란 사람 얘기다. 광주광역시 공무원이었던 나씨는 얼마 전 공문서 변조죄 등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광주 모 구청장과 국무총리에게서 받은 표창장 직급란에 적힌 ‘지방행정주사보’를 ‘사무관’으로 변조해 족보에 올리려 한 게 들통 나 사법처리를 받았다.
두 요소가 우울하게 교차한다. 구청장은 물론 국무총리의 표창까지 받을 정도로 성실했던 공무원 생활, 그런데도 ‘주사보’ 직급이 창피해 ‘사무관’으로 변조하려고 했던 빗나간 의식….
교차로에 서서 생각해볼 일이다. 별개인 것처럼 보이는 한승수 후보자 족보 보도와 나모 씨 행위가 진짜 별개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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